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 귀신이 고하고 물러가다 (垈神告退)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의기가 굳어 흔들림이 없고
식견 또한 매우 넓었다.
그 선비가 자신의 집
사랑채 앞에 빈터가 있어,
거기에 마구간을 지을 생각으로
터를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날 밤
자다가 꿈을 꾸니,
의관을 갖추고
매우 위엄 있게 보이는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선비가 집 앞 빈터에
마구간을 지으려고 하는데,
그 땅은 내가 백여 년 동안
자리잡고 거처해 온 땅이니,
선비가 빼앗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 지어
내 거처를 잃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니라."
이튿날 선비는
지난밤 꿈과는 상관없이
계속 마구간을 지어 나갔다.
그러자 그날 밤 꿈에
또다시 그 노인이 나타나서,
"내 말을 듣지 않고
신명의 지시를 어기면서까지
일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선비의 장자(長子)를 잡아갈 것이니라."
라고 협박하고는 사라졌다.
그래도 선비는 계속 작업을 했는데,
과연 이날 정오 경
갑자기 장자가 죽고 말았다.
곧 선비는 죽은 아이를 장사 치르고,
여전히 마구간 짓는 일을 강행했다.
"선비가 큰아들 죽음에도 그치지 않고
기어코 맞설 생각이라면,
둘째아들 또한 잡아갈 것이니
명심 하시오."
그러나 이러한
협박에도 굽히지 않고
다음날도 그대로 일을 진행하니,
정오 경 둘째아들이
정말로 급사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그 아들
또한 산에 갖다 묻고는,
목수를 더 불러서
마구간 짓는 일에 더욱 열을 올렸다.
이날 밤 꿈에
역시 그 노인이 나타나더니,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아뢰었다.
"주인어른은 진정 하늘이 내신 분입니다.
사흘 밤 연속 꿈을 통해 협박하면서
아드님 두 분을 잡아갔지만,
털끝만치도 흔들리지 않으니
어찌 하늘이 내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데,
제가 어찌 주인어른의 아드님을
잡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사실 그 두 아드님의 명은
본래 짧아,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도
저는 이미 죽을 날을 알고 있었으니,
주인어른을 협박하여
제 거처를 안전하게
보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어른의 식견이
이와 같으시니
저는 달리 방도가 없어
지금 다른 곳으로
옮겨 가옵니다.
주인어른께서는 앞으로
귀한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며,
셋째와 넷째 아드님 모두
귀하게 되어
가문을 빛낼 것입니다."
이러고는 큰 절을 올린 다음
눈물을 흘리며 물러갔다.
그 뒤 선비는
과연 50세에 급제하고
여러 요직을 거쳐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며,
그리고 두 아들 역시 큰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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