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參請 - 예배하고 법을 물음
時有一僧。名智常。來漕溪山。禮拜和尚。[2]聞四乘法義。
시유일승。명지상。내조계산。례배화상。[2]문사승법의。
그 무렵 지상(智常)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智常[*]聞和尚曰。佛說三乘。 又言最上乘。弟子不解。望為敬示。
지상[*]문화상왈。불설삼승。 우언최상승。제자부해。망위경시。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三乘)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惠能大師曰。
혜능대사왈。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汝自身心見。莫著外法相。元無四乘法。人心不量四等法有四乘。
여자신심견。막저외법상。원무사승법。인심부량사등법유사승。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四乘)이 있을 뿐이다.
見聞讀誦是小乘。悟解義是中乘。
견문독송시소승。오해의시중승。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小乘)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中乘)이며,
[3]衣法修行是大乘。萬法盡通。萬幸俱備。一切無離。但離法相。作無所[4]德是最上乘。
[3]의법수항시대승。만법진통。만행구비。일절무리。단리법상。작무소[4]덕시최상승。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大乘)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은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最上乘)이니라.
乘是最上行。義不在口諍。汝須自修。莫問[*]悟也。
승시최상항。의부재구쟁。여수자수。막문[*]오야。
승(乘)은 최상행이고 뜻이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又有一僧。名神會。南陽人也。至漕溪山禮拜。問言。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神會)라고 하였으며 남양 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和尚座禪見亦不見。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大師起把打神會三下。却問神會。吾打汝痛不痛。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神會答言。亦痛亦不痛。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六祖言曰。吾亦見亦不見。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神會又問。大師何以亦見亦不見。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大師言。吾亦見常見自過患故。云亦見亦不見者。不見天地人過罪。所以亦見亦不也。汝亦痛亦不痛如何。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神會答曰。若不痛即同無情木石。若痛即同凡即起於恨。
신회가 대답했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無情)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大師言。神會向前見不見是兩邊。痛是生滅。汝自性旦不見。敢來弄人禮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앉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生滅)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禮拜更不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大師言。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汝心迷不見。問善知識覓路。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以心悟自見。依法修行。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依法修行).
汝自名不見自心。却來問惠能見否。
여자명부견자심。각래문혜능견부。
吾不自知。代汝迷不得。
오불자지。대여미불득。
汝若自見。代得吾迷。何不自修。問吾見否。
여약자견。대득오미。하불자수。문오견부。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神會作禮。便為門人。不離漕溪山中。常在左右。
신회작례。변위문인。부리조계산중。상재좌우。
신회가 절하고 바로 문인이 되어, 조계 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 머물렀다.
27. 對法 - 상대되는 법
大師遂喚門人法海.志誠.法達.智常.志通.志徹.志道.法珍.法如.神會。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法海), 지성(志誠), 법달(法達), 지상(智常), 지통(志通), 지철(志徹), 지도(志道), 법진(法珍), 법여(法如), 신회(神會) 등을 불렀다.
大師言。汝等拾弟子近前。汝等不同餘人。吾滅度後。汝各為一方頭。吾教汝說法不失本宗。舉科法門動三十六對。出沒即離兩邊。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 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三科)의 법문을 들고, 동용삼십육대(動用三十六對)를 들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說一切法莫離於性相。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性相)을 떠나지 말라. (性相은 본질과 가시적 현상)
若有人問法。出語盡雙。皆取法對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여라.
來去相因。究竟二法盡除。更無去處。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 마저 없게 하라.
三科法門者蔭界入。蔭是五蔭。界十八界。是十二入。
삼과법문(三科法門)이란 음(蔭). 계(界). 입(入)이다. 음(蔭)은 오음(五陰)이요, 계(界)는 십팔계(十八界)요, 입(入)은 십이입(十二入)이니라.
何名五蔭。色蔭受蔭相蔭行蔭識蔭是。
어떤 것을 오음(五陰)이라고 하는가?
색음(色陰)·수음(受蔭)·상음(相蔭)·행음(行蔭)·식음(識蔭)이니라.
何名十八界。六塵六門六識。
어떤 것을 십팔계(十八界)라고 하는가?
육진(六塵)·육문(六門)·육식(六識)이니라.
何名十二入。外六塵中六門。
어떤 것을 십이입(十二入)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六塵)과 안의 육문(六門)이니라.
何名六塵。色聲香[5]未獨法是。
어떤 것을 육진(六塵)이라고 하는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이니라.
何名六門。眼耳鼻舌身意是。
어떤 것을 육문(六門)이라고 하는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이니라.
法性起六識。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六門六塵。自性含萬法。名為含藏識。
법의 성품(法性)이 육식인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고 이름하느니라.
思量即轉識。生六識出六門六塵是。三六十八。
생각을 하면 곧 식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육은 십팔이니라(3*6=18).
由自性邪起十八邪含。自性十八正含。惡用即眾生。善用即佛。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 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正)을 포함하면 열 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用[6]油何等。[*]油自性。
작용은 무엇들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對外境無情對有五。天與地對。日與月對。暗與明對。陰與陽對。水與火對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對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相對)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語與言對法與相對有十二對。有為無為。有色無色對。有相無相對。有漏無漏對。色與空對。動與淨對。清與濁對。凡與性對。僧與俗對。老與少對。大大與少少對。長與短對。高與下對。
논란하는 말과 직언 하는 말의 대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 두 가지가 있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유색(有色)과 무색(無色)이 상대이며, 유상(有相)과 무상(無相)이 상대이며, 유루(有漏)와 무루(無漏)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空)이 상대이며,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상대이며, 맑음(淸)과 흐림(濁)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老)과 젊음(少)이 상대이며, 큼(大)과 작음(少)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高)과 낮음(下)이 상대이니라.
自性居起用對有十九對。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 아홉 가지가 있다.
邪與正對。癡與惠對。愚與智對。
삿됨과(邪) 바름(正)이 상대요, 어리석음(癡)과 지혜(惠)가 상대이며, 미련함(愚)과 슬기로움(智)이 상대요,
亂與定對。戒與非對。直與[7]典對。
어지러움(亂)과 선정(定)이 상대이며, 계(戒)와 잘못됨(非)이 상대이며, 곧음(直)과 굽음(曲)이 상대이며,
實與虛對。嶮與平對。煩惱與菩提對。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險)과 평탄함(平)이 상대이며, 번뇌(煩惱)와 보리(菩提)가 상대이며,
慈與空對。喜與[8]順對。捨與慳對。
사랑(慈)과 해침(害)이 상대이며, 기쁨(喜)과 성냄(嗔)이 상대이며, 버림(捨)과 아낌(慳)이 상대이며,
進與退對。生與滅對。常與無常對。
나아감(進)과 물러남(退)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함(常)과 덧없음(無常)이 상대이며,
法身與色身對。化身與報身對。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이 상대이며, 화신(化身)과 보신(報身)이 상대이며,
體與用對。性與相有清無親對。
본체(體)와 작용(用)이 상대이며, 성품(性)과 모양(相)이 상대이니라.
言語與法相有十二對。
유정·무정의 대법인 어(語)·언(言)과 법(法)·상(相)에 열 두 가지 대법이 있고
內外境有無五對。三身有三對。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데
都合成三十六對法也。此三十六對法。
열 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 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解用通一切經。出入即離兩邊。
이 삼십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如何自性起用
어떻게 자성이 기용하는가?
三十六對。共人言語。出外於[9]離相。入內於空離空。著空即惟長無[10]名。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相離相),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에서 공을 떠나나니(空離空) 공(空)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相)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르느니라.
著相惟邪見謗法。直言不用文字。既云不用文字。[11]大不合言語言語即是文字。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은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自性上說空。正語言本性不空迷自惑。語言除故。
자성에 대해서 공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暗不自暗。以[*]名故暗。暗不自暗。以[*]名變暗。以暗現明。來去相因。三十六對亦復如是。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 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다.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大師言。十弟子。
대사께서 열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已後傳法迎相教授一卷檀經。不失本宗。不稟授壇經。非我宗旨。如今得了。迎代流行。得遇壇經者。如見吾親授。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라."
拾僧得教授已。寫為檀經。迎代流行。得者必當見性。
열 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28. 眞假 - 참됨과 거짓
大師先天二年八月三日滅度。七月八日喚門人告別。大師天無年於[木*蕇]州國恩寺造塔。至先天二年七月告別。
대사께서는 선천(先天) 이년 팔월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 일에 문인들을 불러 고별하시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國恩寺)에 탑을 만들고 선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셨다.
大師言。汝眾近前。[12]五至八月欲離世間。汝等有疑早問。為外破疑。當令迷者盡使與安樂。吾若去後無人教與。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의심을 부수어 마땅히 미혹을 다 없애어 너희들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리라."
法海等眾僧聞已涕淚悲泣。唯有神會。不動亦不悲泣。六祖言。
법해(法海)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神會小僧却得善等毀譽不動。[13]除者不得。數年山中更修何道。汝今悲泣。更有阿誰。憂吾不知去處在。若不知去處。終不別汝。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다면 여러 해 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내가 모른다고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汝等悲泣即不知吾處。若知去處即不悲泣。性聽無生無滅無去無來。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汝等盡座。吾與如一偈真假動淨偈。與等盡誦。取見此偈意汝吾同。於此修行不失宗旨。僧眾禮拜。請大師留偈。敬心受持偈曰。
너희들은 다 앉거라. 내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노니,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이다. 너희들이 다 외어 이 게송의 뜻을 알면 너희는 나와 더불어 같을 것이다.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종지를 잃지 말라." 스님들이 예배하고 대사께 게송 남기시기를 청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가졌다.
게송에 말씀하셨다.
一切無有真 不以見於真
若見[1]衣真者 是見盡非真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若能自有真 離假即心真
自心不離假 無真何處真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假)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假)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有性即解動 無性即不動
若修不動行 同無情不動
유정(有情)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無情)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는 행(不動行)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若見真不動 動上有不動
不動是不動 無情無佛眾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能善分別相 第一義不動
若悟作此見 則是真如用
능히 모양(相)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씀(用)이니라.
報諸學道者 努力須用意
莫於大乘門 却執生死智
모든 도를 배우는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用意)
대승(大乘)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前頭人相應 即共論佛語
若實不相應 合掌令勸善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존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此教本無諍 無諍失道意
執迷諍法門 自性入生死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道)의 뜻을 잃으리오.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29. 傳偈 - 게송을 전함
眾僧既聞識大師意。更不敢諍。依法修行。
대중스님들은 다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았으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아니하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一時禮拜。即之大師不求住世。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上座法海向前言。
상좌인 법해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大師。大師去後。衣法當付何人。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뒤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게 부촉하시겠습니까?"
大師言。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法即付了。汝不須問。
"법은 전하여 마쳤으니 너희는 모름지기 묻지 말라.
吾滅後二十餘年。邪法遼亂。惑我宗旨。
내가 떠난 뒤 이십여 년에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宗旨)를 혼란케 할 것이다.
有人出來。不惜身命。弟佛教是非。竪立宗旨。即是吾正法。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다.
衣不合[2]轉。汝不信。吾與誦先代五祖傳衣付法誦。
그러므로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들을 외어 주리라.
若據第一祖達摩頌意。即不合傳衣。聽[3]五與汝頌。。
만약 제일조 달마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리라."
頌曰。
게송에 말씀하셨다.
第一祖達摩和尚頌曰。
"제일조 달마화상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吾本來唐國 傳教救迷情
一花開五葉 結菓自然成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第二祖惠可和尚頌曰。
제2조 혜가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本來緣有地 從地種花生
當本願無地 花從何處生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第三祖僧璨和尚頌曰。
제3조 승찬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花種雖因地 地上種化生
花種無性生 於地亦無生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第四祖道信和尚頌曰。
제사조 도신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花種有生性 因地種花生
先緣不和合 一切盡無生
꽃씨에 나는 성품 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나지 않는도다.
第五祖弘忍和尚頌曰。
제오조 홍인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有情來下種 無情花即生
無情又無種 心地亦無生
유정(有情)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無情)이 꽃을 피우고
정도 없고(無情) 씨앗도 없나니(無種)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第六祖惠能和尚頌曰。
제육조 혜능의 게송에 말한다.
心地含情種 法雨即花生
自吾花情種 菩提菓自成
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
能大師言。汝等聽。吾作二頌。取達摩和尚頌意。汝迷人依此頌修行。必當見性。第一頌曰。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지은 두 게송을 들어라. 달마스님의 게송의 뜻을 취하였으니 너희 미혹한 사람들은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자성을 보리라." 첫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心地邪花放 五葉逐根隨
共造無明葉 見被葉風吹
마음 땅(心地)에 삿된 꽃이 피니
다섯 잎(五葉)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무명의 업을 지어
업의 바람에 나부낌을 보는도다.
第二頌曰。
둘재 게송에 말씀하셨다.
心地正花放 五葉逐恨隨
共修般若惠 當來佛菩提
마음 땅에 바른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반야의 지혜를 닦으니
장차 오실 부처님의 깨달음이로다.
六祖說偈已了。放眾生散。門人出外思惟。即知大師不久住世。
육조스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시고 대중을 해산시켰다. 밖으로 나온 문인들은 생각하였으니,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다.
30. 傳統 - 법을 전한 계통
六祖後至八月三日食後。大師言。汝等善位座。
[*]五今共與等別。
그 뒤, 육조스님께서는 팔월 초삼일에 이르러 공양 끝에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차례를 따라 앉아라. 내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法海聞言。此頓教法傳受。從上已來至今幾代。
법해가 여쭈었다.
"이 돈교법(頓敎法)의 전수는 옛부터 지금까지 몇 대입니까?"
六祖言。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初傳受七佛釋迦牟尼佛。(第七大迦葉。)
"처음은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되었으니, 석가모니불은 그 일곱째이시다.
第七大迦葉。第八阿難。第九末田地。第十商那和修。
제7代 대가섭은 , 제8代 아난, 제9代 말전지 , 제10代 상나화수
第十一優婆毱多。第十二提多迦。第十三佛陀難提。第十四佛陀密多。第十五脇比丘。
11代 우바국다, 12代 제다가, 13代 불타난제, 14代 불타밀다, 15代 협비구
第十六富那奢。第十七馬鳴。第十八毘羅長者。第十九龍樹。第二十迦那提婆。
16代 부나사, 17代 마명, 18代 비라장자, 19代 용수(龍樹), 20代 가나제바,
第二十一羅睺羅。第二十二僧迦那提。第二十三僧迦那舍。第二十四鳩摩羅馱。第二十五闍耶多。
21 라후라, 제22 승가나제 제23 승가나사, 제24 제이십일, 라후라는 제이십이, 승가나제는 제이십삼, 승가야사는 제이십사, 구마라타는 제이십오, 구마라타, 제25 사야타 ,
第二十六婆修盤多。第二十七摩拏羅。第二十八鶴勒那。第二十九師子比丘。第三十舍那婆斯。
제26 바수반다, 제27 마나라, 제28 학륵나, 제29 사자비구, 제30 사나바사,
第三十一優婆堀。第三十二僧迦羅。第三十三須婆蜜多。第三十四南天[4]竹國王子。第三子菩提達摩。第三十五唐國僧惠可。
제31 , 우바굴, 제32 승가라, 제33, 수바밀다, 제34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 제35 당나라 스님 혜가,
第三十六僧璨。第三十七道信。第三十八弘忍。第三十九惠能自身當今受法第十四。
제36 승찬, 제37 도신, 제38 홍인, 제39 나 혜능이 지금 법을 받은 것은 제14번째이니라."
大師言。今日已後。迎相傳受。須有依約。莫失宗旨。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서로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믿어서 종지를 잃지 말라."
法海又白。大師今去留付何法。今後代人如何見佛。
"법해는 듣기를 바라오며 대대로 유전하여 세세생생에 끊어지지 않게 하리이다."
六祖言。
汝聽。後代迷人。但識眾生即能見佛。若不識眾生覓佛。萬劫不得見也。[*]五今教汝。識眾生見佛。更留見真佛解脫頌。迷即不見佛。悟者即見。法海願聞代代流傳。世世不絕。六祖言。汝聽。吾汝與說。後代世人。若欲覓佛。但識佛心眾生即能識佛即像有眾。離眾生無佛心。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들어라. 내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리라.
만약 뒷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離衆生無佛心).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 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
迷即佛眾生 悟即眾生佛
愚癡佛眾生 智惠眾生佛
心劍佛眾生 平等眾生佛
一生心若劍 佛在眾生中
一念吾若平 即眾生自佛
我心自有佛 自佛是真佛
自若無佛心 向何處求佛
[0344c28] 大師言。汝等門人好住。吾留一頌。名自性真佛解脫頌。後代迷門此頌意。意即見自心自性真佛。焉汝此頌。吾共汝別。頌曰。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문인들은 잘 있거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기리니 '자성진불해탈송(自性眞佛解脫頌)'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뒷세상에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으면 곧 자기의 마음, 자기 성품의 참 부처를 보리라. 너희에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 너희와 작별하리라." 게송을 말씀하셨다.
真如淨性是真佛 邪見三毒是真[1]摩
邪見之人[*]摩在舍 正見知人佛則過
진여(眞如)의 깨끗한 성품(淨性)이 참 부처(眞佛)요
삿된 견해의 삼독(三毒)이 곧 참 마군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가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性眾邪見三毒生 即是[*]摩王來住舍
正見忽則三毒生 [*]摩變成佛真無假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化身報身及淨身 三身無本是一身
若向身中覓自見 即是[2]佛菩提因
화신(化身)과 보신(報身)과 정신(淨身)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찿는다면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성취한 씨앗이니라.
本從花身生淨性 淨性常在花身中
性使花身行正道 當來員漏最真無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성품 나는지라.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婬性本身清淨因 除即婬無淨性身
性中但自離吾欲 見性剎那即是真
음욕의 성품은 본래 몸의 깨끗한 씨앗이니,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이로다.
今生若吾頓教門 悟即眼前見性尊
若欲修行云覓佛 不知何處欲求真
만약 금생에 돈교(頓敎)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도다.
若能身中自有真 有真即是成佛因
自不求真外覓佛 去覓總是大癡人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頓教法者是西流 求度世人須自修
今保世間學道者 不於此是大悠悠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32. 滅道 - 멸도
[0345a18] 大師說偈已了。遂告門人曰。汝等好住。今共汝別。吾去已後。莫作世情悲泣。而受人[3]予門錢帛著孝衣。即非聖法。非我弟子。如吾在日一種。一時端坐。但無動無淨無生無滅無去無來無是無非無住。但然寂淨即是大道。吾去已後。但衣法修行。共吾在日一種。吾若在世。汝違教法。吾住無益。大師云此語已。夜至三更。奄然遷花。大師春秋七十有六。大師滅度。諸日寺內異香氳氳。經數日不散。山用地動。林木變白。日月無光。風雲失色。八月三日滅度。至十一月。迎和尚神座於漕溪山。葬在龍龕之內。白光出現直上衝天旨始散。韶州刺[4]使韋[5]處立碑。至今供養。此壇經。法海上座集。上座無常。付同學道。漈道漈無常。付門人悟真。悟真在嶺南溪漕山法興寺。見今傳受此法。如付山法須德座上恨知心信佛法。立大悲持此經。以為衣承。於今不絕。和尚本是韶州曲江懸人也。如來入涅盤。法教流東土。共傳無住即我心無住。此真菩薩。說真示行。實喻唯教大智人。是旨衣凡度誓修行。修行遭難不退。遇苦能忍。福德深厚。方授此法。如根性不堪林量不得須求此法。違立不德者不得妄付壇經。告諸同道者今諸蜜意。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대사께서 돌아가신 날, 절 안은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여 여러 날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하며 숲의 나무가 희게 변하고 해와 달은 광채가 없고 바람과 구름이 빛을 잃었다.
팔월 삼일에 돌아가시고 동짓달에 이르러 큰스님의 영구를 모시어 조계산에 장사지내니, 용감 속에서 흰 빛이 나타나 곧장 하늘 위로 솟구치다가 이틀 만에 비로소 흩어졌으며, 소주 자사 위거는 비(碑)를 세우고 지금까지 공양하니라.南宗頓教最上大乘壇經法一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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