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ffs--vKRU6g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D%99%94
사화(士禍)는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화를 입는 일을 가리키며, 한국사에서는 특히 조선 중기에 사림 세력이 화를 당한 연산군 때부터 명종 즉위년까지 발생한 5차례의 옥사를 말한다. 이들 사화는 1498년(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1504년(연산군 10년)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년)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4화비숙청사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4대 사화’라고 부른다.
4대 사화
사화발생 연도발생 원인 가해자 피해자
무오사화 | 1498년 | 김종직의 〈조의제문〉 사건 | 유자광, 연산군 | 김종직, 김일손, 김굉필, 권경우, 이목, 허반, 임희재(임사홍 아들), 표연말, 정여창 [홍귀달] |
갑자사화 | 1504년 | 폐비 윤씨 사건, 연산군 왕권 강화 계획 | 연산군 | 윤필상, 이극균, 김굉필 이세좌, 한명회, 귀인 정씨, 엄귀인, 인수대비, 정찬손, 심회, 정안지, 한치형, 이극균, 성준, 조지서, 정성근, 정인인, 이승건, 홍한, 김천령 |
기묘사화 | 1519년 | 조광조의 개혁 정치 반발 | 남곤, 심정, 홍경주, 중종 | 조광조와 그의 추종자들 |
을사사화 | 1545년 | 소윤과 대윤의 권력 싸움 | 소윤 | 윤임,유관, 유인숙, 계림군, 봉성군, 이덕응, 정희, 정욱, 나식 |
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C%98%A4%EC%82%AC%ED%99%94
무오사화(戊午士禍)는 1498년(연산군 4년) 음력 7월 유자광과 연산군이 김일손 등의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한 사화이다. 사건이 일어난 1498년이 무오년이기에 "무오사화"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사초가 원인이 되었다하여 ‘史’(사)자를 넣어 한자로 무오사화(戊午史禍)라고도 표기한다.
https://namu.wiki/w/%EB%AC%B4%EC%98%A4%EC%82%AC%ED%99%94
甲子士禍
1504년(연산 10년) 연산군의 친어머니 폐비 윤씨와 관련되어 많은 선비가 숙청된 사건이다. '사림이 화를 입었다'는 뜻의 사화라는 명칭처럼 사림의 피해는 당연히 있었고 추가로 윤필상, 이세좌, 이극균, 성준 등 화를 당한 훈구 대신들도 많다. 부관참시를 당한 한명회, 한치형, 정창손, 심회 등도 역시 훈구파로 연산군의 폭력성과 잔인성으로 인해 사림과 훈구가 다같이 쓸려 나갔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이 시기를 이후로 연산군의 완전한 흑화가 진행됐다. 무오사화 이후부터 갑자사화 이전까지는 연산군이 사치나 방탕함을 그리 크게 내보이진 않았고 그마저도 소극적으로나마 제동이 걸리긴 했는데, 무오사화로 삼사의 왕권 견제 기능이 약화된 상태에서 갑자사화까지 겹치자 연산군에게 제동을 걸어줄 왕권 견제 기능이 완전히 박살 나면서 연산군의 전제적인 행보를 막을 수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무오사화로 대간들을 약화시키고, 갑자사화로 남은 대간들을 비롯하여 자신과 함께하던 훈구 대신들까지 모조리 쓸어버린 연산군은 거침없이 사치, 방탕, 독재적인 행보를 이어갔고 이는 결국 중종반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B%AC%98%EC%82%AC%ED%99%94
己卯士禍
1519년(중종 14년) 일어난 사화(士禍). 연산군 축출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했던 진보적 사림파들이 다시 한번 정계에서 밀려 나간 사건으로 조광조, 김식, 기준, 김정, 한충 등이 극형을 당했고 나머지 사림들도 대부분 귀양가거나 정계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 밖에 김안국, 김정국 형제, 정광필, 안당 등 이들과 친분 관계가 있던 조정 중신들도 피해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사림의 중앙 정치 진출은 한 세대 밀리게 되었다.
흔히 '주초위왕'이라는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루머로 여겨지며, 실제로는 중종의 친위 쿠데타라고 볼 수 있다.
https://namu.wiki/w/%EC%9D%84%EC%82%AC%EC%82%AC%ED%99%94
乙巳士禍
명종 즉위년(1545)에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1]이 충돌한 끝에 소윤이 승리하여 대윤 일파가 모조리 숙청된 사화(士禍). 을사사화 자체는 대윤, 소윤 대신들 내부의 대결이며 그와 동시에 파평 윤씨 간의 내부의 대결이었지만, 특히 을사사화 이후로 벌어진 사건들에서 대윤에 협력했던 사림들이 피해를 입어서 사화라고 불린다.
훈구파는 세조 등극에 공헌한 계유정난(1453) 공신들과 그들의 파벌인 구공신파(정난공신파)를 시작으로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신공신파,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반정공신파 등이 있다. 신공신파는 남이의 옥사에, 구공신파는 갑자사화에서 결단이 났으며 살아남은 훈구 일부가 반정공신이 되나 그나마도 수명이 다하거나 여러 옥사로 많이 없는 상황이었다. 정순명은 원래 기묘사화를 당한 조광조 일파의 선비였고, 남곤, 심정, 김안로가 그랬듯이 대다수 권신은 사림 출신이 많았다.
조선 붕당의 계보
https://ko.wikipedia.org/wiki/%EB%B6%95%EB%8B%B9
사대사화 | |||||||||||||||||||||||||||||||||||||||||||||||||||||||||||||
훈구파 | 사림파 | ||||||||||||||||||||||||||||||||||||||||||||||||||||||||||||
1575년 동서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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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nb 1] | 동인[nb 2] | ||||||||||||||||||||||||||||||||||||||||||||||||||||||||||||
1589년 기축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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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nb 3] | 북인[nb 4] | ||||||||||||||||||||||||||||||||||||||||||||||||||||||||||||
대북 | 소북 | ||||||||||||||||||||||||||||||||||||||||||||||||||||||||||||
청소북[nb 5] | 탁소북[nb 6] | ||||||||||||||||||||||||||||||||||||||||||||||||||||||||||||
1613년 계축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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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북[nb 7] | 골북[nb 8] | 중북[nb 9] | |||||||||||||||||||||||||||||||||||||||||||||||||||||||||||
1623년 인조반정 |
인조반정 → 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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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파[nb 10] | 청서파[nb 11] | ||||||||||||||||||||||||||||||||||||||||||||||||||||||||||||
낙당[nb 12] | 원당[nb 13] | 산당[nb 14] | 한당[nb 15] | ||||||||||||||||||||||||||||||||||||||||||||||||||||||||||
김자점의 난 → 몰락 |
1674년 갑인예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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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남[nb 16] | 청남[nb 17] | ||||||||||||||||||||||||||||||||||||||||||||||||||||||||||||
1680년 경신환국 |
경신환국 → 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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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nb 18] | 소론[nb 19] | ||||||||||||||||||||||||||||||||||||||||||||||||||||||||||||
1721년 신임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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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론[nb 20] | 준론[nb 21] | ||||||||||||||||||||||||||||||||||||||||||||||||||||||||||||
1727년 정미환국 |
이인좌의 난 → 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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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당[nb 22] | 탕평당[nb 23] | ||||||||||||||||||||||||||||||||||||||||||||||||||||||||||||
1791년 신해박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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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서파[nb 24] | 공서파[nb 25][nb 26] | ||||||||||||||||||||||||||||||||||||||||||||||||||||||||||||
벽파[nb 27] | 시파[nb 28] | ||||||||||||||||||||||||||||||||||||||||||||||||||||||||||||
병인갱화 → 몰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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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nb 29] | |||||||||||||||||||||||||||||||||||||||||||||||||||||||||||||
위정척사파 | 개화파 | ||||||||||||||||||||||||||||||||||||||||||||||||||||||||||||
온건개화파 | 급진개화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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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의겸 - 기호학파(율곡학파, 우계학파)
- ↑ 김효원 - 영남학파(퇴계학파, 남명학파) 및 화담학파.
- ↑ 서인에 대한 보복 반대. 주로 퇴계학파. 류성룡, 이원익 등.
- ↑ 서인에 대한 강경 보복 주장. 주로 남명학파. 이산해, 정인홍 등.
- ↑ 광해군 폐위 반대. 유희분 등.
- ↑ 광해군 폐위와 영창대군 세자옹립 주장. 유영경 등.
- ↑ 광해군의 폐모살제 찬성. 이경전, 이이첨, 허균 등.
- ↑ 광해군의 폐모 반대, 살제는 찬성. 홍여순 등.
- ↑ 광해군의 폐모살제 반대. 유몽인, 곽재우 등.
- ↑ 인조반정 주도세력. 이귀, 김류, 최명길, 심기원 등
- ↑ 반정에 참여치 않은 재야세력. 김상헌 등.
- ↑ 김자점 및 그 추종자들
- ↑ 원두표 및 그 추종자들
- ↑ 김집 및 그 추종자들
- ↑ 김육 및 그 추종자들
- ↑ 예송 이전에 서인과 대충 잘 지낸 세력. 허적, 유혁연, 권대운 등.
- ↑ 서인과 싸운 예송 주도자들. 윤휴, 윤선도, 허목, 심광수 등.
- ↑ 송시열 및 그 추종자들
- ↑ 윤증 및 그 추종자들
- ↑ 영조에게 영합하여 생존함. 박문수 등
- ↑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고 주장. 이인좌, 심유현, 김일경 등
- ↑ 척신정치 반대. 김종수 등.
- ↑ 영조의 탕평책과 척신정치에 영합. 홍봉한, 정후겸, 김상로 등
- ↑ 천주교 박해 반대.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 등.
- ↑ 천주교 박해 주장. 홍의호, 홍낙안 등.
- ↑ 천주교에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안정복, 신후담 등.
- ↑ 사도세자 추숭 반대파. 심환지, 김달순 등
- ↑ 사도세자 추숭 찬성파. 홍국영, 채제공, 김조순, 심상규 등
- ↑ 정순왕후 사망 이후 벽파 세력을 전멸시키고 정권 독점. 김조순, 박종경 등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02080.html
https://www.youtube.com/watch?v=q00Nqu8NN5w
https://www.youtube.com/watch?v=oArWy40vHBA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1/07/05/NT72EV45H5CQPKANM6IZOKTALA/
최근 교육 현장에서 편향된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주제를 다룬 시험 문제와 강연 등이 잇따르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북의 한 고등학교 시험에서 ‘윤석열 X파일’과 ‘이준석 병역 비리’를 예시로 든 서술형 문제가 출제되는가 하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발언이 담긴 영상이 문제가 됐다.
4일 전북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전북 군산의 A고등학교 2학년생 70명이 응시한 도덕 기말고사의 서술형 두 문항이 논란이 됐다. 한 문항은 “교과서 86페이지에 근거해서 ‘최근 정치권에서 나온 윤석열 X파일의 장모와 처, 이준석의 병역 비리 등의 쟁점을 염두에 두며'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근거해 70자 이내로 서술하라”고 돼 있다. 그다음 문제도 같은 예시를 들면서 플라톤의 ‘국가’에 근거해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정리해 쓰도록 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두 문제 모두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가 출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야권 정치인에 대해 사실 관계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예시로 낸 뒤, 공직자의 덕목과 연결하는 문제를 낸 것은 학생들에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021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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