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02- 웃음을 자아내게 한 편지 (拙文胎笑)

한 선비의 아내가 맹인을 청하여

집안의 평온을 비는 안택굿을 하려고 준비했다.1)

1)옛날에는 집안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굿을 했는데, 이 일은 장님들이 담당했음.

 

그리하여 맹인이 안택경(安宅經)을 낭송하려고 하는데

병풍이 미처 준비되지 않아,

아내는 남편에게 친구 집에서 병풍 좀 빌려 달라고 간청했다.

선비는 굿을 하는 일이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친구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

'우리 집사람이 맹인에게 푹 빠져서

오늘밤 그를 불러들여 이상야릇한 일을 하려고 하니,

잠시 병풍을 빌려 주어 그 일이 성사되게 해 주었으면 좋겠네, 그려.'

이 글을 읽은 친구가 병풍을 빌려 주면서1) 일부러 놀려 주려고

다음과 같이 답장을 써보냈다.

 

"병풍은 빌려 주겠는데,

자네가 말한 그 '이상야릇한 일'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모르겠으니 좀 알려 주게나."2)

2)선비가 보낸 편지의 내용이 맹인과 선비의 아내가

병풍을 치고 정사를 벌이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이에 선비는 정말로 친구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묻는 줄 알고 다시 이렇게 써보냈다.

'이 사람아, 그것은 음양(陰陽)3)에 관계된 그런 이상야릇한 일이라네.'

3)음양(陰陽 : 음양 오행의 점치는 일 등을 뜻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남녀 관계를 나타내기도 함.

 

이 글의 내용 역시 맹인과 선비의 아내가

사랑을 나누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어,

친구들이 보고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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