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C&dataId=ABC_IT_K0549_T_019
大智度論釋初品中三十七品義第三十一 (卷第十九)
31. 초품 중 삼십칠품(三十七品)의 뜻을 풀이함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經】菩薩摩訶薩以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不生故應具足四念處四正懃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
【經】 보살마하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4념처(念處)‧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根)‧5력(力)‧7각분(覺分)‧8성도분(聖道分)을 구족한다.
【論】問曰。三十七品。是聲聞辟支佛道。六波羅蜜是菩薩摩訶薩道。何以故於菩薩道中說聲聞法。
【論】 【문】 37품은 성문ㆍ벽지불의 도요, 6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의 도이거늘 무슨 까닭에 보살의 도에서 성문의 법을 말하는가?
答曰。菩薩摩訶薩。應學一切善法一切道。如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悉學一切善法一切道。所謂乾慧地乃至佛地。是九地應學而不取證。佛地亦學亦證。
【답】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착한 법과 일체의 도를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일체의 착한 법과 일체의 도를 모두 배운다. 이른바 건혜지(乾慧地)1) 내지는 불지(佛地)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 아홉 지위는 마땅히 배우되 깨달음[證]을 취해서는 안 된다. 불지는 배우기도 하고 깨닫기도 한다.
復次何處說三十七品。但是聲聞辟支佛法。非菩薩道。是般若波羅蜜摩訶衍品中。佛說四念處乃至八聖道分。是摩訶衍三藏中。亦不說三十七品獨是小乘法。
또한 어디에서 37품이 성문과 벽지불만의 법이요, 보살의 도가 아니라 하였는가? 이 『반야바라밀경』의 「마하연품(摩詞衍品)」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4념처로부터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를 말씀하셨으며, 이 마하연의 삼장 가운데에도 역시 37품이 오직 소승만의 법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佛以大慈故。說三十七品涅槃道。隨衆生願隨衆生因緣各得其道。欲求聲聞人。得聲聞道。種辟支佛善根人。得辟支佛道。求佛道者得佛道。隨其本願諸根利鈍。有大悲無大悲。譬如龍王降雨普雨天下。雨無差別。大樹大草根大故多受。小樹小草根小故少受。
부처님께서 대자대비하신 까닭에 37품의 열반도(涅槃道)를 말씀하시어 중생들의 서원과 중생들의 인연에 따라 제각기 도를 얻게 하시니, 성문을 구하는 이는 성문의 도를 얻게 하고, 벽지불의 선근을 심은 이는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고, 불도를 구하는 이는 불도를 얻게 하여 그들의 본원(本願)과 근기의 날카롭고 둔함에 따라 크게 가엾이 여김이 있기도 하고 혹은 가엾이 여김이 없기도 하다.
비유하건대 용왕이 비를 내려 온 천하를 적실 때 비에는 차별이 없지만 큰 나무나 큰 풀은 뿌리가 큰 까닭에 많이 받고 작은 나무나 작은 풀은 뿌리가 작은 까닭에 적게 받는 것과 같다.
問曰。三十七品雖無處說獨是聲聞辟支佛道非菩薩道。以義推之可知。菩薩久住生死往來五道。不疾取涅槃。是三十七品但說涅槃法。不說波羅蜜。亦不說大悲。以是故知非菩薩道。
【문】 37품에 관해서는 어디에서도 비록 성문ㆍ벽지불만의 도이지 보살의 도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의미로써 추측하건대 보살은 오랫동안 생사에 머물러 다섯 길을 왕래하면서 신속히 열반을 취하지 않거늘 이 37품은 열반의 법만을 말하고 바라밀을 말하거나 대비를 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보살의 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答曰。菩薩雖久住生死中。亦應知實道非實道是世間是涅槃。知是已立大願。衆生可愍。我當拔出著無爲處。以是實法行諸波羅蜜能到佛道。菩薩雖學雖知是法。未具足六波羅蜜故不取證。如佛說。譬如仰射空中箭箭相柱不令落地。菩薩摩訶薩亦如是。以般若波羅蜜箭。射三解脫門空中。復以方便箭射般若箭。令不墮涅槃地。
【답】 보살이 비록 오랜 동안 생사에 머물지만, 마땅히 진실한 도와 진실치 않은 도를 알고 세간과 열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안 뒤에는 큰 서원을 세우되 “중생들은 가엾도다. 내가 마땅히 건져내서 무위의 경지로 데려가리라” 하고는 이러한 진실한 법으로 모든 바라밀을 행하여 능히 불도(佛道)에 이른다.
보살이 비록 이 법을 배우거나 알았더라도 아직 6바라밀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깨달음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건대 허공을 우러러 활을 쏠 때, 화살마다 서로 버티게 하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셨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의 화살로써 3해탈문(解脫門)의 허공에 쏘아올리고, 다시 방편의 화살로써 반야의 화살을 쏘아 올려서 열반의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하셨다.
復次若如汝所說。菩薩久住生死中。應受種種身心苦惱。若不得實智。云何能忍是事。以是故菩薩摩訶薩求是道品實智時。以般若波羅蜜力故。能轉世間爲道果涅槃。何以故。三界世間。皆從和合生。和合生者無有自性。無自性故是則爲空。空故不可取。不可取相是涅槃。以是故說菩薩摩訶薩。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不生故應具足四念處。
또한 그대가 말하듯이 보살이 오랜 동안 생사에 머물러 응당 몸과 마음의 갖가지 고뇌를 받아야 한다면, 만일 진실한 지혜를 얻지 못했다면 어찌 능히 그런 일을 참겠는가?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도품(道品)의 진실한 지혜를 구할 때, 반야바라밀의 힘으로써 능히 세간을 바꾸어 도과의 열반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계의 세간이 모두가 화합으로부터 생긴 까닭이다. 화합으로 생긴 것은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기에 공하고, 공하기에 취할 수 없으니, 취할 수 없는 모습이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보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마땅히 4념처를 구족한다” 했다.
復次聲聞辟支佛法中。不說世間卽是涅槃。何以故。智慧不深入諸法故。菩薩法中說世間卽是涅槃。智慧深入諸法故。如佛告須菩提。色卽是空空卽是色。受想行識卽是空。空卽是受想行識。空卽是涅槃。涅槃卽是空。中論中亦說。
또한 그대가 말하듯이 보살이 오랜 동안 생사에 머물러 응당 몸과 마음의 갖가지 고뇌를 받아야 한다면, 만일 진실한 지혜를 얻지 못했다면 어찌 능히 그런 일을 참겠는가?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도품(道品)의 진실한 지혜를 구할 때, 반야바라밀의 힘으로써 능히 세간을 바꾸어 도과의 열반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계의 세간이 모두가 화합으로부터 생긴 까닭이다. 화합으로 생긴 것은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기에 공하고, 공하기에 취할 수 없으니, 취할 수 없는 모습이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보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마땅히 4념처를 구족한다” 했다.
涅槃不異世間 世間不異涅槃
涅槃際世間際 一際無有異故
열반이 세간과 다르지 않고
세간이 열반과 다르지 않으니
열반의 경계와 세간의 경계는
한 경계이어서 차이가 없다.
菩薩摩訶薩得是實相故。不厭世間不樂涅槃。三十七品是實智之地。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실상(實相)을 얻는 까닭에 세간을 싫어하지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나니, 37품(品)이 진실한 지혜의 길이다.
問曰。四念處則能具足得道何以說三十七。若汝以略說故四念處。廣說故三十七。此則不然。何以故。若廣應無量。
【문】 4념처만으로도 도를 갖추어 얻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37품을 말씀하셨는가? 만일 그대가 말하기를 “간략히 말하기 위하여 4념처이고, 자세히 말하기 위하여 37품이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만일 자세히 말해야 한다면 한량이 없어야 되기 때문이다.
答曰。四念處雖具足能得道。亦應說四正懃等諸法。何以故衆生心種種不同。結使亦種種。所樂所解法亦種種。佛法雖一實一相。爲衆生故。於十二部經八萬四千法聚。作是分別說。若不爾初轉法輪。說四諦則足。不須餘法。
【답】 4념처가 구족되어 비록 능히 도를 얻지만, 또한 4정근(精勤) 등의 모든 법도 말해야 된다. 왜냐하면 중생들의 마음은 갖가지로 동일하지 않고 번뇌도 또한 갖가지이며, 원하는 바도 이해하는 바도 역시 갖가지이기 때문이다.
불법이 비록 하나의 진실, 하나의 모습이기는 하나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12부경(部經)2), 8만 4천의 법무더기[法聚]에 대해 이렇게 분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 법륜(法輪)을 굴리실 때 4성제(聖諦)를 말씀하심으로써 족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다른 법이 필요하겠는가.
以有衆生厭苦著樂。爲是衆生故。說四諦身心等諸法皆是苦無有樂。是苦因緣由愛等諸煩惱。是苦所盡處名涅槃。方便至涅槃。是爲道。
하지만 중생들이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에 집착되었기에 이런 중생들을 위하여 4성제를 말씀하시어 “몸과 마음 등의 모든 법은 모두가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다. 이 괴로움의 인연은 애착[愛] 등의 모든 번뇌에서 유래한다. 이 괴로움이 다한 곳을 열반이라 하며, 방편으로 열반에 이르니 이것을 일컬어 도라 한다” 하셨다.
有衆生多念亂心顚倒故。著此身受心法中。作邪行。爲是人故說四念處。如是等諸道法。各各爲衆生說。譬如藥師不得以一藥治衆病。衆病不同藥亦不一。佛亦如是隨衆生心病種種。以衆藥治之。
이렇듯 갖가지 도법은 각각 중생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비유하건대 약사가 한 가지 약으로 뭇 병을 고칠 수 없으니, 병이 같지 않다면 약 또한 하나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의 병이 갖가지임을 따라서 뭇 약으로써 그것을 다스리신다.
或說一法度衆生。如佛告一比丘。非汝物莫取。比丘言。知已世尊。佛言。云何知。比丘言。諸法非我物不應取。
혹은 한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부처님께서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네 물건이 아니거든 가지지 말라.”
비구가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알았느냐?”
비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이 내 것이 아니기에 가지지 말아야 하옵니다.”
或以二法度衆生。定及慧。或以三法戒定慧。或以四法四念處。
혹은 두 가지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선정ㆍ지혜요, 혹은 세 가지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계율ㆍ선정ㆍ지혜요, 혹은 네 가지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4념처이다.
是故四念處雖可得道。餘法行異分別多少異觀亦異。以是故應說四正懃等諸餘法。
그러므로 비록 4념처로써 도를 얻을 수는 있으나, 다른 법의 행(行)이 다르고 분별하는 수량[多少]이 다르다면 관법 역시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4정근 등 다른 법도 말해야 하는 것이다.
復次諸菩薩摩訶薩信力大故。爲度一切衆生故。是中佛爲一時說三十七品。若說異法道門十想等。皆攝在三十七品中。是三十七品衆藥和合。足療一切衆生病。是故不用多說。如佛雖有無量力但說十力。於度衆生事足。
또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믿음의 힘이 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일시에 37품을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다른 법의 도문(道門)이나 10상(想) 등을 말하더라도 모두가 37품 가운데 포함된다. 이 37품의 뭇 약이 화합해서 일체 중생의 병을 치유하기에 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말씀하실 필요가 없으니, 예컨대 부처님에게는 비록 한량없는 힘이 있으시나 다만 10력(力)만 말해도 중생을 제도하기에 족한 것이다.
是三十七品。十法爲根本。何等十。信戒思惟精進念定慧除喜捨。信者信根信力。戒者正語正業正命。精進者四正懃精進根精進力精進覺正精進。念者念根念力念覺正念。定者四如意足定根定力定覺正定。慧者四念處慧根慧力擇法覺正見。
이 37품은 10법으로 근본을 삼는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곧 믿음[信]ㆍ계율[戒]ㆍ사유(思惟)ㆍ정진(精進)ㆍ기억[念]ㆍ선정[定]ㆍ지혜[慧]ㆍ제함[除]ㆍ기쁨[喜]ㆍ버림[捨]3)이다.
믿음이라 함은 신근(信根)과 신력(信力)이요, 계율이라 함은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이요, 정진이라 함은 4정근과 정진근(精進根)과 정진력(精進力)과 정진각지(精權覺支)와 정정진(正精進)이요, 기억이라 함은 염근(念根)과 염력(念力)과 염각지(念覺支)와 정념(正念)이요, 선정이라 함은 4여의족과 정근(定根)과 정력(定力)과 정각[定覺支]과 정정(正定)이요, 지혜라 함은 4념처(念處)와 혜근(慧根)과 혜력(慧力)과 택법각지(擇法覺支)와 정견(正見)이다.
是諸法念隨順智慧緣中正住。是時名念處。破邪法正道中行故。名正懃。攝心安隱於緣中故。名如意足。軟智心得故名根利。智心得故名力。修道用故名覺。見道用故名道。
이러한 모든 법의 생각[念]이 지혜에 수순해서 대상[緣] 가운데 머문다면, 이러한 때를 염처(念處)라 한다.
삿된 법을 깨뜨리고 바른 도 가운데에 행하는 까닭에 정근(正勤)이라 하고, 마음을 안온하게 대상 가운데서 거두는 까닭에 여의족(如意足)이라 하고, 부드러운 지혜를 마음으로 얻는 까닭에 근(根)이라 하고, 날카로운 지혜를 마음으로 얻는 까닭에 힘[力]이라 하고, 수도[修道位]의 작용인 까닭에 각(覺)이라 하고, 견도[見道位]의 작용이기 때문에 도(道)라 한다.
問曰。應先說道。何以故行道然後得諸善法。譬如人先行道然後得所至處。今何以顚倒先說四念處。後說八正道。
【문】 도를 먼저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도를 행한 뒤에야 모든 착한 법을 얻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사람이 길을 간 뒤에야 갈 곳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제는 어찌하여 뒤바꿔 4념처를 먼저 말하고, 나중에 8정도(正道)를 말하는가?
答曰。不顚倒也。三十七品是初欲入道時名字。如行者到師所聽道法時。先用念持是法。是時名念處。持已從法中求果故。精進行。是時名正懃。多精進故心散亂。攝心調柔故名如意足。
【답】 뒤바뀌지 않았으니, 37품은 처음으로 도에 들고자 할 때의 이름이다. 마치 수행자가 스승에게 가서 도법(道法)을 듣는 것과도 같다. 먼저 기억하여 이 법을 간직하나니, 이때를 염처라 한다. 간직한 뒤에는 그 법 가운데서 과위를 구하는 까닭에 정진하나니, 이때를 정근이라 한다.
정진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한데 마음을 거두어 부드럽게 조절하는 까닭에 여의족이라 한다.
心調柔已生五根。諸法實相甚深難解。信根故能信是名信根。不惜身命一心求道。是名精進根。常念佛道不念餘事是名念根。常攝心在道是名定根。觀四諦實相是名慧根。
마음이 길들여진 뒤에는 5근이 생겨난다. 모든 법의 실상은 매우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근(信根) 때문에 능히 믿게 되니, 이를 신근(信根)이라 하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심으로 도를 구하니, 이를 정진근(精進根)이라 하고, 항상 불도(佛道)만을 생각하고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이를 염근(念根)이라 하고, 항상 마음을 거두어 도에 두니, 이를 정근(定根)이라 하고, 4제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니, 이를 혜근(慧根)이라 한다.
是五根增長能遮煩惱。如大樹力能遮水。是五根增長時能轉入深法。是名爲力。
이 5근이 늘어나 능히 번뇌를 가리나니, 마치 큰 나무의 힘이 능히 홍수를 막는 것과 같다. 이 5근이 늘어나면 능히 깊은 법으로 옮겨 들어가나니, 이를 힘[力]이라 한다.
得力已分別道法有三分。擇法覺精進覺喜覺。此三法行道時。若心沒能令起除覺定覺捨覺。此三法若行道時。心動散能攝令定念覺在二處。能集善法能遮惡法。如守門人有利者令入。無益者除却。若心沒時念三法起。若心散時念三法。攝無覺實覺。此七事能到故名爲分。
힘을 얻은 뒤에는 도법(道法)을 분별하는데 세 부분이 있다. 택법각지[擇法覺]와 정진각지[精進覺]와 희각지(喜覺支) 등 이 세 법은 도를 행할 때에 마음이 침몰하면 제각지(除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를 일으키고, 다시 이 세 법은 도를 행할 때에 마음이 흔들리고 흩어지면 능히 거두어서 정ㆍ염각지를 두 곳에 있게 하며, 능히 착한 법을 모으고 악한 법을 막는다.
마치 문을 지키는 사람이 이익이 되는 이는 들어오게 하고, 이익이 없는 이는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침몰할 때엔 염(念)의 세 가지 법을 일으키고, 마음이 산란할 때에는 염의 세 가지 법은 무각(無覺)과 실각(實覺)에 포섭된다.
이 일곱 가지로 능히 이르게 되기 때문에 부분[分]이라 한다.
得是法安隱具足已。欲入涅槃無爲城故行是諸法。是時名爲道。
이 법을 얻어서 안온함이 구족한 뒤에는 열반의 무위성(無爲城)에 들고자 하기 때문에 이 모든 법을 행하나니, 이때를 도라 한다.
問曰:何等是四念處?
【문】 무엇이 4념처인가?
答曰:身念處,受、心、法念處,是爲四念處。
【답】 신념처(身念處)와 수(受)ㆍ심(心)ㆍ법(法)의 염처이니, 이것이 4념처이다.
觀四法四種。觀身不淨。觀受是苦。觀心無常。觀法無我。是四法雖各有四種。身應多觀不淨受多觀苦心多觀無常法多觀無我。何以故。凡夫人未入道時。是四法中邪行起四顚倒。諸不淨法中淨顚倒。苦中樂顚倒。無常中常顚倒。無我中我顚倒。破是四顚倒故。說是四念處。破淨倒故說身念處。破樂倒故說受念處。破常倒故說心念處。破我倒故說法念處。以是故說四不少不多。
네 가지 법을 네 종류로 관찰하니, 곧 몸이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느낌은 괴롭다고 관찰하고, 마음은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법은 나가 없다고 관찰한다.
이 네 가지 법이 각각 네 가지 법을 갖추고 있으나, 몸에서는 부정을 많이 관하고, 느낌에서는 괴로움을 많이 관하고, 마음에서는 무상함을 많이 관하고, 법에서는 나 없음을 많이 관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범부가 아직 도에 들지 않았을 때 이 네 가지 법에서 삿된 행을 하거나 네 가지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든 부정한 법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며, 괴로움에 대하여 즐겁다는 뒤바뀐 생각, 무상함에 대하여 항상하다는 뒤바뀐 생각, 나가 없는데 대하여 나라는 뒤바뀐 생각을 일으킨다.
이런 네 가지 뒤바뀜을 깨뜨리기 위한 까닭에 이 4념처를 말하는 것이다.
깨끗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신념처(身念處)를 말하고, 즐겁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수념처(受念處)를 말하고, 항상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심념처(心念處)를 말하고, 나가 있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법념처(法念處)를 말한다.
이런 까닭에 넷을 말하니, 이는 모자라지도 많지도 않은 것이다.
問曰。云何得是四念處。
【문】 어찌하여야 이 4념처를 얻는가?
答曰:行者依淨戒住,一心行精進,觀身五種不淨相。何等五?一者、生處不淨,二者、種子不淨,三者、自性不淨,四者、自相不淨,五者、究竟不淨。
【답】 수행자는 청정한 계에 의하여 일심으로 정진을 행해 몸의 다섯 가지 부정함을 관찰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태어나는 곳이 부정함[生處不淨]이요, 둘째는 종자가 부정함[種子不淨]이요, 셋째는 자성이 부정함[自性不淨]이요, 넷째는 자상이 부정함[自相不淨]이요, 다섯째는 끝까지 부정함[究竟不淨]이다.
云何名生處不淨?
무엇이 태어나는 곳이 부정한 것인가?
頭足腹脊脇肋。諸不淨物和合名爲女身。內有生藏熟藏屎尿不淨。外有煩惱業因緣風。吹識種令入二藏中間。若八月若九月如在屎尿坑中。如說。
머리ㆍ발ㆍ배ㆍ등ㆍ옆구리ㆍ갈비 등 모든 부정한 물건이 화합된 것을 여자의 몸이라 하는데, 안으로는 생장(生藏)과 숙장(熟藏)과 오줌ㆍ똥 등 부정한 것이 있고, 밖으로는 번뇌와 업인연의 바람이 식의 종자[識種]를 불어 두 장[藏] 사이로 들어가서 8개월이나 9개월 동안 있게 하니, 마치 분뇨 구덩이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이런 게송이 있다.
是身爲臭穢 不從花間生
亦不從瞻蔔 又不出寶山
이 몸은 냄새 나고 더러운 것
꽃 사이에서 난 것도 아니요
첨복(瞭舊)4)에서 난 것도 아니며
보배산[寶山]에서 난 것도 아니네.
是名生處不淨。
이것을 태어나는 곳이 부정하다 한다.
種子不淨者。父母以妄想邪憶念風吹婬欲火故。血髓膏流熱變爲精。宿業行因緣識種子。在赤白精中住。是名身種子。如說。
종자가 부정하다 함은 부모가 망상과 삿된 생각[邪憶念]의 바람이 음욕의 불에 분 까닭에 피와 골수가 흐르고 열이 변하여 정자[精]가 되었는데, 숙업행의 인연인 식의 종자는 붉은 정[赤精]과 흰 정[白精] 사이에 머무르니, 이를 몸의 종자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是身種不淨 非餘妙寶物
不由淨白生 但從尿道出
이 몸의 종자는 부정한 것이니
별달리 묘한 보물이 아니네.
맑고 깨끗함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오직 요도(尿道)를 따라 나온 것일 뿐이네.
是名種子不淨。
이를 종자가 부정하다 한다.
自性不淨者。從足至頂四邊薄皮。其中所有不淨充滿。飾以衣服澡浴花香。食以上饌衆味餚膳。經宿之間皆爲不淨。假令衣以天衣。食以天食。以身性故亦爲不淨。何況人衣食。如說。
자성이 부정하다 함은 발에서부터 정수리에 이르기까지 사방이 얇은 가죽으로 덮였고, 그 속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을 말한다. 의복으로 장식하고 목욕시키고 꽃과 향으로 치장하며, 최상의 반찬과 온갖 맛난 음식을 먹이나 하룻밤 사이에 모두가 부정한 것이 되고 만다.
설사 하늘의 옷을 입히거나 하늘의 음식을 먹이더라도 몸의 성질 때문에 역시 더러워질 것이거늘 하물며 인간의 의식(衣食)이겠는가.
이런 게송이 있다.
地水火風質 能變除不淨
傾海洗此身 不能令香潔
흙ㆍ물ㆍ불ㆍ바람의 성질은
부정한 것 없앨 수 있으나
바닷물 다하도록 이 몸 씻어도
향기롭고 맑게 하지는 못하리.
是名自性不淨。
이것이 자성이 부정한 것이다.
自相不淨者。是身九孔常流不淨。眼流眵淚耳出結聹鼻中涕流口出涎吐。廁道水道常出屎尿。及諸毛孔汗流不淨。如說。
자상의 부정함이라 함은 이 몸의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내리니, 눈에서는 눈곱과 눈물이 흐르고, 귀에서는 귀지가 나오고, 코에서는 콧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배설기관에서는 항상 똥오줌이 흘러나오고, 모든 털구멍에서는 땀이 흘러 부정하다.
이런 게송이 있다.
種種不淨物 充滿於身內
常流出不止 如漏囊盛物
갖가지 더러운 물건이
몸 안에 가득하여
항상 쉬지 않고 흘러나오니
새는 주머니에 물건을 담은 듯하네.
是名自相不淨。
이것이 자상의 부정이다.
究竟不淨者。是身若投火則爲灰。若虫食則爲屎。在地則腐壞爲土。在水則膖脹爛壞。或爲水虫所食。一切死屍中人身最不淨。不淨法九相中當廣說。如說。
끝까지 부정하다 함은 이 몸을 불에 던지면 재[灰]가 되고, 벌레가 먹으면 똥[尿]이 되고, 땅에 묻으면 썩어서 흙이 되고, 물에 두면 불어터지거나 혹은 물벌레에게 먹힌다.
일체의 시체 가운데서는 인간의 몸이 가장 부정하다. 부정한 법에 대하여는 9상(相)5) 가운데 자세히 설명하리라.
이런 게송이 있다.
審諦觀此身 終必歸死處
難御無反復 背恩如小人
이 몸을 자세히 관찰하니
마침내는 무덤으로 돌아가네.
힘들여 모셔도 돌아오지 않으니
은혜를 저버리기 소인(小人)과 같도다.
是名究竟不淨。
이것이 끝까지 부정한 것이다.
復次是身生時死時。所近身物所安身處皆爲不淨。如香美淨水隨百川流旣入大海變成醎苦。身所食噉種種美味好色好香細滑上饌。入腹海中變成不淨。是身如是從生至終。常有不淨甚可患厭。
또한 이 몸이 살았을 때나 죽은 뒤에 이 몸이 가까이했던 곳이나 몸을 두었던 곳은 모두가 부정하다. 예컨대 향기롭고 아름답고 깨끗하던 물도 백 가닥의 개울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면 짜고 쓴 맛으로 변하듯이 이 몸에 먹었던 갖가지 맛난 맛과 좋은 빛과 좋은 향기와 부드러운 반찬들도 배라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부정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날 때부터 종극에 이르기까지 항상 부정한 것이 있으니, 몹시 싫증날 일이다.
行者思惟是身雖復不淨。若少有常者。猶差而復無常。
수행자들은 생각하라. 이 몸이 부정하건만 조그만치의 항상함이 있으면 조금 나은 것 같다가 다시 무상해진다.
雖復不淨無常。有少樂者。猶差而復大苦。是身是衆苦生處。如水從地生風從空出火因木有。是身如是內外諸苦皆從身出。內苦名老病死等。外苦名刀杖寒熱飢渴等。有此身故有是苦。
또한 부정하고 무상하건만 조그만치의 즐거움만 있으면 조금 나은 것 같다가 다시 매우 괴로워진다.
이 몸은 뭇 고통이 생기는 곳이니, 마치 물이 땅에서 나고, 바람이 허공에서 나오고, 불이 나무로 인하여 생기는 것과 같다. 이 몸도 그와 같아서 안팎의 괴로움은 모두 몸에서 나온다.
안의 괴로움이란 늙음ㆍ앓음ㆍ죽음 등이요, 밖의 괴로움이란 폭력[刀杖]ㆍ추위ㆍ더위ㆍ주림ㆍ목마름 등을 말한다. 이 몸이 있기 때문에 이런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問曰。身非但是苦性。亦從身有樂。若令無身隨意。五欲誰當受者。
【문】 몸은 괴로운 성품일 뿐 아니라 몸으로 인하여 즐거움도 있다. 만약에 몸이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한다면 5욕을 누가 누리겠는가?
答曰。四聖諦苦。聖人知實是苦。愚夫謂之爲樂。聖實可依愚惑宜棄。是身實苦以止大苦故。以小苦爲樂。譬如應死之人得刑罰代命甚大歡喜。罰實爲苦以代死故謂之爲樂。
【답】 4성제(聖諦)의 괴로움을 성인은 실로 괴로운 것인 줄 알지만 우매한 범부는 즐겁다 한다. 성인은 실로 의지할 만하거니와 어리석은 이는 미혹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
이 몸은 실로 괴롭거늘 큰 괴로움이 그쳤으므로 작은 괴로움을 즐겁다 여긴다. 예컨대 죽임을 당하게 된 사람이 형벌로 목숨을 대신하게 되면 몹시 기뻐하는 것과 같다. 형벌이 실로 괴롭거늘 죽음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즐겁다고 여기는 것이다.
復次新苦爲樂故苦爲苦。如初坐時樂久則生苦。初行立臥亦樂久亦爲苦。屈申俯仰視眴喘息苦常隨身。從初受胎出生至死無有樂時。若汝以受婬欲爲樂。
또한 새로운 괴로움은 즐겁고 묵은 괴로움은 고통스럽나니, 마치 처음 앓았을 때엔 즐겁다가 오래 되면 곧 괴로움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다니거나 앉거나 누었을 때는 즐겁다가 오래되면 역시 괴로운 것과 같다.
구부리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고 바로 보고 곁눈으로 보고 헐떡이고 숨을 쉴 때에도 괴로움은 항상 몸을 따르니, 처음 태에 들어 출생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즐거울 때가 없다.
婬病重故求外女色。得之愈多患至愈重。如患疥病向火。揩炙當時小樂大痛轉深。如是小樂亦是病因緣故有。非是實樂無病。觀之爲生慈愍。離欲之人觀婬欲者亦復如是。愍此狂惑爲欲火所燒多受多苦。如是等種種因緣。知身苦相苦因。
만일 그대가 음욕을 느낌으로써 즐겁다 한다면 음욕의 법이 중해진 까닭에 밖의 여색을 구하니, 얻어지는 것이 많을수록 병은 더욱 중해질 것이다. 마치 소양병을 근심해 불을 쏘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불에 쪼여서 긁으면 당시에는 조금 즐거운 듯하나 이내 큰 아픔이 더욱 깊어지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작은 쾌락도 역시 병의 인연으로 있는 것이지 실제로 즐거운 것이 아니다. 병 없는 사람이 그를 본다면 가엾다는 생각을 내듯이 음욕을 여읜 사람이 음욕에 빠진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이와 같아서 이 어리석은 자가 음욕의 불에 타서 많은 고통 받음을 가엾이 여긴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몸의 괴로운 모습과 괴로움의 원인을 안다.
行者知身但是不淨無常苦物。不得已而養育之。
수행자는 오직 몸은 부정하고 무상하고 괴로운 물건인 줄을 알지만, 부득이 하여 그것을 양육하는 것이다.
譬如父母生子。子復弊暴以從己生故。要當養育成就。
비유하건대 부모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포악하더라도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반드시 잘 양육해 길러주는 것과 같다.
身實無我。何以故?不自在故。譬如病風之人,不能俯仰行來;病咽塞者,不能語言。以是故,知身不自在。
몸은 진실로 나가 없나니, 왜냐하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중풍 병에 걸린 사람은 구부리거나 쳐들거나 가거나 오지 못하며, 목병을 앓는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몸은 자유롭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대로 가져다가 써야 하는데 몸은 그렇지 못하다.
자재롭지 못한 까닭에 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行者思惟是身,如是不淨、無常、苦、空、無我,有如是等無量過惡。如是等種種觀身,是名身念處。
수행자는 이 몸이 이렇게 부정하고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 없다고 사유한다.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이 있으니,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몸을 관찰하는 것을 신념처라 한다.
得是身念處觀已,復思惟衆生以何因緣故貪著此身?樂受故。所以者何?從內六情、外六塵和合故,生六種識。六種識中生三種受:苦受、樂受、不苦不樂受。是樂受,一切衆生所欲;苦受,一切衆生所不欲;不苦不樂受,不取、不棄。如說:
이 신념처를 얻은 뒤에는 다시 생각한다.
‘중생은 무슨 까닭에 이 몸에 탐착하는가? 곧 즐거운 느낌 때문이니, 왜냐하면 안의 6정(情)과 밖의 6진(塵)의 화합을 따르는 까닭에 6식을 내고, 6식 가운데 세 가지 느낌[三受]을 내나니, 곧 괴로운 느낌[苦受]ㆍ즐거운 느낌[樂受]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다.’
이 즐거운 느낌은 일체 중생이 바라는 바이고, 괴로운 느낌은 일체 중생이 바라지 않는 바이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이런 게송이 있다.
若作惡人及出家 諸天世人及蠕動
一切十方五道中 無不好樂而惡苦
狂惑顚倒無智故 不知涅槃常樂處
악을 짓는 이나 출가한 이나
하늘 무리나 인간이나 벌레들이나
일체 시방의 5도 가운데 모두가
즐거움을 좋아할 뿐, 괴로움을 싫어하는 이 없네.
미치고 뒤바뀌고 어리석어서
열반의 항상한 즐거움 알지 못하네.
行者觀是樂受。以實知之無有樂也。但有衆苦。何以故。樂名實樂無有顚倒。一切世間樂受。皆從顚倒生無有實者。復次是樂受。雖欲求樂能得大苦。如說。
수행자는 이 즐거운 느낌을 관찰하여 실제로 그것을 안다면, 즐거움은 없고 오로지 못 고통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즐거움이 진실한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뒤바뀜이 없어야 하거늘 일체 세간의 즐거운 느낌은 모두 뒤바뀜으로부터 생겨나 진실됨이 없기 때문이다.
以是故,知樂受能生種種苦。
이런 까닭에 즐거운 느낌은 능히 갖가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안다.
若人入海遭惡風 海浪崛起如黑山
若入大陣鬪戰中 經大險道惡山間
어떤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 폭풍을 만나면
파도가 솟구쳐 마치 흑산(黑山)과 같고,
어떤 사람이 큰 싸움터에 들어가면
매우 험하고 거친 길을 지나야 하리.
豪貴長者降屈身 親近小人爲色欲
如是種種大苦事 皆爲著樂貪心故
귀한 장자(長者)도 신분을 낮추어
소인들을 가까이함은 색욕 때문이니
이러한 갖가지 큰 고통들은
모두가 쾌락에 집착하는 탐심 때문이네.
以是故知樂受能生種種苦。
이런 까닭에 즐거운 느낌은 능히 갖가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안다.
復次雖佛說三種受有樂受。樂少故名爲苦。如一斗蜜投之大河則失氣味。
또한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느낌에 비록 즐거운 느낌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즐거움이 적은 까닭에 괴로움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한 말[斗]이나 되는 꿀도 강에 던져지면 꿀의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問曰。若世間樂顚倒因緣故苦。諸聖人禪定生無漏樂。應是實樂。何以故。此樂不從愚癡顚倒有故。此云何是苦。
【문】 만약에 세간의 즐거움이 뒤바뀐 인연 때문에 괴롭다면 성인들의 선정은 무루의 즐거움을 내니, 마땅히 실다운 즐거움이어야 하리라. 왜냐하면 이 즐거움은 어리석은 뒤바뀜에서 생겨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찌 괴로움이라 하는가?
答曰。非是苦也。雖佛說無常卽是苦。爲有漏法故說苦。何以故。凡夫人於有漏法中心著。以有漏法無常失壞故生苦。無漏法心不著故。雖無常不能生憂悲苦惱等故。不名爲苦。亦諸使不使故。復次若無漏樂。是苦者。佛不別說道諦。苦諦攝故。
【답】 이것은 괴로움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비록 무상한 것이 곧 괴로움이라 하셨지만, 유루의 법이기 때문에 괴롭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범부들은 유루의 법에 대하여 마음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유루의 법은 무상하여 잃어지고 무너지는 까닭에 괴로움을 내거니와 무루의 법은 마음으로 집착할 수 없기에 비록 무상하더라도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고뇌 등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이라 하지 않는다.
또한 모든 번뇌[結使]가 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問曰有二種樂。有漏樂無漏樂。有漏樂下賤弊惡。無漏樂上妙。何以故。於下賤樂中生著。上妙樂中而不生著。上妙樂中生著應多。如金銀寶物貪著應重。豈同草木。
答曰。無漏樂上妙。而智慧多。智慧多故能離此著。有漏樂中愛等結使多。愛爲著本。實智慧能離。以是故不著。復次無漏智慧。常觀一切無常。觀無常故。不生愛等諸結使。譬如羊近於虎。雖得好草美水而不能肥。如是諸聖人雖受無漏樂。無常空觀故。不生染著脂。復次無漏樂。不離三三昧十六聖行。常無衆生相。若有衆生相則生著心。以是故無漏樂。雖復上妙而不生著。如是種種因緣。觀世間樂受是苦。觀苦受如箭。不苦不樂受。觀無常壞敗相。如是則樂受中不生欲著。苦受中不生恚。不苦不樂受中不生愚癡。是名受念處。
行者思惟以樂故貪身誰受是樂。思惟已知從心受。衆生心狂顚倒故。而受此樂。當觀是心無常生滅相一念不住。無可受樂。人以顚倒故。謂得受樂。何以故。初欲受樂時心生異。樂生時心異。各各不相及。云何言心受樂。過去心已滅故不受樂。未來心不生故不受樂。現在心一念住疾故不覺受樂。
問曰。過去未來不應受樂。現在心一念住時應受樂。云何言不受。
答曰。我已說去疾故不覺受樂。復次諸法無常相故無住時。若心一念住。第二念時亦應住。是爲常住無有滅相。如佛說。一切有爲法三相住中。亦有滅相。若無滅者不應是有爲相。復次若法後有滅。當知初已有滅。譬如人著新衣。初著日若不故第二日亦不應故。如是乃至十歲應常新不應故。而實已故。當知與新俱有。微故不覺。故事已成方乃覺知。以是故知諸法無有住時。云何心住時得受樂。若無住而受樂是事不然。以是故知無有實受樂者。但世俗法。以諸心相續故。謂爲一相受樂。
問曰。云何當知一切有爲法無常。
答曰。我先已說今當更答。是有爲法一切屬因緣故無常。先無今有故今有後無故無常。復次無常相。常隨逐有爲法故。有爲法無有增損故。一切有爲法相侵剋故無常。
復次有爲法有二種老常隨逐故。一者將老二者壞老。有二種死常隨逐故。一者自死二者他殺。以是故知一切有爲法皆無常。於有爲法中心無常最易得。如佛說凡夫人或時知身無常。而不能知心無常。若凡夫言身有常。猶差以心爲常是大惑。何以故。身住或十歲二十歲。是心日月時頃須臾過去。生滅各異念念不停。欲生異生欲滅異滅。如幻事實相不可得。如是無量因緣故知心無常。是名心念處。
行者思惟是心屬誰。誰使是心觀已不見有主。一切法因緣和合故不自在。不自在故無自性。無自性故無我。若無我誰當使是心。
問曰。應有我。何以故。心能使身。亦應有我能使心。譬如國主使將將使兵。如是應有我使心有心使身。爲受五欲樂故。復次各各有我心故知實有我。若但有身心顚倒故計我者。何以故。不他身中起我。以是相故知各各有我。
答曰。若心使身有我使心。應更有使我者。若更有使我者是則無窮。又更有使我者則有兩神。若更無我但我能使心。亦應但心能使身。若汝以心屬神除心則神無所知。若無所知云何能使心。若神有知相復何用心爲。以是故知但心是識相故。自能使身不待神也。如火性能燒物不假於人。
問曰。火雖有燒力。非人不用心雖有識相非神不使。
答曰。諸法有相故有。是神無相故無。汝雖欲以氣息出入苦樂等爲神相。是事不然。何以故。出入息等是身相。受苦樂等是心相。云何以身心爲神相。復次或時火自能燒不待於人。但以名故名爲人燒。汝論墮負處。何以故神則是人。不應以人喩人。又復汝言各各有我心故。知實有我。若但有身心顚倒故。計我者。何以不他身中起我。汝於有我無我未了而問。何以不他身中起我。自身他身皆從我有。我亦不可得。若色相若無色相若常無常有邊無邊。有去者不去者。有知者不知者。有作者無作者。有自在者不自在者。如是等我相皆不可得。如上我聞品中說。如是等種種因緣。觀諸法和合因緣生無有實法有我。是名法念處。
是四念處有三種。性念處共念處緣念處。云何爲性念處。觀身智慧是身念處。觀諸受智慧是名受念處。觀諸心智慧是名心念處。觀諸法智慧是名法念處。是爲性念處。
云何名共念處。觀身爲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是身念處。觀受觀心觀法爲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是名受心法念處。是爲共念處。云何爲緣念處。一切色法。所謂十入及法入少分是名身念處。六種受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念處。六種識眼識耳鼻舌身意識。是名心念處。想衆行衆及三無爲。是名法念處。是名緣念處。
是性念處智慧性故。無色不可見無對。或有漏或無漏。有漏有報無漏無報。皆有爲因緣生。三世攝名攝外入攝。以慧知有漏是斷。知無漏非斷。知有漏是可斷無漏非可斷。是修法是無垢。是果亦有果。一切非受法非四大造。有上法有漏念處。是有無漏念處。是非有皆是相應因。四念處攝六種善中一種行衆善分。行衆善分攝四念處。不善無記漏中不相攝。或有四念處非有漏。或有漏非四念處。或有四念處亦有漏。或非四念處亦非有漏。有四念處非有漏者。是無漏性四念處。有漏非四念處者。除有漏性四念處。餘殘有漏分。四念處亦有漏法者。有漏性四念處。非四念處非有漏法者。除無漏性四念處。餘殘無漏法。無漏四句亦如是。
共念處是共念處中。身業口業是爲色。餘殘非色。一切不可見皆無對。或有漏或無漏皆有爲。有漏念處有報。無漏念處無報。因緣生三世攝。身口業色攝。餘殘名攝。心意識內入攝。餘殘外入攝。以慧知有漏是斷。知無漏非斷。知有漏可斷無漏非可斷。皆修法皆無垢。是果亦有果。一切非受法。身口業是四大造。餘殘非四大造。皆有上法有漏念處。是有無漏念處。是非有身口業及心不相應諸行。是非相應因。餘殘是相應因。五善分攝四念處。四念處亦攝五善分。餘殘不相攝。不善無記漏法不攝。或有四念處非有漏。或有漏非四念處。或有四念處亦有漏。或非四念處亦非有漏。有四念處非有漏者。無漏四念處。有漏非四念處者。除有漏四念處。餘殘有漏法有四念處亦有漏者。有漏四念處。非四念處非有漏者。虛空數緣盡。非數緣盡。或有四念處非無漏。或有無漏非四念處。或有四念處亦無漏。或非四念處非無漏。有四念處非無漏者。有漏四念處。有無漏非四念處者。三無爲法。有四念處亦無漏者。無漏四念處。非四念處非無漏者。除有漏四念處。餘殘有漏法。是緣念處。緣念處中一念處是色。三念處非色。三不可見。一當分別。身念處有可見有不可見。可見者一入。不可見者九入。及一入少分。三無對一當分別。身念處有對。十入無對。一入少分。身念處有漏十入及一入少分。無漏一入少分。受念處有漏。意相應是有漏。無漏意相應是無漏。心念處亦如是。法念處有漏。想衆行衆是有漏。無漏想衆行衆及無爲法是無漏。三是有爲一當分別。法念處想衆行衆是有爲。三無爲法是無爲。不善身念處及善有漏身念處是有報。無記身念處及無漏是無報。受念處心念處法念處亦如是。三從因緣生一當分別。法念處有爲從因緣生。無爲不從因緣生。三三世攝。一當分別。法念處有爲是三世攝。無爲非三世攝。一念處攝色。三攝名。一念處內入攝。受念處法念處外入攝。一當分別。身念處或內入攝。或外入攝。五內入是內入攝。五外入及一入少分是外入攝。以慧知有漏者是斷見。無漏者非斷見。有漏者可斷。無漏者非可斷。修當分別。身念處善應修不善及無記不應修受心念處。亦如是。法念處有爲善法應修。不善及無記及數緣盡不應修。垢當分別。身念處隱沒是垢。不隱沒非垢。受心法念處亦如是。三念處是果亦有果。一當分別。法念處或果非有果。或果亦有果或非果非有果。數緣盡是果非有果。有爲法念處是果亦有果。虛空非數緣盡。是非果非有果三不受一當分別。身念處墮身數是受。不墮身數非受。三非四大造一當分別。身念處九入及二入少分四大造。一入少分非四大造。三念處有上一當分別。法念處有爲及虛空非數緣盡是有上。涅槃是無上。四念處若有漏是有。若無漏是非有。二念處相應因一念處不相應因一當分別。受念處心念處相應因。身念處不相應因。法念處想衆及相應行衆是相應因。餘殘是不相應因。四念處分攝六善法。六善法亦攝四念處分。不善分無記分亦如是。隨種相攝。三漏攝一念處分。一念處分亦攝三漏。有漏攝四念處分。四念處分亦攝有漏。無漏攝四念處分。四念處分亦攝無漏。如是等義千難中廣說。
問曰。何等爲內身。何等爲外身。如內身外身皆已攝盡。何以復說內外身觀。
答曰。內名自身外名他身。自身有二種。一者身內不淨。二者身外皮毛爪髮等。復次行者觀死屍膖脹爛壞。取是相。自觀身亦如是相如是事。我未離此法。死屍是外身行者身是內身。如行者或時見端政女人心著。卽時觀其身不淨。是爲外。自知我身亦爾。是爲內。復次眼等五情爲內身。色等五塵爲外身。四大爲內身。四大造色爲外身。覺苦樂處爲內身。不覺苦樂處爲外身。自身及眼等諸根是爲內身。妻子財寶田宅所用之物。是爲外身。所以者何。一切色法盡是身念處故。行者求是內身有淨常樂我。審悉求之都不可得。如先說觀法。內觀不得外或當有耶。何以故。外物是一切衆生著處。外身觀時亦不可得。復作是念。我內觀不得。外或有耶。外觀亦復不得。自念我或誤錯。今當總觀內外。觀內觀外是爲別相。一時俱觀是爲總相。總觀別觀了不可得。所觀已竟。
問曰。身念處可得內外。諸受是外入攝。云何分別有內受外受。
答曰。佛說有二種受。身受心受。身受是外心受是內。復有五識相應受是外。意識相應受是內。十二入因緣故。諸受生。內六入分生受。是爲內。外六入分生受。是爲外。麤受是爲外細受是爲內。
二種苦。內苦外苦。內苦有二種身苦心苦。身苦者身痛頭痛等。四百四種病是爲身苦。心苦者憂愁瞋怖嫉妬疑如是等。是爲心苦。二苦和合是爲內苦。
外苦有二種。一者王者勝己惡賊師子虎狼蚖蛇等逼害。二者風雨寒熱雷電礔礰等。是二種苦名爲外受。樂受不苦不樂受亦如是。復次緣內法是爲內受。緣外法是爲外受。復次一百八受是爲內受。餘殘是外受。
問曰。心是內入攝。云何言觀外心。
答曰。心雖內入攝緣外法故。名爲外心緣內法故是爲內心。意識是內心五識是外心。攝心入禪是內心。散亂心是外心。內五蓋內七覺相應心。是爲內心。外五蓋外七覺相應心。是爲外心。如是等種種分別內外。是爲內外心。
問曰。法念處是外入攝。云何言觀內法。
答曰。除受餘心數法。能緣內法心數法是內法。緣外法心數法及無爲心不相應行是爲外法。復次意識所緣法。是名爲法。如佛所說。依緣生意識。是中除受餘心數法。是爲內法。餘心不相應行及無爲法。是爲外法。
四正懃有二種。一者性正懃。二者共正懃。性正懃者。爲道故四種精進。遮二種不善法。集二種善法。四念處觀時。若有懈怠心。五蓋等諸煩惱覆心。離五種信等善根時。不善法若已生爲斷故。未生不令生故。懃精進。信等善根未生爲生故。已生爲增長故。懃精進。精進法於四念處多故。得名正懃。
問曰。何以故。於七種法中此四名正懃。後八名正道。餘者不名正。
答曰。四種精進心勇發動畏錯誤故。言正懃。行道趣法故。畏墮邪法故。言正道。
性者四種精進性。共者四種精進性爲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若有色若無色如上說。行四正懃時心小散故。以定攝心故。名如意足。譬如美食少鹽則無味。得鹽則味足如意。又如人有二足。復得好馬好車如意所至。行者如是得四念處實智慧四正懃中正精進。精進故智慧增多。定力小弱。得四種定攝心故。智定力等所願皆得故。名如意足。
問曰。四念處四正懃中已有定。何以故不名如意足。
答曰。彼雖有定。智慧精進力多定力弱故。行者不得如意願。四種定者。欲爲主得定。精進爲主得定。定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心爲主得定。思惟爲主得定。定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共善五衆名爲共如意。欲主等四種定。名爲性如意。四正懃四如意足。如性念處共念處中廣分別說。
五根者。信道及助道善法。是名信根。行者行是道助道法時。懃求不息是名精進根。念道及助道法。更無他念是名念根。一心念不散是名定根。爲道及助道法。觀無常等十六行。是名慧根。是五根增長不爲煩惱所壞。是名爲力。如五根中說。是五根五力行衆中攝。常共相應。隨心行心數法。共心生共心住共心滅。若有是法心墮正定。若無是法心墮邪定。七覺如先說義。
問曰。先雖說義。非以阿毘曇法說。
答曰。今當更說。如四念處義是七覺分。無色不可見無對無漏有爲因緣生。三世攝名攝外入攝。慧知非斷見不可斷。修法無垢法。是果亦有果。非受法非四大造。有上法非有相應因。二善分攝七覺分。七覺分攝二善分。不善無記漏有漏法不相攝。無漏二分攝七覺分。七覺分攝無漏二分。如是等種種。如千難中廣說。
八聖道分如先說。正見是智慧。如四念處慧根慧力擇法覺中說。正思惟觀四諦時。無漏心相應。思惟動發覺知籌量。正方便如四正懃精進根精進力精進覺中說。正念如念根念力念覺中說。正定如如意足定根定力定覺中說。正語正業正命今當說。除四種邪命攝口業。以無漏智慧除捨。離餘口邪業。是名正語。正業亦如是。五種邪命以無漏智慧除捨。離是爲正命。
問曰。何等是五種邪命。
答曰。一者若行者爲利養故詐現異相奇特。二者爲利養故自說功德。三者爲利養故占相吉凶爲人說。四者爲利養故高聲現威令人畏敬。五者爲利養故稱說所得供養以動人心。邪因緣活命故。是爲邪命。
是八正道有三分。三種爲戒分。三種爲定分。二種爲慧分。慧分定分分別如先說。戒分今當說。戒分是色性不可見。無對無漏有爲無報因緣生。三世攝色攝。非名攝外入攝。慧知非斷見不可斷。修法無垢法。是果亦有果。非受法非四大造有上法非有法。相應因。一善分攝三正。三正攝一善分。不善無記漏有漏不相攝。無漏一法攝三正。三正亦攝無漏一法。如是等種種分別。如阿毘曇廣說。
是三十七品。初禪地具有。未到地中三十六。除喜覺。第二禪中亦三十六。除正行禪中間第三第四禪三十五。除喜覺除正行。三無色定中三十二。除喜覺正行正語正業正命。有頂中二十二。除七覺分八聖道分。欲界中二十二亦如是。是爲聲聞法中分別義。
問曰摩訶衍所說。三十七品義云何。答曰菩薩摩訶薩。行四念處觀是內身無常苦如病如癰。焰聚敗壞不淨充滿九孔流出。是爲行廁。如是觀身惡露無一淨處。骨幹肉塗筋纏皮裹。先世受有漏業因緣。今世沐浴華香衣服飮食臥具醫藥等所成。如車有兩輪牛力牽故能有所至。二世因緣以成身車。識牛所牽周旋往反。是身四大和合造。如水沫聚虛無堅固。是身無常久必破壞。是身相身中不可得。亦不在外亦不在中間。身不自覺無知無作如牆壁瓦石。是身中無定身相。無有作是身者。亦無使作者。是身先際後際中際皆不可得。八萬戶虫無量諸病。及諸飢渴寒熱刑殘等常惱此身。菩薩摩訶薩觀身如是。知非我身亦非他有。不得自在有作及所不作。是身身相空從虛妄因緣生。是身假有屬本業因緣。菩薩自念我不應惜身命。何以故。是身相不合不散不來不去不生不滅不依猗。循身觀。是身無我無我所故空。空故無男女等諸相。無相故不作願。如是觀者得入無作智門。知身無作。無作者。但從諸法因緣和合生。是諸因緣作是身者。亦從虛妄顚倒故有。是因緣中亦無因緣相。是因緣生亦無生相。如是思惟知是身從本以來無有生相。知是身無相無可取。無生故無相。無相故無生。但誑凡夫故名爲身。菩薩如是觀身實相時。離諸染欲著。心常繫念在身。循身觀如是名爲菩薩身念處。觀外身觀內外身亦如是。
菩薩云何觀諸受。觀內受是受有三種。若苦若樂若不苦不樂。是諸受無所從來。滅無所至。但從虛誑顚倒妄想生。是報果屬先世業因緣。是菩薩如是求諸受。不在過去不在未來不在現在。知是諸受空無我無我所。無常破壞法。觀是三世諸受空無相無作入解脫門。亦觀諸受生滅。亦知諸受不合不散不生不滅。如是入不生門。知諸受不生故無相。無相故不生。如是知已繫心緣中。若有苦樂不苦不樂來。心不受不著不作依止。如是等因緣觀諸受。是名受念處。觀外受觀內外受亦如是。
菩薩云何觀心念處。菩薩觀內心。是內心有三相。生住滅。作是念是心無所從來。滅亦無所至。但從內外因緣和合生。是心無有定實相。亦無實生住滅。亦不在過去未來現在世中。是心不在內不在外不在中間。是心亦無性無相。亦無生者無使生者。外有種種雜六塵因緣。內有顚倒心相。生滅相續故强名爲心。如是心中實心相不可得。是心性不生不滅。常是淨相客煩惱相著故。名爲不淨心。心不自知。何以故是心心相空故。是心本末無有實法。是心與諸法無合無散。亦無前際後際中際。無色無形無對。但顚倒虛誑生。是心空無我。無我所無常無實。是名隨順心觀。知心相無生。入無生法中。何以故。是心無生無性無相。智者能知。智者雖觀是心生滅相。亦不得實生滅法。不分別垢淨。而得心淸淨。以是心淸淨故。不爲客煩惱所染。如是等觀內心觀外心。觀內外心亦如是。
菩薩云何觀法念處。觀一切法不在內不在外。不在中間。不過去未來。現在世中但從因緣和合妄見生無有實定。無有是法是誰法。諸法中法相不可得。亦無法若合若散。一切法無所有。如虛空。一切法虛誑如幻。諸法性淨不相汚染。諸法無所受。諸受無所有故。諸法無所知。心心數法虛誑故。如是觀時不見有法若一相若異相。觀一切法空無我。是時作是念。一切諸法因緣生故無有自性。是爲實空。實空故無有相。無有相故無作。無作故不見法若生若滅住。是智慧中入無生法忍門。爾時雖觀諸法生滅。亦入無相門。何以故一切法離諸相。智者之所解。如是觀時繫心緣中。隨順諸法相。不念身受心法。知是四法無處所。是爲內法念處。外法念處內外法念處亦如是。四正懃四如意足。亦如是應分別觀空無處所。
云何爲菩薩所行五根。菩薩摩訶薩。觀五根修五根。信根者。信一切法從因緣生顚倒妄見心生如旋火輪如夢如幻。信諸法不淨無常苦無我如病如癰如刺災變敗壞。信諸法無所有如空拳誑小兒。信諸法不在過去不在未來不在現在。無所從來滅無所至。信諸法空無相無作不生不滅。無信相無相而信持戒禪定智慧解脫解脫知見。得是信根故不復退轉。以信根爲首。善住持戒。住持戒已信心不動不轉。一心信。依業果報離諸邪見更不信餘語。但受佛法信衆僧。住實道中直心柔軟能忍。通達無礙不動不壞得力自在。是名信根。
精進根者。晝夜常行精進。除却五蓋攝護五根。
諸深經法欲得欲知欲行欲誦欲讀乃至欲聞。若諸不善惡法起令疾滅。未生者令不生。未生諸善法令生。已生令增廣。亦不惡不善法亦不愛。善法得等精進。直進不轉得正精進。定心故名爲精進根。
念根者。菩薩常一心念。欲具足布施持戒禪定智慧解脫。欲淨身口意業。諸法生滅住異。智中常一心念。一心念苦集盡道。一心念分別根力覺道禪定解脫生滅入出。一心念諸法不生不滅無作無說。爲得無生智慧具足諸佛法故。一心念不令聲聞辟支佛心得入。常念不忘。如是諸法甚深淸淨觀行得故。得如是自在念。是名念根。
定根者菩薩善取定相。能生種種禪定。了了知定門。善知入定善知住定善知出定。於定不著不味不作依止。善知所緣善知壞緣。自在遊戲諸禪定。亦知無緣定不隨他語。不專隨禪定。行自在出入無礙。是名爲定根。
慧根者。菩薩爲盡苦聖智慧成就。是智慧爲離諸法爲涅槃。以智慧觀一切三界無常。爲三衰三毒火所燒觀已於三界中。智慧亦不著。一切三界。轉爲空無相無作解脫門。一心爲求佛法如救頭然。是菩薩智慧無能壞者。於三界無所依。於隨意五欲中心常離。慧根力故。積聚無量功德。於諸法實相。利入無疑無難。於世間無憂。於涅槃無喜。得自在智慧。故名爲慧根。
菩薩得是五根。善知衆生諸根相。知染欲衆生根。知離欲衆生根。知瞋恚衆生根。亦知離瞋恚衆生根。知愚癡衆生根。亦知離愚癡衆生根。知欲墮惡道衆生根。知欲生人中衆生根。知欲生天上衆生根。知鈍衆生根。知利衆生根。知上中下衆生根。知罪衆生根。知無罪衆生根。知逆順衆生根。知常生欲界色界無色界衆生根知厚善根薄善根衆生根。知正定邪定不定衆生根。知輕躁衆生根。知持重衆生根。知慳貪衆生根。知能捨衆生根。知恭敬衆生根。知不恭敬衆生根。知淨戒不淨戒衆生根。知瞋恚忍辱衆生根。知精進懈怠衆生根。知亂心攝心愚癡智慧衆生根。知無畏有畏衆生根。知增上慢不增上慢衆生根。知正道邪道衆生根。知守根不守根衆生根。知求聲聞衆生根。知求辟支佛衆生根。知求佛道衆生根。於知衆生根中。得自在方便力故。名爲知根。
菩薩行是五根增長。能破煩惱度衆生得無生法忍。是名五力。復次天魔外道不能沮壞。是名爲力。
七覺分者。菩薩於一切法不憶不念。是名念覺分。一切法中求索善法不善法無記法不可得。是名擇法覺分。不入三界破壞諸界相。是名精進覺分。於一切作法不生著樂。憂喜相壞故是名喜覺分。於一切法中。除心緣不可得故。是名除覺分。知一切法常定相不亂不定。是名定覺分。於一切法不著不依止。亦不見。是捨心是名捨覺分。菩薩觀七覺分空如是。
問曰。此七覺分何以略說。
答曰。七覺分中。念慧精進定。上已廣說。三覺今當說。菩薩行喜覺分。觀是喜非實。何以故。是喜從因緣生。作法有法無常法可著法。若生著是無常相。變壞則生憂。凡夫人以顚倒故心著。若知諸法實空。是時心悔我則受虛誑。如人闇中飢渴所逼食不淨物。晝日觀知乃覺其非。若如是觀。於實智慧中生喜是爲眞喜。得是眞喜先除身麤。次除心麤。然後除一切法相。得快樂遍身心中。是爲除覺分。旣得喜除捨諸觀行。所謂無常觀苦觀空無我觀生滅觀不生不滅觀有觀無觀非有非無觀。如是等戲論盡捨。何以故。無相無緣無作無戲論常寂滅。是實法相。若不行捨便有諸諍。若以有爲實則以無爲虛。若以無爲實則以有爲虛。若以非有非無爲實。則以有無爲虛。於實愛著於虛恚憎。生憂喜處云何不捨。得如是喜除捨。七覺分則具足滿。
八聖道分者。正見正方便正念正定上已說。正思惟今當說。菩薩於諸法空無所得。住如是正見中觀正思惟相。知一切思惟皆是邪思惟。乃至思惟涅槃思惟佛皆亦如是。何以故。斷一切思惟分別。是名正思惟。諸思惟分別。皆從不實虛誑顚倒故有分別。思惟相皆無。菩薩住如是正思惟中。不見是正是邪。過諸思惟分別。是爲正思惟。一切思惟分別皆悉平等。悉平等故心不著。如是等名爲菩薩正思惟相。
正語者。菩薩知一切語皆從虛妄不實顚倒取相分別生是時菩薩作是念。語中無語相。一切口業滅知諸語實相。是爲正語。是諸語皆無所從來。滅亦無所去。是菩薩行正語法。諸有所語皆住實相中說。以是故諸經說。菩薩住正語中能作淸淨口業。知一切語言眞相。雖有所說不墮邪語。
正業者。菩薩知一切業邪相虛妄無實皆無作相。何以故無有一業可得定相。
問曰。若一切業皆空。云何佛說布施等是善業。殺害等是不善業。餘事動作是無記業。
答曰。諸業中尙無有一。何況有三。何以故。如行時已過則無去業。未至亦無去業。現在去時亦無去業。以是故無去業。
問曰。已過處則應無。未至處亦應無。今去處應是有去。
答曰。今去處亦無去。何以故。除去業今去處不可得。若除去業今去處可得者。是中應有去而不然。除今去處則無去業。除去業則無今去處。是相與共緣故。不得但言今去處有去。復次若今去處有去業。離去業應當有今去處。離今去處應當有去業。
問曰。若爾者有何咎。
答曰。一時有二去業故。若有二去業。則有二去者。何以故。除去者則無去。若除去者今去處不可得。無今去處故亦無去者。復次不去者亦不去故無去業。若除去者不去者。更無第三去者。
問曰。不去者不去應爾。去者何以故言不去。
答曰。除去業去者不可得。除去者去業不可得。如是等一切業空。是名正業。諸菩薩入一切諸業平等。不以邪業爲惡。不以正業爲善。無所作不作正業不作邪業。是名實智慧。卽是正業。復次諸法等中無正無邪。如實知諸業。如實知已不造不休。如是智人常有正業無邪業。是名爲菩薩正業。
正命者。一切資生活命之具悉正不邪。住不戲論智中不取正命不捨邪命。亦不住正法中。亦不住邪法中。常住淸淨智中。入平等正命不見命不見非命。行如是實智慧。以是故名正命。若菩薩摩訶薩。能觀是三十七品。得過聲聞辟支佛地。入菩薩位中。漸漸得成一切種智。
'불교 불경 > 대지도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大智度論釋初品中四無量心義四無色定 第三十三 (0) | 2021.02.25 |
---|---|
大智度論釋初品中三三昧四禪義 第三十二 (0) | 2021.02.25 |
大智度論釋般若相義 第三十 (0) | 2021.02.25 |
大智度論釋初品中般若波羅蜜 第二十九 (0) | 2021.02.25 |
大智度論釋初品中禪波羅蜜 第二十八 (0) | 202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