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74화 - 도둑이 남편을 사칭하다 (賊反稱夫)
한 부잣집 행랑채에
그 집에서 일하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에
잠시 대문이 열린 틈을 타고 들어온 도둑이
안채를 살피다가 포기하고,
급히 행랑채의 그 일꾼 부부 방으로 들어갔다.
도둑은 뭐 훔칠 것이 없나 하고
아무리 둘러봐도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자,
시렁에 얹혀 있는 이불을 내려 안고
방을 나왔다.
그 때 마침
일꾼의 아내가 들어오다가,
자기 방에서 이불을 안고 나오는
도둑과 마주쳤다.
그리하여 엉겁결에
'도둑이야!'하고 소리치니,
도둑은 이불을 안고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이에 일꾼의 아내도 뒤를 놓칠세라
쫓아가면서 이렇게 외쳤다.
"내 이불 내놔라!
내 이불 놓고 가라!"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나와서
달아나는 도둑을 잡으려 하니,
도둑은 갑자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일꾼의 아내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든 가운데
뛰어온 일꾼 아내가
'내 이불 내놔라!'하고 소리를 지르자,
도둑은 태연하게 화를 내면서 말했다.
"네 이년아!
다른 남자와 서방질을 했으면서,
왜 내가 사준 이불을 내놓으라는거냐?
서방질하는 너하고 살기 싫어
내 이불을 갖고 집을 나가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왜 내 이불을 두고 가야 하는 거냐?
이건 내가 사준 이불이야."
도둑이 남편인 양
능청스럽게 소리를 지르니,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오히려 도둑을 동정하고,
여인을 못된 여자라고 욕하는 것이었다.
이에 일꾼 아내는
부끄러워 아무런 변명도 못하고
울면서 돌아왔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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