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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능동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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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태장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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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 본관이 안동인 金 權 張氏 3태사의 자녀들끼리는 혼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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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태사묘(安東 太師廟)는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3명의 태사(太師)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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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태사묘(安東 太師廟)는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에 있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3명의 태사(太師)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건국시 후백제 견훤을 토벌한 개국공신 김선평·권행·장정필 등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1540년(중종 35년) 안동부사 김광철(金光轍)이 현위치에 사묘를 건립하였다. 1556년 안동부사로 부임한 권소는 권씨 성을 가진 수석 호장(戶長)에게 관리를 맡겨 매년 제사를 받들게 하는 등 제도화에 힘썼다.
1950년 6·25전쟁 때 전소된 것을 그 후 복원하였다.
부속건물은 보물각과 숭보당, 동·서재, 경모루(敬慕樓), 안묘당, 차전각 등이 있다. 정문 경모루로 누각건물인데, 이곳을 들어서면 전면에 숭보당(강당)이 있고,좌우로 동·서재가 있으며, 그 뒤쪽으로 태사묘(사당)가 있다. 보물각에는 보물 제451호로 지정된 삼태사(三太師)의 유물 12종 22점이 보관되어 있다. 뜰에는 삼공신비(三功臣碑)가 세워져 있다.
김선평(金宣平), 구안동
신라 효공왕 5년 흥덕궁에서 태어났다. 춘추 26세에 고창의 성주가 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지리상 중요한 성에 26세의 젊은 성주였다면 필시 진골이었을 것이니 효공왕의 왕자로 추정된다. 김선평은 권행, 장정필과 함께 고창에서 견훤을 크게 물리쳤고 이에 왕건은 병산전투에서 크게 공을 세운 김선평에게 대광(정1품 품계)의 벼슬을 내렸다. 현재 김선평의 묘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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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일긍(金日兢)은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조에 태사대광(太師大匡)를 역임했다고 한다.
후손 김효인(金孝印)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중서령(中書令)에 추봉되었다.
그의 아들 김방경(金方慶)이 삼별초를 토벌한 공으로 수태위(守太尉)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에 올랐으며, 1283년 삼중대광(三重大匡) 첨의중찬(僉議中贊)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세자사(世子師)로 치사(致仕)하였다.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靖難定遠功臣) 상락공(上洛公)에 봉해지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숭의전(崇義殿)에 배향되었다. 후손들이 김방경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 혹칭 상락 김씨(上洛金氏)라고도 한다.
권행(權幸)
권행은 원래 신라의 종성으로 왕실 성씨인 경주 김씨이다.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자살하게 한 데 대해 분개하던 중 태조 왕건을 도와 고창에서 견훤을 크게 물리쳤다. 일명 병산전투에서 김행의 공을 크게 여긴 왕건은 김행에게 수훈이 크다 하여, 능병기달권 즉, “기미에 밝고 정세를 밝게 판단해 권도에 통달했다”라고 하며 권씨 성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이후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고, 고창군 별장이었던 권행에게 안동부를 식읍으로 주었다. 또한 왕건은 권행에게 장정필과 함께 대상(고려 초기에 둔 16등급 가운데 일곱째 품계)의 벼슬을 내렸다. 현재 권행의 묘는 안동 서후면 성곡동 천등산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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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張貞弼)
장길은 자는 영보, 호는 포음, 시호는 충헌이다. 나중에 정필(貞弼)로 개명하였다. 장길은 장보고 장군의 고손이다. 장보고 장군의 증손이자 장정필의 아버지인 장원은 대사마대장군으로 당의 절강성 소흥부에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아들 장길을 얻었다. 당나라가 혼란해지자 장원은 5살인 장정필을 데리고 강원도 강릉으로 이주하였다. 장길이 18세 때 정조사(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중국에 가던 사신)를 따라 중국에 들어가 24세 때 문과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입산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다.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명성이 천자에까지 알려져, 한때 벼슬이 이부상서에까지 올랐으나, 벼슬을 버리고 우리나라에 다시 들어와 경북 인동의 노전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장정필은 서기 930년 고창 성주인 김선평, 판관(외직무관으로 5품에서 6품) 김행과 함께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의 군대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삼한벽상에 책록되고 삼중대광으로 아부공신에 녹권되어 태사 및 영운사에 오르고 대상(고려 초기에 둔 16등급 가운데 일곱째 품계)의 벼슬을 받았으며 안동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다. 현재 장정필의 묘는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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