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04- 한 문사의 시 (遊閒文士)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다니면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선비들이 있었다.

하루는 이들이 절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있는데,

마침 다 헤어진 옷을 입은

길손 하나가 찾아와서

음식 한 그릇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선비들은 그 길손을 보고

장난삼아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들의 음식은

대가를 치러야만 먹을 수 있답니다."

그러자 길손은 불쾌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대가를 치를 돈이 있으면,

내 무엇 때문에 구걸을 하겠소?"

"아, 손님! 우리가 말하는 대가란

돈이 아니고

시를 짓는 것이랍니다.

손님이 시를 한 수 짓는다면

음식을 나눠 드리지요."

"예,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운자(韻字)를

한번 불러 보십시오."

이에 선비들은

흔히 그 글자로는

시를 짓기 어려워하는 운자,

곧 강운(强韻)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길손은 곧 이렇게 읊었다.

 

偶然爲客到南門 우연히 길손 되어 남쪽 하늘 문에 도착해

우연위객도남문

藥圃新栽九節菖 약포에 새로이 아홉 마디 창포 재배하네.

약포신재구절창

寺外玉峰連北極 절 밖 좋은 산봉우리 북극에 이어지고

사외옥봉연북극

佛前金葉自西羌 부처님 앞 황금 잎은 서역애서 왔도다.

불전금엽자서강

身同野鶴寧隨鶩 내 몸이 학 같은데 어찌 오리를 따르며

신동야학영수욕

意似寒蟬不이螳 마음이 매미 같으니 사마귀는 안 부럽네.

의사한선불이당

日暮山齋仍進飯 날 저문 산속 재실에서 밥을 들여놓으니

일모산재잉진반

盤中異味雜椒薑 상 위의 별미는 섞여진 산초와 생강이라.

반중이미잡초강

 

이에 선비들이 크게 칭찬하며,

상좌로 모셔 술을 권하고

함께 어울려 놀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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