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왕의 문장은 반드시 범인(凡人)을 초월하게 마련이다. 우리 역대 임금의 작품들이 대개는 《대동시림(大東詩林)》에 보이는데 그 밖에는 전하는 것이 없다. 현재 임금은 하늘이 낸 어진 임금으로 무릇 교유(敎諭)하는 말을 손수 지었는데, 질박하고 엄숙하여 기백(氣魄)이 있었다. 그러나 시는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그러던 차에 신묘년(1591, 선조24) 가을에 외간(外間)에 임금의 작품이라고 전하는 절구(絶句)가 있었으니 다음과 같다.

撫劍中宵氣吐虹 무검중소기토홍

壯心曾欲奠吾東 장심증욕전오동

如今事業邯鄲步 여금사업감단보

回首西風恨不窮 회수서풍한불궁

한밤에 칼 어루만지니 호기가 무지개를 토해라

웅장한 마음은 우리 동방을 안정시키고자 했더니

이제껏 그 사업은 한단의 걸음

가을 바람에 고개 돌리니 한스럽기 그지없네

시격(詩格)이 노련하고 건장하여 시인에 못지 않았는데, 어찌 그 이듬해 변고가 있을 줄을 알았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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