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28화 - 문자 해석하는 첩 (才女釋義)

 

옛날에 한 재상이

첩을 들여놓으니

매우 총명했으며

문자도 읽을 줄 알았다.

 

또한 재상의 집에는

한 문객(文客)이 드나들었는데,

해학을 좋아해

재상이 매우 친근하게 대하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며

서로 무관한 사이로 지냈다

.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재상이 첩과 함께 후원 정자에서

봄 경치를 구경하고 있으니,

점심 무렵 그 문객이 아이를 시켜

다음과 같은 네 글자를 적어

재상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재상이 또 무슨 해학인가 하고

종이를 펼쳐보니,

'일심인복(日心人腹)' 이라 적혀 있었다.

 

이에 재상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첩이 물었다.

"대감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깊이 생각하십니까?"

"아, 그 문객 말일세.

이렇게 네 자를 적어 보내왔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고심중이네."

하면서 재상은 그 종이를

첩에게 주며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첩이

그 글을 몇 번 자세히 읽어 보더니

웃으면서 아뢰었다.

"예, 이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일(日)'자를 아래로 좀 길게 썼으니

곧 '긴긴 날'이라는 뜻이오며,

 

'심(心)'자를 좀 자세히 보소서.

두 점을 찍어야 하는데

한 점만 찍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점이 하나가 없는 '心'자,

곧 '무점심(無點心)'으로

점심밥이 없다는 뜻이옵니다.

 

그리고 '사람 인(人)'자는

다른 글자보다 작게 썼으니

'소인(小人)'이란 뜻으로 썼으며,

 

'배 복(腹)'자 역시 '口'자 안에

'한 일(一)'자를 넣지 않고 비웠으니

'뱃속이 비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긴긴 날 점심밥은 없고

소인의 뱃속은 비었습니다.

(長日無點心 小人腹中空)'

라는 말을 하고자 하였사오니,

오찬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 말을 들은 재상은

첩을 향해 매우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곧 점심 식사를 마련해

문객에게 보내 주면서

첩이 해석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문객은 그녀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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