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 두 짐승과 벌레 한 마리

 

• 고금소총 제85화 - 두 짐승과 벌레 한 마리 (二獸一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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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부자(富者)가 산 밑에

좋은 밭 백여 마지기를

새로 개간하는데

맹호(猛虎)가 출몰하기 때문에

사람이 밭을 갈지 못하였다.

부자는 밭이 황폐해 가는 것이 아까워

호랑이를 잡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내 딸을 주겠다고 하였다.

 

어떤 역사(力士)가 있어서

그에 응하여 밭을 갈고 있는데

맹호가 울부짖으며

입을 벌리고 뛰어 나왔다.

역사는 손으로 호랑이를 쳐서

허리를 부러뜨리니

호랑이는 산 옆으로 달아났다.

호랑이가 산 밑에 숨어서 끙끙 앓는데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므로

여우가 가서,

"삼촌(三村)께서는 무슨 일로

이렇게 아파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호랑이가,

"내가 밭을 가는 사람을

여러 해 동안 잡아먹어 왔지만

오늘 어떤 놈으로 인하여

허리뼈가 부러져 이렇게 아파한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여우가,

"우리 삼촌께서

언제나 산군(山君)이라 하여

위엄을 백가지 짐승들에게 떨치시더니

어찌하여 촌놈에게 허리를 다치셨소?

내 삼촌을 위하여 원수를 갚겠소." 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하여

역사를 유혹하였다.

 

역사는 그것이 요물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그 뒷다리를 꺾어 내던지니

여우가 절름거리며

호랑이 옆으로 와서

또한 아픔을 참지 못해 하였다.

 

이때 한 마리의 맹충(猛蟲 - 큰 벌레)이 날아와서,

"두 분이 촌놈 하나를 누르지 못하고

허리와 다리를 상하셨으니

이런 말은

아예 다른 짐승들에게는

말하지 마시오.

내가 날아가서

이 날카로운 입바늘로 그놈을 물어

피가 솟아나오게 하여 말려 죽이고

두 분의 원수를 갚겠소." 하고

날아가서 역사의 머리에 붙었다.

그런데 살을 물어

아직 피가 나오지 않았는데

역사가 손에 쥐고 있던

풀대를 꺾어

벌레의 항문에다 꽂아버렸다.

그리하여 벌레 역시

호랑이와 여우가 있는 곳으로 와서

소리를 같이하며 아파하였다.

 

얼마 후에 부자가 딸에게

역사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보고오라고 하면서

밥과 술을 준비하여 보냈다.

딸이 밭에 가보니 역사가,

"내가 이미 호랑이를 잡고

밭을 갈았으니

당신은 마땅히

내 아내가 되었다." 하고

드디어 밭 사이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호랑이가

역사가 여인의 허리를 안는 것을 보고,

"저 여자도 꼭

허리가 부러질 것이다." 하니,

여우가

그 양다리를 드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다리가 부러질 것이다." 하고,

맹충은

역사가 양물(陽物)을

여인의 음호(陰戶)에

밀어 넣는 것을 보고,

"풀대를 항문에 꽂았다." 하였다.

 

대체로 이 두 짐승과

한 마리의 벌레는

자신들이 당하였던 바를

액(厄)으로써 표현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