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절에 노스님이 있었는데,
성격이 과격하여
자주 화를 내고 고집이 세며
자기 주장대로 행동하려 했다.
이 스님은 유일하게
동자승 하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주먹으로 때리고
심하게 꾸짖으니,
늘 노스님을 원망하고 있었다.
하루는 동자승이
화로에 시뻘건 숯불을 담아
방으로 들고 와서는,
일부러 실수하는 척하면서
방바닥에 엎어버렸다.
이에 불이 나서
스님의 장삼을 순식간에 태워 버리니,
방안은 연기로 가득 차면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화가 난 스님이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동자승을 쫓아가다가 그
만 옆에 있는 고양이를 밟으니,
그 고양이가 놀라 펄쩍 뛰면서
스님에게 달려들어 할퀴는 바람에
여러군데 상처를 입었다.
이때 스님은 워낙 화가 나서
성질을 억제하지 못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에 동자승이
고양이를 잡아 마구 때리자
그만 고양이가 죽고 말았다.
이러고 나서 동자승은
스님을 위로하며 사죄했다.
"이 제자 불민하여
스님을 놀라게 해드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만들었으니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이에 스님은 화를 삭이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내 이 늙은 몸에
재액이 있는 것이지,
어찌 네가 잘못한 까닭이겠느냐?
이후로 화재가 있을 때는
즉시 알리도록 해라."
"예. 스님! 그리 하겠사옵니다."
그러고 나서 달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동자승이 밖에서 뛰어 들어오면서,
"스님! 불이요, 불!
불이 났습니다요,
불이 났어요!"
하고 숨넘어갈 듯 부산을 떨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법당에 앉아 있던 스님은
급히 나오느라
기둥에 머리를 받히고,
섬돌에 다리가 긁혀
피를 흘리면서 뛰어왔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불은 커녕
연기 한 줄기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동자승에게 물었다.
"아니, 얘야.
어디서 불이 났단 말이냐?
불난 곳이 어딘지 가리켜 보거라."
이에 동자승은
먼 산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스님! 저기 보셔요.
저기 산꼭대기가
타고 있지 않습니까?"
곧 저 멀리 있는 산에서
불이 난 것을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이는 앞서 방에 불을 냈을 때,
앞으로는 신속히 알리라는
노스님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동자승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본
스님은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불이 났구나, 불이 났어.
저 먼 산에서 불이 났구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한동안 거기서 눈을 떼지 않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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