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76화 - 우연히 아들과 만나다 (遭遇生子)
어떤 곳에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을 하여
천금의 돈을 벌고,
마침내 부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방씨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아들을 낳으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결국은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떤 방법으로
대를 이을지 걱정하던 차에,
마침 친척 중 한 사람이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어
그 일원으로 연경(燕京)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듣자니
많은 돈을 받고
점을 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점쟁이의 말은 어떤 일이든
맞지 않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침 잘 되었구나.
내 사주 팔자에 아들을 둘 수 있는지,
이 사람한테 한번
점을 쳐달라고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 점쟁이를 찾아가니,
한번 점을 보는데
1천 전(錢)이라고 했다.
이에 방씨는
그 큰돈을 지불하고,
평생에 자식을 얻을 수 있는지
봐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쟁이는 돈을 받아 챙기고
가만히 점을 치더니,
'靑山歸路白足是嗣'
(청산귀로백족시사)
라는 8자 글귀를 적어 주면서,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에 방씨는 가만히
그 뜻을 새겨 보았다.
'푸른 산을 돌아오는 길에
백족(白足)1)이 곧 아들이니라'
1)백족(白足 : 흰 옷을 입은 스님.
내용은 이러한데
방씨는 지금까지
자식이라고는 낳아본 적이 없으니,
스님 아들을 만난다는 말이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공연히 큰돈만 잃었다고 생각하면서,
그 종이를 간직한 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무슨 일로 멀리 여행을 갔다가
산 고개를 넘고 있는데,
마주 오는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이 잘생긴 스님을 보는 순간,
방씨는 호감을 느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렇게 영특해 보이는 젊은이가
무슨 곡절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단 말이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그리고는 소나무 밑에 앉아
그 스님을 불렀다.
"이봐요, 젊은 스님!
이리 와서 좀 앉게나."
곧 스님이 합장을 하면서
옆에 와 앉으니,
방씨는 슬쩍 물었다.
"보아하니 참으로 영특하게 생겼는데
글공부를 하여 출세하지 않고,
무슨 곡절이 있어
세상을 등지고 절간에 몸을 던졌는고?"
이에 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오열하다가 입을 열었다.
"소승은 나이 스무 살이 넘도록
부친이 누구인지
함자도 모르는 채 살아왔으니,
어찌 사람 노릇을 하겠습니까?
그리하여 법문에 몸을 맡겨
세상을 떠돌면서
허송세월을 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방씨는
측은하게 여기면서
그 처지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스님은 한동안 울다가
이렇게 설명했다.
"일찍이 소승의 모친은
집안이 가난하여
어릴 때부터
남의 집 일을 해주면서 살았답니다.
그런데 혼인할 나이가 되어갈 무렵
어느 해 가을,
산속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고 있었답니다.
그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한 상인이
소승의 모친을 보고 마음이 동하여,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고 꾀어서는
팔을 잡아끌고 숲속으로 들어가
옷을 벗기고 몸을 합쳐
정을 나누었답니다.
그리고 그 상인이 떠날 때
옷자락을 잘라서
모친에게 신표(信標)로 주고는,
사는 곳과 성명도
말하지 않은 채 떠났으며,
이 후 모친은 수태하여
소승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소승이 십여 세 되었을 무렵
모친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머리를 깎아 스님 모습을 하고 다니면서
부친을 찾고자 하는 것이며,
염불을 하고 부처님을 받드는 일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고 스님은 다시 오열하면서,
주머니에서 잘린 옷자락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방씨가 그것을 받아 살펴보는 순간,
문득 한 가지 일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자신이 한창 돈을 벌기 위해
각지를 떠돌아다닐 때,
곧 20여 년전 어느 곳에서
한 처녀를 만났던,
까맣게 잊어버렸던
옛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이에 방씨는
스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장롱 속에서
당시 입었던 겉옷을 꺼내 보니
옷자락이 잘린 곳이 있어,
스님이 가지고 있던
조각과 맞춰 보니
꼭 들어맞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방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을 찾아
무한히 기뻐했으며,
혼자 살고 있는 그 스님의 모친도 데려와서
함께 잘 살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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