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무위자(無爲者) 천연(天然) 스님은 집안이 본래 좋았으나 잘못 중이 되었는데
씩씩하여 기개가 있었다. 언젠가 지리산(智異山) 성모(聖母) 음사(淫祠)가 대중
에게 혹하게 한 것을 분하게 여겨, 이를 쳐부수었다. 남명 선생(南冥先生)이
'용사천연전(勇士天然傳)'을 지었으며 양송천(梁松川)이 그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제하였다
張拳一碎峯頭石
장권일쇄봉두석 주먹 한번 휘둘러 산꼭대기 돌 깨부수니
魍魎無憑白晝啼
망량무빙백주제 갈 곳 없는 잡귀가 대낮에 울더라
양봉래(楊蓬萊)ㆍ박사암(朴思庵)과 나의 중형이 모두 천연의 친구가 되었다.
천연이 약간 시를 알아 우리 중형에게 준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枉罹魚腹嗟龍困
왕이어복차용곤 잘못 고기 배에 걸린 용 곤핍함을 슬퍼하고
誤落鷄巢欲鳳衰
오락계소욕봉쇠 닭우리에 그릇 떨어진 봉황새 쇠해만 가네
임진란에 정 화상(靜和尙)을 따라 여러 번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자는 건중(楗仲), 창녕인(昌寧人)이며 벼슬은 전첨
(典籤)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자는 공섭
(公燮). 남원인(南原人)이며 벼슬은 부윤(府尹)이다. 정 화상(靜和尙)은 휴정
(休靜)이니 호는 청허(淸虛)이다. 임진란 때 승병 대장으로 팔도도총섭(八道
都摠攝)이 되었다. 시를 잘하였다. 송천의 '어양교를 지나다[過漁陽橋]'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樹色煙光畫太平
수색연광화태평 나무빛이며 풍경은 태평세월 그렸는데
河橋猶帶舊時名
하교유대구시명 강다리는 아직도 옛이름을 띠었구나
伊涼若是簫韶曲
이량약시소소곡 이주곡(伊州曲) 양주곡(涼州曲)이 소소곡(簫韶曲)[주D-032] 같았더라면
豈使胡雛犯兩京
기사호추범양경 어찌 오랑캐놈들이 양경(兩京)을 침범하였으리
청허의 '한성도중(漢城道中)'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海樹落秋霜
해수낙추상 바닷가 나무엔 가을 서리 내리고
楚關鴻去早
초관홍거조 초관(楚關)엔 이른 기러기 떠나네
鍾山獨鳥邊
종산독조변 종산(鍾山) 외론 새 나는 하늘가에
客子舟中老
객자주중노 나그넨 배 안에 늙어만 가네
[주D-032]이주곡(伊州曲)……소소곡(簫韶曲) : 의주곡과 양주곡(涼州曲)은 당(唐) 나라 때에 주로 기생들이 부르던
풍류 곡조이고, 소소곡은 정중한 순 임금의 음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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