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98- 어느 양반의 행패 (實姓呂耶)

진나라 시황제의 부친 장양왕(莊襄王)이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여불위(呂不韋)란 사람의 계책으로

풀려나 귀국했다.

이 인연으로 장양왕은

그를 재상으로 삼았고,

여불위의 사랑하는 여인은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장양왕에게 바쳐져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곧 천하를 통일하는 진시황이다.

그러니까 진시황의 실제 성은

'진씨(秦氏)'가 아니라

'여씨(呂氏)'인 셈이다.

 

한편, 진시황이

중국의 모든 서적들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모두 죽이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행할 때,

그의 장자 부소(扶蘇)가

말리면서 반항했다.

그리고 훗날

진시황이 세상을 떠나고

막내 아들인 호해(胡亥)가

황제가 되었을 때,

진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관계를 빗대어

욕하는 내용이 바로 다음 이야기다.

 

어느 가난한 선비가 삿갓을 손에 쥐고,

입에는 긴 담뱃대를 문 채

초라한 모습으로

과천(果川)을 향해 떠났다.

그리하여 서빙고(西氷庫)

한강 나루에 이르러

사공을 불러서는

배를 타고 의자에 앉았다.

한데 배가 막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10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배를 다시 나루에 대게 한 뒤

올라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말을 탄 3명과

이들을 호위하는

9명의 종들이 함께 타서

오락가락 소란을 떨며

앉아 있는 선비를 한 끝으로 밀어,

말을 타고 온 자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자리에 앉은 자는

다시 선비를 밀어내고,

말을 타고 온 나머지 두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선비는 물이 고인

바닥에 서게 되어,

두 발이 다 젖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선비는

그 형세에 밀려 어쩌지는 못하고

그대로 참으면서,

먼저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

"뜻밖에 이런 자리에서 만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그런데 존객(尊客)의 성씨는 무엇이며,

옆에 앉은 두 사람은 누구인지요?"

"아, 내 성은 여(呂)가이고,

옆에 앉은 두 사람은 내 아들이외다."

이에 선비는 '여씨'라는 성씨를 가지고,

진나라 시황제의 성씨와 결부시켜

놀려줄 생각으로

슬그머니 이렇게 물었다.

"아, 여씨라고요?

그렇다면 실제 성이 여씨인지요?"

그러자 그 사람의 장자(長者)는

글공부를 했고,

또 짓궂은 사람들로부터

진시황의 이야기와 결부시켜

놀리는 소리를 이미 들은지라

금방 눈치를 채고 화를 내면서,

"당신은 양반이요? 상놈이요?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는 거요?"

라고 욕을 하고

덤벼들어 때리려고 했다.

이 때 다시 선비는

진시황의 장자가

부황(父皇)에게 반항한 사실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아, 그대는

부소(扶蘇)가 난을 일으켰던 것처럼

행동하지는 마시구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둘째 아들이 덤벼들어

때리려고 했다.

이에 선비는

다시 진시황의 막내 아들인

호해(胡亥)를 빗대어,

그 한자음이 비슷한 말을

끌어다 붙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 젊은이!

회해1)야, 회해!

1)회해 :우스운 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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