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풍우(風雨)
(비바람)
-이상은(李商隱;812-858)
淒涼寶劍篇,
(처량보검편),처량하다, 곽진의 보검편 같은 내 처지여
羈泊欲窮年.
(기박욕궁년).떠돌다가 또 한해가 지나간다
黃葉仍風雨,
(황섭잉풍우),낙엽 진 나무에는 비바람 치고
靑樓自管弦.
(청누자관현).화려한 누대엔 절로 음악소리 넘쳐난다
新知遭薄俗,
(신지조박속),새 사람 알수록 각박한 풍속 만나고
舊好隔良緣.
(구호격양연).엣 친구 좋은데 인연이 멀어진다
心斷新豊酒,
(심단신풍주),고향 술인 신풍주를 보니 창자 끊어질 듯
銷愁斗幾千.
(소수두궤천).나의 근심 삭히려면 몇 천 말의 술을 마셔야 하나
[안병렬 역]
157 이상은(李商隱;812-858)
비바람
처량하다
보검편 같은 내 처지여.
나그네 생활에
또 한 해 궁하게 마치는구나.
누런 잎엔
그대로 비바람 몰아치고
푸른 누각엔
절로 악기소리 드높네.
새로운 사귐에
각박한 풍속을 만나고
오랜 친구는
좋은 인연 끊기었네.
신풍주에
심장이 끊어질 듯
근심을 삭이려면
술 몇 천말을 마셔야 하나?
[참고]
https://namu.wiki/w/%EA%B3%BD%EC%9B%90%EC%A7%84
위주(魏州) 귀향현(貴鄕縣) 출신으로 16살의 나이에 설직(薛稷), 조언소(趙彦昭)와 함께 태학생이 되었다. 18세에 진사에 급제하여 통천현위(通泉縣尉)가 되었다. 곽원진은 의협심이 강한 한편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였으며 자질구레한 사무에 개의치 않았다. 또한 관할 현의 백성 1천여 명으로부터 약탈한 물건을 빈객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사사로이 돈을 주조하여 백성들이 괴로워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측천무후는 곽원진을 소견하여 힐문하려고 했지만 곽원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곽원진의 재능을 기이하게 여겼고 곽원진이 지은 문장을 찾았다. 곽원진은 자신이 지은 보검편(寶劍篇)을 측천무후에게 바쳤고 측천무후는 보검편을 학사 이교(李嶠) 등에게 보여주었다. 또한 이때 곽원진을 우무위(右武衛) 개조참군(鎧曹參軍)으로 제수하고 봉신감승(奉宸監丞)으로 진위시켰다.
696년 토번 제국의 가르친링이 당나라에 화해를 청하자, 측천무후는 곽원진을 토번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가르친링은 안서 4진에서 당나라 군대가 철수할 것과 돌궐 십성 부락의 땅을 분할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다음은 곽원진과 가르친링이 나눈 대화이다.
곽원진: 안서 4진과 돌궐 십성은 토번과 다른 민족인데, 지금 당나라의 군대를 철수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합병할 뜻이 있다는 것이 어찌 아니겠습니까?
가르친링: 토번이 만약 땅을 탐내어 국경의 근심이 되려고 한다면 동쪽의 감주(甘州)와 양주(涼州)로 침입하지 어찌 만리 밖에서 이익을 탐구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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