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후기 한 고을에
오막돌(吳幕乭)이라는
시골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
돈을 많이 벌게 되어
향곡(鄕谷)에서는
부자로 소문이 났다.
또한 이 사람은
기운도 세고 재주도 있어,
한번은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함정을 놓아 그것을 잡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그 공로로 조정에서
당상(堂上 : 정3품)이라는 벼슬을 받아서,
양반 행세를 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집이 부자라
명예를 얻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조정에 많은 곡식을 바치니,
곧 조정에서는
가선대부(嘉善大夫 : 종2품)라는
더 높은 벼슬을 내렸다.
이에 고을에서 명성이 났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상투에다 금환(金環)을 붙이고
의관도 잘 갖춰 입어
의젓하게 행동하면서,
지체 높은 대감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 사람이 사는 인근 마을에는
조상 대대로 양반 가문이 많았는데,
이들은 모두 선비로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공로에 의해
벼슬을 얻은
부자 오막돌이라는 사람이
열심히 돈을 벌 당시에는
상인(常人)의 신분이었던지라,
이들 양반 밑에서
굽실거리며 지내 왔었다.
이에 역대 양반들은
오막돌이 양반 행세를 하는 것이
몹시 눈에 거슬렸지만
현실은 어찌할 수 없어서,
겉으로는 양반으로 대해 주나
속으로는 멸시를 했다.
게다가 봄만 되면
양반 가정에서 양식이 떨어져
모두들 그릇을 들고
이 집에 와서 꾸어갔는데,
그 때는 할 수 없이
이 사람을 '오동지(吳同知)'1)라고
높여 불러 주었다.
1)오동지(吳同知): '동지'는 동지중추부사로서 종2품 벼슬임.
그러나 가을이 되어
빌려간 곡식을 다 갚고 나면,
그들은 다시 이 사람을
'오막돌'이라 부르며 멸시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사람을.
'春吳同知 秋吳莫乭'
(춘오동지 추오막돌)
봄에는 오동지요,
가을에는 오막돌이라
일컫게 되었다 한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07화. 욕심으로 망한 허씨 (一許姓者) (2) | 2019.07.30 |
|---|---|
| 506화. 고기 이름 붙이기 (隨動稱魚) (0) | 2019.07.30 |
| 504화. 한 文士의 시 (遊閒文士) (0) | 2019.07.29 |
| 503화. 감할 줄을 모른다네 (不知爲減) (0) | 2019.07.29 |
| 501화. 대구만 오지 않았다 (大口未來) (0) | 2019.07.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