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5화 - 모자를 쥐고서 꿈이라 여기다 (握帽疑夢)
어떤 어리석은 서생이
관서(關西)의 기녀에게 미혹되어
여러 달을 계속해 머물렀는데,
하루 저녁은 그 기녀의 행수기생이
다급하게 기녀를 부르며 말했다.
"관찰사께서 본군(本郡)에 이르시어
너를 수청기생으로 선택하셨다.
서둘러 단장하고 들어가 뵙거라."
한 방에 있던 서생이
흐느끼며 말했다.
"오늘밤에는 너를 품을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냐?"
기녀가 말했다.
"저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어요.
월경중이라 핑계를 댈 것입니다.'
그러더니 음납(陰衲 - 생리대)을 차고
관찰사가 묵고 있는 객관으로 나갔다.
서생이 몹시 기뻐하며
몰래 기녀의 뒤를 따라가 엿보니,
기녀는 객관에 이르자
음납을 풀어
담장의 기와를 들춰낸 후
그 안에 감추고는
이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크게 노한 서생은
음납을 꺼내들고 돌아와
손에 들고 앉아 등잔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으며 말했다.
"내 저를 그처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는데
어쩌면 나를 이토록
속일 수가 있는가?" 하고는
한참동안 혀를 차다가
문득 엎어져
음납을 손에 쥔 채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이 되어
기녀가 객사에서 나와
자신이 감추어 두었던 음납을
객관의 담장 기와 밑에서 찾았지만
간 곳이 없었다.
기녀는 서생이
가져갔으리라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몰래 살펴보니
역시나 서생이 음납을 손에 쥔 채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기녀는 서생이 쓰고 있는
모자를 가만히 벗겨
서생의 손에 들려있는
음납과 바꿔치기를 하고는 나와
다시 어제 저녁처럼
사타구니에 음납을 찬 후,
급히 서생을 부르며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서방님, 주무셔요, 안 주무셔요?
저는 어제 저녁에
그 계책으로 수청을 모면했답니다."
서생이 깜짝 놀라 일어나 앉으며
소리를 질렀다.
"분하도다. 분해!
너의 정체가 이미 탄로났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보아라."
기녀가 물었다.
"무슨 물건을 보라는 말씀이신지요?'
"너의 음납이 여기 있지 아니한가?
변명하지 말라!"
기녀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납은 제 몸에 채워져 있는데
어찌 서방님의 손에 있다 하시는지요?
다시 보십시오.
모자를 가지고 음납이라 하시다니
무슨 헛소리이십니까?"
서생이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과연 모자인지라
괴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내가 꿈을 꾸었나?' 하고는
인하여 기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기뻐서 말하기를,
"너는 진실로
나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라고 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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