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 조선조 한시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김시습-이주-김정-삼당파시인[최경창, 백광훈, 이달]

3.

우리나라의 시학(詩學)은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을 위주로 하여 비록 경렴(景濂) 같은 대유(大儒)로도 역시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나머지 세상에 이름 날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찌꺼기를 빨아 비위를 썩게 하는 촌스러운 말을 만들 따름이니, 읽으면 염증이 날 정도이다. 성당(盛唐)의 소리는 다 없어져 들을 수가 없다. 매월당(梅月堂)의 시는 맑고 호매(豪邁)하고 세속을 초탈하였다.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서 스스로 다듬고 꾸미는 데 마음을 두지 않았다. 더러는 마음을 쓰지 않고 갑자기 지은 것이 많기 때문에 간혹 가다가 박잡한 것도 섞여 결국 정시(正始)의 시체는 아니다.

망헌(忘軒) 이주지(李冑之:이주)의 시는 침착ㆍ노련하여 나의 중씨(仲氏)가 대력(大曆 당 대종(唐代宗)의 연호)ㆍ정원(貞元 당 덕종(唐德宗)의 연호) 연간의 작품과 가깝다고 여겼다. 그러나 소식ㆍ두보(杜甫)로부터 나왔는데도 대체가 순박치 못했다. 충암(冲庵:김정)은 맑고 굳세고 기이하고 아름다워 작가라고 할 만하되, 거친 말[生語]과 중첩되는 말[疊語]이 약간 많다.

그 후에는 퇴폐한 것을 일으킨 자가 없다. 융경(隆慶 명 목종(明穆宗)의 연호)ㆍ만력(萬曆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연간에 최가운(崔嘉運:최경창)ㆍ백창경(白彰卿:백광훈)ㆍ이익지(李益之:이달) 등이 비로소 개원(開元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 시대의 공부를 전공하여 정화(精華)를 이루기에 힘써서 고인에게 미치고자 하였으나, 골격(骨格)이 온전치 못하고 너무 아름답기만 하였다. 당(唐)의 허혼(許渾)ㆍ이교(李嶠)의 사이에 놓더라도 바로 촌뜨기의 꼴을 깨닫게 되는데, 도리어 이백(李白)ㆍ왕유(王維)의 위치를 앗으려고 한단 말인가? 비록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학자는 당풍(唐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세 사람의 공을 또한 덮어버릴 수는 없다 하겠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자는 열경(悅卿), 강릉인(江陵人)이다. 처사(處士)로서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이주지(李冑之)의 이름은 주(冑)이며 고성인(固城人)으로 벼슬은 정언(正言)이다.

중씨(仲氏)는 하곡(荷谷) 허봉(許篈)이다. 자는 미숙(美叔), 양천인(陽川人)이며 벼슬은 전한(典翰)이다.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자는 원충(元冲), 경주인(慶州人)으로 벼슬은 형조 판서(刑曹判書)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가운(嘉運)의 이름은 경창(慶昌), 호는 고죽(孤竹)인데 해주인(海州人)으로 벼슬은 부사(府使)이다.

창경(彰卿)의 이름은 광훈(光勳), 호는 옥봉(玉峯)인데 해미인(海美人)으로 벼슬은 참봉(參奉)이다.

익지(益之)의 이름은 달(達), 호는 손곡(蓀谷)이며 홍주인(洪州人)으로 쌍매(雙梅) 첨(詹)의 서손(庶孫)이다.

가운(嘉運:최경창)은 제고봉군산정시(題高峯郡山亭詩)에

古郡無城郭 고군무성곽

山齋有樹林 산재유수림

蕭條人吏散 소조인리산

隔水搗寒砧 격수도한침

오래된 고을이라 성곽도 없는데

산재에는 다만 수풀뿐

백성도 아전도 흩어져 쓸쓸한데

물건너 마을에 겨울 다듬이 소리

라 하였다.

창경(彰卿:백광훈)은 제화시(題畫詩)에,

簿領催年鬢 부령최년빈

溪山入畫圖 계산입화도

沙平舊岸是 사평구안시

月白釣船孤 월백조선고

문서 기록은 백발을 재촉하는데

시내와 산이 그림 속에 들었구려

모래톱 평평하니 옛 언덕이 예로구나

달빛은 하얀데 낚싯배 외로워라

하였고,

제승축시(題僧軸詩)에,

智異雙溪勝 지이쌍계승

金剛萬瀑奇 금강만폭기

名山身未到 명산신미도

每賦送僧詩 매부송승시

지리산은 쌍계가 승경이오

금강산은 만폭이 기이하다던데

명산엔 몸소 가보도 못하고서

매양 스님을 보내는 시만 짓누나

라 하였다.

익지(益之:이달)는 산사시(山寺詩)에,

寺在白雲中 사재백운중

白雲僧不掃 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 객래문시개

萬壑松花老 만학송화노

흰 구름 속에 절이 있으니

흰 구름이라 중은 쓸지를 않네

손이 오자 그제사 문을 여니

골짜기엔 온통 송화만 흐드러졌구나

하였고,

회주시(回舟詩)에,

病鷺下秋沙 병로하추사

晩蟬鳴江樹 만선명강수

回舟白蘋風 회주백빈풍

夢落西潭雨 몽낙서담우

병든 가을 해오리 모래밭에 내려앉고

늦매미는 강가 나무에서 울어대네

흰 물마름에 바람 일자 배를 돌리니

꿈속에 서담엔 비가 내리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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