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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玄奘)^삼장(三藏) -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 西遊 루트

실크로드를 이야기하자면 당나라 시절의 서역기행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주역이 현장(玄奘, 602~664)이다. 그는 당나라 초기 뛰어난 고승이자 불교 경전 번역가였다. 우리에게는 삼장(三藏)법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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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玄奘, 602~664)은 당나라 초기 뛰어난 고승이자 불교 경전 번역가였다.

우리에게는 삼장(三藏)법사로도 유명하다.

삼장(三藏)법사는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에 두루 통달해서 얻은 별칭이다.

 

5세기 불경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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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대지도론 50/ 구마라집 漢譯, 국역 최봉수 ·김형준 개역

ko.wikipedia.org/wiki/%EC%BF%A0%EB%A7%88%EB%9D%BC%EC%A7%80%EB%B0%94 쿠마라지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쿠마라지바키질 석굴 입구의 광장에 세워진 쿠마라지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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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jbs.org/archive/view_article?pid=jbs-11-2-1 

 

J. Buddh. Soc.: Xuanzang’s Principles for the Translation of Buddhist Texts : Compared with Dao’an and Kumārajīva’s Prin

It was undoubtedly the most important task to translate Indian Buddhist texts correctly into Chinese characters in the history of Chinese Buddhism. This paper examines the translation of Xuanzang compared with the previous translation by Dao’an and Ku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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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초록

서역의 불전을 한문으로 정확하게 번역해내는 것은 중국불교가 당면한 과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논문은 현장 이전의 번역을 대표하는 도안과 구마라집의 불전 번역에 관해 살펴보고, 현장의 불전 번역이 지닌 특징을 도출하기 위해 현장의 번역 원칙이 이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고찰한다.

현장 이전의 불전 번역가들은 대략 직역파와 의역파로 나뉜다. 도안은 ‘오실본삼불역(五失本三不易)’이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불전 번역에서 직역을 중시한 반면, 구마라집은 비교적 간결한 문장으로 원문의 내용에 충실한 의역을 추구했다.

현장의 신역은 양적·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뛰어난 번역이라고 평가받는데, 특히 인도의 원본에 가장 충실한 정확한 번역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받았다. 현장은 보다 체계적이고 발전된 형태의 불전 번역 이론을 갖추었는데, 바로 ‘오불번(五不翻)’ 및 ‘정번(正翻)’, ‘의번(義翻)’이다. 그의 번역 이론은 음역, 직역, 의역의 기준을 제시하였으며, 불전 번역에서 여러 가지 번역 방법을 다양하게 구사하여 이전 번역에서 보이는 단점을 보완했고, 후대 동아시아 불전 번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Keywords: 

현장(玄奘); 오불번(五不翻); 정번(正翻); 의번(義翻); 도안(道安); 구마라집(鳩摩羅什)

 

Ⅰ. 들어가며

현장(玄奘)은 중국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으로, 동아시아불교사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러 분야에 전 방위로 펼쳐져 있다. 특히, 그가 인도로 구법을 떠난 이야기는 『서유기』와 같은 문학작품을 통해 불교인이 아니라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중국불교사에서 현장의 역할을 반영하듯, 현장에 대한 연구도 각 분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에서 현장과 관련된 최근 연구성과를 정리한 논문이 몇 편 발표되어서, 현장 연구의 대략적인 윤곽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바이양(白楊, 2008a2008b)은 2008년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에서 1994년부터 2007년 초까지 현장을 주제로 한 연구성과들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주제로 세분화했다(白楊, 2008a: 20).1)

  1. 현장의 생애를 다룬 연구
  2. 불전 번역에 있어서 현장의 공헌을 다룬 연구
  3. 현장과 인명학의 관계를 다룬 연구
  4. 현장의 철학사상 및 유식학을 다룬 연구
  5. 불교에 대한 현장의 공헌을 다룬 연구
  6. 『대당서역기』를 다룬 연구
  7. 『서유기』와 현장의 관계를 다룬 연구
  8. 현장과 관련된 고고학적 연구

또한, 바이양의 소개에 이어, 자오환(趙歡, 2015)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현장에 대한 연구성과들을 추가로 소개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위에서 제시한 분류에 ‘현장과 관련된 인물을 다룬 연구’, ‘현장이 다녀간 실크로드 경로에 대한 연구’, ‘현장의 정신을 다룬 연구’, ‘『삼장법사전』 및 고대 위구르어로 전하는 『현장전』을 다룬 연구’ 네 가지 항목을 추가했다. 두 중국 학자의 논문을 통해 현장의 생애, 불전 번역, 인명학, 유식학, 『대당서역기』, 『서유기』 등을 비롯한 비교적 친숙한 주제와 더불어, 현장이 갔던 실크로드 경로나 고대 위구르어 『현장전』 등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중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장에 관한 다양한 연구 주제들이 반영하듯, 현장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도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현장이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야는 불전 번역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수많은 역경가가 있었지만, 구마라집(Kumārajīva, 鳩摩羅什)과 현장의 명성을 능가한 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현장의 신역은 인도의 원본에 충실한 정확한 번역이라고 후대에 평가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도안 및 구마라집의 불전 번역을 통해 현장의 번역이 탄생한 맥락을 살펴보고, 현장의 번역 원칙에 초점을 맞추어 신역의 특징을 도출하고, 그것이 중국불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Ⅱ. 현장 이전의 불전 번역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그 자체 근본적인 어려움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의 언어·문자는 그 체계가 전혀 다른 것으로, 오늘날 전자는 인도유럽어족으로 분류되는 굴절어(屈折語)이고, 후자는 중국티베트어족으로 분류되는 고립어(孤立語)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가장 먼저 직면한 문제는 이질적인 언어·문자의 난관을 극복하고, 불전을 온전한 형태로 번역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수많은 불전 번역가들은 이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번역 원칙들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 도안의 ‘오실본삼불역(五失本三不易)’

중국에서 불전 번역에 관한 원칙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도안(道安, 312-385)이다. 그 자신은 산스크리트를 하지 못했다고 보이나, 『방광반야경』, 『도행반야경』, 『광찬반야경』 등 여러 다른 번역본을 대조하면서 불전 번역의 문제를 고민했으며, 훗날 관중(關中)으로 가서 직접 번역 사업에 참여하였는데, 그가 주도하여 번역한 불전이 14부 180권이다. 그는 담마비(曇摩蜱)에게 『마하발라야바라밀경초(摩訶鉢羅若波羅蜜經抄)』를 집역하게 하면서 자신이 쓴 서문인 『마하발라야바라밀경초서(摩訶鉢羅若波羅蜜經抄序)』에서 ‘오실본삼불역(五失本三不易)’이라는 번역 원칙을 제시한다.

먼저 ‘오실본(五失本)’은 인도 원본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상실될 수밖에 없는 다섯 가지 측면으로, 모두 불전 번역의 형식적 측면과 관련된 원칙이다. 도안은 다음 다섯 가지 경우를 제시한다.

산스크리트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에는 다섯 가지 원본의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점이 있다.

첫째, 산스크리트 어법이 모두 뒤바뀌어야 중국어 문법에 맞으니, 첫째 원본의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점이다.

둘째, 산스크리트 경전은 내용을 숭상하나, 중국인들은 정제된 형식을 좋아하니,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정제된 형식이 아니면 안 되니, 이것이 둘째 원본의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점이다.

셋째, 산스크리트 경전은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찬탄하는 부분에서는 정성스럽게 세 번 네 번 반복하며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지만 지금 편집하여 삭제하니, 셋째 원본의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점이다.

넷째, 산스크리트 [경전에서] 어떤 의설(義說)은 바로 [중국의] 난사(亂辭)와 유사하니, 설구와 어문을 살펴보면 다른 점이 없으므로, 혹은 천오백 행도 잘라내고 남기지 않았으니, 넷째 원본의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점이다.

다섯째, 한 이야기가 이미 완결된 다음 다시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면,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하고 나서 뒤의 것을 설명하므로, 이러한 것들을 살펴서 제거하였으니, 다섯째 원본의 모습을 잃을 수밖에 없는 점이다.2)

위의 인용문에서 도안이 불전 번역에서 원본의 변형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고 말한 다섯 가지 측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산스크리트와 한문 간의 문법적 차이(어순)에 의한 변형.
  2. 정제된 문장으로의 변형.
  3. 반복되는 찬탄구의 삭제.
  4. 내용이 중복되는 의설의 삭제.
  5. 문맥을 해치는 반복된 설명의 삭제.

이 가운데 1∼2는 언어 표현상의 변형이고, 3∼5는 중복되는 내용을 삭제하여 압축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지만, 모두 번역의 형식적인 측면과 관계된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적 변형은 인도와 중국의 언어사용 및 관습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도안은 산스크리트 불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어쩔 수 없이 ‘원본의 모습을 잃게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한편, ‘삼불역(三不易)’은 바꾸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의미하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불전을 번역하는 번역자의 태도와 관련된다. 도안은 세 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러나 『반야경』은 세 가지 통달한 마음이며, 부처님께서 강연하신 것이다. 성인은 반드시 때에 맞게 설법하였으며, 시속(時俗)은 변화가 있지만, 우아한 옛 것을 삭제하고, 현재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은 첫째 바꾸지 말아야 할 점이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성인은 [이러한] 단계를 완전히 떠나서 천세보다 더 위의 미묘한 말씀으로 여러 왕들 아래에 있는 말단 세속에도 부합할 수 있도록 전하고자 하였으니, 둘째 바꾸지 말아야 할 점이다.

아난이 경전을 만들어낸 것은 부처가 열반하신 지 오래 지나지 않았을 때, 대가섭 존자가 오백 아라한에게 번갈아 살펴보고 기록하도록 명했던 것인데, 지금 [부처가 열반하신 지] 천년이 지난 다음 짧은 생각으로 재단한다. 저 아라한들조차 이처럼 전전긍긍하였는데, 이 생사에서 윤회하는 자들은 이처럼 태평하니, 어찌 법을 모르는 자가 용감하단 말인가! 이것이 셋째 바꾸지 말아야 할 점이다.3)

앞의 다섯 가지 측면에서 원본을 변형을 부득이 허용했던 것과 달리, 도안은 세 가지 경우에는 불전 번역자들이 원본의 형태를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 인용문의 세 가지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우아한 옛 것을 지금에 맞추어 변형하지 말 것.
  2. 성인의 미묘한 말씀을 변형하지 말 것.
  3. 번역자의 짧은 생각으로 불전의 내용을 재단하여 변형하지 말 것.

위의 세 가지는 모두 불전의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적 측면과 관련된 것이다. 위의 『마하발라야바라밀경초』 서문의 인용에서, 도안은 ‘세 가지 통달한 마음이며 부처님께서 강연하신 것’이라는 표현으로 『반야경』의 종교적 위상을 분명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비록 앞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형식적 측면에서의 변형은 불가피하게 인정하지만, 불전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번역자들이 경솔하게 변형을 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경전에 나온 부처의 설법은 구체적인 상황에 맞게 이루어진 가르침이었는데, 만약 시속이 변화했다고 해서 현재의 기준에 맞추어 옛 것을 변화시키면 오히려 경전의 전체 내용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부처의 말씀은 중생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동시에 여러 세속적인 다양성을 포용하는 신묘한 작용이 있다. 따라서 번역자들이 종교적 가르침의 초월적 작용을 무시하고, 그 내용을 마음대로 변형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부처가 입멸한 다음에 오백 아라한들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완성된 경전을 천년이 지난 시대의 짧은 식견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재차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삼불역(三不易)’을 ‘삼불이(三不易)’, 즉 ‘세 가지 용이하지 않은 점’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전통적인 이해 및 중국학자들이 대개 ‘용이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반면, 일본의 연구자들은 오쵸 에니치가 처음으로 주장한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해석을 따르거나, 아니면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이 많다(船山徹, 2018; 167). ‘삼불역(三不易)’을 ‘삼불이(三不易)’라고 해석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뤼청(吕澂, 1992: 103)이 있는데, 그는 ‘세 가지 용이하지 않은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경전 원본은 부처님이 인연에 따라 말씀하신 것인데, 고금의 시속은 같지 않으므로 옛날의 풍속을 지금의 풍속에 맞춘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둘째, 성인의 지혜가 담긴 미묘한 말과 깊은 뜻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이해시키기 위함이지만 시간적 거리가 이렇게 멀어졌으니 어려운 일이다. 셋째, 당시 경전을 편찬한 사람들은 모두 큰 지혜와 신통력을 가졌는데, 지금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번역을 하고 있으니 더욱 어려운 일이다.”

‘易’은 ‘바꾸다’ 외에도 ‘용이하다’라는 뜻이 있으므로, 뤼청(吕澂)처럼 ‘三不易’를 ‘세 가지 용이하지 않음’으로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이 ‘용이하지 않음’은 결국 부처의 신묘한 설법을 현재의 풍속에 맞추거나, 천년이 지난 후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 밖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즉, ‘마음대로 변형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뤼청(吕澂, 1992: 103)은 이 세 가지가 불전을 번역하는 세 가지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며, 번역자들은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여 경전을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도안의 입장이라고 해설한다.

거시적인 시야에서 볼 때, 도안의 ‘오실본삼불역(五失本三不易)’의 중심 내용은 불전을 번역함에 있어서 번역문이 산스크리트 원본에 합치되는지의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다. 도안은 비교적 직역에 충실한 불전 번역을 추구하였는데, ‘오실본’은 당시 도안의 논쟁 대상자였던 혜상(慧常)처럼 극단적인 직역을 주장하는 입장에 대한 비판이 내포되어 있다(船山徹, 2018; 169). 그는 문장을 세련되게 바꾸거나, 같은 내용을 중복하지 않는 등의 형식상의 변형은 통해 경전 원문의 의미를 살리려는 노력을 옹호했다. 그러나 원문 내용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직역을 고수하는데, 부처가 설법한 의도를 번역자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마음대로 재단한 번역, 즉 내용상의 변형이 있는 번역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 구마라집의 번역 방법

중국의 불전 번역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로 구마라집이 있다. 구마라집의 명성은 중국에까지 퍼져, 도안이 부견(符堅, 재위: 357-385)에게 구마라집을 초청할 것을 제의하자, 부견은 여광을 쿠차에 파견한다. 여광은 쿠차를 침략하고, 구마라집은 15년 간 여광에게 억류되었다가, 401년에야 비로소 장안에 도착하여 불전을 번역하였다. 이 때 도안은 이미 세상을 떠나 구마라집을 만나지 못한다.

구마라집의 생몰 연도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하나는 344년에서 413으로 보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350년에서 409년으로 보는 주장이다(船山徹, 2018; 54). 어느 쪽 주장을 채택하든지 간에 구마라집이 장안에 머물렀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는 장안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역경 사업으로 유래 없는 번역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제자 승조(僧肇, 383-414)는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의 서문에서 구마라집이 인도 원문을 손에 들고 말로 번역하면 다른 스님들이 정성스럽게 한 구절을 세 번 반복해서 성스러운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힘썼다고 전한다.4) 구마라집이 번역한 경전의 수량은 문헌마다 기록이 차이가 있지만 대략 30여 부 300여 권에 달한다.5)

또한, 승조는 『백론서』에서 이전의 불전 번역에 비해 구마라집의 번역이 질박하나 거칠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깊은 뜻이 있다고 지적한다.6) 현장 이전의 불전 번역가들은 세련된 형식미[文]와 원문 내용에 충실함[質]을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형식과 내용 가운데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했다. 오나라 지겸(支謙), 서진의 축숙란(竺叔蘭) 등은 번역문의 형식적 측면을 강조하여 과감한 의역을 추구하다 보니 경문의 본의를 구현하는 데 미흡했다고 평가된다. 반면, 후한의 지루가참(支婁迦讖), 서진의 축법호(竺法護), 동진의 도안 등은 원문의 내용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 문장의 형식도 가급적 재현하려는 직역을 채택하다보니 번역문의 형식미가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구마라집은 이전의 번역가들과 달리 산스크리트와 한문 두 언어에 모두 정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불전 번역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 간의 조화를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전 번역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으며, 자신의 제자 승예(僧叡)에게 산스크리트와 한문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전한다.

천축은 국가의 풍속이 문장을 형식을 매우 중시하여, 그 음율[宮商]의 체운(體韻)이 현악기 소리에 들어맞아야 훌륭한 문장이라고 여긴다. 보통 국왕을 알현하면 반드시 [국왕의] 덕을 찬양하고, 견불 의례에서도 노래로 [부처를] 찬탄하는 것이 숭상하는 표현이므로, 경전 가운데 게송들은 모두 그 형식을 따른다. 다만 산스크리트를 한문으로 바꾸면 그 표현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대체적인 의미는 전달하더라도 문체가 완전히 달라지니, 마치 밥을 씹어서 타인에게 주면 맛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구역질이 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7)

구마라집은 번역이란 ‘맛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구역질이 나도록 하는 것’이며, 따라서 원전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토로조차 불전 번역에 있어서 그의 전문성과 신중함을 방증한다.

구마라집은 원문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직역보다 이해하기 쉬운 의역을 택했다. 왕티에쥔(王鐵鈞, 2006: 125)은 구마라집의 번역문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는데, 하나는 일반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통속적인 문장이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간결하여 음송하기 쉬운 문장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구마라집이 번역한 『대지도론』에 관해, 승예는 “산스크리트본의 자세함이 모두 초품과 같은데, [구마라집] 법사께서 중국인이 간결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편집하여 간략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 문장을 모두 번역했다면, [번역본]이 천여 권에 가까웠을 것이다.”8)라고 설명한다. 구마라집이 간결한 문체로 번역한 한역 경전들은 현재까지도 대중이 가장 선호하는 경전으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구마라집은 이해하기 쉬운 의역을 선호하면서도 동시에 원어를 음역하거나 원문의 어순을 살린 번역을 신중하게 채택하여 원문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리수’는 구마라집이 창안한 번역으로, 구마라집 이전에 있었던 ‘불수(佛樹)’, ‘도수(道樹)’, ‘각수(覺樹)’ 등의 의역과 달리, ‘보리’라는 음역을 채택하고 있다(船山徹, 2018; 146-147).

오늘날 구마라집의 번역 원칙이 무엇이었는지 단적으로 제시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번역문을 통해 구역(舊譯)이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간결한 형식미를 갖춘 번역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Ⅲ. 현장의 불전 번역

1. 역경의 특징

현장의 번역한 경론은 75부 1,335권으로, 그 양에 있어서도 다른 역경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이는 그가 인도에서 가져온 경론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종파나 사상을 초월하여 그가 번역한 경전의 종류도 다양하다.

뤼청(吕澂, 1992: 280-281)에 의하면, 현장의 역경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단계는 현장이 불전을 번역하기 시작한 정관(貞觀) 19년부터 처음 6년(645-650년)으로 『유가사지론』을 중심으로 『현양론』, 『불지론』 그리고 『섭대승론』과 같은 관련 저작들을 주로 번역했던 시기로, 그가 인도로 떠난 목적과도 부합한다. 둘째 단계는 다음 10년(651-660년)으로 『구사론』을 중심으로 그 이전의 『발지론』, 『비바사론』, 『육족론』 등과 그 이후의 『순정리』, 『현종』 등의 논서를 번역했던 시기로, 기존에 번역된 『구사론』의 오류를 바로잡고 체계적으로 사상을 소개하려는 시기다. 셋째 단계는 마지막 4년(660-664년)에 해당하며, 『대반야경』을 중심으로 번역하였다.

구마라집의 구역에서는 임의로 삭제하거나 증광한 번역도 있었던 반면, 현장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했고(문을식, 2007: 274), 문장에 의심나는 곳이 있으면 서역에서 가져온 여러 판본을 대조하면서 정확한 뜻을 전달하려고 노력했기에, 후대 동아시아 불전 번역의 모델이 되었다.

2. 번역원의 조직체계

현장은 조정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불전 번역을 진행했는데, 이 번역 사업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이 시기는 구마라집이 장안의 소요원에서 번역할 때 시행한 검토 절차를 경험한 이후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의 검수 절차를 마련할 수 있었다(권탄준, 2010: 182). 구체적으로, 현장의 주도 아래 운영된 번역원의 조직체계는 다음과 같다(문을식, 2007: 270-271).9)

  1. 역주(譯註): 역장의 최고 책임자로서 산스크리트와 중국어에 정통하고, 불교 교리에도 조예가 깊어 번역작업의 제반 문제에 대해 판단함.
  2. 증의(證義): 역주의 조소로서 번역문의 의미를 상세히 검토함.
  3. 증문(證文): 문장을 올바르게 다듬음.
  4. 서자(書字): 중문이 올바른지 살핌.
  5. 필수(筆受): 산스크리트본을 한문으로 옮길 때 받아 적음.
  6. 철문(綴文): 필수의 기록을 정리하여 중국어 언어습관에 부합하도록 바꿈.
  7. 참역(參譯): 번역된 중국어 문장을 다시 산스크리트로 번역해서 대조하고 정확성을 검사함.
  8. 간정(刊定): 불필요한 문장을 삭제하고, 늘려야 할 곳은 늘려서 문장의 의미를 확정함.
  9. 윤문(潤文): 번역문의 문장을 수사학적인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다듬음.
  10. 범패(梵唄): 번역문의 문장을 창하고, 낭송을 반복하여 독송하기 적절하게 만듦.
  11. 감호대사(監護大使): 황제의 명을 받은 대신이 불전 번역의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보호함.
3. 현장의 번역 원칙

현장의 번역 원칙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오불번(五不翻)’이다. 이것은 『번역명의집(翻譯名義集)』의 서문에 소개되어 많은 연구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문헌보다 좀 더 이른 기록인 당말오대 경소(景霄)의 『사분율초간정기(四分律鈔簡正記)』에는 ‘오불번(五不翻)’을 포함한 현장의 번역 이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문헌은 도선(道宣, 596-667)의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에 대한 주석인데, 도선은 현장의 번역 사업에 참여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서, 현장의 번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사분율초간정기』의 ‘오불번’ 등에 대한 기록이 현장 자신이 직접 서술한 것은 아니며, 현장과 200년 이상의 간격이 있을지라도, 현장의 영향 아래 있던 당대 학승들이 현장의 학설로 정리한 것이라고 보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船山徹, 2018; 153). 따라서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오불번(五不翻)’은 현장의 번역 원칙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음역

현장의 오불번은 『번역명의집서』에서도 소개되어 많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된 바 있다. 현장은 아래의 다섯 가지 경우에 해당하면 의역하지 않고, 음역으로 남겨서 산스크리트 용어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논문은 『사분율초간정기』에 의거하여, 다섯 가지 음역해야 할 경우를 순서대로 나열했다.

  1. 生善故不翻
  2. 秘密不翻
  3. 含多義故不翻
  4. 順古不翻
  5. 無故不翻
(1) 뛰어난 작용을 일으키는[生善] 용어는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불타(佛陀)’를 ‘각(覺)’이라고 하고, ‘보리살타(菩提薩埵)’를 ‘도유정(道有情)’이라고 하지만, 현장은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 음역하여 산스크리트 용어를 보존하는 편이 낫다고 보았다.10) 왜냐하면 중국어로 의역할 경우, 단어의 심오한 의미가 일상적인 차원의 의미로 치환되어 가벼워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2) 비밀스러운 다라니 등은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다.

다라니 등은 총지의 가르침이다. 만일 다라니를 산스크리트에 따라 암송하고 가지(加持)하면 바로 효험이 감응하여 나타나지만, 만일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하면 영험이 전혀 없게 되므로 번역하지 않는다.11) 오늘날의 시각에서 다라니를 음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축법호와 같이 다라니를 의역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장이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밀주’를 번역하지 않고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Gate gate pāragate pārasaṃgate bodhi svāhā.)’로 음역한 것도 이 원칙에 해당한다.

(3)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는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다.

‘박가범(薄伽梵, bhagavat)’이라는 명칭은 여섯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자재(自在), 치성(熾盛), 단엄(端嚴), 명칭(名稱), 길상(吉祥), 존귀(尊貴)가 그것이다.12) 그런데 만약 그 가운데 하나만 취해서 번역하면, 나머지 다섯 가지 의미가 상실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장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산스크리트 명칭의 경우,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그의 번역문에서는 ‘세존’이 사용된 경우도 많이 있다(船山徹, 2018; 157).

(4) 옛날부터 음역했던 용어는 관례에 따라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다.

현장은 옛날부터 음역하여 이미 정착한 용어는, 기존의 용례를 따라 음역하고 번역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아누보리(阿耨菩提, anuttarasamyaksambodhi)’는 한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의 전례를 살펴보더라도, 줄곧 그 의미를 번역하지 않았던 용어이므로 번역하지 않는다.13) 그러나 현장은 ‘아누다라삼막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는 음역과 더불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나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 등의 의역도 사용하고 있다(船山徹, 2018; 159).

한편, 사향사과(四向四果) 가운데 구마라집이 ‘수다원(須陀洹, srotāpatti)’, ‘사다함(斯陀含, sakrdāgāmi)’, ‘아나함(阿那含, anāgāmi)’이라고 음역했던 것을 현장은 ‘예류(預流)’, ‘일래(一來)’, ‘불환(不還)’이라고 의역했다. 반면, ‘아라한(阿羅漢, arhat)’은 현장도 구마라집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음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라한이라는 용어가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일반 사람들에게 친숙하므로 굳이 의역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5)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다.

현장은 중국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번역할 방도가 없으므로 음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염부수(閻浮樹, jambu)’는 부처의 태자 시절 농경제에서 부처의 명상을 도와준 나무로 유명하다. 경소는 염부수의 그림자가 달까지 드리워지고(『장아함』에 달에 검은 그림자가 있는 까닭은 염부수의 그림자가 달에 비치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옴), 열매의 크기가 여덟 말의 항아리만큼 크다고 묘사하고, 중국에는 이와 유사한 나무가 없으므로 음역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번역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14) 관련하여, 후나야마 도루(船山徹, 2018; 159-160)는 현장 이전에 ‘염부수’라는 말이 존재했으나, 현장이 사용한 음역은 ‘섬부(贍部)’이지 ‘염부’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위의 ‘오불번’은 음역해야할 다섯 가지 경우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은 현장의 다양한 번역 원칙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오불번’의 설명 가운데 현장이 실제 사용한 역어와 충돌하는 부분도 나타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현장의 입장인지 앞으로 더욱 상세한 연구가 요청된다. 이러한 까닭에 문을식(2007: 278)은 오불번의 원칙이 구역과 신역에 공통된 것으로, 현장 이후의 신역의 입장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구역이나 고역의 전통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현장의 번역 이론과 그가 번역한 불전의 용례가 불일치한다는 문제도 제기한다. 만약 ‘오불번’의 원칙만 두고 본다면 현장 번역에서 많은 부분이 음역되어야 할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현장의 번역 원칙은 ‘오불번’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좀 더 광범위한 시야에서 현장의 번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실, 위에서 다룬 예외적인 다섯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문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15) 따라서 구역에서 음역했던 용어를 현장이 다시 의역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는 뒤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2) 직역과 의역

『사분율초간정기』에서는 현장이 번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 외에도 번역해야 한다고 언급한 내용도 제시되어 있는데,16) 구체적으로 번역해야 하는 것에는 정번(正翻)과 의번(義翻)이 있다. 이 정번과 의번을 나누는 기준은 인도 산스크리트 명칭에 해당하는 것이 중국에 존재하는지 여부다.

그동안 『번역명의집서』 위주로 현장의 번역 이론이 소개되었던 까닭에, 정번과 의번은 연구자들에게 간과된 측면이 있었다. 최근 타오레이(陶磊)는 그의 논문 「불경 한역 이론 가운데의 정번과 의번(佛經漢譯理論中的“正翻”和“義翻”)」에서 『사분율초간정기』에 제시된 현장의 정번과 의번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장지엔무(張建木, 1983: 12-13)가 1983년 최초로 『사분율초간정기』에 실린 해당 부분을 인용했지만, 오불번만 논의하고 정번과 의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출판된 허시롱(何錫蓉, 2004: 223-224)의 저서, 『佛學與中國哲學的雙向構建』에서부터 정번과 의번이 비로소 현장의 독립적인 번역 이론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먼저, 정번이라는 용어는 남조 시대 진제(眞諦, 499-569)가 번역한 『수상론』에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규정된 것은 『사분율초간정기』에 이르러서다(陶磊, 2016: 93). 인도와 중국에 모두 존재하고 그 명칭만 다른 경우, 중국어를 사용하여 바로 번역하는 것이다. 일종의 직역인 셈이다. 예를 들면, 산스크리트 ‘분다리가(莽茶利迦, pundarika)’는 중국의 ‘백련화(白蓮華)’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대로 직역한다.17)

한편, 의번은 어떤 것이 인도에만 있고 중국에는 없지만, 중국에 그것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산스크리트 용어를 번역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의역이다.

앞의 오불번 가운데 ‘無故不翻’ 항목이 있으므로, 중국에 있지 않은 것은 모두 번역하지 않는 것이 현장의 입장에 부합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금강경』에 등장하는 ‘수메루(sumeru)’를 구마라집은 ‘수미(須彌)’라고 음역하였지만, 현장과 현장 이후의 의정은 모두 ‘묘고(妙高)’로 의역하였다. 중국에 있지 않으며 구역에서도 음역했던 수메루를 신역에서 의역한 것은 ‘오불번’의 잣대로만 보면 자신의 번역 원칙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문을식, 2007: 286). 또한 지겸과 구마라집은 『유마경』의 주인공인 비말라키르티(Vimalakīrti)를 ‘유마힐(維摩詰)’이라고 음역한 반면, 현장은 ‘무구칭(無垢稱)’으로 의역하고 있다(船山徹, 2018; 160-161).

사실 현장의 입장은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모두 음역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유사성을 가진 것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통해 산스크리트 용어를 번역하는 것에 더 가깝다.18) 예를 들어, ‘니구율타수(尼拘律陀樹, nyagrodha)’는 흔히 반얀(banyan)이라고 부르는 나무인데, 중국인인 경소는 이 나무를 직접 보지 못하고 전해 들은 까닭인지 ‘오백 대의 수레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나, 그 열매는 깨의 사분의 일만한 것’이라는 다소 과장된 모습으로 니구율타수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중국에는 그러한 나무는 존재하지 않지만, 버드나무가 그것과 약간 유사하기 때문에 ‘유수(柳樹)’라고 번역한다고 설명한다.19) 이와 달리 앞의 염부수의 경우는, 중국에서 그 ‘그림자가 달까지 드리워지고 열매의 크기가 여덟 말의 항아리만큼 큰(如閻浮樹, 影透月中, 生子八斛甕大)’ 특징을 빗댈만한 나무가 없으므로 달리 의역할 방도가 없어서 음역한 것이다. 따라서 현장이 원전을 그대로 음역하는 것을 특별히 선호했다기보다, 가능한 한 원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해 문맥과 상황에 맞는 원칙을 가변적으로 적용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던 ‘오불번’ 및 ‘정번’과 ‘의번’은 현장이 실제로 견지했던 번역 원칙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번역 원칙에서 그가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현장은 음역뿐만 아니라, 직역과 의역까지도 포괄하여 불전을 번역하는 원칙을 제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련된 형식미[文]와 원문 내용에 충실함[質]을 모두 갖춘 불전 번역으로, 중국불교에서 구마라집과 함께 가장 위대한 역경가로 평가된다.

Ⅳ. 나가며

앞서 도안과 구마라집으로 대표되는 현장 이전의 불전 번역과 현장의 불전 번역을 그들이 제시한 번역 원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도안은 ‘오실본삼불역(五失本三不易)’이라는 원칙을 제시하며, 불전 번역에서 직역을 중시한 반면, 구마라집은 비교적 간결한 문장으로 원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담은 의역을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구마라집의 불전 번역에서는 간결한 의역과 함께 음역을 대거 차용하여, 형식[文]과 내용[質]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장의 신역은 번역의 양적·질적인 측면 모두 우수하고, 특히 인도의 원본에 가장 충실한 정확한 번역이라는 후대의 평가를 받았다. 현장은 보다 체계적이고 발전된 형태의 불전 번역 이론을 갖추었는데, 바로 ‘오불번(五不翻)’ 및 ‘정번(正翻)’, ‘의번(義翻)’이다. 그의 번역 이론은 음역, 직역, 의역의 기준을 제시하였으며, 불전 번역에서 여러 가지 번역 방법을 다양하게 구사하여 이전 번역에서 보이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현장은 산스크리트와 중국어 두 언어에도 정통하고 불법에도 정통하였으며, 이 둘의 기초 위에서 누구보다 치밀하게 번역에 임했다. 현장 이후의 동아시아 불전 번역은 현장에 의해 결정된 큰 흐름을 따라서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대 역경가 의정(義淨, 635-713)이 인도로 유학을 가고 역경에 몰두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이 후대 중국 및 동아시아불교에 미친 현장의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현장과 관련하여 다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Notes

1) 그는 논문의 서문에서 黃夏年의 연구를 기초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 『出三藏記集』 권8, 「摩訶鉢羅若波羅蜜經抄序」, “譯胡爲秦, 有五失本也. 一者, 胡語盡倒, 而使從秦, 一失本也. 二者, 胡經常質, 秦人好文, 傳可衆心, 非文不合, 斯二失本也. 三者, 胡經委悉, 至於嘆詠, 丁寧反覆, 或三或四, 不嫌其煩, 而今裁斥, 三失本也. 四者, 胡有義記, 正似亂辭, 尋說向語文無以異. 或千五百, 刈而不存, 四失本也. 五者, 事已全成, 將更傍及, 反騰前辭, 已乃後說, 而悉除此, 五失本也.”

3) 『出三藏記集』 권8, 「摩訶鉢羅若波羅蜜經抄序」, “然般若經, 三達之心, 覆面所演. 聖必因時, 時俗有易, 而刪雅古, 以適今時, 一不易也. 愚智天隔, 聖人叵階, 乃欲以千歲之上微言, 傳使合百王之下末俗, 二不易也. 阿難出經, 去佛未久, 尊大迦葉, 令五百六通迭察迭書, 今離千年而以近意量截. 彼阿羅漢乃兢兢若此, 此生死人而平平若此, 豈將不知法者勇乎! 斯三不易也.”

4) 『注維摩詰經』 권1, “既盡環中, 又善方言, 時手執梵文, 口自宣譯, 道俗虔虔, 一言三復, 陶冶精求, 務存聖意. 其文約而詣, 其旨婉而彰, 微遠之言, 於茲顯然矣.”

5) 현존하는 것은 39부 313권으로 이것은 승우의 『출삼장기집』의 35부 294권 내지 32부 300여 권이라는 기록과 혜교의 『양고승전』의 300여 권이라는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

6) 『百論』 권상, “以弘始六年歲次壽星, 集理味沙門, 與什考挍正本, 陶練覆疏, 務存論旨, 使質而不野, 簡而必詣, 宗致盡爾, 無間然矣.”

7) 『高僧傳』 권2, “天竺國俗, 甚重文製, 其宮商體韻, 以入絃為善. 凡覲國王, 必有贊德, 見佛之儀, 以歌歎為貴, 經中偈頌, 皆其式也. 但改梵為秦, 失其藻蔚, 雖得大意, 殊隔文體, 有似嚼飯與人, 非徒失味, 乃令嘔噦也.”

8) 『出三藏記集』 권10, 「大智釋論序」, “胡文委曲, 皆如初品, 法師以秦人好簡故, 裁而略之. 若備譯其文, 將近千有餘卷.”

9) 문을식은 자신의 논문에서 方立天의 『中國佛教與傳統文化』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속고승전』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본 논문은 문을식의 논문에서 관련 부분을 재인용하였다.

10) 『四分律鈔簡正記』 권2, “如佛陀云覺, 菩提薩埵此云道有情等, 今皆存梵名, 意在生善故.”

11) 『四分律鈔簡正記』 권2, “如陀羅尼等, 總持之教. 若依梵語, 諷念加持, 即有感微. 若翻此土之言, 全無靈驗故.”

12) 『四分律鈔簡正記』 권2, “如薄伽梵, 一名具含六義: 一、自在(不永繫屬二種生死故). 二、熾盛(智火猛熖燒煩惱薪). 三、端嚴(相好具足所莊嚴故). 四、名稱(有大名聞遍十方故). 五、吉祥(一切時中常吉利故, 如二龍主水七步生蓮也). 六、尊貴(出世間所尊重故).”

13) 『四分律鈔簡正記』 권2, “阿耨菩提, 從漢至唐, 例皆不譯.”

14) 『四分律鈔簡正記』 권2, “如閻浮樹, 影透月中, 生子八斛甕大, 此間既無, 不可翻也.”

15) 『四分律鈔簡正記』 권2, “除茲已外, 並皆翻譯.”

16) 『四分律鈔簡正記』 권2, “故諸家相承, 引唐三藏譯經, 有翻者有不翻者.”

17) 『四分律鈔簡正記』 권2, “若東西兩土俱有促呼喚不同, 即將此言用翻彼語. 如梵語莽茶利迦, 此云白蓮華.”

18) 『四分律鈔簡正記』 권2, “若有一物西土即有, 此土全無, 然有一類之物, 微似彼物, 即將此者用譯彼言.”

19) 『四分律鈔簡正記』 권2, “如梵云“尼拘律陀樹”, 此樹西土, 其形絕大, 能蔭五百乘車, 其子如油麻四分之一. 此間雖無其樹, 然柳樹稍積似, 故以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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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사상(四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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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서안 자은사 대안탑에서/현장스님과 대당서역기 - 불교신문

사진설명: 자은사 뒷 편 언덕 위에서 촬영한 일몰. 황홀한 광경이었다.‘한국불교 원류를 찾아’ 취재를 위해 2달간 중국 대륙을 돌아다니며 들은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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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 불경신역(新譯)/ 홍지윤 - 배 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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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라지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쿠마라지바키질 석굴 입구의 광장에 세워진 쿠마라지바의 동상법명쿠마라지바(산스크리트어: कुमारजीव Kumārajīva)출생334년? 350년?쿠차국(지금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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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번역

 

쿠마라지바가 번역한 아미타경

쿠마라지바의 불경 번역은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불교사에서 길이 남을 공적이며, 중국에서는 그를 중국 "삼장의 한 사람"이라 일컫는다.

일부 경전에서 산스크리트어 원전에는 없는 쿠마라지바 본인의 창작(해당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이나 의역으로 의심되는 부분도 있으나, 그의 번역 불경이 후대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 문화권에 퍼진 불교 용어, 예를 들어 극락(極樂)이라는 단어는 쿠마라지바가 번역한 그대로 퍼져 쓰이고 있으며,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유명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문구도 쿠마라지바에게서 나온 것이다.

 (唐)의 현장에 의해 산스크리트어 불경이 중국에 수입되고 번역된 뒤에도 「신역(新譯)이라 불린 현장의 번역에 대해  쿠마라지바의 번역은 「구역(舊譯)이라 불리며 존중되었다(쿠마라지바 이전의 번역은 고역古訳이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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