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log.daum.net/thddudgh7/16534440?category=1425252

 

<서경>(74)상서(商書)(22)함유일덕편(咸有一德篇)(3) 자신의 성품은 넓다하고 남은 좁다고 여기지

             <서경(書經)>(74) 상서(商書)(22)         상(商)나라 시대의 사적을 기록해둔 것이라고 하여 상서(商書)라 일컫게 되었는데, 상(商)은 성탕(成湯)   의 조상이 봉함을 받은 땅..

blog.daum.net

 

 

 [3] 자신의 성품은 넓다하고 남은 좁다고 여기지 말라.  

 

   德無常師(덕무상사) 主善爲師(주선위사)

   "덕에는 일정한 스승이 없고, 선을 조로 하는 것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며,

   善無常主(선무상주) 協于克一(협우극일)

   선에도 일정한 기준이 없으며, 순일함에 맞는 것을 취해야 합니다.

   俾萬姓咸曰(비만성함왈)

   만백성으로 하여금 모두가 말하기를,

   大哉(대재) 王言(왕언)

   ‘위대하도다! 왕의 말씀이여!’라고 말하게 하시며,

 

   又曰(우왈) : 또 말하기를,

   一哉王心(일재왕심)

   ‘순일하구나! 왕의 마음이여!’라고 말하게 하소서.

   克綏先王之祿(극수선왕지록)

   그러면 능히 선왕의 녹(祿)을 편안하게 하고,

   永厎烝民之生(영지증민지생)

   영원히 못 백성들의 삶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嗚呼(오호) 七世之廟(칠세지묘) 

   아아, 7세에 걸친 선조를 제사하는 종묘의 제도로,

   可以觀德(가이관덕) 萬夫之長(만부지장)

   그 왕덕을 볼 수가 있으며, 만민이 심복하는 것으로 보아, 

   可以觀政(가이관정)

   그 사람의 정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后非民罔使(후비민망사)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릴 자가 없고,

   民非后罔事(민비후망사)

   백성들은 임금이 아니면 섬길 곳이 없습니다.

   無自廣以狹人(무자광이협인)

   자신의 심성은 넓다 하고 남은 좁다고 하지 마소서.

   匹夫匹婦(필부필부)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가,

   不獲自盡(불획자진)

   그들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다.

   民主罔與成厥功(민주망여성궐공)

   만일 그렇다면 임금이 그 공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윤은 덕이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 노력하여 쌓아야 한다고 전제를 하고, 태갑에게 만민이 칭송하는

    임금이 되어줄것을 당부하고 있다. 끝으로 평범한 백성들의 힘일지라도, 그들의 참된협조가 없으면 나

    라를 훌륭하게 다스릴 수가 없으니, 백성들이나 남을 업신여기지 말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로써 상(商)

    나라의 전기에 해당되는 상서(商書)의 각 편은 끝난 셈이 된다. 이 함유일덕 뒤에도 아홉 편이 더 있다

    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원문은 전하지 못하고 있다. 태갑이 재위 33년 만에 죽으니, 그의 아들인 옥정(沃

    丁)이 왕위에 올랐다. 옥정이 29년 간 제위에 있다가 죽자, 그의 동생인 태강(太康)이 왕위에 오르게 된

    다. 이런관계로 상왕조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계승하는 전통이 이루어 졌다. 왕자는 적서(嫡庶)의 구별

    이 없었으며, 누구든지 왕위를 이을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을 이을동생이 없을때에는 아들에게 전

    해 지거나, 아니면 장형(長兄)의 아들을 세웠다. 중임(中壬)이 죽자 그의 장형인 태정의 아들인 태갑이

    왕위에 오른 것이 그 사례이다. 상왕조 17대에 걸친 30명의 왕들 가운데, 형제 사이에서 왕위가 계승된

    것이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탕왕이후 360여년을 상(商)의 전기(前期)에 해당한다고 하는 사실은 이

    미 논한바 있는데, 이기간 동안 나라가 성할때도 있었으나 쇠할 때도 있었다. 성쇠의 관건은 대체로 중

    앙 정부가 튼튼한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제후들이 왕을 옹호하는 정도도 중앙정부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