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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_IT_K0549_T_034 URL복사 통합뷰어 014_0841_c_01L대지도론 제34권 014_0841_c_01L大智度論釋初品中見一切佛世界義第五十一之餘卷三十四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송성수 번역/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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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智度論釋初品中信持無三毒義第五十二

52. 초품 중 믿고 지니며[信持] 삼독(三毒)이 없다는 뜻을 풀이함

【經】
“能我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世界中無有婬欲、瞋恚、愚癡,亦無三毒之名。一切衆生成就如是智慧,善施、善戒、善定、善梵行、善不嬈衆生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 세계 안에는 음욕(婬欲)과 성냄[瞋恚]과 어리석음[愚癡]이 없고 또한 3독(毒)이라는 이름이 없으며, 온갖 중생들은 이 같은 지혜(智慧)를 성취하여 잘 보시하고 잘 계율을 지니고 잘 선정을 닦고 잘 범행(梵行)에 머무르며 잘 중생이 번거롭지 않게 하겠노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問曰:若世界無三毒、亦無三毒名者,佛爲何等故出生其國?

【문】 만일 세계에 3독이 없고 또한 3독이란 이름조차도 없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엇 하시려고 그 나라에 나오시겠는가

答曰:貪欲、瞋恚、愚癡名爲三不善根,是欲界繫法。佛若說貪欲、瞋恚、愚癡,是欲界繫不善;若說染愛、無明,是則通三界。

【답】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일컬어 3불선근(不善根)이라 하니, 이것은 욕계에 매인 법[欲界繋法]이다. 부처님께서 만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씀하면 이것은 욕계에 매인 불선(不善)이 되고, 만일 염애(染愛)와 무명(無明)을 말씀하면 이것은 삼계(三界)에 다 통한다.

有佛世界純諸欲人,爲是衆生故,菩薩願言:“我成佛時,國無三毒及三毒之名。”復有淸淨佛國,純阿鞞跋致、法性生身菩薩,無諸煩惱,唯有餘習,是故言“無三毒之名”。

어떤 부처님의 세계는 순전히 욕망 있는 사람들뿐이라 이런 중생들 때문에 보살은 원하기를 “내가 성불할 때의 나라에는 3독과 3독이라는 이름조차도 없으리라”고 한다. 또한 청정한 불국토가 있어서 그곳에는 순전히 아비발치(阿鞞跋致)의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보살뿐이라 모든 번뇌가 없고 오직 몸에 밴 기운[習氣]만이 남아 있나니, 이 때문에 “3독이라는 이름조차도 없다”고 한다.

若有人言:如菩薩願言“我當度一切衆生”,而衆生實不盡度;此亦如是,欲令世界無三毒之名,亦應實有三毒不盡。若無三毒,何用佛爲?如地無大闇,則不須日照。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보살은 원하면서 ‘나는 온갖 중생들을 제도하리라’고 말하지만 중생은 실로 다 제도되지 못하듯이 역시 그와 같아서 세계로 하여금 3독이란 이름이 없게 하려 하지만 역시 실은 3독이 있으면서 다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3독이 없다면 부처님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마치 땅에 어두움이 없다면 해의 조명(照明)이 필요 없는 것과 같다”고 한다.

如經所說:“若無三法則佛不出世,若三法不斷則不得離老、病、死。”“三法”者則是三毒,如『三法經』,此中應廣說。

마치 경에서의 말씀과 같아서, “만일 세 가지 법이 없다면 부처님께서는 세간에 나오시지 않으셨으니, 만일 세 가지 법을 끊지 않으면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여읠 수 없으리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법은 바로 3독이니, 마치 『삼법경(三法經)』에서와 같이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해야겠다.

復次,有世界,衆生分別諸法是善、是不善,是縛、是解等,於一相寂滅法中而生戲論;菩薩以是故願言:“令我世界中衆生不生三毒,知三毒實相卽是涅槃。”

또 어떤 세계에서는 중생들이 모든 법을 분별하면서 “이것은 착하다. 이것은 착하지 않다. 이것은 속박이다. 이것은 해탈이다”라고 하나니, 한 모양[一相]인 고요히 사라진 법[寂滅法] 가운데서 쓸모없는 의론을 내고 있다. 보살은 이 때문에 원하기를 “나의 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3독이 생기지 않게 하고 3독의 실상(實相)이 바로 열반임을 알게 하겠노라”고 하는 것이다.

問曰:一切衆生得如是智慧,是何等智慧?

【문】 온갖 중생이 이와 같은 지혜를 얻는다 하셨는데 이것은 어떠한 지혜인가?

答曰:智慧是世閒正見。世閒正見中,說有布施、有罪福、有今世後世、有阿羅漢。信罪福故,能善布施。信有阿羅漢故,能善持戒、善禪定、善梵行。得正見力故,能善不嬈衆生。世閒正見是無漏智慧根本,以是故說“國中無三毒之名”。

【답】 지혜란 바로 세간의 바른 소견[正見]이다. 세간의 바른 소견 가운데는 “보시가 있고 죄와 복이 있으며, 이 세상과 뒷세상이 있고 아라한이 있다”고 말한다.
죄와 복을 믿기 때문에 잘 보시할 수 있고, 아라한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계율을 잘 지닌다. 선정을 잘 닦고 범행(梵行)에 머무를 수 있으며 바른 소견의 힘을 얻기 때문에 중생을 번거롭지 않게 할 수 있나니, 세간의 바른 소견이 바로 무루(無漏)의 지혜의 근본이다. 이 때문에 “나라 안에 3독이라는 이름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貪欲有二種:一者、邪貪欲,二者、貪欲。瞋恚有二種:一者、邪瞋恚,二者、瞋恚。愚癡有二種:一者、邪見愚癡,二者、愚癡。是三種邪毒衆生難可化度,餘三易度。“無三毒名”者,無邪三毒之名。“善布施”等五事,如上」放光品」中說

탐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삿된 탐욕이고, 둘째는 보통의 탐욕이다. 성을 냄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삿되게 성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그냥 성을 내는 것이다. 어리석음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삿된 소견으로 어리석은 것이고, 둘째는 그냥 어리석은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삿된 독이 있는 중생은 제도하기가 어렵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제도하기 쉽다. 3독의 이름이 없다 함은 이 삿된 3독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잘 보시하는[善布施] 등의 다섯 가지의 일은 위의 「방광품(放光品)」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經】

“使我般涅槃後,法無滅盡,亦無滅盡之名,當學般若波羅蜜。

【經】 “내가 열반한 뒤에 법으로 하여금 소멸하여 다함[滅盡]이 없게 하고 또한 소멸하여 다한다는 말조차 없게 하리라”고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問曰:佛爲法王尚自滅度,云何言“法無滅盡”?

【論】 【문】 부처님께서는 법왕(法王)이 되셔서도 오히려 스스로 멸도(滅度)하셨는데 어떻게 법을 소멸하여 다함이 없게 한다 하셨는가?

答曰:如上說,是菩薩願事不必實。一切有爲法,從因緣和合生,云何常住而不滅?佛如日明,法如日沒餘光,云何日沒而餘光不滅?但久住故,無能見滅者,故名不滅。

【답】 위의 설명과 같아서, 이것은 보살이 소원하는 일이지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 온갖 유위(有爲)의 법은 인연화합에서 생기는데 어떻게 항상 머무르면서 소멸하지 않겠는가. 부처님은 마치 해의 광명과 같고 법은 마치 해가 질 때의 남은 빛과 같은데 어떻게 해가 졌는데도 남은 빛이 소멸하지 않겠는가. 다만 오래도록 머무르는 까닭에 소멸하는 것을 보는 자가 없으니,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할 뿐이다.

復次,是菩薩見諸佛法住有多有少,如迦葉佛法住七日,如釋迦牟尼佛法住千歲;是故菩薩發是願言:“法雖有爲,願令相續不滅;如火得薪,相傳不絕。”

또 이 보살은 모든 불법의 머무름이 오래함도 있고 짧음도 있음을 본다. 가섭부처님[迦葉佛]의 법은 7일 동안 머물렀고,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은 천 년 동안 머무른다. 이 때문에 보살은 이러한 원을 세우기를 “법은 비록 유위일지라도 원컨대 서로 이어져 소멸하지 않음이 마치 불이 섶을 만나서 서로 전하며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이다.

復次,諸法實相名爲佛法。是實法相,不生不滅、不斷不常、不一不異、不來不去、不受不動、不著不依、無所有,如涅槃相。法相如是,云何有滅?통합뷰어

또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일컬어 불법이라 한다. 이 실상의 법 모양은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는다.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받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붙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아서 있는 바가 없으니, 마치 열반의 모양과 같다. 법의 모양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소멸함이 있겠는가.

問曰:法相如是者,一切佛法皆應不滅!

【문】 법의 모양이 그와 같다면 온갖 부처님 법도 모두 소멸하지 않아야 하리라.

荅曰:如所言,諸法實相無有滅者。有人憶想分別取諸法相、壞實法相,用二法說,是故有滅;實相法中無有滅也。

【답】 말한 바대로 모든 법의 실상에서는 소멸하는 것이 없거니와 어떤 사람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모든 법의 모양을 취하고 진실한 법의 모양을 무너뜨려 두 가지의 법으로써 설명한다. 이 때문에 소멸함이 있다는 것이지 실상의 법 안에서는 소멸하는 것이 없다.

復次,行般若波羅蜜無㝵法、集無量功德故,隨其本願,法法相續,無有見其滅者;譬如仰射虛空,箭去極遠,人雖不見,要必當墮。

또 반야바라밀의 장애 없는 법을 행하여 장애 없는 법으로 한량없는 공덕을 쌓기 때문에 그 본래의 서원에 따라 법과 법이 서로 이어지면서 그 소멸함을 보는 일이 없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을 보고 활을 쏘면 화살이 극히 멀리 날아가므로 사람이 비록 보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것과 같다.

【經】

“‘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十方如恒河沙等世界中衆生聞我名者,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欲得如是等功德者,當學般若波羅蜜。”통합뷰어

【經】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 안에 있는 중생으로서 나의 이름을 듣는 이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리라”고 하는 등의 이와 같은 공덕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論】問曰:有人生値佛世,在佛法中,或墮地獄者,如提婆達、俱迦利、訶多釋子等,三不善法覆心故墮地獄。此中云何言“去佛如恒河沙等世界,但聞佛名便得道”耶?

【論】 【문】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 부처님 법 안에 있으면서도 혹은 지옥에 떨어지는 이도 있었다. 마치 제바달(提婆達)과 구가리가(俱迦利訶) 같은 이들과 많은 석가의 제자들은 세 가지의 착하지 않은 법[三不善法]에 마음이 가려졌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어찌하여 부처님과의 거리가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서 다만 부처님의 이름만을 듣고 곧 도를 얻는다고 말씀하는가?

上已說有二種佛:一者、法性生身佛,二者、隨衆生優劣現化佛。爲法性生身佛故,說“乃至聞名得度”;爲隨衆生現身佛故,說“雖共佛住,隨業因緣有墮地獄者”。

【답】 위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두 가지의 부처님이 계신다. 첫째는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부처님이고, 둘째는 중생의 우열(優劣)에 따라 변화로 나타나는 부처님이다. 법성생신의 부처님 편에서 말하면 이름을 들어도 도를 얻는다고 하며, 중생을 좇아 몸을 나타내는 부처님 편에서 말하면 비록 부처님과 함께 머무른다 하더라도 업의 인연에 따라 지옥에 떨어진 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答曰:法性生身佛者,無事不濟、無願不滿。所以者何?於無量阿僧祇劫積集一切善本功德,一切智慧無㝵具足,爲衆聖主,諸天及大菩薩希能見者。

법성생신의 부처님이라 하면 일마다 구제하지 않으심이 없고 소원마다 만족시키지 않으심이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온갖 선의 근본[善本]과 공덕을 쌓아 온갖 지혜가 막힘이 없이 구족하므로 뭇 성주(聖主)와 모든 하늘과 큰 보살들에게는 쉽게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譬如如意寶珠難見、難得,若有見者,所願必果。如喜見藥,其有見者,衆患悉除。如轉輪聖王,人有見者,無不富足。

비유하건대 마치 여의보주(如意寶珠)는 보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려우나 만일 어떤 이라도 보게 되면 소원을 반드시 이루는 것과 같고, 희견약(喜見藥)은 그 어떤 이라도 보기만 하면 뭇 질환이 다 낫는 것과 같으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사람들이 만나면 모두가 풍족해지는 것과 같다.

如釋提桓因,有人見者,隨願悉得。如梵天王,衆生依附,恐怖悉除。如人念觀世音菩薩名者,悉脫厄難。是事尚爾,何況諸佛法性生身!

또 마치 석제환인(釋提桓因)을 만나게 되면 원하는 대로 모두 얻는 것과 같고, 범천왕(梵天王)을 중생이 의지하게 되면 두려움이 모두 없어지는 것과 같으며, 관세음(觀世音)보살의 명호를 염(念)하면 모두가 액난(厄難)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이런 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모든 부처님의 법성생신이겠는가?

問曰:釋迦文佛亦是法性生身分,無有異體;何以故佛在世時,有作五逆罪人、飢餓、賊盜如是等惡?

【문】 석가모니부처님도 역시 법성생신의 분신[分]이요 다른 몸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5역죄(逆罪)를 지은 사람이 있었고 굶주림이나 도둑질 등 이러한 악(惡)을 짓는 자가 있었는가?

答曰:釋迦文佛本誓:“我出惡世,欲以道法度脫衆生,不爲富貴世樂故出。”若佛以力與之則無事不能。

【답】 석가모니부처님의 본래의 서원이 “나는 나쁜 세상에 가 나서 도법(道法)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하신 것이요 부귀나 세간의 쾌락을 위하여 나오신 것이 아니다. 만일 부처님의 힘으로써 그들에게 주신다 하면 일마다 할 수 없는 것이 없겠으나 또한 이 중생들은 복덕의 힘이 박(薄)하고 죄의 때[垢]가 깊고 중하기 때문에 뜻대로 제도되지 못하는 것이다.

又亦是衆生福德力薄、罪垢深重故,不得隨意度脫。又今佛但說淸淨涅槃,而衆生譏論誹謗言:“何以多畜弟子化導人民?此亦是繫縛法。”但以涅槃法化猶尚譏謗,何況雜以世樂!

또 이제 부처님께서는 청정한 열반만을 말씀하시는데도 중생들은 헐뜯고 비방하면서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제자를 많이 기르면서 사람들을 교화해 이끄는가? 이것 역시 결박의 법이다”고 한다. 다만 열반의 법으로써 교화하는데도 오히려 헐뜯고 비방하는데 하물며 세간의 즐거움을 함께함이겠는가.

如提婆達欲令足下有千輻相輪故,以鐵作摸燒而爍之,爍已,足壞,身惱大呼。爾時阿難聞已涕泣白佛:“我兄欲死,願佛哀救!”佛卽伸手就摩其身,發至誠言:“我看羅睺羅與提婆達等者,彼痛當滅。”是時提婆達衆痛卽除.

마치 제바달(提婆達)은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 모양[千幅輪相]이 있게 하려고 쇠에다 본을 떠서 불에 달구어 낙인(烙印)을 찍었는데 찍자마자 발이 문드러지고 온몸이 아픈지라 소리를 내어 크게 울었다. 그때 아난이 그 소리를 듣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의 형이 죽으려 하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서 구제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즉시 손을 펴시면서 그의 몸을 어루만져 주며 정성스런 말씀으로 “내가 라후라(羅睺羅)와 제바달을 평등하게 본다면 그의 고통은 마땅히 소멸하리라”고 하시자 이때 제바달의 뭇 고통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執手觀之,知是佛手,便作是言:“淨飯王子以此醫術足自生活。”佛告阿難:“汝觀提婆達不?用心如是,云何可度?”

그러자, 그는 그 손을 잡고 찬찬히 보다가 부처님의 손임을 알고 말하기를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은 이런 의술로써도 넉넉히 살아가겠구나”라고 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제바달을 보았느냐. 마음씀씀이가 이러한데 어떻게 제도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若好世人則無是咎。如是衆生,若以世樂,不得度也。是事種種因緣上已廣說。以是故說:“聞佛名有得道者,有不得者。”

만일 좋은 세상의 사람들이면 이러한 허물이 없으리니, 이러한 중생에게 만일 세간의 즐거움으로써 하면 제도될 수 없다. 이런 일의 갖가지의 인연들은 위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했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서 도를 얻는 이도 있고 도를 얻지 못하는 이도 있다”고 말한다.

佛身無量阿僧祇種種不同:有佛爲衆生說法令得道者;有佛放無量光明,衆生遇之而得道者;有以神通變化指示其心而得道者.

또 부처님의 몸은 한량없는 아승기이면서 갖가지로 동일하지 않나니, 어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설법을 하시어 도를 얻게 하기도 하고, 어떤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중생들이 그 광명을 만나 도를 얻게 하기도 하며, 어떤 부처님께서는 신통 변화로써 그의 마음에 지시하여 도를 얻게 하기도 한다.復次,

有佛但現色身而得道者;有佛遍身毛孔出衆妙香,衆生聞之而得道者;

有佛以食與衆生令得道者;有佛衆生但念而得道者.

어떤 부처님께서는 다만 육신만을 나타내면서 도를 얻게 하기도 하고 어떤 부처님께서는 온몸의 털구멍에서 뭇 묘한 향기를 풍기어 중생들이 맡게 하면서 도를 얻게 하기도 하며 어떤 부처님께서는 음식을 중생들에게 주면서 도를 얻게 하기도 하고 어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다만 염(念)하기만 하면서 도를 얻게 하기도 한다.

有佛能以一切草木之聲而作佛事令衆生得道者;有佛衆生聞名而得道者,爲是佛故說言:“我作佛時,其聞名者皆令得度。”

어떤 부처님께서는 온갖 풀과 나무의 소리로써 불사(佛事)를 지으면서 중생으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하기도 하고 어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이름만을 듣고서 도를 얻게도 하나니, 이런 이들을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내가 부처가 될 때 그 이름을 듣는 이는 모두 도를 얻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聞名,不但以名便得道也;聞已修道,然後得度。如須達長者,初聞佛名,內心驚喜,詣佛聽法而能得道。

또 이름을 듣는다 하여 다만 이름만을 듣고서 바로 도를 얻는다는 것은 아니요 듣고 나서 도를 닦은 연후에야 도를 얻는 것이다. 마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처음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로 나아가 법을 듣고서야 도를 얻게 된 것과 같다.復次,

又如貰夷羅婆羅門,從鷄泥耶結髮梵志所初聞佛名,心卽驚喜,直詣佛所,聞法得道。

是但說聞名,聞名爲得道因緣,非得道也。

또 마치 세이라(貰夷羅)8) 바라문은 계니야(鷄泥耶)9) 결발범지에게서 처음 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마음속에서 놀라고 기뻐하면서 곧장 부처님께로 나아가 법을 듣고야 도를 얻은 것과 같다. 이것은 다만 이름을 들음을 말하는데, 이름을 듣는다는 것은 도를 얻는 인연이 될 뿐이지 도를 얻는 것은 아니다.

問曰:此經言“聞諸佛名卽時得道”,不言“聞名已修道乃得”。

【문】 이 경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즉시(卽時) 도를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이지 “이름을 듣고 나서 도를 닦아야 비로소 얻는다”고는 말씀하지 않았다.

答曰:今言“卽時”,不言“一心中”;但言更無異事聞之,故言“卽時”。譬如經中說:“修慈心時卽修七覺意。”難者言:“慈三昧,有漏,是緣衆生法,云何得卽時修七覺?”答者言:“從慈起已卽修七覺,更無餘法,故言卽時。

【답】 지금의 “즉시”라는 말은 잠깐 동안[一心中]을 말씀한 것이 아니요 다만 다시는 다른 일이 없이 그 이름을 들음을 말하는 까닭에 “즉시”라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경 가운데서의 말씀과 같아서 “인자한 마음을 닦는 때에 곧 7각의(覺意)를 닦는다”고 함과 같으니, 힐난하는 이는 말하기를 “자삼매(慈三昧)는 유루(有漏)라 이것은 중생의 법을 반연하게 되는데 어떻게 즉시 7각의를 닦을 수 있는가”고 했다. 그러자 대답하는 이가 말하기를 “자(慈)로부터 일어나 곧 7각의를 닦는 것이요, 다시는 그 밖의 다른 법이 없기 때문에 즉시라고 한다”고 하는 것이다.

卽時有二種:一者、同時,二者、雖久,更無異法。卽是心而得修七覺亦名卽時。”

즉시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같은 때[同時]요, 둘째는 조금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다시는 다른 법이 없이 바로 그 마음으로 7각의를 닦게 되면 역시 즉시라고 한다.

復次,有衆生福德淳熟、結使心薄,應當得道,若聞佛名,卽時得道。又復以佛威力故,聞卽得度;譬如熟癰,若無治者,得小因緣而便自潰;亦如熟果,若人無取,微風因緣,便自墮落;

또 어떤 중생은 복덕이 순숙해지고 결사(結使)의 마음이 얇아져 마땅히 도를 얻어야 할 참인데, 만일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즉시 도를 얻게 된다. 또 부처님의 위신력 때문에도 즉시 듣고서는 도를 얻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종기가 완전히 곪았을 때에는 설령 치료해 주지 않더라도 조그만 것이 스치기만 해도 고름이 저절로 터지는 것과 같으며, 또한 다 익은 열매를 사람이 따지 않아도 약한 바람에 저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譬如新淨白㲲易爲受色。爲是人故,說若聞佛名卽時得道。譬如鬼神著人,聞仙人呪名,卽時捨去。

비유하건대 마치 깨끗한 흰 천은 쉬이 염색을 받는 것과 같나니,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만일 부처님의 이름을 들으면 즉시 도를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귀신이 사람에 붙어 있다가 선인의 주문(呪文)이란 이름만을 들어도 즉시 버리고 도망가는 것과 같다.

問曰:過如恒河沙等世界,誰傳此名令彼得聞?

【문】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서 그 누가 이 이름을 전해 주기에 그가 듣게 되는 것인가?

答曰:佛以神力擧身毛孔放無量光明,一一光上皆有寶華,一一華上皆有坐佛,一一諸佛各說妙法以度衆生,又說諸佛名字,以是故聞。如「放光中」說。

【답】 부처님께서 신력으로 온몸의 털구멍에서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시니, 그 낱낱의 광명 위에는 모두가 보배꽃이 있게 되고 그 낱낱의 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다. 그 낱낱의 모든 부처님께서 각각 묘한 법을 설하시면서 중생을 제도하시고, 또한 모든 부처님의 명호를 말씀하므로 이 때문에 듣게 되나니, 마치 방광(放光)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答曰:佛以神力擧身毛孔放無量光明,一一光上皆有寶華,一一華上皆有坐佛,一一諸佛各說妙法以度衆生,又說諸佛名字,以是故聞。如「放光中」說。

또 모든 큰 보살은 본래의 서원 때문에 부처님 법이 없는 곳에 가서 부처님의 명호를 떨치고자 하나니, 이 품(品) 가운데 설명과 같다. 이 때문에 듣게 된다.

復次,諸大菩薩以本願欲至無佛法處稱揚佛名,如此品中說者,是故得聞。復有大功德人從虛空中聞佛名號,如薩陁波崙菩薩。又有從諸天聞,或從樹木音聲中聞,或從夢中。

또 큰 공덕이 있는 사람은 허공 안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듣게 되나니, 마치 살타파륜(薩陀波崙)10)보살과 같다. 또 어떤 이는 모든 하늘들로부터 듣기도 하고 혹은 나무의 음성 속에서 듣기도 하며 혹은 꿈속에서 듣기도 한다.

復次,諸佛有不可思議力故自往語,或以聲告。又如菩薩作願誓度一切衆生,以是故說:“我成佛時,過如恒河沙等世界衆生聞我名皆得成佛。欲得是者,當學般若波羅蜜。”

또 모든 부처님에게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 스스로 가셔서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음성으로써 알려 주시기도 한다. 또 보살 같은 이는 온갖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니, 이 때문에 “내가 성불할 때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지나가서 그 중생들이 나의 이름을 들으면 모두 성불하게 하겠다”고 하며, “이것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問曰:上欲得諸功德及諸所願,是諸事皆是衆行和合所成,何以故但說“當學般若波羅蜜”?

【문】 위에서의 모든 공덕과 모든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한다면, 이 모든 일들은 모두가 뭇 행(行)과 화합하여 이루어지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만 말씀하셨는가?

 

答曰:是經名“般若波羅蜜”,佛欲解說其事,是故品品中皆讚般若波羅蜜。復次,般若波羅蜜是諸佛母,父母之中母功最重,是故佛以般若爲母、般舟三昧爲父。

【답】 이 경의 이름이 바로 波『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을 해설하시고자 품(品)마다 반야바라밀을 모두 찬탄하셨다.
또 반야바라밀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부모 중에는 어머니의 공이 가장 중하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반야를 어머니로 삼고 반주삼매(般舟三昧)를 아버지로 삼으셨다.

三昧唯能攝持亂心令智慧得成,而不能觀諸法實相。般若波羅蜜能遍觀諸法分別實相,無事不達、無事不成;功德大故,名之爲母。以是故,行者雖行六波羅蜜及種種功德和合能具衆願,而但說“當學般若波羅蜜”。

삼매는 오직 산란한 마음을 가다듬어 지혜를 이룰 수 있게 하지만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을 두루 관찰하고 실상을 분별하면서 일마다 통달하지 못함이 없고 일마다 성취하지 못함이 없나니, 이렇게 공덕이 크기 때문에 어머니라 한다.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비록 6바라밀을 행하고 갖가지의 공덕이 화합하여 뭇 서원을 잘 갖추었다 하더라도 다만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만 말씀하는 것이다.

復次,如『般若』後品中說:“若無般若波羅蜜,餘五事不名波羅蜜。”雖普修衆行,亦不能滿具諸願;如種種畫彩,若無膠者,亦不中用。衆生從無始世界中來,雖修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受世閒果報已而復還盡。

또 마치 반야의 후품[般若後品] 중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만일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그 밖의 다섯 가지 일은 바라밀이라고 하지 못한다. 비록 뭇 행을 닦았다 하더라도 모든 서원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한다. 마치 갖가지의 채화(彩畵)에 만일 아교가 없으면 역시 사용하는 데에 맞지 않는 것처럼, 중생은 비롯됨이 없는 세계로부터 비록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一心]ㆍ지혜(智慧)를 닦았다 하더라도 세간의 과보를 받고 나면 도로 다시 끝나버린다.

所以者何?離般若波羅蜜故。今以佛恩,以般若波羅蜜修行六事故得名波羅蜜,成就佛道,使佛佛相續而無窮盡。

그것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을 여의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처님의 은혜로 반야바라밀로써 여섯 가지 일을 수행하는 까닭에 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여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 이으면서 다함이 없게 한다.

復次,菩薩行般若波羅蜜時,普觀諸法皆空,空亦復空,滅諸觀,得無礙般若波羅蜜,以大悲方便力還起諸功德業;此淸淨業因緣故,無願不得。餘功德離般若波羅蜜,無有無㝵智慧,云何言“欲得諸願,當學檀波羅蜜等”?

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법을 두루 관찰하면 모두가 공하고 공한 그것도 역시 공하게 된다. 모든 관(觀)이 소멸하여 막힘없는 반야바라밀을 얻게 되지만 이때 다시 대비(大悲)와 방편의 힘으로써 모든 공덕의 업을 일으키고 이 청정한 업의 인연 때문에 소원마다 얻지 못함이 없게 된다. 그 밖의 다른 공덕이 반야바라밀을 여의면 막힘없는 지혜[無礙智慧]가 없는데 어떻게 “모든 소원을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단(檀)바라밀 등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復次,又以五波羅蜜離般若,不得波羅蜜名字;五波羅蜜如盲,般若波羅蜜如眼;五波羅蜜如坏甁盛水,般若波羅蜜如盛熟甁;五波羅蜜如鳥無兩翼,般若波羅蜜如有翼之鳥。

또 다섯 가지의 바라밀이 반야를 여의면 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다. 다섯 가지 바라밀은 마치 소경과 같고 반야바라밀은 마치 눈과 같으며, 다섯 가지 바라밀은 마치 굽지 않은 병에 물을 담은 것과 같고 반야바라밀은 잘 구어진 병에 물을 담은 것과 같으며, 다섯 가지 바라밀은 마치 새에 두 날개가 없는 것과 같고 반야바라밀은 마치 두 날개를 가진 새와 같다.

如是等種種因緣故,般若波羅蜜能成大事,以是故言:“欲得諸功德及願,當學般若波羅蜜。”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모든 공덕과 소원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大智度論卷第三十四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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