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원문

http://buddhism.lib.ntu.edu.tw/BDLM/sutra/chi_pdf/sutra10/T19n094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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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전문

正本首楞嚴經 卷 1 [1] 법회에 모인 대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시라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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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권1


[1] 법회에 모인 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시라벌성의 기환정사(祇桓精舍)에 계실 적에

큰 비구들 1천 2백 50명과 함께 계셨으니

이는 모두 정기가 밖으로 샘이 없는 큰 아라한들이니

부처님의 제자로 불법을 잘 보호해 나가면서 모든 유(有)에서 훌륭하게 초월하였으며

토에서 위의(威儀)를 갖추었으며 부처님을 따라 법륜(法輪)을 굴리어

부처님이 유촉하신 것을 충분히 감당할 만하며 계율을 엄숙하고 청정하게 지켜서

삼계의 큰 모범이 되었고, 응신(應身)이 한량 없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며,

미래의 모든 중생까지 고난에서 구제하여 진루(塵累)에서 벗어나게 하는 분들이다.


그 이름은 큰 지혜를 지닌 사리불과 마하 목건련과

마하 구치라와 부루나미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바니사타 등이 우두머리가 되어

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에 한량 없는 벽지불과 무학(無學)과 아울러 처음 발심한 사람(初心)들까지 여름 결제(夏安居)를 마치고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공손하게 이마를 대어 절하고,

그동안에 잘못이 있는 사람은 모든 대중에게 알리고 참회하였으며,

의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여쭈어 의심을 풀고,

자비로우면서도 엄숙하신 부처님을 흠모하여 비밀한 이치를 들으려고 하였는데

그 때에 여래께서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으시어

거기 모인 여러 대중을 위하여 깊고 오묘한 진리를 말씀해 주시니,

설법하는 자리에 참석한 청정한 대중들이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듣게 되었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소리와 같은 선음(仙音)이 시방세계에 가득하였다.

 

항하강 모래(恒河沙)수와 같이 많은 보살들이 도량에 모여 들었는데 문수사리가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그의 부왕을 위하여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재(齋)를 열고

부처님을 궁중으로 초청하여 자신이 직접 여래를 영접하며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놓고 아울러 여러 큰 보살들도 직접 맞이하였다. 성중에서는 또 다시 장자(長者)와 거사(居士)가 같은 때에 스님들을 공양하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오셔서 공양에 응해 주기를 바라는 이가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명하시어 보살과 아라한들을 나누어 거느리고 가서

여러 재주(齋主)들의 공양에 응하게 하셨다.

오직 아난만은 이보다 앞서 따로 초청을 받고 멀리 갔다가 미처 돌아오지 못해서 승차(僧次)에 참여할 겨를이 없었더니 이미 상좌(上座)와 아사리도 없이 혼자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날 따라 공양이 없었으므로 그때 아난은 바리대를 들고 지나오던 성안에서 차례로

밥을 빌게 되었는데 마음 속으로는 최후의 단월(檀越)을 구하여 재주를 삼으리라 생각하고

깨끗함과 더러움을 묻지 않고 존성(尊姓:귀족)인 찰제리(刹帝利)와 전다라(최하층 계급)에게도

평등한 자비를 베풀어 미천함을 가리지 않았으니,

그 뜻은 일체 중생에게 한량 없는 공덕을 원만히 이루게 하려 함이었다.

 

[2] 악한 인연을 만나게 된 아난

아난이 이미 세존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을 꾸중하실 적에 "아라한이 되고서도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을 알았으며, 여래께서는 마음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거절함이 없으므로 의심과 비방에서 벗어났음을 흠앙(欽仰)하였다. 그래서 성을 지나 성곽의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위의(威儀)를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여 재법(齋法)을 공경하고 신중하게 지키었다.

그때에 아난이 걸식을 하기 위하여 음란한 집을 지나가다가 큰 환술을 하는 마등가라는 여자를 만났는데 그는 사비가라(娑毘迦羅)의 선범천주(先梵天呪)를 외우면서 아난을 음란한 집안으로 끌어들여서 음란한 몸으로 비비고 만지면서 계행을 지키는 아난의 몸을 훼손(毁損)하려 하였다.

여래께서 아난이 음란한 마술에 걸려든 것을 아시고 공양을 마치고는 즉시 돌아오니, 왕과 대신 그리고 장자와 거사가 모두 부처님을 따라와서 법문 듣기를 원하였는데 그 때에 세존께서 정수리에서 백 가지 보배롭고 두려움 없는 광명을 뿜어 내시고, 광명 속에서는 천 개의 잎새로 된 보배로운 연꽃이 생기면서 부처님의 화신(化身)이 가부좌를 하고서 신주(神呪)를 설하셨다.

그리고 문수사리에게 명하여 그 신주를 가지로 가서 아난을 구호하게 하시니 악주(惡呪)가 소멸하므로 아난과 마등가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난이 부처님을 뵈옵고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올리며 슬피울면서 무시(無始)이후로 한결같이 많이 듣는 것만 일삼았고 아직 도력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안스러웠던 것이다.


은근하게 시방의 여래께서 보리를 이루신 오묘한 사마타와 삼마바리, 그리고 선나(禪那)의 최초 방편을 간절히 청하였다. 그때에 또 다시 항하강 모래와 같이 많은 보살과 시방(十方)의 큰 아라한과 벽지불 들이 다 즐겨 듣기를 원하여 물러가 앉아서 묵묵히 거룩한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세존이 대중 가운데에 계시다가 황금빛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삼마지(三摩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大佛頂首楞嚴王)이니 만행(萬行)이 다 갖추어졌나니라. 시방의 여래가 이 유일한 문으로 초출(超出)하신 오묘하고 장엄(莊嚴)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여 들으라."

아난과 대중들이 공경하게 이미를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땅에 엎드린 채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자옵드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너와 나는 동기(同氣)이니 정이 같은 천륜이다. 네가 처음 발심할 적에 나의 법 가운데에서 어떤 거룩한 모양을 보았기에 세상의 깊고 중한 은애를 미련없이 버렸는가?"

 

[3] 마음이 있는 곳을 말씀드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相)이 뛰어나게 미묘함은 아주 특이하며 형체가 마치 맑은 유리처럼 밝게 비침을 보고서 늘 스스로 이러한 모양은 욕애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사오니 왜냐하면 욕기는 더럽고 흐려서 비린내 누린내가 풍겨나고 고름과 피가 뒤섞여서, 그와 같이 뛰어나게 깨끗하고 미묘하게 밝은 자금광(紫金光)의 덩어리를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목마른 때에 물을 찾듯이 우러러보고 부처님을 따라 머리를 깍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됨은 다 항상 머무르는 참 마음의 맑고 밝은 본체는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만 작용한 탓이니, 이 허망한 생각이 참되지 못하므로 나고 죽는 세계에 윤회하나니라."

네가 지금 더할 수 없는 보리(菩提)의 참되고 밝은 성품을 연구하려거든 마땅히 정직한 마음으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시방의 여래가 동일한 도로 생사(生死)에서 벗어난 것이니 이는 모두 정직한 마음 때문이었느니라. 마음과 말이 곧았으므 로 이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지위든 중간에 모든 왜곡된 형상이 영원히 없었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땅히 네가 발심한 것이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호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니 그것을 무엇으로 보았으며 누가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제 마음과 눈 으로 하였습니다. 눈으로 여래의 거룩한 모습을 보옵고 마음에 좋아함이 생겼기 때문에 제가 발심하여 나고 죽는 세계를 버리고자 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과 같아서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마음과 눈으로 인한 것이니 만약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번뇌를 항복받을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국왕이 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고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討伐)할 적에 그 군대가 마땅히 적병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나니라. 너로 하여금 생사의 세계를 윤전케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음과 눈이 어느 곳에 있는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세간에 열 가지 다른 중생들이 다같이 식

별하는 마음을 지녔사온데 그것이 몸 속에 있습니다. 비록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며, 제가 지금 부근(浮根)과 네 가지 대상 물질을 관찰해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인식하는 마음은 실로 몸 속에 있다고 여깁니다."

[4]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뜨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네가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서 기타림(祇陀林)을 보고 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여러 층으로 된 전각 중에 청정한 큰 강당은 급고독원(給孤獨園)에 있고 기타림은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아! 네가 지금 강당 안에서 먼저 무엇이 보이느냐?" "세존이시여! 제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 먼저 여래를 보옵고 다음에 대중을 보오며, 이와 같이 밖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숲과 동산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몸은 강당 안에 있으나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멀리 수풀과 동산을 본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떤 중생이 이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바깥만 보는 자가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이시여! 강당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숲과 동산만을 본다고 함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난아! 너도 이와 같나니라. 너의 신령스런 마음이 일체를 분명하게 아나니, 만약 너의 그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사실 몸안에 있다면 그때에 먼저 마땅히 몸 속의 것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중생이 먼저 몸 속을 보고난 다음에 밖의 물건을 본다더냐? 비록 손톱이 자라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것을 볼 수 없으나 오장 육부(五臟六腑)쯤은 진실로 밝게 알아야 된텐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반드시 몸 속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밖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여래의 이러한 법음(法音)을 듣자옵고 제 마음이 실로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오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안에 등불을 켜 놓으면 그 등불이 반드시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난 뒤에 방문을 통하여 뜰과 마당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의 중생들이 몸 속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이 방 밖에 있어서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치가 너무도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어 부처님의 뚜렷한 이치와 같으리니 잘못된 생각은 아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이 모든 비구들이 마침 나를 따라 시라벌성에서 단식(團食)을 차례로 빌어 가지고 기타림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공양을 마쳤지만[宿劑] 너는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을 때에 여러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오면 이 모든 비구들이 비록 아라한이오나 몸과 생명이 같지 아니한데 어떻게 한 사람이 여럿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5] 밖에 있지 않음을 깨뜨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고 하는 마음이 정말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달라서 자연히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달음이 몸에 있다면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도라면같은 손을 너에게 보이노니 너의 눈으로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냐 못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분별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안다면 어떻게 몸 밖에 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안을 보지 못하기 때

문에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서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지금 생각해 보건대 숨어있는 한 곳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한 곳이라는 것이 어디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또렷하게 아는 마음이 이미 안은 알지 못하고 능히 밖은 볼 수 있으니 저의 생각 같아서는 눈 속에 숨어 있는 듯 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 그릇을 가져다가 눈에 댄 것과 같아서 비록 물건에 가리워 졌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고 그 눈이 보는대로 따라서 곧 분별하나니 그렇다면 저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눈 속에 있기 때문이고 분명하게 밖을 보는데도 장애가 없는 것은 눈이 맑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눈 속에 숨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것과 같다면 저 유리를 눈에 댄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산과 강을 볼 적에 유리를 보느냐 못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진실로 유리가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 마음이 만약 눈에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마땅히 산과 강을 볼 적에 어찌하여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곧 대상이 되는 물체와 같아서 눈이 보는 대를 따라서 분별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고, 만약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 를 댄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음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6] 깨뜨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중생들의 몸이 장부(臟腑)는 속에 있고 구멍은 밖에 있으니 장부는 어둡고 구멍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대하여 눈을 뜨고 밝음을 보는 것은 밖을 본다고 하고, 눈을 감고 어두움을 보는것은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 생각은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적에 그 어두운 경계가 눈과 서로 대하였느냐 눈과 대하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눈과 대하였다면 어두움이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이 된다고 하겠느냐? 만약 안이 된다고 한다면 어두운 방 안에 있을 적에 해나 달이나 등불이 없으면 그 어두운 방 속에 전부 너의 삼초(三焦)나 육부(六腑)일 것이며, 만일 어두운 세계가 눈과 대하지 않는다면 본다고 하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고 안으로 대하는 것이 성립된다 하여 눈을 감고 본 어두움을 몸 속이라고 한다면 눈을 뜨고 밝음을 볼 적에 어째서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대한다는 것도 성립되지 않으리라.

얼굴을 보는 것이 만약 성립된다면 이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과 눈이 곧 허공에 있어야 하리니 어떻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몸이 아니므로 그럴경우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여래까지도 너의 몸이라고 하겠구나. 그러니 너의 눈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인데 너는 굳이 고집하여 말하기를 몸과 눈이 다같이 안다고 한다면 이는 마땅이 두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그렇다 면 곧 너의 한 몸이 응당 두 보처를 이루겠구나.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을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늘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법이 생기며,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심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니 곧 생각하는 그 실체가 바로 저의 심성(心性)입니다.

어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역시 안과 밖과 중간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말하기를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서 어울리는 곳에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지만 이 마음은 본체가 없는 것이어서 어울릴 곳도 없을 것이다. 만약 본체가 없으면서도 어울릴 수 있다면 이는 십구계(十九界)가 칠진(七塵)으로 인하여 어울리는 것이니 그럴 이치가 없나니라. 만약 본체가 있다면 가령 네가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너의 아는 마음이 다시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 온다면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7]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보는 것은 눈이고 마음은 아는 것이지 눈이 아니거늘 본다고 하심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눈이 볼 수 있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적에 문이 볼 수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은 있는 터이니 마땅히 물건을 본다고 해야 되겠구나. 만약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말하겠느냐?"

아난아! 또 너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만약 반드시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 몸이냐 여러 몸이냐? 지금 네 몸에 있어서 온 몸에 가득하냐 온 몸에 가득하지 아니하냐? 만약 한 개의 몸이라면 네가 손으로 한 활개를 찌를 적에 네 활개가 다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모두가 함께 깨닫는다면 찌를 데가 따로 없어야 하거늘 만약 찌를 데가 따로 있다면 너의 몸이 하나라는 것은 자연 성립될 수 없느니라.

만약 온 몸에 두루하다면 앞에서 찌르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만약 온 몸에 가득한 것이 아니라면 네 머리를 부딛히고 다시 발을 부딛혔을 적에 머리에 느끼는 것이 있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인데 지금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도 들었사온데 부처님께서 문수 등 여러 법왕자(法王子)와 더불어 실상에 대해 말씀하실 적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생각엔 안이라고 하자니 안을 보는 것이 없고 밖이라고 하면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안에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에 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밖에 있는 것도 옳지 않으니 이는 서로 알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안으로 보는 것도 아니니 마땅히 중간에 있는 것인 듯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중간이라고 말하는데 그 중간이 반드시 희미한 것이아니어서 있는 데가 없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 네가 중간을 추구하여 보아라. 중간이 어디에 있느냐? 따로 장소가 있느냐 몸에 있느냐?

만약 몸에 있을 경우 변두리에 있다면 중간이 아니요 중간에 있다면 안과 같나니라. 만약 어떤 장소가 있다면 표시할 곳이 있느냐 없느냐? 표시 할 곳이 없다면 이는 없는 것과 같고 표시할 곳이 있다면 이는 일정하지 못하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사람이 표시할 수 있는것을 가지고 중간이라고 표시했을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도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표시한 그 자체가 이미 혼란하니 마음도 따라서 혼란해지리라."

 

[8] 집착함이 없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말씀드린 중간이란 것은 그러한 두 가지 종류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눈과 색진(色塵)이 인연이 되어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눈은 분별이 있고 색진은 느낌이 없는 것인데 의식이 그 중간에서 생기니 그렇다면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이 만약 눈과 물질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이 마음자체가 두 가지를 겸하셨느냐 아니하였느냐?

만약 두 가지를 겸한 것이라면 눈과 물질이 섞여서 혼란하리니 물질은 눈처럼 앎이 없으므로 적이 되어 둘로 갈라설 것이니 어떻게 중간이라고 하겠느냐? 두 가지를 겸하지 아니하였다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자체에 성품이 없는 것이거니 어떤 모양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간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아난이 부처님께 말씀하시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에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대목련, 수보리, 부루나, 사리불의 네 분 제자들과 함께 법륜(法輪)을 굴리실 적에 늘 말씀하시기를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이미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곳에도 있는 데가 없어서 일체의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한다'고 하셨으니 지금 제가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깨닫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어느 곳에도 있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세상과 허공이나 물 속 또는 육지에서 날아다니거나 걸어다니는 모든 물상(物像)을 이름하여 '일체(一切)'라고 하니,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없다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나니 어떻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느냐? 모든 것이 있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형상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면 그것이 곧 형상이다. 형상이 있으면 존재하는 것인데 어떻게 집착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집착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라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9] 혼미한 이유를 전체적으로 밝힘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을 다하여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본래 여래의 가장 어린 아우로서 부처님의 사랑을 받자와 비록 지금 출가하게 되었으나 오히려 귀여워 해주시는 것만 믿고서 많이 듣기만 하였고 샘이 없는 도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비가라의 주문을 꺽어 항복시키지 못하고 저들에게 홀린 바가 되어 음실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는 참다운 마음이 있는 데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데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들에게 사마타의 길을 열어 보이시어 모든 천제(闡提)로 하여금 추악한 소견을 깨뜨리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듯이 엎드려서 여러 대중들과 목마를 때에 물을 찾듯이 정성을 다하여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그 얼굴에서 갖가지의 광명을 발하시니 그 빛의 찬란하기가 마치 百千개의 해와 같았다. 넓은 부처의 세계가 여섯 가지 진동이 생기고 이와 같이 새방의 티끌 같이 많은 국토가 일시에 나타나더니 부처님의 위신(威神)이 모든 세계로 하여금 한 세계가 되게 하시니 그 세계 가운데 있는 여러 큰 보살들이 모두 제 나라에 있으면서 합장하고 공경스레 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중생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갖가지로 뒤바뀌어서 그 업의 씨앗이 자연 악차의 열매(惡叉)와 같이 한데 모여 있으며,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이 위 없는 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이에 별도로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이루며, 외도와 하늘과 마왕과 마구니의 권속이 되기도 하니 이 모두가 두 가지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뒤섞여 어지럽게 닦아 익혀왔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서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티끌 같이 많은 겁(塵劫)의 세월을 지낸다 하더라도 마침내 이룰 수 없나니라.

그 두 가지 근본이란 무엇인가? 아난아! 하나는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의 근본이니 네가 지금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반연(攀緣)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요, 둘째는 시작이 없는 보리와 열반의 원래 청정한 본체이니 이는 지금 너의 원래부터 밝은 식정(識精)이 모든 인연을 만드는데 그 인연으로 인하여 본래의 참다운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러 중생을 이렇게 본래부터 밝았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비록 종일토록 행하여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잘못 여러 갈래의 중생 세계로 빠져들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사마타의 길을 알아서 생사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지금 다시 너에게 묻겠노라."

 

[10] 주먹을 들어 질문을 하심

그렇게 말씀하시고 즉시 여래께서 황금색깔의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것이 보이느냐 안 보이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보입니다."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여래께서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저의 마음과 눈에 비추임을 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슴하시기를 "네가 무엇으로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와 대중들은 다같이 눈으로 보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나에게 대답하기를 '여래가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네 마음과 눈에 비춘다'고 하니 네 눈은 보겠다마는 무엇을 마음이라 하여 나의 주먹이 비추임을 받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지금 마음이 있는 곳을 물으시므로 제가 마음을 미루어 찾아 보았사오니 이렇게 추궁하는 놈을 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아난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니라." 아난이 흠칫 놀라면서 자리를 비키고 합장하며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앞에 나타난 허망한 모양의 생각이다. 너의 참다운 성품을 현혹시키는 것이니 이는 네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적을 아들로 인정하고 있어서 너의 본래 떳떳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나고 죽고 세계를 윤회하고 있나니라."

 

[11] 허망한 집착을 분별하여 물리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아우입니다. 마음으로부처님을 사랑하였으므로 저를 출가하게 하였으나 저의 마음이 어찌 여래만을 공양하오릿까?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국토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훌륭하신 스승님을 섬기는 것과 큰 용맹을 발해서 모든 행하기 어려운 일들을 행하는 것도 모두가 이 마음으로 할 것이며, 비록 법을 비방하고 훌륭한 근기에서 영원히 물러난다 하더라도 역시 이 마음일 따름인데 만약 이렇게 발생하는 분명한 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마음이 없음이 마치 토목(土木)과 같을 것입니다.

이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을 여의면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으리니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저의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까? 저는 사실 놀랐사오며 아울러 여기 모인 대중들도 의혹하지 않을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열어 보여서 그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려고 하여 사자좌(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며 말씀하시길 "여래가 항상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원인과 결과와 세계의 작은 티끌이 마음으로 인하여 실체를 이룬다'고 하나니, 아난아! 만약 모든 세계의 온갖 것 가운데 풀잎이나 실오라기까지라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본체의 성질이 있으며, 비록 허공까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거 더구나 청정하고 오묘한 밝은 마음은 모든 마음에 본성(本性)이 되거니 어찌 실체가 없겠느냐?

만약 네가 분별하고 깨닫고 관찰하여 분명하게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반드시 마음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이 마땅히 온갖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의 접촉과 법 등 모든 상대되는 대상을 여의고서도 따로히 온전한 성품이 있겠느냐?

마치 네가 지금 나의 법문을 듣는 것도 이것이 소리로 인하여 분별함이 있는 것이니 비록 일체의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없애고 안으로 그윽히 한가함을 지키더라도 오히려 법진(法塵)을 상대로 한 분별하는 그림자가 되나니라.

내가 네게 명령하여 마음이 아니라고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마음에 대하여 세밀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만약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여의고도 분별하는 심성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겠지만, 만약 분별하는 심성이 앞에 나타난 대상을 여의고서는 실체가 없다면 이는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 앞에 나타나는 대상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만약 변하여 없어질 때에는 이 마음이 곧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니 곧 너의 법신도 함께 끊어져 없어지는 것과 같으리니 그러면 그 무엇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그때 아난이 대중들과 더불어 묵묵히 넋이 나간 듯 하였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세간에서 모든 수학(修學)하는 사람들이 현재 눈앞에서 비록 아홉 차례나 결정을 하였다 하더라도 정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다 끊어 아라한이 되지 못한 것은 모두 저 나고 죽고 하는 허망한 생각에 집착해서 진실한 것인 양 오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비록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성인의 과업을 성취하지 못했나니라."

 

[12] 묻고 대답하여 의의를 정립함

아난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온몸을 땅에 던지고 꿇어 앉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부처님을 따라 발심하여 출가하였사오나 부처님의 위엄있고 신령한 것만 믿고서 늘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애써 닦지 아니하여도 여래께서 나에게 삼매(三昧)를 얻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마음은 본래 서로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저의 본심을 잃었으니 몸은 비록 출가하였으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함이 비유하면 마치 가난한 아이가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아무리 많이 들었더라도 수행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듣지 아니한 것과 같음을 알았사오니 이는 마치 사람이 음식을 말로만 이야기해서는 결코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두 가지 장애에 얽매인 것은 진실로 고요하고 항상한[寂常] 심성(心性)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궁하고 외로운 것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오묘하고 밝은 마음을 발하여 저의 도안(道眼))을 열어 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가슴의 만(卍)자에서 보배의 빛을 뿜어 내시니 백천의 색깔이 어울렸으며, 시방의 티끌 같이 많고 많은 넓은 부처님의 세계에 일시에 두루 퍼져서 시방에 있는 보배로운 사찰의 모든 부처님의 정수리에 닿게 하셨다가 다시 되돌려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이르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법의 깃발을 세우며 시방의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오묘하고 은미하고 비밀스런 깨끗하고 밝은 성품을 얻어 청정한 눈을 뜨게 하리라.

아난아! 네가 아까 내게 대답하기를 '빛나는 주먹을 봅니다' 하였는데 이 주먹의 광명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며 어떻게 주먹이 되었으며 네가 무엇으로 보았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온 몸이 염부단금(閻浮壇金)으로써 보배의 산처럼 빛나사 청정하게 생긴 것이므로 광명이 있는 것이고 제가 이것을 눈으로 보았으며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쥐고서 사람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주먹이 되었더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여래가 오늘날 진실한 말로 네게 말해 주리니 지혜가 있는 모든 사람은 비유로써 깨닫게 할 수 있나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그 주먹을 만약 내 손이 없으면 내 주먹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만약 네 눈이 없으면 네가 보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네 눈을 내 주먹과 같은 이치에 비유하면 그 의미가 서로 비슷하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미 저의 눈이 없으면 제가 보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여래의 주먹에 비유하면 사실과 이치가 서로 비슷할 듯 하옵니다."


[13] 참되게 보는 놈을 바로 선택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였으나 그 이치가 그렇지 않나니라. 왜냐하면 만약 내 손이 없으면 주먹이 반드시 없겠지마는 저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이 전여 없지 아니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네가 시험삼아 길에 나아가서 소경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면 그 소경이 대답하기를 '지금 내 눈에는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 이치로 보건댄 앞에 대상이 어두울지언정 보는 것이야 무슨 결함이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모든 소경들이 눈 앞에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모든 소경들이 눈이 멀어서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과 저 눈을 가진 사람이 깜깜한 방에 있는 것과 그 두 가지 깜깜한 현상이 다르냐 다르지 않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깜깜한 방에 있는 사람과 저 소경들과의 두가지 캄캄함을 비교하면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눈이 없는 사람이 대상이 컴컴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눈의 광명을 되찾게 되면 도리어 그 대상의 갖가지 빛깔을 보게 되리니 이것을 눈이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 어두운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대상이 캄캄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등불을 켜면 역시 대상의 갖가지 빛깔을 볼 것이니 이것은 응당 등불이 보는 것이라고 하겠구나. 만약 등불이 보는 것일진대 이는 등불이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등불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며 또 등불이 보는 것인데 네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등불은 빛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것은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빛깔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성품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

아난이 비록 다시 이 말을 듣고서 여러 대중들과 함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있었으나 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여래께서 자비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원하며 합장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ㅤ

 

[14] 경계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맺음

그때 세존께서 도라면처럼 부드러운 그물 모양의 빛나는 손을 들어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펴고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도를 이루고 녹야원(鹿野園)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와 거의 사부대중을 위하여 말하기를 '일체 중생이 보리와 아라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모두 객진번뇌(客塵煩惱)로 인하여 그르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너희들은 그때에 무엇을 깨달아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느냐?"

그때 교진여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장로(長老)로서 대중 가운데에서 유독 저만이 '알았다'는 이름을 얻은 것은 객진(客塵)이란 두 글자를 깨닫고 부처님의 과업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여정에 들어 잠을 자거나 밥을 먹다가 밥먹고 잠 자는 일을 마치고는 행장을 꾸려서 머물 여가가 없이 길을 떠나지만 만약 참다운 주인이라면 갈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물지 않는 것은 나그네이고 머무는 것은 주인이니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고 이름하겠습니다. 또 비가 개이고 맑은 태양이 하늘에 떠 올라서 햇빛이 틈으로 들어와 밝게 비치면 허공에 있는 모든 먼지가 보이는데 티끌은 요동하지만 허공은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생각하면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이고 요동하는 것은 티끌이니 요동하는 것을 '티끌'이라고 정의를 내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그때에 여래께서 대중 가운데에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렸다간 펴고 폈다간 다시 구부리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여래께서 백 가지 보배로운 수레바퀴 같은 손바닥을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손이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함을 보았다고 하니 그것은 내 손이 폈다 쥐었다 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한 것이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께서 대중 앞에서 보배의 손을 폈다 쥐었다 하시므로 제가 여래의 손이 스스로 폈다 주었다 하심을 본 것이지 저의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어느 것이 움직였고 어느 것이 가만히 있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손도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습니다만 제가 보는 것도 오히려 고요하다고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것을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고집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러하니라." 여래가 손바닥으로부터 한 줄기 보배의 광명을 날려 아난의 오른쪽에 있게 하니 그때에 아난이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또 한 줄기 빛을 내어 아난의 왼쪽에 있게 하니 아난이 또 머리를 돌려 왼쪽을 보거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 머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움직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여래께서 보배의 빛을 내시어 저의 왼쪽, 오른쪽에 보내셨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을 차례로 보느라고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님 보배의 빛을 보느라고 머리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고 하니 그것은 네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것이 움직인 것이냐?"

"세존이시여! 저의 머리가 저절로 움직인 것이지 저의 보는 성품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조차 없으니 어찌 움직였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그때에 여래께서 널리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중생들이 동요하는 것을 대상 물질[塵]이라 하고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 한다면 너희들이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을 뿐 보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음을 관찰하고, 또 너희가 나의 손은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하였으되 보는 것은 폈다 쥐었다 함이 없는 것임을 깨달으라.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동요하는 것을 몸으로 여기고 동요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질이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면서 참다운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짓을 하느냐? 성품에 참 마음은 잃어버리고 물건을 몸인 줄 알고 있으면서 그 속을 돌고 돌아 스스로 끌려 다님을 취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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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2

 

[1]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함

그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생각하기를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심을 잃어버리고 앞에 나타나는 물질만을 분별하는 그림자같은 일들을 헛되게 인정해오다가 오늘에야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아서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진실하고 거짓된 것과 허망하고 실한 것을 나타낸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하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적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 주셔야 이 마음의 나고 멸함이 없는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정기가 새는 자 있어서 그들도 모두 정기가 새는 것을 끊지 못한 자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몸이 현재 살아 있으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이 육신이 금강(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기느냐?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기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지금 이 육신은 마침내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이 무상하게 변하여 없어지는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오나 제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 재가 되는 것과 같아서 점점 쉬지 않고 늙어져가고 있으므로 결단코 이 몸이 언젠가는 다 없어질 것임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대왕아! 그대의 나이는 지금 이미 늙었는데도 얼굴 모습은 동자때와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었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먹어 쇠모함이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을 희어지고 얼굴은 쭈그러져서 오래가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2] 참된 것이 있음을 밝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리라." 대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해 가므로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합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저의 나이 20세 적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10세 때보다 늙었고, 30세에는 또 20세 때보다 늙었으며, 지금 60에 또 둘을 더 하고 보니 50세 때를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훨씬 강장(强壯)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점차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저락함에 있어 그 사이에 세월이 흘러 변함을 10년씩 한정하여 말하였습니다만, 만약 다시 저로 하여금 자세히 생각하게 하오면 그 변해감이 어찌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어찌 해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역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히 생각하면 찰나(刹那)마다 생각마다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그대가 줄어 없어질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또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 속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바사닉왕이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사실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보여 주리라! 대왕아!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황하강 물을 보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제가 난 지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갈 적에 그 강을 건넜는데 그 때에 항하강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까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적에 보던 그 물과 열 세 살 때 보던 그 물이 어떠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세살 때와 같아서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 두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달라짐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파하나니, 그 얼굴은 반드시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강 물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이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왕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 보는 정기만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쭈그러진 것이 아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겠지만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의 나고 죽음을 받았는데 오히려 저 말가리(末伽梨)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하는고."


대왕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 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기뻐 날뛰면서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3]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심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놈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 주시옵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시며 아난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나의 모타라(母陀羅)손을 보아라.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상의 중생들은 이것을 거꾸로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을 바로라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바로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倍)나 더 거꾸로 보는구나." "그러나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여래의 청정한 법신과 비슷한 종류로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여래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偏知]'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성품이 뒤바뀜[性顚倒]'이라 부른다.

따라서 너는 자세히 살펴 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어느 곳을 이름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 때에 아난이 모든 대중들과 더불어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4] 반연하는 것은 성품이 없음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사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바다 조수와 같은 음성[海潮音]을 내시어 같은 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널리 이르시기를 "선남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물질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끌려다니는 것과 반연되는 모든 현상들이 오직 마음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은 참되고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물건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본래부터 오묘한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 속에 혼미한 것만을 인정하는구나?

어두워서 허공이 되어서는 그 허공과 어두움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연(緣)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둥이 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百千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인식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라 하며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너희들은 곧 미혹한 속에서도 배나 더 미혹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여래께서 가엾은 사람 이라고 말씀하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마음 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현재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 자리라고 인정하지 못하겠사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와 원만한 법음을 베푸시어 저의 의혹의 뿌리를 뽑아서 위없는 최고의 도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직까지도 반연으로 생긴 마음으로 법을 듣나니 그 법도 역시 반연일 뿐이라서 법성(法性)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리요? 또한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곧 손가락을 달의 밝은 성품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성품에서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 너 또한 그러하니라.

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정(旅亭)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버리면 이는 마침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여정을 맡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므로 여정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요?

이것이 어찌 소리로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물질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분별함이 전연 없는 데에까지 이르러서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므로 구사리(拘舍離)등이 이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 하나리라. 법의 반연을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5]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만약 저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께 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또 네가 나를 보는 그 정기의 밝은 근원은 이 보는 놈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 二의 달인지라 달 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틔여서 둥근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도 없는 한 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져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 틈으로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 사이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 반연함을 보고 완벽한 허공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라고 맑게 개여 우내가 걷히면 또 다시 맑음을 보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이 여러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살펴 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아가나니,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것의 근본을 해에 속한다. 그러므로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반연은 분별로 돌아가고 완벽한 허공은 허공으로 돌아가며,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고 맑음은 개인 데로 돌아가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나니라. 그런데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은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음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차별한다 하더라도 보는 것은 차별이 없나니라. 모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자연 네가 아니거니와 네게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느냐?

그러니 깨달을 지어다.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기 때문에 여래가 가련하다고 한 것이다."


[6] 물질에 나아가 결정 선택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겠습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성품이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노니, 지금 네가 정기가 새는 것이 없어진 청정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초선천(初禪天)을 보는데 장애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閻孚提)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百, 千의 세계를 보며, 시방의 여래는 티끌처럼 많은 천정한 국토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중생들이 보는 것은 푼촌(分寸)에 지나지 않나니라.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볼적에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보겠는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두가 앞에 나타난 물질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나와 남을 분별하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물체인지를 가려 주리라.

아난아! 네가 보는 것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역시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에 점점 다시 관찰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물상이지 너는 아니니라.

아난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똑같이 너의 청정하게 보는 정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물상은 자연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으니,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음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만약 보는 그 자체가 물상이라면 네가 또한 나의 보는 성품을 보아야 하리라. 만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내가 보는 성품을 본다고 할진대 내가 보지 못할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는 보지 못하느냐?

만약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질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또한 네가 지금 물질을 볼 적에 네가 이미 물질을 보았거든 물질도 너를 보아서 실체와 그 성품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이 편안하게 정립되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엔, 이것이 네가 보는 것이지 내가 아닐진대 보는 성품이 골고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성품이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성품인 양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진실을 구하려고 하느냐?"

 

[7] 결론지어 나타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반드시 저이지 남이 아닐진대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수승하고 장엄한 보배의 궁전과 일월궁(日月宮)을 볼 적에는 그 보는 것이 두루 원만해서 사바국(娑婆國)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伽藍)만 보이고 청심호당(淸心戶堂)에서는 다만 처마만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보는 것이 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졌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는 그 보는 것이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일체의 세상과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업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것이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니라.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나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이는 모난 하늘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이 둥근 그릇 속에서도 그 하늘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 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지언정 하늘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허공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찌 보는 것을 늘려서 해에 닿게 한 것이겠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것이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어찌 이은 흔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게 아니니라.

일체의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로 생각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서 곧 마음이 원만 하게 밝아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개의 털 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8] 꾸짖으셔서 깨닫게 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정기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성품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성품이 현재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것이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함이 실제가 있거니와 저 보는 것은 분별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성품은 진정한 나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여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물질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지금 네가 말한 '보는 것이 내 앞에 있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나니라.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정기가 이미 장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祇陀林)데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전당(殿堂)을 두루 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고 앞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니, 이렇게 형상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 만일 그 보는 것이 반드시 현재 네 앞에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어느 것이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허공이며, 만약 물체가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물체이겠느냐? 너는 미세하게 온갖 물상을 구분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게 보는 근원을 가려내어 나에게 지적하여 보여주되 저 물질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여 보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황하강에까지 이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 있어서 가리키는 것은 모두가 물질이라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정기가 새는 것을 끊어버리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聲聞)이거니와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 나야만 별도로 자성이 있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정밀하게 보는 놈을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물상 속에는 보는 것이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네가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다시 숲과 동산, 그리고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보아라. 갖가지 물상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보는 정기가 네가 가리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상 중에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또 생각하니 이 온갖 물상 중에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러하니라."

 

[9] 본체는 하나라는 것을 밝힘

그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아니한 자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자옵고 멍청하게 이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며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직하고 있던 것을 잃은 듯하였다.

여래께서 그들의 정신이 변하여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모든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의와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때에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사 대중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것인지 이것이 아닌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허공과 물질의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응당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볼 것도 없어야 할 터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 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이것이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정기가 본래 무엇이길래 그 중간에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것과 그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아서 또 다른 문수가 문수이냐? 문수가 아니냐?"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그러한 또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두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역시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이거늘 이것이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것이라 여겨서 마치 제二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혀냄을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10] 거듭 떨쳐버리고 곧바로 보이심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아닐진대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도 일찌기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댄 깨닫는 성품이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허망하게 뒤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셔야만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자연이라고 기필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본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이 보는 놈은 밝음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自)라고 한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응당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으로 자연이라 생각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지금 이것은 인연의 성품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여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놈은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허공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밝음이나 어두움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 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으로 인해서와 어두움으로 인해서도 허공이나 막힘과 같나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이 인(因)도 아니며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나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길래 모든 세간에서 장난삼아 논란하는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야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11] 모양을 여의어야 함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 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 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함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음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움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떻게 봄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또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음이 아니며, 어두움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움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네 가지 이치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을 볼 적에 보는 놈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보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 보는 것으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희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지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된 현상과 어울려 조화되지 못함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는 놈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소서."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였다.

 

[12] 허망한 모양을 따로따로 풀이함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사 큰 총지문(總持門)과 모든 삼매의 오묘한 수행 방법[길]을 다시 말씀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힘썼고 사마타의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봄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나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자들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분별하여 보는 것이 허망하여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 가지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별업(別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보이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거니 저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떠나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것의 병으로 인하여 그림자가 되었나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가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보는 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할 것이 못되며, 또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二의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제二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나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13] 매듭지어 말씀하심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육지에 三千개의 섬이 있으니 한 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二千 三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서 三十, 四十, 五十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彗], 패성, 흐르는 별똥[飛流],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지언정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본래 보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지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마침내 보는 잘못은 없나니라.

예컨댄 네가 오늘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병들므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놈과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 앞의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인 물체를 보는 눈병이다. 그러니 깨닫고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리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실 보는 놈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상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놈의 눈병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놈이 정밀하고 참된 이유는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놈이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허망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閻浮提) 三千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모든 나라들[有漏國]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깨닫고 분별하는 새는 것이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여 허망한 병으로 인하여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나니라.

 

[14] 요체를 들어 결론지어 대답함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여러 가지 나고 죽는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원만한 보리의 나고 죽지 아니하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혹하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놈이라면 어떻게 보는 놈을 본다고 하겠느냐? 보는 놈은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이었다면 저 성품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맑은 모양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저 보는 놈이 어두움과는 어울리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15] 다른 것들도 같음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놈과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놈이냐? 보는 놈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는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놈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놈과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부질없는 물질인 모든 허깨비 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져서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오묘하고 참다웁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나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적엔 오직 하나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하니라.

 

[16] 허망한 것인 줄 깨달으면 곧 참됨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헛보이는 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인데, 만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 꽃을 볼 적에 눈이 응당 가리움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이라야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그럽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수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여러가지 허깨비같은 허망한 접촉이 허공에서 부터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접촉 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응당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응당 들어갈 때의 자취를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수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상(想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신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뉨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지금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이라면 맑은 때에는 응당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득히 채워가지고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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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卷 3

[1] 육입에 나아가 여래장을 밝힘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이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이라고 하니 그 보는 놈의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에서 온 것이 아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로부터 왔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일진댄 반드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지면 머리 속에서 또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놈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2] 허망한 것은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들어 깨닫은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움직임에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할 것이고, 만약 고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고, 만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러한 듣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듣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거든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인데 너희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쉬어서 오래 들이쉬고 있으면 피로가 생겨서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냄새를 맡는 놈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트인데서 왔을진대 막히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막힘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데서 왔을진대 트이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트임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일진대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같이 맡는 정기가 본래자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일진댄 냄새를 맡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기면 그 사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달고 쓴 것으로 인하여 저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이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맛을 보는 놈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라는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3] 참된 것에 의해 허망함을 일으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맛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달고 쓴데서 왔을진대 담담하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데서 왔을진대 달거나 쓰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그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맛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는 느끼는 그 자체가 없으리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떨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4] 십이처에 나가 여래장을 나타냄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피로하면 잠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을 보면 기억하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뒤바뀐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뛰어넘지 아니함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생기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깨거나 잠자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생기는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누구로 하여금 없어짐을 알게 하며, 만약 없어지는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깨고 잠자고 하는 두 가지 형상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생각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생기고 없어지고 깨고 잠자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아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각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지각하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으로 생각하여 인식하는 것[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다시 기타림 숲과 모든 샘물과 못들을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것들은 물질의 모양이 눈으로 보는 작용을 생기게 한다고 여기느냐 눈이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고 여기느냐?

아난아! 만약 눈이 색질의 모양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색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색질의 성품이 응당 사라질 것이다. 색질의 성품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 색질의 모양이 이미 없어지면 누가 허공의 본질(本質)을 밝히겠느냐? 허공도 역시 그러하니라.

 

[5] 감각기관에 의거하여 밝힘

만약 물질이 눈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물질의 모양이 아니므로 눈으로 보는 것이 곧 사라져 버리리니 사라져 없어지면 모두가 없어질 것인데 무엇이 허공인지 물질인지 밝히겠느냐?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 가운데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을 모을 적엔 종을 쳐서 그 북과 종소리가 앞뒤로 서로 연속됨을 들어 보아라.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런 것들은 소리가 귀가에 온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되느냐?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귀 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시라벌성에서 걸식을 할 적에 기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귀 가에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그 가운데 千二백 五十명의 사문들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밥 먹는 곳으로 모두 모이느냐?

만약 네 귀가 소리나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왔을 적에는 시라벌성엔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엔 그 귀가 이미 북치는 곳으로 갔으면 종소리가 함께 나더라도 응당 모두 듣지 못할 것이거든 더구나 어떻게 그 가운데 코끼리, 말, 소, 염소 등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더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듣는 것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듣는 곳과 소리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에서 나는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그 향을 만약 한 수(銖)만 태우면 시라벌성 四十리 안에서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것이다. 네 생각엔 어떠하냐? 그 향기는 전단향 나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허공에서 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마땅히 코에서 나와야 할 것인데 코가 전단이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향기가 있다고 하겠느냐?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 속에서 향기가 나온다면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품은 항상한 것이므로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향로에다 이 나무를 태워야만 향기가 생긴다더냐?

만약 나무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 향기의 본질은 태우므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므로 코가 냄새를 맡을 적에는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 연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기도 전에 四十리 안에서 어떻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냄새 맡는 곳과 향기나는 곳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6] 처소는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씩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가지고서 이따금 유병(油餠)이나 밀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고 하나니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음식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입 속에는 혀가 하나 뿐이니 그 혀는 조금전에 이미 단 맛이 되었으므로 흑석밀(黑石蜜)을 먹게 되더라도 응당 달라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진다면 혀가 여러 개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서 알겠느냐?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맛을 안다고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보아라. 무슨 맛이더냐? 만약 허공이 짠 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하리니 그렇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아서 늘 짠 것을 받아왔으므로 담담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담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짠 것도 느끼지 못해서 반드시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니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이 알아야 한다.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 맛보는 것과 맛,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만져서 느끼는 것은 어느 것이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리니 어떻게 감촉을 느낀다더냐?

만약 머리에 있을 것 같으면 손은 쓸모가 없으리니 어떻게 접촉한다고 하겠느냐? 만약 각각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응당 두 몸둥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한 몸 이라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몸이라면 감촉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손에 있다면 머리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머리에 있다면 손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가 처소가 없어서 몸과 감촉,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7] 십팔계에 의하여 여래장을 밝힘

아난아! 네가 항상 생각속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 그리고 무기성(無記性)의 세 가지 성품이 법칙(法則)을 생성(生成)하나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냐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처소가 있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法)은 대상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바가 아니거니 어떻게 처소를 이루겠느냐?

만약 마음을 떠나서 따로이 방소가 있는 것이라면 법칙의 자성이 앎이 있느냐 없느냐? 만약 앎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이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너와는 상관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상도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은 것이니 너에 의한 것이며, 마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네 마음이 네게 있어서 다시 둘이 되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그 대상은 빛, 소리, 향기, 맛과 떠나거나 합해지는 것과 차거나 따뜻한 것과 허공의 모양도 아닐 것이니 어디에 있다고 하겠느냐? 지금 물질과 허공에 모두 표시할 수 없으니 응당 인간이 다시 허공 밖에 있지 아니하니라. 마음이 반연하는 것이 아니면 법의 처소가 어디로부터 이루어지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칙과 마음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마음과 법칙,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十八계(界)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안식(眼識)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눈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므로 눈으로 경계(界)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물질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눈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이미 빛과 허공이 없으면 분별할 수가 없을것이어니 비록 너의 의식이 있은들 어디에 쓰려하느냐? 네가 보는 것이 또 푸른색, 노란색, 붉은색, 흰색이 아니라서 표시할 수가 없는데 무엇으로 경계를 성립하려느냐?

만약 물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허공이 색깔이 없을 적에는 너의 의식도 응당 없어져야 하± 어떻게 그것이 허공의 성품인 줄을 알 것이며, 만약 색깔이 변할 적엔 너도 그 색깔의 모양이 변함을 안다면 너의 의식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경계가 어디를 좇아 성립되겠느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곧 변하므로 경계의 모양이 스스로 없을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면 곧 항상하더라도 이미 빛을 따라 생겼으므로 응당 허공의 소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만약 두 가지를 겸해서 눈과 빛이 함께 생기게 했을진댄 합 하였다면 가운데가 나뉘어지고 서로 나뉘어진 것이라면 둘이 합하여진다. 그 체성(體性)이 섞이어 혼란할 것이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서 눈으로 보아 아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것이어서, 눈과 빛 그리고 빛의 경계, 이 세가지가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8] 귀와 소리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생긴다'고 하나 그 의식은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현상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가 앎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안다는 것도 오히려 성립됨이 없을 터이니 인식이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약 귀로 듣는 것을 취한다면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듣는 것이 성립될 수 없으리니 어떻게 귀와 형상이 물질과 감촉이 섞인 것을 가지고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귀로 인식하는 경계가 다시 어디를 따라 성립되겠느냐?

만약 소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귀가 인식하는 것은 소리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듣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을 것이니 듣는 그 자체가 없다면 소리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저 인식하는 것이 소리를 좇아 생기고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소리의 모양이 생긴다고 인정한다면 들을 적에 응당 그 인식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듣지 못한다면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아니리라.

듣는 것은 소리와 같아서 의식이 이미 들음을 당하였거니, 또다시 무엇이 의식을 듣는 것인 줄 알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마침내 풀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다.

소리와 듣는 것이 섞이어서 중간의 경계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니 귀가 인식하는 경계가 중간 위치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어디로부터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가 인식하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귀와 소리 그리고 소리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9] 코와 향기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코로 인하여 생긴 것 이므로 코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향기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기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마음 속에 그 무엇을 코라고 하겠느냐? 살로 된 한 쌍의 오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 아는 움직이는 성품이라고 생각하느냐? 만약 살로된 모양이라고 여긴다면 살로 된 바탕은 곧 몸이고 몸이 느끼는 것은 곧 감촉이니 몸이라고 하면 코는 아니고 감촉이라고 하면 이는 곧 감촉의 대상이다. 코도 오히려 이름할 수 없거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만약 냄새를 맡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진댄 또 네 마음 속에 무엇으로 안다고 생각하느냐? 살이 안다고 한다면 살이 아는 것은 본래가 감촉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안다고 한다면 허공은 스스로 아는 것이라서 살은 응당 깨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네 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향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는 그 자체가 향기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만약 향기와 구린 냄새가 반드시 네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그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오지 않을 적에 네가 네 코를 맡아 보아라. 향기로우냐 구리냐?

구린 냄새는 향기가 아니며 향기는 응당 구리지 않으리니 만약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너 한 사람이 응당 두 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도 물을 적에도 두 아난이 있으리니 어느 것이 너의 몸이더냐?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구린내 두 가지가 아니라 구린내가 이미 향기가 되며 향기가 다시 구린내가 되어서 두 성분이 있지 아니하리니 경계가 무엇으로 인하여 성립되겠느냐? 만약 향기에 인하여 생긴다면 그 인식은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눈이 다른 것은 볼 수 있으면서도 눈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하리니 안다면 향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이는 코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향기가 앎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향기의 경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인식하는 것이 향기를 느끼지 못하면 인식하는 경계가 향기로 해서 이루어짐이 아니리라.

이미 중간이 없으면 안팎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저 냄새맡는 성품이 마침내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코와 향기 그리고 향기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0] 혀와 맛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아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니 그 혀의 인식은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맛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모든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 계피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네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가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이어니 무엇이 알아 깨닫겠느냐? 혀의 성품이 쓴 것이 아니라면 맛이 저절로 생기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경계가 이루어지겠느냐?

만약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인식하는 걋 스스로 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는 곧 혀와 같아서 응당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맛인지 맛이 아닌지를 알겠느냐?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여러 가지에서 생기므로 그 인식하는 것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될 것이며, 인식하는 본체가 만약 하나이고 그 체는 반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의 화합된 것이거나 함께 생기는 것과 여러 가지로 변하여 달라진 것이 함께 동일 맛이 되어서 응당 분별이 없을 것이다. 분별이 이미 없으면 인식한다고 할 수 없거니 어떻게 혀가 맛보아서 인식하는 경계라고 하겠느냐? 허공이 너의 마음에 인식을 생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혀와 맛이 화합하면 곧 그 가운데는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 처소는 모두 없어서 혀와 맛 그리고 혀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1] 몸과 접촉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몸과 접촉이 인연이 되어서 몸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나니 그 인식은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몸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접촉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반드시 합해지고 나눠지는 두 가지를 깨닫게[覺觀]할 인연이 없으리니 몸이 무엇을 알겠느냐?

만약 접촉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너의 몸이 없어야 하리니 어찌 몸도 아닌 것이 합하고 나뉘어짐을 알겠느냐?

아난아! 물질이 접촉하여도 알지 못하고 몸이라야 접촉이 있음을 아나니 몸을 안다면 곧 그것은 접촉하는 놈이고 접촉함을 안다면 곧 그것이 몸이니, 그렇다면 곧 접촉하는 놈이라면 몸이 아니고 몸이라면 접촉하는 놈은 아니다. 몸과 접촉하는 놈이 두 가지는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이다. 몸에 합하면 곧 몸 자체의 성품이 되고 몸에서 떠나면 곧 허공과 같은 모양이므로 안과 밖이 이루어지지 않거니 중간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중간이 성립되지 아니하면 안과 밖의 성격이 빌 것인데 너에게 인식하는 것이 생긴다고 한들 어데를 좇아 경계가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과 접촉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서 몸과 인식의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어서 몸과 접촉하는 것 그리고 몸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2] 생각과 법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아서 '뜻과 법진(法塵)이 인연이 되어서 의식(意識)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의식은 뜻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뜻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법진(法塵)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법진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뜻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의중(意中)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너의 뜻을 나타나게 하리니 만약 앞의 법진(法塵)이 없으면 뜻이 생길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을 여의고서는 형상이 없는 것이거니 의식을 어디다 쓰겠느냐?

또 너는 의식하는 마음과 모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과 겸하여 분명하게 분별하는 성품이 같다고 생각하느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뜻과 같으면 그것이 곧 뜻일 터이니 어떻게 생긴 것이며 뜻과 다르면 같지 아니하므로 응당 인식하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만약 인식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뜻이 생긴다고 하겠으며, 만약 인식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의식(意識)이라고 하겠느냐? 같거나 다르거나 한 두 성품이 성립됨이 없으니 경계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법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가지 대상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너는 빛, 소리, 향기, 맛, 접촉을 살펴 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상대할지언정 뜻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니 너의 의식이 결정코 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너는 지금 자세히 보아라. '법진'이라는 그 법은 어떤 모양이더냐? 만약 밝고 어둡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 통하고 막혔거니 그대로 있고 변하거나 합하고 떠나거나 함을 벗어나면 이 여러 가지 모양을 뛰어 넘고서는 마침내 얻을 것이 없으리니 생긴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法)이 생겨날 것이고 없어진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이 없어지느니라.

인연하는 것이 이미 없거니 인연으로 해서 의식이 생기는 것이 어떤 형상이 되겠느냐? 모양이 없으면 경계가 어떻게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과 법진이 인연이 되어서 뜻이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어서 뜻과 법진 그리고 뜻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3] 아난이 발하여 일으키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늘 화합과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간에 갖가지 변화가 모두 네 가지 원소의 화합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과 자연 두 가지 다 아니라고 배척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그 뜻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중생들에게 중도의 또렷한 이치를 보이시와 장난같은 논리에 빠짐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에 세존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에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모든 소승법(小乘法)을 싫어해서 발심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실하게 탐구하므로 내가 지금 너에게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세간의 장난같은 논리인 망상의 인연에 스스로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마치 약을 말하는 하는 사람이 참다운 약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여래가 진실로 너를 가련하다고 하신 것이니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해서 열어 보이며 또한 장래에 대승을 닦을 자들로 하여금 실상을 통달하게 하겠다.

아난이 잠자코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었다. 아난아! 네 말과 같아서 '네 가지 원소[四大]가 화합하여 세간의 갖가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니, 아난아! 만약 저 원소[大]의 성품 자체가 화합이 아니라면 모든 원소와 섞일 수 없음이 마치 허공의 모든 물질이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만약 화합할 수 있다면 변화함과 같아서 처음과 끝이 서로 이루어지며 나고 없어짐이 서로 이어져서 났다가는 죽고 죽었다가는 나며 나고 죽고 죽음이 마치 화륜(火輪)이 도는 것과 같아서 쉼이 없으리라.

아난아!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나니라.

 

[14] 흙이라는 원소

네가 땅의 성품을 살펴 보아라. 큰 것은 큰 땅덩이가 되고 작은 것은 미세한 먼지가 되나니, 인허진(隣虛塵)에 이르러서는 아주 지극히 작은 색변제상(色邊際相 : 지금의 분자)을 일곱 등분으로 쪼개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다시 인허진을 쪼갠다고 한들 어찌 참다운 허공의 성품이야 되겠느냐? 아난아! 만약 저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허공도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네가 지금 '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에 모든 변화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으니 너는 우선 이 하나의 지극히 작은 먼지를 보아라. 몇 개의 허공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이냐?

응당 지극히 작은 먼지가 합해져서 지극히 작은 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얼마나 되는 물질이 합해서 허공이 되었겠느냐?

만약 물질이 합해졌을 경우 물질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은 아니며 만약 허공이 합해졌을 경우 허공이 합해진 것이지 물질은 아니니, 물질은 오히려 쪼갤 수가 있지만 허공이야 어떻게 합할 수가 있겠느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좇 청정하고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이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 정도에 응하여 업보대로 나타나거늘 세간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 인연과 자연의 성품이라고 픽ㅗ構 있으니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말이 있을 뿐이지 실제 이치는 전연 없는 것이니라.

 

[15] 불이라는 원소

아난아! 불이라는 원소[火大]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모든 인연에 붙어야만 하나니 너는 이 성 안에 밥을 먹지 아니한 집을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할 적에 손에 양수(陽燧)를 들고 햇볕 앞에서 불을 구하나니 아난아! 화합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들 一千二百 五十비구들과 지금 한 무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니 그 무리는 비록 하나이나 그 근본을 따지면 각각 몸이 다르며 모두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으니 사리불은 바라문 종족이고 우루빈나는 가섭바(迦葉波)종족이고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의 종성인 것과 같나니라.

아난아! 만약 불의 성품이 화합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저 손이 거울을 잡고 햇빛에서 불을 구할 적에 그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이냐 쑥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면 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해에서 나왔다면 자연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울 적에 거쳐 오는 곳의 숲과 나무가 모두 타야 할 것이며, 만약 거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울 수 있는 것인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느냐? 네 손에 들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뜨겁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녹겠느냐? 만약 쑥에서 생긴 것이라면 어째서 해와 거울의 빛이 서로 닿은 다음에야 불이 생기느냐?

너는 또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해는 하늘에서 오며 쑥은 땅에서 난 것인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여기에 온 것이냐? 해와 거울이 거리가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불꽃이 나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불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우주에 골고루 들고 있으면 온 세상에 가득하게 일어날 것이다. 온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생각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6] 물이라는 원소

아난아! 물의 성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치는 것이 항상함이 없나니라. 시라벌성에 가비라(迦毘羅)신선과 작가라(斫迦羅)신선과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등의 환술사 들이 달[太陰]의 정기를 구하여 그것으로 환술의 약을 화합할 적에 그 환술사들의 달밝은 밤중에 손에 방저(方諸)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데 그 물은 구슬 속에서 나온 것이냐 공중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냐 아니면 달에서 온 것이냐?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에 구슬로 하여금 물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이거니 그렇다면 경과하는 곳의 숲과 나무가 다 물이 흘러야 하리니 물이 흐른다면 어찌하여 방저(方諸)에서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며 흐르지 않는다면 물이 달에서 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만약 구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 구슬 속에 항상 물이 흐르리니 어찌하여 밤중에 밝은 달빛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변두리가 없으므로 물도 마땅히 한계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함께 물에 잠길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의 구별이 있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은 손에 들려 있고 구슬의 물을 받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은 것이니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흐르느냐? 달과 구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물의 정기가 오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기지는 아니할 것이다.

너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물이 청정한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 물이 나오고 온 우주에서 두루 잡으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긴다. 세상에 가득하게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7] 바람이라는 원소

아난아! 바람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함이 일정하지 아니하다. 네가 옷깃을 여미고 대중에게 들어갈 적에 가사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미치면 곧 가벼운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치리니 그 바람은 가사에서 나오느냐 허공에서 생겼느냐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겼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옷이 펄럭이지 아니하였을 적에는 어떤 연고로 바람이 스치지 않느냐? 허공의 성품은 항상 있는 것이므로 바람도 마땅히 항상 있어야 할 것이며 바람이 없을 적에는 허공이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허공이 없어지는 것은 어떤 모양일까? 만약 생기거나 없어짐이 있다면 허공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고 허공이라고 이름한다면 어찌하여 바람이 나오겠느냐?

만약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마땅히 네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적에 어찌하여 바람이 꺼꾸로 부느냐?

너는 자세히 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너에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 속해 있으며 허공은 고요하여 요동하지 않는데 바람은 어느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것이냐? 바람과 허공은 성품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화합이 아니니 바람이 어디서부터 온 데가 없는데 저절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니라.

>너는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바람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바람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해서 중생들의 마음으로부터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아난아! 만일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럭이면 가벼운 바람이 나오고 우주에 골고루 펄럭거리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기나니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거늘 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克건構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8] 보는 원소

아난아! 보고 깨닫는 것이 앎이 없어서 물질과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적에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운데 그 밝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것으로 인하여 분석하나니,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형상과 아울러 큰 허공과 똑같이 한 덩어리이냐 한 덩어리가 아니냐?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아난아! 그 보는 것이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큰 허공으로 더불어 본래 한 덩어리라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없어서 어두울 적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적엔 어두움이 없어지리라.

만약 어둠과 한 덩어리라면 밝은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밝음과 한 덩어리라면 어두울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면 어떻게 밝음과 어두움을 보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두움은 다르다고 할지언정 보는 놈은 생기고 없어짐이 없을 것인데 한 덩어리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이와 같이 보는 정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한 덩어리가 아니라면 너는 밝음과 어둠 그리고 큰 허공을 여의고서 보는 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어떤 모양이겠느냐? 밝음을 여의고 어두움을 여의며 그리고 허공을 여의면 보는 놈은 본래 거북의 털이나 토끼 뿔과 같을 것이니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허공, 이 세 가지가 다 다르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는 놈이 성립되겠느냐?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배치되는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으며 세 가지를 다 여의면 본래 없는데 원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하겠으며, 허공을 보는 놈을 나눈다면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으며, 어두움도 보고 밝음도 보아서 보는 성품이 변하여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펴 보아라. 밝음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大地)로 돌아간다. 이와 같아서 보는 정기는 어디로 인하여 생기느냐?

보는 것은 깨달음이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어서 화합이 아니니 보는 정기가 어디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라. 오묘하게 보고 듣고 아는 것이 그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변두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허공과 동요하는 흙, 물, 불, 바람을 아울러 여섯 가지 원소라고 이름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성품이 잠겨 빠져서 네가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생기더냐 없어지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음도 다름도 아니냐?

너는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봄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이는 마치 하나의 보는 놈이 우주를 두루보는 것처럼 듣는 놈, 냄새맡는 놈, 맛보는 놈, 접촉하는 놈, 그리고 깨달아 아는 놈이 오묘한 덕이 밝아서 우주에 두루하고 시방에 원만하거니 어찌 장소가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의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9] 의식이라는 원소

아난아! 의식의 성품은 근원이 없어서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기나니라.

네가 지금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들을 두루 살필 적에 눈으로써 차례로 둘러보는데 그 눈이 둘러보는 것은 다만 맑은 거울과 같아서 별달리 분석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식은 속에서 차례로 지목하기를 이는 문수이고 부루나이며, 이는 목건련이고 수보리이며, 이는 사리불이라고 할 것이니라.

그렇게 아는 의식이 보는 놈에서 생기는 것이냐 대상에서 생기는 것이냐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냐 까닭없이 돌연히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너의 의식의 성품이 보는 가운데에서 생긴다면 밝고 어두운 것과 물질과 허공은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따라서 너의 보는 것도 없어지리니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거니 무엇으로부터 의식이 발생하느냐? 만약 너의 의식하는 성품이 대상 속에서 생기고 보는 것을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며 어두움도 보지 못해서 밝고 어두움을 보지 못하면 곧 허공과 물질이 없으리니 그 대상도 오히려 없거니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하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겼다면 대상도 아니고 보는 놈도 아닐지니 보는 놈이 아니라면 분별함이 없어서 자연 밝음도 어두움도 허공도 물질도 알지 못할 것이며, 대상이 아니라면 인연이 없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편안하게 성립할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닌 데에 있다고 한다면 허공은 없는 것과 같을 것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의 형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비록 너의 의식이 발생한다한들 무엇을 분별하겠느냐?

만약 원인도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은 달을 인식하지 못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놈은 네 눈에 의지하였고 대상은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미루어 말하는 것이니, 형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 되나니 이와 같은 의식의 인연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의식은 움직이고 보는 놈은 맑아서 화(和)도 아니고 합(合)도 아니며 듣고 냄새 맡고 깨닫고 아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의식의 인연이 좇아서 온 데가 없이 스스로 생기지는 아니하니라.

만약 이 의식하는 마음이 본래 좇아온 데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확실하게 분별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원만하고 고요하고 맑아서 그 성품이 좇아온 데가 없는 것이니, 저 허공과 흙, 물, 불, 바람을 겸하여 균등하게 일곱가지 원소라고 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거나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네 마음이 거칠고 허망해서 보고 듣고 밝음을 발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여섯 가지 처소에서 의식하는 마음을 관찰하여 보아라. 같으냐 다르냐 빈 것이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더냐 빈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더냐?

너는 일찌기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의식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의식은 오묘한 깨달음이 맑고 고요하여 우주에 두루해서 시방세계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20] 허공이라는 원소

아난아! 허공의 성품은 형상이 없으므로 색깔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이는 마치 시라벌성처럼 강이 먼 곳에 모든 찰제리 종족과 그리고 바라문과 비사와 수타와 또는 바라타와 전다라 등이 편안히 살 곳을 새로 세우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적에 흙을 한 자[尺]쯤 파내면 그 속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와 같이 흙을 한 길[丈]쯤 파내면 그 속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게 되어 허공의 얕고 깊음이 흙을 많이 파내고 적게 파내는 것에 따라 생기나니 허공은 흙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는 도구로 인하여 생기느냐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느냐?

아난아! 만약 또 혀공이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내기 전에는 어찌하여 걸림이 없지 아니해서 오직 아득한 대지(大地)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더냐? 만약 흙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낼 적에 응당 허공이 줄어들어감을 보아야 할 것인데 만약 흙이 먼저 나오는데도 허공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겠느냐? 만약 나오거나 줄어들어감이 없다면 허공과 흙이 본래 다른 원인이 없을 것이니 다른 원인이 없으면 같은 것이거늘 그렇다면 흙이 나올 적에 허공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만약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긴다면 마땅히 파내는 데에 따라 허공이 생기는 것이므로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며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파냄으로해서 흙이 나오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파내는 도구는 사람의 손으로부터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니 이와 같이 허공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서 허공이 되게 함은 허(虛)와 실(實)이 서로 작용하지 못해서 화합함이 아니니 응당 허공도 어느 곳으로부터 온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요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앞에서 밝힌 흙, 물, 불, 바람과 보는 것, 의식, 그리고 허공과 함께 균등하게 일곱 가지 원소[七大]라고 하니 그 성품은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나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해서 네 가지 원소가 본래 여래장임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허공을 살펴 보아라. 나오느냐 들어 가느냐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깨달음과 성품이 깨달음인 참다운 허공은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하나의 우물을 파서 공간이 생기면 허공이 한 우물만치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시방의 허공도 그와 같이 시방에 원만한 것이거니 어찌 방향과 장소가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어늘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여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인양 의혹하나니 이는 모두가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기 때문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니라.

 

[21] 아난이 게송으로 찬탄함

그때에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오묘한 가르치심을 받고서 몸과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걸림이 없어지고 모든 대중들이 각각 스스로 마음이 시방에 가득함을 깨달아서 시방의 허공 보기를 마치 손에 가지고 있는 나뭇잎을 보듯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들이 모두 보리의 오묘하고 밝은 원래의 마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의 정기가 두루하고 원만해서 시방을 둘러싸고 있어 부모가 낳아준 몸을 돌이켜 보되 이는 마치 저 시방의 허공 속에 나부끼는 한 작은 먼지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것과 같고, 마치 큰 바다에 떠가는 한조각 물거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좇아 온 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 분명히 스스로 깨달아서 본래 오묘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여 일찍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고서는 여래의 앞에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미묘하고 청정한 덕을 모두 지니신 흔들림이 없으신 세존께서는 수능엄왕으로서 세상에 드문 존재이십니다. 저의 억겁 동안 뒤바뀌었던 허망한 생각을 없애 주셔서 아승지겁을 거치지 않고서도 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들도 성과(聖果)를 얻어 보왕(寶王)이 되어서 이렇게 항하사 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깊은 마음으로 티끌 같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 것이오니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증명하여 주소서. 맹세코 오탁(五濁)의 악세에 먼저 들어가서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겠습니다. 큰 자비와 큰 힘을 지니신 거룩하신 분이시여 다시금 저희들의 미세한 의혹을 없애게 하사 저로 하여금 하루 바삐 위 없는 깨달음에 올라 시방 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여 주소서.

허공[舜若多]의 성품은 없앨 수 있을지언정 굳고 굳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 卷三 끝 >>

 

正本首楞嚴經 卷 四

 

[1]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함

 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엄있고 덕 높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제일의 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항상 추천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을 듣자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백 걸음 밖에서 모기 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니 본래 볼 수도 없거든 더구나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의혹 을 덜게 하였사오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지 추구하여 의혹이 없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온 습기와 번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은 모임 가운데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데까지 이른 자들이므로 비록 모든 새는 것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을 듣고서는 오히려 의혹과 회의에 얽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에 일체의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니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은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퍼져서 맑고 고요히 늘 머문다'고 하셨나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며 물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불은 생기지 못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두 성분이 허공에 가득하여 서로 능멸(凌滅)하지 아니하는지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흙의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고 허공의 성질은 텅텅 빈 것이거니 어찌하여 두 가지가 다같이 법계에 두루 퍼진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두운 구름을 벗겨 주소서."

모든 대중들과 이렇게 말하고서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여래의 더없이 높은 자비로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2] 여래께서 의혹을 풀어줌

그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임 가운데에서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무학(無學)인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가 오늘 널리 이 모임을 위해서 수승한 이치 속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을 설명하여 너희 모임 중에서 소승인 성문들과 일체의 두 가지 빈 것을 얻지 못한 이들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 등으로 하여금 모두 일승의 열반의 자리[寂滅場地]인 참된 아련야(阿練惹)의 올바르게 수행할 방법을 얻게 하고자 하노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법음을 흠모하여 잠자코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부루나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본래 자연 그대로라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느냐?'고 하는데 너는 여래가 늘 말하는 '성각(性覺)은 오묘하고 밝으며 본각(本覺)은 밝고 오묘하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아니면 깨달음이 밝지 못한 것을 밝은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밝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것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이 없으리라.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며 밝음이 없으면 깨달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 아니리라.

성품의 깨달음이 반드시 밝은 것이어서 허망하게 밝혀야 할 깨달음이라고 하나니라. 깨달음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 할 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밝혀야 할 것 이미 망령되게 이루어지면 너의 허망한 작용의 능력을 생기게 해서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성하게 다름을 이루었나니라.

 

[3] 세계의 시초

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겨서 그 다른 것으로 인해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과 다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바퀴[風輪]가 있어 세계를 잡아 지탱[熱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크게 소리쳐서 흔들림이 생겨나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국토를 보전하여 지탱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 보배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 빛이 생겨 변화하는 바퀴가 되었으며, 금보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 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물바퀴[水輪]가 생겨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서는 불 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서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된다. 이면 돋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함이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계속되나니라.

 

[4] 중생의 시초

또다시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뉘어져서 같은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떠나는 것이 변화를 이루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 인연으로 해서 갈라람과 알포담등이 생기나니라. 태로 생하는 것과 알로 생하는 것, 습기에서 생하는 것과 화생으로 생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하는 것은 오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하는 것은 (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하는 것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 생, 각, 합, 떠남으로 생기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장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게 되나니라.

모든 세간의 부부가 혼인하여 교합해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장이 된 것이고,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 먹나니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장이 된 것이며, 또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가진 재물과 돈을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함으로 업장이 된 것이니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나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가지의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5] 오묘한 공은 습기가 없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거늘 까닭없이 산과 강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생기는데 여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익혀온 번뇌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에서 남쪽을 북으로 의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미혹한 사람이 정히 미혹하여 있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으나 그 마을 시장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이 필경에는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함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 한데서 깨닫나니 미혹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있어 미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은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롭다고 하겠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 바뀐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하고 묻느냐?" 또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6] 네 가지 원소는 서로서로 용납함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적에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건대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일 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히면 곧 다 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본래부터 표준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기를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완연히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7] 허망한 것을 좇아 나타남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을 저바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으로 시방의 끝 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하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의식계(意識界)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져 다함도 아니며, 이와같이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나니 이렇게 세간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요.

곧 여래장의 원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까지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다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애는 자리[滅], 괴로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고 이렇게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가 곧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여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이니라."

 

[8] 허망함이 일어나는 원인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다 없어져서 홀로 오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만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앴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 없어지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미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였던들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발명해주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한 생각이 의지할 데가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애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이 있어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하면서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이니며 비록 미친 중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한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 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9] 자연으로 인연을 깨뜨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일어나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연이 끊어지므로해서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인지라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라야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앨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인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는냐? 본래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거늘,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적에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고 한 것이다.

 

[10] 잘못을 경책하고 수행을 권유함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다하여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따라서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니라야 이 구절이 바야흐로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고 할 수 있나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서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다시 시방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를 기억해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결정코 분명하고 또렷하므로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으로는 제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마등가와 같은 경우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나후라의 어미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11] 아난이 간청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는 다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해주시는 한편 캄캄한데 빠진 자를 인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서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감이 요긴한 것과 같사오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12] 뜻을 펴 종지를 표함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무엇을 '처음 발심한 때에 두 가지 결정의 뜻'이라고 하는가하면 아난아! 첫번째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나고 없어지는 마음으로 본래 수행할 원인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구할진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니라.

그러한 뜻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을 비추어 밝혀 보아라. 다 변하여 없어지나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을 보아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않더냐? 그러나 끝끝내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을 터이니 무엇 때문인가? 허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나니라.

너의 몸 속에서 굳은 모양은 흙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촉감은 불이 되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원소가 얽혀서 너의 맑고 원만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함이 생기나니라.

 

[13] 다섯 가지 혼탁의 현상을 밝힘

어떤 것을 혼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함이 본래부터 그러한 것이고 저 흙과 뿌연 모래의 종류는 본 바탕이 엉키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자연의 법칙이라서 그 성품이 서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 흙과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엉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물은 맑음을 잃어버려서 형태가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濁]이라고 이름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쌓인 혼탁한 것도 역시 이와 같나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을 볼 적에 허공과 보는 놈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고 실체는 없으며 보는 놈은 있고 깨달음은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첫번째 둘러싼 것으로 그 이름이 '겁탁'이니라.

네 몸이 현재 네 가지 원소가 뭉쳐서 몸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막혀서 장애가 되며 물과 불,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하여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니 이는 두번 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견탁'이니라.

또 너의 마음 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깨닫고 보고 하는 것을 발하고 모양은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나타내니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현상이 없고 깨달음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세번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번뇌탁'이니라.

또 네가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없어짐이 멈추지 아니하여 느끼고 보는 놈은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항상 국토에 옳겨져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네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중생탁'이니라.

너희들의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 물질이 가로 막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알고 작용 가운데 서로 배반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것은 다섯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명탁'이다.

 

[14] 상근기가 유익함을 획득함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으로 하여금 멀리 여래의 상(常), 낙(樂),아(我),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느냐? 아미타불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하고서 서쪽을 향해 이마로 예를 올려라. 아난이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는 동안에 아미타불이 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수없이 많은 천지와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이 모두 다 빛을 잃어버리고 오직 한줄기 부처님의 광명만이 힘차고 환하게 빛나거늘 이 모임의 사부대중 가운데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은 저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통해 보고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고서 곧 차등이 있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 券四 끝 >>

 

 正本首楞嚴經 券 五 

 

[1] 업장의 근본을 살핌

아난아! 그 두번째 뜻은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보살승(菩薩乘)에서 큰 용맹을 내어 결정코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버리려고 한다면 응당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펴보되 이것이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업장을 짓고 삶을 불려왔으니 그 무엇이 업장을 지었으며 그 무엇이 과보를 받는가 생각해 보아라.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는다면서도 만약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면 허망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어느 곳에서 뒤바뀐 것인지를 알 수 없으리니, 그 곳도 오히려 모르거든 어떻게 항복을 받을 것이며 또한 여래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겠느냐?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살펴 보아라. 맺힌 데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푸는 방법을 알겠느냐? 허공이 너에게 찢겼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어째서 그런가하면 허공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맺히고 풀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너의 앞에 나타난 눈, 귀, 코, 혀와 몸과 마음의 여섯 가지가 도적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집의 보배를 스스로 빼앗나니, 이로 말미암아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중생세계에 얽매이게 하였기 때문에 기세간(器世間)을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하느냐? 세(世)는 옮겨 흐르는 것이고 계(界)는 방위를 말함이니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과 동남, 서남과 동북, 서북과 위, 아래가 계(界)가 되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세(世)가 되니, 방위는 열이고 흐르는 숫자는 셋이다. 일체 중생이 허망함이 얽히어 서로 이루어져서 몸 속에서 바뀌고 옮겨져서 세와 계가 서로 연관이 되나니라.

그 계(界)의 성질이 비록 열 방향으로 설정되었으나 정해진 위치는 밝힐 수 있으니, 세상에서는 다만 동, 서, 남, 북만 지목하고 위와 아래는 위치가 없으며 중간은 정해진 방향이 없나니라.

사방의 수가 반드시 분명해서 세(世)로 더불어 서로 연관이 되어, 三, 四와 四, 三이 완연히 굴러 열 둘이 되어서 흘러 변하는 것이 세번 거듭하여 一, 十, 百, 千이 되니, 처음과 끝을 모두 묶으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 가운데 공덕이 각각 一千 二百이 있나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그 가운데에서 우열을 정해 보아라. 눈은 보기는 하되 뒤는 어둡고 앞만 밝으니, 앞 방향은 완전하게 밝고 뒷 방향은 완전하게 어두우며 왼쪽과 오른쪽은 겉만 보는 것이라서 三분의 二니 그 작용을 통틀어 논하면 공덕이 완전하지 못하다. 三분으로 공덕을 말하면 一분은 공덕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은 오직 八百의 공덕일 뿐이니라.

귀는 두루 들어서 시방에 남김이 없나니 움직임에 있어서는 가깝고 먼 것이 있는 듯하나 고요한 상태에서는 한계가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는 원만하여 一千 二百 공덕이니라.

코는 냄새를 맡음에 있어 내쉬고 들이쉼을 통해서 냄새를 맡게 되는데, 들이쉬고 내쉼은 있으나 중간에 교체되는 동안엔 끊어지나니, 코에 대하여 증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는 八百 공덕이 되나니라.

혀는 말을 함에 있어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하나니 말은 방위와 나뉘어짐이 있으나 이치는 다함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는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몸은 접촉으로 인하여 느낌이 생기나니 거슬리고 순함을 알아서 합하였을 적에는 알고 떠나면 알지 못한다 떠나면 하나이고 합하면 둘이니 몸에 대하여 징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은 오직 八百 공덕뿐이니라.

뜻은 시방삼세의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히 포용해서 성인과 범부를 포용하지 않음이 없어 그 끝닿은 데까지 다하였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은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2] 원만한 감각기관을 살핌

아난아! 네가 지금 나고 죽는 애욕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 흐름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나고 죽음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여섯 가지 느껴 작용하는 감각기관이 어느 것이 합하고 어느 것이 떠나며, 어느 것이 깊고 어느 것이 얕으며,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고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징험해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데에서 원만하게 통한 감각기관을 알아서 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함이 짜여서 된 업장의 흐름을 거슬러서 원만하게 통함을 따를 수만 있다면 원만하지 못한 감각기관에 의지하여 닦는 것과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배가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여섯 가지 맑고 원만하게 밝은 본래 지니고 있는 공덕의 수량이 이러함을 갖추어 나타내었으니, 네가 자세히 선택함을 따라 그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내가 밝혀서 너로 하여금 더 나아가게 하리라. 시방의 여래는 십팔계(十八界)에서 낱낱이 수행하여 모두 원만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여 그 중간에 우열이 없거니와 다만 너는 근기가 하열(下劣)하여 그 가운데 원만하게 자재한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이를 선양해서 너로 하여금 다만 한 문으로만 깊이 들어가게 하겠으니, 한 문으로 들어가 허망함이 없어지면 저 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 감각기관이 일시에 청정하게 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문으로깊이 들어가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일시에 청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이미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여 삼계의 중생들이 세간에서 견도문(見道門)을 수행할 적에 끊어야 할 의혹을 없앴다. 그러나 아직도 여섯 개의 감각기관 중에 오랫동안 쌓여서 생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의 허망한 습관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습관은 모름지기 수도를 통하여 끊어야만 되는 것이어든 더구나 그 가운데에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분제(分劑)와 두수(頭數)이겠느냐?

너는 또다시 살펴 보아라. 앞에 나타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하나이냐 여섯이냐? 아난아! 만약 하나라면 귀로는 왜 보지못하고 눈으로는 왜 듣지 못하며, 머리로는 왜 다니지 못하고 발은 왜 말하지 못하느냐? 만약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결정코 여섯을 이룬다면 내가 지금 이 모임 중에서 너희에게 미묘한 법문을 말할 적에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귀로써 듣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귀가 저절로 듣는데 몸과 입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입으로 질문할 적에 몸은 일어나서 공경하여 받드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며 여섯이 아니라 하나이니, 마침내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과 그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원래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거늘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뒤바뀐데 빠져왔으므로 원만한 맑음에서 一이니 六이니 하는 이치가 생겼느니라.

너는 수다원으로써 비록 여섯 가지는 소멸하였으나 아직 한가지는 없어지지 못하였느니라.

마치 큰 허공을 여러가지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아 놓으면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허공도 다르다고 하다가 그 그릇을 치우고 허공을 보면 허공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 허공이야 어떻게 너를 위하여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겠느냐? 더구나 또다시 어떻게 하나다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겠느냐? 네가 아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의 수용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3]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근원

어두움과 밝음 등 두 가지가 서로 나타나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보는 것을 발생시키나니, 보는 정기가 빛을 비추어서 그 빛이 맺혀져서 눈이 되니 그 눈의 근원은 청정한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고, 그러므로 눈의 실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마치 포도알과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라서 빛을 따라서 흘러 달아나느니라.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가 서로 부딛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듣는 것이 발생하나니 듣는 정기가 소리에 비치고 그 소리가 말려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그를 이름하여 이체(耳體)라 하니, 마치 새로 돋아나는 권이(券耳)의 잎새와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소리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통하고 막히는 두 가지가 서로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냄새를 맡나니, 맡는 정기가 향기에 비쳐서 그 향기를 받아들여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비체(鼻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두 개의 오이가 드리운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향기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그대로 있거나 변화하는 두 가지가 서로 섞여서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맛을 보나니 맡보는 정기가 맛에 비쳐서 그 맛을 짜내어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설체(舌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초생달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맛을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떠나거나 합하는 두 가지가 서로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느낌이 생기나니, 느끼는 정기가 접촉에 비추고 그 접촉이 뭉쳐서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신체(身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장구통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감촉을 따라 치닫느니라. 나고 없어지는 두 가지가 서로 이어지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깨닫게 되나니, 깨닫는 정기가 법에 비추어서 그 법을 잡아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의사(意思)라고도 하니 마치 어두운 방에서 보는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법을 따라 치닫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저 밝은 깨달음의 밝음이 있는 밝혀야 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정밀하고 또렷함을 잃고 허망한데 붙어서 빛을 발하는 것이니라.

러므로 네가 지금 밝음과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실체가 없을 것이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여의면 원래 듣는 바탕이 없을 것이며, 통하고 막힘이 없으면 맡는 성품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여의고 합함이 아니면 부딪쳐 느낌이 반드시 없을 것이며, 나고 죽음이 없으면 깨달음이 어디에 붙어 있겠느냐?

 

[4] 빛을 발함

네가 다만 밝고 어두움, 통하고 막힘, 그대로 있고 변함, 합하고 여윔, 나고 없어짐의 열 두 가지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따르지 아니하면 마음대로 한 감각기관을 골라서 거기에 집착된 것을 벗겨내고 속으로 굴복시켜서 이를 본래의 참된 상태로 돌아가면 본래의 밝은 빛을 발하리니 밝은 성품이 환하게 밝아지면 나머지 다섯 가지 집착도 선택에 따라서 원만하게 벗겨질 것이다.

앞에 나타난 대상이 일으킨 바 지견(知見)을 따르지 아니하여 밝음이 감각기관을 따르지 않고, 그 감각기관에 의탁하여 밝음이 발생하면 그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서로 서로 작용하나니라.

아난아! 네가 어찌 알지 못하랴?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아나율타는 눈이 없이도 볼 수 있고 발난타룡은 귀가 없이도 들을수 있으며, 긍가신녀는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고 교범바제는 혀가 다른데도 맛을 알며, 순야다신은 몸이 없이도 감촉을 느끼나니 여래의 광명 중에 비치므로 잠깐 나타나기는 하지만 본래가 바람의 체질이므로 그 몸은 원래 없으며,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고요함을 깨달아 성문이 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마하가섭 같은 이는 오래전부터 의근(意根)이 없어졌어도 원만하고 밝게 깨달아 앎에 있어 마음을 쓰지 아니하나니라.

아난아! 지금 네가 모든 감각기관에서 원만하게 벗어나면 안으로 환하게 광명을 발하여 이러한 부질없는 대상인 물질과 기세간(器世間)의 모든 변화하는 현상들이 마치 끓는 물에 얼음이 녹는 듯해서 생각을 따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난아! 마치 저 세상 사람들이 보는 힘을 눈에 집중시켰다가 만약 갑자기 눈을 감으면 어두운 현상이 앞에 나타나서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캄캄하여 머리나 발과 같으리니,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따라 더듬으면 그가 비록 보지는 못하더라도 머리인지 발인지는 한결같이 분별하여 깨달아 아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니, 대상을 보는 것은 밝음을 인해야 하고 어두우면 볼 수 없거니와 밝지 않더라도 스스로 발하면 모든 어두운 현상이 영원히 어둡지 않으리니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이미 소멸되면 어찌하여 밝은 깨달음이 원만하고 오묘함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5] 질문하여 논란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처음 수행할 때의 깨닫는 마음으로 늘 머무르기를 구하고자 하거든 과위(果位)의 명목과 서로 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과위 중에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암마라식과 공여래장, 대원경지등 일곱 가지 명칭이 그 이름은 비록 각기 다르나 청정하고 원만해서 그 자체의 성품이 단단하게 엉김은 마치 금강왕(金剛王)이 항상 머물러서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 보고 듣는 것이 밝고 어둡고 움직이고 고요하고 통하고 막힘을 여의면 마침내 실체가 없음이 마치 생각하는 마음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장차 끊어 버리는 것을 수행하는 원인으로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항상 머무는 과업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약 밝고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놈이 마침내 공(空)하게 되어 마치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없는 것과 같으며, 생각의 자성이 없어진 것과 같아질진댄 이리 저리 순환하면서 미세하게 추구하여도 본래 나의 마음과 마음의 처소가 없을지니 장차 무엇으로 원인을 삼아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 겠습니까? 여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맑고 정밀한 것이 원만하고 항상하다'고 하시더니 그것이 진실한 말씀이 못되고 끝내는 농담같은 말씀이 되었으니 어떻게 여래가 진실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6] 미혹을 가려냄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많이 듣는 것만 즐겨 배우고 정기가 새는 것을 모두다 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다만 뒤바뀐 원인만을 깨닫고 참으로 뒤바뀐 것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알지 못하나니, 네가 아직도 진실로 마음 속으로 믿어 복종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지금 내가 시험삼아 티끌 세상의 모든 일들을 들어서 너의 의혹을 제거시켜 주리라.

"그때에 여래께서 나후라에게 명하여 종을 한 번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저희들이 듣고 있습니다." 종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을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대답하기를 "들리지 않습니다."

그때에 나후라가 또 한 번 종을 치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대답하기를 "모두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떤 것을 듣는다고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저희들이 듣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사라져서 메아리까지 다 없어지면 들리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또다시 나후라를 시켜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조금 있다가 소리가 없어지거늘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대답하기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가 나후라가 다시 와서 종을 치니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떤 것을 소리가 난다고 하고 어떤 것을 소리가 없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있다고 하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가 없다고 하나이다."

 

[7] 항상하다는 것을 징험함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하는 말이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을 이랬다 저랬다 했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들리느냐고 물으니 너는 들린다고 말하였고, 또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으니 너는 소리가 난다고 말하여 듣고 소리가 나는데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런 것이 어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들리는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너는 아직도 뒤바뀌어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착각하나니 어찌 혼미하여 항상한 것을 끊겼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느냐? 끝내는 모든 움직임, 고요함, 열림, 닫힘, 통함, 막힘을 여의고서 듣는 성품이 없노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적에 그 가족들이 다듬질이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그때에 갑자기 깨어나서 가족에게 말하기를 '조금전 잠결에 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리니, 아난아! 그사람은 잠결에 어떻게 움직이고 고요하며 열리고 닫히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하랴마는 그 형체는 비록 잠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않았나니, 가령 너의 형체가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없어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빛과 소리를 따르면서 생각을 좇아 흘러돌아서 일찌기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한 성품은 깨닫지 못하여 항상한 것은 따르지 않고 나고 없어지는 것만 좇아다니므로 이로 말미암아 세세생생에 잡념으로 흘러 돌게 되나니, 만약 나고 죽음을 버리고 항상 참되고 항상함을 지키면 항상한 빛이 앞에 나타나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의식하는 마음이 때를 따라 없어질 것이다. 생각하는 현상이 허망한 대상이고 의식하는 마음이 더러운 때가 된다. 두 가지 다 멀리 여의면 너의 법안(法眼)이 때를 따라서 맑고 밝아지리니 어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8] 상서로운 빛을 발하시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제이의(第二義)의 문을 말씀하셨으나, 지금 관찰해 보건댄 세상에서 맺힌 것을 푸는 사람이 만약 그 맺히게 된 원인을 알지 못하면 저는 이 사람은 끝끝내 풀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와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유학과 성문들도 이와 같아서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무명과 더불어 함께 생기고 함께 없어지나니, 비록 이렇게 많이 듣는 하나의 훌륭한 근기를 지녀서 이름만 출가하였다고 할 뿐, 마치 하루씩 거르는 학질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바라옵건댄 큰 자비로써 빠져서 헤어나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오늘 이 몸과 마음이 어찌하여 이렇게 맺혀졌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푸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또한 미래의 고난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를 면해서 삼계(三有)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소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널리 대중들과 함께 온 몸을 땅에 던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정성을 다하여 여래의 위없는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모임 가운데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며, 또한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을 말씀하시어 장래의 법안(法眼)을 만들어 주려 하사 염부단자금광(閻浮檀紫金光)의 손으로 아난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니 그때에 시방에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가지로 진동하며 그 세계에 계시는 모든 여래가 각각 보배의 빛이 그 정수리로부터 나오니, 그 광명이 동시에 그 세계에서 기타림으로 와서 여래의 정수리에 닿거늘 여러 대중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보게 되었다.

 

[9] 진실로 참다운 요체

그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함께 들었는데, 시방의 모든 여래가 다른 입에서 같은 소리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훌륭하다! 아난아! 네가 나면서부터 함께 생긴 무명이 너로 하여금 윤회하고 전전하게 하는 나고 죽는 것이 맺혀진 근원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은 오직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때문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며, 네가 다시 위없는 보리가 너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게 해탈케 하는 고요하고 편안하고 오묘하고 항상함을 속히 증득하는 방법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도 역시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인함이지 다른 물건이 아니니라."

아난이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은 들었으나 마음에는 아직도 분명치가 못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어째서 저로 하여금 나고 죽음에 윤회하게 하며, 편안하고 즐겁고 오묘하고 항상하게 함이 모두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근원은 같으며 얽매임과 해탈도 둘이 아니며 의식하는 성품의 허망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아난아! 대상인 물질로 말미암아 앎을 발하며, 감각기관으로 인해서 현상이 있나니 현상과 보는 놈이 성품이 없어서 허수아비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제 알고 보는 것이 앎을성 립하면 곧 무명의 근본이고, 알고 보는 것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는 곧 열반으로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긴 참되고 청정함이니 어떻게 그 가운데에 또다시 다른 물체를 용납하겠느냐?"

 

[10] 응송(應頌)과 풍송(諷誦)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참다운 성품에는 작위함이 없거늘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허깨비와 같다네. 작위도 없으며 생기거나 없어짐도 없어서 진실되지 못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거짓을 말하여 진실을 나타낸다면 거짓과 진실이 둘 다 거짓이라네. 진실도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거니 어찌하여 보는 놈이다 보이는 물질이다 하겠느냐? 중간에 진실한 성품이 없나니 그러므로 허깨비와 같나니라.

맺히고 풀림이 원인한 바가 같아서 성인과 범부가 두 길이 아니라네. 너는 어우러진 마음 속의 성품을 보아라. 허공과 실체 이 두가지가 다 아니니, 혼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명이요 밝게 열리면 곧 해탈이니라.

맺힌 것을 푸는데는 차례를 지켜서, 六이 풀리면 一도 따라서 없어지리라. 감각기관 가운데 원만한 놈을 선택하면 흐름에 들어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다나(阿陀那)의 미세한 의식은 습기가 사나운 흐름을 이루나니 진실과 진실 아님에 미혹할까 염려하여 내가 늘 말하지 않았노라.

제 마음에서 제 마음을 취하면 환망(幻妄)아닌 것이 환법(幻法)이 되나니 취하지 않으면 환망 아닌 것조차도 없으리라. 환망이 아닌 것도 오히려 생기지 않거든 환법이 어떻게 이루어지랴?

이것을 이름하여 '묘연화', '금강왕보각', '여여불삼매'라 하나니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에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초월하리라. 오직 이 비유할 수 없는 법은 시방 바가범이 오직 이 한 길이 열반에 이르는 문이니라.

 

[11] 맺어진 이유

이에 아난과 여러 대중이 부처님의 위없이 자비하신 가르침인 기야(祇夜)와 가타(伽陀)가 섞여 엉겼으면서도 정밀하고 밝아 오묘한 이치가 맑게 통함을 듣자옵고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서 일찌기 없던 일임을 찬탄하더니, 아난이 합장하여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드리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차별없는 큰 자비로 말씀하신 성품은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하다는 진실한 법구를 들었사오나 마음에는 아직도 六이 풀리면 一이 없어진다는 매듭을 푸는 차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댄 큰 자비를 베푸시와 여기에 모인 무리들과 장래의 중생들을 다시 가엾게 여기셔서 법음(法音)을 베풀어 속에 밴 때까지 깨끗이 씻어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사자좌에서 열반증을 정돈하고 승가리(僧伽梨)를 여미신 다음 칠보로 단장한 책상을 끌어당겨서 겁바라천(劫坡羅天)이 바친 화건(華巾)을 가져다가 대중앞에서 이를 매어 매듭을 만들어 아난에게 보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께 아뢰기를 "그것은 매듭이라고 합니다." 이에 여래께서 다시 첩화건(疊華巾)을 매어서 또 한 개의 매듭을 만들어 거듭 아난에게 물으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첩화건을 매어 모두 여섯 개의 매듭을 만들었는데 한 번씩 매듭을 만들 때마다 화건으로 만든 매듭을 들고서 아난에게 묻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도 그와 같이 차례로 부처님에게 대답하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화건을 맺은 것을 네가 매듭이라고 하였으니 이첩화건은 앞서의 실제는 한 가닥이었거늘 두 번째 세 번째에도 어찌하여 너희들은 다시 매듭이라고 하는고?"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 보첩화는 짜서 만든 수건으로서 비록 본래는 하나이나 저의 생각으로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시면 한 개의 매듭이라고 하고, 만약 백 번 맺으면 백 개의 매듭이라고 해야할 것이거든, 더구나 이 수건이 다만 여섯 개의 매듭 뿐이어서 일곱은 되지 못하였으며 다섯에는 머물지 않았사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다만 처음 것만 인정하시고 두 번째 세 번째 것은 매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보화건은 네가 아다시피 이 수건이 원래는 하나였으나 내가 여섯 번 매듭을 지었을 때에 여섯 개의 매듭이란 이름이에게 되었나니 너는 자세히 관찰하여라. 수건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매듭으로 인하여 달라진 것이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처음 맺어서 매듭이 된 것을 첫 번째라고 말하니 그렇게 하여 여섯 번째 매듭까지 생겼으니, 내가 지금 여섯 번째 매듭을 가지고 첫 번째 매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매듭이 만약 있으면 이는 여섯 번째 매듭이지 결코 첫 번째 매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제가 여러 생을 두고 끝까지 밝혀본다고 한들 어떻게 이 여섯 번째 매듭의 이름을 바꿀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여섯 개의 매듭이 같지는 아니하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하나의 수건으로 된 것인데 섞이게 한다는 것은 마침내 성립될 수 없나니라.곧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역시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같은 가운데 마침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12] 푸는 요령을 보이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굳이 이 여섯 개의 매듭이 하나로 이루어지지 못함을 싫어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매듭을 만약 그대로 두면 시비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그 가운데 자연 이 매듭은 저것이 아니고 저 매듭은 이것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여래께서 오늘날 만약 다 풀어서 매듭이 생기지 않게 하실 것 같으면 곧 이것이다 저것이다 라고 하는 일이 없어져서 오히려 하나라고 이름할 것도 없을 것이거든 여섯이 어떻게 성립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이 풀리면 하나가 없어지는 이치도 그와 같으니라. 네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마음의 성품이 어지러워짐을 따라서 깨닫고 보는 것이 허망하게 생겨나고 그렇게 생긴 허망함이 쉬지 아니하여 보는 놈이 피로해져서 물질의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 마치 눈동자가 피로해 지면 곧 허공의 헛보이는 꽃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맑고 정밀하고 밝은 것에 원인 없이 일체 세간의 산과 강, 이 땅덩어리와 나고 죽음과 열반이 어지럽게 일어나나니 이는 모두가 곧 어지럽고 혼란한 피로에서 생긴뒤 바뀐 헛꽃의 현상이니라."

 

[13] 자세히 보이시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 피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은 매듭지어진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게 풀어 없애야 되겠습니까?"

여래께서 손으로 매듭이 생긴 수건을 잡고서 그 왼쪽을 당기며 아난에게 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다시 손을 돌려 그 오른쪽을 당기면서 또 아난에게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손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당겼으나 마침내 풀지 못하였으니 너는 방편을 베풀어 보아라. 어떻게 해야 풀리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마땅히 매듭 중심서부터 풀면 풀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나니라. 매듭을 풀려거든 매듭 중심에서부터 풀어야 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말하기를 '불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나니 세간과 화합하는 거친 현상들을 취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발명하여 그 근본 원인이 인연한 바를 따라 나오는 것을 깨달으며, 이와 같이 항하사 처럼 많은세계속에 한 방울의 비까지도 그 수효를 알며, 앞에 나타나는 갖가지 현상 가운데 소나무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으며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 것에 대하여 그 까닭을 모두 알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아난아! 너의 마음 속을 따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라. 그 감각기관의 매듭이 만약 풀리면 대상인 현상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모든 허망한 것이 사라져 없어지면 참되지 않음이 어찌 있겠느냐?

아난아! 내가 지금 네게 묻겠는데 이 겁파라수건의 여섯 개의 매듭이 앞에 나타났으니 동시에 매듭을 풀면 한꺼번에 풀릴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매듭이 본래 차례로 맺혀진 것이므로 지금도 마땅히 차례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여섯 개의 매듭이 본체는 같지만 그 매듭은 동시에 맺혀진 것이 아니므로 그 매듭을 푸는데 어떻게 한꺼번에 풀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으로 인하여 생기는 의혹을 풀어 버리는 것도 이와 같나니라. 그 감각기관이 처음 풀어지면 먼저 인공(人空)을 얻고 허공의 성품마져 원만하게 밝아져서 법의 해탈이 이루어지나니 법을 해탈하고 나서 모두가 공하다는 것까지도 생기지 않아야 이것을 보살이 삼마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하나니라."

 

[14] 소리와 색과 향기

아난과 여러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자옵고 지혜로운 깨달음이 원만하게 통해서 의혹이 없어짐을 얻고는 일시에 합장하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고 아뢰기를 "저희들이 오늘에야 몸과 마음이 밝아져서 걸림이 없음을 쾌히 얻었습니다. 비록 다시 하나와 여섯이 없어지는 이치를 깨닫기는 하였사오나 아직도 원만하게 통한 본근(本根)은 깨닫지 못하였사오니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정처없이 헤매면서 여러겁을 외롭게 떠돌다가 무슨 마음 무슨 생각이 부처님의 천륜(天倫)에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마치 어미를 잃어버렸던 젖먹이가 그 어머니를 만난 듯합니다. 만약 다시 이 모임으로 인하여 도가 이루어진다면 얻어들은 비밀스런 말씀이 본래 깨달음과 같아서 듣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겠습니다. 바라옵건댄 오직 큰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에게 신비하고 존엄하신 은혜로서말씀해 주셔서 여래의 최후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여주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고서 물러나와 숨을 죽이고 앉아서 부처님의 은밀한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의 여러 큰 보살들과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큰 아라한에게 널리 구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보살과 아라한이 나의 법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이루었나니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최초의 발심하여 十八계(界)를 깨달았을 적에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한 것이며 어떤 방편으로 삼마지에 들어갔느냐?"

교진여 다섯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녹야원과 계원에 있을 적에 여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고 부처님의 음성에서 사제(四諦)를 깨달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으시므로 제가 먼저 안다고 하였는데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야다(阿若多)'라고 하셨으니, 오묘한 음성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으므로 저는 그 음성으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음성이 으뜸인가 하옵니다."

우바니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도 부처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았더니 청정하지 못한 모양을 보게 하셨으므로 크게 싫어 여의여야겠다는 생각을 내어 모든 물질의 성품을 깨달았나이다. 깨끗지 못한 것과 백골(百骨)과 미세한 티끌을 따라 허공으로 돌아가서 허공과 물질이 둘다 없어져서 더 배울 것이 없는 도를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나사타(尼沙陀)'라고 하셨는데, 색이 라는 대상이 이미 다 없어져서 미묘한 물질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사오매 저는 그 물질의 모양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색신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향엄동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여래께서 저에게 모든 작위가 있는 형상을 자세히 살피라고 하심을 듣고서 제가 그때 부처님에게 하직하고 깨끗한 방에서 편안히 생각에 잠겼다가 여러 비구가 침수향 태우는 것을 보았더니 그 향기가 은연중에 코 속으로 들어오거늘 제가 그 향기는 나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요 불도 아니어서 가도 닿는 데가 없으며 와도 좇아온 데가 없음을 관하였나이다. 이로 인하여 뜻이 사라져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짐을 발명하였사오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향엄(香嚴)'이란 호를 주셨사온데 대상인 향기가 문득 사라지고 오묘한 향기가 은밀하고 원만하거늘 저는 그 향엄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사오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향기가 으뜸인가 하나이다."

 

[15] 맛과 감촉과 법

약왕과 약상 두 법왕자가 모임 가운데 있다가 오백의 범천(梵天)과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의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입으로 이 사바세계의 풀, 나무, 쇠붙이, 돌을 맛본 그 가지 수가 무릇 十만 八천이나 되니 이와같이 쓰고, 시고,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것 등의 맛과 아울러 화합해서 생긴 맛, 함께 생긴 맛, 변하여 생기는 맛과 찬 맛, 더운 맛, 그리고 독이 있고, 없고를 두루 맛보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여래를 받들어 모시면서 맛의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몸과 마음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으며, 맛의 원인을 분별하여 이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 저희 형제를 인가하시어 약왕, 약상 두 보살로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와 지금 모임 중에서 법왕자가 되어서 맛으로 인해 깨닫고서 보살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으로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발타바라가 그 도반인 열 여섯 명의 개사(開士)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희들이 앞서 위음불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출가한 후 스님들과 목욕할 적에 차례를 따라 욕실에 들어갔었는데 홀연히 물로 인하여 깨닫고서 이미 때를 씻은 것도 아니며, 또한 몸을 씻는 것도 아니며, 중간이 편안하여 지닌 것이 없음을 얻었습니다. 숙세의 습기를 잊지 못해서 지금에 와서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니, 부처님께서 저를 '발타바라'라고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옵고 오묘한 접촉으로 밝아져서 불자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접촉으로 인하여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마하가섭과 자금광비구니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지나간 세월에 이 세계 속에 있을 적에 세상에 나온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日月燈)'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모시면서 법을 듣고 닦아 익혔더니 그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에는 사리를 공양하면서 등을 켜 계속 밝혔사오며, 자단금(紫檀金)으로 부처님의 형상에 도금하였더니 그후 부터는 세세생생에 몸에 항상 자금광 빛이 모여 원만하였나이다. 이 자금광 비구니 등은 곧 저의 권속이니 그때 다 함께 발심하였나이다. 저는 세간의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이 변하여 없어짐을 보고서 오직 비고 고요함으로써 멸진정(滅盡定)을 닦아서 몸과 마음이 百, 天 겁을 지내어도 마치 손가락을 퉁기는 기간과 같이 짧았으므로 저는 공(空)한 법으로써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두타(頭陀)에 최고라고 하셨습니다. 오묘한 법이 밝게 열려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모두 다 소멸시켰으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법으로 인함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16] 눈과 코와 혀

아나율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 출가하여 늘 수면을 즐기더니 여래께서 저를 꾸짖되 축생의 무리가 된다고 하시므로 저는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자옵고 울면서 자책하여 七일을 잠자지 않았더니 두 눈이 멀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낙견조명금강삼매(樂見照明金剛三昧)를 가르쳐 주셨으므로 저는 눈으로는 시방세계를 보지 못하지만 참다운 정기가 환희 열려서 마치 손바닥에 있는 과일을 보는 듯하였더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라한을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보는 것을 돌이켜 근본을 따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주리반특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많이 듣는 성품이 없었더니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서 여래의 비밀하신 게송을 기억하려는데 百일 동안이나 앞에 것을 외우면 뒤에 것을 잊고 뒤에 것을 외우면 앞에 것을 잊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 저에게 편안히 있으면서 숨쉬는 것을 조절하라고 하시므로 제가 그때에 숨쉬는 것을 관하여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모든 행동의 찰나를 미세한 것까지 다 연구하여 그 마음이 환해져서 크게 걸림이 없음을 얻었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없어지는 데까지 이르러 아라한을 이루어서 부처님의 자리 아래에 머물었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숨쉬는 것을 돌려 공(空)을 따름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교범바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리기를 "저는 입으로 죄를 지었으니 과거 겁에 스님을 조롱한 탓으로 세세생생에 소처럼 되새김하는 병이 있었거늘 여래께서 저에게 일정한 맛의 청정한 마음의 법문을 가르쳐 주셨으므로 저는 잡념이 없어질 수 있어서 삼마지에 들어가 맛을 아는 것이 실체도 아니고 물질도 아님을 관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생각 동안에 세간에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해탈하고 밖으로는 세계를 버려서 삼계[三有]를 멀리 벗어남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아서 때와 먼지를 소멸하여 법안이 맑아져서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친히 인가하시어 배울 것이 없는 도에 올랐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을 돌이켜 지(知)로 돌아감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7] 몸과 뜻

필릉가바차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으로 발심하고서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 자주 여래께서 세간에는 즐길만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옵고 성중에서 걸식한 적에 마음으로 법문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길에서 독한 가시에 발을 찔리고 온 몸이 매우 아팠습니다. 제가 느낌이 있으므로 이렇게 아픔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록 깨달음이 있어 아픔을 느끼지만 깨달음의 청정한 마음에는 아픔과 아픔을 느끼는 것이 없으므로 제가 또 생각하기를 이 한 몸에 어찌 두 개의 깨달음이 있으랴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은 지 오래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이 문득 공(空)해져서 三, 七일 동안에 모든 번뇌가 다 없어져서 아라한을 이루고서 친히 인가하심을 받아 더 배울 것이 없음을 발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순수하게 깨달아 몸을 버리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劫 이전부터 마음에 걸림이 없음을 얻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았음을 스스로 기억합니다. 처음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비고 고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니 이와 같이 시방에 이르기까지도 공(空)하여졌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공한 성품을 증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깨닫는 성품이 참으로 공한 것임을 밝혀 주셔서 공한 성품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아라한을 증득하고, 여래의 보명공해(寶明空海)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아졌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시어 해탈한 빈 성품에 저보다 더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모든 현상이 아닌데에 들어가고 능히 아니라는 것과 아니라고 여겨 질 대상이 다하여 법을 돌리어 없는데로 들어가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8] 안식(眼識)과 이식(耳識)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청정하여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사와 같사오니, 세간과 출세간에 갖가지 변화를 한번 보면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을 얻었습니다. 저는 길로 다니다가 가섭파 형제가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한함을 깨닫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보고 깨닫고 하는 것이 밝고 원만해서 큰 두려움이 없음을 얻어 부처님의 장자가 되었으니, 부처님의 입을 좇아 났으며 법을 좇아 화생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광명을 발하여 그 광명이 극에 달한 지견(知見)이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보현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이미 일찍부터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여래의 법왕자가 되었사오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보살근기(菩薩根機)가 있는 제자들을 가르칠 적에 보현행을 닦으라고 하셨으니 이는 저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듣는 방법으로써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지견(知見)을 분별해서 만약 다른 곳의 항하사 같이 많은 세계에 어떤 한 중생이라도 마음으로 보현행을 발명하는 자가 있으면 저는 그때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백억의 몸으로 분신하여 그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겠사오니, 비록 그 사람이 업장이 깊어서 저를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몰래 그 사람의 이마를 만지며 옹호하고 편안하게 위로해서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는 본래의 원인을 말하겠사오니 마음으로 듣는 것이 밝게 발하여 분별이 자제한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9] 비식(鼻識)과 설식(舌識)

손타라난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서 비록 계율은 갖추었으나 삼마지에서 마음이 항상 흩어지고 움직여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음을 얻지 못하였더니 세존께서 저와 구치라를 시켜서 코 끝의 흰 부분을 관하게 하시거늘 저는 처음부터 자세히 관해서 三, 七일을 지나서야 코 속의 기운을 보게 되었는데 들고 나고 하는 것이 마치 연기와 같다가 몸과 마음이 안으로 밝아져서 세계에 원만하게 통하고 두루 비어서 청정해진 것이 마치 유리처럼 맑으니, 연기와 모양이 차츰 사라지고 코의 숨이 희게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겨서 들고 나는 숨이 변하여 광명이 되어서 시방세계를 비추어서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보리를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오래도록 숨이 사라져서 광명을 발하고, 광명이 원만하여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말 재주가 뛰어나서 괴로움과 허공에 대하여 말하고 실상을 깊이 깨달았으며, 그처럼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여래의 비밀스러운 법문을 제가 대중 가운데서 미묘하게 열어 보여 두려움이 없음을 증득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큰 말재주가 있음을 아시고 음성륜(音聲輪)으로써 저로 하여금 발양(發揚)하게 하셨는데 저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을 도와 법륜을 굴리면서 사자후(獅子吼)로 인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기를 설법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법음으로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고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소멸시키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0] 신식(身識)과 의식(意識)

우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친히 부처님을 따라 성을 넘어 출가하여 여래께서 六년동안 괴로움을 견디시며 모든 마구니들을 항복받고 외도들을 제압하여 세간의 탐욕 따위외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서 해탈하심을 친히 보시고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율을 받들어 이렇게 三천 가지 행동과 八만 가지 미세한 성업(性業)과 차업(遮業)이 모두 청정해졌으며 몸과 마음이 고요해져서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저는 여래의 대중 가운데 규율을 세우는 책임을 맡았으므로 부처님께서 저의 마음을 인가하여 계를 지키고 몸을 닦는데는 대중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을 단속하여 몸이 자재하게 되고, 다음에는 마음을 단속하여 마음이 통달한 연후에 몸과 마음이 모두 통하여 이롭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목건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길에서 우루빈나와 가야, 나제인 세 가섭을 만나 여래의 인연법에 대한 깊은 이치를 말하는 것을 듣고 제가 갑자기 발심하여 크게 통달하게 되었으니, 여래께서 저에게 가사가 몸에 입혀지고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시방세계에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었으며 신통을 발휘함이 으뜸임을 미루어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어찌 세존뿐이겠습니까? 시방의 여래들께서도 저의 신통력이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맑은 데로 돌아가 마음의 빛을 발함이 마치 흐린 물을 가라앉혀서 오래되면 맑고 깨끗하게 되는 듯함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1] 불(火大)과 흙(地大)

오추슬마(烏芻瑟摩)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항상 과거를 생각하니 오랜 겁전에 탐욕스러운 성품이 많았더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공왕'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덩이리가 된다'고 하시며 저로 하여금 백해(百骸)와 사지의 따뜻한 기운을 두루 관하라고 하시거늘 신비한 광명이 안에서 엉키면서 많은 음심이 변하여 지혜의 불을 성취하니, 그로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저를 '화두(火頭)'라고 부르셨는데 저는 화광삼매(火光三昧)의 힘으로 아라한이 되었으니, 마음에 큰 서원을 발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도를 성취하려 하시거든 제가 역사가 되어 마구니와 원수를 친히 항복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의 따뜻한 감촉이 걸림이 없이 유통함을 자세히 관하여 모든 정기가 새는 것이 이미 소멸되어서 큰 보배의 불꽃이 생겨나서 위없는 깨달음에 오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지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보광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는데 제가 그때 비구가 되어서 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과 나루에서 산과 길이 험악하고 좁아서 여법(如法)하지 아니하여 수레와 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손상시켜서 제가 모두 메워서 평탄하게 하며 혹은 다리를 놓기도 하고 흙과 모래를 져다 메우기도 하면서 이렇게 노력하기를 한량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중생이 복잡한 곳에서 삯군을 얻어 짐을 지우려고 하면 제가 먼저 짐을 지고 그 목적지까서 가서 짐을 내려 놓고는 곧 돌아오고 삯은 받지 않았으며, 비사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는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들었는데 저는 그때에도 짐군이 되어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일전만 받았으며, 또 수레를 멘 어떤 소가 흙구렁에 빠지게 되면 저의 신통력으로 그 바퀴를 밀어 주어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국왕이 부처님을 맞아 재를 베풀었는데 제가 그때에 길을 평탄하게 닦아놓고 부처님을 기다렸더니 비사여래께서 정수리를 만지시며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평탄하게 가지면 온 세계의 땅이 다 평탄해질 것이라'고 하시므로 제가 곧 마음이 열려서 몸에 있는 미세한 티끌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미세한 티끌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아서 미세한 티끌과 자성이 서로 접촉되지 않았으며, 마침내 도병(刀兵)까지도 접촉됨이 없어서 저는 법의 성품에서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을 돌리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께서 묘연화의 불지견지(佛知見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제가 먼저 증명하여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과 세계의 두 미세한 티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서 본래 여래장에서 허망하게 미세한 티끌이 생긴 것임을 자세하게 관찰하여서 그 미세한 티끌이 사라지고 지혜가 원만하게 되어 위없는 도를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2] 물(水大)

월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 보니 지난 옛적 항하사 같이 많은 겁(劫)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 하셨으니 그 이름이 '수천(水天)'이었습니다. 모든 보살들을 가르치셔서 물의 정밀한 성품을 닦고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되 몸 속에 있는 물의 성품이 서로 빼앗음이 없어서 처음으로 눈물과 춤으로부터 진액, 정액, 피와 대변, 소변에 이르기까지 몸 속에 돌아다니는 모든 물의 성품은 동일한 것임을 관하여 그 물이 몸 속에 있는 것과 세계밖에 부당왕찰(浮幢王刹)의 향수해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처음 그 관법을 이루어서 다만 물만 보았을 뿐 몸이 없어짐은 얻지 못하여 비구가 되었으므로 방 안에서 편안히 참선을 하고 있었는데 저의 제자가 창문을 뚫고 방 안을 엿보더니 맑은 물만 방에 가득할 뿐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거늘 어린 것이 무지하여 자갈을 가져 다가 물 속에 던져 소리가 나게 하고는 힐끔힐끔 돌아보며 떠나갔습니다. 제가 선정에서 나온 뒤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기가 마치 사리불이 원한의 귀신을 만난 것과 같았으므로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이미 아라한의 도를 얻어서 오래전부터 병의 인연을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오늘 갑자기 가슴이 이렇게 아픈가? 아마도 퇴보하여 잃게 되는 것이 아니려나 하였는데 그때 동자가 제 앞에 와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일을 말하였습니다. 저는 곧 말해주기를 '네가 다시 물을 보거든 즉시 문을 열고 그 물 속에 들어가서 자갈을 건져내라'고 하였더니 동자가 시키는대로 하여 다음에 선정에 들어갔을 적에 다시 물을 보니 자갈이 완연하거늘 문을 열고 건져 내었더니 제가 그 다음 선정에서 나오니 몸이 처음과 같았습니다. 그후 한량 없는 부처님을 만났으되 산해자재통왕여래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몸이 없어져서 시방세계의 모든 향수해로 더불어 성품이 참다운 허공에 합하여 둘도 없고 차별도 없으므로 지금 여래에게 '동진'이란 이름을 얻어 보살의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물의 성품이 한결같이 흘러 통하여 무생인을 얻어서 보살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3] 바람(風大)과 허공(空大)

유리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날 항하사 겁 이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무량성'이었습니다. 보살께서 본래 깨달으신 오묘한 마음을 열어 보이시되 이 세계와 중생의 몸이 모두가 허망한 인연인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임을 관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경계가 편안히 성립된 것과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몸의 움직이는 형상과 마음이움직이는 생각을 관하였으되 모든 움직임이 둘이 아니어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에 이 여러가지 움직이는 성품이 와도 좇아 온 데가 없고 가도 갈 곳이 없어서 시방의 미세한 티끌 같은 뒤바뀐 중생들이 다같이 허망해서 삼천 대천의 세계 속에 있는 중생들은 마치 한 그릇 속에 담아놓은 백 마리의 모기가 앵앵거리고 시끄럽게 울면서 분촌만한 속에서 고동치고 발광하며 소란스럽게 구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을 만난지 오래지 아니하여 무생인을 얻었는데 그때에 마음이 열려서 동방의 부동불국(不動佛國)을 보고서 법왕자가 되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섬겼으며 몸과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환하게 통해서 걸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바람의 힘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관찰하여 보리심을 깨닫고 삼마지에 들어가 시방의 부처님과 합해서 오묘한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허공장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제가 여래와 함께 정광 부처님 처소에서 끝이 없는 몸을 얻었습니다. 그때에 손에는 네 개의 큰 보배구슬을 들고서 시방에 미세한 티끌 같이 많은 부처님 세계를 비추어 허공으로 변화시켰으며, 또 스스로의 마음에 크고 둥근 거울을 나타내서 그 속에서 열 가지 미묘한 보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끝없는 허공의 모든 세계를 비쳐주고는 거울 속으로 들어왔고 내 몸에 들어와서는 몸이 허공과 같아서 서로 방해하거나 걸림이 없으며 몸이 작은 먼지 같이 많은 국토에 들어갈 수가 있어서 널리 불사를 행하여 크게 순하게 따름을 얻으니, 이 큰 신비한 힘은 네 가지 원소는 의지한 데가 없어서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고없어지는 것이라서 허공과 다름이 없으며, 불국과 본래 같은 것임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데에서 발명하여 무생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허공이 끝이없음을 관찰하여 삼마지에 들어가서 오묘한 힘이 원만하고 밝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4] 의식(識大)와 의식(根大)

미륵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보니 지나간 옛적에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겁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게 되어서 마음에는 세상의 명성을 소중하게 여겨 족성(族姓)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저로 하여금 유심식(唯心識) 선정을 닦아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겁을 지나면서 이 삼매로써 항하사처럼 많은 부처님을 섬겼더니 세상의 명성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없어졌고, 연등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기에 이르러서는 제가 위없이 오묘하고 원만한 식심 삼매를 증득하여 허공에 가득한 여래와 국 토의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것까지가 모두 제 마음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것이 오직 심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의식의 성품이 한량없는 여래를 배출하나니 지금 수기를 얻어서 부처님 지위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시방이 오직 의식으로 인하였음을 자세히 관하여 의식하는 마음이 원만하고 밝아져서 원만하게 성취한 진실에 들어가 의타(依他)와 변계집을 멀리 벗어나서 무생인을 증득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세지보살이 그의 동료 쉰 둘이나 되는 보살들로 더불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항하사 겁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그 이름이 '무광량'이었으며, 열 두 분 여래가 일겁(一劫)동안 계속하여 나셨는데 그 마지막 부처님의 이름이 '초일월광'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이 저에게 염불삼매를 가르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은 기억하기를 전념하나 다른 한 사람은 잊어버리기를 전념하면 이러한 두 사람은 만약 서로 만났더라도 만난 것이 아니며 보았더라도 본 것이 아니거니와 두 사람이 서로 기억해서 이렇게 기억하는 두 생각이 깊으면 이와 같이 이생에서 저생에 이르도록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리니, 시방 여래는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심이 마치 어미가 아들을 생각하듯 하시나니 만약 아들이 도망하여 간다면 비록 생각한들 무엇하겠느냐? 아들이 만약 어머니를 생각함이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할 때처럼 한다면 어미와 아들이 여러 생을 지내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면서 염불하면 지금이나 뒷 세상에 반드시 부처님을 보게 되어 부처님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마음이 열려지는 것이 마치 향기를 물들이는 사람의 몸에 향기가 밴 것과 같을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향광엄장(香光嚴蔣)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본래의 인지(因地)에서 염불하는 마음으로 무생인에 들어갔고, 지금 이 세계에서도 염불하는 사람을 이끌어다가 정토에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특별한 것을 가림이 없어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모두 단속하면서 깨끗한 생각이 서로 계속하여 삼마지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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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首楞嚴經 券 六

그때에 관세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생각해보니 옛날 수없이 많은 항하사 겁 이전 어느 때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그 이름이 관세음 보살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 하였더니 그 부처님께서 저를 가르치시되 듣는 것으로부터 생각하고 닦아서 삼마지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듣는 가운데에 흐름에 들어가되 처소가 없어서 들어간 곳이 이미 고요해져서 움직이고 고요한두 모양이 또렷이 생기지 아니하거늘 이와 같이 점점 더해서 듣는놈과 들을 대상이 다 끊어지며 듣는 놈이 다 끊어진 것도 머물지 아니하여 깨닫는 놈과 깨달을 대상이 공(空)하였으며 공(空)한 깨달음이 아주 원만하여 공한 것도 공할 것도 없어졌더니 나고 없어짐이 이미 끊어진지라 끊어져 고요함이 앞에 나타나더이다.

홀연히 세간과 출세간을 초월하여 시방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두 가지 수승함을 얻었으니, 하나는 위로 시방에 모든 부처님의 본각인 오묘한 마음을 합하여 부처님의 인자하신 힘과 동일하게 된 것이고, 둘째는 아래로 시방의 여섯 갈래의 모든 중생과 합하여 중생으로 더불어 비앙(悲仰)이 동일함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관음여래를 공양하므로 인해서 그 여래께서 저에게 허깨비와 같이 듣는 놈을 비추어 보고, 듣는 놈을 닦는 금강삼매를 일러 주심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과 사랑스런 힘이 같아졌으므로 저의 몸으로 하여금 설흔 두 가지 응신을 이루어서 여러 국토에 들어갈 수 있게 하여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삼마지에 들어가서 새는 것이 없어지는 수행을 하여 수승한 깨달음이 원만하게 나타나면 저는 그 사람의 앞에서 부처님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하여 설법해서 그로 하여금 해탈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유학들이 고요하고 오묘하게 밝아서 열 두 가지 인연을 끊고서 인 연이 끊긴 수승한 성품에 수승하고 오묘한 것이 원만하게 나타나면 저는 그의 앞에 벽지불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여러 유학들이 사제[苦, 集, 滅, 道]가 공한 것임을 깨달아서 도를 닦아 멸함에 들어가 수승한 성품이 원만하게 나타나면 저는 그의 앞에 성문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욕심을 밝게 깨달아서 욕심의 티끌을 범하지 아니하고 욕심덩어리의 이 몸이 청정 해지면 저는 그의 앞에 범왕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천주(天主)가 되어 여러 하늘을 통솔하고자 하면 저는 그 앞에 제석(帝釋)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욕심으로 뭉쳐진 몸둥이가 자유롭게 되어서 시방에 나다니게 되면 나는 그의 앞에 자재천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욕심으로 뭉쳐진 몸이 자재하게 되어 허공에 날아다니거든 저는 그의 앞에 대자재천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귀신을 통솔하여 국토를 구호하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하늘의 대장군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세계를 통솔하여 중생을 보호하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사천왕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천궁에 나서 다시 귀신을 부리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앞에 서천왕국 태자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 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인간 세상에 왕이 되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인간 세상의 왕으로 나타나서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중생이 족성의 맹주가 되어 세상에서 추앙받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부자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유명한 말을 하여 청정하게 살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거사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국토를 다스려서 나라를 쪼개어 제도를 바로 잡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재상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모든 중생이 술수로서 자신을 호위하며 살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바라문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남자가 배우기를 좋아하여 출가 하여 계율을 지키면 저는 그의 앞에 비구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여자가 배우기를 좋아하여 출가하여 금하는 계율을 지키면 저는 그의 앞에 비구니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남자가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기를 즐거워하면 저는 그의 앞에 우바새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 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여자가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키면 저는 그의 앞에 우바이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여인이 내부 살림으로 입신하여 가정과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 저는 그의 앞에 여주인의 몸이니 왕의 부인 혹은 대신의 부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정숙한 사내가 남근(男根)을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하면 저는 그의 앞에 동남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처녀가 처녀의 몸으로 있기를 좋아하여 난폭한 침략을 당하지 않으려고 하면 저는 그의 앞에 동녀의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천룡,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 사람아닌 것 등이 그 무리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면 저는 그의 앞에 모두 그가 원하는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사오며, 만약 어떤 중생이 역사(力士)가 되어서 직접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고자 하면 저는 그의 앞에 금강을 잡은 큰 힘을 지닌 몸으로 나타나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나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오묘하고 청정한 서른 두 가지 응신으로 국토에 들어가는 몸이라 하나니 모두가 삼매에서 듣는 놈을 훈습하고 듣는 놈을 닦아 작위가 없는 오묘한 힘으로써 자재함을 성취한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또다시 이 듣는 놈을 훈습하고 듣는 놈을 닦는 금강삼매의 작위가 없이 오묘한 힘으로 시방 삼세 육도의 모든 중생으로 더불어 애절한 우러름이 같으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저의 몸과 마음에서 열 네 가지 두려움 없는 공덕을 얻게 하겠나이다.

첫째는 제가 스스로 소리를 관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서 관 하는 놈을 관하였으므로 시방 세계에서 고뇌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그 음성을 관하여 해탈을 얻게 하겠으며, 둘째는 지견을 돌이켜 회복하였으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설사 큰 불 속에 들어 가더라도 그 불이 태우지 못하게 하겠으며, 셋째는 보고 듣는 놈을 돌이켜 회복하였으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큰 물에 떠내려 가더라도 그 물이 빠뜨리지 못하게 하겠으며, 넷째는 허망한 생각을 끊어 없애서 마음에 살해할 생각이 없으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귀신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그 귀신이 해칠 수 없도록 하겠으며, 다섯째는 듣는 놈을 훈습하여 그 듣는 성품을 성취시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없애고 다시 회복시켜 소리를 듣는 것과 같으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피해를 당하게 되더라도 칼이 동강동강 부러져서 병장기로 하여금 물을 베이는 듯하고 또한 빛을 부는 듯하여 본래의 성품이 흔들림이 없게 하겠으며, 여섯 째는 듣는 놈을 훈습함이 정밀하고 밝아서 그 밝음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모든 어두움이 그 성품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야차와 나찰과 구반다 귀신과 비사자와 부단나 등이 비록 그 곁에 가까이 가더라도 눈으로 볼 수 없게 하겠으며, 일곱째는 소리의 성품이 원만하게 사라지고 보고 듣는 놈을 돌이켜 들어가서 모든 허망한 대상인 물질의 현상을 여의었으므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구금하여 얽어매고 가두고 구속함이 조금도 붙을 수 없게 하겠으며, 여덟째는 소리가 없어지고 들음이 원만하게 되어 인자한 힘을 두루 내므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험악한 길을 지나게 하더라도 도적이 겁탈할 수 없게 하겠으며, 아홉째는 들음을 훈습하고 대상인 물질을 여의어서 색(色)이 겁탈하지 못하므로 일체의 많은 음욕으로 성품에 장애가 생긴 모든 아전가로 하여금 탐욕을 영원히 여의도록 하겠으며, 열째는 순수한 소리는 허망한 티끌이 없어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원융해져서 상대하는 놈과 상대될 대상이 없으므로 일체의 성내고 한스러운 성품의 장애가 있는 모든 아전가로 하여금 진노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겠으며, 열 한 번째는 허망한 티끌이 사그러지고 밝음을 돌이켜서 법계와 몸과 마음이 마치 유리처럼 맑아서 밝게 사무쳐 막힘이 없으므로 일체의 어둡고 둔한 성품이 막힌 모든 아전가로 하여금 어리석음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겠으며, 열 두 번째는 형상이 융화하고 듣는 놈을 회복시켜 도량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세간에 들어가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아니하여 시방에 두루하여 작은 티끌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각각 부처님의 곁에서 법왕자가 되었으므로 법계의 자식이 없는 중생들이 남자를 구하는 자로 하여금 복덕이 있고 지혜가 많은 남자가 태어나게 하겠으며, 열 세 번째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원만하게 통해서 밝게 비침이 둘이 아니므로 시방의 법계를 포함하여 대원경(大圓鏡)과 공여래장(空如來臧)을 성립하여 시방의 작은 먼지같이 많은 여래의 비밀스러운 법문을 순종하여 그를 이어받아 잃지 않았으므로 법계에 자식이 없는 중생들이 여자를 구하려는 자로 하여금 단정하고 복덕이 있고 유순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공경할만한 잘 생긴 딸을 탄생하게 하겠으며, 열 넷 째는 이 삼천세계의 백억이나 되는 해와 달에서 세간에 현재 머무는 모든 법왕자가 六十二억의 항하강 모래 수와 같이 많이 있으니 법을 닦고 모범을 보여서 중생을 교화시키며 중생을 잘 따르게 하는 방편과 지혜가 각각 같지 않지만, 제가 얻은 원만하게 통한 근본이 오묘한 귀로부터 발한 다음에 몸과 마음이 미묘하게 포용해서 법계에 두루하였으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저의 이름만 불러도 저들이 六十二억의 법왕자를 함께 부르는 것과 두 사람의 복덕이 똑같아서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한 사람의 이름이 저 많은 이의 이름과 다르지 아니한 것은 제가 닦아 익혀서 참으로 원만하게 통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열 네 가지 두려움 없는 힘을 베풀어 중생에게 복을 주는 것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이시여! 저는 이미 이 원만하게 통함을 얻어서 위없는 도를 닦아 증득하였으므로 또 네 가지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할 작위없는 오묘한 덕을 얻을 수 있었사오니, 첫째는 제가 처음으로 오묘하고 오묘한 듣는 마음을 얻고서 마음이 청밀해지고 들음을 버릴 수가 있게 되어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따로이 막히는 것이 없어서 하나로 원만하게 융통하고 청정한 보배의 깨달음을 이루었으므로 저는 여러가지 오묘한 용모를 나타내며 그지없는 비밀스러운 신주를 말하노니, 그 가운데 혹 머리가 하나나 셋 또는 다섯, 일곱, 아홉, 열 하나로 나타나기도 하며 이와 같이 一백 八에서 부터 천, 만, 八만 四천의 삭가라 머리를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팔이 둘, 넷, 여섯, 여덟, 열, 열 둘로 나타나며 이와 같이 一백 八에서부터 천, 만, 八만 四천의 모타라 팔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 눈이 둘, 셋, 넷,다섯, 여섯, 아홉으로 나타나며 이와 같이 一백 八에서부터 천, 만, 八만 四천의 청정한 보배의 눈을 나타내기도 해서 때로는 자비, 때로는 위엄, 때로는 바른 선정, 때로는 지혜로 중생을 구호하되 크게 자재함을 얻게 하겠나이다.

둘째는 제가 듣고 생각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에서 벗어남이 마치 소리가 담을 넘어가는 것과 같아서 이를 막을 수가 없으므로 저의 오묘한 능력이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어 갖가지 주문을 외우되 그 형상과 그 주문이 두려움이 없음으로써 중생에게 베푸나니 이런 때문에 시방의 작은 티끌같이 많은 국토에서 모두 저를 이름하여 두려움 없이 베푸는 자라고 합니다

셋째는 제가 본래 오묘하고 원만하게 통한 청정한 본근(本根)을 닦고 익힘으로 말미암아 다니는 바 세계의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몸과 귀중한 보배를 버리고서 저의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줌을 구하게 하였습니다.

넷째는 제가 부처님의 마음을 얻어 최후의 것까지 증득하고 여러가지 귀중한 보배로써 시방의 여래를 공양하며, 그 밖에 법계의 육도중생에게까지 미치어서 아내를 구하면 아내를 얻게하고, 아들을 구하면 아들을 얻게 하고, 삼매를 구하면 삼매를 얻게 하고, 오래 살기를 구하면 오래 삶을 얻게 하며, 이와 같이 큰 열반을 구하면 큰 열반까지도 얻게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귀를 따라 원만하게 비추는 삼매로 말미암아 반연하는 마음이 자재하게 되어서 흐름에 들어가는 현상으로 인하여 삼마지를 얻고 보리를 성취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 부처님께서 제가 원만하게 통하는 법문을 훌륭하게 증득하였다고 찬탄하시고 큰 모임에서 저에게 수기하여 '관세음'이라 하였으니 이는 저의 들음을 관하므로 말미암아서 시방이 원만하게 밝았으므로 관세음이란 이름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사자좌에서 온몸으로부터 보배의 광명을 내시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여러 법왕자보살들의 이마 위에 잇대게 하시고 저 모든 여래도 온 몸에서 함께 보배의 빛을 내시어 티끌처럼 많은 곳을 거쳐와서 부처님의 정상에 잇대시며 아울러 모임 중의 모든 큰 보살과 아라한에게까지 잇대었으니, 숲 속의 나무와 웅덩이 늪까지도 모두 진리를 연설하며 광명이 교차되어 서로 펼쳐짐이 마치 보배의 실로 짠 그물과 같거늘 이 모든 대중들이 일찌기 없었던 일을 얻었으며 모두가 널리 금강삼매를 얻었다. 그때에 하늘에서 온갖 보배 연꽃이 비처럼 내려서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것이 찬란하게 사이사이 섞였으며, 시방의 허공이 일곱 가지 보배의 색깔을 이루었으니 이 사바세계의 땅덩이와 산과 강은 일제히 보이지 않고 오직 보이는 것은 시방의 작은 티끌처럼 많은 국토가 합하여 한 세계가 된 것이며 범패와 노래 소리가 자연히 울려 퍼졌다.

그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법왕자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이 二十五명의 배울 것이 없는 모든 보살들과 아라한을 관찰하여라, 각각 최초의 도를 이룬 방편을 말하되 모두 진실하고 원만하게 통함을 닦았다고 하였나니 그들의 수행은 진실로 우열도 앞뒤의 차별도 없는 것이겠으나 내가 지금 아난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하노니 스물 다섯 가지 수행 중에서 어느 것이 그의 근기에 적당하겠으며, 그리고 내가 멸도한 뒤에 이 세계의 중생들이 보살승에 들어가서 위없는 도를 구하려면 어떤 방편의 문이라야 쉽게 성취할 수 있겠느냐?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의 위엄스럽고 신통함을 받들어 게송을 읊어 부처님에게 대답하였다.

깨달음의 바다 그 성품 맑고 둥글어 둥글고 맑은 꺼달음이 원래 오묘하더이다.

원래 밝음이 비치어 대상이 생기니 그 대상이 생기면 밝은 성품이 없어지네.

혼미하고 허공이 있거늘 허공을 의지하여 세계가 성립되네.

생각이 엉켜서 국토가 이뤄지고 허망한 깨달음이 중생이 되나이다.

허공이 대각(大覺) 중에서 생겨남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는 듯하니 새는 것이 있는 작은 티끌 같이 많은 국토가 모두 허공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네. 물거품이 없어지면 허공도 본래 없을 것이거든 더구나 다시 삼유(三有)가 있겠습니까?

본원(本元)으로 돌아가면 성품이 둘이 아니나 돌아가는 방편으로는 여러 문이 있다네. 성인의 성품으로는 통하지 않음이 없어 순하고 거스림이 모두가 방편이지만 초심자로서 삼매에 들어갈적엔 더디고 빠름이 같지 않다네. 색(色)은 생각이 맺히어 이루어진 티끌 정밀하고 또렷함으로도 통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명철(明哲)하지 못한 것으로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음성은 섞여진 언어이므로 다만 이름과 구절과 의미 뿐이니 한마디 말이 일체를 포함할 수 없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향기는 코와 만나야만 느낄 수 있고 코를 떠나서는 원래가 있는 것이 아니니 항상 깨닫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맛보는 성품은 본래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서 맛볼 때에만 있는 것이니 그 느낌이 항상한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감촉은 감촉하는 대상으로 인해 느끼고 그 감촉의 대상이 없으면 감촉을 느낄 수가 없나니 합하고 여읨에 성품이 일정치 않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은 내진(內塵)이라고 하는데 내진에 의한 것이면 반드시 처소가 있으리니 주체와 객체가 널리 통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는 성품이 밝다고 하여도 앞만 밝고 뒤는 밝지 못하여 사유(四維)에서 하나 반이 모자라거니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로 숨 쉬는 것은 들고 남에 통하기는 하나 교차하는 순간에는 기운이 없어 연속하여 들어가지 못하거니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혀는 무단히 들어가지 않는지라맛을 통해야만 느낌이 생기나니 그 맛이 없으면 느끼는 것이 없게 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몸은 감촉하는 대상과 같아서 각각 원만하게 깨닫고 보지 못하나니몸과 감촉의 한계가 있어 서로 합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지근(知根)은 어지러운 생각이 섞이어 밝은 지혜를 보지 못하나니 허망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는 의식은 세 가지 조화가 섞인 것이니 근본을 따져보면 실상이 아니니 자체가 애당초 결정됨이 없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들음이 시방세계에 통하는 것은 큰 인연의 힘에서 생긴 것이니 초심자로는 들어갈 수가 없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에 생각을 두라 함은 본래가 방편이므로 다만 마음에 붙들어서 머물게 하심이니 머무는 것은 마음이 머무는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을 설하여 말과 글로 희롱함은 깨달아 앎을 먼저 이룬 것이니 말과 글귀는 샘이 없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지킴은 몸만을 단속하는 것 몸이 아니면 단속할 것이 없으니 원래가 일체에 두루하지 아니한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통은 본래 속세의 인연이니 법분별(法分別)과 무슨 관계가 있으오리까?

생각과 인연은 물질을 여읜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마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땅의 성품으로써 관찰하건댄 굳게 막혀서 통달함이 아니며 작위가 있으면 성인의 성품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물의 성품으로써 관찰하건댄 상념(想念)은 진실함이 아니고 여여(如如)는 느끼고 보는 대상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불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있음을 싫어함이 참으로 여읜 것이 아니며 초심자에게 맞는 방편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바람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움직이고 고요함이 상대가 없지 아니하니 상대가 있음은 위없는 깨달음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허공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혼둔(昏鈍)한 것이지 애당초 깨달음이 아니니 깨달음이 없는 것은 보리와 다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의식의 성품으로 관찰하건댄 관찰할 의식이 항상 머물지 아니하며 마음을 붙들어 둔다는 것이 허망한 것이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행동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며 생각하는 성품은 본래 나고 죽는 것이니 인과가 지금 다르게 느껴지거늘 어떻게 원만하게 통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금 세존에게 아뢰옵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시니 이곳에서 진실한 가르침의 실체는청정함이 소리를 듣는데 있는 듯하오니 삼마지를 취하고자 하면 사실 듣는 것으로부터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하나니 훌륭하여라! 관세음이여!

항하사 처럼 수없이 오랜 겁 가운데 작은 티끌처럼 많은 불국에 들어가서 크게 자재하는 신력을 얻어 두려움 없음을 중생에게 베푸나니 오묘한 소리의 관세음과 범음(梵音)과 해조음(海潮音)으로 세상을 구제하여 다 편안케 하며 세상을 벗어나 항상 머무름을 얻게 하옵나이다.

제가 지금 여래에게 아뢰옵나니 관음께서 말씀한 것과 같아서 비유하면 사람들이 조용히 쉬고 있을 때 시방에서 한꺼번에 북을 치면 열 곳의 소리를 일시에 듣는 것과 같나니 이는 곧 원만한 진실인가 하나이다.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며 입과 코도 역시 마찬가지일세.

몸은 접촉하는 대상과 합해야 느낌이 있으며 마음과 생각은 분잡하여 두서가 없네,

담장이 가렸어도 음향을 듣는데 있어서는 멀거나 가깝거나 다 들을 수 있으니

다섯 개의 감각기관이 모두가 능하지 못하되 이것만이 원만하게 통하는 진실인가 하나이다.

소리의 성품은 움직이고 고요해서 듣는 중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

소리가 없으면 들음이 없다고 할지언정 진실로 듣는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네.

소리가 없더라도 없어진 것이 아니고 소리가 있어도 생긴 것이 아니네,

생과 멸을 다 여의었으니 이는 곧 항상하고 진실한가 하나이다.

비록 꿈속에 있을지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

깨닫고 보는 놈이 생각에서 벗어나서 몸이나 마음으로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사바세계는 말로서 논란해야만 밝힐 수 있나이다.

중생들의 본래의 듣는 성품이 혼미하여 소리만을 따라가므로 흘러 전전하게 되나니

아난이 비록 억지로 기억한다 하더라도 간사한 생각에 떨어짐을 면치 못함이

어찌 빠짐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흘러 진전함을 돌이켜야만 허망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아난아! 너는 자세히 들으라. 내가 지금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 금강왕인 허깨비 같이 헤아릴 수 없을 부처님의 모체인 진실한 삼매를 말하고자 하노라.

네가 비록 모든 여래의 일체 비밀 법문을 들었다고 하나 욕애때문에 정기가 새는 것을 먼저 제거하지 못하였으므로 많이 듣는 것만 쌓이어 과오가 되었으니 많이 들음을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지키면서 어찌하여 스스로 듣는 놈을 듣지 못하느냐? 듣는 놈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네. 듣는 놈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놈을 무엇이라 이름하랴! 하나의 감각기관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

보고 들음이 허깨비에 가려진 것 같으며 삼계가 허공의 헛꽃과 같나니 들음이 회복되면 가려진 감각기관이 없어지고 허망한 티끌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청정하리라. 맑음이 지극하면 광명이 통달해서고요하게 비침이 허공을 삼키니 돌아와 세간을 보건댄 마치 꿈 속의 일과 같네.

마등가도 꿈 속에 있거니 누가 너의 형체를 머물게 하랴. 마치 세상의 교묘한 환술사가 환술로 만들어 놓은 남자와 여자 같으니, 비록 모든 감각기관을 움직일 수 있더라도 요점은 한 고동을 트는 데에 달린 것이네. 그 고동을 멈추어 움직이지 않게 하면 모든 환술로 된 것은 성품이 없으리라.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이와 같아서 원래는 하나의 정밀하고 밝음에 의지하여 이것이 나뉘어 여섯 개와 화합하나니 한 곳이 회복함을 이루면 여섯 작용이 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티끌과 때가 생각을 따라 없어져서 원만하게 밝고 청정하고 오묘하게 되리라.

남은 티끌은 아직도 배워야 하지만 밝음이 지극하면 곧 여래이니라. 대중과 아난아! 너의 거꾸로 듣는 기관을 돌려서 듣는 놈을 돌이켜 자성을 들으면 그 성품이 위없는 도를 이룰 것이니 원만하게 통함이 사실 그러하니라. 이것이 티끌 같이 많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어가신 유일한 길이라네. 과거의 모든 여래께서도 이 문으로 이미 성취하셨고 현재의 모든 보살도 지금 각각 원만하고 밝은데로 들어가며 미래의 수학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이 법문을 의지할 것이요 나도 역시 그것을 따라 증득했으니 관세음보살 뿐만이 아니니라.

진실로 불세존께서 나에게 모든 방편을 물으시어 모든 말법 세상에 세간을 벗어나기를 구하는 사람을 구제한 것과 같네.

열반의 마음을 성취하려면 관세음보살이 최고이고 그 나머지 모든 방편은 모두가 부처님의 위엄있고 신비함으로 일에 나아가 진로(塵勞)를 버리게 할지언정 이것은 영원히 닦을 것이 못되며 얕고 깊은 근기에게 함께 말할 법은 아닙니다.

여래장으로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어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음에 절하옵니다. 미래의 중생에게 가피를 내리시와 이 문에 의혹이 없게 하소서. 방편을 쉽게 성취할지라 감히 아난과 말겁에서 헤메이는 중생을 가르치겠사오니 다만 이 감각기관으로 닦으면 원만하게 통함이 다른 것보다 뛰어나리니 진실한 마음이 이와 같나이다.

그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몸과 마음이 뚜렷이 밝아져서 크게 열어 보이심을 얻어 부처님의 보리와 큰 열반을 관찰함이 마치 어떤 사람이 볼 일이 있어 멀리 갔다가 미처 돌아오지는 못했으나 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환하게 알고 있는 것과 같으며, 그 모임의 대중에 천룡팔부(天龍八部)와 배울 것이 있는 이승(二乘)과 새로 발심한 보살들이 그 수효가 무릇 열 개의 항하사 수와 같았더니 모두 본심을 깨달아서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어서 법안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성비구니(性比丘尼)는 이 게송을 듣고 아라한을 이루었으며, 한량없는 대중들이 모두 같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아난이 의복을 정돈하고 대중 속에서 합장하며 이마를 대어 절하고 마음의 자취가 원만하게 밝아지며 슬픔과 기쁨이 서로 엉켜서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유익하게 하고자 하여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아뢰기를 크게 자비하신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부처가 되는 법을 이미 깨달아 법대로 수행함에 의혹이 없어졌거니와 늘 듣자오니 여래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는 제도되지 못하였으나 먼저 남을 제도하는 것은 보살의 발심이고 스스로 깨달음이 이미 원만하게 되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은 여래께서 세상에 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제도되지는 못하였으나 말겁의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중생이 부처님이 떠나신지 점점 멀어지면 사악한 스승의 설법이 항하사와 같으리니 그 마음을 가다듬어 삼마지에 들어가고자 하면 그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 도량을 편안히 세워서 모든 악마의 일을 멀어지게 하여 보리심에서 퇴굴함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에서 아난을 칭찬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물은 것과 같아서 도량을 편안히 세워서 말겁시대에 방황하는 중생들을 구호하려고 할진댄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아난과 대중이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비내야[계율] 가운데 수행하는 세가지 결정한 뜻을 설명하는 것을 늘 들었을 것이다. 이른 바 마음을 항복받는 것으로 계를 삼고 그 계로 인하여 선정이 생기며 그 선정으로 인하여 혜(慧)가 발하나니 이것을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없애는 세 가지 학문 이라고 한다.

아난아! 어떻게 마음을 가지는 것을 내가 계율이라고 이름하는고. 만약 모든 세계의 육도 중생들이 그 마음이 음란하지 아니하면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되는 것을 따르지 않으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진로(塵勞 : 여덟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함이거늘 음란한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진로에서 벗어니지 못할 것이니 비록 지혜가 많아서 선정이 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만일 음욕을 끊지 못하면 반드시 마구니의 무리에 떨어지리니, 크게 잘 되어야 마왕이 되고 중간쯤 되면 마왕의 신하이고 하품은 마왕의 백성이니 그 마구니들도 역시 무리가 있어서 각각 스스로 위없는 도를 성취했노라 고 하나니라.

내가 멸도한 뒤 말법 가운데 이러한 악마가 세상에 많이 번성하여 음욕을 탐내어 널리 음행을 행하면서 선지식이라고 말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애욕의 구덩이에 떨어지게 하여 보리의 길을 잃게 할 것이다.

아난아! 내가 비구로 하여금 음욕을 끊고 도를 깨닫게 하겠노라. 왜냐하면 음욕을 여의고 고요하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이니 만약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올바르게 수련하는 방법을 얻으면 근기의 크고 작음이 없이 모두 불과(佛果)를 이룰 것이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한번 더러워진 습지는 만겁을 지나도 소멸되기 어렵다. 만약 음욕을 탐하여 음탕하게 사는 것보다는 계를 지키면서 정결하게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네가 세상 사람을 시켜서 삼마지를 닦게 하려면 먼저 음욕을 행하려는 마음을 끊게 해야 할지니 이것이 여래선불세존께서 제일로 결정하신 청정하고 분명하신 가르침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음욕을 끊지 않고서 선정을 닦는 자는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모래을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니 여러 겁을 지내더라도 다만 뜨거운 모래라고 이름할지니 왜 그런가 하면 이는 밥이 되는 근본이 아니고 모래로 밥을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네가 음란한 몸으로 부처님의 오묘한 과업을 구한다면 비록 오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모두 음욕의 근본이다. 근본이 음욕으로 이루어져서 삼도에 전전하며 윤회해서 반드시 해탈할 수 없을 것이니 여래의 열반을 어떻게 닦아 증득하리오?

아난아! 반드시 음란한 기미를 제어하고 교화하여 몸과 마음에 모두 끊어버리고 끊었다는 성품마져도 없어져야 부처님의 보리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 만약 모든 비구들이 먼저 탐욕을 버리고 애욕을 제거하여서 대상을 대해서도 무심하여 여여(如如)하게 움직이지 않아서 영원히 나고 죽는 윤회의 근본을 끊으면 부처님이 인정하시기를 이 사람은 불법을 분명히 믿고 알아서 보리의 위 없이 지혜로운 깨달음을 깨닫게 되리라. 나와 같은 이러한 말은 부처님의 말이라고 할 것이요 이와 같이 않은 말은 곧 파순(波旬)의 말이니라.

아난아! 어떻게 마음 가지는 것을 내가 계율이라고 하는고. 만약 모든 세계의 육도 중생들이 그 마음에 살생할 생각이 없으면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되는 것을 따르지 않으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진로에서 벗어나고자 함이거늘 살생할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진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비록 지혜가 많아서 선정이 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만일 살생할 마음을 끊지 못하면 반드시 삭도에 떨어지리니, 크게 잘 되어야 큰 힘을 지닌 귀왕이 되고 중간쯤 되면 날아다니는 야차나 그 밖에 여러가지 귀신의 장수가 되고 하품이 되면 땅에서 다니는 나찰이 될지니 저 삭귀들도 역시 무리가 있어서 각각 스스로 위없는 도를 성취했노라고 하나니라. 내가 멸도한 뒤 말법 가운데 이러한 악한 삭귀가 세상에 많이 번성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고기를 먹어도 보리의 길을 얻는다고 하리라.

아난아! 내가 비구로 하여금 다섯 가지 깨끗한 고기를 먹게 하였으니 이 고기는 다 나의 신력으로 화생한 것이라서 본래 생명이 없는 것이니라. 이 시라벌은 무더운데다 습한 땅이 많거늘 더구나 사토까지 겹쳤으므로 풀이나 채소가 생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크게 자비로운 신력의 가피로 버섯을 나게 하여 살찌고 향기가 나도록 해서 이를 거짓 이름하여 고기라고 하였거늘 너희들은 그것을 먹을 수 있거니와 어찌하여 여래가 멸도한 뒤에 중생들의 고기를 먹는 자를 불자라고 하겠느냐?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고기를 먹는 사람이 비록 마음이 열려서 삼마지를 얻은 듯하더라도 이는 다 큰 나찰인지라 과보가 끝나면 반드시 생사의 고통 바다에 빠지게 되어 부처님의 제자가 못되나니, 이러한 사람은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 먹어서 서로 먹고 먹힘이 그치지 아니할 것이어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삼계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네가 세상 사람들을 시켜서 삼마지를 닦게 하려면 다음으로 살생하는 마음을 끊게 해야 할지니 이것이 여래선불세존께서 두 번째로 결정하신 청정하신 가르침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살생할 마음을 끊지 않고서 선정을 닦는자는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귀를 막고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다른 사람이 듣지 않기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것을 가리켜 숨기고자 하면서 더욱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나니라.

청정한 비구와 보살들이 길을 다닐 적에 산 풀도 밟지 않거든 더구나 손으로 뽑는 것이겠느냐? 어찌 크게 자비로운 자가 중생의 피와 고기를 취하여 배부르게 먹으리요?

아난아! 동방의 비단이나 명주와 이 땅의 가죽 신이나 털옷과 우유나 그것으로 가공한 것 등을 먹거나 입지 아니하면 이러한 비구는 참답고 올바른 불자로서 묵은 빚을 갚고 삼계에 갇히지 않으리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그 몸의 한 부분으로 이뤄진 것을 먹거나 입으면 모두가 그것들과의 인연이 됨이 마치 사람이 땅에서 생산되는 온갖 곡식을 먹기 대문에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만약 모든 비구들이 반드시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중생들의 몸이나 몸의 어느 일부분을 몸과 마음 두 갈래에서 입거나 먹지 아니해서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원망으로 생긴 업장의 그물을 모두 다 벗어버리면 부처님께서 인정하기를 이 사람은 능히 부처님의 법에서 참다운 삼매를 얻은 사람이라 하리니 나와 같은 이러한 말은 부처님의 말이라고 할 것이요 이와 같지 않은 말은 곧 파순의 말이니라.

아난아! 어떻게 마음 가지는 것을 내가 계율이라 하는고. 만약 모든 세계의 육도 중생들이 그 마음이 도둑질 할 생각이 없으면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되는 것을 따르니 않으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진로에서 벗어나고자 함이거늘 도둑질할 마음을 없애지 못하면 진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비록 지혜가 많아서 선정이 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만일 도둑질할 마음을 근지 못하면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리니, 크게 잘 되어야 정령(精靈)이 되고 중간쯤 되면 요괴가 되고 하품이 되면 귀신들린 사람이 된다. 모든 도깨비가 붙을 것이니 저 사귀들도 역시 무리가 있어서 각각 스스로 위없는 도를 성취했노라고 하나니라.

내가 멸도한 뒤 말법 가운데 이러한 악한 사귀가 세상에 많이 번성하여 몰래 숨어서 간사하게 속이고 선지식이라고 하면서 무식한 자를 현혹하고 속여서 가는 곳마다 그 집안을 망하게 하리라. 아난아! 내가 비구를 시켜서 법대로 걸식하게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탐심을 버리고 보리의 도를 이루게 하려고 함이니 모든 비구들은 스스로 밥을 지어 먹지도 않고 남은 생애를 붙여 살면서 삼계의 나그네가 되어서 한번 다녀가고서는 아주 가고 돌아오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말세에 많은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어 입고 여래를 팔아 각가지 죄업을 지으면서 모두가 부처님의 법이라고 말하고, 문득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그르다고 비방하며 소승도라고 말하느냐? 이로 말미암아서 한량없는 중생을 의혹되게 하였으므로 목숨이 끝날 때는 모두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되리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한 오리의 털과 한 개의 겨자알이라도 모두가 중한 과보가 있나니 차라리 손을 끊을지언정 자기 재물이 아닌 것은 취하지 말고 항상 청렴한 마음을 갖고 서 선근을 키워야 하나리라. 네가 세상 사람들을 시켜서 삼마지를 닦게 하려면 더둑더 훔치려는 마음을 끊게 해야할지니 이것이 여래선불세존께서 세번째로 결정하신 청정하고 분명한 가르침이시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도둑질한 마음을 끊지 않고서 선정을 닦는 자는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새는 잔에다 물을 부으면서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비록 수많은 겁을 지낸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가득 채우지 못하리라. 세간의 어질고 착한 사람들도 시장에서 이익을 다투지 아니하며 길에서 버려진 물건을 줍지 아니하거든 더구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승니이겠느냐? 삿된 생각을 극복하고 행실을 돌 보아서 결정코 삼가하여 허물을 짓거나 덕을 상실하지 말아야 하나니라.

아난아! 뜻을 이룩하고 도를 받들어서 자기의 사물에 대해서 마땅히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만족할 줄 아는 자는 혹 지옥에 있더라도 오히려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거니와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비록 천궁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맞지 않나니라. 만약 모든 비구들이 입을 옷과 바루 외에는 푼촌만한 것도 쌓아두지 말고 걸식하여 남은 것을 굶주린 중생에게 나누어 주며, 큰 집회에서 대중에게 합장하고 예배하고 사람들이 때리고 욕을 하더라도 오히려 칭찬처럼 여기며, 반드시 몸과 마음을 부려서 두 가지를 다 버려서 힘이 드는 모든 일을 도반들과 함께 하며, 여래의 이치에 맞지 않는 방편의 말씀을 가져다가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초학을 그르치지 아니하면 부처님께서 인 정하시기를 이 사람은 능히 부처님의 법에서 참다운 삼매를 얻은 사람이라 하리니 나와 같은 이러한 말은 부처님의 말이라고 할 것이요 이와 같지 않은 말은 파순의 말이니라.

아난아! 이러한 세계의 육도중생이 비록 몸과 마음에 음욕과 살생과 도적질이 없어져서 세 가지 행실이 이미 원만하게 되었더라도 만약 큰 거짓말을 하면 곧 삼마지에 청정함을 얻지못해서 애견마(愛見魔)가 되어서 여래의 종자를 잃으리니 이른 바 얻지도 못한 것을 얻었다고 하거나 증득하지도 못한 것을 증득하였다고 하며, 혹은 세간에서 제일 가는 높고 수승함을 구하여 앞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이미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도, 벽지불승, 십지 모든 지위의 보살을 얻었다 고 하여 저들이 예올리고 참회하기를 구해서 그들의 공양을 탐하리라. 내가 멸도한 뒤에 모든 보살과 아라한에게 명하여 응하는 몸이 말법 세계에 태어나서 갖가지 형상을 지어서 윤전하는 모든 이를 제도하게 하되 혹은 승려, 백의거사, 왕, 정승, 동남, 동녀가 되기도 하며, 이렇게 음란한 여자, 과부, 간사한 도둑, 도살하는 사람이 되어서 그들과 같이 일을 하며 불승(佛乘)을 칭찬하여 그들의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삼마지에 들어가게 하되 마침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진실한 보살이며 진실한 아라한이라 고 해서 부처님의 비밀한 법[密印]을 누설해서 말학에게 경솔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리라. 오직 죽을 적에 가만히 유언으로 부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렇게 하면 어떻게 그 사람 이 중생을 현혹하고 혼란하게 하여 큰 거짓말을 하겠느냐?

아난아! 내가 비구를 가르치되 정직한 마음이 도량이라 하노니 행하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거동과 일체 행동 가운데 오히려 조금도 거짓됨이 없거늘 어떻게 스스로 상인(上人)의 법을 얻었다고 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가난한 사람이 거짓으로 제왕이라고 자칭하다가 스스로 벌을 받는 것과 같거든, 더구나 법왕을 어떻게 거짓으로 도둑질하리요? 원인의 터전이 정직하지 못하면 결과가 얽히고 굽음을 부르나니 부처님의 보리를 구하려 하여도 배꼽을 깨무는 사람과 같을 것이니 그 누가 성취할 수 있으리요? 네가 세상 사람들을 시켜서 삼마지를 닦게 하려면 다음으로 또다시 큰 거짓말을 끊게 하여야 할지니 이것이 여래선불세존께서 네 번째로 결정하신 청정하고 분명한 가르침이시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큰 거짓말을 끊지 못한 사람은 마치 사람의 똥을 깍아 전단의 형체를 만들려는 사람과 같으니 향기를 구하고자 하여도 그렇게 될 리가 없나니라.

만약 모든 비구가 마음이 줄과 같이 곧으면 일체가 진실해서 삼마지에 들어가 영원히 악마의 일이 끊어지리라. 이러한 네 가지 계율을 원만하게 성취하면 부처님께서 인정하시기를 이 사람은 능히 부처님의 법에서 보리의 위없는 깨달음을 닦아 증득하리라고 하리라. 나와 같은 이러한 말은 부처님의 말이라고 할 것이요 이와 같지 않은 말은 곧 파순의 말이니라.

아난아! 말법시대에는 모든 비구와 비구니가 이 네 가지 계율을 조금도 기탄없이 범하여 오신(五辛)과 술 고기를 간 곳마다 마음대로 먹으리니 이러한 아전가는 부처가 될 씨앗을 소멸시키되 마치 사람이 칼로써 다라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으리니 부처님께서 인가하시기를 이 사람은 영원히 선근을 없앴으므로 다시는 지견을 가질 수가 없어서 세 가지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삼매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라. 만약 내가 멸도한 후에 특별히 승니들이 발심하여 삼마지를 닦기로 결정할진댄 여래의 형상 앞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업장을 참회하고 불을 일으켜 몸을 태워서 다섯 가지 독을 다 태워 버리면, 나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묵은 빚을 일시에 다 갚고 세간을 영원히 하직하여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영원히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비록 위없는 깨달음의 길을 밝히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은 법에 이미 마음을 결정했나니라. 만약 이 몸의 작은 원인까지도 버리지 못하면 비록 몸으로 직접 저지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그 묵은 빚을 갚음이 마치 내가 말에게 주는 보리를 먹은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너희들이 나의 주위에 있으면서 항상 나를 보고 있더라도 만약 내가 말한 계율을 범하면 마침내 도를 이룰 수 없으려니와 나의 주위를 떠나서 비록 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나의 계율을 잘 지키면 반드시 과업을 이룰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참는 것이 덕이 되는 것은 계율을 지키면서 고행을 하는 것으로서도 미칠 수 없는 것이니 참을 수 있는 자라야 힘있는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니라.

<< 券6 끝 >>


正本首楞嚴經 券 七


"아난아 네가 마음을 바로잡는 법을 물으므로 내가 지금 삼마지에 들어갈 닦고 배우는 오묘한 문을 먼저 말하나니 보살의 도를 구하고자 할진댄 먼저 이 네 가지 계율을 지키되 마치 얼음이나 서릿발처럼 깨끗이 하면 자연히 일체의 곁가지나 잎사귀가 날 수가 없을 것이며, 마음으로 짓는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가 굳이 생길 원인이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그 네 가지 일[律儀]을 만약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마음에 오히려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진도 반연하지 않을 것이거든 일체 마구니의 일이 어떻게 발생하겠느냐?

만약 숙세에 익혀온 습기를 제거하여 없애지 못하는 자가 있거든 너는 그 사람을 시켜서 일심으로 나의 불정광명마하시다 다반다라의 더할나위 없이 신비한 주문을 외우게 하라. 그것은 여래의 볼 수 없는 정수리에서 작위가 없는 마음의 부처가 정수리로 나오셔서 보배의 연꽃 위에 앉아서 설하신 신비한 주문이니라.

또 네가 숙세에 마등가와 여러 겁을 지내온 인연 때문에 은애(恩愛)의 습기가 한 생이나 한 겁의 일이 아니었건만 내가 신비한 주문을 선양함에 사랑하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져서 아라한이 되었으니 저 마등가는 오히려 음란한 여자라서 수행할 마음이 없었는데도 신비한 힘을 입어서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빨리 증득하였거든 더구나 너희들은 이 모임에 있는 성문들로서 최상승(最上乘)을 구함이겠느냐? 결정코 부처가 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먼지를 순풍에 날려보내는 것과 같으니 무슨 어려움이나 험난함이 있겠느냐?

만약 말세에 도량에 앉고자 하거든 먼저 비구의 계율을 청정하게 지켜야 하는데, 마땅히 계행이 청정한 제일가는 사문(沙門)을 선택하여 스승으로 삼아야 할지니 만약 참으로 청정한 스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 너의 계율을 반드시 성취하지 못하리라. 계율을 성취한 뒤에는 새로 지은 깨끗한 옷을 입고 향을 피우고 한가롭게 앉아서 이 마음의 부처님이 말씀하신 신비한 주문을 一백 八번 외운 다음에 결계(結界)를 하고 도량을 건립하여 시방의 국토에 현재 머무시는 위없는 여래께서 큰 자비의 광명을 내시어 정수리에 대어주기를 구해야 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말세에 청정한 비구와 비구니거나 세속에 있으면서 시주하는 사람이거나 어느 누구든 마음에 탐욕과 음욕을 없애고 부처님의 계율을 청정하게 지켜서 도량 가운데 보살의 서원을 발하고, 출입할 적에 반드시 목욕하고 여섯 시간은 도를 행하되 그렇게 잠을 자지 않고 三七일을 지내면 내가 몸을 나타내어 그 사람 앞에 이르러 정수리를 만지며 위안해서 그로 하여금 깨달음이 열리게 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의 위 없는 자비의 가르침을 받자옵고 마음이 열려 이미 깨달아서 스스로 배울 것이 없는 도를 닦아 증득하여 성취할 방법을 알았습니다만 말법시대에 수행하는 이로서 도량을 건립하려면 어떻게 결계(結界)하여야만 세존의 청정한 법칙에 부합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말세의 사람이 도량을 세우고자 할진댄 먼저 눈 덮인산에서 큰 힘을 가진 흰 소를 구해야 할지니 이 소는 눈 덮인 산의 맑은 물만 마시고 그 산에서 나는 살찌고 기름지고 향내 나는 물만 먹어서 그 똥이 매우 부드럽고 미세하니 그 똥을 가져다가 전단향과 골고루 섞어서 그 지면에 바를지니라.

만약 눈 덮인 산이 아니면 그 소가 냄새나고 더러워서 땅에 바를 수가 없으니 특별히 평평한 언덕에서 땅 거죽을 거두어내고 다섯 자 아래에서 황토를 취해다가 전단향, 침수향, 소합향, 훈육, 울금, 백교, 청목향, 영능향, 감송향, 계설향과 골고루 섞어서 이 열 가지를 곱게 갈아 가루를 만들어서 황토와 배합하여 진흙을 만들어 도량의 지면에 발라야 하나니라.

방원(方圓)이 열 여섯에 여덟 각의 단을 만들고 단의 중심에 금, 은, 구리, 쇠로 만든 연과을 하나 놓아두고 그 연꽃 속에 발우를 놓고 발우 속에는 먼저 중추의 이슬을 담아 놓고 그 물속에는 꽃잎을 넣어 둘 것이니라. 여덟 개의 둥근 거울을 가져다가 각 방향에 걸어놓아 연꽃과 발우를 둘러싸게 하고 거울 밖에는 十六개의 향로를 연꽃 사이 사이마다 설치하여 향로를 장엄하게 꾸며놓고 순수한 침수향만을 피우되 불이 보이지 않게 하라.

흰 소의 젖을 가져다가 十六 그릇에 담아 놓고 젖으로 떡을 만들고, 사탕과 유병과 유미와 소합과 미강과 순소와 순밀까지 섞어서 각각 十六 그릇을 연화밖에 둘러 놓고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들을 공양하라.

매양 밥 먹을 때에나 한밤중에 꿀 반 되로써 우유 세 홉을 취하여 단 앞에 따로 작은 화로 하나를 놓고 도루바향을 다린 향수를 가지고 숯을 목욕시켜 이글이글하게 띄워놓고 우유와 꿀을 그 화로에 넣어 연기가 다하도록 태워서 부처님과 보살에게 봉양하라.

저 사방 박에는 기[幡]와 꽃을 두루 달고 단실(壇室) 가운데 사방 벽에다가 시방의 여래와 모든 보살의 여러가지 형상을 설치하되 정면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과 아촉불과 미륵불을 모시고 여러가지로 크게 변화하는 관음형상과 금강장왕은 그 양 옆에 모시며, 범천왕과 제석과 오추슬마와 그리고 남지가와 군다리와 비구지와 사천왕 들과 빈나와 야가는 문 계 좌우에 벌려 안치하고 또 다시 거울 여덟 개를 가져다 허공에 엎어 달아 그것이 도 닦는 장소의 주위에 달아 놓은 거울과 서로 마주 대하게 하여 그 형체와 형상이 거듭거듭 서로 나타나게 하라.

처음 七일 동안은 지극한 정성으로 시방여래와 큰 보살과 아라한의 이름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향상 여섯 시간 동안 주문을 외우며 단을 돌아 지극한 정성으로 도를 행하되 한 시간에 항상 一百 八 번씩 시행하고, 두 번째 七일 동안에는 한결같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보살의 소원을 발하되 마음에 끊김이 없게할 것이니 나의 비내야[계율]에 먼저 소원에 대한 가르침이 있나니라. 세 번째 七일 동안은 하루 종일 한결같이 부처님의 반다라 주문을 지송하면 七일째 되는 날에 시방여래가 일시에 출현하여 거울 빛이 교차하는 곳에서 부처님이 정수리를 만져주심을 받을 것이고 즉시 도량에서 삼마지를 닦아서 이와 같이 말세에 수학하는 자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됨이 마치 유리와 같게 될 것이다.

아난아! 만약 이 비구가 본래 계를 받은 스님이거나 함께 모인 가운데 열 비구 중 어느 누구라도 청정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이와 같은 도량은 대개 성취하지 못하나니라.

三七일이 지난 후부터는 단정히 앉아 편안히 기거하면서 一백일을 지나게 되면 예리한 근기를 가진 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서 수다원과를 얻을 것이다. 비록 그 몸과 마음에 성과 (聖果)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더라도 결정코 틀림없이 성불할것임을 알 것이니 네가 물어본 도량을 건립함이 이와 같나니라"

아난이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출가한 이후로 부처님의 사랑을 믿고 교만해져서 많이 듣기만 하였으므로 작용이 없는 경지를 증득하지 못하여 범천의 사특한 술수에 걸렸사오니 마음은 비록 밝고 또렸하였으나 자유롭게 움직일 힘이 없었더니 문수보살의 힘을 입어 나로 하여금 풀려나게 하셨으니 비록 여래이신 부처님 정수리에서 나온 신비한 힘을 얻었사오나 아직 친히 들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바라옵건데 큰 자비로 거듭 말씀하시어 이 모임에서 수행하는 모든 것에서 수행하는 모든 자와 앞으로 윤회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비밀한 법을 듣고서 몸과 마음이 해탈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리고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일체 대중이 모두 예배하고 여래의 비밀한 글귀를 들으려고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육계로부터 한 줄기 백보광명을 방출하시고 그 광명 속에는 一천 잎새나 되는 보배의 연꽃이 솟아나게 하시니 화신여래가 그 보배의 연꽃 위에 앉아 계시면서 정수리로 열

줄기의 백보광명을 방출하시고 그 광명마다 열 항하사 금강밀적(金剛密跡)이 나타나서 산을 받쳐들고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허공세계에 가득하거늘 대중들이 그것을 쳐다보고서 두려움과 사랑스런 마음이 한데 어울려 부처님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며 일심으로 부처님의 무견정상(無見頂上)에서 광명 속에 나타난 여래가 설하시는 신비한 주문을 듣고 있었다.

 

대불정 수능엄왕 다라니

나모 바아바예 사르바 불타 송아다야 다타아다야 아르하뎨 삼먁 삼몬다야 나모 바아바뎨 사르바불타 스따타아도 구지구지 마하 바아로 오스니사야 마하 시다다 반다라야 나모 바아바뎨 사르바 불타 보리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니 가야 나모 바아바뎨 바라하마 니야 나모 바아바뎨 인다라야 범마자례 사혜야야 나모 바아바뎨 로다라야 오마바뎨 사혜야야 나모 바아바뎨 나라연나야 라그스삼미이 사혜야야 반자마하모다라 나마그스까리다야 나모 바아바뎨 마하 가라야 다리바라 나아라 비다라 바나가라야 아디목다가 스마샤나 바시녜야 만다라 아나 나마그스까리다야 나모 바아바뎨 사르바 불타 스다타아도 구지구지 마하 바하로 오스니삼 마하 시다다 반다람 나모 바아바뎨 사다남 삼먁 삼몬다 구지남 사샤라 바카 싱가남 나모 바아바데 로켸 아라한 다남 나모 바아바뎨 스로다 반나남 나모 바아바뎨 스가리다 아미남 나모 바아바뎨 삼먁 아바라뎨 바다나남 나모 바아바뎨 녜바르시남 나모 바아바뎨 싣댜이 비댜이 아라르시남 샤바누 아라하 사하사라 마르타남 나모 바아바뎨 다타아다 구라야 나모 바아바뎨 바나마 구라야 나모 바아바뎨 바아라 구라야 나모 바아바뎨 마니 구라야 나모 바아바뎨 아르아구라야

나모 바아바뎨 나리다 슈라세나 바라 하라 나라아야 다타아 다야 아라하뎨 삼먁 삼몬다야 나모 바아바뎨 아미타바야 다타아다야 아라하뎨 삼먁 삼몬다야 나모 바아바뎨 아츈바야 다타아 다야 아라하뎨 삼먁 삼몬다야 나모 바아바뎨 세사쟈이 구로볘류리야바라 바아라 아야 다타아다야 아라하뎨 삼먁 삼몬다야 나모 바아바뎨 삼부 사벳다 사렌 나르라아야 다타아다야 아르하뎨 삼먁 삼몬다야 나모 바아바뎨 라다나 구소마 계도라 아야 다타아다야 아르하데 삼먁 삼몬다야 나모바아바뎨 서가모니바야 다타아다야 아라하뎨 삼먁 삼몬다야 뎨뱌그 나막 스까리다바 이맘 바아바뎨 스따타아도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 시다다 반다람 비다방사 나가림 나막 사르바 아바라지담 바라딩기람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대바 아라하사르바니가 아라하 나막 스까리담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보다 아라하 가라하남 바라비댜니체다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아가라 미리쥬 바리다라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반다 나목가사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도사따 도스빠 바나니바라남 자도라 시디남 아라하 사하사라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아스따빙 시디남 나그사 다라남 바라사다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아스따남 마하 아라하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샤다로 니바라남 구람도스빠 바나난자 나샤남 비다방사 나가림 비사 샤스따라 아기니 오다라 마다남 비다방사 나가림 사르바 아바라 지담 마하구람 마하바람 마하잔남 마하텼담 마하데암 마하사베담 마하아바람 마하 바라 반다라 바시남 아랴이다람 비르구지재바비아얌 비다방사 나가림 바아라 마례딩비샤로담 바나마캄 바아라재하나아반잠 마라재바 아바라 지담 바아라 단디 비샤로잠 선다 샤베뎨 바보지담 소먀로밤 바하 아랴이다람 마하 바라아바람 비다방사 나가림 바아라 상가라 재밤 바아라 구마림 바아라 구람다림 바아라 하스따잠 비댜이간잠 나마리캄 구소마 라다나 재밤 비로자나 구랴이르토 오스니삼 비아람바 마니잠 사르바소 바아라 가나캄 바라밤 이뎨이뎨 모다라 아남 사르베라그잠사르바 사다바 난잠 비다방사 나가림 옴 사르바 스띠르바 굴밤도 인토나 마하야 옴가리시 아나 바라 샤스따야 스따타아도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 시다다 반다람 비다방사 나가라 훔부림 마하 가로니가 나가라 훔부림 바라하 마니 니가라 훔부림 바라 비랴이 마하바카 나가라 훔부림 잠바 나가라 훔부림 사담바 나가라 훔부림보하 나가라 훔부림 마르타 나가라 훔부림 바라비댜이삼바그사나가라 훔부림 사르바 도스따남 스땀바 나가라 훔부림 사르바야차 라찰사 아라하 나가라 훔부림 자도라 시디남 아라하 사하 사라남 비다방사 나자라 훔부림 아사따빙 시디남 나그사 다라남 바라사다 나가라 훔부림 아스따남 마하 아라하남 오차낭 나가라 훔부림 라그사라그사맘 마마사르바 사다바 난자나가라 훔 부림

나모 바아밤 스따타아도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 시다다 반다례 마하 모다라 난디켸 마하 아바라 지뎨 마하 바라딩기례 마하 사하사라 부예 사하사라 실새예 구지샤스따 사하사라 녜다례 아베댜이 아바리뎨 다타앙가 마하 바아라 로다례 다리부바나 반다례 옴 사르바 스띠르바 굴밤도 인토나 마마야라아 바야 주라 바야 아기니 바야 오다가 바야 비사 바야 샤스 따라 바야 바라 자가라 바야 도르비 가사 바야 아샤니 바야 아가라 마리쥬 바야 다라니 보미감 바야 바가바다 바야 오르가 다 바야 소바라 나리니 바야 나가바야 비죠다바야 라아단다 바야 나모 불타야 나모 달마야 나모 승가야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마그 아랴이그 비로기뎨 새이바라야 혜혜 아라하 호호 아라 하 마하 아바라뎨 하다 아라하 마하 바아라 바라다 아라하 마하 바라딩기라 아라하 마하 아수라 비다라 바나 가라 아라하뎨바 아라하 나가 아라하 야차 아라하 라찰사 아라하 건달바 아라하 비샤자 아라하 구반다 아라하 베례다 아라하 부단나 아라하 가타부단나 아라하 보다 아라하 사간타 아라하 아슈라 아라하 가루라 아라하 긴나라 아라하 마후라가 아라하 아로다 아라하 아느달바 아라하 마노사 아라하 아마노사 아라하 아바 사마라 아라하 오다라 마다 아라하 비다라 자례 아라하 차야 아라하 니야 아라하 녜바디 아라하 암미가 아라하 마하 가로니가 아라하 바라하 마니 아라하 샤라바나 아라하 디그뎨가 아라하 사다나가 아라하 상가라가 아라하 다타다기니 아라하 람바 아람바 아라하 자도라 바기니 아라하 구마리 구람다리 아라하 인다라 아라하 로다라 아라하 모다라 아라하 만다라아나 아라하 샤구니 아라하 자문다 아라하 하노간타 바다니 아라하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시다다 반다라 아라하 오아 하리냐 아르바 하리냐 아다 하리냐 로다라 하리냐 망사 하리냐 메다 하리냐 마르아 하리냐 바사 하리냐 비다 하리냐 지비다 하리냐 바라 하리냐 아바라 하리냐 반다 하리냐 아슈쟈이 하리냐 지자 하리냐 샤나녜가 하리냐 케타 하리냐 보다라 하리냐 보야 하리냐 사다 하리냐 디스다 하리냐 만다라 아나 하리냐 슬리사마 하리냐 상가라가 하리냐 간타 하리냐 사샤 하리냐

뎨삼 사르베삼 사르바 아라하 남 락삼미 사혜야야 하리담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바리바라 자가 사혜야야 하리담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다카다기니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마하 가로니가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바라하 마니 사혜야야 하리담 비다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마하 밤마바뎨 인다라 사혜야야 하리담 비다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마하 바슈바뎨 로다라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마하 나라연나 모다라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마하 가라 만다라 아나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단다바 아로다 사혜야야 하리담 비다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가바리가 사혜야야 하리담 바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아야가라 마도가라 사르바르타 사다나가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자도라바기니 바라다리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비르구지가 난디케

사바라 아나바뎨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나가나사라 바나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아라한다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마하 비다라가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바아라 반니 구햐이 구햐이 가디바뎨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라그사 라그사맘 바아밤 사따타아도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 사다다 반다하 사혜야야 하리담 비댜미 친다야미 케라야미 옴 사르바 사띠르바 굴밤도 인토나 마마야 나모 사또뎨 아스따 나르가라 바라바 스뽀타비가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 시다다 반다라 아바라 아바라 다가 다가 비다가 비다가 다라 다라 비다라 비다라 친다 친다 반다 반다 훔훔 반

그 바그 사바하 옴 혜혜야 바그 호호야 바그 아모까야 바그 아 바라뎨 하다야 바그 바아라 바라 다야 바그 바라딩기라야 바그 아슈라 미다라 바나가라야 바그 사르바 뎨볘이야 바그 사르바 나계이야 바그 사르바 야쳬이야 바그 사르바 라찰셰이야 바그 사르바 건달볘이야 바그 사르바 비샤졔이야 바그 사르바 구반뎨이야 바그 사르바 베례뎨이야 바그 사르바 부단녜이야 바그 사르바 가타 부단녜이야 바그 사르바 보뎨이야 바그 사르바 사간뎨이야 바그 사르바 아슈례이야 바그 사르바 가루례이야 바그 사르바 긴나례이야 바그 사르바 마후라계이야 바그 사르바 아로뎨이야 바그 사르바 안달볘이야 바그 사르바 마노셰이야 바그 사르바 아마노셰이야 바그 사르바 도랑기뎨이야 바그 사르바 도스빠례 가사뎨이야 바그 사르바 아바례이야 바그 사르바 아바사마례이야 바그 사르바 샤라바녜이야 바그 사르바 다르뎨계이야 바그 사르바 오다라 마뎨이야 바그 사르바 비다라

자례이야 바그 아야가라 마도가라 사르바르타 사다계이야 바그 자도라 바기녜이야 바그 바아라 구마례구람다례이야 바그 마하 비다라자례이야 바그 마하 아바라뎨 하뎨이야 바그 마하 바라 딩기례이야 바그 마하 가라 만다라 아나 나막스까리뎨이야 바그 바아라 상가라계이야 바그 볘샤나비예이야 바그 마하 가로니계이야 바그 바라하 마녜이야 바그 마하 가례이야 바그 아기녜이야 바그 가라단뎨이야 바그 인다례이야 바그 로다례이야 바그 모다례이야 바그 쟈문뎨이야 바그 가라다례이야 바그 카바례이야 바그 아디목다가 스마샤나바시뎨이야 바그 예계짇스따 사르바 사다볘이야 바그 옴 사르바 사띠르바 굴밤도 인토나 마마이야

도스따 짇스따 바바 짇스따 인다라 짇스따 로다라 짇스따 모다라 짇스따 비다라 짇스따 아매다라 짇스따 오다라 마다 짇스따키라 짇스따 나바 짇스따 조하 짇스따 만다라 아나 짇스따 오아 하라 아르바 하라 로다라 하라 바사 하라 마르아 하라 아다 하라 비다 하라 지비다 하라 바라 하라 아바라 하라 사다하라 바야 하라 간타 하라 보사빠 하라 망사 하라 메다 하라반다 하라 짇스따 하라 아슈쟈 하라 지자 하라 샤나녜가 하라켸타 하라 보다라 하라 보야 하라 스리사마 하라 상가라가 하라 사샤 하라 만다라 아나 하라

아바라 예캄 아바라 혜캄 나베 디야캄 사다례 디야캄 자도르타캄 니댜이 아바라캄 비사마 아바라캄 바디캄 배디캄 사례사미캄 사니바디캄 사르바 아바라캄 시로르디 아르타바 베다로캄 아로자캄 아키로캄 목카로캄 하리도로캄 보다베다다캄 다가다기니 아바라캄 다도로캄 건도로캄 지바로 다베캄 사르바로 링아캄 슈사다라사 나가라캄 비샤유캄 아기니오다라캄 마라 베라 건다라 아가라 마리쥬캄 다례보감 다례라타캄 바리시지캄 사르바 나구라캄 싱가 바이가라 나그사 다라캄 마라 아바라 지다캄

사르바 아라하슈람 가르나슈람 단다슈람 니하바슈람 마르마슈람 바라스바슈람 하리떠이슈람 비리스따슈람 오다라슈람 가치슈람 오로슈람 바스띠슈람 상가라슈람 하스따슈람 발다라슈람 사르바 앙아 바라딩아슈람 뎨삼사르베삼 사따타아도 마하 바아로 오스니삼 마하 시다다 반다람 마하 모다라 난디캄 마하 아바라 지담 마하 바라딩기람 아바도따남 샤유아나 벤다례나 오추실마 반담 가로미 니샤반담 가로미 바라비다이 반담 가로미 뎨슈반담 가로미 사르바 앙아 바라딩아 반담 가로미 옴 사르바 스디르바 굴발도 인토나 마마야

 

태백산개수릉엄왕대다라니비밀신주

나모 바아바뎨 사르바 불타 송아다야 다타아다야 아르하뎨 삼먁삼몬다야

 

참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보리를 성취하려는 사람은 이 보배의 명호를 먼저 일백 팔 번 성심을 다하여 외우고 난 후에 다음 비밀주를 외워라.

다냐타 옴 아나례 아나례 비샤례 베라 바아라 다례 반다 반다 반다니 반다니 바아라 바아라 바니바그 훔 부림 바그 사바하 옴 비로녜 사바하 나막그 사르바 다타아다야 마하 바아로 오스

나사야 마하 시다다 반다라 바나야 사바하

아난아! 이 불정광취 시다다 반다라 비밀가타 미묘장구는 시방의 모든 부처를 출생시켰나니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으로 인하여 위 없는 정변지각(正偏知覺)을 이루었으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잡아서 모든 마구니를 항복 받으시고 외도들을 견제하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타고서 보연화에 앉아 작은 티끌 같이 많은 국토에 응하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버금어서 작은 티끌 같이 많은 국토에서 븐 법륜을 굴리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가지고 시방에서 이마를 만지며 수기하시고, 스스로 과업을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시방에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으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에 의지하여 시방에서 여러가지 고통을 구제 하시나니, 이른 바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봉사와 귀머거리와 벙어리와 절름발이와 원수와 미운 사람을 만나는 괴로움과 사랑하면서 이별하는 괴로움과 구해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과 오음이 불꽃같이 무성함과 크고 작은 횡액을 동시에 해탈하게 하시고, 도적의 난리와 전쟁과 법망에 걸리는 것과 갇히는 재난과 물과 불, 바람의 재난과 목마르고 배고프며 가난함을 생각에 따라 없어지게 하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따라 시방에서 선지식을 잘 섬기되 네 가지 행동 가운데 뜻대로 공양하여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래의 모임 중에서 큰 법왕자로 추대되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

점을 행하여 시방에서 친하고 인연이 있는 자를 맞아들여서 모든 소승으로 하여금 비밀한 법을 듣고도 놀라지 않게 하시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외워서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고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큰 열반에 들어가셨으며, 시방의 여래가 이 주문의 정밀한 요점을 전하여 멸도하신 후에 불법을 부촉하여 최후까지 굳게 지키게 하시고, 계율을 엄하고 청정하게 지켜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시나니, 만약 내가 불정광취 반다라주의 한량 없는 공덕을 말하고자 한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성을 쉬지 않고 자귀의 중간에 중첩되지 않게하면서 항하사겁을 지내도록 설명하더라도 마침내 다할 수 없나니라.

여기에서 설하신 주문은 여래정 이라고도 이름하니 너희 유학들이 윤회를 완전히 끊지 못하였으므로 지성으로 발심해서 아라한을 취하고자 할진댄 이 주문을 가지지 않고 도량에 앉아서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마구니의 일을 멀리 하려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아난아! 만약 모든 세계에서 국토를 따라 저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벗나무 껍질이나 패다라 나무 잎새나 또는 종이에나 흰 비단에다 이 주문을 써서 향기나는 주머니에 넣어 두며, 그 사람의 마음이 혼미해서 외울 수가 없으면 혹 몸에 지니거나 집안에 써 간직하면 마땅히 알아라. 그러한 사람은 한평생이 다하도록 일체의 모든 독이 조금도 해치지 못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다시 말하나니 이 주문은 세상 사람을 구호하여 크게 두려움이 없음을 얻게 하며 중생이 세간을 해탈할 수 있는 지혜를 성취하게 하나니라.

아난아! 만약 내가 멸도한 뒤에 말세 중생들이 스스로가 외우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외우게 하면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지송하는 사람은 불이 태우지 못하고 물이 빠뜨리지 못하며, 크고 작은 독기가 해치지 못하고 그와 같이 하늘, 용, 귀신, 정기(精氣), 마귀와 도깨비의 악한 주문이 모두 붙을 수가 없어서 마음에 정수(正受)를 얻어 모든 주문의 저주나 열고(厭蠱), 약독, 금독, 은독과 풀, 나무, 해충, 뱀 등 온갖 물체의 독기가 그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감로의 맛으로 변하며, 일체의 사악한 별과 모든 요귀가 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해치려고 하여도 그러한 사람에게는 침범할 수가 없으며,빈나와 야가와 모든 악귀의 왕과 아울러 그의 권속들이 모두 깊은 은혜를 받고서 항상 수호하나니라.

아난아! 이 주문을 독송하는 자는 제一겁으로부터 후신에 이르기까지 세세생생에 야차와 나찰과 부단나와 가타부단나, 구반다, 비사자 등과 모든 아귀와 형체가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 그러한 나쁜 곳에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저 선남자가 읽거나 외우거나 써서 지니고 있으면서 여러가지로 공양하면 어느 생이라도 가난하거나 하급 천한 곳의 즐겁지 못한 곳에는 태어나지 않나니라.

난아! 이와 같이 중생이 비록 그 자신은 복을 짓지 못하였어도 시방의 여래가 소유하고 있는 공덕을 그 사람에게 다 주시나니, 이로 말미암아 항하사 아승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겁에 항상 모든 부처님들과 한 곳에 있으면서 한량 없는 공덕이 악차열매가 모여 있는 것과 같아서 한 곳에서 공부하고 수행하며 영원히 흩어짐이 없나니라. 그러므로 계를 깨뜨린 사람에게는 계의 근본이 청정하게 하며, 계를 받지 아니한 자에게는 계를 받게 하며, 인욕을 못한 자에게는 인욕을 하게 하며, 정진하지 못한 자에게는 정진하게 하며, 선정을 얻지 못한 자에게는 선정을 얻게 하며,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지혜를 얻게 하며, 화목하고 부드럽지 못한 자에게는 화목하고 부드러움을 얻게 하며, 재계하지 못한 자에게는 재계가 이루어지게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이 주문을 지니고 있을 적에는 가령 주문을 받지 아니하였을 때에 계율을 범했다고 하더라도 주문을 가진 뒤에는 모두 계를 깨뜨린 죄가 가볍고 무거움을 막론하고 일시에 소멸할 것이며, 비록 오신채와 술, 고기를 먹어서 갖가지 부정한 행위가 있더라도 일체 모든 부처와 보살과 금강왕, 하늘, 신선, 귀신이 허물삼지 않을 것이며, 가령 부정하고 해진 옷을 입었더라도 한번 거동하고 머무는 것이 모두 청정할 것이며, 비록 단(壇)을 만들지 않고 도량에 들어가지 않으며 도를 닦지 않더라도 이 주문을 가져 외우면 단에 들어가 도를 닦은 공덕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 지니라. 만약 오역의 큰 무간 지옥에 들어갈 만한 중죄와 모든 비구와 비구니의 사기(四棄), 팔기(八棄)의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이 주문을 가져 외우면 그러한 죄업도 마치 사나운 바람에 모래가 날아가듯이 모두 없어져서 털끝만큼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아난아! 만약 어떤 중생이 한량 없이 무수한 겁으로부터 소유한 일체의 가볍거나 무거운 죄와 업장을 지나간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참회하지 못했더라도 만약 이 주문을 외우거나 베껴서 몸에 지니던지 또는 거처하는 집안이나 별장에 간직하면 이렇게 쌓인 업장이 마치 끓는 물에 눈이 녹듯하여 오래지 않아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난아! 만약 어떤 여인이 자녀를 낳지 못하여 잉태하기를 원하는 자가 지극한 마음으로 이 주문을 생각하거나 혹은 몸에다가 이 시다다반다라주를 차고 다닐것 같으면 문득 복덕이 있고 지혜가 있는 자녀를 낳을 것이며, 장수하기를 원하는 자는 곧 장수를 하게 될 것이요 과보가 속히 원만해지기를 구하는 자는 즉시 원만하게 될 것이며, 몸과 목숨, 색질과 힘도 그와 같고 죽은 뒤에는 소원대로 시방의 국토에 왕생하며, 필연코 변두리 땅이나 하급 천한 데에는 나지 아니할 것이거늘 더구나 잡다한 형상이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든 국토의 주가 현이나 작은 마을에 흉년이 들거나 염병이 들거나 혹은 난리가 나든지 도적이 들던지 또는 싸움이 생기거나 그 밖에 일체의 액난이 있는 곳에 이 신비한 주문을 써서 성의 사대문과 지제(支提)와 탈사위에 봉안하며, 또는 그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이 신주를 받들어 맞아서 예배하고 공경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양하며, 그 인민으로 하여금 각각 몸에 차고 다니거나 그들이 거처하는 집안에 봉안하면 일체의 재앙과 액운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아난아! 어느 곳에 있어서든지 어느 국토의 중생이든지 이 주문을 따라서 하늘과 용이 기뻐하고 비바람이 순조로워서 오곡이 풍년이 들고 백성이 안락하며, 또 다시 일체의 악한 별이 곳곳에서 일으키는 변괴를 진압하여 재앙이나 장애가 일어나지 아니하며, 사람들도 횡액과 일찍 죽는 일이 없으며, 어떠한 형틀도 몸을 구속하지 못할 것이며, 밤낮으로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으며 악몽은 사라질 것이다.

아난아! 이 사바세계에 八만 四천의 재변을 일으키는 악한 별이 있는데 스물 여덟 개의 큰 악한 별이 그 우두머리가 되고, 다시 여덟 개의 큰 악한 별이 주장이 되어서 갖가지 형상으로 세상에 나타날 적에 중생에게 갖가지 액난을 가져다 주나니, 이 주문이 있는 곳에는 이러한 액난이 모두 다 사라져서 十二 유순(由旬)이 결계지(結界地)가 되어 여러가지 나쁜 재앙이 영원히 들어가지 못하나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신비한 주문은 항상 八만四천 나유타 항하사 구지의 금강장왕인 보살의 종족과 하나하나 모든 금강의 무리가 그 권속이 되어서 밤낮으로 보호하나니라. 가령 어떤 중생이 삼마지가 아닌 산란한 마음인 삼마지가 아닌 데에서 기억하거나 외우더라도 이 금강왕이 항상 저 선남자를 따라다니거든 더구나 보리심이 결정된 자이겠느냐? 이 모든 금강장왕보살은 정밀한 마음이 가만히 신속하게 신비한 의식을 발하므로 이 사람이 그때를 따라 능히 八만 四천 항하사 겁을 기억하여 분명하게 두루 알게 되어서 의혹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가 이 신주를 베풀어 보여서 미래세에 처음 배우는 사람으로서 수행하는 자를 보호하여 삼마지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이 태연해져서 크게 편안함을 얻게 하며, 또다시 일체의 마구니와 귀신, 그리고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맺어진 원수의 횡액과 묵은 재앙과 오래된 업장과 묵은 빚이 있는 자가 와서 서로 번거롭히거나 해를 끼침이 없게 하노니 너와 대중 가운데에 배울 것이 있는 모든 사람과 미래세에 수행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도량에 의지해서 법대로 계를 지키되 계를 받는 주인으로 청정한 스님을 만나며, 이 신주와 정밀한 요점에 대하여 마음에 의문을 품지 않고서 이러한 선남자가 여기에서 그 부모가 낳아준 몸으로서 마음에 통함을 얻지 못한다면 시방 여래가 하신 말씀은 다만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이 말씀을 하고 나니 모임 중에 있던 한량 없는 밀적과 명왕과 백, 천, 만, 억의 금강역사가 일시에 부처님의 앞에 합장을 하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우리가 마땅히 정성스런 마음으로 이렇게 보리를 닦는 자를 보호하여 성취하게 하겠습니다."

또 다시 한량 없는 범왕과 제석과 사천왕도 역시 부처님의 앞에 합장하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참으로 그렇게 닦고 배우는 착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마땅히 극진한 마음으로 지성껏 보호하여 그로 하여금 한평생 동안 하는 일이 소원대로 되게 하겠습니다."

또 다시 한량 없는 일월천자와 칠성천자와 바람을 맡은 신과 비를 맡은 신, 구름을 맡은 신과 우뢰를 맡은 신, 번개를 맡은 신과 연세(年歲)를 순회하는 신과 모든 착한 신의 임금들도 부 처님의 앞에 합장하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희들도 맹세코 그러한 사람을 보호하여 보리를 닦으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원만함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시 한량 없는 야차왕과 모든 나찰왕과 부단나왕과 구반다왕과 비사자왕과 빈나와 야가와 모든 큰 귀왕과 여러 귀신의 장수들도 부처님의 앞에 합장하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희들도 그렇게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여 도량을 편안하게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을 얻게 하겠습니다."

또 다시 한량 없는 산신과 바다를 맡은 신과 일체 토지의 신과 물, 육지, 공중에 떠다니는 귀신과 만물의 정기들과 바람 맡은 귀신의 왕과 무색계천도 부처님의 앞에 합장하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희들도 그렇게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여 보리를 이루도록 하여 영원히 마구니의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그때에 八만 四천 나유타 항하사 구지의 금강장왕 보살이 큰 모임 속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닦은 공업을 가지고는 보리를 이룬지가 오래 되었건만 열반에 들지 아니하고 항상 이 주문을 따라다니면서 말세에 삼마지를 닦으며 올바르게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마음을 닦아 바른 선정을 구하는 사람이 만약 도량에 있거나 다른데서 수행하거나 또는 산란한 마음으로 부락에서 노닐더라도 우리 무리들이 항상 따라다니면서 그 사람을 잘 모시고 호위하겠습니다. 비록 마왕과 대자재천이 그 틈을 노리더라도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며, 모든 작은 귀신을 이 착한 사람에게서 十유순이나먼 밖으로 떠나게 하리니, 저들이 발심하여 선정 닦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대상에서 제외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악마와 그 권속이 이 착한 사람을 침해하려는 자가 있으면 저희들이 보배의 철퇴로써 그 머리를 부수어 마치 작은 먼지처럼 가루로 만들고 항상 이 착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는 것이 소 원대로 되게 하겠습니다."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희들은 우둔하여 많이 듣는 것만 좋아하고 모든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었더니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자옵고 올바르게 익히고 닦아서 몸과 마음이 상쾌하여 크게 유익함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부처님의 삼마지를 닦아 증득해도 열반에 이르기전에 어떤 것을 간혜지라고 하며, 마흔 네 가지 마음에 어떠한 순서를 밟아서 수행하는 명목을 증득하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지(地)가운데 들어간다고 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을 등각보 살이라고 합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고서 대중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진리의 말씀을 기다리며 눈을 똑바로 뜨고 우러러 보았다.

그때에 세존이 아난의 말을 찬탄하며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이 널리 대중들과 모든 말세의 일체 중생들이 삼마지를 닦아서 대승을 구하려는 자를 위하여 범부로부터 큰 열반에 이를 때까지 위 없이 올바르게 수행하는 길을 미리 보여주려고 하니 너는 이제부터 자세히 들으라! 너를 위해 말해주리라."

아난과 대중들이 합장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묵묵히 가르침을 받자옵드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오묘한 성품은 원만하고 밝아서 모든 이름이나 모양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므로 본래는 세계와 중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거짓됨으로 인하여 생겨나고 생겨남으로 인하여 없어짐이 있는 것이니 저 나고 없어짐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이 없어짐을 '참된 것'이라고 하니 그것이 여래의 무상보리와 큰 열반인 두가지 전의호(專依號)라 하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참다운 삼마지를 닦아서 여래의 큰 열반에 곧바로 나아가고자 할진댄 마땅히 이 중생과 세계의 두 가지 뒤바뀐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할지니 뒤바뀜이 생기지 아니하면 이는 곧 여래의 참다운 삼마지니라.

아난아! 무엇을 중생의 뒤바뀜이라고 말하느냐? 아난아! 원만한 자성의 마음을 무명이 가리고 과거세로부터 익혀온 훈습으로 말미암아 생긴 무명 때문에 허망한 의식이 생겨나고 그 의식이 허망하므로 보는 놈이 생겨나나니 필경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좇아서 마침내 있는 것을 이루었다. 저 있는 주체와 있는 대상이 원인과 원인되는 것이 아니며, 머무는 것과 머무는 대상의 형상이 깨닫고 나면 근본이 없는 것이니, 이렇게 머무름이 없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세계와 모든 중생이 이루어지나니라.

본래는 원만하게 밝던 것이 혼미해져서 허망함이 생겼으니 그 허망한 성품은 본체가 없는 것이어서 의지할 바가 아니니라.

장차 참됨을 회복하여 참다워지려거든 이미 참다운 진여의 성품이 아니니 참됨이 아닌 것으로 회복하기를 구하면 전연 옳지 못한 현상이 되어서 옳지 못한 삶, 옳지 못한 머무름, 옳지 못한 법이 점차적으로 발생하여 생하는 힘이 발명되고, 그것이 훈습되어 업장이 이루어져서 같은 원인이 서로 감응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감응하는 업인이 있게 되어 서로 나고 없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중생의 뒤바뀜이 생겨나니라.

아난아! 어떤 것을 '세계의 뒤바뀜'이라고 말하느냐? 있는 것과 있게 되는 것으로 허망하게 분단이 생겨 그로 인해 세계가 성립되고 원인도 원인이 된 것도 아닌지라 머무름도 머무르게 되는 것도 없어서 옮겨 흘러 머물지 않으므로 그로 인해 세계가 성립되는 것이니 삼세와 사방이 화합하여 서로 어울려서 변화하는 중생이 十二가지 종류를 이루나니라.

그러므로 세계가 동요함으로 인하여 소리가 생기고 그 소리로 인하여 색질이 존재하며, 그 색질로 인하여 향기가 있고 그 향기로 인하여 접촉이 있으며, 그 접촉으로 인하여 맛을 느끼고 그 맛으로 인하여 법을 느끼나니 여섯 가지 어지러운 망상이 업장의 성품을 이루기 때문에 열 두 가지의 구분이 그로 말미암아 굴러 돌아가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과 소리, 향기와 맛, 접촉과 법이 열 두 번 변함을 다하여 한 바퀴 돌곤 하나니라.

이렇게 굴러 도는 뒤바뀐 형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이 세계에는 알로 태어나는 것, 태로 태어나는 것, 습한데서 생기는 것, 화해서 생기는 것,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닌 것과 없는 것도 아닌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닌 것과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은 종류가 생겨나게 되었나니라.

아난아! 세계에서 허망으로 윤회하는 움직임의 뒤바뀜을 인 하였으므로 그 기운과 화합해서 八만 四천 가지의 날고 잠기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알로 태어나는 갈라람이 국토에 흘러 변하여 고기나 새나 거북이나 뱀 같은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이렇게 세계에 뒤섞인 더러움으로 윤회하는 애욕의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촉촉함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의 가로 되거나 세로 된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태로 태어나는 알포담이 국토에 흘러 변하여 사람이나 축생이나 용이나 신선인 그런 종류들이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서 집착으로 윤회하는 취향의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따뜻함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의 잦혀지고 엎쳐진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런 때문에 습한 모양의 폐시(蔽尸)가 국토에 흘러 변해서 움츠리거나 꿈틀거리는 그런 종류들이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변하여 바뀜으로 윤회하는 의탁하는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접촉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의 새롭거나 오래된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변화하는 형상인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해서 허물을 벗거나 날아다니는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걸림이 있는 형태로 윤회하는 막힘으로 뒤바뀐 것을 말미암았으므로 나타나려는 것과 화합해서 八만 四천 가지 정밀하고 빛나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빛깔이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로 변화해서 길하거나 흉한 정명(精明)의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없어지고 흩어짐으로 윤회하는 미혹한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어두움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그늘지고 감추어진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빛깔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해서 공중에 흩어지거나 가라앉아 없어지는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형상이 없는 것으로 윤회하는 그림자 같은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기억하는 것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잠겨 맺히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생각이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화해서 귀신이나 정령같은 그런 종류가 가득 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우둔함으로 윤회하는 어리석게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미련함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마르고 딱딱한 어지러운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그러므로 생각이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화해서 정신이 화하여 흙이나 나무나 쇠붙이나 돌이 된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서로 기다림으로 윤회하는 거짓된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더러움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기대고 의지하는 어지러운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그러므로 색질이나 생각이 있지는 아니하나 색질이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돌아서 모든 수모 등이 새우로 눈을 삼는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서로 끌어들임으로 윤회하는 성품이 뒤바뀐 것을 말미암았으므로 주문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불러들이는 어지러운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그러므로 빛깔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색깔이 없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해서 주저(呪詛)와 염생(厭生)하는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허망한 것과 부합되어 윤회하는 아득한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다른 것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서로 돌아가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나 생각이 있는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해서 저 나나니 등과 같이 바탕이 다른 것끼리 서로 이루어지는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세계에 원수가 되어 서로 해치면서 윤회하는 살해하는 뒤바뀜을 말미암았으므로 괴이함과 화합하여 八만 四천 가지 부모를 잡아먹는 어지러운 생각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생각이 없는 듯한 것은 아니나 생각이 없는 듯한 갈남이 국토에 흘러 변하니 마치 올빼미 등은 흙덩이를 품어서 새끼를 까며, 파경조(破鏡鳥)가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를 품어서 새끼를 만드는 것과 같으니 세끼가 자라면 부모가 다 잡아 먹히는 그런 종류가 가득차게 되었나니라.

이상의 것을 중생의 열 두가지 종류라고 이름하나니라.

<< 券七 끝 >>

 


正本首楞嚴經 券 八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이러한 중생 하나하나의 종류 가운데 각각 열 두가지 뒤바뀜을 갖춘 것이 마치 눈을 비비면 허공에 어지러운 헛 꽃이 발생하는 것과 같아서 오묘하고 원만하고 참되고 바른 밝은 마음을 뒤바꾸어서 이와 같이 허망하고 어지러운 생각을 완전히 감추게 되었나니라.

네가 지금 부처님의 삼마지를 닦아 증득하려면 그 근본 까닭이 되는 원래의 어지러운 생각에 세 가지 점진적 순서를 세워 놓아야 바야흐로 제거하여 없앨 수 있으리니 이는 마치 깨끗한 그릇에 있는 독한 꿀을 제거하고 끓인 물에 재와 향을 섞어 그 그릇을 깨끗이 씻어낸 다음에야 감로를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무엇을 세 가지 점진적인 순서라고 하는고 하면 첫째는 닦고 익힘이니 도 닦는데 방해되는 근본을 제거하는 것이요, 둘째는 참된 수행이니 그 정성(正性)을 없애는 것이요, 셋째는 더욱 나아가는 것이니 그 현재의 업을 어기고 역으로 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을 도와주는 원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이 세계에 열 두 가지 종류의 중생이 스스로 완전할 수가 없어서 네 가지 식사방법에 의하여 살아가나니 그것은 이른바 씹어 먹는 것과 접촉으로 먹는 것과 생각으로 먹는 것과 의식으로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일체의 중생들이 모두 먹는 것을 의지하여 살아간다고 한 것이다. 아난아! 일체 중생이 단 것을 먹기 때문에 살고 독한 것을 먹기 때문에 죽나니 이 모든 중생들이 삼마지를 구하고자 할진댄 마땅히 세상의 다섯 가지 냄새나는 채소를 끓어야 하나니라.

저 다섯 가지 매운 채소는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을 발생하고 날 것으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더해지나니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매운 채소를 먹는 사람이 비록 十二부 경전을 설법한다고 하더라도 시방의 하늘이나 신선들이 그 냄새를 싫어하여 모두가 멀리 떠날 것이요 모든 아귀들은 그가 밥 먹을 적에 그 입술을 핥을 것이므로 항상 귀신과 함께 있게 되어 복덕이 날로 사라져서 영원히 이익이 없을 것이며 또 매운 채소를 먹는 사람은 삼마지를 닦더라도 보살과 하늘과 신선과 시방의 선신들이 와서 수호하지 아니하므로 힘센 마구니의 왕이 그 틈을 타서 부처님 몸으로 가장하고 나타나 설법을 하되 금하는 계율을 그르다고 비방하고 음행, 성냄, 어리석음을 찬양하리니 죽어서는 마왕의 권속이 되었다가 마구니의 복을 다 받게 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아! 보리를 닦는 자는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영원히 끊어야 하나니 이것은 수행을 증진해 나아가는 첫번째 차례라고 하나니라.

어떤 것을 정성(正性)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이 중생들이 삼마지에 들어가려면 먼저 청정한 계율을 엄하게 지켜서 음욕의 마음을 영원히 끊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으며 불로써 음식을 깨끗이 하여 날 것의 기운을 먹지 말아야 한다. 아난아! 저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음란한 마음과 살생할 마음을 끊지 않고서는 삼계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이치가 없나니 마땅히 음욕이 독사보다 심하게 여기거나 원수와 도적을 보는 것처럼 해야 할 것이니라.

먼저 성문의 네 가지 또는 여덟 가지 내침을 당하는 계율을 잘 지켜서 몸을 가다듬어 흔들리지 말고 그런 다음에 보살의청정한 율의(律儀)를 행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일어나지 않게해야 하나니라.

음욕과 성냄을 완전히 끊어서 금하는 계율을 성취하면 곧 세상에서 서로 낳고 서로 죽이는 일이 영원히 없어질 것이요 훔치는 것과 겁탈을 행하지 아니하여 서로 빚을 짓는 일이 없으면 역시 세상에서 갚아야 할 묵은 빚도 없어지리라.

이렇게 청정한 사람이 삼마지를 닦으면 부모가 낳아준 육신에 천안을 필요로 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시방세계를 볼 수 있게 되어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들어서 직접 성인의 뜻을 받들어서 큰 신통을 얻어 시방세계에 노닐면서 숙명(宿命)이 맑아져서 어렵고 험함이 없어지리니 어떤 것을 현재의 업장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이렇게 청정하게 금하는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 마음에 탐욕과 음욕이 없어지면 밖의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에 대다수가 흘러서 빠지지 않게 되리니 흘러 빠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근원을 돌려 스스로 돌아가게 되나니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이 반연하지 않으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은 상대할 것이 없어져서 흘러감을 되돌려 전일하게 되어서 여섯 가지 작용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시방의 국토가 밝고 청정함이 마치 유리 속에 밝은 달을 달아놓은 듯하여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서 오묘하고 원만하고 평등하여 크게 편안함을 얻게 될 것이요 일체 여래의 긴밀하고 원만하며 청정하고 오묘함이 다 그 속에 나타나서 이 사람이 즉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나니라.

이로부터 점점 닦아서 가는 곳마다 행동을 발해서 성인의 위치에 편안히 서게 될 것이니 이것이 수행을 증진해 나아가는 세 번째 차례이니라.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 중생이 여래의 혜명각성(慧命覺性)은 누구든지 다 갖추고 있나니 선남자와 선여인이 대승의 경지를 닦는 사람은 삼마지에 대해 가볍게 편안히 보아 비추어서 마음을 항복받고 기미를 기다려서 화합하고 응집해야만 바야흐로 부처님의 도를 이루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욕애가 말라버려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서로 만나지 않으면 앞에 나타나는 남은 바탕이 다시는 계속하여 생기지 않을 것이요 집착하는 마음이 비고 밝아져서 순수한 지혜만 남게 될 것이며 지혜로운 성품이 밝고 원만해져서 시방세계가 환하게 통해서 그 지혜가 마른 것은 "간혜지(乾慧地)"라고 이름한다.

욕애의 습기가 처음으로 말라서 여래의 법류수(法流水)와 접하지 못하므로 모든 부처가 비로소 씨앗이 있는 터전에 응할 수 있는 때를 정하여 보배 구슬을 거두어 들여서 보호하면서 항상 이렇게 미묘한 법륜을 굴리셨으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켜서 여래께서 수련하던 바른 길을 밟아서 더디게도 말고 속하게도 말아 정상적인 행동을 자세히 살펴야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이러한 마음으로 가운데로 가운데로 흘러 들어가면 오묘하고 원만함이 열려 퍼지리니 참되고 오묘하고 원만함을 따라서 거듭 참되고 오묘함을 발생하여 오묘한 믿음이 항상 머물러서 일체의 부질없는 생각이 남김없이 없어져서 중도가 순진하게 되는 것을 "신심주(信心住)"라고 하나니라.

참됨 믿음이 밝고 또렷해서 일체가 원만하게 통해서 오음과 십이처와 십팔계 이 세 가지가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못하며 이와같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겁을 지내는 동안 몸을 버리고 몸을 받던 일체의 습기가 모두 앞에 나타나게 되면 이 선남자가 그것을 모두 기억해 생각해서 잊어버림이 없는 것을 "염심주(念心住)"라고 하나니라.

오묘하고 원만함이 순수하고 진실하여 참다운 정기가 조화를 발하여 시작없는 과거로부터의 습기가 하나의 정밀하고 밝음으로 통해지거든 오직 정밀하고 밝음으로써 참되고 청정한 데에 나아가는 것을 "정진심"이라고 하나니라.

마음에 정기가 앞에 나타나서 순수한 지혜로 되는 것을 "혜심주(慧心住)"라고 하나니라.

지혜의 밝음을 잡아가져서 두루두루 맑고 고요하여 그 고요하고 오묘한 것이 항상 엉겨 있음을 "정심주(定心住)"라고 하나니라.

선정 속에 빛이 밝음을 발하여 밝은 성품이 깊이 들어가서 오직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나지 아니함을 "불퇴심"이라고 하나니라.

마음으로 나아감이 편안해서 이를 보호하여 지키고 잃지 않아서 시방 여래의 기분과 서로 접촉함을 "호법심"이라고 하나니라.

밝은 깨달음을 보호하고 지켜서 능히 오묘한 힘으로써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돌이켜서 부처를 향해 편안히 머무름이 마치 두 개의 거울이 빛을 서로 대하는 것과 같아서 그 가운데 오묘한 그림자가 거듭거듭 서로 들어가는 것을 "회향심"이라고 하나니라.

마음의 빛이 가만히 돌아와서 부처님의 항상 엉겨있는 위 없이 오묘하고 청정함을 얻어서 작용이 없는 경지에 편안히 머물러서 잃음이 없는 것을 "계심주"라고 하나니라.

계에 머물러서 자재하여 시방에 노닐면서 가는 것마다 원하는대로 됨을 "원심주"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참된 방편으로 이 열가지 마음을 발하여 마음의 정기가 빛을 발해서 열 가지 작용을 거쳐서 하나의 마음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발심주"라고 하나니라.

마음 속에서 마음을 발함이 마치 맑은 유리 속에 정밀한 금을 달아놓은 듯하거든 앞의 오묘한 마음으로 이를 밟아 지반(地盤)을 이루는 것을 "치지주"라고 하나니라.

심지(心地)에 들어감과 아는 것을 모두가 또렷이 밝음을 얻어서 시방에 노닐면서 머물거나 걸림이 없게 된 것을 "수행주"라고 하나니라.

행하는 것이 부처님과 같아서 부처님의 기분을 받음이 마치 중음신이 스스로 부모를 구할 적에 음계의 소식이 가만히 통하는 듯해서 여래의 종성(種性)으로 들어감을 "생귀주"라고 하나니라.

이미 도태에 들어서 친히 부처님의 아들을 봉양함이 마치 세상의 부녀자가 이미 아이를 배어서 사람의 모양이 결함이 없는 듯한 것을 "방편구족주"라고 하나니라.

용모가 부처님과 같으며 마음도 같은 것을 "정심주"라고 하나니라.

몸과 마음이 합하여 이루어져서 날로 점점 자라나는 것을"불퇴주"라고 하나니라.

십신(十身)의 신령한 모양이 일시에 구족한 것을 "동진주"라고 하나니라.

형체가 이루어지고 태에서 벗어나서 친히 불자가 된 것을 "법왕자주"라고 하나니라.

성인임을 표시함이 마치 나라의 대왕이 모든 나라의 일을 태자에게 나누어 맡기고 저찰리왕의 세자가 장성하거든 이마에 물을 붓는 의식을 진행하는 것과 같은 것을 "관정주"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부처님의 아들을 성취하고나서 여래의 한량없이 오묘한 덕을 완전하게 갖추어서 시방에 순하게 따르는 것을 '환희행'이라고 하나니라.

능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요익행'이라고 하나니라.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여 거스리고 막는 것이 없음을 증득한 것을 '성냄과 원만한이 없는 행'이라고 하나니라.

갖가지 중생들이 생겨남에 따라서 미래세가 다하도록 삼세에 평등하며 시방에 통달함을 '다함이 없는 행'이라고 하나니라.

모든 것이 합해지고 같아져서 갖가지 법문에 착오(差誤)가 없게 되는 것을 '어리석고 어지러움을 벗어난 행위'라고 하나니라.

곧 같아진 가운데 여러가지 다른 것을 나타내며 하나하나 다른 형상에서 각각 보는 것이 같은 것을 '잘 나타내는 행위'라고 하나니라.

이와 같이 시방의 허공에 이르기까지 작은 먼지까지도 만족하며 하나하나의 티끌 속에 시방의 세계를 나타내어 티끌을 나타내고 경계를 나타내어도 서로 머물거나 걸림이 없음을 '집착이 없는 행위'라고 하나니라.

가지가지 앞에 나타나는 것이 모두 제일의 바라밀다인 것을 '존중행'이라고 하나니라.

이와 같이 원융해서 능히 시방 모든 부처님의 법칙을 이룩한 것을 '선법행'이라고 하나니라.

하나하나 모든 것이 청정하고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없어진지라 한결같이 참되고 작위가 없어서 성품 본래 그대로인 것을 '진실행'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신통력을 만족하게 갖추어서 부처님의 일을 이루고 나서는 순결하게 정진해서 남아 있던 모든 시름이 멀어지거든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하는 상(相)을 없애고 작위가 없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열반의 길로 향하는 것을 '일체 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상을 여윈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무너뜨려야 할 것은 무너뜨리고 여의어야 할 것은 여의어야 하는 것을 '무너뜨릴 것이 없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본래 깨달음이 맑고 고요해서 그 꺼달음이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음을 '모든 부처님과 같은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정밀하고 참된 것이 밝음을 발하여 지위가 부처님의 지위와 같아짐을 '모든 곳에 이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세계와 여래가 서로 들어가되 걸림이 없는 것을 '다함이 없는 공덕장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부처님의 지위와 같은 데서 그 지위 가운데 각각 청정한 원인이 생기고 그 원인에 의해 빛을 발휘하여 열반의 도를 취하는 것을 '평등한 선근을 순종하여 따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참된 선근이 이미 이루어져서 시방의 중생들이 모두 나의 본성인지라 그 성품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중생을 잃지 아니함을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것을 순종하여 따르는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일체 법에 나아가며 일체상을 여의나니 나아가고 여의는 두 가지에 집착함이 없는 것을 '진여상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참되고 여여한 것을 증득해서 시방에 걸림이 없는 것을 '얽매임이 없이 해탈한 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성품의 덕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서 법계에 한량이 없어진 것을 '법계무량회향'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이렇게 청정한 마흔 한 가지 마음을 다하고 다음으로 네 가지 오묘하고 원만한 가행(加行)을 이루나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나의 마음을 삼아 나갈듯하면서 나가지 못함이 마치 불을 피울 적에 그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은 것을 '난온지'라고 하나니라.

또 자기의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밟아오신 것을 이루어서 의지한 듯하면서도 의지하지 않음이 마치 높은 산에 오를 적에 몸은 허공에 들어갔으나 아래는 약간 걸림이 있는 것과 같음을 '정상지'라고 하나니라.

마음과 부처 그 두 가지가 같아서 중도를 잘 증득한 것이 마치 모든 일에 잘 참는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지도 않고 밖으로 내보내지도 않는 것처럼 함을 '인내지'라고 하나니라.

헤아림이 없어져서 미각(迷覺)과 중도 그 둘 다 지목할 수 없음을 '세계일지'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큰 보리에 대해 잘 통달하여 그 깨달음이 여래와 통하여 부처님의 경계를 다한 것을 '환희지'라고 하나니라.

다른 성품이 같은데로 들어가고 같은 성품도 없어진 것을 '이구지'라고 하나니라.

맑음이 지극하여 밝음이 생김을 '발광지'라고 하나니라.

밝음이 지극하여 깨달음이 원만함을 '염혜지'라고 하나니라.

일체의 같고 다름이 이르지 못하는 것을 '난승지'라고 하나니라.

작위가 없는 진여가 되어서 성품이 맑아지고 밝게 드러나는 것을 '현전지'라고 하나니라.

진여의 끝까지를 다한 것을 '원행지'라고 하나니라.

한결같은 진여의 마음 뿐인 것을 '부동지'라고 하나니라.

진여의 작용을 발하는 것을 '선혜지'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저 모든 보살들이 이로부터 이전에는 닦고 익히는 공부를 마치고서 그 공덕이 원만하여졌으므로 그 경지를 지목하여 '닦아 익히는 지위'라고 하나니라.

자비의 그늘과 오묘한 구름이 열반의 바다를 덮은 것을 '법운지'라고 하나니라.

여래는 흐름을 거스리지만 이러한 보살은 순하게 행하여 이르러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 어울린 것을 '등각'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간혜의 마음에서부터 등각에 이르러야만 그 깨달음이 비로소 금강심 가운데에 첫 간혜지를 얻게 되나니라.

이렇게 거듭거듭 열 두 가지를 홑으로 겹으로 해야만 바야흐로 묘각을 다하여 위없는 도를 이루나니라.

이 여러가지 지위에 모두 금강으로 허깨비와 같은 열가지 깊은 비유를 관찰하여 사마타(奢摩他) 가운데 모든 여래의 비바사나로써 청정하게 닦아 증득해서 점차 깊이 들어가나니라.

아난아! 이것은 모두가 세 가지 증진법으로 수행한 것이므로 쉰 다섯 개 지위의 참된 보리의 길을 훌륭하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 관찰하는 자는 올바른 관찰이라 하고 다르게 관찰하는 자는 사특한 관찰이라고 하나니라."

그때에 문수사리법왕자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이 경전의 이름을 무엇이라 해야 하며 저와 중생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하겠습니까?"

부처님이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경전의 이름은 <대불정시다다반다라무상보인시방여래청정해안>이라고 하며 또 다른 이름은 친척과 그의 인연있는 사람을 구호하여 아난과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성비구니를 제도하여 변지해(遍知海)에 들게 하는 것이며 또 다른 이름은 <여래밀인수증요의>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름은 <대방광묘연화왕시방불모다라니주>라고도 하며 또 다른 이름은 <관정장구제보살만행수능엄>이라고 하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가져야 한다."

<< 券八 끝 >>

 

 

유가수련증험설(瑜伽修煉證驗說)

동덕조(童德稠)스님이 묻기를

"부처님 법은 비밀이라서 사실 듣기가 어려운 것이니 머리를 조아리고 공경히 절을 올리며 불법 듣기를 원합니다."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불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참 스승을 찾아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모시고 받들어라. 옛날 석가세존이 출가해서 六년이나 스승을 구하여 후인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였으니 너는 마땅히 성심을 다해 목마르게 구해야 할 것이다."

대답하기를,

"지금 화상을 배알하였사온데 다시 어떤 스님을 찾으란 말씀입니까?"


七일 동안 똑바로 앉아서 꼼짝 않고 물러가지 아니하거늘 그때서야 말씀하시기를,

"도란 삼천 육백 가지 문이 있으니 어떤 법을 듣고 싶어하느냐?"

대답하기를,

"그러한 여러가지 문을 믿고 알아서 닦아 증득하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까?"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그럴 리는 없나니라. 그럴 리는 없나니라."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지극한 소원은 부처님의 법이 유일한 문입니다."

불공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수능엄경은 상근기와 중근기와 하근기가 모두 마땅히 믿고 알아서 닦아 증득해야 할 도이니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켜야 한다."

스님이 누진통의 법을 듣고자 하여 백 번 절하고 애걸하거늘 법사가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주시니 스님이 큰 서원을 발하고 백 번 절하며 감사드리며 말하기를 "다행이 큰 은혜를 입어 삼마지의 위 없는 매우 깊은 큰 법을 속시원하게 들었습니다만 그 중에서 수행함에 있어 마구니의 어려움과 수행할 떠의 징험을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불공화상이 말씀하기를,

"마구니의 일은 경전 가운데 이미 말하였으니 다시 덧붙여 말하지 않겠지만 징험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있으므로 참되게 수행하는 사람이 몰라서는 안 된다. 대략 다음과 같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처음에 단량법(壇場法)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여 정욕과 애욕이 다 끊어지고 계율이 정결해지면 삼경(三庚) 때에 이르러 금꽃이 발생하고 봄 기운이 화창해지면서 황홀하고 아득하여 마음과 그 대상들이 모두 고요하게 되리니 이는 처음 간혜지의 징험이니라. 그 다음은 심장의 경락[心經]이 넘치고 솟아올라 입에 단 침이 생기고 다음은 음과 양이 서로 치고 받아서 배에서 우뢰소리 같은 것이 울려오며, 다음은 혼백이 안정되지 못해서 꿈에 놀래거나 두려움이 많아지고 다음은 지니고 있던 질병이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으며, 다음은 단전이 따뜻해지고 얼굴 모습이 맑고 수려해지고 다음은 깜깜한 방에 있어도 원만한 빛이 일산 같이 비치며, 다음은 꿈 속에 용기가 솟구쳐서 다른 물건이 해칠 수 없고 다음은 관문이 잠겨 굳게 봉해져서 몸 밖으로 새어나가는 정기가 저절로 끊기며 다음은 우뢰 소리가 한 번 울림에 뼈 마디가 모두 통하여 이어지고 다음은 습기가 저절로 사라져서 탐욕이 움직이지 않나니 이는 십신 누진통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침이 가공되어서 치즈처럼 엉기게 되고 다음은 점점 비린내 나는 것으로 입과 배를 채우는 것을 싫어하며, 다음은 참 기운이 차음 가득차게 되어 음식 먹는 것이 줄어들고 다음은 근골이 가볍고 건장해져서 그 몸이 나는 것이 가볍고 다음은 눈동자가 그린듯이 선명해지고 또 번개처럼 빛나며, 다음은 백 걸음 밖에 있는 가을 털처럼 작은 것도 볼 수 있게 되고 다음은 오래 전에 있던 흉터나 주름살이 저절로 없어져서 흔적이 없이 되며, 다음은 눈물 콧물이나 땀이 나오지 않고 다음은 삼시(三尸)와 구충(九蟲)이 모두 없어지며, 다음은 도태가 원만해지고 참 기운이 가득해져서 음식을 끊게 되나니 이는 십주 사다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온 몸의 붉은 피가 다 흰 연고처럼 변하고 다음은 입과 코에 저절로 오묘한 향기가 나며, 다음은 백발이 다시 검어지거나 빠진 이가 새로 나게 되고 다음은 내부가 명랑하게 밝아져서 장부를 환하게 볼 수 있으며, 다음은 다른 사람의 병을 입으로 불어서 치료하며 수은을 입김으로 말리고 다음은 추위와 더위가 침입하지 못하고 죽고 삶이 간섭하지 못하며, 다음은 손으로 반석 위에 그리면 글자가 완전하게 새겨지고 다음은 혼백이 돌아다니지 아니하여 꿈과 잠이 없어지며, 다음은 신비한 광채가 명랑해져서 다시 낮과 밤이 없이 되고 다음은 자태는 옥수와 같고 살은 금색처럼 투명해지나니 이는 십행 아나함의 징험이니라.

다음은 속 뜻이 맑고 높아서 큰 허공과 합해지고 다음은 양정(陽精)이 체를 이루어서 신부(神府)가 견고해지며, 다음은 고요한 중에 이따금 하늘 음악 소리가 맑게 들려오고 다음은 안으로 항상 화엄국토에 노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다음은 안의 성품이 출현하고 밖의 신이 찾아와 조회하게 되고 다음은 천시(天時)와 사람의 일을 다 미리 알 수 있게 되며, 다음은 용맹스런 힘이 매우 화창하여 항상 위로 올라가게 되고 다음은 공덕과 수행이 원만하여 부처님의 도록(圖錄)을 받게 되며, 다음은 붉은 노을이 눈에 가득하고 금빛이 몸을 감싸며, 다음은 채색 구름이 둘러 싸서 형체와 정신이 모두 오묘하게 되나니 이것은 십회향 아라한의 징험이니라. 대장부의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세워지는 일이나 그러나 이 뒤에도 다시 위로 향하여 공부해 나갈 일이 있나니라.

스님이 공경을 다하여 이마를 대어 절하고 또다시 네 가지 과(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묻거늘 불공화상이 대답하기를 "수다원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성인의 흐름인 누진통에 들어가는 과명(果明)이니 이것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사다함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일래(一來)라고 하니 한번 천상에 올라갔다가 한번 인간에 내려오는 것이며, 아나함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불래(不來)라고 하니 삼계를 초탈해서 욕계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요, 아라한은 여기말로 번역하면 무생(無生)이라고 하니 만가지 번뇌가 다 끊어짐이니 곧 함이 없는 과(果)이니라. 경전에 이르기를 '아라한이란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마음대로 변화할 수도 있으며 무한겁(劫)의 수명을 누릴 수가 있으며 천지도 고요하게 할 수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고 하시니라."

또 화두를 가지고 견성하는 일에 대해서 물으니 대답하기를,

"견성은 곧 도를 증득한 뒤에야 볼 수 있는 것이다. 화두를 가지고 견성한다는 말은 어리석은 사람이 꿈 속에서 황금을 얻은 것과 같으니 내가 상관할 것이 아니며 네가 물을 것도 아니니라."

"그러면 옛 성인이 어찌하여 그런 것을 만들어 놓았습니까?"

대답하기를,

"그러한 방편으로 잡다한 일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동적조(童德稠)스님이 七일간 단식한 것은 마치 혜가대사가 눈 속에 서서 팔을 자른 것과 같은 것이다.

 

유가록에 이르기를, 유가란 여의주의 이름이니 성명(性命)을 수련해서 도태를 결성하는 비유이니라.

<< 8권 부록 유가수련증험설 끝 >>

 

正本首楞嚴經 券 9

그때에 세존께서 이렇게 경전의 이름을 말씀하시니 그 즉시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여래께서 열어 보이신 밀인(密印)인 반다라의 이치를 들었사오며 아울러 이 경의 이치에 알맞는 이름을 듣고 선나로 성인의 지위를 닦아가는데 차츰 더해가야 할 오묘한 이치를 확실하게 깨달아서 마음이 비어 엉기게 되었으며 삼계에서 마음을 닦는 여섯 단계의 미세한 번뇌를 끊게 되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합장하여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큰 위엄과 덕을 갖추신 세존이시여! 자비하신 말씀이 막힘이 없어서 중생들의 미세하게 잠긴 의혹을 잘 열어 보이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오늘에 몸과 마음이 쾌활해져서 크게 요익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오묘하고 밝고 참되고 청정한 맑은 마음이 본래 두루두루 원만한 것이라면 이와 같이 큰 땅덩어리의 풀, 나무와 꿈틀거리는 함령(含靈)들이 본래 근본인 진여이므로 이는 곧 여래께서 부처가 된 참다운 실체로서 부처님의 본체가 진실하거늘 어째서 또다시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하늘 등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도는 본래 저절로 생긴 것입니까? 아니면 중생의 허망한 습기로 생긴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보현향 비구니 같은 이는 보살계를 지키다가 사사로이 음행을 저지르고 거짓으로 말하기를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이 살생도 아니고 훔치는 것도 아니므로 업보가 있을 수 없다 고 했더니 그 말을 하자마자 먼저 여인의 음근에서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더니 그 다음에 사지의 마디마디 맹렬한 불이 붙었으며, 유리는 구담족성을 죽여 없애고 선성은 부처도 없고 불법도 없고 열반도 없다고 망령되게 말하다가 산 몸둥이 그대로 모두 아비지옥에 빠졌습니다. 그러한 지옥은 정해진 곳이 있는 것입니가? 아니면 자연히 저마다 업보를 일으켜 각각 스스로 받는 것입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어리고 어두운 자들을 일깨워 주셔서 계를 지키는 중생들로 하여금 결정한 이치를 듣자옵고 기뻐서 이마로 받들어 조심하고 정결하여 변함이 없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통쾌하다 그 물음이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사특한 소견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해 주겠다.

아난아! 일체 중생이 사실은 본래 참되고 청정한 것이건만 허망한 소견으로 인하여 허망한 습기가 생기나니 그것으로 인하여 내분과 외분으로 갈라지나니라.

아난아! 내분이라고 함은 곧 중생의 분내(分內)이니 모든 애욕의 생각으로 인하여 허망한 정이 일어나나니 그 정이 쌓여서 그치지 않으면 능히 애욕의 몸이 생긴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마음에 좋은 음식을 생각하면 입 속에서 침이 생기고 마음으로 앞에 만났던 사람을 생각하여 가엾게 여기거나 원한을 품으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재물과 보배를 탐내거나 구하면 마음에 침을 흘려서 온 몸이 빛나고 윤택해지며 마음에 집착하여 음욕을 향하면 남자와 여자의 음근에 자연히 액체가 흐르나니라.

아난아! 모든 애욕이 비록 서로 다르지만 흐르고 맺힘은 같으니 윤택하고 촉촉한 습기는 올라가지 못하므로 자연히 아래로 떨어지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내분'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외분(外分)이라 함은 곧 중생의 분외(分外)이니 모두가 목마르게 우러르므로 인하여 허망한 생각이 발생하게 된다. 그 허망한 생각이 쌓여서 그치지 아니하면 능히 수승한 기운이 생기게 되나니,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에 금하는 계율을 가지면 온 몸이 가볍고 맑아지며 마음에 주문이나 보인(印)을 가지면 돌아봄이 웅장하고 굳세어서 마음이 하늘에 나고자 하면 꿈 속에서나 상상속에 늘 날아다니고 마음 속에 부처님 나라에 살고자 하면 성인의 경지가 아득히 나타나며 선지식을 잘 섬기면 스스로 몸과 목숨을 가벼이 하나니라.

아난아! 모든 생각이 비록 다르지만 가볍게 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날아 움직이는 것은 잠기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 뛰어넘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외분'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일체 세간에 나고 죽는 것이 서로 계속되어서 나는 것은 습기에 순종함을 따르고 죽음은 변해 흐름을 따르나니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아직 따뜻한 감촉이 남아 있을 적에 일생의 선과 악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죽음을 거역하고 삶을 따르는 두 가지 습기가 서로 어울리나니라.

순전한 생각은 위로 날아서 반드시 천상에 나게 되나니 만약 날으는 마음 가운데 복과 지혜를 겸하고 청정한 서원까지 겸하였으면 자연히 마음은 열리어 시방의 부처를 볼 수 있게 되어서 모든 정토에 서원을 따라 왕생하나니라.

정이 적고 생각이 많으면 가볍게 들리는 것이 멀지 못하여 곧 날아다니는 신선이나 큰 힘을 지닌 귀왕이나 날아다니는 야차나 걸어다니는 나찰이 되어서 사방 하늘에 노닐되 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나니라.

그 가운데 만약 착한 서원과 착한 마음이 있어서 나의 법을 잘 보호하고 지키며 혹은 금하는 계율을 잘 지켜서 계를 지키는 사람을 따르거나 혹 신주를 보호하여 신주를 가진 사람을 따르며, 혹은 선정을 보호하여 법인을 편안히 보전하면 그러한 사람은 친히 여래의 자리 아래에 머물게 되나니라.

감정과 생각이 균등하면 날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인간에 나게 되는데 생각이 밝으면 총명하고 감정이 어두우면 우둔하게 되나니라.

정이 六할에 생각이 四할이면 가로된 중생에 흘러 들어가게 되어서 무거운 것은 털달린 무리가 되고 가벼운 것은 깃달린 족속이 되나니라.

정이 七할에 생각이 三할이면 수륜(水輪)에 잠겨 내려가서 갖가지 고초를 받나니라. 정이 八할에 생각이 二할이면 화륜(火輪)의 경계에 태어나서 맹렬한 불을 받아 몸이 아귀가 되어서 항상 불에 타게 되며 물도 몸을 해하여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百千겁(劫)을 지내나니라.

정이 九할이고 생각이 一할이면 밑으로 화륜을 뚫고 내려가서 몸이 바람과 불, 이 둘로 서로 어울려 지나는 것에 들어가서 가벼우면 유간지옥에 태어나고 무거우면 무간지옥에 태어나는 두 가지의 지옥이 있나니라.

순수한 정은 곧 잠겨서 가장 큰 아비지옥에 떨어지나니 만약 잠기는 마음 가운데 대승을 비방하거나 부처님께서 금하시는 계율을 헐뜯으며 허망하게 거짓 법을 말하거나 헛되이 시주님의 보시를 탐내거나 외람되게 공경을 받거나 오역죄나 십중죄를 지으면 다시 시방의 아비지옥에 떨어지나니라.

지은대로 따르는 악업이 비록 스스로 부른 것이나 모든 같은 분수 가운데 함께 받는 원래의 경지가 있나니라.

아난아! 그러한 것들은 모두 저 중생들 스스로가 지은 업보대로 감응된 것이니 열 가지 익힌 버릇이 씨앗이 되어 여섯 가지의 교보(交報)를 받나니라.

무엇을 열 가지 원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첫째는 음란한 버릇을 접촉함이 서로가 비비는 데서 생겨나나니 서로 비비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 맹렬한 불길이 그 가운데서 일어남을 느끼나니 마치 사람이 손을 서로 비비면 뜨거운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타오르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 등으로 가하는 고통을 받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음란하고 방탕함을 지목하여 '애욕의 불'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의 음욕 보기를 마치 불 구덩이를 피하듯이 하나니라.

둘째는 탐욕의 버릇으로 서로 계량함이 서로를 빨아들이는데서 생기나니 빨아들이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때에 추위가 쌓이고 단단한 얼음이 그 가운데서 얼어붙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입으로 바람을 들이마시면 찬 감촉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두 가지 버릇이 서로 업신여기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타타, 파파, 라라 등 벌벌 떨면서 푸르고 붉고 흰 연꽃 등의 얼음 지옥에서 추위에 떠는 고초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탐내어 구하는 것을 명목하여 '독한 물'이라고 똑같이 이름하였고 보살이 탐욕 보기를 마치 장해를 피하듯이 하나니라.

셋째는 거만한 버릇으로 서로 업신여김이 서로가 뽐내는 테서 생기나니 뽐내는 마음이 치달려서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허공에 날고 파도에 달려가서 그 파도가 쌓여 물이 되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입술에 혀를 대고 빨아 맛을 보면 그로 인하여 물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고동(鼓動)하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핏물, 잿물, 뜨거운 모래, 독기있는 바다와 구리 녹인 물을 마시는 등의 고통을 받나니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거만한 것을 명목하여 '바보가 된다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거만함을 보면 큰 물을 피하듯이 하나니라.

넷째는 성내는 버릇으로 서로 충돌함이 서로를 거슬리는 데서 생기나니 거슬림이 맺혀서 그치지 않으면 마음의 열이 불길을 발하여 기운을 녹여서 쇠가 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칼, 산, 쇠곤장, 세워진 칼, 칼수레, 도끼, 작두, 창, 톱 등으로 가하는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날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공격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거세당하고[宮] 짤리우고[割] 목을 베고[斬] 도끼로 찍히고[斫] 톱으로 썰리고 찔리고[刺] 몽둥이로 때리고[槌] 치는[擊] 등의 고통을 받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성내고 분해하는 것을 명목하여 '예리한 칼날이다'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성내는 것 보기를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하듯이 하나니라.

다섯째는 간사한 버릇으로 서로가 유인함이 서로 아첨하는 데서 생기나니 그렇게 아첨하여 끌어들이기를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밧줄과 나무로 목을 조르거나 비트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밭에 물을 대면 풀과 나무가 나서 자라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뻗어나므로 지옥에 들어가 쇠고랑과 수갑과 항쇄, 족쇄와 채찍과 곤장 등의 형구로 가하는 고초를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간사함을 명목하여 '참소하여 해치는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간사한 것 보기를 승냥이나 이리처럼 두려워하나니라.

여섯째는 속이는 버릇으로 서로 속임이 서로를 무고하는 데서 생기나니 속이는 것이 그치지 않아서 마음을 날려 간사함을 지으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티끌과 흙과 똥, 오줌의 더럽고 깨끗하지 않음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티끌이 바람에 날려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더해지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빠지거나 차 올리는 것과 날았다 떨어졌다 하는 것과 뜨고 가라앉는 것 등의 고통을 받게 되나니 그러므로 시바의 모든 여래가 속이는 것을 명목하여 '겁살'이라고 이름하고 보살이 속이는 것 보기를 뱀을 밟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일곱째는 원망하는 버릇으로 서로 미워함이 서로가 원한을 품은 데서 생기나니 원한이 쌓여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돌을 날리고 바위를 던지고 뒤주에 가두고 함거에 싣고 독 속에 넣고 부대에 넣어 메치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음흉하고 독한 사람이 가슴에 악독함을 품어 쌓아두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한을 머금고 있으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던지고 차고 얽어매고 때리고 쏘고 당기고 움켜쥐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원한 품은 집을 명목하여 '위해귀(違害鬼)'라고 하고 보살이 원한 있는 이를 보기를 마치 독 술을 마시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여덟째는 송사하는 버릇으로 서로 밝힘이 서로가 어기는 데서 생기나니 어겨 배반함이 쉬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왕사와 관리가 문서로 증명하고 집행관이 문서를 가지고 고문하고 신문하고 추국하여 파헤치고 밝혀내어 사사롭고 외곡된 것을 판단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오가면서 서로 마주 보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어우러지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가슴을 치거나 혀를 뽑거나 불로 지지거나 회초리로 때리거나 말로 변명하는 등의 고초를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송사하여 해치는 일을 명목하여 '사악한 소견의 구덩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송사의 허망하고 편협한 고집장이 보기를 마치 독한 구렁에 빠지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아홉째는 모함하는 버릇으로 서로 모함을 가함이 서로를 비방하는데서 생기나니 비방하여 해치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산과 합하고 돌과 합하여 연자와 맷돌로 갈고 부수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남을 모함하여 해치는 사람이 선량한 사람을 핍박하는 것과 같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배척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누르고 비틀고 때리고 뭉게고 치고 쥐어짜고 꺼꾸로 매다는 등의 고통을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을 명목하여 '모함하는 범'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바르지 못한 것 보기를 마치 번개를 만난 것처럼 여기나니라.

열째는 덮어 씌우는 버릇으로 서로 시끄러움이 서로를 가리고 숨기는 데서 생기나니 숨기고 피하는 것이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거울로 비춰보고 촛불로 비춤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햇볕에 그림자를 숨길 수가 없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고발하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악한 벗, 업보의 거울, 불 구슬로 묵은 업보를 파헤쳐서 대질해서 징험하는 모든 괴로움을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덮어 감추는 것을 명목하여 '음흉한 도적'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덮는 것 보기를 마치 높은 산을 머리에 이고 큰 바다를 밟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것을 여섯 가지 과보라고 하는가? 아난아! 일체 중생이 여섯 가지 의식으로 업보를 짓고 불러 들이는 악한 과보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따라 나오나니라.

어찌하여 악한 과보가 육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느냐? 첫째는 보는 업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오나니 이 보는 업보가 어울리면 곧 죽으려 할 때에 먼저 맹열한 불길이 시방세계에 가득함을 보게 되고 죽는 자의 영혼이 날아가 떨어져 연기를 타고서 무간지옥에 들어가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밝게 보이는 것이니 갖가지 흉악한 사물들만 두루 볼 수 있게 되어서 한량 없는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다른 하나는 어둡게 보이는 것이니 깜깜하여 보이지 않아서 한량 없는 공포증이 생기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보는 불이 보는 것을 태우면 뜨거운 모래나 재가 되고 듣는 것을 태우면 끓는 물과 이글거리는 구리 녹은 물[洋銅]이 되며, 숨을 태우면 검은 연기와 붉은 불꽃이 되고 맛을 태우면 볶은 철환과 쇳물 죽이 되며, 접촉을 태우면 뜨거운 재와 숯이 되고 마음을 태우면 별똥같은 불이 쏟아져서 허공세계에 타오르게 되나니라.

둘째는 듣는 과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 들이나니 이 듣는 업보가 어울리면 죽으려 할 적에 먼저 파도가 천지를 삼키는 것을 보게 되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내려 쏟아져 흐름을 타고 무간 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귀가 열려서 갖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서 정신이 혼란해지는 것이고 둘은 귀가 막혀서 고요하여 듣는 것이 없어서 넋이 빠져 들어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듣는 파도가 들음에 쏟아 부으면 꾸짖고 따지는 것이 되고 보는 것에 쏟아 부으면 우뢰가 되거나 성난 소리가 되며 악독한 기운이 되고 숨 쉬는데 쏟아 부으면 비가 되고 안개가 되며 갖가지 독충을 뿌려서 몸에 두루하게 되고 맛보는데 쏟아 부우면 고름이 되고 피가 되며 갖가지 더러운 것이 되고 접촉에 쏟아 부으면 짐승이 되거나 귀신이 되며 똥이 되거나 오줌이 되고 뜻에 쏟아 부으면 번개가 되고 우박이 되어서 마음과 혼이 부서지나니라.

셋째는 냄새 맡는 업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니 이 맡는 업보가 어울리면 죽으려 할 적에 먼저 독한 기운이 멀고 가까운데 꽉 차는 것을 보게 되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서 무간지옥에 들어가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코가 열려서 모든 악한 기운을 맡고 숨이 막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고 둘은 코가 막혀서 기운이 막혀 숨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하여 땅에 기절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맡는 기운이 숨쉬는 것과 충돌하면 막힘(質)이 되고 통함(履)이 되며 보는 것과 충돌하면 불이 되고 횃불이 되며, 듣는 것과 충돌하면 빠지는 것이 되거나 넘치는 것이 되고 끓는 것이 되며, 맛과 충돌하면 썩거나 쉬게 되고 감촉과 충돌하면 터지거나 끈적거림이 되며 큰 살덩어리산이 되어서 百, 千의 눈이 있거든 한량 없는 것들이 빨아 먹으며 생각에 충돌하면 재나 유행성 질병이 되거나 날으는 모래가 되어서 몸을 부수나니라.

네째는 맛의 업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니 이 맛의 업보가 어울리면 죽으려 할 적에 먼저 철망(鐵網)에 맹열한 불꽃이 사납게 치솟아서 세계를 뒤덮는 것을 보게 되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아래로 떨어져 그물에 걸려서 그 머리가 꺼꾸로 매달려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나니 하나는 들이 쉬는 기운으로 찬 얼음이 맺히어 살이 얼어터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뿜는 기운으로서 맹렬한 불길이 날리어 골수를 태우나니라.

이와 같이 맛을 보는 것이 맛보는데 닿으면 받들어 모시거나 참게 되고 보는 것에 닿으면 타는 쇠나 돌이 되며, 듣는 것에 닿으면 예리한 무기나 칼이 되고 숨 쉬는 것에 닿으면 큰 철장이 되어 국토를 가득 덮으며, 감촉에 닿으면 활이나 화살이 되고 탄알이나 쏘는 것이 되고 생각에 닿으면 날으는 뜨거운 쇠가 되어, 공중에서 비오듯 쏟아지나니라.

다섯째는 감촉의 과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냄이다. 이 감촉의 업보가 어우러지면 임종할 적에 먼저 큰 산이 사면으로 와서 서로 합해서 다시 나갈 길이 없음을 느끼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큰 철성에 불 뱀, 불 개, 호랑이와 이리, 사자와 소머리를 한 옥졸과 말머리를 한 나찰이 손에 창을 잡고서 성문으로 몰고가는 것을 보게 되어 무간지옥에 들어가 두 가지 모양이 발하여 밝혀지나니 하나는 접촉과 합하는 것이니 산이 합해져서 몸을 핍박하여 뼈와 살과 피가 무너져 터지고 다른 하나는 접촉을 여의는 것이니 칼이 몸에 닿아 심장과 간장이 찢어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접촉과 합함이 접촉에 닿으면 길이나 옥문을 지키거나 관청이나 문초하는 곳이 되고 보는 것에 닿으면 태우거나 사르게 되며, 듣는 것에 닿으면 때리거나 치거나 찌르거나 쏘게 되고 숨 쉬는 것에 닿으면 긁거나 조르거나 고문하거나 얽어매게 되며, 맛보는 것에 닿으면 갈거나 목에 사슬을 씌우거나 베이거나 잘리게 되고 생각하는 것에 닿으면 떨어뜨리거나 날거나 삶거나 굽게 되나니라.

여섯째는 생각의 과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들이나니 이 생각의 업보에 어울리면 임종할 적에 먼저 사나운 바람이 국토에 불어 무너뜨림을 보게 되는데 죽은 영혼이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돌아 떨어지며 바람을 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깨닫지 못함이니 미혹함이 지극해지면 거칠어져서 분주하게 달려 쉬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미혹하지 않음이니 깨달으면 괴로와서 한량 없이 삶거나 태우는 고통을 참기 어려우니라.

이와 같이 사특한 생각이 생각에 맺히면 방향이나 장소가 되고 보는 것에 맺히면 밝게 증명하는 것이 되며, 듣는 데에 맺히면 크게 합하는 돌이 되고 얼음이나 서리가 되고 흙이나 안개가 되며, 호흡에 맺히면 큰 불 수레와 불 배와 불 함거가 되고 맛봄에 맺히면 크게 울부짖고 후회하게 되고 울게 되며, 접촉에 맺히면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어 하루 가운데 한 번 나고 만 번 죽으며 엎치락 뒤치락하게 되나니라.

아난아! 이것을 이름하여 지옥의 열 가지 원인과 여섯 가지 결과라고 하나니 모두가 중생들의 미망으로 지어진 것이니라.

만약 모든 중생들이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악한 업보를 한꺼번에 지으면 이 사람은 즉시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한량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게 되나니라.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각각 지었거나 그 지은 것이 대상과 감각기관을 겸했으면 이 사람은 즉시 八무간지옥에 들어가나니라.

몸과 입 그리고 뜻, 이 세 가지로 음행, 살생, 도적질을 행하면 이 사람은 즉시 十八지옥에 들어가나니라.

세 가지 업보를 겸하지 않고 중간에 혹 한 가지 살생하거나 다른 한 가지 도적질을 하였으면 이 사람은 즉시 三十六지옥에 들어가나니라.

드러나고 드러나서 어느 한 감각기관이 단순하게 하나의 업보만 범하면 이 사람은 즉시 백팔지옥에 들어가나니라.

이로 말미암아서 중생이 따로따로 지었으나 세계에서는 분수가 같은 지옥에 들어가나니 이는 허망한 생각으로 발생한 것이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니라."

아난이 듣고나서 매두 슬프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크게 자비하신 세존이시여! 말세의 중생들이 착한 근기가 없어서 가르친 법을 따르지 않으면 과보를 믿지 않아서 악한 업인을 많이 짓고 지옥에 떨어지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내리시어 널리 방편을 베푸시어 착한 근기를 심어 이러한 고통을 해탈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손으로 땅을 가르키시니 팔한지옥과 팔열지옥과 크고 작은 모든 지옥들이 환하게 앞에 나타나고 고통을 받는 헤일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각각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근본 업인에서 이와 같은 악업을 짓고 지금 이러한 고통을 받습니다."라고 하니 이 모임의 사부 대중들이 말을 듣고 그 현상을 보고서 슬프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 모골이 오싹하게 두려워 하며 지옥의 중생들도 부처님을 뵈옵고 설법을 듣고서 공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이 생겨서 모두 귀의하여 마침내 해탈을 얻게 되었다.

또다시 아난아! 이 모든 중생들이 계율을 그르다 하여 지키지 아니하였거나 보살계를 범하였거나 부처님의 열반을 헐뜯었거나 그 밖에 여러가지 업보로 오랜 세월동안 불에 타는 과보를 받다가 뒤에 다시 죄가 끝나게 되면 모든 귀신의 형체를 받나니라.

만약 본래의 업인에서 여색을 탐하여 죄가 된 이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바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름이 '발귀'이고 재물을 탐하여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물질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름이 '괴귀'이며 거만함을 탐하여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기운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아귀'이고 성냄을 탐하여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쇠한 곳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름이 '여귀'이다.

간사하게 유혹하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축생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이매귀'이고 속이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어두움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몽염귀'며 원한을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벌레를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고독귀'이고 송사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정령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망양귀'이며 남을 억울하게 하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밝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역사귀'이고 덮어 감추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사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전송귀'이다.

아난아! 이 사람들은 모두 순수한 감정으로 추락하였다가 업보의 불이 타서 말라지면 위로 올라가서 귀신이 되나니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허망한 업보가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니 만약 보리를 깨달으면 오묘한 성품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니라.

또다시 아난아! 귀신의 업보가 이미 다 끝나면 정과 생각이 모두 다 공허하게 되어 비로소 세상에서 빚졌던 사람이나 원수끼리 서로 만나게 되나니 그 몸은 축생이 되어서 묵은 빚을 같게 되나니라.

바람과 가뭄 귀신이 바람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흉한 것을 상징하는 일체의 다른 종류가 되고 물건에 붙었던 괴상한 귀신이 물건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올빼미 같은 종류가 되며 기운이 부족했던 아귀가 그 기운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식품이 되는 종류가 되고 쇠퇴한 운을 만났던 여귀가 쇠퇴한 운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회충같은 종류가 되나니라.

축생에게 붙었던 매귀가 축생이 죽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여우같은 종류가 되고 어두움에 붙었던 염귀가 어두움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의복의 원료를 만드는 곤충의 종류가 되나니라.

벌레에 붙었던 고독귀는 벌레가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독을 가진 종류가 되고 정령(精靈)과 어울렸던 귀신은 정령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계절을 따라다니는 종류가 되며 밝음과 어울렸던 귀신은 밝음이 사라지고 업보가 끝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일체의 좋은 일을 알리는 여러가지 종류가 되고 사람에게 의지하였던 귀신은 사람이 죽고 업보가 끝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사람을 따르는 종류가 되나니라.

아난아! 이들은 모두가 업보의 불길이 말라버렸으므로 저 묵은 빚을 갚고 다시 축생이 되었으니 그런 것들도 모두가 허망한 업보로 불러들인 것이다. 만약 보리를 깨달으면 곧 이 허망한 인연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니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보연향 등과 유리왕과 선성비구의 이와 같은 악업은 본래 스스로 불러 일으킨 것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며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며 사람이 준 것도 아니니라. 자신의 허망한 생각으로 불러들인 것이므로 스스로 돌려 받는 것이니 보리의 마음 속에서는 모두 부질없이 허망한 생각으로 엉켜 맺혀진 것이다.

또다시 아난아! 이러한 축생이 묵은 빚을 갚을 적에 만약 그 갚는 자가 갚을 것보다 더 갚았으면 그러한 중생들은 다시 사람이 되어서 지난날 더 갚았던 것을 도로 찾게 되나니 만약 그 사람이 힘이 있고 겸하여 복덕이 있으면 인간 세상에서 사람의 몸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능력껏 갚아 주겠지만 만약 복이 없는 자라면 다시 축생이 되어서 더 받은 것을 갚나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돈이나 재물을 쓰거나 혹 그 힘을 부릴 적에 보상이 충분하면 그만두어야 하거늘 만약 그 중간에 상대의 목숨을 죽이거나 그 고기를 먹으면 그러한 것은 티끌 같이 오랜 세월을 지냈다 하더라도 서로 잡아먹고 서로 죽이는 것이 마치 굴러가는 바퀴가 서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과 같아서 끊임이 없으리니 사마타를 닦거나 부처가 세상에 출현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치게 할 수가 없나니라.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흉한 것을 알리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어리석은 무리에 참여하고 저 올빼미의 종류는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고집 센 무리에 참여하며, 저 잡혀 먹히던 무리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미천한 무리에 참여하며, 저 여우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사나운 무리에 참여하고 저 의복의 원료를 만드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노동하는 무리에 참여하며, 저 독한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용렬한 무리에 참여하고 저 아름다운 일을 알리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총명한 무리에 참여하며, 저 순종하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통달한 무리에 참여하고 저 계절을 따르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글하는 무리에 참여하나니라.

아난아! 그들은 다 묵은 빚을 갚았기 때문에 다시 사람의 길을 회복하였으니 모두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업보에 얽혀서 뒤바뀌어 서로 낳고 서로 죽이고 하나니라. 여래를 만나지 못하거나 바른 법을 듣지 못하여 번뇌 속에서 법이 그렇게 윤전하도록 되어 있나니 그러한 무리를 '가련한 자'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또다시 어떤 사람이 바른 깨달음을 의지해서 삼마지를 닦지 아니하고 따로 허망한 생각을 닦아 생각을 보존하고 형체를 견고하게 하여 인적이 미치지 않는 산림으로만 다니는 열 가지 신선이 있나니라.

아난아! 저 모든 중생들이 약을 먹어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먹는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지행선'이라 하고 풀과 나무를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약의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비행선'이라고 하며 금석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변화하는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유행선'이라 하며 진액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덕을 윤택하게 하여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천행선'이라고 하고 정색(精色)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순수한 기운을 마셔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통행선'이라고 하며 주문과 금계를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술법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도행선'이라고 하고 생각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조행선'이라 하며 사귀어 어울림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감응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정행선'이라고 하고 변화를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깨달음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절행선'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러한 사람은 모두가 사람들 중에서 마음을 단련하되 바른 깨달음을 닦지 아니하고 따로 장생하는 이치를 터득하여 수명이 천만 세를 사는데 깊은 산 속이나 혹은 큰 바닷가 등에 인적이 이르지 않는 곳에서 산다. 그들도 윤회하는 허망한 생각의 유전이라서 삼매를 닦지 아니하였으므로 과보가 다하면 흩어져서 여러 갈래의 부류에 들어가나니라.

아난아!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항상 머물기를 구하지 아니하여서 아내나 첩의 은애를 버리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사특한 음욕에는 마음이 흘러 빠져들지 아니하여 맑고 고요하여 빛나는 이는 죽은 뒤에 해와 달을 이웃하게 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는 그 이름을 '사천왕천'이라고 하나니라.

자기의 아내에게도 음욕과 애욕이 더욱 얇아져서 청정하게 지낼 적에 온전한 맛을 얻지 못한 이는 죽은 뒤에 해와 달의 밝은 경계를 초월하여 인간의 정상에 살게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그 이름이 '도리천'이니라.

만나면 애욕이 잠깐 어울리나 떠나면 생각이 없어져서 인간 세상의 일에 동요함은 적고 고요함이 많은 이는 죽은 뒤에 허공 중에서 밝게 편안히 머물어서 해와 달의 광명이 위를 비추어도 미치지 못하거든 이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광명이 있나니 그러한 한 무리는 '수염마천'이라고 한다.

모든 시간에는 언제든지 고요했다가도 꼭 접촉해야 할 대상이 오면 이를 거절하지 못하는 이는 죽은 뒤에 위로 올라가 정미해져서 아래 세계의 사람이나 하늘의 경계에 접하지 아니하며 이 세계가 다하기에 이르더라도 삼재가 미치지 못하는 이러한 한 무리는 '도솔타천'이라고 하나니라.

나는 애욕의 마음이 없으되 상대뱝의 요청에 따라서 행동하므로 무심하게 행동할 적에 맛이 밀을 씹는 듯한 이는 죽은 뒤에 초월하여 변화하는 곳에 나는 이러한 한 무리는 '낙변화천'이라고 하나니라.

세상에 마음이 없으면서도 세상과 같이 일을 행하여서 일을 행하는 어울림에 있어 분명히 초월한 이는 죽은 뒤에 변화가 있고 변화가 없는데에 두루 뛰어넘어 벗어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타화자재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여섯 하늘이 형상은 비록 동요하는 데서 벗어났으나 마음의 자취가 아직은 서로 어울리니 처음부터 여기까지는 '욕계'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세상에 모든 마음을 닦는 사람이 선나에 의지하지 못하여 지혜는 없으나 다만 능히 몸을 단속하여 음욕을 행하지 않아서 다니거나 않거나 간에 생각이 모두 없어져서 애욕의 더러움이 생기지 아니하여 욕계에 머물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즉시 그 몸이 범천의 무리가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범중천'이라고 하나니라.

애욕의 습기가 이미 없어져서 애욕을 여읜 마음이 나타나고 모든 계율에 대해 좋아하여 순하게 따르면 이 사람은 즉시 범덕(梵德)을 행할 수 있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범보천'이라고 하나니라.

몸과 마음이 오묘하고 원만해서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고 금하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밝게 깨닫기까지 하면 이 사람은 때를 따라 응하여 범중을 통솔하게 되어서 대범왕이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대범천'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모든 고뇌가 핌박하지 못한다.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로 닦지 못했으나 청정한 마음 속에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 동요하지 아니하므로 '초선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그 다음은 범천이 범천 사람을 통솔하고 범행이 원만하게 되어서 맑은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고요하고 맑아서 빛을 내는 그러한 한 무리는 '소광천'이라고 하나니라.

빛과 빛이 서로 어울려서 밝게 비침이 끝이 없으며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유리과 같이 된 이러한 한 무리는 '무량광천'이라고 하나니라.

원만한 광명을 흡수해 지켜서 교화의 실체를 성취하여 청정한 교화를 발휘하여 응용이 다함이 없는 이러한 한 무리는 '광음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흐름은 모든 근심 걱정이 핍박할 수가 없을지니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로 닦은 것은 아니나 청정한 마음 속에 거치른 번뇌가 이미 항복받았으므로 '이선'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하늘 사람들이 원만한 광명으로 음성을 이루고 그 소리로 묘한 이치를 나타내서 정밀한 행동을 이루고 적멸의 즐거움에 통한 그러한 한 무리는 '소정천'이라고 하나니라.

청정한 허공이 앞에 나타나 한계가 없이 펼쳐져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적멸의 즐거움을 이룬 그러한 한 무리는 '무량정천'이라고 하나니라.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원만하게 청정해지고 청정한 덕이 이룩되어 수승하게 의탁할 곳이 앞에 나타나서 적멸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한 무리는 '변정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흐름은 크게 순하게 따름을 갖추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한량 없는 즐거움을 얻나니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나 편안한 마음 속에 기쁨이 다 갖추어졌으므로 '삼선'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또 다음 하늘 사람은 몸과 마음을 핍박하지 아니하여 괴로움의 원인이 이미 다하였으나 즐거움도 항상 머무르지 않는지라 오래되면 반드시 무너지리니 그 괴롭고 즐거운 두 마음을 한꺼번에 다 버려서 거칠고 무거운 현상이 없어지고 청정한 복의 성품이 생긴 그러한 한 무리는 '복생천'이라고 하나니라.

버리는 마음이 원융해져서 수승한 이해가 청정해지고 복이 막힘이 없는 가운데 오묘함을 얻어 순하게 따라서 미래제를 다한 이와 같은 한 무리는 '복애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하늘에서부터 두 갈래 길이 있으니 만약 앞에 마음에서 한량 없는 청정한 광명에서 복덕이 원만하게 밝아서 닦아 증득하여 머문 그러한 한 무리는 '광과천'이라고 하나니라.

만약 앞에 마음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싫어해서 버리는 마음을 정밀하게 연마하되 끊임 없이 계속하여 버리는 길을 원만하게 궁리하면 몸과 마음이 다 없어지며 마음이 불꺼진 재처럼 엉겨서 오백 겁을 지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나고 없어지는 것으로 원인을 삼고 나고 없어지지 않는 성품은 발명할 수 없어서 처음 반 겁은 멸하여 없어지며 뒤의 반 겁은 생기는 그러한 한 무리는 '무상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수승한 흐름은 모든 세상의 여러가지 괴롭고 즐거운 대상들이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이니 비록 움직임이 없는 참다운 경지는 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얻은 바가 있는 마음에 공부의 작용이 순수하게 익숙해졌으므로 '사선'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가운데 또다시 다섯 가지 돌아오지 않는 하늘이 있으니 아래 세계 가운데 九품의 습기를 한꺼번에 끊어버리고 괴롭고 즐거움을 모두 잊어서 아래 세계에서는 있을 데가 없으므로 버리는 마음이 같은 분수 중에서 있을 곳을 정립한 것이니라.

아난아! 괴롭고 즐거움이 둘 다 없어져서 다투는 마음이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한 무리는 '무번천'이라고 하나니라.

기(機)와 괄(括)이 따로따로 행하여서 서로 상대하는 경지가 없는 그러한 한 무리는 '무열천'이라고 하나니라.

시방 세계에 오묘하게 보는 것이 원만하게 맑아서 다시 티끌의 형상과 모든 잠겨진 때가 없어진 그러한 한 무리는 '선견천'이라고 하나니라.

정밀하게 보는 것이 앞에 나타나서 무엇을 하든지 걸림이 없는 그러한 한 무리는 '선현천'이라고 하나니라.

모든 기(幾)를 끝까지 궁리하고 색성의 성품까지 궁리해서 변두리의 경계가 없는 경지에 들어간 그러한 한 무리는 '색구경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불환천은 저 모든 사선천의 네 천왕(天王)들도 유독 공경히 듣기만 하고 알거나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세상에 넓은 들과 깊은 산에 있는 성스러운 도량의 터는 모두가 아라한들이 머물러 있는 것이므로 세상의 추악한 사람들로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난아! 이 열 여덟 하늘은 홀로 행하고 어울림이 없으나 형상의 더러움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여기까지를 '색계'라고 하나니라,

또다시 아난아! 그 유정천(有頂天)인 색변제(色邊際)로부터 그 사이에 다시 두 갈래 갈림길이 있으니, 만약 마음을 버려서 지혜를 발명하여 그 지혜의 빛이 원만하게 통하면 곧 티끌 세계에서 벗어나 아라한을 이루어 보살승(菩薩乘)에 들어가나니,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마음을 돌이킨 큰 아라한'이라고 하나니라.

가령 마음을 놓아버리는데 있어서 싫은 것을 버리는 것을 성취하여 몸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 장애를 없애고 허공에 들어간 그와 같은 한 무리는 '공처'라고 하나니라.

모든 장애가 이미 사라지고 장애가 없어진 그 없는 것 마져도 없어져서 그 가운데 오직 아뢰야식만 남고 말나의 반분 미세한 것만 온전한 그와 같은 한 무리는 '식처'라고 하나니라.

공과 색이 이미 없어지고 의식하는 마음마져 다 없어져서 시방이 고요해져서 아득히 갈 데가 없는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무소유처'라고 하나니라.

식성이 움직이지 않거늘 없어지는 것을 끝까지 연구하여 다함이 없는 가운데서 다하는 성품을 발하여 펴서 있는 듯하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며 다한 듯하면서도 다한 것이 아닌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비상비비상처'라고 하나니라.

이들은 공함을 궁구하였으되 공한 이치를 다하지 못하였나니라.

불환천으로부터 성인의 도가 다한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마음을 돌리지 못한 '둔한 아라한'이고 만약 무상천의 모든 외도천으로부터 공함을 궁구하고 돌아오지 못하여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있는데에 미혹하고 들은 것이 없으면 문득 윤회에 들어가나니라.

아난아! 이 모든 천상에 여러 하늘 사람들은 곧 범부의 업과를 받은 것이므로 그 업보가 끝나면 다시 윤회에 들어가거니와 저 천왕들은 곧 보살이 삼마지에 노닐면서 점차로 증진하여 성인의 무리로 회향하여 수행하는 길이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공한 하늘은 몸과 마음이 다 없어지고 선정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서 업과의 색이 없어진 것이니 여기서부터 끝까지를 '무색계'라고 하나니라.

이것은 모두가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허망함을 쌓아 그것이 발생하여 허망하게 삼계가 생긴 것이거늘 중간에서 허망하게 칠취를 따라 빠져 들어가는 보특가라가 제각기 그 무리를 따르나니라.

또다시 아난아! 이 삼계 가운데 다시 네 가지 아수라의 무리가 있으니 만약 귀신의 길에서 법을 보호한 힘으로 신통을 힘입어 공한 경지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알에서 생겨나니 귀신의 길에 간섭 받는 것이고, 만약 하늘 가운데에서 덕이 모자라 아래로 떨어져서 그가 거처하는 곳이 해나 달을 이웃하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태에서 생겨나니 사람의 길에 간섭 받는 것이며, 어떤 수라왕이 세계를 집착하여 지켜서 힘이 세고 두려움이 없어서 범왕과 제석천과 사천왕과 권세를 다투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변화로 인하여 생겼으니 하늘의 길에 간섭받고 그 밖에 따로 한 등급 낮은 아수라가 있으니 큰 바다 속에서 생겨나 수혈구(水穴口)에 잠겨 있으면서 아침에는 허공에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물에 돌아와서 자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습기로 인해 생겨나서 축생의 길에 간섭 받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지옥, 아귀, 축생, 신선, 하늘, 아수라 등 일곱 갈래의 길을 정밀하게 연구하면 모두가 어둡고 잠긴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다. 허망한 생각으로 생을 받고 허망한 생각으로 업보를 따르거니와 오묘하고 원만하게 밝은 작용이 없는 본래 마음에는 모두가 허공의 헛꽃과 같아서 원래 집착하는 것이 없고 다만 하나의 허망함뿐이어서 다시 어떠한 근거나 실마리가 없나니라.

아난아! 이 모든 중생들이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 이렇게 윤회를 하면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도록 참되고 청정함을 증득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사음과 살생과 훔치는 일을 따르기 때문이니 이 세 가지를 범하지 아니하면 또 사음이나 살생 훔치는것이 없는 데에 태어난다. 그것이 있는 데는 '귀신의 무리'라고 하고 없는 데는 '하늘'이라고 하니 있는 데 없는 데가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윤회하는 성품을 일으키나니 만약 삼마지를 묘하게 발명할 수 있게 되면 오묘한 성품이 항상 고요해서 있는 데나 없는 데가 모두 없어지고 나아가 없어졌다고 그것마져도 없어지고, 오히려 사음하지 않고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는 것까지도 없어질 것이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사음이나 살생이나 훔치는 것을 따르는 일이 있으리요.

아난아! 세 가지 업인을 끊지 못하는 것은 제각기 사사로운 생각이 있기 때문이니 제각기 사사로운 마음이 있음으로 인하여 모든 사사로움이 같은 분한에 정해진 곳이 없지 아니하니라. 부질없는 생각으로부터 발생하나니 부질없는 생각이 생기는 원인이 없으므로 찾아서 궁구할 수도 없나니라.

네가 힘써 수행하여 보리를 얻고자 할진댄 세가지 미혹을 끊어야 할지니 세 가지 미혹을 다 끊지 못하면 비록 신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모두가 세상의 작용이 있는 공용(功用)이다. 습기를 없애지 못하면 마구니의 길에 떨어져서 비록 그 허망함을 제거하고자 하더라도 허위만 더하게 되나니 여래께서 가엾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의 허망한 것은 네 자신이 지은 것이지 보리의 허물이 아니니라.

이와 같은 말은 바른 말이라 할 것이요 만약 이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곧 마왕의 말이니라."

<< 券9 끝 >

 

正本首楞嚴經 券 10

 

그때에 여래께서 법회를 마치려고 하시다가 사자모양의 의자에서 칠보의 안석을 잡아 당기시고

자금산 같은 몸을 돌려서 다시 기대 앉으시고 대중과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배울 것이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오늘날 생각을 돌이켜

 큰 보리인 위없는 오묘한 깨달음에 나아가려 하나니

내가 지금 이미 참다운 수행의 방법을 말하였거니와

너는 아직도 사바타와 비바사나를 닦을 적에

아주 작은 마장의 일들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나니

만약 마구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나는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면

마음을 닦음이 바르지 못해서 사특한 소견에 떨어지게 되리니

혹은 너의 오음에서 일어나는 마장이거나 아니면

혹 천마이거나 또는 귀신이 붙거나 도깨비를 만나게 될 것이니,

마음이 밝지 못하여 도적을 아들인 양 잘못 인정하며

또는 그 가운데 조그만 것을 얻고는 큰 것을 얻은 양 만족을 느끼면 마치

제四선천에서 들은 것이 없는 비구가 성과를 증득하였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하늘의 과보가 이미 다해서 쇠잔한 모양이 앞에 나타나면

아라한도 다시 몸을 받는 일이 있다고 비방하다가 아비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나니

너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부처님께서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있는 세계에 열 두 종류의 중생들이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깨달음이 맑고 원만한 마음의 실체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건만 너희들의 허망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미혹하게 한 탓인지라

어리석은 애욕이 발생하고 그 애욕이 발생함으로 인하여

두루 미혹해지기 때문에 공한 성품이 있게 되었거늘 변화하고 미혹함이 그치지 아니하여

세계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방의 작은 티끌처럼 많고 많은 국토가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기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미혹하고 어리석은 허망한 생각으로 이루어진 때문이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허공이 너의 마음 속에서 생기는 것이 마치 한 조각 구름이 맑은 하늘에 일어나는 것과 같거든

더구나 허공 속에 있는 모든 세계야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

너희들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참다운 것을 발하여 근원으로 되돌아가면

방의 허공이 모두다 소멸하리니 어떻게 허공속에 있는 국토가 찢어지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선정을 닦아 삼마지를 꾸며서 시방의 보살들과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

큰 아라한들로 마음의 정기가 서로 통하고 합해져서

당처가 고요하고 맑아지면 모든 마왕과 귀신과 모든 범부의 하늘들이 그들의 궁전이

까닭 없이 무너지며 큰 땅덩이가 갈라지고 터져서

물이나 육지에서 사는 것들과 하늘을 나르는 무리들이 놀라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음을 보리니

범부들은 어둡고 어두워서 세상이 변천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거니와

저들은 모두가 다섯 가지 신통을 증득하였고

오직 누진통만 증득하지 못하였으므로

티끌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거니

어찌하여 너로 하여금 그들의 처소를 허물어뜨리도록 놓아 두겠느냐?

그러므로 귀신과 모든 천마와 도깨비나 요정들이 몰려와서

삼매 속에 들어있는 너를 괴롭히나니라.

그러나 저 모든 마구니가 비록 크게 성내더라도 저들은 번뇌 속에 있고

너는 오묘한 깨달음 가운데 있으므로

마치 바람이 빛을 부는 듯하며 칼로 물을 베는 듯하여

조금도 접촉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며

너는 끓는 물과 같고 저들은 꽁꽁 얼은 얼음과 같아서

더운 기운이 점점 가까이 가면 저 얼음은 곧 녹아 없어질 것이다.

부질없이 신통력만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다만 그것은 객체일 뿐이므로 성취하거나 깨뜨려 어지럽히는 것은

네 마음 속에 있는 오음[色受想行識]의 주인에게 달려 있나니라.

 

오음의 주인이 만약 혼미해지면 객이 그 틈을 노리겠지만

그때를 당해서 선나를 깨달아 미혹함이 없으면

저 마구니의 일들이 너에게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오음이 사라지고 밝은 데로 들어가면 곧 저 사특한 무리들은 모두 어두운 기운을 받은 자들이니

밝은 것이 어두운 것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가까이 가면 저절로 사라질 터인데 어떻게 감히 머물러 있으면서 선정을 어지럽힐 수 있겠느냐?

 


만약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여서 오음에 미혹되면

너 아난은 반드시 마구니의 자식이 되어서 마구니의 사람이 될 것이다.

 

마등가 같은 경우는 매우 졸렬한 편이었지만

그는 오직 주문만 가지고서도 너를 홀려서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려고 하였으되

八만 가지 행동 가운데

오직 한 가지 계율만 무너뜨리려는 것이었거늘

마음이 청정하였으므로 그래도 빠져들지는 아니하였거니와

거 마구니들은 너의 보배로운 깨달음인 전신을 무너뜨리기를

마치 재상의 집에 갑자기 가산을 몰수당하여 완전하게 무너져내려

구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과 같나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도량에 앉아서 모든 생각이 사라져서 그 생각이 만약 다 끊어진다면

모든 생각을 여의어서 정밀하고 밝아지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변화지 않고 기억하고 잊음이 한결같아져서

그러한 경지에 머물러서 삼마지에 들어감이

마치 눈 밝은 사람이 매우 어두운 곳에 있는 것과 같아서

정밀한 성품이 오묘하고 청정하니 마음은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만약 눈이 밝고 맑아 시방이 환하게 열리면

다시는 어두워지거나 캄캄해지지 않으리니

것을 이름하여 '색음이 다 없어졌다'고 할지니

그 사람은 곧 겁탁을 초월할 수 있으리라.

그 까닭을 살펴보면 견고하고 허망한 생각으로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그러한 가운데 있으면서 오묘하고 밝은 성품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사대[地水火風]가 서로 얽히지 않으면 잠깐 동안 몸이 걸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니

이는 정밀하고 밝음이 앞 경계에 흘러 넘친다고 이름할지니

이것은 다만 공부의 힘으로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되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들의 유혹을 받게 되리라.

 

아난아! 또다시 이러한 마음으로 오묘하고 밝은 성품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그 몸이 안으로 통하면 이 사람은 홀연히 몸 속에 있는 요충이나 회충을 집어내더라도

몸의 형태는 완연하고 조금도 훼상됨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정밀하고 밝은 것이 몸에 넘쳐 흐르는 때문이니

이는 다만 공부한 힘으로 인하여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들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안과 밖을 정밀하게 연구하면

그때에 혼백과 의지와 정신이 이 몸과 마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를 거두어 들여

서로 손님이 되기도 하고 주인이 되기도 하여

홀연히 공중에서 설법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며

혹은 시방에서 은밀한 이치를 말하는 것도 듣게 되리니,

이는 정신과 혼백이 번갈아가며 떨어졌다 합쳤다 하면서 착한 종자를 성취시킨 것으로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맑게 드러나고 밝게 통하여

안에서 일어난 광명이 발하여 밝아지면

시방 세계가 두루 염부단금빛으로 변하며

모든 종류가 여래의 모습으로 변화해서

그때에 문득 비로자나부처님이 천광대에 앉아 계시면

 一千 부처가 주위에 둘러있고

백억의 국토와 연꽃이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마음의 영혼이 신령하게 깨달음을 드러낸 것으로서

마음의 광명이 밝아져서 모든 세계를 비추는 것이니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오묘하고 밝은 성품을 정밀하게 연구해서

끊임없이 관찰하여 잡념을 억제하고 항복받아서 제지하는 것을 뛰어넘으면

그때에 홀연히 시방의 허공이 일곱 가지 보배의 색깔이 되기도 하며

혹은 온갖 보배의 색깔이 동시에 두루 가득하되

​서로 걸리지 않아서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빛이 각각 순수하게 나타나리니

이는 억제하는 공부의 힘이 분수에 넘친 것으로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연구하여 맑고 환하게 밝아져서

정밀한 빛이 산란하지 아니하면 갑자기 밤중에 어두운 방안에서 갖가지 물건을 보되

대낮과 다르지 않으며 어두운 방안의 물건들도 없어지지 않으리니

이것은 마음이 세밀하여 보는 능력이 치밀하게 맑아져서 어두운 데까지 통해 보는 것이니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갖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텅 비고 원융한 데에 원만하게 들어가면 온 몸이 홀연히 풀이나 나무와 같아져서 불로 태우거나 칼로 베어내도 조금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또는 불이 태울 수도 없으며 비록 그 살을 깍더라도 마치 나무를 깎는 것과 같으리니 이것은 정밀하게 수행하여 다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떨쳐버리고 사대[地水火風]의 성품을 밀어내서 한결같이 순수한 경지를 향하여 들어간 때문이니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청정함을 성취하여 마음을 깨끗이 한 공부가 지극하면 문득 큰 땅덩어리와 시방의 산과 강이 모두다 부처님의 나라를 성취하여 일곱 가지 보배를 다 갖추어서 광명이 두루 가득하며 또 항하의 모래 같이 많은 부처가 허공에 두루 가득하게 보이거든 누각과 궁전이 화려하며 아래로는 지옥을 보고 위로는 천궁을 보되 막힘이 없으리니 이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엉겨 날로 깊어져서 그 생각이 오래도록 변화되어 이루어진 것이니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깊고 넓게 연구하면 문득 밤중에 먼 곳에 있는 시장이나 거리에 산재해 있는 친족이나 권속들을 보기도 하며, 혹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기도 하리니 이는 마음을 절박하게 한 결과 그 핍박함이 극에 달하여 흘러나왔기 때문에 막힌 것도 잘 보이는 것이니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훌륭한 경계라고 하겠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또 이러한 마음으로 연구하기를 정밀하고 지극히 하면 선지식의 형체가 변하고 바뀌어서 잠깐 사이에 무단히 여러가지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되리니 이는 사특한 마음이 도깨비가 들렸거나 아니면 천마가 그 마음 속에 들어가서 단서 없는 설법을 하되 오묘한 이치를 통달한 것이니 잠시 그렇게 된 것이지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마구니의 일이 사라지겠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곧 많은 마구니의 유혹을 받게 되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선나에 나타나서 열 가지 마구니의 경지가 모두 색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얽히기[交互]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니 중생들이 미련하고 어두워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그러한 인연을 만날 적에 혼미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해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하면서 큰 거짓말을 하게 되면 밑 없는 구덩이[무간지옥]에 떨어지리니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씀을 간직하여 내가 멸도한 뒤 말법 세상에 전하여서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하고 천마들로 하여금 틈을 얻지 못하게 하여 바른 법을 잘 보호하고 지켜주어서 위 없는 도를 이루게 하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서 사마타 가운데 색음이 다 없어진 자는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보는 것이 마치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으며 얻은 것이 있는 듯하면서도 작용할 수가 없는 것이 마치 귀신들린 사람이 손발도 멀쩡하고 보고 듣는 것도 의혹이 없는데도 마음이 객귀나 사귀와 접촉되어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그것을 수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만약 귀신들린 증세가 사라지면 그 마음은 몸을 떠나 도리어 제 얼굴을 보게 되어서 가고 머무는 행동이 자유로와져서 다시는 걸림이 없으리니 이를 이름하여 수음이 다 끊어졌다고 하는 것이니 이 사람은 견탁에서 벗어나게 되리니 그 까닭을 살펴보면 텅 비고 밝은 허망한 생각으로 근본을 삼았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그 가운데 있어서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아 찬란한 광명이 비침을 보고 마음이 열려서 안으로 억제함이 분수에 지나치면 홀연히 그 곳에서 한없이 슬픈 마음이 생겨나서 모기나 등애를 보는데 이르러서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여기게 되어 연민하는 마음이 생겨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공부의 작용으로 억제함이 지나친 탓이라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오래도록 깨달아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지만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슬픔의 마구니가 그 심장 깊숙히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슬퍼하며 한없이 울 터이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마땅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아난아! 또 저 선정 가운데에서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하여 수승한 모습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 감격함이 분수에 지나치면 갑자기 그 가운데서 한없는 용기가 생겨나서 그 마음이 용맹스럽고 날카로워지며 모든 부처님과 같다는 생각을 하여 삼아승지겁을 한 생각에 초월할 수 있다고 여길 터이니 이는 공부한 작용으로 업신여기거나 경솔하게 대함이 지나친 탓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 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 오래도록 분명하게 깨달아서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일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미친 마구니가 그 마음 깊숙히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자랑하면서 비길데 없을 정도로 아만이 생겨나서 위로는 부처님도 보이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도 보이지 않을 터이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에서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앞으로는 새로 증득할 것이 없고 되돌아오려고 해도 옛날 살던 곳을 잃어버려서 지혜의 힘이 쇠퇴하고 약해져서 중휴지에 들어가 멀리 보이는 것이 없으면 마음 속에 갑자기 크게 졸갑증이 생겨서 어느 때나 침울한 생각이 흩어지지 않아서 그것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현상이라고 여기리니 이는 마음을 닦되 지혜가 없어서 스스로 잃어버린 탓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오래도록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기억하는 마구니가 그 마음 깊숙히 들어가서 이침 저녁으로 마음을 움켜쥐고서 한 곳에 매달려 있으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지혜의 힘이 선정보다 지나쳐서 날래고 용맹함에 선정을 잃어버려서 여러가지 뛰어난 성품을 마음 속에 품게 되면 자기 생각에 노사나불인가 의심하게 되어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쉽게 만족하게 여기니 이는 마음을 씀에 있어 항상 살피지 못하여 지혜의 소견에 빠진 탓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 분명하게 깨달아 오래도록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하열한 것으로도 쉽게 만족할 줄 아는 마구니가 그 마음 깊숙히 들어가서 사람만 보면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위 없는 최상의 진리를 증득했노라'고 하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새로 증득할 것은 얻지 못하고 옛 마음은 이미 없어져서 예전과 지금을 두루 보고 스스로 어렵다는 생각을 내게 되면 마음에 홀연히 끝없는 근심이 생기는데 마치 바늘 방석에 앉은 것 같고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서 항상 사람들에게 자기의 목숨을 끊어주어 빨리 해탈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리니 이는 수행 중에 방편을 잃은 때문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오래도록 분명히 깨달아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한 부분으로 항상 근심하는 마구니가 그 마음 깊숙하게 들어가 손에 칼을 쥐고 제 살을 깎으면서 죽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더러는 항상 근심하며 산속 깊숙히 들어가서 사람들을 보려고 하지 않으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청정한 가운데 있으면서 마음이 편안하고 아늑하게 된 다음에는 갑자기 스스로 한량 없는 기쁨이 생겨 마음 속에 즐거움을 금할 수 없으리니 이는 홀가분하고 편안함을 자제할 지혜가 없는 탓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다. 오래도록 분명히 깨달아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부분에 기쁨과 즐거움을 좋아하는 마구니가 가슴 깊숙히 들어가서 사람을 보면 웃고 길거리에서 저 혼자 노래하고 춤추며 스스로 거리낌 없는 해탈을 얻었다고 하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면 갑자기 무단히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을 일으켜서 이와 같이 같은 수행자를 능멸하는 교만과 겸손한체 하는 교만[過慢]과 그리고 자기만이 최고라고 하는 교만[慢過慢]과 진리를 증득했다고 남을 속이는 교만[增上慢]과 열세인 것을 뽐내는 교만[卑劣慢]이 일시에 모두 발동하여 마음 속으로 오히려 시방의 여래도 가볍게 여기거든 더구나 하급 지위의 성문이나 연각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는 수승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구제할 지혜가 없는 탓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라.

오래도록 분명히 깨달아서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부분의 매우 교만한 마구니가 그 마음 깊숙히 들어가서 탑묘에 예배하지 않으며 경전이나 불상을 부수어 버리면서 시주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불상은 금이나 구리로 만든 것이거나 혹은 흙이나 나무로 만든 것이며 경전은 나뭇잎이거나 헝겁에 불과하며 육신은 참되고 항상한 것이거늘 이것에는 모두가 공경하지 아니하고 흙이나 나무를 숭상하고 있으니 실로 뒤바뀐 짓이다'고 하면서 신심이 깊은 사람까지도 그 말에 속아 불상이나 탑을 마구 부수어서 땅 속에 묻어버려서 중생들을 현혹하게 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하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은 것이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정밀하고 밝은 가운데 정밀한 이치를 원만하게 깨달아서 지나치게 순종하여 따르게 되면 그 마음에 문득 한량 없이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이 생겨나서 스스로 말하기를 성인이 되었으므로 매우 자재함을 증득했노라고 하리니 이는 지혜로 인하여 홀가분하고 청정함을 얻었기 때문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라. 오래도록 분명하게 깨달아서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부분에 홀가분하고 청정한 것을 좋아하는 마구니가 그 마음 깊숙히 들어가서 스스로 만족함을 느껴 다시 더 진출하기를 바라지 않으리니 이러한 무리는 대부분 들은 것이 없는 비구가 되어 중생을 의혹으로 그르치거나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할터이니 올바른 느낌을 잃은 것이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에서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밝게 깨달은 가운데 비고 밝은 성품을 얻으면 그 가운데 문득 영원히 없어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쏠려 인과도 없다고 하면서 한결같이 허공을 향해 들어가 공한 마음이 앞에 나타나서 마음에 영원히 끊어져 없어졌다는 견해까지 내게 되리니 이는 오묘하고 항상함을 스스로 견고하게 할 지혜가 없는 탓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라. 오래도록 분명히 깨달아서 혼미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마음을 내게 되면 허공의 마구니가 마음 깊숙히 들어가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소승이라고 비방하며 보살은 공을 깨달았는데 무슨 계행을 지키고 범함이 있겠는가? 라고 하면서 그 사람이 신심이 있는 시주앞에서 항상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음란한 행위를 마구 행하여도 마구니의 힘에 의지한 것이기 때문에 앞에 있는 사람들을 사로 잡아 의혹이나 비방이 생기지 않게 하며 귀신의 마음이 오래도록 들려서 오줌이나 똥 먹기를 술이나 고기 같이 여기면서 한결같이 모두가 공한 것이라고 하며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려서 사람을 그르쳐 죄를 짓게 하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은 것이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또 저 선정 가운데에서 모든 선남자가 색음이 사라지고 수음이 명백함을 보고서 그 텅비고 밝음에 맛들여서 뼈속 깊이 스며들면 그 마음에 문득 한없는 애욕이 생겨나서 애욕이 극에 달하면 광증이 발동하여 문득 탐욕이 되리니 이는 선정의 경지에서 편안하고 순함이 마음에 들어간 것이거늘 스스로 지킬만한 지혜가 없어서 모든 애욕으로 잘못 빠져들어간 때문이니 깨달으면 허물이 없어지는지라 성인이 된 증거는 아니니라. 오래도록 분명히 깨달아서 혼미하지 아니하면 저절로 사라지려니와, 만약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곧 음욕의 마구니가 마음 깊숙히 들어가 한결같이 음욕을 행하는 것이 보리의 도라고 말하여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모든 신도들을 유혹하여 골고루 음욕을 행하게 하며 그 음욕을 행하는 자를 가리켜 법왕의 아들을 가지게 된다고 하니 귀신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법 세상에 어리석은 범부들을 사로잡아 그 수가 一百까지 이르며, 이와 같이 심지어는 二, 三, 四百 혹은 五, 六百 에서 千, 萬까지 되기도 한다. 마구니의 마음에 싫증이 생겨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버리면 위엄있는 덕이 없어져서 관가의 법난에 빠지며 중생들을 유혹하고 그르쳐서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하리니 올바른 느낌을 잃었으므로 당연히 빠져 떨어지게 되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열 가지 선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모두가 수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얽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나타나는 것인데 중생들은 미련하고 혼미해서 스스로 헤아려 알지 못하고 그런 인연을 만날 적에 혼미하여 깨닫지 못해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며 심한 거짓말을 하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씀을 간직하여 내가 멸도한 다음 말법 세상에 전해주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골고루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하고 천마로 하여금 틈을 얻을 수 없게 하여 보호하며 잘 지켜주어서 위 없는 도를 이루게 하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서 수음이 다 없어진 자는 비록 누진통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마음은 그 형체를 떠나는 것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아서 이미 큰 신통력을 성취하여 이 범부의 몸에서부터 위로 보살의 六十 가지 성인의 지위를 지나기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몸을 얻어서 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는 것이 마치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서 잠꼬대를 할 적에 잠꼬대를 하는 사람은 비록 특별히 아는 것이 없으나 그의 말은 이미 또렸한 음성과 분명한 순서가 있어서 자지 않는 자로 하여금 그 말을 다 알아듣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상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만약 움직이던 생각이 다 끊어져서 부질없는 생각이 사라지면 밝게 깨닫는 마음이 마치 때를 씻어버린 듯하여 한차례 나고 죽는 시작과 끝을 원만하게 비추리니 이를 이름하여 상음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이 사람은 번뇌탁에서 벗어날 수가 있으리니 그 원인을 관찰하면 원융하게 통한 허망한 생각으로 그 근본을 삼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수음이 비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고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으로 원만하게 밝음을 사랑해서 그 정밀한 생각을 날카롭게 하여 훌륭한 기교를 탐하여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렸다가 정기를 날려 수행하는 사람에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법을 말하게 하면 그 사람이 처음에는 마구니가 붙은 줄을 알지 못하고서 스스로 위없는 열반을 증득했다고 말하면서 훌륭한 기교를 구하는 선남자가 있는 곳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을 하는데 그 모습이 잠깐 사이에 비구가 되어서 저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며 혹은 제석[하느님]이 되기도 하며 혹은 부녀자가 되기도 하며 혹은 비구니가 되기도 하며 혹은 어두운 방에서 잠을 잘 적에 몸에서 광명을 발하거든 사람들은 어리석고 혼미하여 보살이 된 걸로 착각해서 그 교화를 믿으며 그 마음이 흔들려 방탕해져서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고 탐욕을 행할 것이다.

입으로 재앙과 상서로움과 변하여 달라지는 것을 말하기 좋아해서 더러는 여래가 아무 곳에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하며 더러는 겁화가 일어난다고도 하며 혹은 난리가 일어난다고도 해서 사람을 두렵게 만들어서 그 집의 재산을 까닭 없이 흩어지게 하리니 이를 괴이한 귀신이라고 이름하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 옥사에 빠지게 되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아!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고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 속으로 방탕하게 놀기를 좋아하여 정밀한 생각을 날려 사방 돌아다니기를 탐하여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리고 있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법을 말하게 하면 그 사람은 혼미하여 마구니가 붙은 줄은 전연 알지 못하고 스스로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며 놀기를 구하는 선남자에게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자신의 모습은 변함이 없으나 그 설법을 듣는 사람은 문득 자신이 보배로운 연꽃에 앉아서 온몸이 자금광 덩어리로 변화하는 것을 보고서 온 청중이 각각 그렇게 여겨 일찌기 없었던 일을 얻었다고 하리니 이 사람이 어리석고 혼미해서 보살인 줄 착각하고 마음이 음일하게 되어서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고 몰래 탐욕을 행하나니라.

입으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응화하였다고 말하기를 좋아하되 어느 곳의 아무개는 어느 부처님의 화신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며, 아무개는 어느 보살이 인간으로 화하여 왔다고 하면 그 사람이 직접 보았기 때문에 애타게 쏠리는 마음이 생겨서 사특한 소견을 가만히 일으켜서 지혜의 씨앗마져 사라지게 되리니 그 이름은 가뭄 귀신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걸려들게 되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빠져들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깨닫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이 은밀하게 계합하기를 좋아하고 그 정밀한 생각을 맑혀서 계합하기를 탐내어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렸다가 정기를 날려보내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법을 말하게 하면 그 사람은 정말로 마구니가 붙은 줄은 알지 못하고 또한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계합하기를 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을 하되 자신의 모습과 설법을 듣는 사람이 겉으로는 형체가 변함이 없으나 듣는 이로 하여금 법을 듣기도 전에 마음이 스스로 열리어 생각마다 달라지고 변해서 혹은 숙명통을 얻기도 하며 떠로는 타심통을 얻기도 하며 혹은 지옥을 보기도 하고 혹은 인간의 좋고 나쁜 모든 일들을 미리 알기도 하고 혹은 입으로 게송을 읊기도 하며 경전을 외우기도 하면서 각각 즐거워하면서 일찌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었다고 할 것이니 그 사람은 어리석고 혼미하여 보살인 양 착각해서 마음에 애착이 생겨나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고 몰래 탐욕을 행하나니라.

 

입으로 부처님도 크고 작은 것이 있으니 어느 부처는 앞에 태어나신 부처이고 어느 부처는 뒤에 태어난 부처며 그 중에도 진짜 부처와 가짜 부처가 있고 남자 부처와 여자 부처가 있으며 보살도 그렇다고 하면 그 사람은 직접 보았기 때문에 본심을 씻어버리고서 사특한 깨달음으로 쉽게 빠져들게 되리니 그 이름이 매귀(魅鬼 : 도깨비)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이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지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깨닫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으로 근본을 사랑하여 만물이 변화하는 성품의 시작과 끝을 궁구해보고 그 마음이 정밀하고 상쾌해져서 분별하고 분석하기를 탐내어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렸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설법하게 하면 그 사람은 먼저 마구니가 붙은 줄은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근원을 추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몸에 위엄과 신통력이 갖추어져 있어서 근본을 추구하는 자를 굴복시켜서 그 자리 아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법은 듣지 못하였더라도 자연 마음으로 복종하게 하거든 그곳에 모인 여러 사람들이 부처님의 열반과 보리와 법신을 가리켜서 이는 곧 앞에 나타난 우리의 육신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서로 태어나는 것이 곧 이 법신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를 모두 가리켜서 이것이 곧 부처님 세상이지 또다른 청정한 거처와 금색의 형상이 없다고 하거든 그들은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 먼저의 마음은 잊어버리고 몸과 목숨을 다바쳐 귀의하며 일찌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었다고 하리니 그 사람은 어리석고 혼미하여 보살인 양 착각하고 그 마음을 추구해서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고 몰래 탐욕을 행하나니라.

입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되 눈과 귀와 코와 혀가 모두 정토며 남근과 여근이 곧 보리과 열반의 참된 곳이라고 하면 저 무지한 자들은 이러한 더러운 말을 믿으리니 이는 고독(蠱毒)과 염승이라는 악귀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지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깨닫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지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에 미리 감응하기를 좋아하여 두루 돌아다니며 정밀하게 연구하여 남몰래 감응하기를 탐하여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렸다가 정기를 날려보내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설법하게 하면 그 사람이 본래 마구니가 붙은 줄은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감응하기를 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깐동안 그 몸이 百년 千년이나 된 것처럼 보이게 하면 마음이 더러움을 좋아해서 버리거나 여의지 못하며 그 몸이 종이 되어서 네 가지 공양을 하되 피로함을 느끼지 않으며 그 자리 아래 있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과거세의 스승이거나 본래의 선지식인 줄로 알게 하면 특별히 법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아교처럼 달라 붙어서 일찌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었다고 하리니 그 사람은 어리석고 혼미하여 보살인 양 착각하고 그 마음을 친근히 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고 몰래 탐욕을 행하나니라.

입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되 나는 전세에 어느 생에서 먼저 아무개를 제도하였는데 당시에 나의 처첩과 형제였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 또 서로를 제도하여 너로 더불어 나를 따라다니게 하노니 어느 세계에 가서 어느 부처님을 공양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또 따로히 대광명천이 있으니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데 모든 여래가 쉬고 계시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하면 저 무지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허황된 거짓말을 믿고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리니 그 이름이 여귀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질 것이다.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지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기를 좋아하여 제 마음을 억제하고 부지런히 애써서 은밀하고 고요한 곳에 있기를 좋아하고 고요한데 빠지기를 탐하여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렸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설하게 하면 그 사람이 본래 마구니가 붙은 줄을 깨닫지 못하고서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저 음침한 곳을 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그 말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각기 본래의 직업을 알게 하며 혹은 그 곳에서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는 지금 죽기도 전에 벌써 축생이 되었다'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뒤에 가서 꼬리를 밟게 해서 갑자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일어나지 못하게 하면 그때에 모든 대중이 마음을 다해 공경하고 복종하며 어떤 사람이 마음 먹으면 벌써 그것을 알며 부처님의 계율보다 더 정밀하고 까다로운 일을 시키면서 비구를 비방하고 대중을 꾸짖으며 남의 비밀스러운 일을 들추어내어 비방과 혐의를 피하지 않나니라.

입으로 미래의 재앙과 복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되 그때에 이르면 조금도 틀림이 없으리니 이를 이름하여 대력귀라고 하는데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면 제자와 스승이 함게 관가의 옥사에 빠지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지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으로 알고 보기를 좋아하여 부지런히 열심히 연구해서 숙명을 탐하여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렸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설하게 되면 그 사람이 마구니가 붙은 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알기를 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그 사람이 까닭 없이 설법하는 곳에서 보배의 구슬을 얻기도 하며 그 마구니가 때로는 축생으로 변하여 입으로 그 구슬과 갖가지 진보와 문서와 인장 등 기이한 물건들을 가져다가 먼저 그 사람에게 주고 뒤에 그의 몸에 붙기도 하며 혹은 듣는 사람을 유혹하여 땅 속에 숨겨두게 하고 밝은 달빛 같은 구슬을 가지고 그 곳을 비추게 하면 이 말을 듣는 모든 이들이 일찌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었다고 환호하며 약초만 많이 먹고 좋은 음식도 먹지 않으며 혹 때로는 하루에 삼씨 한 알과 보리 한 알만 먹어도 그 형체가 살이 찌리니 이는 마귀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므로 비구를 비방하고 대중을 꾸짖되 비방과 혐의를 피하지 않나니라.

입으로 다른 곳에 감춰져 있는 보배와 시방의 성현들이 숨어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가끔 기이한 사람을 볼 수 있으리니 이는 산림이나 토지 또는 성황당이나 산천의 귀신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혹은 음행을 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리고 일을 계승한 자와 더불어 몰래 오욕을 행하기도 하며 혹은 정진하면서 순수하게 풀과 나무껍질만을 먹고 일정하게 하는 일도 없이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지게 되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지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면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으로 신통함과 갖가지 변화를 좋아해서 변화의 원리를 연구하여 신비한 힘을 탐내어 얻으려고 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리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말하게 하면 그 사람이 진실로 마구니가 붙은 줄을 깨닫지 못하고서 스스로 위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신통을 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그 사람이 혹은 손으로 불길을 잡기도 하고 또 그 빛을 움켜쥐고 와서 설법을 듣고 있는 사부대중의 머리 위에 올려 놓으면 모든 청중의 이마 위에 불 빛이 몇 자씩 뻗어나가되 뜨겁지 않고 타지도 않으며 혹은 물 위에 다니기를 평지 같이 하며 혹은 공중에서 편안히 앉아 움직이지 않기도 하며 혹은 병 속에 들어가거나 주머니 속에 들어가기도 하며 들창으로 나가고 담을 뚫고 나가되 걸림이 없으려니와 오직 칼이나 창 같은 무기에 대해서는 자재하지 못하리니 스스로 자신이 부처라고 말하면서 몸에 흰 옷을 입고 비구에게 예배를 받으며 참선하는 사람과 계율 지키는 사람을 비방하고 대중들을 꾸짖으며 남의 비밀스러운 일을 들추어내되 비방과 혐의를 피하지 않나니라.

입으로 항상 신통 자재함을 말하며 때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국토를 엿보게 하리니 이는 귀신의 힘으로 사람을 현혹시킨 것이지 진실한 것이 아니니라. 음란한 행동을 찬탄하고 추잡한 행동도 탓하지 않으며 음란하고 더러운 행위를 가지고 법을 전한다고 하리니 이는 산의 정기와 바다의 정기와 바람의 정기 혹은 강의 정기과 흙의 정기이거나 모든 풀, 나무 등의 여러 겁을 쌓아온 정기로 뭉쳐진 도끼비이거나 또는 용도깨비이거나 수명이 끝난 신선이 다시 살아나 도끼비가 되었거나 신선이 기한이 찾는데 그 형체가 변하지 아니하여 다른 요괴가 붙은 것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그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가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지게 될 터이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지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이 적멸에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변화하는 성품을 연구하여 깊이 빈 것을 탐하여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그 틈을 기다리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설하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마구니가 붙은 줄을 깨닫지 못하고서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빈 것을 탐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대중 가운데서 그 형체가 홀연히 비게 되어 대중들이 볼 수 없었다가 다시 허공으로부터 갑자기 나타나 없어지고 나타남이 자재하거나 혹은 그 몸이 유리처럼 환하게 보이도록 나타나기도 하며 혹은 손발을 내밀면 전단향 냄새가 나기도 하며 혹은 대소변이 두터운 석밀과 같게도 하리니 계율을 범하지 않고 출가한 이를 가볍게 여기나니라.

입으로 항상 말하기를 원인도 결과도 없으며 한번 죽으면 아주 없어져서 다시 죽은 뒤에 사람의 몸을 받는 일도 없고 범부와 성인도 따로 없다고 한다.

비록 비고 고요함을 얻었다고는 하나 남몰래 탐욕을 행하면 그 탐욕을 받은 자도 텅 빈 마음을 얻어서 인과가 없다고 하리니 이는 일식이나 월식의 정기나 금이나 옥 또는 지초나 기린, 봉황, 거북, 학 등 千萬년 지나도록 죽지 않는 영물이 되어 국토에 나는 것이니 나이 늙어 마구니가 되어서 사람을 괴롭히다가 싫증이 나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면 제자와 스승이 함께 관청의 옥사에 빠지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선남자가 수음이 비어지고 오묘해져서 사특한 생각을 만나지 아니하여 원만한 선정이 환하게 열린 삼마지 가운데 마음으로 오래 살기를 좋아하여 애써 기미를 연구하고 영생을 탐구하여 분단생사를 버리고 변역생사를 희망하여 미세한 생각으로 항상 머물기를 구하면 그때에 천마가 틈을 기다리다가 정기를 날려 사람에게 붙어서 입으로 경전의 진리를 설하게 하면 그 사람이 마침내 마구니가 붙은 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위 없는 열반을 얻었다고 말하면서 오래 살기를 구하는 선남자의 처소에 와서 자리를 펴고 설법할 적에 다른 곳에 걸림없이 왕래한다고 말하며 혹은 만리 밖을 순식간에 갔다가 오면서 번번이 그 지방의 특산물을 가지고 오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과 같은 곳이나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 두어 걸음쯤 되는 거리인데 다른 사람을 시켜서 동쪽 벽에서 서쪽 벽으로 가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빨리 걸어도 몇 년이 걸려도 이르지 못하게 되거든 그로 인해 다음에 믿음이 생겨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의심하리라.

입으로 항상 말하기를 시방의 중생들이 모두 나의 아들이며 내가 모든 부처님을 냈으며 내가 세계를 만들었으며 내가 원래 부처였는데 자연히 세상을 초월한 것이지 닦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고 하리니 이는 세상에 머무는 자재천 마구니가 그의 권속인 차문다와 사천왕의 비사동자로서 발심하지 못한 자를 시켜서 그 비고 밝음을 이용하여 그의 정기를 먹게 하며 때로는 스승이 없이 수행하는 사람이 친히 보되 금강을 잡았다고 하면서 너를 오래 살도록 해주겠다고 하고 미녀의 몸으로 나타나서 탐욕을 크게 부리도록 하여 一년도 못가서 간과 뇌가 메마르게 하여 입으로 혼자 말을 하면 마치 도깨비 소리처럼 들려서 앞에 있는 사람도 자세히 알지 못하며 흔히 관청의 옥사에 빠져서 형벌도 받기 전에 먼저 말라 죽는다. 그 사람을 괴롭혀서 죽음에 이르게 하리니 네가 마땅히 먼저 깨달으면 윤회에 들어가지 않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열 가지 마구니가 말법 세상에 나의 법망 속에 있으면서 출가하여 도를 닦으며 혹은 사람의 몸에 붙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형체를 나타내기도 하여 바르고 두루한 지혜와 깨달음을 이미 이루었다고 말하면서 음욕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계율을 깨뜨려서 먼저 악한 마구니가 붙은 스승과 악한 마귀가 붙은 제자가 음욕과 음욕을 서로 전하며 이와 같은 사특한 정기가 그 마음과 장부를 매혹시키되 가까우면 아홉생동안이고 오래면 백대를 훨씬 넘겨서 참되게 수행하는 이로 하여금 마구니의 권속이 되게 하여 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잃게 하여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너는 지금 먼저 적멸을 취하지 말 것이니 비록 배울 것이 없게 되었다 하더라도 서원을 세워서 저 말법 세상에 들어가서 큰 자비심을 내어 바른 마음으로 깊이 믿는 중생들을 제도하여 마귀가 붙지 못하게 해서 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얻게 하라. 내가 이제 너를 제도하여 이미 생사을 벗어나게 하였으니 네가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 할지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열 가지 선나의 경지가 나타나는 것은 모두가 상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그런 일이 나타나는 것이거늘 중생들은 미련하고 혼미해서 스스로 생각하여 헤아리지 못하고 이런 인연을 만나서 혼미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하여 크게 거짓말을 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니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씀을 가지고 내가 멸도한 뒤 말법 세상에 전해주어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하고 천마로 하여금 그 틈을 얻지 못하게 하여 잘 보호하고 지켜주어서 위 없는 도를 이루게 하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서 상음이 다 없어지면 그 사람은 평상시에 꿈과 생각이 사라지고 깨어있거나 잠자거나 항상 한결같아서 밝은 깨달음이 비고 고요함이 마치 맑게 개인 허공과 같아서 다시는 앞에 나타나는 거칠고 무거운 티끌인 그림자 같은 일들이 없으며 세간의 큰 땅덩어리나 산과 강을 보되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듯하여 와도 붙은 데가 없고 가도 종적이 없어서 걸림없이 받아들여 비침에 따라서 번뇌의 습기는 분명하게 없어지고 오직 유일한 참된 정기 뿐이다. 나고 없어지는 근원이 이로부터 드러나서 지방의 열 두 가지 중생을 보되 그 종류를 다할 수 있으리니 비록 그들 각각의 생명에 대한 내역까지는 통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생겨나는 근본이 마치 아지랭이[遊絲]가 아른거리고 반짝이는 것과 같아서 허무한 감각기관이나 그 대상인 물질의 궁극적인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니 이것을 행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만일 이렇게 아른거리고 반짝이는 원래의 성품이 본래 맑은 데로 들어가서 본래의 습기가 한번 맑아지면 마치 파도가 가라앉아서 맑은 물로 변화되는 것과 같으니 이를 이름하여 '행음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이 사람은 중생탁을 초춰할 수 있으리니 그 원인을 관찰해보면 숨어있는 허망한 생각이 그 근본이 되나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올바른 지혜를 증득한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옳은 마음이 굳게 엉켜서 열 가지 천마가 그 틈을 얻을 수 없게 되면 바야흐로 정밀하게 연구해서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다 알아내어 그 본래 종류 가운데 생겨나는 근본이 드러나는 것은 저 그윽히 맑고 원만하게 동요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그 원만한 근원 가운데 계산하여 헤아림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원인이 없는 논리에 떨어지나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본래 원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미 생각하는 기미를 완전하게 깨뜨림을 얻고 안근의 八百 공덕을 의지해서 八만 겁 안에 있는 중생들의 업보의 흐름이 굽이쳐 돌아 여기서 죽으면 저기에 태어남을 보고 다만 중생이 그곳에서 윤회하는 것만 보이고 팔만 겁 밖은 캄캄하여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나니 '이러한 세간의 시방 중생이 팔만 겁 밖에는 원인이 없이 저절로 생겼다'고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므로 올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잃고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현혹시키나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끝도 원인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생겨남에 대해서 이미 그 근본을 보고서 사람이 사람을 낳고 새가 새를 낳으며 까마귀가 본래부터 검고 따오기는 본래 희며 사람과 하늘이 본래 서서 다니고 축생은 본래 기어다니며 흰 것은 씻어서 희어진 것이 아니고 검은 것은 물들여서 검게 된 것이 아니다. 팔만 겁 동안에 다시 변함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제 이 형체가 다 없어지더라도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본래 보리를 알지 못하였거니 어찌 다시 보리를 이루는 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물질의 형상이 모두 끝도 그 원인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 여긴다.

이로 말미암아 헤아리므로 올바르게 두루 아는 것을 잃어버리고 외도에 떨어져 보리의 성품을 의혹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제일 외도가 성립한 원인이 없다는 논리이니라.

아난아! 이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올바른 마음이 굳게 엉켜서 마구니가 틈을 탈 수 없게 되면 태어남이 있는 무리들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흔들리는 근원을 관찰하고 원만하고 항상한 가운데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두루하고 항상하다는 논리에 빠지나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과 그 대상의 성품이 두 곳에 원인이 없음을 궁구해서 이를 닦고 익혀서 이만겁 동안에 시방 중생들의 나고 죽음이 있는 것은 모두 순환하는 것이어서 일찌기 흩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항상한 것이라고 여기나니라.

둘째는 그 사람이 사대의 근원을 궁구하여 네 가지 성품이 항상 머문다고 여겨서 이를 닦아 익혀 능히 사만겁 가운데 시방 중생들의 나고 죽는 것이 모두 그 본체는 항상한 것으로서 일찌기 흩어져 잃어버림이 없는 것이라하여 항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나니라.

세째는 그 사람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말나식과 집수식과 심의식 가운데 근원이 말미암은 곳을 궁구하여 그 성품이 항상하다고 여기므로 이를 닦아 익혀서 능히 팔만 겁 가운데 일체 중생이 순환하므로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본래 항상 머무는 줄로 알아서 잃어버리지 않는 성품을 궁구하여 항상하다고 생각하나니라.

넷째는 그 사람이 이미 생각의 근원이 다 없어져서 나는 이치로 다시 흐르거나 그치는 작용이 없다고 생각하여 나고 없어지는 마음이 지금 이미 다 없어졌으니 그런 이치 가운데 저절로 나고 죽지 않음을 이루었다고 여겨서 그 마음이 헤아리는 것을 따라 항상하다고 생각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항상하다고 생각하여 올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잃어버리고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게 하리니 이는 그 이름이 제二 외도가 주장하는 원만하고 항상한 논리라고 하나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가 바른 마음을 굳게 엉기게 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을 수 없게 되면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자기나 남 가운데 계산하여 헤아림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소견으로 떨어져 들어가되 한 부분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고 한 부분은 항상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첫째는 이 사람이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시방 세계에 두루함을 보고 맑고 고요한 것을 가지고 마지막 경지의 신비한 자기라고 생각하여 그로부터 헤아리기를 내가 시방에 두루하여 밝음이 엉겨서 흔들리지 않거든 일체 중생이 나의 마음 속에서 저절로 나고 죽고하나니 곧 내 심성(心性)은 항상한 것이요 저 나고 죽는 성품은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나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시방 세계에 항하사 같이 많은 국토를 두루 살펴보아서 오랜 세월 동안에 무너지는 곳을 보고는 궁극적으로는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 하고 오랜 세월 동안에 무너지지 않는 곳을 보고는 궁극적으로는 항상하다고 하나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각별히 관찰하되 나의 마음이 정미롭고 세밀하기가 마치 작은 먼지같아서 시방에 유전해도 성품은 변함이 없어 이 몸으로 하여금 나고 죽게 한다고 생각하나니 저 무너지지 않는 성품은 나의 항상한 성품이요 나로부터 흘러나온나고 죽는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는 성품이라고 하나니라.

넷째는 이 사람이 상음이 다 없어진 것을 알고나서 행음이 유전함을 보고는 행음이 항상 유전하는 것을 항상한 성품이라고 생각하고 색음과 수음과 상음 등이 지금 다 없어진 것을 항상함이 없는 것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헤아려서 일부분은 항상함이 없고 일부분은 항상하다고 여기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현혹하리니 이것이 제三 외도가 성립한 한 부분이 항상하다는 논리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탈 수 없게 되면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나누어진 위치 속에서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유변론에 빠지나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마음으로 생겨나는 근원의 흐르는 작용이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과거와 미래를 헤아려서 한계가 있다고 이름하고 서로 계속하는 마음을 헤아려서 한계가 없다고 하나니라.

둘째는 이 사람이 팔만 겁까지는 관찰할 수 있으므로 중생을 보고 팔만 겁 이전은 고요하여 듣고 볼 수가 없으므로 듣고 볼 수가 없는 것은 '한계가 없다고'하고 중생이 있는 곳은 '한계가 있다고'하나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나는 두루 앎으로 한계가 없는 성품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다른 모든 사람은 내가 아는 가운데 나타나되 나는 그가 아는 성품을 알 수 없으므로 그는 한계 없는 마음을 얻지 못하고 다만 한계가 있는 성품만 지냈다고 여기나니라.

네째는 그 사람이 행음은 빈 것이라는 것을 궁구하여 그가 보는 마음으로 헤아려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의 몸 가운데 모두 다 반은 나는 것이고 반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세계의 모든 것들도 반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반은 한계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나니라.

이렇게 한계가 있는 것과 한계가 없는 것을 헤아려 생각함으로 인하여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현혹하리니 이것은 제四 외도가 세운 한계가 있다는 논리라 하나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얻을 수 없게 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느끼고 보는 가운데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네 가지 뒤바뀐 생각으로 죽지 않는다고 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허황된 논리에 빠지나니라.

 

첫째는 이 사람이 변화하는 근원을 관찰하고서 변천하여 흐르는 곳을 보고는 변한다하고 서로 연속되는 것을 보고는 항상하다 하며 보이는 곳을 보고는 나는 것이라 하고 보아야 할 곳이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 하며, 서로 연속되는 원인의 성품이 끊기지 않는 곳을 늘어나는 것이라 하고 올바르게 서로 연속하는 가운데 중간이 떨어진 곳을 줄어드는 것이라 하며, 각각 생기는 곳을 있는 것이라 하고 서로서로 없어지는 곳을 없는 것이라고 하여 이치로는 한꺼번에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따로 보아서 법을 구하는 사람이 와서 그 이치를 물으면 대답하기를 '내가 지금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늘어나기도 하고 덜어지기도 한다'고 하면서 언제나 그 말을 어지럽게 해서 저 앞 사람으로 하여금 글귀를 잃어버리게 하나니라.

둘째 이 사람은 그 마음이 서로서로 없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고서 없는 것으로 인하여 증득하였다고 생각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면 대답하되 다만 '무(無)'라고만 말하고 '무'밖에 다른 것은 말할 것이 없다고 하나니라.

셋째는 이 사람이 그 마음의 각각 있는 곳을 자세히 관찰하고서 있는 것으로 인하여 증득하였다고 생각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오직 한 글자로만 대답하되 다만 '시(是)'라고만 말하고 '시'밖에 다른 것은 말할 것이 없다고 하나니라.

넷째는 이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한꺼번에 보고서 그 대상이 두 갈래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어지러워져서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대답하기를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지만 또한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모두가 혼란해져서 끝까지 따질 수 없게 하나니라.

이렇게 교란을 헤아려서 허무해져서 외도에 떨어져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것을 제五 외도가 이룩한 네 가지 뒤바뀐 성품이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어지럽히는 두루 헤아리는 허황된 논리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끝이 없는 흐름에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현상이 있다는 뒤바뀐 마음에 떨어질 것이다.

혹 스스로 색신을 고집하여 색신이 곧 나라고 하며 혹은 내가 원만해서 국토를 두루 함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내가 색을 지녔다고 하며 혹은 저 앞에서 일어나는 인연들이 나를 따라 회복하기 때문에 색신이 내게 속하였다고 하며 혹은 내가 행동하는 것에 의지하여 서로 연속되므로 내가 색신에 있다고 하여 모두 헤아리는 생각에 따라 말하되 죽은 뒤에 현상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돌고 돌아서 열 여섯 가지 현상이 있나니라.

이로부터 혹 생각하기를 궁극적인 번뇌와 보리가 두 성품이 함께 달려가서 각각 서로 접촉하지 않는다고 여기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도 있다고 생각하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것은 제六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 실상이 있다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여 먼저 제거해 없앤 색음과 수음과 상음 가운데 헤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죽은 뒤에 실상이 없다고 하는 뒤바뀐 마음에 떨어질 것이다.

저 색음이 없어진 것을 보고 형체는 본래 원인이 없는 것이라 하고 상음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마음은 본래 얽매인 데가 없다고 하며 수음이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다시 몸과 마음은 서로 관련될 수 없다고 해서 음의 성품이 사라졌으므로 비록 다시 태어나는 이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음과 상음이 없는 것이 마치 풀이나 나무와 같아서 그 형질이 앞에 나타나도 오히려 얻을 수가 없는데 죽은 뒤에 어떻게 다시 실상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로 인하여 헤아려 생각하기를 죽은 뒤에는 실상이 없어서 그렇게 돌고돌아 여덟 가지 실상이 없는 것이 생겨나나니라.

이를 좇아 혹 생각하기를 열반의 인과가 모두 다 비어져서 부질없는 이름만 있는 것이지 마침내는 끊어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를 제七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는 실상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모든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시켜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게 되거든 생겨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행음이 있는 가운데 겸하여 수음과 상음이 없어졌으므로 있고 없는 것을 번갈아 생각하여 자체를 서로 무너뜨린다고 하리니 이 사람은 죽은 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뒤바뀐 논리에 떨어지나니라.

색음과 수음과 상음 가운데 있는 것을 보더라도 있는 것이 아니며 행음이 변천하여 흐르는 속에 없는 것을 보더라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돌고 돌아 음계의 여덟 가지가 모두 아니라는 현상을 궁구하여 한 가지 인연을 얻음에 따라 모두 죽은 뒤에도 실상이 있는 것이며 실상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나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작용은 성품이 변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통하여 깨달았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있고 없는 것이 모두 아니라고 생각하여 허(虛)와 실(實)을 분간하지 못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뒷 세상이 어둡고 아득해서 말할 수가 없으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게 하리니 이는 제八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는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마음의 뒤바뀐 논리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융집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거든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죽고 난 뒤 그 다음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없다고 억측하여 생각하면 그 사람은 일곱 가지 끊겨 없어진다는 논리에 떨어지나니라.

혹 생각하기를 몸은 없어지는 것이며 혹 탐욕이 다 끊어진 곳도 없어지는 것이며 혹 괴로움을 다한 곳도 없어지는 것이며 혹 지극히 즐거운 곳도 없어지는 것이며 혹 다 버린 곳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서 이와 같이 돌고 돌아 일곱 군데를 다 궁구해서 현재 눈 앞에서 없어지면 없어진 다음에는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끊겨 없어진다고 생각하므로 외도에 떨어져서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를 제九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죽은 뒤에는 끊겨 없어진다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또 삼마지 가운데 선남자들이 바른 마음을 굳게 응집하여 마구니가 틈을 얻지 못하게 되거든 태어나는 종류의 근본을 궁구하여 저 그윽히 맑고 항상 요동하는 근원을 관찰하고 죽은 뒤 뒷 세상에 대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다섯 가지 열반 논리에 빠지나니라.

혹은 욕계천으로서 죽고 난 뒤에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니 이는 원만하게 밝음을 보고 애모하기 때문이며 혹은 초선이라고 하니 이는 성품에 근심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이선천이라고 하니 이는 마음에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며, 혹은 삼선천이라고 하니 이는 지나친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며, 혹은 사선천이라고 하니 이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없어져서 나고 죽음에 윤회하는 성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이 있는 하늘임을 모르고 작용이 없는 경지라는 생각을 내어 다섯 곳의 편안한 것을 수승하고 청정한 의지처라고 생각하면서 이와 같이 돌고 돌아 다섯 곳을 최상의 경지라고 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다섯 곳이 현재의 열반이라고 생각해서 외도에 떨어져 보리의 성품을 미혹하리니 이를 제十 외도가 성립한 오음 가운데 다섯 곳이 현재의 열반이라고 하는 마음이 뒤바뀐 논리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열 가지 선나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은 모두가 행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이러한 깨달음이 나타나는 것이거늘 중생들이 미련하고 혼미해서 스스로 헤아려 알지 못하고 이렇게 앞에 나타난 현상을 만날 적에 혼미한 것을 잘못 이해해서 스스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여 큰 거짓말을 하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리니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의 말을 가지고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말법 세상에 전해 보여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이 이치를 깨닫도록 하고 마음의 마구니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재앙을 일으킴이 없도록 하여 보호해 지켜서 사특한 소견을 소멸시키고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참다운 이치를 깨달아서 위 없는 도에 대해 갈림길로 나아가지 않게 하며 마음이 바라는 것으로 하여금 적게 얻은 것을 만족하게 여기지 말게 하여 대각왕(大覺王)의 청정한 지표가 되게 하라.

 


아난아! 저 선남자가 삼마지를 닦아 행음이 다 없어진 자는 모든 세간에 그윽히 맑고 요동하는 같은 분업끼리 생겨나는 근본이 깊고 미세한 기강이 홀연히 무너져 내리고 보특가라의 업보를 갚는 맥락에서 감응하는 것이 아주 끊어져서 열반의 하늘에 장차 크고 밝게 깨달으려 함이 마치 닭이 두 번째 운 뒤에 동쪽을 돌아보면 이미 은밀한 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비고 고요해서 다시 치달리지 않고 안과 안이 맑고 밝아 들어가도 들어갈 데가 없어서 시방에 十二 종류의 생명을 받은 근본 이유를 깊이 통달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고 근원을 고집하여 모든 종류를 부르지 않아 시방세계에서 이미 동일함을 얻고 정밀한 빛이 빠지지 아니하여 그윽하고 신비함을 발하여 나타내리니 이를 식음의 구역이라고 하나니라.

만약 여러 무리의 부름에서 이미 동일함을 얻은 가운데 여섯 가지 문을 소멸시켜서 함하여 열림을 성취하면 보고 들음이 이웃처럼 통해서 서로 작용함이 청정해져서 시방 세계와 몸과 마음이 마치 수정[吠琉璃]처럼 안밖이 환하게 통한 것과 같으니 이를 이름하여 '식음이 다 없어졌다'고 하나니 그 사람은 명탁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까닭을 관찰하면 형상이 없이 허무하게 뒤바뀐 허망한 생각으로 근본을 삼았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선남자가 행음이 비었음을 궁구하여 식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되 적멸(寂滅)의 정밀하고 오묘함에 대해서는 원만하지 못하나 자기 몸의 막힌 감각기관으로 하여금 합하여 열리게 하며 시방의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자기 몸의 막힌 감각기관으로 하여금 합하여 열리게 하며 시방의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통해 깨달아서 깨아는 것이 서로 통하고 합해지면 원만한 근원에 들어갈 수 있으리니 만약 돌아갈 데에 참되고 항상한 원인을 세워 뛰어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원인할만한 것을 원인했다는 집착에 떨어져서 명제(冥諦)를 목적으로 하는 사비가라와 반려가 되어 부처님의보리를 미혹하고 지혜롭게 보는 것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一의 얻었다는 마음을 세워서 돌아가야 할 과(果)를 성취했다고 하는 것이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져버려서 외도의 종자에 태어나나니라.


아난아! 또 선남자가 모든 행음의 빈 것을 궁구하여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돌아갈 데에 대해서 그것들이 자기 몸이라고 여겨서 허공 세계의 열 두 종류에 속하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 내 몸 속의 한 부분이 흘러 나온 것이라고 하여 뛰어나다는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능하지도 못한 것을 능하다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마혜수라와 같이 한량 없는 몸을 나타내는 자들과 반려가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혜로운 견해를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二의 잘한다는 마음을 세워서 훌륭하게 일의 결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져버려서 크게 거만한 하늘에 내가 두루 원만하다고 생각하는 종류로 태어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빈 것을 궁구하여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돌아갈 적에 돌아가 의지할 곳이 있다고 여겨 자기의 몸과 마음도 거기에서 흘러 나왔다고 의심하며 시방의 허공도 모두 거기서 생겨났다고 여겨서 곧 생겨나는 모든 것이 펴져 흐르는 곳에 대해 참되고 항상한 몸은 나고 죽음이 없다는 견해를 내나니 나고 죽는 가운에 있으면서 항상 머무는 것인줄로 미리 생각하여 이미 나지 않는다는 것에 현혹되고 나고 죽는 것까지도 혼미하여 잠기거나 혼미한데 편안히 머물면서 수승하다는 견해를 내면 그 사람은 항상하지 못한 것을 항상하다고 생각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자재천을 하늘과 짝이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지혜로운 견해를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三의 의지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생각하는 결과를 이루었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뒤바뀐 원만한 종자로 태어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아는 바에 대해 그 아는 것이 두루 원만하기 때문에 저 아는 것으로 인해 견해를 정립하고 시방의 풀이나 나무들도 모두가 정이 있어서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풀이나 나무가 사람이 되고 사람이 죽어 다시 시방의 풀, 나무가 된다고 하며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물이 두루 안다고 고집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곧 아는 것이 없는 것을 안다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 바타, 선니와 같이 모든 것이 깨달음이라고 고집하는 자와 짝이 되어서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四의 원만한 지혜의 마음을 헤아려 허망하고 잘못된 과(果)를 이루었다고 하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등지게 되어 뒤바뀐 지혜 종자에 태어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융해진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이미 순하게 다름을 얻어서 문득 원융하게 변화하는 데서 모든 것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며 불의 광명을 구하고 물의 청정함을 좋아하며 바람이 두루 흐름을 사랑하고 모든 물질의 성취함을 관찰해서 각각 숭상하고 섬겨서 이 많은 물질을 만들어 내는 근본 원인이라고 여겨 항상 머무는 견해를 세우면 이 사람은 곧 남이 없는 것을 나는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서 모든 가섭파와 바라문들이 몸과 마음을 괴롭혀가면서 불을 섬기고 물을 숭상하며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는 자와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五의 숭상하고 섬기는데 집착하여 마음을 혼미하고 사물을 따르면서 부질없이 구하는 원인을 성립하여 부질없이 희망하는 결과를 구하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뒤바뀌어 변화하는 종류에 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만하게 밝은 데서 밝은 속은 비었다고 생각하여 모든 변화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영원히 없어지는 것으로써 돌아가 의지할 곳이라고 생각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돌아갈 데가 없는데로 돌아가려는 집착에 떨어져서 무상천 가운데 모든 순야다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혼미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六의 원만하게 비어 없어진 마음으로 비어 없어진 결과를 이룬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끊어 없애는 종류에 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만하고 항상한 데에 몸을 견고하게 하며 항상 머물러서 정밀하고 원만함과 같게 되어서 영원히 죽지 않으려고 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그 사람은 탐해서는 안될 것을 탐하는 집착에 떨어져 오래 살기를 구하는 아사타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七의 목숨의 근원에 집착하여 견고하게 하는 부질없는 원인을 세워 길이 수고로운 결과에 나아간다고 하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부질없이 목숨이나 연장하려는 종류에 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 끊겨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목숨이 서로 통함을 관찰해서 문득 번뇌를 머물러 두고서 사라져 없어질까 염려하여 문득 이때에 연화궁(蓮華宮)에 앉아 일곱 가지 보배를 널리 변화시키며 예쁜 여인을 많이 모아 마음대로 즐기면서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참되지 못한 것을 참된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져 타지가라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八의 사특한 것을 생각하는 원인을 일으켜 치솟는 번뇌의 결과를 세운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의 성을 저버려서 천마의 종자에 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하여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목숨이 밝아진 가운데 정밀하고 거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함과 거짓됨을 판단해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갚은 것이라고 해서 오직 느껴 감응하기만을 구하고 청정한 도를 저버리니 이른 바 괴로움을 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끊으며 적멸해지기를 희망하여 적멸하는 길을 닦아 적멸에 있으면서 그만 그쳐서 다시 전진하지 아니하여 수승한 견해를 내면 그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에 떨어져 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슬려로서 증상만(增上慢)에 빠진 무리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九의 정밀하게 감응하는 마음을 원만히 하여 적멸의 결과에 취향함을 이루었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허공에 속박되는 종류에 나나니라.

또 선남자가 행음이 다하여 비어져서 이미 나고 죽음이 없어졌으나 적멸에 대해서는 정밀하고 오묘함이 원만하지 못하니 만약 원융하고 청정한 밝은 깨달음에 대해 깊이 오묘함을 연구 발명하여 이를 열반이라고 내세우며 더 전진하지 않으면서 수승한 견해를 내면 이 사람은 정성벽지에 떨어져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연각이나 독각들과 짝이 되어 부처님의 보리를 미혹하고 지견을 잃어버리리니 이를 제十의 원만하게 깨달아 합해진 마음으로 맑고 고요하고 밝은 결과를 이루었다고 하니 원만하게 통함을 어기고 열반성을 저버려서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지고 변화하지 않는 원만한 종류에 태어나나니라.

아난아! 이러한 열 가지 선나가 중도에서 잘못된 견해를 이루어서 미혹함을 의지함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한 가운데 만족하게 증득했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모두 식음에서 작용하는 마음이 서로 어울리기 때문에 이 지위에 생겨나거늘 중생들이 미련하고 혼미하여 스스로 요량하지 못하고 이렇게 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만날 적에 각각 먼저부터 좋아하던 습관으로 마음을 미혹하여 스스로 쉬어 그쳐서 장차 마침내는 돌아가 편안히 쉴 곳으로 여기고 스스로 위 없는 보리를 만족한다고 말하면서 크게 거짓말을 하면 외도와 사특한 마구니는 감응하여 받은 업보가 끝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성문과 벽지는 더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마음을 새겨 여래의 도를 받들어서 이 법문을 간직했다가 내가 멸도한 뒤 말법 세상에 전하여서 널리 중생들로 하여금 이 뜻을 분명히 깨닫게 하고 보는 마구니로 하여금 스스로 깊은 죄를 짓지 않게 하며 편안하게 보호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구제해서 사특한 인연이 사라지게 하여 그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서 처음을 따라 성취하여 갈림길을 만나지 않게 하라.

이러한 법문을 앞선 과거세상에 항하의 모래와 같이 무수한 겁을 지내오면서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것을 의지하여 마음이 열려서 위 없는 도를 증득하셨으니 식음이 만약 다 없어지면 네 앞에 나타나는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리니 서로 작용하는 가운데 보살의 금강간혜(金剛幹慧)에 들어가 원만하게 밝은 정밀한 마음이 그 가운데 발하여 변화됨이 마치 맑은 유리 속에 보배의 달을 넣은 것 같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사가행의 마음과 보살이 수행하는 금강십지를 초월하여 등각(等覺)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여래의 오묘하고 장엄한 바다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히 이루어서 증득할 것이 없는데로 돌아가리라.

이는 과거에 먼저 나신 부처님께서 사마타 가운데 비바사나로 깨달아 밝아진 것을 분석하신 미세한 마구니의 일이니 마구니의 경계가 앞에 나타나면 네가 이를 잘 알아서 마음의 때를 씻어버리고 사특한 견해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음마(陰魔)가 소멸하고 천마가 부숴지며 큰 힘을 가진 귀신이 넋을 잃고 도망하여 산도깨비 무도깨비들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이며 곧 바로 보리에 이르러서 모자라거나 비열함을 막론하고 더욱 정진하여 큰 열반에 대해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으리니 만약 말법 세상에 어리석고 우둔한 중생이 선나를 알지 못하며, 설법할 줄을 모르되 삼매 닦기를 좋아하거든 네가 사특하게 될까 두려울진댄 일심으로 권유하여 나의 불정다라니주(佛頂陀羅尼呪)를 지니게 하라. 만약 외우지 못하거든 공부하는 방에 써 두거나 혹 몸에 차거나 하면 일체의 마구니가 조금도 동요할 수 없으리니 너는 마땅히 시방 여래께서 구경까지 닦아 나아가신 최후까지 가르쳐 주신법을 공경히 받들어라'하셨다.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자옵고 이마를 대어 절하며 받들어 기억하여 잃어버리지 않고 대중 가운데서 다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오음의 현상 가운데 다섯 가지 부질없이 생각하는 마음이 근본이 되었다고 하시니 저희들은 평상시에 여래의 미세한데까지 열어 보이심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오음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입니까? 차례로 없어지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다섯 겹으로 쌓임은 어디까지가 경계입니까?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펴시어 이 대중들을 위해서 마음과 눈을 맑고 밝게 하시며 말세의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장래의 눈이 되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정밀하고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본각이 원만하고 청정하여 나고 죽는 것과 온갖 티끌과 허공까지도 머물러 두는 것이 아니건만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는 원래 본각으로서 오묘하고 밝고 참되고 정밀한 것인데 허망하게 기세간을 발생시킴이 마치 연야달다가 제 머리를 모르고 그림자로 잘못 인정하는 것과 같나니라.

허망한 것이 본래 원인이 없는 것이거늘 부질없는 생각 속에 인연의 성품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연을 모르는 자는 자연이라고 하는데 그 허공의 성품도 사실 환상으로 생긴 것이므로 인연과 자연은 모든 중생들이 허망한 마음으로 헤아려 생각한 것이니라. 아난아! 허망한 것이 생긴 데를 알면 허망한 인연을 말할 수 있으려니와 만약 허망한 것이 원래 없는 것이라면 허망한 인연을 말하려고 하여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거든 더구나 알지도 못하면서 자연이라고 미루어 생각할 수 있겠느냐?

너의 몸이 처음에 부모를 생각함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니 네 마음이 생각이 아니었으면 생각 가운데 와서 생명을 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는 마치 내가 먼저 말하기를 마음으로 신 맛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생기고 마음으로 높은데 오르는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새그롭다고 한 것과 같나니 높은 절벽이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며 신 물건이 온 것도 아닌데 네 몸이 반드시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입에 침이 어떻게 신 물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의 현재 색신이 견고한 제一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여기서 말한 바 높은데 오를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네 몸으로 하여금 참으로 시거나 발바닥이 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나니 수음이 생기므로 인하여 색신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가 지금 앞에 나타나는 순하면 유익하고 거스리면 해로운 두 가지로 치달리는 것을 비고 밝은 제二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너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너의 색신을 부리나니 몸은 생각의 종류가 아니거늘 네 몸은 무슨 까닭으로 생각을 따라 부림을 당해서 갖가지 형상을 취하여 마음이 생각을 일으키면 몸은 취하여서 생각과 서로 내응하느냐? 깨면 생각하는 마음이요 자면 모두가 꿈이니 네 생각으로 요동하는 허망한 정을 이름하여 융통하는 제三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변화하는 이치가 머물러 있지 않아서 쉬지 않고 은밀하게 옮겨가서 손톱, 발톱이 자라고 모발이 나며 기운이 사라지고 얼굴이 쭈그러져서 밤낮으로 서로 교대하는데도 일찌기 깨닫지 못하나니 아난아 이것이 만약 네가 아니라면 어찌하여 몸이 변하여 달라지며 만일 반드시 진실한 너라면 어찌하여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의 모든 작용이 잠시도 머물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그윽하고 은밀한 제四의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또 네가 정밀하고 밝고 맑고 고요하여 흔들리지 않는 곳을 항상한 것이라고 한다면 몸에 보고 듣고 느껴서 아는 것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참으로 정밀하고 진실한 것이라면 허망한 것 익히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무슨 까닭으로 너희들이 옛날에 어떤 기이한 물건을 보고 여러 해를 지내면서 기억하고 있는지 잊었는지 알 수 없다가 뒤에 홀연히 전에 것과 다른 것을 다시 보면 기억이 완연하여 조금도 잊어버리지 아니하는고? 이는 정밀하고 밝고 맑아 요동하지 않는 가운데 생각마다 훈습(熏習)을 받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맑고 고요함이 참된 것이 아니라 마치 급히 흐르는 물과 같아서 보기에는 고요한 듯하여 흐름이 빠른 것을 볼 수는 없으나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만약 생각의 근원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부질없는 익힘을 받아들이겠느냐?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서로 작용하여 합하거나 열리지 아니하면 그 허망한 생각이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현재인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가운데 관습의 기미이니 맑고 또렷한 가운데 형상이 없이 허무한 제 六의 뒤바뀌어진 미세하고 정밀한 생각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다섯 가지 쌓인 음은 다섯 가지 망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라. 네가 지금 인계(因界)의 깊고 얕음을 알고자 하면 색질과 빈 것은 색음의 변제(邊際)이고 접촉과 떠남은 수음의 변제이고 기억하고 잊음은 상음의 변제이고 없어짐과 생겨나는 것은 행음의 변제이고 밝고 고요한데 들어가 맑고 고요함과 어울리면 식음의 변제로 돌아가나니라.

이 오음의 근원이 겹겹이 쌓여서 생긴 것이니 생겨남은 식음으로 인해 생겨나고 없어짐은 색신을 따라 없어지나니 이치인 즉 단번에 깨달을 수 있는지라 깨달음에 의지하여 모두 사라지지만 일은 단박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차례를 따라서 다 없어지나니 내가 이미 네게 겁바라수건으로 매듭짓는 것을 보여 주었거늘 무엇이 분명치 않아서 다시 묻느냐?

너는 마땅히 이 망상의 근원을 가지고 마음으로 열어 통달해서 장래 말법 세계 속에 모든 수행하는 자들에게 전해주어 허망함을 깨닫게 하여 싫증을 스스로 내어서 열반이 있음을 알고 삼계를 연연하지 않게 하라.

아난아! 말세의 중생들이 바른 법을 믿지 않고 항상 사특한 소견을 내다가 홀연히 이 경전을 만나서 크게 비웃으며 비방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그르다고 헐뜯으면 그 사람은 현재 세상에 업장의 그물에 걸려서 삼재와 팔난과 아홉 가지 횡액이 와서 침범하며 문둥병과 고질병이 항상 그 몸을 얽어매며 절름발이나 귀머거리나 봉사나 벙어리로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다가 죽자마자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위의 불은 아래로 통하고 아래의 불은 위로 통하며 쇠창과 쇠작살이 온 몸에 구멍을 뚫으며 구리를 녹여 입에 부어 갈비뼈가 녹아나서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만번 죽고 만번 태어나며 온갖 고통이 그칠 때가 없으리라. 이 경전을 비방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죄를 받으리니 너는 마땅히 선포해서 저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참회하며 믿고 이해하고 닦아 증득하게 하라.

아난아! 만약 어떤 사람이 시방에 가득하고 허공에 꽉 차 있는 일곱 가지 보배를 가지고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고 공양을 드리며 마음으로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그렇게 부처님에게 보시한 인연으로 복을 많이 받겠느냐? 그렇지 않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허공이 다함이 없으며 보배도 한량이 없습니다. 옛적에 어떤 중생이 부처님에게 돈 일곱 푼을 보시라고서도 죽은 뒤에 전륜왕이 되었거든 더구나 현재 무한한 허공과 부처님의 세계에 가득한 보배로 보시함이겠습니까? 겁이 다하도록 생각하더라도 오히려 미칠 수가 없을 터이니 그 복이 어찌 한계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여래께서는 부질없는 거짓말을 하지 않나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몸으로 네 가지 중죄[음행, 살생, 도적질, 거짓말]와 열 가지 바리이죄를 범하여 순식간에 이곳 저곳의 아비지옥을 돌아다니며 시방의 무간지옥까지 빠짐없이 다 돌아다녀야 할 터인데도 능히 한 생각으로 이 법문을 가져다가 말법 세계 속에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열어 보이면 이 사람의 죄와 업장이 생각을 따라 소멸되어서 저렇게 받아야 할 지옥의 괴로운 원인이 변하여 안락한 나라가 될 것이요 복을 얻음이 앞서 보시한 사람을 능가함이 백배 천배 만배 억배가 될 것이며 이와 같이 숫자로 계산하거나 어떠한 비유로도 미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항상 하늘 혹은 용 등 여러 호법 신장과 산과 강의 호법 신장이 간데마다 지켜주고 보호하며 금강역사가 이르러 수시로 지켜줄 것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계를 지키고 경전을 받아서 지성으로 봉안하면 그윽한 향기가 방에 피어나고 상서로운 기운이 뜰에 가득하여 업장이 사라지고 복과 지혜가 점점 자라날 것이요 저 죽는 날에도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들거나 나거나 기거함에 있어 모든 험난함을 당할 경우 일심으로 나무구고관세음보살(南無求苦觀世音菩薩) 의 이 주문을 외우면 사생[태, 란, 슬, 화]에게 공경을 받으며 칠취[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 신선]에서 제도되는 것이니 그 공덕을 나처럼 널리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겁이 끝나도록 다할 수 없으리니 선남자와 선여인이 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법대로 수련하면 곧 보리를 이루어서 다시는 마구니의 업장이 없으려니와 진실로 지극한 덕을 지니지 못하고서는 지극한 도를 어떻게 이루겠는가?

지극한 덕이 이루어져야만 지극한 도를 이룰 수 있으리라." 그 때에 세존께서 이 경전을 말씀하여 마치시니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와 모든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와 다른 곳의 보살들과 二승[성문, 연각]과 성선동자(聖仙童子)와 처음 발심한 큰 힘을 지닌 귀신들이 모두들 크게 기뻐하여 절하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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