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본 수궁가는 동화가 아니다.
한국의 구토설화는 초기 불교 경전에서 유래하였다.
고구려에 원군을 청하려 갔다가 구금된 김유신이 고구려를 탈출할 수 있었던 것도 구토설화 덕분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 설화는 절대 강자에 의해 목숨이 경각에 걸리게 된 약자가 속임수로 생존전략을 도출해 내는 상징적인 설화다.
절대절명의 궁지에 처한 약자라도 해골을 잘 굴리면 살아날 방도는 있다는
역사적 사실과 교훈으로 인하여 이 설화는 지금껏 맥맥히 생존해 온 것이 아닐까?
용왕과 토끼라는 주인공을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을 대변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토기전>은 풍자소설이다. 설화의 내용은 용왕의 사자인 별주부와 토기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설화의 중심을 이루긴 하지만.
물론 상수는 세상물정에 밝은 토끼다.
학식의 유무를 떠나 민초들은 정치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생활을 통해 체득한다.
토기는 용왕 앞에서도 관료들의 부패를 질타한다.
남을 속이는 재주는 상대방을 유혹할 수 있는 상대자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
곧 상대방이 미혹당할 미끼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는 이를 뒷받침할 배전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토끼가 간을 빼냈다 넣었다하는 것을 설득한 것처럼 상대보다 상상력이 한 차원 위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을 속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래 대목에서 위의 설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안숙선 - 수궁가 중 '토끼가 배 갈라보라는 대목'
https://www.youtube.com/watch?v=RRSPlKFJbWk&t=48s
http://kydong77.tistory.com/2175?category=485890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王欲橫問因其難對而辱之 謂曰
왕욕횡문인기난대이욕지 위왈
왕은 춘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여 그를 곤혹스럽게 하고자 하여 그에게 물었다.
麻木峴與竹嶺本我國地 若不我還 則不得歸
마목현여죽령본아국지 야부아환 칙부득귀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나라 땅이니 만약 이를 우리에게 돌려 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春秋答曰 國家土地 非臣子所專 臣不敢聞命
춘추답왈 국가토지 비신자소전 신부감문명
춘추가 대답하였다.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王怒囚之 欲戮未果
왕노수지 욕륙미과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미처 죽이지 않고 있었다.
春秋以靑布三百步 密贈王之寵臣先道解
춘추이청포삼백보 밀증왕지총신선도해
춘추는 푸른 베 3백 보를 왕의 총신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다.
道解以饌具來相飮 酒酣 戱語曰
도해이찬구내상음 주감 희어왈
도해가 음식을 준비해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자 농담으로 말했다.
子亦嘗聞龜兎之說乎
자역상문구토지설호
"그대도 일찌기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昔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兎肝合藥則可療也
석동해롱녀병심 의언 득토간합약칙가료야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사가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섞어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소.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연해중무토 부나지하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오.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
유일구백롱왕언 오능득지
그 때 마침 거북 한 마리가 용왕에게 아뢰었다.
'제가 그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遂登陸見兎 言
수등륙견토 언
그리고 거북이는 마침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말했소.
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菓
해중유일도 청천백석 무림가과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맑은 샘과 흰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있는
과실이 있다.
寒暑不能到 鷹隼不能侵
한서불능도 응준불능침
추위와 더위도 없고, 맹금도 침범할 수 없다.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
이약득지 가이안거무환
네가 갈 수만 있다면 근심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因負兎背上 游行二三里許
인부토배상 유항이삼리허
그리고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쯤 헤엄쳐 갔다.
龜顧謂兎曰
구고위토왈
그제서야 거북이가 토끼를 돌아보며 말했다.
今龍女被病 須兎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
금롱녀피병 수토간위약 고불탄노 부이래이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으로 약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마다 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
兎曰
토왈
이를 듣고 토끼가 말했다.
噫라 吾神明之後 能出五藏 洗而納之
희라 오신명지후 능출오장 세이납지
'아! 나는 천지신명의 후예인지라 오장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다.
日者小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巖石之底
일자소각심번 수출간심세지 잠치암석지저
일전에 속이 약간 불편한 듯하여 잠시 간과 심장을 꺼내어 씻은 후에 바위 밑에 두었다.
聞爾甘言徑來 肝尙在彼
문이감언경래 간상재피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곧 바로 오는 바람에 간이 아직도 거기에 있으니,
何不廻歸取肝
하불회귀취간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으리?
則汝得所求 吾雖無肝尙活 豈不兩相宜哉
즉여득소구 오수무간상활 개불량상의재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려는 약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더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둘이 서로 좋은 일이 아니랴?'
龜信之而還
구신지이환
거북이 그 말을 곧이 듣고 돌아갔는데,
纔上岸 兎脫入草中 謂龜曰
재상안 토탈입초중 위구왈
언덕에 오르자 마자 토끼가 풀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했다.
愚哉汝也 豈有無肝而生者乎
우재여야 개유무간이생자호
'어리석기도 하구나. 네놈은! 어찌 간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龜憫黙而退
구민묵이퇴
거북은 이 말을 듣고 멍청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는 말이 있다."
春秋聞其言 喩其意 移書於王曰
춘추문기언 유기의 이서어왕왈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다.
二嶺本大國地分 臣歸國 請吾王還之
이령본대국지분 신귀국 청오왕환지
"두 영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 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謂予不信 有如皦日
위여불신 유여교일
제가 미덥지 않다면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王迺悅焉
왕내열언
왕은 그때서야 기뻐하였다.
http://kydong77.tistory.com/2173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인권환,토끼전의 근원설화연구,고전소설연구,정음사,1979, pp.385-410.
토끼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9167
토끼전의 전래와 정착
「토끼전」은 인도설화에 뿌리를 둔 불전설화(佛典說話)를 근원설화로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설화화와 소설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근원설화에서 소설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4단계를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인도의 본생담(本生譚, Jataka)으로 자타카 57 「원왕본생(猿王本生)」, 자타카 208「악본생(鰐本生)」, 자타카 342「원본생(猿本生)」의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남전장경(南傳藏經)』 속에 들어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인도의 설화문학서인 『판차탄트라(Panchatantra)』와 『가타사리트사가라(Gathasaritsagara)』, 불교 문헌인 『마하바스투(Mahavastu)』에도 나타나고 있다. 『판차탄트라』는 서기전 200∼300년 경에 성립된 것이고, 『가타사리트사가라』와 『마하바스투』는 대략 그 이후에 성립된 문헌으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 단계는 이들 인도의 설화가 불경에 흡수되어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되어 한역경전으로 나타난 단계이다. 「토끼전」의 근원설화를 수록하고 있는 불경은 3종으로 『육도집경(六度集經)』, 『생경(生經)』의 제1권 『불설별미후경(佛說鼈獼猴經)』, 그리고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다.
이들이 중국에서 번역된 것은 대략 3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이것이 다시 중국의 불교 문헌에 재편입되었다. 수록 문헌은 『경률이상(經律異相)』·『법원주림(法苑珠林)』 등이다.
셋째 단계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문헌설화로 정착되거나 구비설화로 구전되는 단계인데, 『삼국사기』 김유신열전(金庾信列傳)에 나타나는 구토설화(龜兎說話)가 문헌설화의 예이고, 구전설화는 불전설화의 민간유출로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 단계는 오랫동안 구전되던 설화가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화하여 그 대본으로 정립되거나, 또는 설화에서 곧바로 소설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단계이다. 그 기간은 대체로 17, 18세기경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연대나 경위를 확증하기는 어렵다.
「토끼전」은 판소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그 성립의 시기나 계기에 대한 추론은 판소리 자체의 역사, 특히 「수궁가」의 형성과 전개에서 찾아야 한다.
이처럼 4단계를 거쳐 성립되는 동안 이야기의 내용도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나 원형으로서의 설화의 골격은 변함이 없다.
첫째 단계에서는 대체로 단순히 교훈적인 인도의 우화적 설화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불경에 삽입되면서 종교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이 단계에서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로 되어 있고, 수중의 악어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둘째 단계인 한역경전에서 동물은 자라와 원숭이, 또는 용과 원숭이로 변한다. 그러나 악어는 악인 제바달다(提婆達多)로서, 악어가 원숭이 간을 탐내는 것처럼 악인인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한다는 의미로 되어 있다.
셋째 단계에서 구토설화는 다분히 한국화되어 풍자소설로 이루어진다.
「토끼전」에는 작자군(作者群)의 서민의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익살스러운 해학이 잘 나타나 있고, 이것이 주제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풍자성은 작자군인 서민계층이 당시 피지배층의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형성시기로 추정되는 17, 18세기는 지배관료계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서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커가던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지적 능력의 결여와 사회적 신분의 제약으로 표출할 방도가 없었고, 다만 민란(民亂)이라는 폭력적 수단과 민속극·판소리·민요 등 서민예술을 통한 간접적 배설의 길만이 있었다. 우화적 이야기로서의 「토끼전」은 그러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세계는 용왕을 정점으로 한 자라 및 수궁대신들의 용궁세계와, 토끼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짐승들의 육지세계로 나뉜다. 전자는 정치 지배 관료층의 세계를, 후자는 서민 피지배 농민층의 세계를 각각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도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대신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사회의 인물들을 투영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토끼는 서민의 입장을 취한다. 수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말에 속아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끝내 용왕을 속이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작품의 귀결은 토끼가 작자군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이 작품의 주제가 서민의식에 바탕을 둔 발랄한 사회풍자에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곳곳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민적 해학도 주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본에 따라 자라의 충성을 주제적 측면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충성이 이 작품의 본래적이고 일반적인 주제는 아니다. 외래의 짤막한 동물우화를 장편의 의인체 풍자소설로 발전시킨 데서 조선 후기 서민들의 예술적 창작력이 높이 평가된다.
아울러 단순한 동물소설이 아니라 당시의 비판적 서민의식을 우화적 수법을 통하여 드러냈다는 점에서 고소설사상(古小說史上)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소설·판소리·전래동화 등으로 전해지고, 지금도 마당극이나 창무극(唱舞劇)으로 계속 공연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고전이다.
https://kydong77.tistory.com/2173
https://www.youtube.com/watch?v=RRSPlKFJbWk
https://www.youtube.com/watch?v=ZPMIO9xj868&t=282s
https://www.youtube.com/watch?v=f4hrCvzJB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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