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 기생이 시의 기상을 평하다 (妓評氣像)
평안 감영에는
시를 잘 짓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두 기생이 있었는데,
한 여인은 금운(琴韻)이고
다른 여인은 죽엽(竹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감사가
대동강가의 부벽루에서
잔치를 열고,
풍악으로 즐기다가 술이 얼큰해지니
두 기생을 불러 말했다.
"너희 둘이 모두
시를 잘 짓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지금 앞에 보이는 경치를 가지고
즉흥시를 한 구절씩 읊어 보거라."
감사의 말에 따라
먼저 금운이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山不渡江江上立
(산불도강강상립)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해 강 언덕에 서 있고
水難穿石石頭回
(수난천석석두회)
강물은 돌을 뚫지 못해 바위를 돌아 흐르네.
기생 금운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앞에 펼쳐진 강물과 산을 보고
이렇게 읊는 것이었다.
이에 감사는 손뼉을 치면서
잘 지었다고 칭찬을 했다.
이를 보고 있던 죽엽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시란 본래 그 사람의 심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옵니까?
금운의 시에는
서방님을 붙잡아 두려는
나약한 여인의 심정만 표현되어 있어
좋다고 할 수가 없사옵니다."
"아니, 죽엽아. 그게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짓겠다는 말인지,
어디 한번 읊어 보려무나."
"예, 소녀 죽엽이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금운이 지은 시구가
기상(氣像)이 떨어지는 것은,
두 글자가 결정적으로 잘못되어
그런 것이옵니다.
그 시구에서
'아닐 불(不)'자와
'어려울 난(難)'자를
달리 고쳐 넣고
거기에 맞추어 조절하면,
뜻이 확 달라져
기상이 살아나는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감사는 놀라면서,
"그렇다면 죽엽이 네가 어디 한번
고쳐 넣어 보거라."
하고 독촉을 하니,
죽엽은 이렇게
세 글자만 고쳐 읊는 것이었다.
山欲渡江江底立
(산욕도강강저립)
산은 강을 건너고자 하여 강 언저리에 서 있고
水將穿石石頭回
(수장천석석두회)
강물은 장차 돌을 뚫고자 하여 바위를 돌도다.
죽엽이 이렇게 고치니,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표현되었던 의미가
헤쳐 나가려고 하는 강하고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감사는 기생들의 작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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