고금소총 제54화 - 다 자란 줄 알았는데 (爲己長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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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재(默齋) 홍언필(洪彦弼)과

그 아들 인재(忍齋) 홍섬(洪暹) 부자(父子)가

다같이 정승 판서에 올라 영화를 누렸다.

 

아들 홍섬이 계집종들을 즐겨 상관하더니

하루는 여름밤에 여러 여종들이 흩어져

대청마루에서 자고 있을 때,

아내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나체 그대로 방을 나와서

여러 여종들 가운데를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자신과 늘 사통(私通)하여 오던

여종을 더듬어 찾는데,

 

그때, 마침 그의 아버지 홍언필이

잠이 깨어 대청마루 쪽을 바라보다가

부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섬(暹)이가 이미 장성한 줄 알았더니

이제야 비로소 엉금엉금 기는 방법을 배웠구려." 하고

탄식하였다.

 

아들 홍섬이 이 말을 듣고

놀라고 부끄러워

방안으로 달아났다.

 

대개 어린 아이가 서지 못하고

기어서 다니기 때문에 하는 말인데,

한때 이 이야기를 전하여 들은 사람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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