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전문 입학후 첫작품. 최현배 (崔鉉培, 1894년 10월 19일~1970년 3월 23일)교수에게 한글의 우수성도 배우고, 이양하 이양하(李敭河, 1904년~1963년)교수에게 영문학도 배우고.....

윤동주의 시작 노트(광양 친구 정병욱의 집에 보관됨)

*윤동주님의 시작 노트에는 매작품마다 작품 끝에 날짜를 기록했다. 동일한 시작노트는 모두 3본으로 전함.

윤동주 시인은 독립운동 민중동원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체실험 대상자였다. 이는 바닷물로 인체의 피를 대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실험이었다.

https://kydong77.tistory.com/m/21324

 

박아지 여사(정병욱 母), 광양의 윤동주 유고 31편, 연세대 이관

서시 ㅡ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kydong77.tistory.com

관광지가 된 정병욱의 집에는 마루에 덮개를 열어둔 곳이 있다. 정병욱에게 전한 시작 노트 1본을 마루 밑 여기에 보관했다고 한다..

https://namu.wiki/w/%EC%A0%95%EB%B3%91%EC%9A%B1

 

정병욱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생애와 학문 활동 1922년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에서 3.1 운동 후 보통학교

namu.wiki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1]와 함께 찍은 사진  말년의 정병욱 교수
이름
정병욱 (鄭炳昱)
출생
사망
1982년 10월 12일 (향년 60세)
본관
아호
백영(白影)[3]
학력
진정공립보통학교 (전학)
하동공립보통학교 (졸업)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 / 중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국어국문학과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 석사·박사)
[정병욱님은] 1946년 입학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1948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부산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영 정병욱의 저서는 학술 저서, 수필집, 대담집, 고전주석 및 번역서, 교과서 등 다양한 책이 있는데 이 중 주석 및 번역서와 교과서류를 제외한 저술서는 전집으로 재발행되기도 하였다.
  • 국문학산고(신구문화사, 1959)
  • 시조문학사전(신구문화사, 1966)
  • 구운몽(공저, 교주, 1972)
  • 한국고전시가론(신구문화사, 1977)
  • 고전의 바다(장덕순, 이어령 공저, 현암사, 1977)
  • 표해록(국역, 범우사)
  • 한국고전의 재인식(홍성사, 1979)
  • 한국의 판소리(집문당, 1980)
  • 바람을 부비고 서있는 말들(신구문화사, 1980)
  • 논문작성법(정한모 공저, 1981)
  • 고전탐구의 뒤안길에서(신구문화사, 1982)
  • 백영 정병욱 저작집 8권(신구문화사, 1995)
  • 이 밖에 1970년대 고교 검인정 교과서로 표준 고전, 표준 작문 등이 있음
 

https://www.youtube.com/watch?v=jFPQRDPKmu8

 

무서운 시간

ㅡ윤동주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 전문)

 

 

 

삼각산 길상사

 

 

神光不昧 萬古徽猷

신광불매 만고휘유,

거룩한 빛이 어둠을 헤치고 오래도록 빛나니, 이 문에 들어서면서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入此門來 莫存知解

입차문래 막존지해

신광의 밝고 오묘한 뜻을 알기 위해서 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세상의 알음알이를 논하지 말라.

길상화 보살의 화장한 유해는 이곳에 뿌려졌다고 한다. 그분의 시주는 헛되지 않았다.

그분은 대원각 터에 길상사와 자신의 사당을 남겼다. 

 

 

https://www.dwb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4297

 

[원종섭 세계 현대시 詩 칼럼]5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DWBNEWS(장애인복지뉴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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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ㅡ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38년 <여성> 3권 3호, 3월호에 발표        

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C%84%9D

 

백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백석의 함흥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을 찍은 1936년 11월 당시의,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 졸업반 학생들의 내년도 졸업 예정 모임 당시 조선인 교원들이 찍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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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작가 정보본명출생사망국적언어직업학력경력본관활동기간장르부모배우자자녀형제친지주요 작품웹사이트

백석의 함흥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을 찍은
1936년 11월 당시의,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 졸업반 학생들의
내년도 졸업 예정 모임 당시 조선인 교원들이 찍은
1937년 3월 함남함흥영생고보 졸업 사진첩 사진.
백기연(白夔衍) → 백기행(白夔行) → 백석(白石)
1912년 7월 1일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정주군
1996년 2월 15일(83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어프랑스어일본어독일어영어러시아어중국어
소설가시인번역문학가문학평론가
일본 도쿄 아오야마 가쿠인 졸업
조광 편집위원
수원
1934년~1963년
시문학소설번역평론
백영옥(부)[1]
단양 이봉우(모)
초배 우봉 이송저(1937년 사별)
계배 결성 장정옥(1941년 사별)
삼취 남평 문경옥(1947년 이혼)
사취 수안 리윤희(1957년 마지막 결혼)
3남 2녀(모두 마지막 부인 리윤희 소생)
(그 가운데 장남 백화제, 장녀 백지제)
백협행(첫째 남동생)
백상행(막내 남동생)
백현숙(막내 누이동생)
백종지(친조부)
이양실(외조부)
시집 《사슴》
〈백석〉. 《두피디아》. (주)두산.

 

 

https://ko.wikipedia.org/wiki/%EB%B2%95%EC%A0%95_(%EC%8A%B9%EB%A0%A4)

 

법정 (승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법정(속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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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속명 박재철(朴在喆), 1932년 11월 5일 ~ 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했다.

1954년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불교신문 논설위원과 주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서울 강남구 수도산 봉은사 다래헌에 기거하며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다. 1975년 조계산 송광사에 산내 암자인 불일암(佛日庵)을 손수 지어 17년을 지냈고, 다시 오대산 자락 깊은 곳에 수류산방을 지어 기거하며 빛나는 명 수필을 남겼다.

2010년 3월 11일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9세, 법랍 56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월 26일로 지낸다.

대표 저서

 

 

https://ko.wikipedia.org/wiki/%EA%B4%80%EC%84%B8%EC%9D%8C%EB%B3%B4%EC%82%B4

 

관세음보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관세음보살 대한민국 보물 제1426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왼쪽 아래에 선재동자가 있다. 산스크리트어 अवलोकितेश्वर avalokiteśvara(아발로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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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산스크리트어: अवलोकितेश्वर 아발로키테슈바라)은 불교 보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보살로, 중생의 소리를 듣고 어디든지 몸을 나누어,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제해주는 보살이다.[2]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도 많이 부르는데,[3] 중국어권에서는 성관음(聖觀音)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과 함께 불교 2대 보살이고,[4] 문수보살 보현보살까지 합해서는 불교 4대 보살이라고 일컫는다.[5]

대한민국의 3대 관음성지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 보리암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홍련암인천광역시 강화도 낙가산 보문사이고, 전라남도 여수시 향일암을 더해 4대 관음성지라고 한다.[6]

지도무난이요 유형간택이니 단만증애하면 통연명백이라

https://namu.wiki/w/%EA%B8%B8%EC%83%81%EC%82%AC

 

길상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에 위치한 사찰 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의 말사(末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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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력

공덕주 김영한(1916~1999)은 가난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만난 남편과 사별한 후, 기생이 되었다. 기명은 진향(眞香). 성북동 기슭에 서울 3대 요정 중의 하나인 대원각을 1950년대부터 운영해 부를 얻었지만,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생을 천하게 여기는 풍토는 계속되었기에, 이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김영한은 말년에 길상사 시주와 시인 백석과의 일화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세를 얻게 된다.

김영한은 자신이 백석의 연인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문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백석 연구가 송준은 "생전의 김영한을 인터뷰했는데, 의구심이 든다. 백석이 유명해지니 관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했고, 백석 전문가 이동순 역시 "백석과 김영한의 사랑은 실제가 아니며, 조작되고 윤색된 이야기"라고 기고했다.[3]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법정 스님에게 요정 터 7천여 평과 건물 40여 채를 시주하고 절을 세워달라며 간청하였다. 법정 스님은 처음에 사양하였으나,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고, 이전 길상사의 창건 법회에서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정 스님은 시주를 요청하는 김영한님에게 1년 뒤 다시 만나자고 전했다 한다.

1년 뒤에도 그 마음이 변함 없으면 접수하겠다는 취지다.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이시다.

스님 '스'는 사(師)의 변음이다. 결국 스님이란 스승님이란 뜻이다.

길상사가 백석의 거주지로 알려졌으나, 이는 백석 연구가 송준이 백석의 일본 아오야마가쿠인 유학 시절 3학년 시기의 주소를 도쿄도 무사시노시 기치조지(길상사) 1875번지에서 살았던 것으로 잘못 추정했기 때문이며, 아오야마가쿠인대학 학적부와 동창회부를 통해 정확한 주소가 다시 알려졌다. 김영한이 길상사라고 절 이름을 지은 것은, 자신과 백석과의 관련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가로도 1천억 원이 넘는 액수라고 하는데, 무소유를 설하던 법정 스님이 이렇게 큰 액수의 시주를 받은 것에 대하여 불교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법정이 얼씨구나 덥석 받은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김영한의 평생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어느 정도 참작할 만한 근거는 된다.

1999년에 김영한이 사망하자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다. 절터에 골고루 산골했기 때문에 따로 무덤은 없으나,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절 안에 있다. 2010년에는 법정 스님도 여기서 사망했다. 극락전에는 김영한의 영정이 있으며, 진영각에는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한다.

 

법정스님 임종시 대화

수제자가 여쭈었다.

"스님, 사리는 어찌 처리할까요?"

법정 스님이 대답했다.

"찾아 거두지 마라!"

 

https://namu.wiki/w/%EC%82%AC%EB%A6%AC(%EB%B6%88%EA%B5%90)

 

사리(불교)

사리 ( 舍 利 )는 한자문화권 불교 에서 고승이나 여래의 시신을 뜻한다. 불교계에서는 사리를 크게 진신사리(眞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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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의 어원인 사리라(शरीर, Śarīra)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보편적으로 시신을 가리키던 말이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고승이나 여래의 시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기 위해 번역할 때 일부러 음역하였다. 이미 삼국시대 문서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로 산스크리트어의 본디 의미와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불교가 중국을 거쳐서 전래되었으므로,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중국을 거치며 의미가 달라진 상태 그대로 도입되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진신사리는 석가모니의 실제 유해, 법신사리는 불법(佛法: 불교의 가르침)이 부처의 또다른 몸이라 하여 불경을 사리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승사리는 고승의 시신, 또는 그들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돌 조각을 가리킨다. 한국에서 일반대중에게 다짜고짜 '사리'라고 하면 대개는 고승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승사리를 떠올린다. 한국 불교계에서도 승려의 시신을 높여서 법구(法軀)라고 부름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불자들조차도 '사리'라고 하면 보통은 화장하면 나오는 구슬 같은 승사리를 떠올린다.

한자 문화권의 고서에서는 사리를 두고 유형(遺形)이란 표현도 사용했는데, 2009년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 심주석에서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 봉영기는 백제 무왕 40년(639)에 제작했는데, 여기서도 사리를 유형(遺形)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부처나 고승이 지상에 남긴(遺) 육신의 형체(形)라는 뜻이다. 원래는 유형(遺形) 또한 시신을 돌려 표현하는 말인데, 사리와 의미가 같으므로 통용하여 쓴 것이다.

 

[시사뉴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1222716.html

 

미, 한국 요청엔 침묵하더니…아르헨티나와 28조원 통화스와프 체결

미국이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매입하고 아르헨티나와 200억달러(약 28조억원)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극심한 유동성 부족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수세에 몰린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

www.hani.co.kr

미국이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매입하고 아르헨티나와 200억달러(약 28조억원) 통화 스와프를 체결했다. 극심한 유동성 부족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수세에 몰린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에게 미국이 즉각적인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한국의 통화스와프 요청에는 침묵하던 미국의 태도와는 대조적이다.

 

https://namu.wiki/w/%ED%86%B5%ED%99%94%20%EC%8A%A4%EC%99%80%ED%94%84

 

통화 스와프

통화 스와프 (currency swap)란 말 그대로 통화 에 대한 스왑 을 의미한다. 스왑이란 두 거래자가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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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스와프(currency swap)란 말 그대로 통화에 대한 스왑을 의미한다. 스왑이란 두 거래자가 두 개의 금융자산을 서로 교환하고 이를 일정시간 동안 활용한 후에 다시 바꾸는(돌려주는) 금융계약이다.

통화 스왑은 외화자금시장 참가자간의 통화 스왑과 국가들의 중앙은행간의 통화스왑으로 나뉘고, 이들은 서로 차이점이 있다. 외화자금시장의 통화 스왑은 흔히 낮은 이자율을 얻기 위해 하고 중앙은행간 통화스왑은 효율적인 외환확보를 위해서 한다.

이 문서의 내용은 구분없이 중앙은행간 통화 스왑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혼동하지 말 것.

통화교환협정이라고도 한다. 국가 간의 통화 스와프 협정은 필요할 때 두 나라가 자국 통화(예: 원화)를 상대국 통화(예: 캐나다 달러화)와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스와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스와프 시 무이자 거래가 아닌 약간의 수수료가 붙는다.

이게 국가간의 통화스와프가 처음 등장한 것은 미국은 1959년 독일연방은행과 미국 달러화와 독일 마르크화간의 교환거래 협정이 있고 나서이다. 근거

우리나라가 최초로 국가간 통화스와프를 한 것은 아래 쪽에도 나와있지만 2001년에 일본과의 20억 미 달러화 기준 통화협정이다.

 

3.3. 한-미 통화 스와프

2020년 3월 19일 한-미간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가 체결되었다. 기간은 최소 6개월이다. # 이로써 현재 대한민국의 통화 스와프 규모는 총 1,932억 달러+@[9] 이상이 되었다.# 이것은 미국에서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필적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비상사태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전 세계 주요국의 달러 유통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확장 전략과, 대한민국의 국가 신용도가 합치되어서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홍남기 경제부총리  기획재정부장관이 통화 스와프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지 이틀만에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전 세계 10개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면서 한국도 같이 체결한 것.

한미 통화 스와프가 대형 호재로 작용해서 다음날인 3월 20일에는 그동안 계속 상승하던 원화-달러 환율이 30원 이상 하락했다. 코스피 코스닥 지수도 각각 전날 대비 108.51포인트(+7.44%), 39.40포인트(+9.20%)가 상승했으며 한때 매수 사이드카까지 발동했다.

2020년 7월 30일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2021년까지 연장됐다. 규모는 똑같이 600억 달러이다. 한 차례 더 연장되었다가 2021년 12월 말 종료되었다. 싱가포르를 비롯, 다른 나라들도 이 시기에 통화 스와프가 종료되었다.

통화스와프는 종결되었지만 대신에 2021년 12월 27일 미국 재무부 Fed의 합의로 외국 및 국제 통화 당국 레포 팩토링(Foreign and International Monetary Authorities Repo Facility), 즉, 상설 임시 레포 기구를 통해서 미국 재무부채권,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 회사채, 타국 채권 등을 환매조건부로 매입해 미 달러화 자금을 외국 중앙은행 등에 공급하는 제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

2022년 한미정상회담를 통해서 한국, 미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정례협의 채널을 구축하였지만 통화 스와프는 불발되었다. # # #[10]

2022년 7월 19일에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과 통화 스와프와 금융 현안에 대해 협의했으나 별 성과없이 끝이 났다. #

2025년 9월 14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과 관세협상 과정에서 최근 무제한 한미통화스와프 개설 필요성을 제시했다며 미국에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청한 것이 알려졌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왜 한미 통화 스와프에 부정적일까

미국과의 무역 실무협상에서 정부는 3천5백억 달러 투자를 위해 통화 스와프 ...

m.ytn.co.kr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0099215i

 

올해만 주가 3배 폭등...삼성·SK하이닉스에 '정면 도전'

올해만 주가 3배 폭등...삼성·SK하이닉스에 '정면 도전', 박의명 기자, 경제

www.hankyung.com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는 대용량 저장장치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1956년 개발돼 초창기 PC부터 사용돼온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 기업들이 주도하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다.

노트북, 휴대용 저장장치 등 전방 IT 산업에서 자취를 감추던 HDD가 부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으로 대용량 저장장치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세계 1위 HDD 업체 웨스턴디지털은 지난달 전 제품 가격을 즉각 인상한다고 고객사에 통보했다. 배송 기간이 6~10주로 늘어나는 등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HDD 기업들이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지만 수요 대비 HDD 공급 부족량이 10%에 이르는 등 품귀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DD는 SSD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발열·소음이 크다. 반도체 기반의 SSD와 달리 원판 형태의 디스크를 빠르게 돌려 자기장으로 데이터를 읽고 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주문을 늘리는 이유는 SSD에 비해 가격(동일 용량 대비)이 5~8배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가성비 측면에선 HDD를 따라올 제품이 없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 모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AI 인프라 투자붐에 힘입어 글로벌 HDD 시장은 올해 488억달러(약 69조원)에서 2030년 645억달러(약 91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HDD 기업들도 가파른 성장이 예상된다. 글로벌 HDD 시장은 미국 웨스턴디지털(올 2분기 점유율 42%), 미국 시게이트(41%), 일본 도시바(17%) 등 3사가 나누어 먹고 있는 과점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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