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Rc6Z0gLv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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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 - sillokwiki

조선 초기에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을 언해한 책. 개설 『능엄경언해』는 송(宋)나라 온릉계환(溫陵戒環)이 핵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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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능엄경언해』는 송(宋)나라 온릉계환(溫陵戒環)이 핵심이 되는 부분을 풀이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에 세조(世祖)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책이다. 활자본·목판본의 두 종이 있는데 활자본은 1461년(세조 7)에, 목판본은 1462년(세조 8)에 간행되었다. 목판본은 같은 판목으로 1472년(성종 3)과 1495년(연산군 1)에 다시 간행되었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능엄경』이라고 하는데,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근간으로 하며, 원돈(圓頓)의 가르침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경전이다.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쳐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함께 불교 강원의 사교과(四敎科)를 구성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능엄경』의 주된 내용은 대승 및 소승을 막론할 뿐만 아니라, 현교와 밀교를 포괄하고 있다. 아울러 성리학(性理學)과 사상적 연관성을 갖고 있어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은 물론이고, 유가(儒家)에서도 널리 읽혀졌다.

편찬/발간 경위

세조와 신미(信眉)ㆍ김수온(金守溫) 등의 발문에 의하면, 원래 1449년(세종 31) 세종(世宗)의 명령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 : 세조)이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졌다. 그러다가 1461년(세조 7) 5월 석가모니의 분신사리(分身舍利) 100여 매가 나타나고,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 책과 『영가집(永嘉集)』의 번역을 세조에게 청하자 세조가 번역을 끝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10월 교서관(校書館)에서 을해자(乙亥字)로 400부를 간행하였다고 전한다.

번역은 세조가 손수 한 것이란 뜻에서 뒤의 기록에는 어역(御譯)이라 되어 있으나, 발문에 따르면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이루어졌다. 즉 세조가 구결을 단 후 신미에게 옳고 그름을 따져 밝히게 하여 구두(句讀)를 바르게 하고, 그에 따라 한계희(韓繼禧)ㆍ김수온이 번역을 하였다. 그리고 신미 등의 명승이 그 번역을 교정하고 세조가 확인한 후 확정하였다. 이 밖에 본문을 서로 견주어 고찰하는 것과 예문의 손질, 한자음의 표기 등도 각기 분담했던 것으로 전한다.

서지 사항

10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크기는 세로 37.2㎝, 가로 24.2㎝이다. 지질은 한지로 되어 있다.

활자본·목판본의 두 종이 있는데 활자본은 1461년(세조 7)에, 목판본은 1462년(세조 8)에 간행되었다. 활자본은 급히 서둘러 간행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많았으므로, 이를 수정하여 이듬해인 1462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다시 목판으로 간행하던 것이다. 이 책에는 간경도감 도제조(都提調)인 계양군(桂陽君)의 전문(箋文)과 조조관(雕造官)인 간경도감 도제조 이하 관원의 관직 및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목판본은 같은 판목으로 1472년(성종 3)과 1495년(연산군 1)에 다시 간행되었다.

현재 각 권에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권1은 성암문고(誠庵文庫), 권2는 서울대학교, 권5는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권6은 덴리대학, 권7은 연세대학교, 권8은 동국대학교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권9는 김형규(金亨奎)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권10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이다.

구성/내용

이 책은 세종이 1449년 수양대군에게 번역을 명하였으나, 바로 완성하지 못하였던 것을 1461년(세조 7)에 세조에 의하여 언해가 모두 이루어지고, 같은 해 을해자(乙亥字)와 새로 주조한 한글 활자(을해자 병용 한글자)를 이용하여 인출하였다. 이 때 서둘러 간행한 탓에 본문에 주서(朱書)로 교정 지시를 한 부분이 간간히 보인다. 이러한 교정 지시는 을해자본 『능엄경언해』가 구성이나 내용 등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실제 1462년(세조 8) 간경도감에서는 을해자본 『능엄경』을 교정하여 목판본으로 간행하게 된다.

목판본의 간행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으나, ‘解脫’의 ‘解’자가 『월인석보(月印釋譜)』와 같이 ‘갱’으로 되어 ‘ㅎ항’으로 된 『법화경언해(法華經諺解)』 이후의 책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전문의 연대대로 간행년을 보고 있다. 이 때 잘못된 곳이 있는 활자본은 대부분 거두어서, 붉은 먹으로 교정하거나, 인쇄한 쪽지를 덧붙임으로써 목판본과 통일을 기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남아 있는 활자본의 대부분이 그러한 수정을 보여준다.

활자본 『능엄경언해』의 인쇄에 사용된 을해자는 1455년(세조 1)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글자본으로 하여 만든 동활자이다. 그런데 한글 활자는 이때에 함께 주조되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아미타경언해(阿彌陀經諺解)』와 『능엄경언해』에서 비로소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할 때 1461년에 주조된 것으로 보인다. 을해자 한자 활자에는 대자, 중자, 소자가 있는데, 『능엄경언해』에서 대자는 ‘경 본문’, 중자는 ‘계환의 해’, 소자는 쌍행으로 된 ‘언해문’에 사용되었다. 한글 활자는 구결이나 언해문에서 모두 소자만 사용되었다.

이 책의 활자본은 활자 연구와 현존본의 희소가치 때문에 귀중한 자료로 다루어진다. 목판본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최초의 언해본으로서 간경도감의 다른 언해본에 대하여 책의 형태는 물론, 번역의 양식과 정서법에 걸쳐 규범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번역양식은 철저한 직역인데, 원문에 한글로 구결이 달린 대문(大文)을 먼저 보이고, 이어서 번역을 쌍행으로 싣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문자와 정서법은 구결과 번역문에서 그 차이를 보이는데, 구결 표기에는 방점과 ‘ㅭ’, 각자병서(各自並書)가 나타나지 않는다.

목판본 『능엄경언해』에서는 활자본 『능엄경언해』처럼 언해의 한 글자와 한자음 표시의 한 글자가 크기가 같으나, 그 이후의 간경도감의 다른 불경언해들에서는 한자음 표시의 한 글자가 언해의 한 글자보다 좀 작으며, 행의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

목판본은 1462년에 처음 간행된 이후에 적어도 두 번의 인출이 있었다. 하나는 1472년(성종 3)의 인출로서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 『몽산법어(蒙山法語)』 등에 실린 그 때의 김수온의 발문에서, ‘법화경육십건 능엄경육십건 원각경 이십건(法華經六十件 楞嚴經六十件 圓覺經二十件)’과 같이 인출 서명(書名)과 부수(部數)가 밝혀져 있다. 또 하나는 1495년(연산군 1)의 인출로서 『금강경언해(金剛經諺解)』, 『심경언해(心經諺解)』 등의 학조의 발문에 ‘번역법화경능엄경각오십건(飜譯法華經楞嚴經各五十件)’이라 되어 있다. 그런데 1472년과 1495년에 인출된 『능엄경언해』는 불교 관련 용어의 한자 독음 표시에 약간의 교정이 있었다.

문자와 정서법은 구결과 번역문에서 그 차이를 보이는데, 구결 표기에는 방점과 ‘ㅭ’, 각자병서(各自並書)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번역문에서는 반드시 방점이 나타나고, 받침의 표기에 ‘ㆍ홀띠니’ 등과 같이 받침 ‘ㅭ’이나 ‘ㄹ’과 각자병서가 쓰인다. 그 밖에는 구결과 번역문의 표기가 같은데, 순경음은 잘 쓰이지 않고, 사잇소리가 일반적으로 ‘ㅅ’으로 통일되어 표기된다.

주격형(主格形)의 표기에서는 ‘如來ㅣ, 義ㅣ, 對ㅣ’와 같이 ‘ㅣ’로 끝난 체언에 주격조사 ‘ㅣ’를 쓰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문법구조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번역문에서는 한자마다 『동국정운(東國正韻)』에 따른 독음이 달려 있다. 발문에 의하면 이 독음은 전문가인 조변안(曺變安)과 조지(趙祉)가 달았다고 하며, 후대의 인출본들은 매목(埋木) 또는 인쇄한 글자를 오려붙이는 식으로 한자음 표기가 교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阿難’의 ‘阿’자가 ‘’에서 ‘’로, ‘般若’의 ‘般’자가 ‘반’에서 ‘’로 고쳐져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간경도감의 『법화경언해』ㆍ『금강경언해』 등에서도 완전히 일치되어 나타난다. 다른 언해본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이 책은 간경도감의 다른 언해본에 미친 영향의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풍부한 어휘와 문법 자료를 보이고 있으므로, 중세 국어 연구에 기본적인 문헌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참고] 능엄주(楞嚴呪)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3358

 

능엄주(楞嚴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라고도 한다. 『능엄경 楞嚴經』 제7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총 427구(句)이다. 이 주문은 큰 영험이 있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염송되었다. 모

encykorea.aks.ac.kr

『능엄경』 제7권에 수록된 다라니를 가리키는 불교용어.대불정다라니.
내용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라고도 한다. 『능엄경 楞嚴經』 제7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총 427구(句)이다. 이 주문은 큰 영험이 있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널리 염송되었다.
모든 부처님이 이 주문의 근본을 깨달아서 깨달음을 얻고 마(魔)를 항복받았다고 하며, 이 주문을 근거로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주문을 외우는 중생은 모든 재앙을 물리칠 수 있고 영원히 좋은 곳에 태어나며, 모든 참회가 이루어질 뿐 아니라 마침내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서 부처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 다라니를 8,000번 염송하면 무상정(無想定)에 들어가고, 모든 죄업이 소멸되며, 무량한 공덕을 성취한다고 하였다. 중국 선종에서도 이 주문은 널리 염송되어 당나라 때의 백장(百丈)은 『백장청규 百丈淸規』에서 이 주문을 외울 것을 권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 『백장청규』와 『능엄경』이 전래되어 널리 유통됨에 따라, 교종과 선종이 모두 이 주문을 외우게 되었다. 특히, 이 주문이 깨달음의 경지인 무생법인을 얻게 하는 것이라 하여, 조선시대의 선승(禪僧)들은 저녁에 꼭 1편씩 염송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고, 오늘날에도 선원(禪院)의 수도승 중에는 매일 1편씩 독송하는 이가 많다.
이 주문을 새긴 불정다라니당(佛頂陀羅尼幢)은 평안북도 용천군 읍동면 동부동과 황해도 해주군 영동면 청풍리, 그리고 경기도 개풍군 송도면 원동 등에 남아 있다. 이것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전부 육각형을 취하고 있으며, 높이는 5∼7척 정도이다.

 

美術史學硏究 第309號 2021. 3.  pp. 5-39

https://www.kjah.org/upload/pdf/kjah-309-202103-001.pdf

김 보 민, 고려시대 隨求陀羅尼의 유형과 활용 양상* 

아래의 다라니를 무덤에 넣기도 함.

佛說一切如來普遍光明燄鬘淸淨熾盛思惟如意寶印心無能勝摠持大隨求大陀羅尼

불설일체여래보편광명염만청정치성사유여의보인심무능승총지대수구대타나니

 

https://kydong77.tistory.com/21628

 

正本首楞嚴經(수능엄경) 국역 전10권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cube393&logNo=220020727513 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經 卷 1 [1] 법회에 모인 대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시라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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