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01- 떡먹은 건 못 속여 (食餠莫掩)

한 마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집에 있는 노인이 있었는데,

떡을 좋아하여

떡집 앞을 지나칠 때는

늘 안으로 들어가서

떡을 사먹고 나오는 것이었다.1)

1)당시에는 점잖은 사람이 직접 떡집에 들어가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음.

어느 날 아침에는

남색 창의2))를 입고

붉은 띠를 가슴에 두른 채,

2)창의 : 관리들의 평상복.

역시 떡집에 들어가서

떡을 사먹고는 슬그머니 나왔다.

이 때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새 사돈과 딱 마주쳐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사돈이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영감님이 어찌하여

직접 떡집에 들어가셨습니까?"

이에 노인은 부끄러운 빛을 보이면서

사실대로 대답했다.

"예,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배가 고프던 차에

마침 떡집이 있어

들어가 먹고 나오는 길이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부인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자,

부인은 다음과 같이

일러 주는 것이었다.

"영감처럼 연세도 있고

지위도 높으신 양반이

떡집을 드나들다 새 사돈을 만나서

사실대로 얘기했으니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차라리 술을 마시고 나온다고

하시지 그랬습니까?

가게를 드나드는 일이

보기 좋은 일은 아니나,

그래도 떡보다는

술을 마셨다는 게

나은 편이지요."

부인의 말에

노인은 앞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새 사돈을 만나는 바람에 당황하여

그만 사실대로

털어 놓게 된 것이라며 웃었다.

 

며칠 후,

노인은 다시 떡집에서

떡을 사먹고 나오다가

또 그 사돈과 부딪쳤다.

이 때 역시 사돈이

어떻게 떡집에서 나오느냐고 물어,

노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예, 사돈.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입니다."

이에 사돈이 다시 묻는 것이었다.

"술은 어떻게 마셨는지요?

찬 술은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따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쑥 대답했다.

"아, 예. 불에 구워 먹었답니다."

이리하여 역시 떡을 사먹은 것이

탄로나고 말았다.

 

그 뒤 노인은

다시 그 떡집에서

떡을 사먹고 나오다가

앞서의 새 사돈을 또 만났고,

지난번 부인이 일러 준 대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라고

적당히 잘 대답했다.

그런데 몇 잔을 마셨느냐는 물음에,

노인은 제대로 대답한다는 것이

그만 이렇게 말이

잘못 나오고 말았다.

"오늘은 한 개밖에

사먹지 않았답니다."

결국 '한 개'라는 말로

또 다시 떡을 사먹은 게 들통 나

부끄러움을 당해야 했다.

이와 같이 노인은 삼차에 걸쳐

새 사돈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다시는 떡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뒤에 노인이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니

모두들 배를 쥐고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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