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 거짓 의원 포식하다 (誇醫飽食)
서울에 사는 한 선비가
호중(湖中) 지역을 지나다가
어떤 마을을 보니
기와집이 즐비하기에,
날이 저문 뒤
한 집으로 들어가자
시골의 큰 부잣집이었다.
주인을 보아 하니
나이 사오십 세쯤 된 듯한데,
풍채가 당당하고
집안 살림 또한 매우 화려했다.
게다가 손님에게도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로
잘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가 식사를 하면서 살펴보니,
그 집에 등이 굽어
곱사등이가 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선비는 필시 이 집의 아들이려니 하고 묻자,
주인은 만득자 외동아들로
등이 굽기 시작한 지
5,6년이 지났으며,
온갖 약을 써도 낫지 않아
큰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자 선비는 슬그머니
장난이 치고 싶어 말을 꺼냈다.
"내 일찍이 의술을 공부하여,
이런 병을 고칠 수 있는
신술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술은 병을 고치는
날짜가 매우 중요한지라,
수일 머문 후에
자세한 처방을 내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크게 기뻐하여
만약 병을 고쳐 준다면
큰 감사를 드리겠다고 하면서,
그 날부터 진수성찬으로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비는 연일 포식을 하고는
사흘째 되는 날
이렇게 처방을 내려 주었다.
"이 아이의 병을 보아 하니
이미 고질병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령스러운 비방이 아니고서는
고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하니 황토에
잣나무 씨를 싸서 먹이고
하루가 지난 다음,
깨끗한 냉수에 예리한 도끼날을 씻어서
그 물을 한 그릇 마시게 하면
이 병은 곧 나을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물었다.
"이전에 많은 의원에게서
받아 보았습니다만,
이렇게 이상한 처방은 처음입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내리신 것인지
알려 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아, 별로 어려운 처방은 아닙니다.
잣나무를 보면
항상 곧게 자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씨를 흙으로 싸서
뱃속에 심게 되면,
곧 그 나무가 자라서
아이의 굽은 등을
바르게 할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주인은 도끼 씻은 물이
어떻게 곱사등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또 물었다.
"그렇다면 도끼 씻은 물은
왜 마셔야 합니까?"
"아, 그것은 말입니다.
잣나무가 자라는 동안
곁가지가 나게 된답니다.
그래서 도끼로
그 가지를 잘라 주어야
잣나무가 곧게 자라기 때문이지요."
"그렇군요, 한번 시험을 해보겠습니다."
주인은 선비의 말에 웃음이 났지만,
그 처방대로 해보겠다면서
역시 좋은 음식을 마련해 잘 대접했다.
이튿날 선비는
주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갔다.
그 뒤 1년쯤 지나
선비는 다시 어떤 일로
그 마을을 지나게 되자,
호기심에 그 집 앞으로 가서
동정을 살폈다.
그랬더니 주인이 내다보고는
크게 기뻐하면서,
"내 언젠가는 의원께서
이곳을 지나칠 줄 알고
밖을 내다보면서 기다렸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하며 손을 잡아끌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선비가 의아해 하며
따라 들어가 아이를 보니,
굽었던 등은 완전히 펴진 채
키가 자라 늠름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곧 주인은 깊이 감사를 하면서
값진 음식을 장만해 대접하고는,
떠날 때 많은 돈과 비단을
말에 실어 보내주었다.
선비는 그 재물로
한평생 풍족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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