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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66년 두보의 나이 55세 되는 해에 지은 시다.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자 두보가 자신의 쇠약해진 몸을 돌아보고 장안에서의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인생의 적막함을 침울한 어조로 노래한 연작시로, 두보의 칠언율시 가운데서도 미학적으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루어낸 걸작으로 손꼽힌다. 사천성 기주(夔州 : 현 奉節縣)에 머물 때 참담한 생활고를 겪으면서 지은 연작시다.
추흥팔수(秋興八首)
- 가을의 감흥 -
『其一』
玉露凋傷楓樹林
(옥로조상풍수림) 옥 이슬 내리자 단풍나무숲 시들어
巫山巫峽氣蕭森
(무산무협기소삼) 무산(巫山) 무협(巫峽)엔 가을 기운 냉엄하다.
江間波浪兼天湧
(강간파랑겸천용) 장강의 파도는 하늘까지 용솟음치고
塞上風雲接地陰
(새상풍운접지음) 변방을 덮은 풍운은 땅에 가라앉아 음산하다.
叢菊兩開他日淚
(총국양개타일루) 국화 두 번 피니 지난 날 생각에 눈물 나고
孤舟一繫故園心
(고주일계고원심) 외로운 배에 묶어둔 고향 돌아갈 생각뿐.
寒衣處處催刀尺
(한의처처최도척) 겨울옷을 곳곳에서 가위와 자로 마름질 재촉하여
白帝城高急暮砧
(백제성고급모침) 백제성의 저녁 다듬이질 소리 높고도 급하구나.
국화양개(菊花兩開)라는 의미는 두보가 청두를 떠난 후 꽃이 핀 국화를 두 번째로 보았다는 말이다. 첫 번째는 765년 가을 운안(雲安)에서 활짝 핀 국화를 보았고, 두 번째는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기주(夔州)에서 봤음을 가리킨다.
이 시는 무산 협곡의 가을 경치를 보고 흥취를 일으켰다. 무협은 삼협(三峽)의 하나다. 서릉협(西陵峽)·구당협(瞿塘峽)·무협(巫峽)을 삼협이라고 한다. 지금은 삼협 댐이 가로막고 있지만, 옛날에는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성홍(盛弘)의 『형주기(荊州記)』에 이런 말이 있다. “삼협 7백 리에 있는 두 언덕은 산길과 죽 연결되어 있다. 이곳의 웅장한 바위와 겹겹이 솟아있는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가려 햇살이 비치지 않으므로 정오와 자정이 아니면 해와 달을 바라볼 수 없다. 여름 장맛비에 물결이 넘실대면 아침에 백제성을 출발하여 저녁나절쯤이면 먼 강릉(江陵)에 도착하여 잠을 잘 수 있다. 그 사이는 1천2백여 리인데 천리마를 타고 달리더라도 이보다 더 빠를 수가 없다.”
무협 구간에 우뚝 솟아 있는 백제성(白帝城)을 백제루(白帝樓)라고도 한다. 서한 말에 촉 땅을 근거지로 삼아 군벌로 할거했던 공손술(公孫述)이 이곳 우물에서 나온 백룡을 보고 한나라의 명운을 받게 되었다고 하여 자신을 백제(白帝), 그 성을 백제성이라 이름 붙였다. 3세기 때인 삼국시대에 촉한의 소열제(昭烈帝 : 유비(劉備))가 이릉(夷陵)의 전투에서 오나라에 패해 도주한 곳이 백제성이다. 유비는 이곳 이름을 영안(永安)이라 바꾸었다. 유비는 후사를 제갈량에 맡긴 후 이 성에서 생을 마쳤다.
이슬 내리면 숲속의 마른 단풍잎은 모두가 물들고, 무산무협의 날씨는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협강 사이에는 하늘에 차오르는 물결이 일렁이며 변방에는 바람과 구름만 가득히 깔려 있다. 성도를 떠나 떠돌기를 벌써 두 해, 활짝 핀 한 떨기 국화를 바라보고 눈물을 뿌린다. 협곡을 외로운 배 한 척으로 내려오지만, 이것은 오히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묶어둘 따름이다. 일계(一繫)란 시종이라는 말이니, 마음은 한결같이 고향에 있으나 몸은 선상에 얽매여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몸이 외로운 배에 얽매여 있으므로 마음도 배에 얽매여 고향으로 향하지 못한다. 더욱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심사가 더욱 서글픈 이유는 백제성의 인가에서 겨울옷을 준비하느라 가위와 자로 옷감을 마르고 다듬이질 하는 소리이다.
『추흥』 제1수에서 앞 4개의 시구는 쓸쓸한 가을 풍경을 묘사하여 뒷부분의 시인의 적막한 심경을 일으켰다. 풍경의 묘사가 시인의 심경 토로와 곧바로 연결된다. 두보는 이 첫째 수에서 타향에서의 가을 정경을 묘사하여 서글픈 심사를 짙게 그려내고, 이를 이용하여 여덟 수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其二』
夔府孤城落日斜
(기부고성낙일사) 기부(夔府) 외로운 성에 낙조가 드리울 때
每依北斗望京華
(매의북두망경화) 그때마다 북두성이 가리키는 서울을 바라본다.
聽猿實下三聲淚
(청원실하삼성루) 잔나비의 연이은 세 번 울음소리에 눈물 절로 흘리고
奉使虛隨八月槎
(봉사허수팔월사) 사명 받들어 흘러온 빈 팔월 뗏목타고 바다로 나갔더니.
畵省香爐違伏枕
(화성향로위복침) 상서성 관부의 향로 아래에서 베개 베던 일 어기고는
山樓粉堞隱悲笳
(산루분첩은비가) 산성 누각의 성가퀴에 슬픈 호가 소리만 은은하다.
請看石上藤蘿月
(청간석상등라월) 바위 위 등나무 넝쿨에 걸린 달을 보라!
已映洲前蘆荻花
(이영주전로적화) 이미 강심주 앞 갈대꽃을 비추는구나!
삼성루(三聲淚)란, 파동 삼협의 원숭이 울음소리는 매우 구슬퍼서 그 울음소리가 세 번 나면 눈물이 옷을 적신다고 하는 옛말에서 따온 말이다.
봉사(奉使)는 왕명을 받들어 지방장관에게 사신의 임무를 띠고 나다니는 사자를 말한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매년 팔월이면 흘러오는 빈 뗏목을 보고, 양식을 싣고 그것을 타고 십여 일간 갔더니 어떤 부인이 베를 짜고 한 남자가 소를 끌고 있는 곳에 이르렀다. 나중에 엄군평(嚴君平)에게 들으니 그곳이 곧 은하수였다고 했다. 또 한나라 무제 때 장건(張騫)이 서역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의 원류를 탐색했다는 전설도 전한다.
여기서부터 사신 가는 것을 뗏목을 탄다고 표현하게 되었다. 한편, 향로(香爐)는 상서랑이 입직할 때 급시사 두 사람이 향로를 잡고서 임금을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두보는 일찍이 상서원외랑을 지냈다.
『추흥』 제2수는 두보가 기부의 저문 경치에 장안 쪽을 바라보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읊고 있다. 두보는 기성의 석양에 외로이 서서“나는 늘 북두를 의지하여 바라보고 있는데, 장안은 바로 북두성 아래에 있는 것을 아노라”라고 말하여,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서글퍼했다.
『其三』
千家山郭靜朝暉
(천가산곽정조운) 천 호가 사는 산마을에 아침 햇살 고요한데
日日江樓坐翠微
(일일강루좌취미) 날마다 강 다락 은은한 비취빛 속에 앉는다.
信宿漁人還泛泛
(신숙어인환범범) 하룻밤 배에 묵고도 어부는 여전히 둥실둥실 떠가고
淸秋燕子故飛飛
(청추연자고비비) 맑은 가을에 제비들은 예전처럼 날아다닌다.
匡衡抗疏功名薄
(광형항소고명부) 광형(匡衡)처럼 항소(抗疏)해도 공명을 못 이루었고
劉向傳經心事違
(유향전경심사위) 유향(劉向)처럼 경전에 주석하려 해도 마음과 일은 어그러진 신세.
同學少年多不賤
(동학소년다불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대부분 미천하지 않아
五陵衣馬自輕肥
(오릉의마자경비) 오릉 땅을 내달리는 화려한 말은 절로 가볍고 살쪄 있다.
광형(匡衡)은 한나라 사람으로 자는 치규(稚圭)다. 당시 일식과 지진의 천재지변이 일어나자 천자가 정치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 광형이 상소를 올리니, 임금은 그것을 보고 좋아하여 그를 광록대부 태자소부로 영전시켰다. 그러나 두보는 방관(房琯)의 일을 논하다가 오히려 임금의 비위를 거슬러 화주의 아전으로 좌천되었다.
유향(劉向)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자는 자정(子政), 본명은 갱생(更生)이다. 간의대부로 발탁되었다. 처음으로 《곡량전》을 학관의 교과목으로 설정하고 석거각(石渠閣)에서 오경을 강론했으며, 궁중의 비서를 교정하고 목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조정에서 경전을 강론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두보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한탄했다. 이 시에서 두보는 강 다락에 앉아 가을 경치를 보며 자신의 자신의 야박한 운명을 서글퍼했다.
산 성곽에 비치는 아침 햇살의 고요함은 맑은 가을 날씨를 말했고, 강 다락의 은은한 비췻빛을 매일 찾아와 앉아서 바라보는 것도 가을 새벽녘의 맑은 날씨 때문이다. 이 강 다락에서 두보는 고깃배가 두어 밤이 지나도록 강 위에 떠 있는 모습과 제비들이 사직단 앞을 떠나서 산등성이에 날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는 맑은 가을 날씨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고기잡이와 제비들이 자득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보도 자득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에서는 시상이 돌연 바뀐다.
두보는 지난날 상소를 올린 광형처럼 방관의 일을 논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좌천당한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운수는 기구하고 불운하기 짝이 없어 도저히 광형에 미치지 못한다는 처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옛날 유향이 궁중에서 경전을 강론했던 것처럼 하고 싶다고 꿈꾸어 보지만, 서울로 올라오라는 부름이 없으니 마음과 일은 서로 어긋나 있을 따름이라는 사실을 더욱 깨닫는다. 여기서부터 두보는 자신의 운수가 광형과 유향에게 미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 나와 함께 공부한 사람들에게도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해한다. 친구들은 모두 높은 벼슬에 올라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옷을 입고서 오릉의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데, 나는 어째서 여기 머물면서 홀로 강 위에서 쓸쓸한 생활로 지내야 하는가?
『其四』
聞道長安似奕棋
(문도장안사혁기) 듣자니 장안의 일은 바둑판 장기판 같다 하니
百年世事不勝悲
(백년세사불승비) 백 년 세상사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겠다.
王侯第宅皆新主
(왕후제택개신주) 왕후의 제택은 모두 새 주인이 들어앉았고
文武衣冠異昔時
(문무의관이석시) 의관을 차려입은 문무 관원은 옛날 사람이 아니라지.
直北關山金鼓振
(직북관산금고진) 기산 북방의 관산(關山)에 전투의 쇠북 소리 요란하고
征西車馬羽書遲
(정서거마우서지) 서쪽 토번 정벌하러 간 거마는 승전보보다 더디다.
魚龍寂寞秋江冷
(어룡적막추강냉) 어룡(魚龍)은 적막하고 가을 강이 차가운데
故國平居有所思
(고국평거유소사) 고향 옛집에서 평소 지내던 일이 그립다.
직북(直北)은 기산의 북방으로 농우·관보 지방에서 일어난 내란을 말하고 정서(征西)는 당시 서쪽에 토번의 난리가 그치지 않음을 말한다. 어룡 운운한 것은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에서 “어룡은 가을을 밤으로 삼는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용은 추분이 되면 하강하여 연못에서 칩복하여 잠을 자므로, 가을을 밤으로 삼는다고 했다. 또한 어룡은 진주(秦州)에 있는 어룡천(魚龍川)과 관련이 있다.
『추흥』 8수의 제4수는 장안의 변고를 읊어 애상의 느낌을 토로했다.
첫째 연은 장안의 난리를 언급했다. 바둑과 장기 같다는 표현은 이기고 지는 것을 번갈아 하고 있음을 말한다. 백 년은 인생 백 년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고, 당나라 고조의 개국에서부터 두보의 시기인 대력 연간까지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장안은 안록산의 난 이후 대종 때에는 주자(朱泚)가 난을 일으키고 토번이 또다시 함락시켜 천자는 몽진을 해야 했다. 이로써 장안에 사는 사람들은 바둑판처럼 승부가 엇갈려, 왕후장상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하여 집들은 모두 타인들의 소유가 되고 문무백관들은 안녹산의 난 등으로 군공을 세웠다며 부질없이 벼슬만 높아져서 지난날의 훈벌대신과는 다른 이들로 교체되었다. 더구나 하북에는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서쪽으로 토번을 정벌하러 떠난 군대로부터는 승리의 첩보가 더디 온다. 우서(羽書)는 군사문서로, 깃털을 달아 신속히 전할 것을 알렸기 때문에 우격(羽檄)·우모서(羽毛書)·계모서(鷄毛書)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승리의 첩보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하면 서글퍼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물며 강의 어룡도 잠자는 계절을 당했으니 장안의 태평 시절을 생각하면 수심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제4연은 두보가 장안에 평소 지내던 일을 상상한 것이다. 어룡은 추분이 지나면 가을 잠을 자는데, 여기서는 본래의 뜻과 지명의 뜻을 겸용했다. 고국은 오래된 성의 뜻으로, 보통은 고향과 같은 말이지만 여기서는 장안을 가리킨다. 평거는 평일 또는 평소의 뜻이다.
『其五』
蓬萊宮闕對南山
(봉래궁궐대남산) 봉래궁 궁전은 종남산을 마주하여
承露金莖霄漢間
(승로금경소한간) 이슬받이 구리기둥은 하늘 높이 솟아 있지.
西望瑤池降王母
(서망요지강왕모) 서쪽 요지(瑤池)에는 서왕모가 내려오고
東來紫氣滿函關
(동래자기만함관) 동에서 온 자주색 기운은 함곡관에 가득하다.
雲移雉尾開宮扇
(운이치미개궁선) 구름 모양의 치미선(雉尾扇)이 궁궐에 걷히고
日繞龍鱗識聖顔
(일요용린식성안) 햇살이 용 비늘에 어려 용안일 줄 알았다.
一臥滄江驚歲晩
(일와창강경세만) 장강에 병들어 누워 가을 깊어감에 놀라니
幾回靑顼點朝班
(기회청욱점조반) 몇 차례나 궁궐의 청욱문에서 조회에 참석했던가.
봉래궁은 당나라의 궁전 이름이다. 본래는 수나라 대명궁이었는데, 당고종 용삭 3년(661)에 봉래궁으로 바뀌었다. 당나라는 명황제 때부터 현원성조(玄遠聖祖) 즉 노자를 태청궁에 모셔 신선으로 삼았는데, 고종 용삭 3년(663)에는 대명궁을 봉래궁으로 바꿔, 신선을 더욱 숭배했다. 남산은 장안의 안산인 종남산(終南山)이다. 금경(金莖)은 한나라 무제가 제작한 승로반의 기둥이다. 승로반은 높이 20장(仗), 크기 일곱 아름이며 구리로 만들었다. 그 위에 사람 손바닥 모양의 이슬받이를 설치하여 받은 이슬을 옥가루와 함께 마셨는데 이를 금경로라고 한다.
요지(瑤池)와 왕모(王母)는 서왕모 고사를 말한다. 《열자》 『목왕』 편에 “주나라 목왕은 멀리 유람하여 곤륜산 위에 올라갔다가 마침내 서왕모에게 초대받아 요지 위에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한나라 무제 때 서왕모가 승화전에 강림했다는 전설도 있다. 자기관(紫氣關)은 노자의 고사를 말한다. 함곡관을 지키는 사람이 어느 날 바라보니 동쪽에서 자색 기운이 오고 있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푸른 소를 탄 노자였다고 한다. 치미선(雉尾扇)은 꿩 깃을 모아 만든 부채를 가리킨다. 은나라 고종은 장끼가 상서로운 새라 하여 복장에 장끼 깃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청욱문은 화성(상서성)의 문이다. 푸른색으로 문의 쇠사슬을 칠한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흥』 제5수는 장안의 고사를 인용하여 흥취를 일으키고 있으며, 끝 구절에 가서는 스스로 탄식하면서 옛일을 회고했다.
제1연(제1구와 제2구)은 당나라 천자가 봉래궁에 앉으면 종남산이 마주하는 광경과 이슬 받는 구리 소반이 공중에 높이 솟아 있는 광경을 그려 보였다. 제2연(제3구와 제4구)은 서쪽으로 서왕모가 요지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이는 듯하고 동쪽으로 노자가 함곡관에 들어오는 것이 보이는 듯한 상상의 광경을 그려 보였다. 혹자는 제3구는 현종이 촉 땅으로 피난 간 것을, 제4구는 숙종이 장안을 수복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제3연(제5구와 제6구)은 구름이 꿩깃으로 만든 부채를 따라 열리고 햇살이 용안을 둘러 있어서 신하들이 우러러보면 신선처럼 느껴지는 상황을 묘사했다.
제4연의 창강(蒼江)은 두보가 현재 있는 곳인 기주를 가리킨다. 세만(歲晩)은 가을이 깊어짐과 자신이 늙어 감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구는 “몇 번이나 내가 조회의 반열에 끼었던가”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은 조회의 반열에 끼었으리라” “언제나 돌아가서 조회의 반열에 낄 수 있을까”의 세 가지로 해석된다. 여기서는 첫 번째 해석을 따랐다. 점(點)은 외람되게 조정의 반열에 끼었다고 겸손해 한 말이다. 이 제4연에서 두보는 홀로 협강에 누워 있다가 문득 가을이 가까이 온 것에 놀라 탄식한다. 지난날 청욱의 상서성 문에서 조정의 신하들과 열을 지어 출석 점호를 했던 일이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기대할 수가 없다니! 이런 안타까움이 배어 나온다.
『其六』
瞿唐峽口曲江頭
(구당협구곡강두) 구당협 어구와 곡강의 언덕
萬里風烟接素秋
(만리풍연접소추) 만리 멀어도 풍광은 함께 가을에 이었다.
花萼夾城通御氣
(화악협성통어기) 화악(花萼)의 협성에는 천자의 기운이 통하더니
芙蓉小苑入邊愁
(부용소원입변수) 부용(芙蓉)의 작은 동산으로 변방의 근심이 전해든다.
珠簾繡柱圍黃鵠
(주렴수주위황곡) 주렴과 비단기둥에는 노란 고니새 문양으로 장식하고
錦纜牙檣起白鷗
(금람아장기백구) 비단 닻줄과 상아 돛대에는 흰 갈매기 날아오른다.
回首可憐歌舞地
(회수가련가무지) 머리 돌려보니 가련하여라, 춤추고 노래하던 그 땅이여
秦中自古帝王州
(진중자고제왕주) 진중(秦中)은 예부터 제왕의 고을이로다.
구당협구(瞿唐峽口)는 기주에 있고 곡강(曲江)은 장안에 있다. 서로 만 리 떨어져 있지만 똑같이 가을을 맞아 가을의 쓸쓸한 풍광을 띠게 되었으리라고 말하여, 장안의 일을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당협은 기주 동쪽 1리쯤에 있으며 옛 이름은 서릉협으로, 삼협의 문이었다. 혹자는 둘째 구의 만리를 성도에 있는 만리교(萬里橋)로 보아, 이 구는 현종이 촉 땅으로 몽진한 것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가을은 오행에서 백색에 해당하므로 소추(素秋)라 일컫는다.
화악협성(花萼夾城)은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713~741)에 화악루를 넓히고 협성을 쌓아 부용원에 편입시켰던 일을 가리킨다.
『추흥』 제6수는 곡강과 장안을 생각하면서 지었다.
현종(명황)은 오왕과 우애가 돈독하여 남쪽 궁궐에서 협성을 지나 화악상휘루(花萼相輝樓) 이르러서 함께 잠을 잤기 때문에 어기(御氣)가 통했다고 했다. 부용원은 곡강 가까이 있는데 이곳은 천자가 노닐던 곳이다. 그러나 관중의 잦은 난리 때문에 변방의 수심이 들었다고 했다. 혹자는 入을 사동의 동사로 보아 “부용원이 변방에 시름을 들게 했네”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해석을 따랐다.
화악루 가운데 있는 주렴과 기둥에는 노란 고니의 선회하는 듯한 형상이 그려져 있고, 주발은 구슬로 짜여 있으며 기둥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부용원 밖의 강에는 천자의 배가 있는데, 그 배의 비단 닻줄과 상아 돛대는 너무 빛이 나서 흰 물새가 놀라서 날아오를 정도였다. 이곳은 모두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었으나 오늘날은 불에 타 없어지고 부서지고 말았다. 이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슬프기만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안은 신경(神京)이요 제리(帝里)라고 한다. 그 화려함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장안을 생각하면 정말로 돌아가고 싶다! 두보는 이렇게 노래했다.
『其七』
昆明池水漢時功
(곤명지수한시공) 한나라 때 만들어 채워진 곤명지의 물
武帝旌旗在眼中
(무제정기재안중) 한무제의 깃발들이 눈앞에 삼삼하다.
織女機絲虛夜月
(직녀기사허야월) 직녀의 베 짜는 실들은 달빛 아래 부질없고
石鯨鱗甲動秋風
(석경린갑동추풍) 돌고래 비늘은 가을바람에 움찔거린다.
波漂菰米沈雲黑
(파표고미심운흑) 물결에 떠다니는 고미는 검은 구름인 양 잠겨 있고
露冷蓮房墜粉紅
(노냉연방추분홍) 이슬 차가운 연방(蓮房)은 붉은 분처럼 떨어진다.
關塞極天唯鳥道
(관새극천유조도) 관새는 하늘에 닿아 새들이나 넘나드니
江湖滿地一漁翁
(강호만지일어옹) 강호의 드넓은 땅에 떠도는 늙은 어부 신세다.
곤명지는 장안 서쪽의 못인데, 한나라 무제가 원수 2년(123)에 곤명의 연못과 똑같이 만들어 수전을 연습하게 한 데서 유래한다. 한나라는 연독국(身毒國 : 지금의 인도)과 교류하기 위해서 사신을 보냈으나 곤명이 이를 저지했다. 이에 무제는 곤명을 정벌하려고 곤명에 있는 못과 똑 닮은 모형의 못을 만들어 수전에 대비했다. 그리고 곤명지 양쪽에는 견우와 직녀를 상징하는 사람의 상을 세워 서로 마주 보게 했다. 또 한 곳에는 돌고래 상을 만들어 두었는데, 번개 치고 비가 오면 돌고래는 항상 지느러미와 꼬리를 꿈틀거리면서 울어댔다고 한다.
고(菰)는 장(蔣), 또는 교백(퍸白)이라고도 하는 물풀이다. 어린아이 팔뚝처럼 흰 대가 나오는 것은 고수(菰手), 검은 대가 올라오는 것은 오울(烏鬱) 또는 교울(퍸鬱)이라고 하며, 단단한 잎을 가진 것은 고장(菰蔣)이라고 한다. 가을에 열매를 맺고 메마르게 되는데 이 열매를 고미(菰米)라고 했다.
제3연의 침운흑(沈雲黑)과 타분홍(墜粉紅)은 沈雲/黑과 墜粉/紅으로 보느냐 沈/雲黑과 墜/粉紅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앞의 경우는 ‘낮게 드리운 구름이 검다’ ‘떨어진 분가루가 붉다’이고, 뒤의 경우는 ‘구름이 검게 드리웠다’ ‘분가루가 붉게 떨어졌다’이다. 의미는 서로 같다. 또 제3연에 대해서는 고미나 연방을 따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부하던 옛날 장안의 번성을 노래했다고 볼 수도 있고, 난리로 인해 고미나 연방을 딸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노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앞의 견해를 따랐다.
관새(關塞)는 백제성으로 보는 설, 검각(劒閣)으로 보는 설, 검각(劒閣)과 진새(秦塞)를 겸한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추흥』 제7수는 곤명지의 아름답던 경관을 다시 볼 수 없음을 탄식했다.
곤명지는 한나라 때 만든 것이기에 오늘날까지도 한무제의 깃발들이 펄럭거리는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곤명지 곁에 서 있는 직녀상은 베를 짤 수 없기에 달빛 아래 부질없고, 못에 새겨진 돌고래는 영험이 있어 가을바람에 비늘이 움직이는 듯하다. 물 위에 줄 열매가 떠다니고 연방(연밥 혹은 연의 꽃잎)에 이슬이 맺힌 모습은 태평 시절의 가을을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 두보가 있는 곳은 장안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 끝에 닿을 듯이 높이 솟은 험한 길을 내려가 곤명지를 눈으로 볼 수가 없다니! 그저 물줄기를 따라 파협으로 내려가면 강과 호수가 널려 있을 테니 그러면 내 마음껏 정처 없이 강 위를 떠도는 어부처럼 자유로이 오가리라. 두보는 이렇게 쓸쓸하게 스스로를 위로한 것이다.
『其八』
昆吾御宿自逶迤
(곤오어숙자위리) 곤오산과 어숙천 지나 구불구불 길을 가면
紫閣峰陰入渼陂
(자각봉읍입미피) 자각봉 그늘은 미피(渼陂)에 반이나 비쳤다.
香稻啄餘鸚鵡粒
(향도탁여앵무립) 앵무새들이 쪼아 먹다 남긴 향기로운 벼의 알곡
碧梧棲老鳳凰枝
(벽오처노봉황지) 늙은 봉황이 깃드는 푸른 오동나무 가지
佳人拾翠春相問
(가인습취춘상문) 가인들은 비취 새 깃털 주우며 봄 인사하고
仙侶同舟晩更移
(선려동주만경이) 신선들과 나란히 배를 타고 돌아갈 줄 모른다.
綵筆昔曾干氣象
(채필석증간기상) 오색필은 옛적에 하늘의 기상마저 움직였다지만
白頭吟望苦低垂
(백두음망고저수) 백두음 읊으며 괴로운 마음 고개를 떨군다.
곤오(昆吾)와 어숙(御宿)은 한나라 무제가 함양의 상림원 남쪽을 멀리 터서 이르게 했던 곳의 지명이다. 자각봉(紫閣峰)은 종남산 봉우리 중의 하나다. 미피(渼陂)는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戶縣으로 종남산에서 발원하여 흐른 물이 고여 조성된 호수 이름이다. 이상은 모두 장안에 들어가는 곳에 있다. 둘째 구의 入의 주체를 사람으로 보아 ‘자각봉이 어두울 때 미피에 들었다’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통설에 따랐다.
제2연(제3구와 제4구)에 대해서는 “향기로운 쌀은 앵무새 쪼고 남은 낟알이고, 푸른 오동은 봉황새 깃들던 늙은 가지”라는 뜻의 과거에 본 실경(實景)을 묘사한 것으로 보았다. 벽오지(碧梧枝)와 홍도립(紅稻粒)이라 쓴 것은 평탄한 대우(對偶)를 바꾸어 구를 복잡하게 만든 도삽법(倒揷法)이다. 단, “앵무새는 향기로운 쌀을 쪼아 먹었고, 봉황새는 푸른 오동나무에 늙었네”라고 풀이해서 우의(寓意)를 담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습취(拾翠)는 원래 푸른 깃털을 줍는 것이라는 뜻인데, 화초를 따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춘상문(春相問)은 작약 같은 것을 서로 주는 것을 말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問)은 물건을 준다는 뜻이 된다. 선려(仙侶)는 이응(李膺)과 곽태(郭泰)[곽임종(郭林宗)]가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신선으로 여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장안에서 지낼 때 우애가 깊었던 친구를 가리킨다.
채필(綵筆)은 강엄(江淹)이 꿈에 어떤 사람에게서 오색의 붓을 받은 이후 문장이 나날이 발전했다고 한 고사에서 온 말로, 두보 자신이 옛날에는 문장이 뛰어났음을 말한 것이다. 기상은 혹은 ‘시 짓는 기상’이나 ‘산수의 기상’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통설을 따랐다.
『추흥』 제8수는 장안에 있는 미피의 경치를 상상하면서 지었다.
두보는 장안에서 멀리 있는 미피를 유람할 때 곤오산과 어숙천을 경유했는데, 그곳에 이르면 산봉우리 그림자가 미피에 드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2연은 미피의 화려한 경치를 추억했고, 제3연은 미피에서의 유람이 매우 성대했음을 회상했다. 봄이 되니 서로 찾아 노니는 사람이 많고 늦도록 집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잊었다고 말한 것이다. 두보는 잠삼(岑參) 형제와 미피에서 노닐면서 시 두 수를 지은 바 있다. 『여원소부연미피(與源少府宴渼陂)』와 『성서피범주(城西陂泛舟)』가 바로 그 시들이다. 이 시들은 두보가 벼슬살이를 하기 전에 지은 것들인데, 당시 귀인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릴 만큼 뛰어났다. 제4연은 한탄의 마음을 토로했다. 나는 당시 문장을 지으면 하늘의 기상도 움직일 만했거늘, 지금은 성성한 백발로 협중에 머물면서 미피를 그리워하면서 이 시를 읊고 있다니!
이상에서 보았듯이 두보는 『추흥』 8수의 앞 3수에서는 기주의 풍경을 보고 감흥을 일으켰고, 뒤의 5수에서는 아름답고 화려했던 장안과 미피의 풍광을 상상하거나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벼슬길에 들어서서 조반에 참여하던 때의 일을 그리워하는 하면서 백발이 성성한데도 타향에 있으면서 뜻을 펴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했다.
심경호(沈慶昊)
1955년 생 현 고려대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https://kydong77.tistory.com/18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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