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계에서 만난 <한계령>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5위, <한계령>
이 경 림 | 시인
저 산은 네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작사:하덕규, 작곡:하덕규, 노래:양희은) 중에서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못된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지 보수적인 유교 가문에서 함부로 입 밖으로 소리내어 노래 부를 수 없었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노래 못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가문의 누구도 가수가 되었다거나 하다못해 어느 콩쿨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으니 아마도 전자 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육 남매가 단칸방에서 아웅다웅 자란 기억 속에도 누구도 같이 실컷 노래 부르던 기억은 없는 걸 보면 그 믿음은 거의 사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르지는 못해도 듣는 쪽은 좋아하는 편인 내가 애절한 가요에 대한 추억이 왜 없겠는가? 특히 대중가요는 인간이 만든 어떤 예술보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어 생의 마디마다 그 시간을 함께 넘어온 가요들이 사람마다 다른 하고많은 사연들을 업고 어느날 문득 바알간 추억의 불을 켜들고 고개를 내밀곤 하는데…….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 경북 문경의 광산 사택에 살 때였다. 자고 새면 까아만 석탄길 위로 이마에 간데라 불을 단 광부들이 도시락을 달그락거리며 막장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첫새벽부터 공회당 앞 노무과에서 삑삑거리는 확성기를 통해 “에…… 안녕히 주무셨습니꺼? 은성광업소 가족 여러분……” 하고 시작되는 방송은 애국가를 필두로 하여 무작위로 흘러 나왔다.
대부분이 그 당시 유행하던 가요들로 기억되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가요(?)인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하는 행진곡 풍의 살벌한 곡에서부터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송민도의 <나 하나의 사랑>, 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 나애심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하는 다소 음험하고 애상적인 노래를 들으며 아홉 살 소녀였던 나는 직각을 배우고 구구단을 외웠다. 다른 무슨 고상한 명곡 같은 것이 있는지 상상도 못한 채 학교에서 배우는 동요와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가요가 음악의 전부인 줄 알고 자란 셈이다.
뒤에 서울로 유학 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비로소 그것보다는 훨씬 고차원의 음악이 있다는 걸 알았고, 한때는 클래식에 미쳐서 건방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 후반기에 나타난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등 통기타 그룹의 등장은 그런 시건방을 일시에 날려주기에 충분했다.특히 양희은의 등장은 살림 잘 하고 다소곳하고 남편이나 자식을 위하여 자기 생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리요 영광이라고 수백 년 교육되어온 이 나라 여인들의 정체성을 외모부터 뒤집고 있었다.
미인의 기준이던 희고 야들야들한 피부 대신 까무잡잡한 얼굴에 약간 낮고 들린 듯한 코, 예쁘지 않은 눈, 비웃듯 조금 삐뚤어진 씨니컬한 입에서 터져나오는 도발적인 목소리는 ‘여자라는 굴레’ 밑에 수백 년 엎드려 있던 ‘인간’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 아무렇게나 걸친 청바지와 티셔츠, 흰 고무신은 옷고름 물고 수줍어하며 남성 앞에 쩔쩔매던 이 나라 여인들의 수백 년 굴종의 역사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자유였다.
<한계령>을 처음 들은 것은 80년대 중반쯤 어느 병실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척박한 삶에 지쳐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는 심한 노이로제로 신경병동에 입원하고 있을 때였다. 몸과 마음이 더할 수 없이 피폐했고 생의 어떤 의욕도 용기도 없었다.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 실제로 그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다.
어느날,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라디오를 통해 들은 그녀의 노래는 그때의 상황과 맞물려 막장에서 서성거리던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노랫말 속에서 오지 마라고 말하는 산은 내가 적응하기에 벅찬 바깥세상이었고, 나는 그때 정말 뼈저리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싶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그 노래의 테이프를 구해 달라고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이상스레 그 노래는 들을 수 없었고 10여 년이 지난 90년대 중반 어느날 시인들의 모임에서 한 시인의 구성진 목소리를 통해 다시 듣게 되었다. 나는 음반 가게 몇 군데를 뒤져 그 음반을 사는 데 성공했고 지금도 아끼는 음반으로 서재 한쪽에 꽂혀 있다.
그래, 오늘도 라디오에선 끊임없이 누군가의 삶이 그 삶에 걸맞는 어떤 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굽이치고 있으리라. 그리고 또 어떤 아픈 영혼이 거기 실려 출렁거리며 눈물 흘리기도 하리라.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그래, 지나간 시간들은 잊고 산이 떠밀어 내리는 저 아래 저자로 가자!
바람이 분다. 또 한 시절 용트림하며 살아보아야 할 것 아닌가?
기사제공 : 계간 시인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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