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 배가 불러 도망치다 (苦飽還逃)
노씨 성을 가진 한 선비가
젊었을 때부터 기상이 호탕하고
놀기를 매우 좋아했다.
한번은 호남 지역으로 유람하여
한 고을에 이르니,
관장이 나이가 예순이 넘은
기생을 하나 붙여 주면서,
나이는 좀 많지만
왕년에 명창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던
기생이라고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가 옆에 와 있는
기생을 살펴보니
머리는 손질하지 않아
봉발(蓬髮)이었고,
살갗은 까칠하게 퇴화되어
계피(鷄皮) 같았다.
그래도 옛날에 이름을 날렸다니까
함께 자기로 하고 그 기생을 부르니,
옷은 길게 입어 거친 피부를 가리고
입에는 천초1)를 머금어
냄새를 숨기는 등
온갖 치장을 하고 들어왔다.
1)천초(川椒 ): 조피나무 열매 껍질로 약재로 쓰이며 향기가 있다.
선비는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한때 유명했다는 말에
호기심을 느껴,
기생과 함께 옷을 벗고
잠자리 행사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기생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능란한 솜씨로,
마치 젊은 소년이 혼인하여
사랑놀이를 하듯
몸에 안기면서 보채고 애교를 부려
움직임에 대응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날이 밝자
노기(老妓)는
관아에서 마련해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자신이 몸소 장만한
서른여 가지의 음식을 들여왔는데,
온갖 산해진미가 즐비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도
음식을 끊임없이 들여와,
하루 여섯 차례에 걸쳐
진수성찬으로 올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가 불러 사양하면
상머리에 붙어 앉아
떠나지 못하게 하고는
숟가락으로 떠먹이며 계속 권하니,
선비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곧 선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고 하니,
기생은 화를 내고 발악을 하면서
붙잡아 떠날 수도 없었다.
이에 선비는 새벽에
가만히 종을 불러
떠날 채비를 갖추고
대기하라 일러 놓고는,
아침식사 뒤
측간(厠間)에 다녀오겠다면서
간신히 빠져나와
말을 타고 쏜살같이 떠나 버렸다.
아전들이 선비가 떠난
사실과 연유를 고하니
관장은,
"옛날 중국 전국시대에
문객(文客)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다는
맹상군(孟嘗君)도,
식객이 배가 불러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 내 손님은
배가 불러 죽겠다고 도망을 쳤으니
분명 맹상군보다 내가 낫구먼."
하고 말하면서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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