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38화 - 이를 뽑아준 선비 (鷄林有一官娼)
계림(鷄林)에 한 관기(官妓)가 있었는데,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아름다우며 요염했다.
서울에서 한 젊은 선비가
다니러 갔다가
이 기생을 만나 깊은 정이 들었다.
이에 기생은 선비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거짓으로 말했다.
"소녀는 본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도련님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어떤 남자와도
몸을 접해 본 적이 없사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선비는 더욱 혹하여 순정을 쏟았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자
기생은 이별을 슬퍼해 통곡을 했고,
선비는 갖고 있던 재물을
모두 주면서 위로했다.
이에 기생은 재물을 사양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원하옵건대,
도련님의 절신지물(切身之物)1)을 바라오며
재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나이다."
1)절신지물(切身之物) : 신체의 일부를 자른 물건.
그리하여 선비가
머리털을 잘라 주니
기생은 다시,
"모발은 신체 외부에 있는 것이옵니다.
소녀는 더욱 절실한 물건을 원하옵니다."
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니,
마침내 선비는
앞니 하나를 뽑아서
기생에게 주고 떠나갔다.
서울에 도착한 선비는
그 기생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며,
기생 역시 자기만 연모해
슬픈 나날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아파하면서,
경주에서 사람이 올라올 때마다
물어 보곤 했다.
이에 어느 날 경주에서 올라온
사람이 전하는데,
그 기생은 선비와 작별한 직후
다른 사람을 만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선비는 화를 내고
기생을 원망하면서,
종을 시켜 자신의 앞니를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너는 급히 경주로 내려가,
내 앞니를 찾아오도록 하라."
그리하여 종이 기생집으로 가서
도련님의 앞니를 찾으니,
기생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어린애 같은 사람이로다.
짐승 잡는 백정 집에서 살생을 금하고,
기생에게 절개를 강요하는 자는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라면
망령된 자이니라.
그래, 이 속에서
네 주인의 앞니가
어떤 것인지 알아서
찾아가도록 해라."
이러면서 한 포대를 던져 주는데,
열어 보니 이제까지
남자에게서 얻은 앞니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에 그 선비를 두고
한 사람이 시를 지었다.
年少風流見不曾 젊은이의 그 풍류는 일찍이 보지 못했네
(연소풍류견불증)
娼家責禮竟何能 기생에게 절개를 지키라는 책망 그 어찌 가능한가
(창가책례경하능)
莫言자物恩情簿 그런 것들 은정 저버린다고 말하지 말지니
(막언자물은정부)
齒豁頭童亦壽徵 치아 엉성하고 머리 빠지면 장수할 조짐이라
(치활두동역수징)
이와 같이 그 어리석음을 풍자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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