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04화 - 속임수로 좋은 술을 얻어먹다 (詐取美酒)

 

옛날에 한 재상이 있었는데,

그 부인의 질투가 매우 심했다.

그래서 재상의 친구가 찾아와

사랑방에서 남편과 환담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안마당 쪽으로 난 문 앞에 와서

그 내용을 엿들었고,

혹시라도 여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곧 채소 안주에 맛없는 술로

술상을 차려 내오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이 친구들 사이에 퍼지니,

역시 재상으로 있는

절친한 사이의 한 친구가

이 재상 부인을 속여

한번 좋은 술대접을 받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루는 그 재상의 집으로 가서

사랑방에 들어가 재상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소곤 말을 하니,

재상의 부인은 늘 하던 대로

문 앞에 와서 엿듣는데

잘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영감들이 또 쓸데없는

여색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귀를 바짝 문에 대고

긴장을 하면서 들으니,

남편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 잘 듣게나.

자네는 혹시 듣지 못했는가?

자네를 비난하는 상소가 올라와,

금명간 그 문제를 대신들에게 공개해

논의를 거친 뒤

문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하던데?"

 

"뭐라고?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무슨 일로 나를 비난하는

상소가 올라왔단 말인가?"

 

"으음, 글쎄, 나도 잘은 모르겠네만,

언뜻 들으니 아마도

자네 부인이

어느 여종의 남편과 잠자리를 하고 있다는

불미스러운 이야기인 것 같더군."

"이 사람아, 누가 그런 소리를..."

 

재상의 부인은

남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곧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얼굴을 내밀어 울먹이면서 소리쳤다.

 

"그런 악담이 어디 있답니까?

규방의 여인으로서

그런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듣고,

어찌 한시라도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차라리 지금 당장 죽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발작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니,

재상의 친구는 손을 들어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부인, 잠시 진정하시고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아직 조정에서 그 상소를 공개해

논의에 붙이겠다는

결정이 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상소문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잘하면 그 상소를 불문에 붙이고

폐기해 버릴 수도 있답니다.

내가 내일 나가서 그 상소문을 찾아

아무도 모르게 숨겨 버리겠으니

안심하십시오."

이렇게 슬그머니 안도하게 하니,

재상의 부인도 진정하고

눈물을 닦는 것이었다.

 

이 때 재상이 부인에게

술상을 내오라고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일렀다.

재상의 부인이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한상 차린 뒤,

깊이 감춰 두었던

술과 함께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술을 권하면서

다시 묻는 것이었다.

"대감께서 그 상소를 보셨다면

여종 남편이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되어 있고,

상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좀 상세히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재상의 친구는

술을 한잔 죽 들이키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웃음을 띠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재상을 가리키면서,

 

"바로 이 사람이랍니다.

이 사람이 집에 있는 여종을

부인 몰래 데리고 들어가서

행사를 치르곤 한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여종의 남편이 되는 셈이지요.

 

그런데 부인은 밤에 또

이 사람과 함께 동침을 하니

그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 상소란 바로 내가 한 것이랍니다."

 

잔뜩 긴장하여 듣고 있던 부인은

남편 친구의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그런 말로 속여서

좋은 대접을 받는 거야

상관은 없지만,

잠시나마 규방의 여인을

흉측한 욕설로 덮어씌우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답니다."

 

"부인, 내 실제 사실을

그대로 말한 것인데,

어찌 욕설이라고 하시는지요?"

재상과 그의 친구는

마주 보면서 크게 웃었고,

이후로 재상의 부인은 두번 다시

사랑방의 이야기를 엿듣는 일이 없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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