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52화 - 건망증이 심한 관장 (官長善忘)

 

한 고을의 관장이 건망증이 너무 심했다.

그리하여 자기 밑에서 일보는 좌수(座首)1)의 성씨를 항상 잊어버리니,

1)좌수(座首) : 지방관청 관리의 우두머리.

매일 물어도 다음날이 되면 또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도록 좌수의 성씨를 기억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역시 성을 물으니 좌수는 전날처럼 엎드려,

"소인의 성은 홍가(洪哥)이옵니다." 하고 늘 하던 대답을 했다.

 

그러자 관장은 매일 잊어버리는 것이 민망하여 깊이 생각한 끝에,

이 날은 한 가지 계책을 마련했다.

곧 종이에 홍합(紅蛤)을 하나 그려서 벽에 붙여 놓고,

그것을 보면서 좌수의 성씨가 '홍씨'임을 기억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튿날이었다.

그 좌수가 들어와 인사를 하는데, 관장은 아무리 기억해 보려고 해도 성씨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관장은 벽에 그려 붙인 홍합이 생각나서 그것을 쳐다보고 기억을 더듬는데,

여전히 좌수의 성씨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이에 관장은 한참 동안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마치 그 그림이 여자의 음부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릎을 치면서 좌수를 향해,

"그대의 성씨가 보가(寶哥)였지?" 하고 물었다.

[세속에서 여자의 음문을 '(-지)'라고 하니,

'보'자를 따와서 그렇게 해석한 것임].

 

이에 좌수는 다시 고쳐 아뢰었다.

"소인의 성은 보가(寶哥)가 아니옵고 홍가(洪哥)이옵니다."

곧 관장은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랬구려. 내가 벽에 홍합을 그려 놓고도 알지 못하고

엉뚱하게 다른 생각을 했소이다.'

이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운영자註] 

<고금소총>의 원문은 우리말로 소통해 오던 것을 조선조 후기에 한문으로 기록한 것이다.

위 설화를 보면 여성의 음부를 '조갑지'에 비유한 것은 조선 후기에도 통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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