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05- 원만함이 좋으니라 (以圓爲主)

한 노인이 젊어서부터 성품이 부드러워

매사에 원만함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다투려 하지 않아 칭송을 받았으며,

늙어 백수가 되도록 한 번도 시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노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오늘 아침에 남산이 모두 붕괴되어 무너졌습니다요."

"아, 남산은 몇 백 년 묵은 산이라 바람과 비에 시달려 무너질 수도 있으니,

크게 괴이한 일은 아니지요."

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한 사람이 물었다.

"영감님!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오래 묵었다 해도 산이 어찌 무너지겠어요?"

"자네 말도 옳구먼. 남산은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넓으며

바위와 돌로 단단히 뭉쳐 있으니,

바람과 비에 시달렸다 하더라도 쉽게 무너질 염려는 없을 걸세."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영감님! 조금 전에 참으로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무슨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단 말인가?"

"예, 들어 보십시오. 소가 말입니다.

그 큰 몸집인 소가 쥐구멍으로 들어갔답니다.

그것 참 괴이한 일이 아닙니까?"

"어, 자네가 들은 얘기도 그렇게 괴이한 일은 아닐세.

소의 성품이 워낙 우직해서, 비록 쥐구멍이라 해도

밀어붙여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 괴이하다 할 수가 없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비록 소의 성품이 우직하다 해도,

어찌 그 작은 쥐구멍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자네 말도 역시 맞구먼, 그래. 소는 머리에 두 뿔이 떡 벌어져 있으니,

그 뿔에 걸려 작은 굴속으로는 못 들어갈 걸세."

이와 같이 잠깐 사이에 노인은 여러 사람의 말을 모두 옳다고 하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노인장은 어찌 이렇게도 불성실한 대답을 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모두 옳다고 하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내가 늙도록 몸을 잘 보전하고 있는 비결이니

여러분은 비웃지 마시구려.

내 이런 성품은 아마도 성질이 급해

잘 싸우는 사람에게 경계가 될 것이로세."

이 말에 모두들 일리가 있다면서 승복하였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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