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호조(戶曺)에 한 서리가 있었는데,
그 문장력이 정말로 수준 이하였다.
여러 가지 사건보고서를 작성해 낭관(郎官)에게 올리는 것을 보면,
장황하게 단어만 늘어놓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게 쓰곤 했다.
보다 못한 낭관이 하루는 이 서리를 불러 타일렀다.
"자네가 쓰는 보고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 부터는 요점만 들어 간략하게 작성하도록 하라."
이 말을 들은 서리는 명령대로 시행하겠다면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뒷날 이 서리가 낭관에게 보고서를 올렸는데 보니까,
'이판동고송(吏判東高送)' 이라고 달랑 다섯 자만 적혀 있었다.
낭관이 아무리 연구해 봐도 그 뜻을 모르겠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보고서를 작성한 그 서리를 불러 물어 보자,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는 '금일 이조판서(吏曺判書) 대감께서
동대문(東大門) 밖에서 고성군수(高城郡守)를 전송(餞送)했음'이란 뜻으로 쓴 것이옵니다.
지난 번 낭관어른께서 보고서를 간략하게 쓰라고 지시하시기에,
분부 받들어 이렇게 작성했사옵니다."
이에 낭관은 크게 웃었고,
주위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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