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06화 - 문자 쓰다 낭패를 보다 (文字狼貝)
옛날 한 고을에
어떤 노인이 딸을 시집보내
딸과 사위를 데리고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노인의 사위는
글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서투른 실력으로
항상 문자 쓰기를 좋아했다.
예를 들면 '어디 가느냐?' 할 것을
'하처거호(何處去乎)'라고 말을 하니,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하루는 초저녁에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와,
마당을 치우고 있던 장인을 물고 달아났다.
마루에 앉아 있던
식구들이 놀라 소리를 치면서
막대기를 들고 호랑이를 쫓아가는데,
사위는 사립문에 서서 이렇게 외쳤다.
"遠山虎(원산호) : 먼산 호랑이
近山來(근산래) : 가까운 산에 와서 하여,
吾之丈人捉去(오지장인착거) :내 장인을 잡아가다라,
有兵器者(유병기자) : 무기를 가진 사람은
持兵器而出(지병기이출) : 무기를 가지고 나오라하고,
無兵器者(무병기자) : 무기가 없는 사람은
持杖而出(지장이출) : 막대기를 가지고 나오라 하여,
以救吾丈人(이구오장인) : 내 장인을 구원하게 하소서."
이렇게 연속으로 외쳤으나
마을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저 사람이 또 무슨 문자를 써서
사람들을 웃기나 보다 생각하며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 장인은 마침내
호랑이에게 물려가고 말았다.
이튿날 노인의 사위는
동네 사람들이 너무 야속했다.
'그렇게 애절하게 구원을 요청했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구제해 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라고 원망하며,
그 비정한 행동을 적어서 관아에 고소했다.
이에 관장도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분개하면서,
관노를 시켜
마을의 젊은 사람들을
모두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듣거라! 너희들은 혈기가 왕성한 청년들로서,
저 사람 장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게 되어
그렇게 구원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듣고서 한 사람도 나와 도와주지를 않았으니,
사람의 도리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라.
할 말이 있으면 해보아라."
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잡혀온 젊은이들이 항변을 했다.
"그런 게 아니옵니다.
저 사람은 보통 때도
항상 문자로 말을 하니,
소인들은 한자를 몰라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아듣지를 못하옵니다.
그런데 그날 밤도
소인들은 저 사람이 뭐라
여러 번 외치는 소리는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하였사옵니다.
그래서 나가지 않은 것이오며
고의가 아니었사옵니다."
이 말에 관장은
노인의 사위를
앞에 꿇어앉히고는 꾸짖었다.
"너는 고약한 버릇을 가진 놈이로다.
일반적인 대화에 무슨 문자를 쓴단 말이냐?
그리고 네 장인이 호랑이에게 물려갈 당시,
여러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보통 말로 소리를 쳐야지
무슨 되지도 않는 문자를 쓴단 말이냐?
그리하여 장인도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 죄도 없는 마을 사람들을 고소하여
오라 가라 괴로움을 끼쳤으니
네 죄는 실로 크도다.
곤장 열 대를 칠 것이니라."
관장은 이렇게 판결하고 곤장을 치게 하니,
노인의 사위는 그 와중에도
역시 문자를 쓰는 것이었다.
곧 '아이고 아파라 엉덩이여!'라는 뜻으로,
"애야둔! 애야둔!(哀也臀)"
이라고 소리치며
엉덩이를 어루만지니,
관장은 더욱 화가 났다.
"듣거라! 저 놈을 외딴섬으로 귀양 보내
한동안 고생을 하게 할지니라.
지체없이 시행할지어다."
관장의 판결에 따라
노인의 사위는 멀리 떨어진
외딴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노인의 사위에게는
외삼촌이 한 사람 있었는데,
한쪽 눈이 먼 애꾸눈이었다.
노인의 사위가 섬으로 떠나는 날,
이 애꾸눈 외삼촌이 나와
뱃머리에서 술을 부어 권하고
작별을 하면서,
그 정상이 가엾어
눈물을 줄줄 흘렸다.
노인의 사위는 자기도 슬퍼 눈물이 흐르니,
외삼촌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시를 읊었다.
春日暮江上 봄철 날 저문 강가에서
(춘일모강상)
舅氏送我情 나를 보내는 인정 어린 외삼촌이로다.
(구씨송아정)
兩人相對泣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우는데
(양인상대읍)
落淚是三行 떨어지는 눈물은 세 줄기뿐이로다.
(낙루시삼행)
이 시의 내용은
애꾸눈을 조롱한 것이어서,
듣고 있던 외삼촌이 바라보고는
크게 화를 내면서 꾸짖었다.
"저 놈이
문자를 쓴 것 때문에 귀양을 가면서,
또 이와 같이 문자를 써서
나를 조롱하다니
정말 집안을 망칠 놈이로다."
외삼촌은 이렇게 소리치면서
돌아서서 가 버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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