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0549

 

 

16. 根機 - 근기

16.根機

善知識아 若欲入甚深法界하며 入般若三昧者는 直修般若波羅蜜行이니 但持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하면 即得見性하야 入般若三昧니라. 

"선지식들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法界)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般若三昧)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 권말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當知此人功徳은 無量하야 經中에 分明(名)讃嘆하니 不能具説이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此是最上乘法이니 爲大智上根人説이라 小(少)根智人은 若聞[此]法하면 心不生信하나니 何以故오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서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이 나지 않나니, 무엇 때문인가?

譬如大龍若下大雨雨衣閻浮提如漂草葉若下大雨雨放大海不增不減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閻浮提)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다니듯 하고, 만약 큰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若大乘者聞說金剛經心開悟解故知本性自有般若之智自用知惠觀照不假文字

대승의 사람은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래 성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서 문자를 빌리지 않음을 알라.

譬如其雨水不從無有元是龍王於江海中將身引此水令一切眾生一切草木一切有情無情悉皆[5]像潤諸水眾流却入大海海納眾水合為一體眾生本性般若之智亦復如是

비유컨대, 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과 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少根之人聞說此頓教猶如大地草木根性自少者若被大雨一沃悉皆自到不能增長少根之人亦復如是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頓敎)을 들으면 마치 근성이 작은 대지의 초목이 큰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有般若之智之與大智之人亦無差別因何聞法即不悟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또한 차별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곧 깨치지 못하는가?

緣邪見障重煩惱根深猶如大雲蓋覆於日不得風吹日無能現般若之智亦無大小為一切眾生自有迷心外修覓佛[6]來悟自性

삿된 소견(邪見)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닦아 부처를 찾으므로 자기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即是小根人聞其頓教不信外修但於自心令自本性常起正見煩惱塵勞眾生當時盡悟猶如大海納於眾流小水大水合為一體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頓敎)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正見)를 일으키면 번뇌, 진로(塵勞)의 중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치느니라.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即是見性內外不住來去自由能除執心通達無礙心修此行即與般若波羅蜜經本無差別一切經書及文字小大二乘十二部經皆因[7]因智惠性故故然能建立我若無智人一切萬法本無不有故知萬法本從人興一切經書因人說有緣在人中有愚有智愚為少故智為大人問迷人於智者智人與愚人說法

곧 자성을 보면 안팎에 머물지 아니하며 오고감에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17. 見性 - 견성

一切經書及文字小大二乘十二部經皆因[7]因智惠性故故然能建立我

"모든 경서(經書) 및 문자와 소승(小乘)과 대승(大乘)과 십이부(十二部)의 경전이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나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나를 세운 것이니라.

若無智人一切萬法本無不有故知萬法本從人興一切經書因人說有

만약 내가 없다면 지혜 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緣在人中有愚有智愚為少故智為大人

사람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되느니라.

問迷人於智者智人與愚人說法令使愚者悟解[8]深開迷人若悟心開與大智人無別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故知不悟即是佛是眾生一念若悟即眾生不是佛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故知一切萬法盡在自身心中何不從於自心頓現真如本[]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眞如)의 본성(本性)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菩薩戒經云我本願自[]姓清淨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識心見性自成佛道即時豁然還得本心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18. 頓悟 - 단박에 깨침

善知識我於忍和尚處一聞言下大[9]頓見真如本性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弘忍)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말끝(言下)에 크게 깨쳐 진여(眞如)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頓見眞如本性).

是故汝教法流行後代今學道者頓[10]俉菩提各自觀心令自本性頓悟

이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菩提)를 단박에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치게(頓悟) 하는 것이다.

若能自悟者頓覓大善知識[11]亦道見性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何名大善[12]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解最上乘法直是正路是大善知識是大因緣所為化道令得見佛一切善法皆因大善知識能發起故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因緣)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어나느니라.

三世諸佛十二部經云在人性中本自具有不能自[]姓悟須得善知識示道見性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고 말할지라도, 능히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若自悟者不假外善知識若取外求善知識望得解說無有是處識自心內善知識即得解

만약 스스로 깨친 이라면 밖으로 선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밖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 얻기를 바란다면 옳지 않다.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알면 곧 해탈을 얻느니라.

若自心邪迷妄念顛倒外善知識即有教授汝若不得自悟當起般若觀照剎那間妄念俱滅即是自真正善知識一悟即知佛也

만약 자기의 마음이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觀照)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다.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自性心地以智惠觀照內外[13]名徹識自本心若識本心即是解脫既得解脫即是般若三昧悟般若三昧即是無念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無念)이니라.

何名無念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無念法者見一切法不著一切法遍一切處不著一切處常淨自性使六賊從六門走出於六塵中不離不染來去自由即是般若三昧自在解脫名無念行[14]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 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六賊)로 하여금 여섯 문으로 달려나가게 하나 육진(六塵) 속을 떠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自在解脫)인 무념행(無念行)이라고 이름하느니라.

莫百物不思當令念絕即是法[15]即名邊見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邊見)이라고 하느니라.

悟無念法者萬法盡通悟無念法者見諸佛境界悟無念頓法者至佛位地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돈법(頓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19. 滅罪 - 죄를 없앰

善知識後代得[16]悟法者常見吾法身不離汝左右

"선지식들아, 뒷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나의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

善知識將此頓教法門同見同行發願受持如是佛故終身受持而不退者欲入聖位

선지식들아, 이 돈교(頓敎)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同見同行) 소원을 세워 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然須[17]縛受時從上已來默然而付於法發大誓願不退菩提即須分付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예로부터 말없이 법을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分付)한 것이니라.

若不同見解無有志願在在處處勿妄宣傳損彼前人究竟無益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若遇人不解謾此法門百劫萬劫千生斷佛種性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 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

大師言.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善知識[]悟說無相[1]令汝[2]名者罪滅亦名滅罪頌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을 들어라. 너희 미혹한 사람들의 죄를 없앨 것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滅罪頌)'이라고 하느니라."

 

頌曰

게송에 말씀하셨다.

 愚人修福不修道  謂言修福而[3]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業元來在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三業)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若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無造

 若解向心除罪緣  各自世中真懺悔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요.

만약 마음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懺悔)니라.

 

   若悟大乘真懺[4]  除邪行正造無罪

 學道之人能自觀  即與悟人同一例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大師令傳此頓教  願學之人同一體

 若欲當來覓本身  三毒惡緣心中洗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씻어 버려라.

 

 努力修道莫悠悠  忽然虛度一世休

 若遇大乘頓教法  虔誠合掌志心求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0341a17] 大師說法了韋使君官寮僧眾道俗讚言無盡昔所未聞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韋使君)과 관료와 스님들도 도교인과 속인들의 찬탄하는 말이 끊기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0. 功德 - 공덕

使君禮拜自言

위사군이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和尚說法實不思議弟子當有少疑欲聞和尚望意和尚大慈大悲為弟子說

"큰스님께서 법을 설하심은 실로 부사의 합니다. 제자가 일찍이 조금한 의심이 있어서 큰스님께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큰스님께서는 대자대비로 제자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大師言有議即聞何須再三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의심이 있거든 물으라. 어찌 두 번 세 번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使君聞法可不[5]不是西國第一祖達磨祖師宗旨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宗旨)가 아닙니까?"

大師言是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弟子見說達磨大師[6]代梁武

"제자가 들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7]諦問達磨

朕一生[8]未來造寺布施供養有[9]有功德否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물었다.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功德)이 있습니까?'

達磨答言並無功德

달마대사께서 대답했다.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武帝惆悵遂遣達磨出境未審此言請和尚說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六祖言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實無功德使君[10]朕勿疑達磨大師言武帝著邪道不識正法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使君問何以無功德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和尚言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造寺布施供養只是修福不可將福以為功德在法身非在於福田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고 복밭(福田)에 있지 않으니라.

自法性有功德平直是德佛性外行恭敬若輕一切人[11]悟我不斷即自無功德自性虛妄法身無功德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見性)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德)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內見佛性 外行恭敬).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念念德行平等真心德即不輕常行於敬自修身即功自修身心即德功德自心作福與功德別武帝不識正理非祖大師有過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功)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德)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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