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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까지의 설화·소설·전기·야사 등을 모두 채집하라는 칙명(勅命)에 의해 엮어진 전 500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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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송나라 초에 이방 등 12명이 왕명을 받아 엮은『태평광기』를 한글로 번역한 설화집.

내용

필사본.

『태평광기』는 중국 북송(北宋)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에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당나라 이전까지의 설화·소설·전기·야사 등을 모두 채집하라는 칙명(勅命)에 의해 엮어진 전 500권의 방대한 전집으로, 중국 설화·소설의 보고라 불린다.

우리 나라에는 고려 고종 때, 제유(諸儒)의 작이라는 「한림별곡(翰林別曲)」에 이것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수입되어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고, 이후의 우리 나라 설화·고소설 등의 소재로도 『태평광기』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1462년(세조 8)에 성임(成任)이 『태평광기』의 이야기를 순서에 따라 가려 뽑아 50권으로 간추려 엮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이 간행되었다. 이것은 뒤에 다른 이야기들과 합쳐 편찬한 『태평통재(太平通載)』 80권 속에 실려 널리 유포되었다.

『태평광기』는 전집이기 때문에 6,900여 종의 이야기가 유별로 실려 있는데, 이 속에서 순서에 관계없이 자유로 가려 뽑아 언해한 것이 『태평광기언해』이다. 이 언해가 언제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현재 두 종류의 필사본이 있다.

그 하나는 전 5권으로 되어 있는 김일근(金一根) 소장본인데, 그 중 제2권이 낙질이다. 이 언해본은 제1권만 1957년통문관(通文館)에서 영인 출간한 바 있고 1990년에 다시 김일근 교수에 의해 두 종류의 『태평광기언해』가 영인 출간되었다.

이 언해본은 『태평광기』에서 유별이나 순서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가려 뽑아 언해하여 분권하였으므로 원전의 편제와는 전혀 다르다. 제2권의 낙질분을 제외한 네 권에는 모두 106편의 이야기를 싣고 있으며, 제2권의 양을 다른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면 전체는 130여 이야기를 수록한 셈이 된다.

또 다른 언해본은 전 9권의 낙선재본(樂善齋本)이다. 이것은 완질이 현존하며, 9권까지에 총 268편의 이야기가 역시 유별이나 편차에 관계없이 양에 따라 분권,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 언해본은 앞의 전 5권본을 보충하여 추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5권본의 제4권 끝부분과 제5권 전체가 실려 있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이어 추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 5권본이 전해오는 동안에 낙장되고 산일된 것을 수습하여 싣고, 다시 원전에서 이야기를 뽑아 언해하여 추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언해본에 서로 겹친 설화를 제하면 전체 310여 종의 이야기가 언해된 셈인데, 이는 원전 『태평광기』의 약 20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언해에 사용된 어휘와 표기에서 두 본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결레ᄃᆞᆯ→겨레ᄃᆞᆯ이’, ‘동뎡→동졍’, ‘ᄠᅢ예→ᄯᅢ예’, ‘ᄠᅥ나노라→ᄯᅥ나노라’, ‘겨집ᄃᆞᆯ과→겨집들과’ 등으로 낙선재본이 후대에 변경,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용된 어휘로 보아 최초의 언해는 17세기경, 즉 조선 선조 이후 숙종 때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국어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 언해는 원문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직역한 것이 아니라, 앞이나 뒷부분을 줄여 놓은 것도 있고 제목을 바꾼 것도 있으며, 인명만으로 된 원제목에 ‘뎐(傳)’을 붙여 놓은 것도 있는 등 국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낙선재본에는 『태평광기』 속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10여 종이나 언해하여 함께 실어 놓았다. 여기에는 『전등신화(剪燈新話)』·『전등여화(剪燈餘話)』 속의 이야기를 언해한 것도 있고, 우리 나라 필사본 고소설 「매화전」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뉴방삼의뎐’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하고 있다.

어떤 설화는 시대배경을 ‘홍무초(洪武初)’, ‘대명초(大明初)’, ‘원나라 지정간(至正間)’ 등으로 명기한 것도 있어, 창작설화에 가까운 작품을 함께 싣고 있다.

이러한 것은 『태평광기언해』라 하여 언해하는 책의 제목이 분명한 책 속에 다른 작품을 혼입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언해문학 연구의 한 자료가 된다.

저본은 『태평광기』의 초판본인 송판(宋板)이 아니고 명나라 가정 연간에 출간된 명판(明板)으로 확인된다. 저본 『태평광기언해』의 첫 부분은 신선(女仙 포함)관계 설화로 시작하며, 신선 관련 설화가 전체의 20%에 달한다.

그러나 『태평광기언해』는 처음에 ‘뎡덕닌뎐·니공뎐·ᄇᆡ셔뎐·매분아뎐·니탄녀뎐·두목디뎐·신번현령뎐·풍운뎐·최셔ᄉᆡᆼ뎐·최시뎐’ 등으로 시작되는데, 이 10편 속에 신선관련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다. 처음 3편은 운수(運數)관련 설화이고, 다음 3편은 부인과 애정 관계 이야기이며, 나머지 4편은 귀신설화이다.

전 5권본 『태평광기언해』 제1권에 실린 26편 설화 중 마지막 4편만이 신선관련 설화이고, 절반인 13편이 귀신·요괴 관련 설화로 엮어져 있어, 조선시대 사람들의 설화 내용에 대한 관심도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참고문헌

  • 『태평광기언해』(김일근 편,박이정,1990)
  • 『한중소설설화비교연구』(김현룡,일지사,1976)
  • 『영인태평광기언해』(김일근 교설,통문관,1957)
  • 「태평광기언해본고」(김현룡,『문호』 6·7,197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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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7) 제48권 신선(神仙)(3-1)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7)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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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8) 제48권 신선(神仙)(3-2)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8)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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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669) 제48권 신선(神仙)(3-3) 백락천(白樂天)

                                    태평광기(太平廣記)(669)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으로 977년에 편집된 500권의 설화집으로, 태평흥국(太平興國) 3 년(978)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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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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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太平廣記)는 칙명(勅命)에 따라 편집된 총 500권의 중국의 소설집이다.

목차

소개[편집]

≪태평광기≫는 한대(漢代)부터 북송 초에 이르는 소설·필기·야사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해, 7000여 조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한 책이다. 각 고사의 끝에는 채록 출처를 밝혀놓았는데,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웠으며, 그중에서 절반가량은 이미 망실된 것이었으나 ≪태평광기≫에 의거해서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절반가량의 인용서도 ≪태평광기≫에 인용된 해당 고사에 근거해 잘못된 부분을 고증하거나 교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의 일문(佚文)을 보존하고 있는 측면과 고소설의 변화, 발전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볼 때 ≪태평광기≫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내용[편집]

내용은 거리의 소문, 개인의 에피소드, 진기하고도 색다른 이야기 등이 대부분으로서 신선·선녀… 잡전기(雜傳記)·잡록(雜錄) 등으로 모두 92항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신선귀괴(神仙鬼怪)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신선(神仙)>·<여선(女仙)>·<보응(報應)>·<신(神)>·<귀(鬼)>·<요괴(妖怪)> 등의 부류가 다른 부류의 권수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민간풍속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래 지괴(志怪)소설의 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잡전기(雜傳記)>류는 모두 당대(唐代)의 전기(傳奇) 작품을 수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당대 전기에 주로 어떤 종류의 내용이 기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류별로 고사를 배열하는 이러한 체제는 독자들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송대 이전 고소설의 변천과 발전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 책에 근거해서 탐색해 나갈 수 있다.

편자[편집]

편자는 이방(李昉) 외 12명으로 모두가 송대(宋代) 초기의 일류학자이다.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978)에 원고를 완성하여 3년 후에 판을 새겼는데, 후학(後學)에는 그다지 필요한 서적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어서 판본(板本)은 궁중 서고인 태청루(太淸樓)에 보관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송판(宋板)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광기>가 세상에 유포되고 있는 것은 명(明)의 담개(談愷)가 초본을 입수하여 1566년에 교각(校刻) 출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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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이방『태평광기』- 고대 소설의 집대성

김장환(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태평광기』는 어떤 책인가? 고래의 숨은 이야기와 자질구레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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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는 어떤 책인가?

고래의 숨은 이야기와 자질구레한 일, 보기 드문 책과 없어진 문장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그 권질(卷帙)이 적은 것은 종종 전부 수록해 놓았으니, 대개 소설가의 깊은 바다이다. ··· 이 책은 비록 신괴(神怪)를 많이 얘기하고 있지만 채록한 고사가 매우 풍부하고 명물(名物)과 전고(典故)가 그 사이에 섞여 있기에, 문장가들이 늘 인용하는 바이고 고증가들 역시 자료로 삼는 바가 많다. 또한 당(唐) 이전의 책 가운데 세상에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잔결(殘缺)된 서적이 10분의 1이나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므로 더욱 귀중하다.

-청(淸) 기윤(紀昀)의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태평광기(太平廣記)』는 중국 북송(北宋)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978)에 편찬되어 태평흥국 6년(981년)에 판각되었다. 이 책은 한(漢)나라 시대부터 북송(北宋) 초기에 이르는 소설, 필기, 야사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하여 총 500권에 7,000여 조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했다.

 

92개의 각 부류1)에 실려 있는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고, 대부분 인물명을 제목으로 삼았으며, 고사의 끝에는 채록의 출처를 밝혀 놓았다.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운데, 그중에서 절반가량은 이미 망실된 것으로 『태평광기』에 의거해서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절반가량의 인용서도 『태평광기』에 인용된 해당 고사에 근거하여 잘못된 부분을 고증하거나 교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의 일문(佚文)을 보존하고 있는 측면과 고소설의 변화 발전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볼 때 『태평광기』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신선귀괴(神仙鬼怪)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신선(神仙), 여선(女仙), 보응(報應), 신(神), 귀(鬼), 요괴(妖怪) 등의 부류가 다른 부류의 권수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 신의 부류는 조상신, 사당신, 산천신 등에 관한 내용이고, 귀의 부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귀신(도깨비)' 이야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민간풍속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래 지괴(志怪)소설의 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잡전기(雜傳記)」는 모두 당(唐)나라 시대의 전기(傳奇)를 수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당시 어떤 종류의 내용이 주로 기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류별로 고사를 배열하는 이러한 체제는 독자들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송(宋)나라 시대 이전 고소설의 변천과 발전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 책에 근거해서 탐색해 나갈 수 있다.

 

『태평광기』는 각종의 고소설을 많이 모아놓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종교, 민속, 명물, 전고, 문장, 고증 등의 면에서 풍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방면의 연구와 참고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위진남북조와 당나라 때의 사회 상황을 연구할 때에도 이 책에서 많은 유용한 자료를 찾아 낼 수 있다.

 

유서로서의 『태평광기』

『태평광기』의 성격을 규명하는 다양한 논의 가운데 하나는 유서(類書)로 간주하는 것이다. 유서는 각종 자료를 찾아보기 쉽게 주제별로 나누어 편집한 책으로서, 오늘날의 백과사전처럼 필요한 자료나 구절을 찾아보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서는 주로 도구적인 책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유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학문체계인 유가 경전이나 역사서, 철학사상서, 작가들의 문집 안에 적절히 포괄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별로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를 모아놓은 도구서로서 유서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 본다면, 유서는 '도구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서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가지 현상과 사물, 사건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방식과 구조 속에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분류화, 체계화, 개념화한 세계 해석의 방식을 감지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서가 지어졌을 당시의 배경과 목적, 체제 등의 앞뒤 흐름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유서는 중국의 전통 문화구도를 설명하는 중요한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태평광기』는 중국 소설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고대 소설의 보고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고대 소설의 망실된 자료를 집록하고 교감하는 일차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 도구서로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적 차원에서 이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태평광기』라는 유서 그 자체에 주목하면 또 다른 새로운 측면을 볼 수 있다. 괴이한 이야기만을 잔뜩 모아놓은 『태평광기』가 어떻게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편찬이 추진될 수 있었는가? 그것이 다른 유서와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그것의 편찬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는 당시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태평광기』가 편찬될 수 있었던 흐름과 함께 『태평광기』라는 유서가 완성된 이후에 파생되었던 흐름을 아울러 살펴보아야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러한 논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특히 중국 '소설(小說)'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서로서의 『태평광기』는 특히 다른 유서와는 달리 '이야기(故事)'만을 분류 수록함으로써, 반대로 '서사(narrative)'관념을 확정짓고 개념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전에는 사부(史部)나 자부(子部)에 아무렇게나 섞여있었던 '서사'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태평광기』의 서사는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세계 인식과 결부되어 사부에 속할 수 있는 서사와는 다른 종류의 서사, 곧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세계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종류의 '기이한(奇) 이야기'였다. 결국 '이야기'만을 모아 수록한 『태평광기』라는 거대한 유서의 편찬은 '소설'의 인식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는 『태평광기』 편찬 전에 기록되었던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와 『구당서(舊唐書)』 「경적지」의 목록 및 그 이후에 편찬되었던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의 목록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태평광기』에 인용되었던 '기이한 이야기'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사부에 섞여있지 못하고 모두 '소설가류(小說家類)'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의 '소설가'는 이미 『태평광기』이전의 소설가의 관념과는 달라진 것이다. 곧 『태평광기』라는 유서의 편찬은 기이한 이야기를 소설의 범주에 편입시킴으로써 전체 소설의 인식 변화를 유발하는 중대한 전환점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태평광기』의 국내 전래와 유행

『태평광기』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래된 분명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남송(南宋) 때의 문인 왕벽지(王闢之)가 지은 『승수연담록(澠水燕談錄)』을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송 신종(神宗) 원풍(元豊) 3년(1080)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박인량(朴寅亮) 이 『태평광기』에 실려 있는 고사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글을 지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원풍 3년은 고려 문종(文宗) 34년에 해당하며, 『태평광기』가 간행된 때(981년)로부터 100년이 되기 직전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 『태평광기』가 국내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승수연담록』의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일화의 주인공이 박인량이란 점이다. 그는 고려 초기의 문신(文臣)으로 『수이전(殊異傳)』의 편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수이전』은 신라 시대 말에서 고려 시대 초에 간행된 설화집으로, 지금은 망실되어 전체적인 체제와 특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 일문(佚文)이 집록된 상태이다. 현재 『수이전』은 한국 고소설의 성립 시기를, 종래 조선 초의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 나말여초(羅末麗初)로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에는 『수이전』의 성립 문제를 중국의 지괴소설이나 당 전기 등의 영향 관계에서 추정해 보았는데, 이 기록을 통해 『태평광기』와 나말여초의 고소설 성립 문제를 보다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고려 문신 윤포(尹誧)의「태평광기촬요시(太平廣記撮要詩)」(1146), 『한림별곡(翰林別曲)』(1216),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등에 『태평광기』의 서명이나 내용이 계속 나타난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중국 판본이 재차 수입되어 당시 식자층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러나 원서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고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구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세조(世祖) 8년(1462)에 성임(成任)이 원서를 50권으로 축약한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을 간행했으며, 그 후 다른 여러 책에서 채록한 30권 분량의 고사를 합쳐 80권으로 된 『태평통재(太平通載)』를 다시 간행했다. 이를 통해 당시 『태평광기』의 수요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태평광기상절』은 일찍이 망실되었지만 최근까지 50권 중 26권이 발굴되었으며, 『태평통재』도 현재 일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태평광기상절』과 『태평통재』는 여러 차례의 간행을 통해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지만, 어디까지나 한문을 이해할 수 있는 식자층에 국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문을 해독할 수 없는 일반 서민이나 여성 독자들을 위해서는 우리말로 된 번역본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명종(明宗: 1545~1567 재위) 때를 전후해서 나온 것이 바로 『태평광기언해(太平廣記諺解)』이다. 현존하는 언해본으로는 멱남본(覓南本)과 낙선재본(樂善齋本) 두 종류가 있다.

이처럼 『태평광기』는 그 자체로 혹은 『태평광기상절』, 『태평통재』, 『태평광기언해』의 다양한 형태로 조선 시대문인들에게 애독되었고, 그에 따른 영향 또한 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축약본과 언해본에 어떠한 고사들이 선별 수록되었는지를 분석해본다면, 중국소설에 대한 당시 독자들의 독서경향을 알아낼 수 있으며, 이는 곧 국내 고소설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태평광기』의 현대적 수용

고전의 매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새롭게 이해되고 해석되는 데에 있다. 약 천여 년 전에 편찬된 『태평광기』도 지금까지 다양한 독자층을 형성하며 애독되고 있다.

『태평광기』는 작심하고 벼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는 책이 아니다. 불로장생하는 신선 이야기에서부터 기이한 동식물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92개의 큰 부류와 150여 개의 작은 부류에 체계적으로 분류된 7,000여 편의 이야기 중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예를 들어 여우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는 「호(狐)」부류에 실려 있는 80여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 된다. 선진(先秦) 시대부터 송대 초까지의 다양한 여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약 2천 년 동안 변화 발전해온 여우 이야기의 전개과정과 구성 및 묘사기법 등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중국 여우 이야기의 작은 역사'인 셈이다. 특히 사회문화론적 시각에서 문학 작품에 나타난 동물 이미지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요즈음 그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인 여우 이미지의 형성과정을 파악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자료가 된다.

『태평광기』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이야기는 후대 작품의 창작 소재와 제재로 활용될 수 있다. '신혼(神魂)'의 부류에 실려 있는 「왕주(王宙)」- 일명 「이혼기(離魂記)」- 이야기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왕주와 천낭(倩娘)의 사랑을 천낭의 혼을 통하여 이룬다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당대 전기소설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훗날 많은 속작과 개작들을 만들어냈는데, 원ㆍ명ㆍ청나라와 근대를 거치면서 문언소설, 백화소설, 희곡 등으로 새롭게 지어졌으며, 현대에는 『천녀유혼(倩女遊魂)』이라는 영화로 등장했다. 이처럼 『태평광기』에는 현재까지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이 많이 실려있다. 『태평광기』는 더 이상 옛날에 기록된 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천의 얼굴을 한 이야기꾼으로서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태평광기』 가운데 100편의 이야기가 문화 콘텐츠로 개발된 바 있는데, 비교적 완전한 이야기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 중에서 내용이 환상적이고 낭만적이며 주인공의 성격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이야기가 선정되었다. 따라서 신선이나 귀신, 환술과 꿈에 관한 판타지 성향의 이야기가 주로 선정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인간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늘 현재성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지어지고 새롭게 변주될 것이다. 선정된 각 작품에는 개요, 원문, 번역문, 캐릭터 그림, 내용 그래픽 등이 첨부되어 있으며, 원작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시놉시스가 제공된다. 이 사업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문화예술창작자들에게 창작 소재와 제재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태평광기』가 오늘날의 멀티미디어 환경에 수용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2)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태평광기』의 편찬 목적은 무엇인가?

현재 『태평광기』의 편찬 목적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일치되어 있지 않지만 대체로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그 하나는 오대(五代)에서 귀항(歸降)한 여러 제왕과 지식인들을 국가 주도의 대형 편찬사업에 참여시켜 새로운 왕조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으로 오대를 정벌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송 태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이 정치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문교(文敎)와 학술을 장려한다는 정부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편찬했다는 설이다. 아무튼 국가 차원에서 그동안 축적된 지식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2. 『태평광기』 부류 배열의 특징은 무엇인가?

『태평광기』의 부류는 순서대로 도교 관계 이야기, 불교 관계 이야기, 숙명(宿命)에 관한 이야기, 인간사(人間事)에 관한 이야기, 꿈과 환상에 관한 이야기, 귀신과 요괴에 관한 이야기, 죽음과 재생에 관한 이야기, 자연현상에 관한 이야기, 조수초목(鳥獸草木)과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 기타 등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 중에서 도교 관계 이야기에 해당하는 '신선(神仙)', '여선(女仙)', '도술(道術)', '방사(方士)', '이인(異人)'의 부류와 불교 관련 이야기에 해당하는 '이승(異僧)', '석증(釋證)', '보응(報應)'의 부류가 앞에 배열되어 있고 그 분량 또한 134권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나라와 당나라, 오대를 이어 송나라 시대 초기까지 크게 유행했던 도교와 불교의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태평광기』가 우리문학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태평광기』는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로 소설문학에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나라 고소설의 생성과 발달을 촉진시켰다. 특히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 등과 같은 잡록식 패관(稗官) 문학과,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ㆍ「공방전(孔方傳)」, 이규보의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등과 같은 가전체(假傳體)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

『태평광기』(전21권), 이방 외 지음, 김장환 외 옮김, 도서출판 학고방, 2000~2005.

 

각주

1) 각 부류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신선(神仙) 2.여선(女仙) 3.도술(道術) 4.방사(方士) 5.이인(異人)

6.이승(異僧) 7.석증(釋證) 8.보응(報應) 9.징응(徵應) 10.정수(定數)

11.감응(感應) 12.참응(讖應) 13.명현(明賢) 14.염검(廉儉) 15.기의(氣義)

16.지인(知人) 17.정찰(精察) 18.준변(俊辯) 19.유민(幼敏) 20.기량(器量)

21.공거(貢擧) 22.전선(銓選) 23.직관(職官) 24.권행(權倖) 25.장수(將帥)

26.효용(驍勇) 27.호협(豪俠) 28.박물(博物) 29.문장(文章) 30.재명(才名)

31.유행(儒行) 32.악(樂) 33.서(書) 34.화(畵) 35.산술(算術)

36.복서(卜筮) 37.의(醫) 38.상(相) 39.기교(伎巧) 40.박희(博戲)

41.기완(器玩) 42.주(酒) 43.식(食) 44.교우(交友) 45.사치(奢侈)

46.궤사(詭詐) 47.첨녕(諂佞) 48.유오(謬誤) 49.치생(治生) 50.편급(楄急)

51.회해(詼諧) 52.조초(嘲誚) 53.치비(嗤鄙) 54.무뢰(無賴) 55.경박(輕薄)

56.혹포(酷暴) 57.부인(婦人) 58.정감(情感) 59.동복(童僕) 60.몽(夢)

61.무(巫) 62.환술(幻術) 63.요망(妖妄) 64.신(神) 65.귀(鬼)

66.야차(夜叉) 67.신혼(神魂) 68.요괴(妖怪) 69.정괴(精怪) 70.영이(靈異)

71.재생(再生) 72.오전생(悟前生) 73.총묘(塚墓) 74.명기(銘記) 75.뇌(雷)

76.우(雨) 77.산(山) 78.석(石) 79.수(水) 80.보(寶)

81.초목(草木) 82.용(龍) 83.호(虎) 84.축수(畜獸) 85.호(狐)

86.사(蛇) 87.금조(禽鳥) 88.수족(水族) 89.곤충(昆蟲) 90.만이(蠻夷)

91.잡전기(雜傳記) 92.잡록(雜錄)

2) 이 사업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으로 개발되어 그 결과물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chinastory.culturecontent.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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