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187화 - 숙모를 속여서 먹을 취하다 (詐叔母取墨)

 

조선에서 먹의 생산지가

한두 곳이 아니지만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의

수양매월(首陽梅月)을 최상품으로 꼽았다.

어떤 사람이

황해감사로 제수되어 나갔다가

임기를 마치고

판서로 승차하여 돌아오니,

그의 조카들 중에서

숙부가 지니고 있는

수양매월 먹을 탐내는 자가 있었다.

조카는 판서인 숙부에게

먹을 몇 개 나누어 주기를 청하였으나

판서는 없다고 거절하니 유감을 가졌다.

 

어느 날 조카는

숙부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숙모에게 은밀하게 말했다.

"숙부님께서 황해감사로 계셨을 때

두 기녀와 가까이 지내며

질탕하게 노셨다 합니다.

기녀의 이름이 한 명은

수양(首陽)이라 하고

다른 한 명은 매월(梅月)이랍니다.

숙부님께서 한양으로 돌아오실 때

그 정을 잊지 못하여

두 기녀의 이름을 먹에 새겨

함 하나에 가득 넣어 오셨답니다.

숙모님,

숙부님께서 가져오신 함을 열고

한 번 살펴보십시오."

 

숙모가 즉시 함을 열어보니

함에 가득한 것이

모두 수양(首陽)과 매월(梅月)의

이름이 새겨진 먹이었다.

숙모는 노기가 충천하여

함을 들어 마당에 내던지니,

먹들이 땅바닥에 흩어져 뒹굴었고

조카는 그 먹들 중에서

성한 것만 골라

절반 가까이 도포 소매에

가득히 담아가지고 돌아갔다.

 

저녁이 되어 밖에서 돌아온 판서는

먹을 담았던 함이

땅에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라 물으니 부인이 꾸짖었다.

"사랑했던 기녀들의 이름을

어째 손바닥에 새겨오지 않고

먹에만 새겨오셨소?"

재상은 부인이

조카에게 속은 것을 알아채고

부인에게 말했다.

"해주의 진산(鎭山) 이름이 수양인데,

그 산에서 나는 먹의 이름을

매월로 삼은 것은 오래 전부터요."

하고 변명하였으나

부인은 그래도 믿지 못하여

쉬지 않고 질책해 대는지라

판서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고

이 이야기는

한 때의 웃음거리가 되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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