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의 금강산 구례 오산 사성암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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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약사여래 바라보는 도량 / 원효·의상·도선·진각 ‘四聖’ 머물러 - 현대불교신문

해발 530m 기암절벽 유리광전원효 스님 손톱으로 마애불 새겨도선 스님 풍수철학 완성한 곳신라부터 고려까지 선지식 수행처 중생은 아프다. 아프니까 중생이다. 아픈 중생이 가장 간절하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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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에 오르면 구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첩첩 봉우리들과 섬진강의 반짝이는 물길이 절경이다. 구례 10경 중 하나인 사성암은 544년(백제 성왕 22년) 연기 스님이 ‘오산암’으로 문을 열었고, 이후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 네 분의 스님이 머문 후 도량의 현판이 ‘사성암’으로 바뀐다. 어느 도량이나 선지식의 흔적은 있기 마련이지만 사성암의 내력은 그 이야기의 행간에 진한 선지식의 법향이 흐른다. 오십삼선지식을 모신 또 하나의 법당 ‘오십삼불전(五十三佛殿)’도 그 행간의 큰 어미 중 하나일 것이다. 법당엔 현재 서른 세분의 선지식만이 남아있다.

원감국사 <문집>은 “사성암이 있는 오산 정상에는 참선하기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과 진각 스님이 연좌수도 했던 곳이다”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볼 때, 사성암은 통일신라 후기부터 고려까지 많은 선지식이 참선을 위해 머물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도선국사는 이곳 사성암에서 자신의 풍수철학을 완성했다. 스님이 정립한 풍수철학은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한국 풍수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우리 풍수철학의 큰 그늘인 도선 스님은 매일 이곳에서 선정에 들었다. 도선 스님이 찾아내고 머물렀다면 그 자리의 의미는 다름 아닌 ‘여법한 자리’일 것이다. 산왕전 옆에 도선 스님이 참선수행했다는 ‘도선굴’이 있다.

선지식의 눈은 한가지였을까. 원효 스님 역시 이 자리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스님은 기암절벽에 마애불을 남겼다. 사성암 마애약사여래(전남유형문화재 제220호)다. 이렇듯 사성암엔 한 시대의 스승이었던 선지식들의 발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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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해 부처님 품으로 찾아든 소들 - 법보신문

계속된 집중 호우로 호남지역의 사찰들이 피해가 집중되는 가운데 수해를 피해 부처님의 품으로 찾아든 소들이 화제다.8월8일 오후 1시경 전남 구례 사성암(주지 대진 스님)에는 인근 축사를 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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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사성암(四聖庵)

원효ㆍ의상ㆍ도선ㆍ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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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불기(元曉不羈)/ 설총의 이두, 향가 - 삼국유사 14수, 균여전 보현행원품11수

https://www.youtube.com/watch?v=Klnpf8FEDxo https://kydong77.tistory.com/20536 일연, 元曉不羈(삼국유사) & 원효, 발심수행장 (發心修行章) 설총- 이두로 우리말 글쓰기 www.youtube.com/watch?v=sdwC-KQ_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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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 고승전 5-7회/ 부석사,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84%9D%EC%82%AC 부석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대왕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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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고려부터 유행한 풍수지리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호는 연기(烟起)이며 자는 옥룡자(玉龍子) 및 옥룡(玉龍)이다.

원효자장의상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오래된 들의 최초 창건자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이다.[3]

2. 생애[편집]

출가 전 속성은 김씨로 827년에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나 선각국사비에는 태종 무열왕의 서자 가문이라는 추측이 있다고 전한다. 어머니는 강씨. 841년(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846년에 전라남도 곡성군 동리산 태안사 혜철(惠徹) 화상 밑에서 수학했으며 큰 명성을 얻어 신승(神僧)이라고 불렸다.

864년(38세)부터 전라남도 광양군 옥룡사(玉龍寺)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양성하였는데 언제나 제자 수백 명이 모여들어 그의 강론을 들었다고 한다. 어찌나 명성이 높았는지 당시 신라의 임금인 헌강왕이 도선의 명성을 듣고 궁궐로 초빙하여 직접 법문을 들었을 정도였다.

도선대사는 승려로서보다는 한국의 음양풍수설(풍수지리)의 원조이자 대가, <도선비기>로 대표되는 예언가로 유명하다.[4] 도선대사가 예언가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가장 중요한 계기는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했다는 이야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ILdHchvYJU 

 

 

진각국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6104 

 

천희(千熙)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는 설산(雪山). 일명 희(稀). 흥해(興海) 출신. 1319년(충숙왕 6) 출가하여 화엄종 반룡사주(盤龍社主) 일비(一非)를 은사로 득도하였다. 이때 화엄종뿐만 아니라 참선에도 힘써 선지(禪旨)에도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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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사성암(四聖庵)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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