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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 제5권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
○척독(尺牘)
1 자서(自序)
2 경지(京之)에게 답함
3 두 번째 편지
4 세 번째 편지
5 중일(中一)에게 보냄
6 두 번째 편지
7 세 번째 편지
8 창애(蒼厓)에게 답함
9 두 번째 편지
10 세 번째 편지
11 네 번째 편지
12 다섯 번째 편지
13 여섯 번째 편지
14 일곱 번째 편지
15 여덟 번째 편지
16 아홉 번째 편지
17 설초(雪蕉)에게 보냄
18 치규(穉圭)에게 보냄
19 중관(仲觀)에게 보냄
20 어떤 이에게 보냄
21 중옥(仲玉)에게 답함
22 두 번째 편지
23 세 번째 편지
24 네 번째 편지
25 북쪽 이웃의 과거 급제를 축하함
26 사강(士剛)에게 답함
27 영재(泠齋)에게 답함
28 두 번째 편지
29 아무개에게 답함
30 성지(誠之)에게 보냄
31 석치(石癡)에게 보냄
32 두 번째 편지
33 세 번째 편지
34 네 번째 편지
35 어떤 이에게 보냄
36 아무개에게 보냄
37 두 번째 편지
38 군수(君受)에게 답함
39 중존(仲存)에게 보냄
40 경보(敬甫)에게 보냄
41 두 번째 편지
42 원심재(遠心齋)에게 보냄
43 초책(楚幘)에게 보냄
44 성백(成伯)에게 보냄
45 두 번째 편지
46 종형(從兄)에게 올림
47 두 번째 편지
48 대호(大瓠)에게 답함
49 두 번째 편지
50 세 번째 편지
51 담헌(湛軒)에게 사과함
자서(自序)
- 원문 60자 빠짐 - ‘우자(右者)는 삼가 아룁니다’라는 의미의 ‘우근진(右謹陳)’을 들어 타매(唾罵)하고 있다. 이른바 ‘우근진’이란 말이 저열한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세상에 붓대를 쥐고 글줄이나 쓴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그들의 글을 책으로 간행한 것들을 보면 모두가 가득 늘어만 놓은 음식의 찌꺼기처럼 시금떨떨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왜 구태여 문서의 서두어나 말을 꺼낼 때 사용하는 상투어만을 나무라는지 모를 일이다. 제전(帝典 《서경(書經)》 요전(堯典) · 순전(舜典))의 ‘월약계고(曰若稽古)’나 불경(佛經)의 ‘여시아문(如是我聞)’도 바로 지금의 ‘우근진’과 같은 성격의 투식어일 뿐이다.
특히 봄 숲에서 새 울음을 들으면 소리마다 각기 다르고 해시(海市)에서 보물을 둘러보면 하나하나 다 새로우며, 연잎 위의 이슬은 본디 둥글고 초(楚) 나라의 박옥(璞玉)은 깎지 않은 채로 있다. 이것이 바로 척독가(尺牘家)들이 《논어(論語)》를 조술(祖述)하고 풍아(風雅 《시경(詩經)》)로 거슬러 올라간 점이다. 사령(辭令)으로 말하면 자산(子産)과 숙향(叔向)을 본받고 장고(掌故)로 말하면 《신서(新序)》와 《세설(世說)》을 본받았다. 확실하고 적절한 점으로 말하면 양책(良策)을 올린 가 태부(賈太傅 가의(賈誼))나 정사(政事)를 주관하던 육 선공(陸宣公 육지(陸贄))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들은 일단 고문사(古文辭)라 하면 단지 서(序)와 기(記)가 으뜸이 되는 줄만 알아서, 거짓으로 글을 짓고 부화한 표현들을 끌어다 쓰고는, 정작 이러한 글들에 대해서는 소가(小家)의 묘품(妙品)이라고 배척하여, 밝은 창가의 조촐한 궤석(几席)에서 잠이 깬 뒤 베개 고이고 읽을 따름이다.
무릇 공경은 예(禮)를 갖추어야 확립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엄숙하고 근엄하게만 대하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가 아니다. 더 나아가 큰 손님이라도 맞이하듯 도포를 떨쳐입고는 대충 안부나 묻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버이를 공경한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예를 안다고는 할 수 없다. 기쁜 안색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곁에서 어버이를 봉양하는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빙그레 웃으며 “아까 한 말은 농담이다.” 한 것은 공자다운 멋진 해학이요, “아내가 ‘닭이 울었다’ 하자, 남편은 ‘아직 어두운 새벽이다’ 말하네.” 한 것은 시인(詩人)의 편지인 셈이다.
우연히 상자 속을 뒤지다가, 추운 겨울을 맞아 창구멍을 바르려던 참에 옛날에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의 부본(副本)으로 쓸데없는 것들을 찾아내었는데, 모두 50여 건이었다. 어떤 것은 글자가 파리 대가리만 하게 작고 어떤 것은 종이가 나비 날개마냥 얇다. 어떤 것은 장독 덮개로 쓰기에 넉넉하고 어떤 것은 농을 바르기에 부족하다. 이에 한 권으로 베껴 내어 방경각(放瓊閣)의 동루(東樓)에 보관한다.
임진년(1772) 맹동(孟冬) 상한(上澣)에 연암거사(燕巖居士)는 쓴다.
[주D-001]문서의 …… 상투어 : 앞의 ‘우근진(右謹陳)’은 관청에 청원하는 문서, 즉 소지(所志)의 서두어이다. 다음에 나오는 ‘옛일을 상고하건대’라는 뜻인 월약계고(曰若稽古)나 ‘이와 같이 내가 들었노라’라는 뜻인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서경》이나 불경에서 말을 꺼낼 때 사용하는 상투어이다.
[주D-002]해시(海市) : 일반적으로는 맑은 날 바다 한가운데 나타난다는 화려한 성시(城市), 즉 신기루(蜃氣樓)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해안의 성시로 보아야 할 듯하다. 우상전(虞裳傳)에 소개된 이언진(李彦瑱)의 시 해람편(海覽篇)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각종 보물들이 거래되고 있음을 노래하면서 “페르시아 상인들도 눈이 부셔하고 절강의 성시들도 빛이 바랬네.〔波斯胡目眩 浙江市色奪〕”라고 하였듯이, 중국 동남 해안의 성시들에서는 각종 보석 거래를 비롯하여 대외무역이 매우 활발했다.
[주D-003]초(楚) 나라의 박옥(璞玉) : 초 나라 사람 화씨(和氏)가 얻었다는 다듬어지지 않은 옥덩어리로, 화씨벽(和氏璧)이라고도 한다.
[주D-004]이것이 …… 점이다 : 척독(尺牘)이 문학적으로 볼 때, 《논어》나 《시경》의 참신하면서도 진솔한 문답체 표현 방식을 계승했다는 뜻이다. 그 좋은 예가 자서의 후반에 인용되어 있다.
[주D-005]사령(辭令)으로 …… 본받고 : 사령은 말로써 응대(應對)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에서는 특히 사령을 잘해야 한다. 정(鄭) 나라가 형법(刑法)의 조문을 새긴 정(鼎)을 주조하자, 진(晉) 나라 숙향(叔向)이 정 나라 공자(公子) 자산(子産)에게 서신을 보내어 형벌로써 백성을 다스리려 하는 것을 힐난했으며, 자산은 이러한 숙향의 서신을 받고 그의 충고에 감사하는 답신을 보냈다. 《春秋左氏傳 昭公 6年 3月》 이는 서신을 통해 사령을 잘한 예이다.
[주D-006]《신서(新序)》와 《세설(世說)》 : 둘 다 한(漢) 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책이다. 《신서》는 춘추전국 시대의 고사를 모아 놓은 책이다. 《세설》은 실전(失傳)되어 내용을 알 수 없는데, 후세의 《세설신어(世說新語)》는 이 책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주D-007]양책(良策)을 …… 아니다 : 가의(賈誼)의 상소(上疏)나 육지(陸贄)의 주의(奏議)에 못지않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가의는 문제(文帝)에게 치안책(治安策)을 올렸으며, 당 나라 때 육지는 덕종(德宗)에게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는 주의를 올려 국정을 잘 보좌하였다.
[주D-008]소가(小家) : 대가(大家)의 반대로, 시시한 군소 작가들이란 뜻이다.
[주D-009]격식에 …… 봉양하는 : 원문은 ‘左右無方’인데,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부모를 섬길 때에는 “곁에서 봉양하는 데 격식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左右就養無方〕”고 하였다.
[주D-010]빙그레 …… 것 : 공자가 무성(武城) 지방에 가서 백성들이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하며 넌지시 조롱하였다. 무성의 수령인 제자 자유(子游)가 ‘군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예전에 공자가 한 말을 들어 따지자, 공자가 제자들을 보고서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다.” 하였다. 《論語 陽貨》
[주D-011]아내가 …… 말하네 : 《시경(詩經)》 계명(鷄鳴)의 첫 구절로서, 아내가 닭이 울었으니 일하러 나가라고 하자 남편이 나가기 싫어 아직 어두운 새벽이라고 둘러대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주자(朱子)는 이 시를 부부가 서로 권계(勸戒)한 것이라고 주해(註解)하였으나, 연암은 부부가 일상적인 집안일로 문답을 나눈 시로 보았다.
[주D-012]시인(詩人) : 계명(鷄鳴)을 지은 옛 시인을 가리킨다.
[주D-013]종이가 …… 얇다 : 원문은 ‘紙如蝶翅’인데, 왕안석(王安石)이 나비를 노래한 시에 “날개가 가루보다 가볍고 비단보다 얇다.〔翅輕於粉薄於繒〕” 하였다.
[주D-014]장독 …… 넉넉하고 : ‘장독 덮개〔覆瓿〕’란 가치가 없는 저작을 가리키며, 주로 자신의 저작에 대한 겸양의 말로 쓰인다. 한(漢) 나라 때 유흠(劉歆)이 양웅(揚雄)의 태현(太玄)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장독 덮개로나 쓸 것이라고 풍자한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경지(京之)에게 답함
작별할 때의 말씀이 여전히 잊히지 않지만, 이른바 ‘그대를 천리까지 전송해도 한 번 이별은 종당 있기 마련’인 것을 어찌하오리까. 다만 한 가닥 희미한 아쉬움이 하늘하늘 마음에 얽혀 있어, 마치 공중의 환화(幻花)가 어디선가 날아왔다가 사라지고 나서도 다시 하늘거리며 아름다운 것과 같습니다.
예전에 백화암(白華菴)에 앉았노라니, 암주(菴主)인 처화(處華) 스님이 먼 마을에서 바람 타고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는, 그의 비구(比丘)인 영탁(靈托)에게 게(偈)를 전하기를,
“ ‘탁탁’ 치는 소리와 ‘땅땅’ 울리는 소리 중에 어느 것이 먼저 들렸겠느냐?”
하니, 영탁이 손을 맞잡고 공손히 대답하기를,
“먼저도 아니고 나중도 아닌, 바로 그 사이에 들었습니다.”
하였습니다.
어제 그대가 여전히 정자 위에서 난간을 따라 배회하고 있을 때, 이 몸도 또한 다리 가에서 말을 세우고 있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아마 1리쯤 되었지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던 곳도 역시 바로 ‘그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주D-001]작별할 …… 않지만 : 원문은 ‘別語關關’인데, ‘關關’은 《시경》 관저(關雎)에 나오는 표현으로, 원래는 새들이 서로 짝을 그리워하면서 울음소리로 화답함을 뜻한다.
[주D-002]그대를 …… 마련 : 멀리까지 전송할 것이 없다고 상대방을 위로하는 말로, 전송하는 사람을 만류할 때 흔히 쓰는 속담이다. 《수호전(水滸傳)》에서 무송(武松)이 송강(宋江)을 만류하며 “형님은 멀리 전송할 것 없소이다. 속담에 ‘그대를 천리까지 전송해도 끝내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고 했소.〔尊兄不必遠送 常言道 送君千里 終須一別〕”라고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두 번째 편지
부지런하고 정밀하게 글을 읽기로는 포희씨(庖犧氏)와 대등할 이 뉘 있겠습니까. 글의 정신과 의태(意態)가 우주에 널리 펼쳐 있고 만물에 흩어져 있으니, 우주 만물은 단지 문자나 글월로 표현되지 않은 문장입니다.
후세에 명색이 부지런히 글을 읽는다는 자들은 엉성한 마음과 옅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낡은 종이 사이에 시력을 쏟아 그 속에 있는 좀오줌과 쥐똥이나 찾아 모으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술찌끼를 잔뜩 먹고 취해 죽겠다.” 하는 격이니 어찌 딱하지 않겠습니까.
저 허공 속에 날고 울고 하는 것이 얼마나 생기가 발랄합니까. 그런데 싱겁게도 새 ‘조(鳥)’라는 한 글자로 뭉뚱그려 표현한다면 채색도 묻혀 버리고 모양과 소리도 빠뜨려 버리는 것이니, 모임에 나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끝에 새겨진 것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습니까.
더러는 늘 하던 소리만 하는 것이 싫어서 좀 가볍고 맑은 글자로 바꿔 볼까 하여 새 ‘금(禽)’ 자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글만 읽고서 문장을 짓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병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로 그늘진 뜰에 철 따라 우는 새가 지저귀고 있기에,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마구 외치기를,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날아갔다 날아오는’ 글자요,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월이다. 다섯 가지 채색을 문장(文章)이라 이를진대 문장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오늘 나는 참으로 글을 읽었다.” 하였습니다.
[주D-001]시골 …… 것 : 나라에서 경로(敬老)의 뜻으로 노인들에게 하사하던 구장(鳩杖)을 가리킨다. 지팡이 끝에 비둘기 모양을 새겼다.
[주D-002]다섯 …… 이를진대 : 다섯 가지 채색은 청(靑) · 황(黃) · 적(赤) · 백(白) · 흑(黑)을 가리킨다. 문장(文章)이란 말에는 원래 무늬나 문채(文彩)라는 뜻이 있다. 순자(荀子)의 부(賦)에 “다섯 가지 채색을 갖추어야 문장이 이루어진다.〔五采備而成文〕”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세 번째 편지
그대가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를 읽었으되 그 글만을 읽었을 뿐 그 마음은 읽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고서 성벽 위에서 전투를 관망하던 장면이나 생각하고, 자객열전(刺客列傳)을 읽고서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치던 장면이나 생각하니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늙은 서생들이 늘 해 대는 케케묵은 이야기로서, 또한 ‘살강 밑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마음을 간파해 낼 수 있습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나비가 그만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하지요.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입니다.
[주D-001]성벽 …… 장면 : 항우(項羽)의 초(楚) 나라 군대가 거록(鉅鹿)에서 진(秦) 나라 군대를 무찌를 때 그 기세에 눌린 다른 제후의 장수들은 성벽 위에서 전투를 관망하고만 있었다.
[주D-002]고점리(高漸離)가 …… 장면 : 위(衛) 나라 출신의 자객인 형가(荊軻)는 연(燕) 나라에 왔을 때 축(筑)을 잘 치는 고점리와 절친하여, 술이 취하면 고점리가 치는 축에 맞추어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 진 시황(秦始皇) 암살 임무를 띠고 떠나기에 앞서 역수(易水)에서 형가가 고점리가 치는 축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니 전송 나온 자들이 모두 감동하였다고 한다. 형가가 암살에 실패하고 죽은 뒤 고점리는 진 시황 앞에 불려 와 축을 치다가, 축을 던져 그를 죽이려 했으나 역시 실패하고 피살되었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중일(中一)에게 보냄
힘으로써 남을 구제하는 것은 ‘협(俠)’이라 이르고, 재물로써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고(顧)’라 합니다. 고(顧)를 갖추면 명사(名士)가 되거니와, 협(俠)을 갖추어도 이름이 드러나 후세에 전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협과 고를 겸하면 ‘의(義)’라 하나니,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찌 진실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무릇 예(禮)란 제멋대로 행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요, 의(義)는 제멋대로 결단함이 없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급하게 의에 따라 선(善)을 행하다 보면, 설령 제멋대로 행하고 결단을 내린 것이기는 하지만, 착한 아들이라도 부모에게 여쭙지 못하고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고, 어진 부모라도 이를 금지하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옛날에 한(漢) 나라 급암(汲黯)은 황제의 조서를 사칭하고 창고 곡식을 풀어 하남(河南)의 주린 백성을 구제했고, 송(宋) 나라 범요부(范堯夫)는 보리 싣고 가던 배를 석만경(石曼卿)에게 넘겨준 일이 있었습니다. 무릇 황제의 조서를 사칭한 것은 사형죄에 해당하는 것이요, 아버지 모르게 남에게 주는 것은 예가 아닙니다. 임금과 아비는 지극히 존엄한 분이지만, 의(義)에 비추어 급히 행해야 할 경우에는 부월(鈇鉞)의 처벌도 피하지 않았고 혼자 결단하여 행하는 죄도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제(武帝)는 총명한 군주라는 명성을 잃지 않았고 범 문정(范文正 범중엄(范仲淹))은 어진 아비가 되었으며, 장유(長孺 급암(汲黯))는 곧은 신하가 되는 데 지장이 없었고 요부(堯夫)는 좋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준(俊)은 친상(親喪)을 당한지라, 친한 친구가 이처럼 측석(側席)하고 밥을 배부르게 먹지 못할 때이니, 단지 하남(河南)의 굶주림과 석만경의 다급한 사정에 비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대가 힘을 다해 구제해 준다면, 이는 창고 곡식을 풀고 배의 보리를 넘겨준 행동만큼 멋대로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D-001]한(漢) 나라 …… 구제했고 : 한 나라 무제(武帝) 때에 하내(河內)의 민가 천여 호가 불에 타는 큰 화재가 발생하자 급암(汲黯)을 사자로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러 보냈다. 급암이 하내의 상황을 보니, 백성들이 가뭄과 홍수로 만여 호가 굶주리고 있었으므로 임의로 황제의 명을 사칭하고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한 후 무제에게 이를 보고하자 무제가 훌륭히 여겨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연암집》에는 하내(河內)가 하남(河南)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남은 하외(河外)에 속한다. 《漢書 卷50 張馮汲鄭傳》
[주D-002]송(宋) 나라 …… 일 : 요부(堯夫)는 범순인(范純仁)의 자(字)이고 만경(曼卿)은 석연년(石延年)의 자이다. 범순인이 젊었을 때 그의 부친 범중엄(范仲淹)의 심부름으로 소주(蘇州)로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친의 친구인 석만경(石曼卿)을 만났는데, 석만경이 장례 비용이 없어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배로 싣고 온 보리를 모두 그에게 주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범중엄에게 이 일을 말하자 범중엄이 기뻐했다고 한다. 《山堂肆考 卷102》
[주D-003]준(俊) : 두 번째 편지를 보면 ‘준(俊)’은 바로 ‘사준(士俊)’으로, 원문에 ‘士’ 자가 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주D-004]측석(側席) : 자신의 좌석만 남기고 내객(來客)을 맞을 좌석은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기》 곡례 상에 “우환이 있는 사람은 측석하고 앉는다.〔有憂者 側席而坐〕”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두 번째 편지
그대가 사준(士俊)에게 돈 백 금(金)을 주면서 장사를 하라 했다니, 어찌 그리 적게 주었습니까. 결국에는 사준이 빈손으로 돌아올 것이니, 그대는 그때 가서 날더러 말을 아니해 주었다고 허물일랑 마시오.
무릇 한 집의 살림살이를 잘 다스리는 것이 천하의 정사를 다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탕왕(湯王)의 땅은 사방 칠십 리요 문왕(文王)은 백 리의 땅으로 일어났는데, 맹자는 이를 구실로 삼아 걸핏하면 은 나라와 주 나라의 예를 끌어와 당시의 임금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등(滕) 나라로 말하자면 ‘임금을 제대로 만나 도를 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이를 만했습니다. 등 나라 문공(文公) 같은 천하의 어진 임금이 군주로 있고, 허행(許行)과 진상(陳相) 같은 당시의 호걸이 백성으로 있었지만, 그런데도 등 나라를 떠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형세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제(齊) 나라와 위(魏) 나라의 임금은 지극히 불초하지만, 그래도 못내 돌아보고 서성대며 차마 떠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토지가 넓고 인민이 많고 무기가 날카롭고 모든 물자가 풍부하여 그 형세를 이용하면 공(功)을 이루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맹자의 말에 “제 나라를 가지고서 왕천하(王天下)하기란 손바닥 뒤집기나 마찬가지이다.” 하고, 등 나라에 대해서는 “이리 잘라 저리 맞추면 거의 사방 오십 리가 될 것이니 큰 나라를 만들 수가 있다.” 하였던 것입니다. 스승의 도는 제 나라를 훨씬 높게 보고 등 나라를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닌데도 때에 따라 맹자가 굴신(屈伸)의 차이를 보인 것은 대국과 소국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요, 등 나라 땅이 은 나라나 주 나라보다 훨씬 작은 것이 아닌데도 맹자의 말과 실제 행동이 서로 어긋난 것은 삼대(三代)와 전국(戰國)이라는 고금(古今)의 시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D-001]백 금(金) : 금(金)은 화폐 단위로서 시대마다 값이 다르다. 여기서 백 금은 엽전 백 냥을 가리킨다. 《열하일기》 옥갑야화(玉匣夜話)에 허생(許生)이 도적 두목에게 “천 명이 천 금을 약탈하면 각자의 몫이 얼마냐?〔千人掠千金 所分幾何〕”라고 묻자, 도적 두목은 “한 사람당 한 냥일 뿐이오.〔人一兩耳〕”라고 답하였다.
[주D-002]탕왕(湯王)의 …… 설득했습니다 : 《맹자》 공순추 상(公孫丑上)에 “왕자(王者)는 대국(大國)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 임금은 칠십 리의 땅으로 왕자가 되었고 문왕은 백 리의 땅으로 왕자가 되었다.〔王不待大 湯以七十里 文王以百里〕”고 하였다.
[주D-003]허행(許行)과 진상(陳相) : 허행은 농가(農家)에 속하는 학자로 초 나라 사람인데, 등 문공이 인정(仁政)을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 등 나라로 귀의하였다. 진상은 초 나라 사람 진량(陳良)의 제자였으나, 역시 등 문공을 흠모하여 등 나라로 귀의한 뒤 허행의 학설에 공감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맹자는 중원(中原)으로 와서 유교를 배운 진량에 대해서만 ‘호걸지사(豪傑之士)’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주D-004]제 나라를 …… 마찬가지이다 : 《맹자》 등문공 상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5]이리 …… 있다 : 《맹자》 등문공 상에 나오는 말이다. 단 《맹자》에는 ‘큰 나라〔大國〕’가 아니라 ‘좋은 나라〔善國〕’를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주D-006]스승의 도 : 맹자는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묻는 등 문공에게 정전법(井田法)과 학교 제도를 시행하는 등 선정(善政)을 베풀면 “왕자가 나오면 반드시 와서 그 법을 본받을 터이니, 이는 왕자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有王者起 必來取法 是爲王者師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그러므로 여기서 ‘스승의 도’란 장차 왕도(王道)로 다스려질 나라의 모범이 되는 통치 방법을 뜻한다. 제 나라와 같은 대국뿐 아니라 등 나라와 같은 소국도 이러한 ‘스승의 도’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주장이다.
[주D-007]굴신(屈伸) : ‘진퇴(進退)’와 같은 말이다. 벼슬에 나아가 포부를 펴거나, 아니면 물러나 은둔하는 것을 가리킨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세 번째 편지
어린애들 노래에 “도끼를 휘둘러 허공을 치는 것이 바늘을 가지고 눈동자를 겨누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였고, 또 속담에 “정승을 사귀려 말고 네 몸가짐부터 신중히 하라.” 하였으니, 그대는 아무쪼록 명심하시오. 차라리 약하면서도 굳센 편이 낫지 용감하면서도 뒤가 물러서는 아니 되오. 하물며 외세(外勢)란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주D-001]외세(外勢) : 타인의 권세(權勢)를 말한다. 《관자(管子)》 팔관(八觀)에 “권력을 쥔 자가 그의 재능과 무관하게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 백성들은 효제충신을 등지고 외세를 구한다.〔權重之人 不論才能 而得尊位 則民倍本行而求外勢〕”고 하였다. 외세를 구한다는 것은 외국의 세력과 결탁하여 사욕을 채우려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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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애(蒼厓)에게 답함
보내 주신 문편(文編)을 양치질하고 손을 씻고서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읽고 나서 말하오. 그대의 문장이 몹시 기이하다 하겠지만, 사물의 명칭이 빌려 온 것이 많고 인용한 전거가 적절치 못하니 이 점이 백옥의 티라 하겠기에 노형을 위하여 아뢰는 바요.
문장을 짓는 데에는 법도가 있으니, 이는 마치 송사하는 자가 증거를 지니고 있고 장사치가 물건을 들고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소. 아무리 사리(辭理)가 분명하고 올바르다 하더라도, 다른 증거가 없다면 어찌 이길 수가 있겠소. 그러므로 문장을 짓는 사람은 경전을 이것저것 인용하여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오. 《대학(大學)》은 성인(聖人)이 짓고 현인(賢人)이 이를 계술(繼述)하였으니, 이보다 더 미더울 게 없소. 그런데도 《서경(書經)》의 강고(康誥)에서 ‘극명덕(克明德)’을 인용하고 또 제전(帝典 요전(堯典))에서 ‘극명준덕(克明峻德)’을 인용하여 명명덕(明明德)의 뜻을 밝히고 있소.
관호(官號)나 지명은 남의 것을 빌려 써서는 아니 되는 것이니, 나무를 지고 다니면서 소금을 사라고 외친다면 하루 종일 길에 다녀도 장작 한 다발 팔지 못할 것이오. 마찬가지로 황제가 살고 있는 곳이나 제왕의 도읍지를 다 ‘장안(長安)’이라 칭하고 역대의 삼공(三公)을 다 ‘승상(丞相)’이라 부른다면, 명칭과 실상이 혼동되면서 도리어 속되고 비루한 표현이 되고 마오. 이는 곧 좌중을 놀라게 한 가짜 진공(陳公)과 얼굴 찌푸림을 흉내 낸 가짜 서시(西施)의 꼴과 같소. 그러므로 문장을 짓는 사람은 아무리 명칭이 비루해도 이를 꺼리지 아니하고, 아무리 실상이 속되어도 이를 은폐하지 말아야 하오. 《맹자》에 “성은 다 같이 쓰는 것이지만 이름은 독자적인 것이다.”라고 했듯이, 또한 “문자는 다 같이 쓰는 것이지만 문장은 독자적인 것이다.”라고 하겠소.
[주C-001]창애(蒼厓) : 유한준(兪漢雋 : 1732~1811)의 호이다. 유한준은 진사 급제 후 음직(蔭職)으로 군수 · 부사 · 목사 · 형조 참의 등을 지냈다. 당대의 문장가로 평판이 높았으며, 젊은 시절에 연암과 절친하였으나, 나중에 《열하일기》를 비방하고 산송(山訟)을 벌이는 등 사이가 극히 나빠졌다. 박종채(朴宗采)의 《과정록(過庭錄)》에 의하면, 바로 이 편지로 인해 유한준이 연암에 대해 유감을 품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D-001]문편(文編) : 책으로 엮은 글을 말한다.
[주D-002]《대학(大學)》은 …… 있소 : 주자(朱子)는 《대학》을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나누고, 경(經)은 공자의 말을 증자(曾子)가 조술(祖述)하고, 전(傳)은 증자의 뜻을 그의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보았다. 《서경》의 강고와 요전에서 인용한 말은 전(傳)의 제 1 장에 나오는데, 이는 《대학》의 경(經)의 첫 문장 즉,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주D-003]좌중을 …… 진공(陳公) : 진공은 전한(前漢) 말의 인물인 진준(陳遵)을 가리킨다. 자는 맹공(孟公)이다. 당시에 열후(列侯) 가운데 진준과 성(姓)과 자(字)가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진준이 남의 집을 방문할 때 언제나 진맹공(陳孟公)이 왔노라고 알렸다. 좌중이 깜짝 놀라 일어나 보면 그들이 생각했던 그 열후가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에 진준을 가리켜 ‘진경좌(陳驚座)’라고 불렀다. 《漢書 卷92 游俠傳 陳遵》
[주D-004]얼굴 …… 서시(西施) : 춘추 시대의 미인인 서시가 가슴앓이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니 그 모습이 더욱 예뻤다. 그러자 이웃 마을에 사는 추녀(醜女)가 이를 보고는 자신도 흉내 내고 다녔더니 더욱 추해졌다고 한다. 《莊子 天運》
[주D-005]성은 …… 것이다 :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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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본분으로 돌아가 이를 지키는 것이 어찌 문장에 관한 일뿐이리요. 일체 오만 가지 것이 모두 다 그러하다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 밖에 나갔다가 제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우는 자를 만나서
“너는 어찌 우느냐?”
했더니, 대답이
“저는 다섯 살 적에 소경이 되었는데, 그런지 지금 20년이 되었습니다. 아침나절에 밖을 나왔다가 갑자기 천지 만물을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밭둑에 갈림길이 많고 대문들이 서로 같아서 제집을 구분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하기에, 선생이
“내가 너에게 돌아갈 방도를 가르쳐 주마. 네 눈을 도로 감으면 바로 네 집이 나올 것이다.”
했습니다. 이에 소경이 눈을 감고 지팡이로 더듬으며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니 서슴없이 제집을 오게 되었더라오. 눈 뜬 소경이 길을 잃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색상(色相)이 뒤바뀌고 희비(喜悲)의 감정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망상(妄想)이라 하는 거지요. 지팡이로 더듬고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분수를 지키는 전제(詮諦)요, 제집으로 돌아가는 증인(證印)이 되는 것이오.
[주D-001]색상(色相)이 뒤바뀌고 : ‘색상’은 불교 용어로, 겉으로 드러난 만물의 모습을 말한다. 색상은 본래 실체가 없는 공(空)이라고 한다. ‘뒤바뀌다〔顚倒〕’ 역시 불교 용어로, 번뇌로 인해 망상(妄想)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주D-002]전제(詮諦) : 불교 용어로 진제(眞諦)와 같은 말이다. 속사(俗事)의 허망한 도리인 속제(俗諦)와 구별되는 진정한 도리를 가리킨다.
[주D-003]증인(證印) : 불교 용어로 인가(印可)와 같은 말이다. 제자가 진리를 증득(證得)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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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다가, 읽기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더니, 그 애가 하는 말이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이란 글자는 왜 푸르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싫어하는 겁니다.”
하였소. 이 아이의 총명이 창힐(蒼頡)로 하여금 기가 죽게 하는 것이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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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편지
어제 자제가 찾아와서 글 짓는 법을 묻기에 내가 일러 주기를,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했더니 자못 좋아하지 않는 기색을 하고 떠나더군요.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즈음에 혹시 고합디까?
[주D-001]자제 : 유한준의 아들 유만주(兪晩柱 : 1755~1788)를 가리킨다. 유만주는 1775년부터 13년간 쓴 일기 《흠영(欽英)》 24권 6책을 남겼는데, 연암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여 당시 문단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주D-002]예(禮)가 …… 말라 : 《논어》 안연(顔淵)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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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편지
저물녘에 용수산(龍首山)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으나 그대는 오지 않고 강물만 동쪽에서 흘러와 어디론가 흘러갔습니다. 밤이 깊어 달빛 비친 강물에 배를 띄워 돌아와 보니, 정자 아래 고목나무가 하얗게 사람처럼 서 있기에 나는 또 그대가 거기에 먼저 와 있는가 의심했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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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편지
선비란 궁유(窮儒)의 별호(別號)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흰 바탕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선비가 아닐 수 없지요. 저들이 스스로 벼슬할 만하다고 자부하면서도 지치고 굶주린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평생 과거 시험장에서 요행수를 노리다가 스스로 증오하고 스스로 업신여긴 때문이지요. 천자로서 선비가 아닌 자는 주전충(朱全忠 후량(後梁)의 태조(太祖)) 한 사람뿐이지요. 이를테면 조자환(曹子桓)은 동경(東京 낙양(洛陽))의 수재(秀才)이며 환경도(桓敬道)는 강좌(江左 양자강 동쪽 지방)의 명사(名士)라 하겠지요.
[주D-001]그림을 …… 것 : 《논어》 팔일(八佾)에서 공자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바탕을 희게 칠한 다음의 일이다.〔繪事後素〕”라고 하였다. 예(禮)를 배우기 전에 그 바탕이 되는 덕행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주D-002]천자로부터 …… 없지요 : 《연암집》 권10 원사(原士)에서 “그러므로 천자도 근원은 선비이다. 근원이 선비란 것은 생민(生民)의 근본을 두고 한 말이다. 그의 작위는 천자이지만 그의 신분은 선비인 것이다.〔故天子者 原士也 原士者 生人之本也 其爵則天子也 其身則士也〕”라고 하였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천자도 편히 쉴 때에는 사복(士服)인 현단(玄端)을 입는다.” 하였으며,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에 “천자의 원자는 선비와 같다.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은 없다.〔天子之元子猶士也 天下無生而貴者也〕”고 하여 세자(世子)가 관례(冠禮)를 치를 때 사례(士禮)와 똑같이 한다고 하였다. 연암의 주장은 이러한 예설(禮說)에 근거한 것이다.
[주D-003]조자환(曹子桓) : 위(魏) 나라 문제(文帝)인 조비(曹丕)이다. 자환은 그의 자(字)이다.
[주D-004]환경도(桓敬道) : 동진(東晉) 말기에 건강(建康)을 함락시키고 초(楚) 나라를 세운 환현(桓玄)이다. 경도는 그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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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편지
그대는 보따리를 풀고 말안장을 내리도록 하시오. 내일은 비가 올 거요. 샘물이 울음소리를 내고 시냇물이 비린내를 풍기고, 흙섬돌에는 개미 떼가 밀려들고, 왜가리는 울며 북으로 가고, 연기는 서려 땅으로 치닫고, 별똥은 서쪽으로 흐르고, 바람도 살펴보니 샛바람이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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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편지
나무를 심고 꽃을 심는 것은 마땅히 진(晉) 나라 사람의 글씨가 글자를 구차스레 배열하지 않고도 줄이 저절로 시원스레 곧은 것처럼 해야 하는 거라오.
[주D-001]진(晉) 나라 사람의 글씨 : 왕희지(王羲之)의 초서(草書)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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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편지
정옹(鄭翁)은 술을 많이 마실수록 필흥(筆興)이 더욱 도도하여, 그 큰 점은 공만 하고 먹방울은 튀어서 왼뺨에 떨어지곤 하지요. 남녘 ‘남(南)’ 자의 오른쪽 다리획이 종이 끝을 넘어 깔개 자리까지 뻗치자, 붓을 던지고 허허 웃더니 유유히 용호(龍湖)를 향해 떠나갔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소그려.
[주D-001]정옹(鄭翁) : 정내교(鄭來僑: 1681〜1759)를 가리키는 듯하다. 정내교는 저명한 여항(閭巷) 문인으로, 호는 완암(浣巖)인데 현옹(玄翁)으로도 불리웠다. 홍봉한(洪鳳漢)과 김종후(金鍾厚) 형제의 숙사(塾師)였다. 김종후가 지은 「완암 정옹 묘지명(浣巖鄭翁墓誌銘)」에 의하면, 정내교는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술이 취하면 강개하여 비가(悲歌)를 부르던가, 붓을 휘둘러 시를 썼는데 서법 또한 굳세고 호방했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경모(敬慕)했다고 한다. 《本庵集 卷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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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초(雪蕉)에게 보냄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다른 사람의 서첩(書帖)에 제사(題辭)를 써 주면서 ‘아옹(鵝翁)’이라 일컬었는데,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이를 보고 웃으면서
“대감이 오늘에야 제소리를 내는구려.”
했으니, 이는 ‘아옹’이 고양이 소리와 비슷한 것을 두고 말한 것이지요. 이 사람도 오늘 제 마음을 쏟아 내었으니, 두렵고 두려울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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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규(穉圭)에게 보냄
백우(伯雨)는 아마도 떨쳐 일어나지 못할 것 같소. 무당이 문에 들어오자 귀신이 그 방에 가득 차 있었으며, 아침나절 나아가 진찰을 해 보니 얼굴빛은 새까맣고 눈동자는 벌겋고 부어 있었소. 무엇이 빌미가 되었느냐고 묻자,
“자주 두려움에 시달리고 지난 일을 자주 뉘우쳤더니 이것이 병의 빌미가 되었소.”
하기에,
“군자는 도를 즐기어 근심을 잊으며, 운명과 이치에 순응하여 도에 맞게 행동하거늘, 두려울 게 무에 있으며 뉘우칠 게 무에 있으랴.”
하였더니, 시자(侍者)가 눈짓을 하며 만류하였소. 시간을 살펴보다 밖으로 나와서 좌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선생님의 병세는 증오하는 것이 많은 점인데 특히 여자를 가장 꺼려합니다.”
합디다.
생각해 보니 백우는 얼굴이 훤하고 잘생긴 데다 항상 모양을 냈으니 지금 병의 빌미는 여자를 지나치게 총애한 때문이오. 불〔火〕이 이글거리면 쇠붙이〔金〕가 녹고, 나무〔木〕가 성하면 흙〔土〕이 흘러내리듯이, 두려움이 생기면 뉘우침이 뒤따르는 법이니 이 때문에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증세가 생긴 것이지 귀신이 내린 재앙은 아니오. 그런데 무당을 불러다가 기도를 하니 나는 백우의 병이 정말로 귀신이 내린 재앙이 될까 두렵소.
무릇 귀신에도 군자의 귀신이 있고 소인의 귀신이 있소. 삼신(三辰 해, 달, 별)과 오행(五行), 사직(社稷)과 산천(山川)은 백성에게 주는 이로움으로 인하여 섬기는 귀신이요, 죽음으로써 나랏일에 힘쓴 인물과 고생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 공정한 법을 백성에게 실시한 인물과 재해와 큰 환란을 막은 인물은 백성들에게 미친 공로로 인하여 섬기는 귀신이오. 이와 같이 공덕과 큰 이익을 주는 귀신들은 모두 제사를 지내 주도록 사전(祀典)에 기록되어 있소. 이를 일러 명신(明神)이라 하는데, 이들은 어질고 신령하며 귀하고 오래 살며 높고도 밝게 드러나니, 이것이 바로 군자의 귀신이오.
그런데 부엌, 방구석, 문지방, 중류(中霤)에 붙어 있는 귀신들로 말하면 모두 제사에 대한 보답은 있을지언정 위에서 말하는 귀신과는 진실로 그 부류가 다르오. 이를 간신(奸神)이라 하는데, 미련하고 신령하지 못하며 천하고 일찍 죽으며 낮고 음침하니 이것이 바로 소인의 귀신이오. 이들이 숲과 늪에 붙으면 매(魅)가 되고 덤불과 골짜기에 붙으면 양(魎)이 되며, 벌레와 물고기에 붙으면 요(妖)가 되고 풀이나 나무에 붙으면 상(祥)이 되며, 물건에 붙으면 괴(怪)가 되고 사람에게 붙으면 수(竪)가 되며, 꿈에 붙으면 압(魘)이 되고 일에 붙으면 마(魔)가 되고 병에 붙으면 여(厲)가 된다오. 이는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고 천지(天地) 사이에도 용납되지 못하여, 해와 달이 환히 비추고 바람과 천둥이 뒤흔들어 버리면 구멍 속으로 숨고 틈 사이로 파고들어, 궁핍하게 억눌려 지내다가 간간이 민간의 사귀(邪鬼)가 되어 나타난다오. 이때 무당이 음기(淫氣)를 빙자하여 장구를 두들기고 춤을 추면서 저와 의기가 통하는 귀신들을 불러 대어 집안 식구들을 겁주는 것이오.
《시경》에 이르기를 “점잖은 군자들은 복을 구해도 간사하게 하지 않는다.〔愷悌君子 求福不回〕” 했거늘, 군자의 병에 어찌하여 소인의 귀신을 섬길 까닭이 있겠소. 부인네를 천시하는 것은 바로 말이 많기 때문이오. 부인네가 말이 많은 것은 무당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고 여자 무당이 장구 치며 춤추는 행위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매개가 되오. 이러한 미끼와 매개가 이미 다 갖추어졌으니, 이는 실로 화를 불러들이는 것이오. 갈대 빗자루로 쓸어 내고 부적을 가지고 주문을 외면서, 겉으로는 귀신을 쫓는 척하나 남몰래 귀신을 불러들여 머리를 조아리고 귀신을 부르고 그에게 복종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이오. 그래서 귀신처럼 말하고 귀신처럼 웃고 귀신처럼 성내고 귀신처럼 기뻐하면서, 이리 부르고 저리 불러 온 방에 가득 차게 하고, 들어오면 목구멍에 머물다가 나갈 때는 꽁무니로 빠져나가며, 남의 병을 가지고 농락하면서 재물을 삼키려 드니,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겠소.
성인(聖人)은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기 때문에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 하였으니, 지금 방 안에서 항상 빌고 있다면 귀신을 이보다 더 가까이하는 것이 뭐가 있겠소. 이것이 과연 명신(明神)일진대 어찌 희생(犧牲)과 옥백(玉帛)을 놓아 두고 민가에 내려와서 밥을 얻어먹겠으며, 만약 그것이 나쁜 짓을 일삼는 간신(奸神)과 음신(淫神)이라면 무슨 복을 주겠소. 거북점도 두 번 하면 오히려 알려 주지 않거늘 하물며 예(禮)가 아닌 일에 푸짐하게 차려 놓고 많은 재물을 주어 청하려고 한들 될 리가 있겠소.
백우가 말하기를, 그대의 누이가 몹시 어질고 오빠의 감화를 받아 매사를 그대에게 의논한다 하였소. 그렇다면 그대는 번연히 알면서도 말리지 않은 것이니, 그들과 똑같은 잘못이 있다 할 것이오. 그대는 아무쪼록 생각해 보시오.
[주D-001]군자는 …… 잊으며 : 《논어》 술이(述而)에서 공자는 “도를 즐기어 근심을 잊는다.〔樂以忘憂〕”고 하였다. 또한 양운(楊惲)의 보손회종서(報孫會宗書)에 “군자는 도를 행하느라 즐거워서 근심을 잊는다.〔君子游道 樂以忘憂〕”고 하였다. 《文選 卷41》
[주D-002]삼신(三辰)과 …… 있소 :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무릇 성왕(聖王)이 제사를 제정함에 있어 공정한 법을 백성에게 실시한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죽음으로써 나랏일에 힘쓴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고생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큰 재해를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큰 환란을 막은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낸다. …… 그리고 일월성신은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요, 산림, 천곡, 구릉은 백성들이 재물을 가져다 쓰는 곳이므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제외한 대상은 사전(祀典)에 실리지 않는다.〔夫聖王之制祭祀也 法施於民則祀之 以死勤事則祀之 以勞定國則祀之 能禦大菑則祀之 能捍大患則祀之 …… 及夫日月星辰 民所瞻仰也 山林川谷丘陵 民所取財用也 非此族也 不在祀典〕” 하였다.
[주D-003]중류(中霤) : 방의 중앙을 가리킨다. 유(霤)는 낙숫물이란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방 중앙에 낙숫물 받는 곳이 있었으며 토(土)는 중앙을 주관하므로, 방 중앙에서 토신(土神)의 제사를 지냈다.
[주D-004]점잖은 …… 않는다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D-005]성인(聖人)은 …… 하였으니 : 《논어》 옹야(雍也)에, 번지(樊遲)가 지(知)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의(道義)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지(知)라 말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하였다.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가 병이 위중해지자 자로가 신에게 기도를 드릴 것을 청하면서 “상하 천지신명에게 기도한다.〔禱爾于上下神祇〕”라고 한 뇌문(誄文)의 말을 인용하니, 공자가 그런 기도라면 나의 기도는 오래되었다고 하여, 자로의 청을 완곡하게 물리쳤다. 평소의 행동이 신명(神明)의 뜻과 부합했으므로 기도를 일삼을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주D-006]거북점도 …… 않거늘 : 《시경》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나의 거북이 이미 싫증을 낸지라 나에게 길흉을 알려 주지 않네.〔我龜旣厭 不我告猶〕”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귀염불고(龜厭不告)란 성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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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仲觀)에게 보냄
내 듣건대 그대가 계우(季雨)와 절교했다고 하니 이 무슨 일이지요? 계우가 어질다면 절교해서는 안 되는 거고, 만약 불초하다면 그대가 바로잡아 주지 못하고 마침내 대대로 맺어 온 집안의 친분을 저버리는 것이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오? 어진 이와 절교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요 불초한 사람을 바로잡아 주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니, 그 시비곡직을 가리려 들진대 고을과 이웃의 부형들의 여론을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니겠소. 상서로운 일을 저버리고 어진 일을 포기한 것은 그 책임이 그대에게 있다고 나는 생각하오.
예전 그대의 관례(冠禮)에 그대의 선고(先考)께서 자방(子方) 씨를 빈(賓)으로 뽑았고 백우(伯雨)가 실로 찬자(贊者)가 되어, 그들 두 사람이 그대를 붙들어 섬돌 위로 인도하고 축(祝)을 읽고 관을 씌워 주어 성인(成人)의 의식을 행하였으며, 술을 따라 제(祭)를 올려 그 복을 이루게 하고 절을 하고 자(字)를 지어 그 덕을 표방했으며, 띠와 신을 내려 주면서도 다 훈계하는 말을 하였소. 그런데 자방 씨와 백우가 죽은 뒤에 그들의 고아이자 어린 아우를 모른 척하여 그들의 혼령을 슬프게 한다면 그대가 마음이 편안하겠소? 돌아가신 분들이 생전과 같은 지각(知覺)이 없다 해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며, 만약에 지각이 있다고 한다면 어찌 두 아버님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겠소.
무릇 관이란 머리에 얹는 것이요, 띠는 허리에 매는 것이요, 신은 발에 신고 다니는 것인데, 지금 그대는 관만 머리에 얹었지 그 덕은 얹지 않았고, 그 띠만 허리에 매었지 그 훈계의 말은 매지 않았고, 그 신만 발에 신었지 그 훈계는 실천하지 않고 있소. 이는 곧 얹은 관을 떨어뜨리고 맨 띠를 풀어 버리고 그 선대(先代)의 양가의 친목을 이어 가지 않는 것이니, 장차 어떻게 관 쓰고 띠 매고 옷 입고 신 신고 향리에 다닌단 말이오? 그대는 아무쪼록 생각해 보오.
[주D-001]도대체 어쩌자는 것이오 : 원문은 ‘若之何’인데, ‘若之何其’로 되어 있는 이본도 있다. 이는 《서경》이나 《시경》 등에서 종종 쓰이는 표현으로, ‘其’는 음절을 조정하는 조사(助詞)일 뿐 뜻이 없다.
[주D-002]자방(子方) 씨를 …… 되어 : 자방은 누구의 자(字)인지 알 수 없다. 관례를 행하기 3일 전에 주인은 중빈(衆賓) 가운데서 한 사람을 관례를 주관하는 빈(賓)으로 선택하고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서빈(筮賓)이라 한다. 빈은 자신을 돕는 찬자(贊者) 한 사람을 요청한다.
[주D-003]술을 …… 하고 : 삼가례(三加禮)를 마친 뒤에 빈(賓)이 관자(冠者)에게 술을 따르며 “절하고 술잔을 받아 제사를 올려 너의 복을 이루어라.〔拜受祭之 以定爾祥〕”라고 치사(致辭)한다. 《儀禮 士冠禮》
[주D-004]그들의 …… 아우 : 계우(季雨)를 가리킨다. 계우는 자방 씨의 아들이자 백우(伯雨)의 동생이었다.
[주D-005]두 아버님 : 중관(仲觀)의 부친과 백우(伯雨) · 계우(季雨)의 부친 자방 씨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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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 보냄
그대는 고서를 많이 쌓아 놓고 절대로 남에게 빌려 주지 않으니, 어찌 그리 빗나간 짓을 하오. 그대는 장차 대대로 전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요? 무릇 천하의 물건이 대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이 오래되었소. 요순(堯舜)도 전하지 못하고 삼대(三代)도 능히 지키지 못한 천하를 진 시황제가 대대로 지키려 하였으니, 이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 하는 것이오. 그런데도 그대는 몇 질의 서적을 대대로 지키고자 하니, 어찌 빗나간 짓이 아니겠소.
책이란 일정한 주인이 없으니,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가 갖기 마련인 거요. 만약 뒷 세대가 어질어서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면 벽간(壁間)에 소장된 책과 총중(冢中)에 비장된 책과 한문으로 번역된 먼 나라의 책들도 장차 남양(南陽)의 시대로 전해질 것이오. 만약 뒷 세대가 어질지 못하여 안일하고 게으르다면 천하도 지키지 못하거늘 하물며 서적이겠소? 남에게 말을 타도록 빌려 주지 않는 것도 공자는 오히려 슬퍼했거늘 책을 가진 자가 남에게 읽도록 빌려 주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하잔 셈이오?
그대가 만약 자손이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다 대대로 책들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것 또한 크게 빗나간 짓이오. 군자(君子 제왕(帝王))가 나라를 처음 세워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를 계속 이어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오. 그러므로 법으로써 밝히고 덕으로써 거느리고 위용으로써 보여 주지 않는 것이 없었지만, 뒷 세대가 오히려 이를 실추시켜서 제대로 계승하는 경우가 없었소. 관석화균(關石和鈞)을 하(夏) 나라 자손이 대대로 지켰더라면 구정(九鼎)이 어찌 옮겨졌겠으며, 명덕형향(明德馨香)을 은(殷) 나라의 자손이 제대로 지켰더라면 박(亳 은 나라 수도)의 사직(社稷)이 어찌 누차 옮겨졌겠으며, 천자목목(天子穆穆)을 주(周) 나라 자손이 대대로 지켰더라면 명당(明堂 제후들의 조회를 받던 궁전)이 어찌 헐렸겠소.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법을 밝혀 후세에 전하고 덕과 위용으로써 보여 주어도 오히려 지키기 어려운 일이거늘, 지금 천하의 고서(古書)를 사장(私藏)하고서 남에게 빌려 주는 선행을 하지 아니하며, 교만하고 인색한 마음을 품고서 이를 후세로 하여금 계승하게 하려고 하니, 너무도 불가한 일이 아니겠소?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仁)을 보완해 나가는 법이니, 그대가 만약 인을 구할진대 천 상자의 서적을 친구들과 함께 보아서 닳아 없어지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오. 그런데도 지금 책들을 묶어서 고각(高閣)에 방치해 두고 구구하게 뒷 자손에게 전해 줄 생각만 한단 말이오?
[주D-001]요순(堯舜)도 …… 것이오 : 진 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자신을 ‘시황제(始皇帝)’라 부르게 하고, 자신의 뒤를 잇는 황제들은 숫자로만 헤아려 2세, 3세라는 식으로 불러 만세에 이르도록 무궁하게 제위(帝位)를 전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진 나라는 불과 2세에서 망하였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주D-002]벽간(壁間)에 …… 것이오 : 벽간에 소장된 책이란 서한(西漢) 무제(武帝) 때 공자(孔子)의 옛집 벽간에서 출토된 《고문상서(古文尙書)》 등의 책들을 가리킨다. 총중에 비장된 책이란 진(晉) 나라 때 급군(汲郡)에 있던 위(魏) 나라 안희왕(安釐王)의 무덤에서 발굴된 《일주서(逸周書)》 등의 책들을 가리킨다. 한문으로 번역된 먼 나라의 책들이란 아홉 번이나 통역을 거쳐야 할 정도로 먼 외국의 책들을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말하며, 불경(佛經)이나 서학서(西學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남양(南陽)의 시대란 광무제(光武帝)의 치세와 같이 학문이 흥성한 시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동한(東漢)을 세운 광무제는 남양 사람이어서 남양에는 왕기(王氣)가 서려 있었다고 한다. 광무제는 보기 드문 호학(好學)의 군주로서 태학(太學)을 일으키고 예악을 정비하였으며 학문을 장려하여 그의 치세에 경학(經學)이 다시 융성하였다. 그러므로 《문심조룡(文心雕龍)》 정위(正緯)에서도 “광무제의 시대에 이르러 …… 그의 교화에 크게 영향받아 학자들이 대거 배출되었다.〔至于光武之世 …… 風化所靡 學者比肩〕”고 하였다.
[주D-003]남에게 …… 슬퍼했거늘 :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불확실한 내용을 빼놓고 기록하지 않는 것과 말을 가진 자가 남에게 타도록 빌려 주는 것을 예전에는 보았는데 지금은 그나마 없어졌구나.”라고 탄식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4]관석화균(關石和鈞) :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의 네 번째 노래에, “밝고 밝은 우리 선조 온 나라의 임금이시라 법과 규칙 높이 세워 자손에게 남기셨네. 석과 균을 통용시켜 왕의 창고 풍족하더니 그 전통 실추시켜 종족 망치고 제사 끊겼도다.〔明明我祖 萬邦之君 有典有則 貽厥子孫 關石和鈞 王府則有 荒墜厥緖 覆宗絶祀〕”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 노래는 하(夏) 나라의 무능한 임금인 태강(太康)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노는 데에만 빠져 왕위에서 쫓겨나자 그의 다섯 동생이 각각 1수씩 지어 태강의 부덕(不德)함과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석(石)은 120근, 균(鈞)은 30근으로서, 관석화균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을 가리킨다.
[주D-005]명덕형향(明德馨香) : 덕정(德政)을 뜻한다. 《서경(書經)》 군진(君陳)에, “지극한 정치는 향기로워 신명을 감동시키니, 서직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만이 향기롭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馨 明德惟馨〕”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주(周) 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을 이어 은(殷) 나라의 유민(遺民)을 다스리러 가는 군진(君陳)에게 훈계하면서 한 말이다.
[주D-006]천자목목(天子穆穆) : 천자의 위엄을 뜻한다. 《시경(詩經)》 옹(雝)에, “제후들이 와서 제사를 돕거늘 천자는 엄숙하게 계시도다.〔相維辟公 天子穆穆〕” 한 데서 온 말이다. 이 시는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에게 제사를 올릴 때를 노래한 것이다. 즉 천자가 권위가 있어 제후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제사를 도운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7]군자는 …… 법이니 : 원문은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인데, 《논어》 안연(顔淵)에서 증자(曾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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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옥(仲玉)에게 답함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은 애초에 듣지 말아야 할 것이요, 발설 말라 하면서 하는 말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니, 남이 알까 두려운 일을 무엇 때문에 말하며 무엇 때문에 들을 까닭이 있소?
말을 이미 해 놓고 다시 경계하는 것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이요, 상대방을 의심하고도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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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장공예(張公藝)의 참을 인(忍) 자 백 자는 끝내 활법(活法 융통성 있는 방법)이 되지 못하오. 장공예의 9대 동거(同居)를 당(唐) 나라 대종(代宗)이 능히 해냈으니, 무어라 말하여 그리되었소? “어리석지 않고 귀먹지 않으면 가장 노릇을 하기 어렵다.”고 하였소. 그렇다면 어느 것이 활법이겠소? 그것은 바로 애비는 애비 노릇 하고 아들은 아들 노릇 하고 형은 형 노릇 하고 동생은 동생 노릇 하고 남편은 남편 노릇 하고 아내는 아내 노릇 하고 어른은 어른 노릇 하고 어린이는 어린이 노릇 하고 남종은 남종 구실 하고 여종은 여종 구실 하는 것뿐이오.
이번에 인재기(忍齋記)를 지으면서 이런 내용을 삽입하고자 하는데, 어떨는지 모르겠소. 고견을 밝혀 주시오.
[주D-001]장공예(張公藝)의 …… 백 자 : 장공예는 9대가 함께 동거하여 북제(北齊), 수(隋), 당(唐) 등 세 왕조에서 정표(旌表)를 내린 집안의 인물이다. 인덕(麟德) 연간에 고종(高宗)이 태산(泰山)에 봉선(封禪)을 하고 나서 그 집에 행차하여 친족 간에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이에 장공예가 지필묵을 꺼내어 참을 인(忍) 자 백여 자를 써서 올렸더니, 고종이 훌륭히 여겨 비단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小學 卷6 善行》
[주D-002]어리석지 …… 어렵다 : 가장(家長)이 집안을 평화롭게 다스리려면 보아도 못 본 체 들어도 못 들은 체해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당 나라 대종(代宗) 때 곽자의(郭子儀)의 아들 애(曖)가 승평공주(昇平公主)와 결혼했는데 공주와 말다툼을 하다가 천자에게 저촉되는 말을 했다. 공주가 이를 고자질하자 대종은 공주를 타일러 돌려보냈으며, 또한 이 사실을 안 곽자의가 아들을 감금하고 대죄(待罪)하자, 대종은 “어리석지 않고 귀먹지 않으면 가장 노릇을 하기 어렵다.〔不痴不聾 不作家翁〕”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너그러이 용서했다고 한다. 《資治通鑒 卷224 唐代宗 大歷2年》
[주D-003]애비는 …… 하고 : 《주역(周易)》 가인괘(家人卦)에 “애비는 애비 노릇 하고 아들은 아들 노릇 하고 형은 형 노릇 하고 동생은 동생 노릇 하고 남편은 남편 노릇 하고 아내는 아내 노릇 하면 가도(家道)가 바르게 되니, 집안이 바르게 되어야 천하가 안정된다.〔父父子子 兄兄弟弟 夫夫婦婦 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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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어제는 우리들이 달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달이 우리들을 저버린 거요. 세상에 어떤 일이든 모두 다 저 달과 같지 않겠소?
한 달이라 서른 날에도 큰달이 있고 작은달도 있으니, 초하룻날과 초이튿날은 방백(旁魄)일 따름이며, 초사흗날에는 겨우 손톱 흔적만 하되 그래도 낙조(落照) 때에는 빛을 발하며, 초나흗날이면 갈고리만 하고 초닷샛날이면 미인의 눈썹만 하고 초엿샛날이면 활만 하되 빛은 아직 넓게 퍼지지 못하고, 칠팔일로부터 열흘에 이르면 비록 얼레빗만 하나 빈 둘레가 여전히 보기 싫고,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이면 변송(汴宋 북송(北宋))의 산하(山河)처럼 오(吳) · 촉(蜀) · 강남(江南)이 차례로 평정되어 판도에 들어오는데 운주(雲州)와 연주(燕州)가 요(遼)에 함락되어 국토가 끝내는 이지러진 모습을 지닌 것과 같고, 열나흘이면 마치 곽 분양(郭汾陽)의 운수가 오복(五福)을 다 갖추었으나 다만 한편으로 옆에 달라붙은 어조은(魚朝恩) 때문에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했던 것이 한 가지 결함인 것과 같지요.
그렇다면 거울같이 완전히 둥근 때는 보름날 하루저녁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 달이 가장 둥근 때가 열엿새로 옮겨지거나 혹은 살짝 월식(月蝕)이 되든지 달무리가 지거나 혹은 먹구름에 가려지거나 혹은 모진 바람과 세찬 비가 내려 어제처럼 사람들을 낭패하게 만들지요. 우리들은 이제부터 마땅히 송조(宋朝)의 인물을 본뜨고, 다만 곽 분양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아끼기를 바라는 것이 옳겠지요.
[주D-001]작은달 : 한 달이 28일이나 29일이 되는 달로 음력 2월 · 4월 · 6월 · 9월 · 11월이 작은달이다.
[주D-002]방백(旁魄) : 백(魄)은 달이 태양빛을 받지 못해 어두운 부분을 말한다. 초하루의 달은 달빛이 아주 소멸하여 사백(死魄)이라 하고, 초이튿날의 달은 사백에 가깝다고 하여 방사백(旁死魄)이라 한다.
[주D-003]곽 분양(郭汾陽)의 …… 같지요 : 곽 분양은 곽자의(郭子儀 : 697~781)를 말한다. 곽자의는 안사(安史)의 난(亂)을 평정한 일등공신으로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졌으며,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후손들이 모두 현달(顯達)하였다. 단 총신(寵臣) 어조은(魚朝恩)이 관군용선위처치사(觀軍容宣尉處置使)로서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인 곽자의를 견제하고 집요하게 모함했으나, 곽자의는 은인자중하며 잘 대처하여 어조은의 참소가 끝내 통하지 못했다.
[주D-004]달이 …… 옮겨지거나 : 달이 가장 밝은 때를 망(望)이라 하는데, 작은달에는 15일이 망이 되지만, 큰달에는 16일이 망이 된다.
[주D-005]우리들은 …… 옳겠지요 : 꼭 15일에만 만나려 하지 말고, 그 전에 11일에서 14일 사이에 만나는 것도 좋겠다는 취지로 농담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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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편지
말세에 처하여 사람을 사귈 때는 마땅히 상대방의 말이 간략하고 기운이 차분하며 성품이 소박하고 뜻이 검약한가를 살펴보아야 하며, 절대로 마음속에 계교(計巧)를 지닌 사람은 사귀어서는 안 되고 뜻이 허황된 사람은 사귀어서는 아니 되지요.
세상에서 떠드는 ‘쓸모 있는 사람’이란 반드시 쓸모없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떠들어 대는 ‘쓸모없는 사람’이란 반드시 쓸모 있는 사람이지요. 천하가 안락하고 향리에 아무런 사고가 없는데, 참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재기(才氣)를 드러내고 정신을 분발하면서까지 경솔히 남에게 보여 주려고 애쓸 까닭이 있겠소.
저와 같이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르는 것은 겉보기에 용맹한 것 같지만 이는 곧 노인의 상투적인 버릇이요, 60만 군사를 굳이 청한 것은 겁쟁이 같지만 이는 곧 지혜로운 이의 깊은 꾀랍니다.
[주D-001]갑옷을 …… 버릇 : 전국(戰國) 시대 조(趙) 나라의 명장 염파(廉頗)가 위(魏) 나라에 도피해 있을 때 조 나라가 진(秦) 나라의 침공으로 곤경에 처하자 조 나라 왕은 사자(使者)를 보내 염파가 아직 쓸 만한지를 탐문해 오게 하였다. 그때까지 조 나라에 다시 등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염파는 사자가 보는 앞에서 한 말의 밥을 먹고 열 근의 고기를 먹은 다음 갑옷 차림으로 말을 타고서 자신이 아직도 쓸 만한 사람임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사자는 조 나라로 돌아가 보고하기를, “염 장군이 비록 늙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밥은 잘 먹습디다. 하지만 신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 잠깐 새에 세 번이나 변을 보았습니다.” 하니, 조 나라 왕은 그가 늙었다고 여겨 마침내 부르지 않았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주D-002]60만 …… 꾀 : 진 시황(秦始皇)이 초(楚) 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장군 이신(李信)을 불러 얼마의 군사가 있으면 정벌할 수 있겠냐고 묻자 이신이 2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대답하였다. 다시 장군 왕전(王翦)을 불러다 묻자 왕전은 60만 명은 있어야 정벌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진 시황은 왕전이 늙어서 겁이 많다고 질책하고 이신을 출전시켰으나 이신은 초 나라 정벌에서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진 시황이 다시 왕전을 불러다 사과하고 그의 주장대로 60만의 군사를 내주자, 왕전이 출전하여 결국 초 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卷73 白起王翦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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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이웃의 과거 급제를 축하함
무릇 요행을 말할 때에는 ‘만의 하나〔萬一〕’란 말을 하지요. 어제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줄잡아 수만 명이나 되었지만 창명(唱名 급제자 발표)은 겨우 스무 명밖에 아니 되니 이야말로 만의 하나라 이를 만하지 않겠소.
시험장의 문에 들어갈 때 서로 밟고 밟히고 죽고 다치고 하는 자들이 수도 없으며, 형제끼리 서로 외치고 부르고 뒤지고 찾곤 하다가, 급기야 서로 만나게 되면 손을 잡고 마치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나 만난 듯이 여기니, 죽을 확률이 십분의 구라 이를 만하지요.
지금 그대는 능히 십중팔구 죽을 확률에서 벗어나서 만의 하나뿐인 이름을 얻었소.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만의 하나뿐인 영광스러운 발탁을 미처 축하하기 전에, 속으로 사망률이 십분의 구에 달하는 그 위태로운 장소에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축하할 따름이오.
즉시 몸소 축하해야 마땅하겠으나, 나 역시 십분의 구의 죽음에서 벗어난 뒤라 지금 자리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으니 병이 조금 낫기를 기다려 주기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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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士剛)에게 답함
붓대를 쥐고 언 손을 호호 부니 손톱이나 의대(衣帶)에서 모두 술내가 풍기는구려. 마치 젊은 장수가 사냥에 도취하고 보니 갑옷이나 군화나 깃발이 모두 피비린내를 띤 거와 마찬가지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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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泠齋)에게 답함
옛사람의 술에 대한 경계는 지극히 깊다 이를 만하구려. 주정꾼을 가리켜 후(酗)라 한 것은 그 흉덕(凶德 흉악한 행실)을 경계함이요, 술그릇에 주(舟)가 있는 것은 배가 엎어지듯 술에 빠질 것을 경계함이지요. 술잔 뢰(罍)는 누(纍 오랏줄에 묶임)와 관계되고, 옥잔 가(斝)는 엄(嚴 계엄(戒嚴))의 가차(假借)요, 배(盃)는 풀이하면 불명(不皿 가득 채우지 말라)이 되고 술잔 치(巵)는 위(危) 자와 비슷하고, 뿔잔 굉(觥)은 그 저촉(抵觸)됨을 경계함이요, 창〔戈〕 두 개가 그릇〔皿〕 위에 있는 것은 서로 다툼을 경계한 것이고 술통 준(樽)은 준절(撙節 절제(節制))을 보여 줌이요, 금(禁)은 금제(禁制)를 이름이요, 술 유(酉) 부에 졸(卒 죽다)의 뜻을 취하면 취(醉) 자가 되고 생(生 살다) 자가 붙으면 술 깰 성(醒) 자가 되지요. 《주관(周官 주례(周禮))》에 “평씨(萍氏)가 기주(幾酒)를 맡았다.” 했는데, 《본초(本草)》를 살펴보니 “평(萍 개구리밥)은 능히 술기운을 제어한다.” 했소.
우리들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이 옛사람보다 더하면서, 옛사람이 경계로 남긴 뜻에는 깜깜하니 어찌 크게 두려운 일이 아니겠소. 원컨대 오늘부터 술을 보면 옛사람이 글자 지은 뜻을 생각하고, 다시 옛사람이 만든 술그릇의 이름을 돌아봄이 옳지 않을는지요.
[주C-001]영재(泠齋) : 유득공(柳得恭)의 호이다.
[주D-001]주(舟) : 술잔을 받치는 쟁반을 말한다. 찻잔 쟁반을 다주(茶舟)라고 한다.
[주D-002]창〔戈〕 …… 것 : ‘잔(盞)’ 자를 가리킨다.
[주D-003]금(禁) : 술잔을 놓는 탁자를 말한다.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 정현(鄭玄)의 주에 “이름을 금이라 한 것은 술을 경계한 때문이다.〔名之爲禁者 因爲酒戒也〕”라고 하였다.
[주D-004]평씨(萍氏)가 기주(幾酒)를 맡았다 : 《주례》 추관(秋官)에 나오는 말이다. 평씨는 나라의 물에 관한 금령(禁令)을 맡은 관직 이름이고, 기주는 백성들이 술을 구매하는 것이 적량(適量)이며 적시(適時)인가를 기찰(譏察)하는 임무를 말한다.
[주D-005]《본초(本草)》를 …… 했소 : 신농씨(神農氏)가 지었다는 《본초》에 나오는 말로서 《주례집설(周禮集說)》, 《시아편(示兒編)》 등에 인용되어 있다. 개구리밥은 물에 가라앉지 않는 성질이 있고 수기(水氣)가 승하여 술기운〔酒氣〕을 흩어지게 한다고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두 번째 편지
이는 은어(隱語)인데 나는 벌써 해석했소. ‘마혁과시(馬革裹尸)’는 종군(終軍)을 가리키고, ‘불감앙시(不敢仰視)’는 엄안(嚴顔)을 가리키고, ‘포(泡)’는 백기(白起)를 가리키고, ‘귤(橘)’은 황향(黃香)을 가리키고, ‘운(雲)’은 악비(岳飛)를 가리키고, ‘폭(瀑)’은 산도(山濤)를 가리키고, ‘동안백발(童顔白髮)’은 소옹(少翁)을 가리키고, ‘집의소생(集義所生)’은 맹호연(孟浩然)을 가리키고, ‘풍자도(馮子都)’는 흉노(匈奴)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주D-001]종군(終軍) : 한 무제(漢武帝) 때 제남(齊南)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박학하고 문장을 잘 지어 18세에 박사제자(博士弟子)가 되었다. 글을 올려 국사를 논한 일로 무제에게 발탁되어 간대부(諫大夫)가 되고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가서 남월왕으로 하여금 한 나라에 복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월상(越相) 오가(吳嘉)가 이에 반발하여 남월왕과 한 나라 사신을 살해하면서 종군도 죽였다. ‘말가죽에 시체를 싼다〔馬革裹尸〕’는 것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서 시신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므로 종군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2]엄안(嚴顔) : 후한(後漢)의 유장(劉璋)의 장수로서 파촉(巴蜀)을 지키다가 장비(張飛)에게 사로잡혀 항복을 권유받자 “우리 주(州)에는 단두장군(斷頭將軍)만 있지 항장군(降將軍)은 없다.”고 하며 이를 거부하였다. 장비가 노하여 목을 베려 하였으나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으므로 장비가 이를 장하게 여겨 빈객(賓客)으로 삼았다. ‘감히 쳐다보지 못한다〔不敢仰視〕’는 것은 엄한 얼굴을 나타내므로 엄안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3]백기(白起) : 전국 시대 진(秦) 나라의 명장으로서 초(楚) 나라를 정벌한 공으로 무안군(武安君)에 봉해졌다. 거품〔泡〕은 하얗게 일어나므로 백기(白起)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4]황향(黃香) : 후한 때의 강하(江夏) 사람으로 “천하에 강하의 황동에 비견할 사람이 없다.〔天下無雙 江夏黃童〕”고 할 정도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귤(橘)은 색이 노랗고 향기가 있으므로 황향(黃香)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5]악비(岳飛) : 송(宋) 나라 때 금(金) 나라의 남하(南下)에 대항한 명장으로, 시호는 무목(武穆)이다. 구름〔雲〕은 산 위에 날아다니므로 악비(岳飛)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6]산도(山濤) : 서진(西晉) 때의 인물로 혜강(嵇康), 완적(阮籍) 등과 교유하였으며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사람이다. 폭포〔瀑〕는 산에서 이는 파도라 할 수 있으므로 산도(山濤)를 비유한 것이다.
[주D-007]소옹(少翁)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제(齊) 지방의 방사(方士)이다. 무제가 총애하던 왕부인(王夫人)의 혼령을 방술(方術)로 불러들여 그 공으로 문무장군(文武將軍)에 제수되었다. 어린애 얼굴에 흰머리〔童顔白髮〕는 애늙은이를 가리키므로 소옹(少翁)을 비유한 것이다. 《史記 卷12 孝武本紀》
[주D-008]집의소생(集義所生) :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장에서 “호연지기는 의(義)가 축적되어 생겨나는 것이지 의가 갑자기 엄습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9]맹호연(孟浩然) : 당 나라의 시인으로 양양(襄陽) 사람이다. 특히 자연의 경물을 잘 묘사하여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王孟)’으로 불린다.
[주D-010]풍자도(馮子都) : 한 나라의 대장군 곽광(霍光)의 감노(監奴)로서 주인 곽광의 비첩인 현(顯)과 사통(私通)을 하다가 곽광의 부인 민씨(閔氏)가 죽고 현이 정실부인이 되자 반란을 일으켰다. 즉, 풍자도는 흉악한 노복(奴僕)에 해당하므로 흉노(凶奴) 즉 흉노(匈奴)를 비유한 것이다. 《漢書 卷68 霍光金日磾傳》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아무개에게 답함
우연히 야성(野性)을 찬미하다가 스스로를 고라니〔麋〕에 비한 것은 고라니가 사람만 가까이하면 잘 놀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감히 잘난 체해서가 아니었지요. 지금 그대의 편지를 받아 보건대, 스스로를 기마(驥馬) 꼬리에 붙은 파리에 비했으니, 또 어찌 그리 작지요? 진실로 그대가 작게 되기를 구한다면 파리도 오히려 크고말고요. 개미도 있지 않소?
내 일찍이 약산(藥山)에 올라 도읍을 굽어보니 사람들이 달리고 치닫고 하여 땅에 가득 구물대는 것이 마치 개밋둑에 진을 친 개미와 같아서, 한번 불면 능히 흩어질 것만 같았지요. 그러나 다시 그 도읍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바라보게 한다면, 비탈을 더위잡고 바위를 오르고 다래 넝쿨을 움켜쥐고 나무를 타고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는 망령되이 스스로 높고 큰 양하는 모습이 이〔虱〕가 머리털을 타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소?
그런데 지금 마침내 큰소리치며 스스로 비하기를 고라니라 했으니, 어찌 그리 어리석던지요. 당연히 대방가(大方家 식자(識者))에게 비웃음을 사 마땅한 일이지요. 만약 다시 그 형체의 크고 작고를 비교하고, 보이는 바의 원근을 분별하기로 든다면, 그대나 내가 모두 다 망령된 짓을 할 뿐이지요. 고라니는 과연 파리보다는 크다지만, 코끼리가 있지 않소? 파리가 과연 고라니보다 작다 하지만, 저 개미에게 견주어 본다면 코끼리와 고라니 사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지금 저 코끼리가 서면 집채만 하고 걸음은 비바람같이 빠르며, 귀는 구름이 드리운 듯하고 눈은 초승달과 비슷하며, 발가락 사이에 진흙이 봉분같이 솟아 올라, 개미가 그 속에 있으면서 비가 오는지 살펴보고서 싸우려고 나오는데, 이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코끼리를 못 보는 것은 어쩐 일입니까? 보이는 바가 너무 멀기 때문이지요. 또 코끼리가 한 눈을 찡긋하고 보아도 개미를 보지 못하니, 이는 다름아니라 보이는 바가 너무 가까운 탓이지요. 만약 안목이 좀 큰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백 리의 밖 멀리에서 바라보게 한다면, 어둑어둑 가물가물 아무 것도 보이는 바가 없을 것이니, 어찌 고라니와 파리, 개미와 코끼리를 구별할 수 있겠소?
[주D-001]야성(野性) : 자연 속에서 한적하게 살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말한다.
[주D-002]고라니〔麋〕 : 고라니처럼 자연 속에서 한적하게 살고 싶어하는 것을 ‘미록지(麋鹿志)’ 또는 ‘미록성(麋鹿性)’이라 한다. 또한 노루처럼 담이 작아 잘 놀라는 것을 ‘균경(麇驚)’이라 한다.
[주D-003]기마(驥馬) …… 파리 : 기(驥)는 명마의 이름이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사마천은 “안연(顔淵)이 비록 학문을 독실히 했지만 기마의 꼬리에 붙었기에 그의 행실이 더욱 알려졌다.”고 하였다. 쉬파리가 기마의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듯이, 안연도 공자의 제자가 된 덕분에 후세에 더욱 유명해졌다는 뜻이다.
[주D-004]약산(藥山) : 평안도 영변군(寧邊郡)에 있는 산이다. 약산 동대(東臺)는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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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誠之)에게 보냄
그의 말이 비록 터무니없이 거짓되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라도 미리 거짓말이라 단정하지 말고 일단 믿을 만한 말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어떨는지요? 비유하자면 마치 거짓말쟁이가 꿈 얘기 하는 것과 같아서, 참이라고 믿어 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고 이를 수도 없는 게 아니겠소. 다른 사람의 꿈속이라 한번 달려 들어가 볼 수도 없으니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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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치(石癡)에게 보냄
옛날에 원민손(袁愍孫)이 부 상시(傅常侍)의 청덕(淸德)을 칭송하면서,
“그 문을 지날 때면 고요하여 사람이 없는 듯하다가, 막상 그 휘장을 걷고 보면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
했는데, 나는 매양 눈 속을 걸어가서 쪽문을 열고 매화를 찾을 때면 문득 부 상시의 청덕을 느낀다오.
[주C-001]석치(石癡) : 정철조(鄭喆祚)의 호이다.
[주D-001]옛날에 …… 했는데 : 원민손(袁愍孫)은 남조(南朝) 송(宋) 나라 때의 인물인 원찬(袁粲 : 420~477)의 초명(初名)이며, 부 상시(傅常侍)는 양(梁) 나라 때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낸 부소(傅昭 : 454~528)를 가리킨다. 원찬이 단양 윤(丹陽尹)으로 있을 때 부소를 고을의 주부(主簿)로 삼아 젊은이들을 가르치게 하였고, 명제(明帝)가 붕어(崩御)했을 때는 원찬의 이름으로 올린 애책문(哀策文)의 절반을 부소가 지었을 정도였다. 매번 부소의 문을 지날 때마다 감탄하기를, “그 문을 지날 때면 고요하여 사람이 없는 듯하다가 막상 휘장을 걷고 보면 그 사람이 거기에 있으니, 어찌 명현(名賢)이 아니겠는가.” 하였다고 한다. 《南史 卷60 傅昭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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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군자의 도는 담박하면서도 싫증 나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빛이 난다.” 했는데, 이 말은 바로 매화를 위한 칭송인 것 같소. 소자첨(蘇子瞻)이 도연명(陶淵明)의 시를 논하면서 “질박해 보이면서도 실은 화려하고, 여위어 보이면서도 본래는 기름지다.” 했는데, 이로써 매화에 빗대어 말하면 다시 더 평할 말이 없지요.
[주D-001]군자의 …… 난다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 33 장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2]질박해 …… 기름지다 : 소철(蘇轍)이 지은 추화도연명시인(追和陶淵明詩引)에 나오는 말이다. 소식(蘇軾)이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하여 지은 시를 모은 시집에 그 아우 소철이 서문을 썼는데, 소식이 동생에게 서문을 부탁하는 편지에서 그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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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옛날에 이 학사(李學士) 어른을 모시고 계당(溪堂)으로 매화 구경을 갔는데, 그 어른이 위연(喟然)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곽유도(郭有道)는 도도하면서도 속세를 끊지 않았고 부흠지(傅欽之)는 맑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뜻밖에도 홀로 빼어난 향기로운 꽃 매화가 이 두 가지 덕을 갖추었단 말인가.”
라고 했지요.
[주D-001]이 학사(李學士) : 연암의 처숙(妻叔)으로 홍문관 교리를 지낸 이양천(李亮天 : 1716~1755)을 가리킨다.
[주D-002]곽유도(郭有道)는 …… 않았고 : 곽유도는 후한 때의 은사(隱士)인 곽태(郭太 : 128~169)를 가리킨다. 곽태의 자는 임종(林宗)이고 유도(有道)는 곽태가 도(道)를 지닌 사람으로 천거되었기 때문에 불린 이름이다. 어떤 사람이 범방(范滂)에게 곽태가 어떤 인물이냐고 묻자, “은거하면서도 가까운 사람을 떠나지 않았고 도도하면서도 속세를 끊지 않았으며, 천자도 그를 신하로 삼지 못했고 제후도 그를 벗으로 삼지 못했으니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하였다. 《後漢書 卷68 郭太列傳》
[주D-003]부흠지(傅欽之)는 …… 않았다 : 흠지(欽之)는 송(宋) 나라 때 인물인 부요유(傅堯兪 : 1024~1091)의 자이다. 사마광(司馬光)이 소옹(邵雍)에게 “맑고 강직하고 용맹한 덕은 사람들이 동시에 갖추기가 어려운 법인데 흠지(欽之)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추고 있소.” 하니, 소옹이 말하기를, “흠지는 맑으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강직하면서도 부딪치지 않고 용맹하면서도 온화하니,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오.” 하였다. 《宋史 卷341 傅堯兪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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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편지
《시경》과 《서경》에는 매화를 말하면서 열매만 말하고 꽃은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들은 지금 매화시(梅花詩)를 지으면서 향기를 평하고 빛깔을 견주어 꽃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그래도 부족하여, 또 따라서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곤 하니, 겉치레에다 또 겉치레를 더하여 참모습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고 말았소. 어째서 태산이 임방(林放)만 못하다고 보는 거요?
[주D-001]《시경》과 …… 않았는데 : 《시경》 소남(召南) 표유매(摽有梅)에 “잎이 떨어진 매화나무여 그 열매가 겨우 일곱이로다.〔摽有梅 其實七兮〕”라고 하였다. 《서경》 열명 하(說命下)에 “만약 양념을 넣은 국을 만들려거든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오.〔若作和羹 爾惟鹽梅〕”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매(梅)’는 매실로 만든 식초를 말한다.
[주D-002]어째서 …… 거요 :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노(魯) 나라의 대부(大夫)인 계씨(季氏)가 대부임에도 불구하고 제후(諸侯)만이 지낼 수 있는 여제(旅祭)를 태산(泰山)에서 지내자 공자가 계씨의 가신(家臣)인 제자 염유(冉有)에게 이를 막지 못한 것을 따지면서 “어째서 태산이 임방(林放)만 못하다고 보는가?” 하고 질책하였다. 임방은 공자에게 예(禮)의 근본을 물었던 사람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어떤 이에게 보냄
나는 집이 가난하고 꾀가 모자라니, 생계를 꾸리는데방공(龐公)을 배우고 싶지만 소계(蘇季)와 같은 한탄만 있을 뿐이지요. 허물 벗음은 이슬 마시는 매미보다 더디고 지조는 흙을 먹는 지렁이에 부끄러울 뿐이외다. 옛날에 매화 삼백예순다섯 그루를 심어 날마다 한 그루씩 보면서 세월을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나는 셋방살이 신세가 되어 고산(孤山)과 같은 동산이 있을 턱이 없으니, 장차 어찌하면 좋지요?
벼루맡의 어린 종은 손재주가 하도 교묘하므로 나 역시 때때로 그를 따라서 연전(硯田 문필로 생활함)의 겨를을 내어 절지(折枝)의 매화를 만드는데, 촛눈물은 화판(花瓣)이 되고 고라니털은 꽃술이 되고 부들의 꽃가루는 꽃술의 구슬이 되어, 이름을 윤회화(輪回花)라 했지요. 왜 ‘윤회’라 일렀냐 하면, 무릇 나무에 붙어 있는 생화(生花)가 밀랍이 될 걸 어찌 알며, 밀랍은 벌집에 있는데 그것이 꽃이 될 줄 어찌 알리요? 그러나 노전(魯錢)과 원이(猿耳)는 꽃봉오리가 천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규경(窺鏡)과 영풍(迎風)은 그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지요. 오직 땅에 박히지 않았을 뿐 바로 자연의 정취를 볼 수 있지요. 황혼의 달 아래, 비록 그윽한 향기가 풍기는 것은 없지만, 눈 가득한 산중에 고사(高士)가 누워 있는 모습을 족히 상상하고말고요.
나는 그대에게 먼저 매화 한 가지를 팔아서 그 값을 정하고 싶소. 만약 그 가지가 가지답지 못하거나, 꽃이 꽃답지 못하거나, 꽃술이 꽃술답지 못하거나, 꽃술의 구슬이 구슬답지 못하거나, 상 위에 놓아도 빛이 나지 않거나, 촛불 아래서도 성긴 그림자가 생기지 않거나, 거문고와 짝지어도 기이한 흥취를 자아내지 않거나, 시에 넣어도 운치나지 않거나, 한 가지라도 이런 것이 있다면 영원히 물리쳐 버려도 끝내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을 거요. 이만 줄이오.
[주C-001]어떤 이에게 보냄 : 목차에는 제목이 ‘동인에게 보냄〔與同人〕’으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어떤 이에게 윤회매를 보냄〔與人輪回梅〕’ 또는 ‘매화를 파는 편지〔鬻梅牘〕’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편지는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2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에도 실려 있다. 즉 윤회매십전 팔지첩(八之帖)에 무릉(茂陵 : 박지원) 씨가 밀랍으로 만든 매화인 윤회매를 사라고 관재(觀齋 : 서상수〈徐常修〉)에게 보낸 편지로서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또한 편지의 말미 부분은 매화를 판 뒤 관재에게 작성해 준 증서인 윤회매십전 구지권(九之券)의 일부로 되어 있다. 단 《연암집》의 원문과 자구상의 차이가 적지 않다.
[주D-001]방공(龐公)을 …… 뿐이지요 : 방공은 후한(後漢) 때의 은자(隱者)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키고 소계(蘇季)는 전국 시대의 유세가(遊說家)인 소진(蘇秦)을 가리키는데 소진의 자가 계자(季子)이다. 소진이 연횡책(連衡策)으로 진(秦) 나라 혜왕(惠王)을 설득하다가 실패하고 실컷 고생만 하고 고향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모두 그를 외면하였다. 이에 소진은 “아내는 나를 지아비로 여기지 않고, 형수는 나를 시동생으로 여기지 않고, 부모님은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길게 탄식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秦策》
[주D-002]허물 …… 뿐이외다 : 학업에 진전이 없는 것과 남에게 신세 지고 사는 것을 반성한 말이다.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군자의 배움은 매미가 허물 벗듯이 신속하게 변한다.〔君子之學如蛻 幡然遷之〕”고 하였으니, 부단히 학습하여 구태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낡은 것을 혁신하기를 매미가 허물 벗듯이 한다.〔去故就新 若蟬之蛻也〕”는 말도 있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서 맹자는 오릉중자(於陵仲子)가 청렴을 지키기 위해 인륜마저 저버림을 비판하면서 “오릉중자의 지조를 충족시키자면 지렁이가 된 뒤라야 가능할 것이다.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지하수만을 마시고 산다.〔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 夫蚓 上食槁壤 下飮黃泉〕”고 하였다.
[주D-003]옛날에 …… 없으니 : 송(宋) 나라 때의 은자(隱者)인 임포(林逋)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방학정(放鶴亭)과 소거각(巢居閣)을 짓고는 주변에 매화 360그루를 심고 소일하였다고 한다. 《欽定南巡盛典 卷86》
[주D-004]절지(折枝) : 가지가 구부러져 아래로 늘어진 모양을 말한다. 동양화에서는 매화 나무 전체를 그리지 않고 가지가 구부러져 늘어진 부분만을 그린다.
[주D-005]노전(魯錢)과 원이(猿耳) : 이덕무의 윤회매십전 오지화(五之花)에 꽃잎 5개가 말려 있고 꽃술이 나와 있지 않은 매화를 ‘옛 노전〔古魯錢〕’이라 하고, 꽃잎 3개는 떨어지고 남은 2개도 떨어지려 하나 꽃술만은 싱싱한 매화를 원이(猿耳)라고 한다고 하였다. 노포(魯褒)가 전신론(錢神論)을 지었기 때문에 돈을 일러 노전(魯錢)이라 한다.
[주D-006]규경(窺鏡)과 영풍(迎風) : 이덕무의 윤회매십전 오지화(五之花)에 꽃잎 5개가 만개한 것을 규경(窺鏡) 또는 영면(迎面)이라 한다고 하였다. 영풍은 ‘영면’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아무개에게 보냄
다른 사람에게 처음 손이 되어 가면, 모름지기 낯설거나 껄끄러운 고태(故態)를 가져야 하고, 친숙하거나 다정한 듯한 태도는 짓지 말아야 하오. “손을 씻고 국을 끓여 먼저 시누이를 불러 맛보게 한다.” 했는데, 이 시를 지은 이는 아마 예(禮)를 아는 사람일 거요. 태묘(太廟)에 들어서는 매사를 반드시 물어서 해야 하는 법이오.
[주D-001]손을 …… 한다 : 당 나라 왕건(王建)의 신가랑(新嫁娘) 시에 “시집온 지 사흘 지나 부엌에 가서, 손을 씻고 국을 끓였네. 시어머니 식성을 아직 모르니, 먼저 시누이에게 맛보게 했네.〔三日入廚下 洗手作羹湯 未諳姑食性 先見小姑嘗〕”라고 하였다. 새색시의 조심성 있고 사려 깊은 태도를 칭송한 것이다.
[주D-002]태묘(太廟)에 …… 법이오 : 《논어》 팔일(八佾)에 “공자가 태묘에 들어서 매사를 물으니, 어떤 사람이 ‘누가 추인(鄹人)의 아들이 예(禮)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에 들어서 매사를 묻는구나.’라고 하였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예이니라.’라고 말했다.” 하였다. 공자가 노(魯) 나라 주공(周公)의 묘에서 제사를 거들 때 매사를 물었던 것은 결코 예를 몰라서가 아니라, 극도로 공경하고 근신하여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두 번째 편지
시골 사람이 서울 맵시를 내 봤자 결국 촌놈이오. 비하자면 술 취한 사람이 아무리 정색을 해 봤자 하는 짓이 취한 짓뿐인 것과 같으니, 이걸 꼭 알아야 하지요.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군수(君受)에게 답함
보내 준 글은 비하자면 몰골도(沒骨圖)와 같소. 착색에 옅고 짙은 것이 있은 연후에야 눈썹과 눈을 분간할 수 있는 거지요.
[주D-001]몰골도(沒骨圖) : 묵필(墨筆)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곧바로 채색한 그림을 말한다.
[주D-002]눈썹과 눈 : 글의 요점을 비유한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김명호 (공역) ┃ 2004
중존(仲存)에게 보냄
매탕(梅宕)은 반드시 미친병이 발작하고 말 것이니, 그대는 아는지요? 그가 장연(長淵)에 있을 때 일찍이 금사산(金沙山)에 올라 큰 바다가 하늘에 닿을 듯이 파도치는 것을 보고서 스스로 자기 몸이 좁쌀만 한 것을 깨닫자, 갑자기 수심이 생겨서 마침내 탄식하며 말하기를,
“가령 저 탄환만 한 작은 섬이 여러 해 동안 기근이 든 데다 풍파가 하늘에 닿아서 구호식량마저 보낼 수 없다면 이를 어찌하나? 해적들이 몰래 일어나 바람에 돛을 올리고 침략해 와서 도망할 곳이 없게 된다면 이를 어찌하나? 용, 고래, 악어, 이무기가 육지를 타고 올라와 알을 까고 사람을 사탕수수 줄기처럼 마구 씹는다면 이를 어찌하나? 바다의 파도가 크게 넘쳐 마을을 갑자기 덮쳐 버린다면 이를 어찌하나? 바닷물이 멀리 옮겨 가 하루아침에 물길이 끊어지고 고립된 섬의 밑부분이 높이 솟구쳐 우뚝이 바닥을 보인다면 이를 어찌하나? 파도가 섬의 밑부분을 갉아먹어 부딪치고 넘치고 하길 오래 하여 흙도 돌도 지탱하기 어려워 물살에 무너지고 만다면 이를 어찌하나?”
하였다지요.
그의 의심과 염려가 이와 같으니 미치지 않고 어쩌겠소. 밤에 그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포복절도하여 손 가는 대로 써 보내는 거요.
[주C-001]중존(仲存) :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의 자이다.
[주D-001]매탕(梅宕) : 이덕무의 일호(一號)이다. 이덕무는 1768년 음력 10월 한양에서 황해도 장연(長淵)의 조니진(助泥鎭)까지 다녀온 여행일기인 서해여언(西海旅言)을 썼다. 서해여언 10월 12일 조에 조니진에 머물면서 장산곶(長山串)의 사봉(沙峯) 즉 금사산(金沙山)에 올라 대해를 바라보며, 연암이 편지에서 인용한 바와 같은 망상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단 연암은 서해여언 중의 해당 내용을 조금 줄여 인용하였다. 《靑莊館全書 卷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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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敬甫)에게 보냄
공교롭고도 묘하구려, 이처럼 한데 만나게 된 인연이여! 도대체 누가 이런 계기를 만들었단 말이오? 그대는 나보다 앞서 나지도 않았고 나는 그대보다 뒤에 나지도 않아 둘 다 한 세상에 태어났으며, 그대는 이면(剺面)하지도 않았고 나는 조제(雕題)하지도 않아 둘 다 한나라에 태어났으며, 그대는 남쪽에 살지 않고 나는 북쪽에 살지 않아 둘 다 한마을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그대는 무(武)를 업으로 삼지 않고 나는 농사를 배우지 않아 똑같이 사문(斯文)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큰 인연이요 큰 기회(期會)가 아니겠소.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말에 구차스레 동조하거나 상대가 하는 일에 구차스레 맞추려고 한다면, 이는 차라리 위로 거슬러 올라가 천고(千古)의 옛사람을 벗하거나 백세(百世) 후에도 미혹되지 않는 편이 낫지 않겠소.
[주D-001]이면(剺面) : 칼로 얼굴에 자국을 낸다는 뜻이다. 고대에 흉노(匈奴)나 위구르 등지의 종족들은 큰 우환이나 초상을 당하면 칼로 얼굴에 자국을 내어 그 비통함을 표시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북쪽 나라에서 태어남을 말한 것이다.
[주D-002]조제(雕題) : 칼로 이마 위에 꽃무늬를 새겨 넣는다는 뜻이다. 고대에 남방의 소수민족 사이에 유행했던 풍속으로, 여기에서는 남쪽 나라에서 태어남을 말한 것이다.
[주D-003]백세(百世) …… 않는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 28 장에, 군자의 도는 “백세 후에 성인(聖人)을 기다려도 미혹되지 않는다.〔百世以俟聖人而不惑〕”고 하였다. 이는 군자는 백세 후에 출현할 성인이라도 자신과 동일한 도를 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뜻이지만, 연암의 편지에서는 백세 후에라도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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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안회(顔回)처럼 누항(陋巷)에 살면서, 그가 즐거워한 바가 무슨 일인지를 탐구하고 있소이다. 원헌(原憲)은 봉려(蓬廬)에 살면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가난할 뿐이다.”라고 말했지요.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씩 주고 저녁에는 네 개씩 주니, 도토리를 주고서도 원숭이들을 화나게 만들었소. 그리고 맹자는 일국(一國)으로써 팔국(八國)을 굴복시키려는 것을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짓에 비유하였지요.
그대는 나날이 나아가오. 나도 나날이 나아가겠소.
[주D-001]안회(顔回)처럼 …… 있소이다 : 《논어》 옹야(雍也)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항(陋巷)에서 살게 되면 남들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라고 하였다. 또한 술이(述而)에서도 공자는 “거친 음식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즐거움은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가난한 생활도 그의 즐거움을 변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회나 공자가 무엇을 즐거워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주자(周子)는 이같이 공자와 안회의 즐거움을 말한 대목에서 ‘즐거워한 바가 무슨 일인지〔所樂何事〕’를 깨우치도록 하였고, 정자(程子)도 공자가 ‘즐거워한 바가 무슨 일인지〔所樂者何事〕’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연암은 박제가(朴齊家)에게 굶주림을 하소연하며 돈을 꿔 달라고 요청한 편지에서 해학적인 어조로, “공자가 진(陳) · 채(蔡)에서 겪은 것처럼 곤액이 심하지만, 도를 실천하느라고 그렇게 된 것은 아닐세. 그러나 망령되이 안회의 누항 생활에 비기면서, 그가 즐거워한 바가 무슨 일인지 탐구하고 있네.〔厄甚陳蔡 非行道而爲然 妄擬陋巷 問所樂而何事〕”라고 하였다. 《貞蕤閣文集 卷4 答孔雀館》
[주D-002]원헌(原憲)은 …… 말했지요 : 공자의 제자 원헌은 쑥대를 짜서 문을 겨우 만들어 단 가난한 집에 살면서도 정좌하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출세한 자공(子貢)이 좋은 옷차림에 거마(車馬)를 타고 원헌을 방문했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그를 보고는 탄식하며 무슨 병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원헌이 “재물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운 것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 하네. 나는 지금 가난한 것이지 병에 걸린 것은 아니라네.”라고 하였더니 자공이 부끄러워하였다고 한다. 《莊子 讓王》
[주D-003]원숭이를 …… 만들었소 :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주D-004]맹자는 …… 비유하였지요 :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서 맹자는 제(齊) 나라 선왕(宣王)이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고 싶어하자, 이를 나무에 올라서 물고기를 구하는 짓에 비유하면서, 천하의 강국 아홉 나라 중의 하나에 불과한 제 나라가 나머지 여덟 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하였다.
[주D-005]그대는 …… 나아가겠소 :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저 할미새를 보라, 부지런히 날면서 울어 대지 않는가. 나는 나날이 나아가니, 너도 다달이 나아가라.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너를 낳아 주신 분들을 욕되게 말아라.〔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 하였다. 이 시는 형제가 각자 나아가는 길이 혹시 다를지라도 부모에게 욕되지 않도록 서로 부지런히 노력하자고 형이 동생을 면려(勉勵)한 시로 풀이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암은 친구 경보(敬甫)를 면려하는 뜻으로 이 시의 한 구절을 변형하여 인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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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재(遠心齋)에게 보냄
혜풍(惠風 유득공(柳得恭))의 집에 《속백호통(續白虎通)》이 있는데 한(漢) 나라 반표(班彪)가 짓고 진(晉) 나라 최표(崔豹)가 주석을 내고 명(明) 나라 당인(唐寅)이 평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기서(奇書)라 여기고 소매 속에 넣고 돌아와 등잔 밑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혜풍 자신이 범에 대한 얘기를 모아서 한번 웃을 자료로 삼은 것이 아니겠소.
그러니 나는 참으로 머리가 둔하다 하겠소. 당인(唐寅)의 자가 백호(伯虎)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소. 그렇기는 하지만, 한번 웃음거리로 읽기에는 족할 것이니, 보고 나서 바로 돌려주기 바라오.
[주D-001]당인(唐寅)의 …… 것이었소 : 《백호통(白虎通)》은 한(漢) 나라 때 반고(班固)가 편찬한 책으로, 백호관(白虎觀)에서 오경(五經)에 관해 논의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유득공이 《속백호통》을 반고의 아버지인 반표(班彪)가 편찬하고, 《고금주(古今注)》의 저자 최표(崔豹)가 주석을 냈다고 꾸며 댄 것은, 그들의 이름에 각각 작은 범 표(彪) 자, 표범 표(豹) 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인(唐寅)이 평했다고 꾸며 댄 것은 그의 자가 백호(伯虎)이기 때문이었는데, 그 점을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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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책(楚幘)에게 보냄
그대는 행여 신령한 지각과 민첩한 깨달음이 있다 하여 남에게 교만하거나 다른 생물을 업신여기지 말아 주오. 저들에게 만약 약간의 신령한 깨달음이 있다면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으며, 만약 저들에게 신령한 지각이 없다면 교만하고 업신여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들은 냄새나는 가죽부대 속에 몇 개의 문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많은 데 불과할 따름이오. 그러니 저 나무에서 매미가 울음 울고 땅 구멍에서 지렁이가 울음 우는 것도 역시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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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成伯)에게 보냄
문 앞의 빚쟁이는 기러기처럼 줄 서 있고 / 門前債客鴈行立
방 안의 취한 놈들 고기 꿰미마냥 잠을 자네 / 屋裡醉人魚貫眠
이 시는 당(唐) 나라 때 큰 호걸 사나이가 지은 시입니다. 지금 나는 찬 방에 외로이 지내면서 냉담한 품은 마치 선(禪)에 든 중과 같은데, 다만 문 앞에 기러기처럼 늘어선 놈들 두 눈깔이 너무도 가증스럽소.
매양 비굴하게 말해야 할 때면 도리어 등(滕) · 설(薛)의 대부를 생각할 뿐입니다.
[주C-001]성백(成伯) : 서중수(徐重修 : 1734~1812)의 자이다. 서중수는 연암의 둘째 누님의 남편으로 진사 급제 후 강화부 경력(江華府經歷)을 지냈다.
[주D-001]당(唐) 나라 …… 사나이 : 당 나라 때의 시인인 이파(李播)를 가리킨다. 이파는 원화(元和 : 806~820) 연간에 진사(進士)에 급제한 인물로서, 유우석(劉禹錫)과 백거이(白居易)로부터 칭송을 받을 정도로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위에 인용된 시는 그의 대표적인 시 ‘현지(見志)’의 일부분으로서 그 전문은 “작년에 산 거문고값 아직 내지 않았고, 올해 산 술값도 돌려주지 않으니, 문 앞의 빚쟁이는 기러기처럼 줄 서 있고, 방안의 취한 놈들 고기 꿰미마냥 잠을 자네.〔去歲買琴不與價, 今年沽酒未還錢, 門前債主雁行立, 屋裡醉人魚貫眠〕”이다. 《唐詩紀事 卷47》 《靑莊館全書 卷53 耳目口心書6》
[주D-002]등(滕) · 설(薛)의 대부 : 《논어(論語)》 헌문(憲問)에서 공자가, “맹공작(孟公綽)은 조(趙) 나라나 위(魏) 나라의 가로(家老)가 되기에는 충분하지만 등(滕) 나라나 설(薛) 나라의 대부(大夫)는 될 수 없다.” 하였는데, 이는 맹공작의 인물됨이 청렴하고 욕심이 없기는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가 부족한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등 나라나 설 나라는 약소국이라 그 나라의 대부가 되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고생이 막심하다. 연암은 가난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무능한 자신을 그에다 견주어 탄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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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나는 나이 스무 살 되던 때 ‘설날 아침에 거울을 마주 보며〔元朝對鏡〕’라는 시를 지었지요.
두어 올 검은 수염 갑자기 돋았으나 / 忽然添得數莖鬚
육척의 몸은 전혀 커진 것이 아니네 / 全不加長六尺軀
거울 속의 얼굴은 해를 따라 달라져도 / 鏡裡容顔隨歲異
철모르는 생각은 지난해 나 그대로 / 穉心猶自去年吾
이 시는 대개 턱밑에 드문드문 난 짧은 수염을 처음 보고서 기뻐서 지은 것이라오. 그 뒤 6년이 지나 북한산에서 글을 읽는데 납창(蠟窓 밀랍 종이를 바른 창)의 아침 햇살에 거울을 마주하고 이리저리 돌아보니 두 귀밑에 몇 올의 은실이 비치는 것이 아니겠소. 스스로 기쁨을 가누지 못하여 시(詩)의 재료를 더 얻었다 생각하고 아까워서 뽑아 버리지 않았지요. 지금 다시 5년이 지나니 앞에서 이른바 시의 재료라는 것은 어지러이 얼크러지고, 턱밑에 드문드문 났던 것은 뻣세기가 생선의 아가미뼈 같으니, 연소한 시절의 철모르던 생각을 회상하면 저도 몰래 부끄러워 웃게 됩니다. 만약 진작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아무리 새 시 몇 백 편을 얻는다 해도, 어찌 스스로 기뻐하면서 남이 알지 못할까 걱정했겠소.
우리들이 만약 말을 타고 문을 나서려고 한다면 용문(龍門)에 오르기보다 어려우니 어느 때에 서로 만날 수 있겠소? 생각이 날 때 즉시 가야 하지만, 단지 지독한 가뭄이 돌을 녹이고 바람 먼지가 얼굴을 덮칠 뿐 아니라, 귀인(貴人)은 더위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애쓰고 있고 시생(侍生)은 하마(下馬)를 해야 하니 이것이 난감하외다. 이를 어찌하겠소.
[주D-001]설날 …… 보며 : 이 시는 《연암집》 권4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에 수록되어 있다.
[주D-002]지금 …… 지나니 : 이로 미루어 이 편지가 연암의 나이 31세 때인 1767년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주D-003]용문(龍門)에 …… 어려우니 : 황하(黃河)의 잉어가 급류를 거슬러 용문에 오르면 용으로 변한다고 해서, 과거에 급제하거나 입신출세하는 것을 등룡(登龍)이라 한다.
[주D-004]귀인(貴人)은 …… 있고 : 귀인은 성백(成伯)을 가리킨다. 원문은 “貴人喝扇”으로 되어 있는데, 선갈(扇喝)은 더위 먹은 사람에게 부채질을 해 준다는 뜻으로, 덕정(德政)을 찬양할 때 쓰는 말이다.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더위 먹은 사람을 보고 손수 부축하여 부채질을 해 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淮南子 人間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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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從兄)에게 올림
사람들이 심한 더위와 모진 추위를 만나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옷을 벗거나 부채를 휘둘러도 불꽃 같은 열을 견뎌내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하고, 화롯불을 쪼이거나 털배자를 껴입어도 한기(寒氣)를 물리치지 못하면 더욱 떨리기만 하는 것이니, 이것저것 모두가 독서에 착심(着心)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요컨대 자기 가슴속에서 추위와 더위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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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이른바 이광(李廣)은 운명이 기구하여 편장(偏將)과 비장(裨將)들도 다 후(侯)에 봉(封)해졌거늘 홀로 그리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짧은 베옷 바람으로 차가운 날씨에 옷자락을 끌고 어느 왕공(王公)의 문하를 쫓아다녔겠습니까?
찾으시는 문편(文編 책으로 엮은 글)을 삼가 받들어 올리기는 합니다만, 제왕(齊王)의 문 앞에서 거문고를 잡고 있는 격이어서 재주를 파는 방법을 모른다는 비웃음을 살 뿐이요, 초(楚) 나라 궁궐에 옥(玉)을 바치는 격이어서 발뒤축이 잘려도 후회하지 않을는지 두렵습니다.
[주D-001]이광(李廣)은 운명이 기구하여 : 한(漢) 나라 무제(武帝) 때 이광은 자원하여 대장군(大將軍) 위청(衛靑)의 휘하에서 흉노(匈奴) 정벌에 종군했으나, 이광이 늙었다고 여긴 무제는 위청에게 이광은 운명이 기구하니 선우(單于)와 대적하지 못하게 하라는 밀지(密旨)를 내렸다. 《漢書 卷54 李廣傳》
[주D-002]제왕(齊王)의 …… 격 : 제(齊) 나라 왕이 피리를 좋아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제 나라에서 벼슬을 얻기 위해 거문고를 들고 가서 제왕의 문 앞에서 3년 동안 서 있었으나 들어가 보지도 못하자, 밖에서 크게 소리치기를, “내가 거문고를 연주하면 귀신도 춤을 추게 할 수가 있으며 헌원씨(軒轅氏)의 음률에도 합치가 됩니다.” 하였다. 그러자 문객이 나와 꾸짖기를, “왕께서는 피리를 좋아하신다. 네가 거문고를 아무리 잘 연주한다 한들 왕께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하였다. 한유(韓愈)는 말하기를, “이는 거문고는 잘 타지만 제 나라에 벼슬을 구하는 것은 잘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문체가 당시의 유행에 맞지 않는 것을 그에 비기어 탄식하였다. 《韓昌黎文集 卷18 答陳商書》
[주D-003]초(楚) 나라 …… 격 : 변화(卞和)가 직경이 한 자나 되는 박옥을 얻어 초 나라 여왕(厲王)과 무왕(武王) 두 임금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보고 돌이라 하여 두 발이 잘리고 말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문왕이 이 사실을 듣고 사람을 보내 이유를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내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여 마침내 보옥을 얻고 이를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이름하였다. 《韓非子 卷4 和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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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大瓠)에게 답함
보내 주신 원관루부(遠觀樓賦)는 종횡무진 거침없는 표현이 지나쳐 글제의 뜻을 고려하지 않았더군요. 비하자면 초상화를 그릴 때 본래의 모습과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어도 아무개의 초상화라고 제목을 붙여 놓지 않는다면 필경에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도 오히려 불가(不可)하거늘, 더 나아가 녹야당(綠野堂) 안의 사람을 그리면서 그 모습을 고쳐 피부가 하얗고 눈썹이 선명하게 그려 놓는다면, 비록 걸어 놓고 보기에는 좋지만 배도(裴度)나 곽광(霍光)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주C-001]대호(大瓠) : 누구의 호인지 알 수 없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서 호를 따왔다. 혜자(惠子)가 위(魏) 나라 왕이 준 대호(大瓠 : 큰 조롱박)의 씨앗을 심었더니 그 열매가 너무 커서 쓸모가 없어 부수어 버렸다고 하자, 장자(莊子)는 그것으로써 대준(大樽 : 요주〈腰舟〉)을 만들어 강호(江湖)에 떠서 노니는 데 쓰면 되지 않느냐고 공박하였다.
[주D-001]녹야당(綠野堂) …… 그려 놓는다면 : 녹야당 안의 사람은 당 나라 때의 재상인 배도(裴度 : 756~839)를 가리킨다. 배도는 벼슬에서 은퇴하고 낙양(洛陽)으로 물러나 녹야당이란 별장을 짓고 당대의 시인인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과 교유하였다 한다. 그리고 피부가 하얗고 눈썹이 선명한 것은 한 나라 때 대장군을 지낸 곽광(霍光 : ?~기원전68)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곽광은 사람됨이 침착하고 치밀하며, 키가 7척 3촌에 하얀 피부와 선명한 눈썹, 멋진 수염을 지녔다고 한다. 《新唐書 卷173 裴度傳》 《漢書 卷68 霍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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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
남에게 청하는 것과 남에게 주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싫으냐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청하는 것이 싫다 할 것이오. 만약 남에게 주는 자의 마음이 실로 남에게 청하는 자의 마음만큼이나 싫다면, 사람치고 남에게 주는 자가 없으리다. 그런데 지금 나는 청하지 않고서도 매우 후하게 받았으니, 그야말로 그대는 남에게 주는 것을 즐기는 분이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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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은 반드시 보응이 있고, 침착하고 조용한 자는 반드시 수양이 있고, 너그럽고 후한 자는 반드시 복이 있고, 부지런하고 검소한 자는 반드시 이룸이 있다.” 했는데, 이는 감경(甘京)의 말이지요. 그의 스승 정산(程山)은 여기에다 네 가지 말을 더했는데, “근엄하고 공경한 자는 반드시 실수가 없고, 청렴하고 근신한 자는 반드시 허물이 없고, 자상하고 신중한 자는 반드시 뉘우침이 없고, 겸손하고 화순한 자는 반드시 욕보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찍이 이 두 사람의 말을 외우고 다녔더니, 이장(李丈)께서 말씀하기를,
“어찌 기필할 수 있으리오만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 할 따름이다.”
하였지요. 지금 무필재기(無必齋記)를 보니, 성인(聖人 공자(孔子))에게 사심(私心)이 없다는 걸 꿰뚫어 보았다 하겠소.
[주D-001]감경(甘京) : 1622~? 명말 청초(明末淸初)의 학자로 호는 건재(健齋)이며, 사문천(謝文洊)의 제자이다.
[주D-002]정산(程山) : 명말 청초의 학자인 사문천(謝文洊)을 가리킨다. 정산(程山)은 그의 호이다. 초기에는 왕양명(王陽明)의 학문을 연구하다 40세 이후에는 정주(程朱)의 학문으로 전환하였고 정산학사(程山學舍)를 세워 학문에 매진하였다.
[주D-003]이장(李丈) : 연암의 장인인 이보천(李輔天)을 가리킨다. 《과정록》 초고본 권4에 연암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필재기」를 논하며 ‘이장의 말씀(李丈語)’이라 일컬은 조목은 바로 장인 이보천의 말씀이라고 밝혔다.
[주D-004]무필재기(無必齋記)를 …… 하겠소 :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는 네 가지를 끊으셨다. 억측하지 않고, 기필하지 않으며, 고집하지 않고, 아집을 부리지 않았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고 하였다. ‘毋必’은 ‘無必’과 같은 말로, 반드시 이루려고 무리하지 않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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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湛軒)에게 사과함
어젯밤 달이 밝기로 비생(斐生)을 찾아갔다가 그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을 지키던 자가 말하기를,
“키 크고 수염 좋은 손님이 노랑말을 타고 와서 벽에다 글을 써 놓고 갔습니다.”
하기에, 촛불을 비춰 보니 바로 그대의 필치였소. 안타깝게도 손님이 왔다고 알려 주는 학(鶴)이 없기에 그만 그대에게 문에다 ‘봉(鳳)’ 자를 남기게 하였으니, 섭섭하고도 송구하구려. 이제부터서는 달 밝은 저녁이면 당분간 밖에 감히 나가지 않을 거요.
[주C-001]담헌(湛軒) : 홍대용(洪大容)의 호이다.
[주D-001]손님이 …… 학(鶴) : 송(宋) 나라의 은사(隱士)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한 임포(林逋)는 학 두 마리를 길렀는데 손님이 오면 그 학이 손님이 온 것을 알렸다고 한다. 《宋詩鈔 卷13 林逋和靖詩鈔序》
[주D-002]문에다 …… 하였으니 : 위(魏) 나라 때 혜강(嵇康)이 여안(呂安)과 친하여 매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면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갔다. 어느 날 여안이 혜강을 찾아갔으나 마침 혜강은 집에 없고 그의 형 혜희(嵇喜)가 문을 나와 맞이하자 여안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문 위에다 ‘봉(鳳)’ 자를 쓰고는 가 버렸다. 혜강이 돌아와서 그것을 보고 ‘범조(凡鳥)’ 즉 ‘평범한 새’로 파자(破字)하여 읽었다. 즉 혜희는 평범한 인물이므로 함께 사귈 만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누구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韻府群玉 卷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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