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rEOiI7Qfinw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次九曲櫂歌韻十首)>
한가로이 지내며 <무이지>를 읽고 <무이도가> 를 차운하다 10수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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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도가(武夷櫂歌)> 를 차운하여 시를 짓고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를 감상하고
<무이지(武夷志)> 를 읽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상상하는
본격적 삶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퇴계는 어느 날 <무이지>를 읽고 <무이도가> 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이 시의 제목은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次九曲櫂歌韻十首)> 인데
이를 풀이하면 ‘한가롭게 지내면서 <무이지> 를 읽고 <구곡도가> 를 차운한 10수’이다.
시의 제목에서 이 시가 어떻게 지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이지> 는 중국 무이 지방의 풍물을 기록한 책이다.
물론 무이산과 무이구곡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실려 있다.
퇴계는 이 책을 읽고 상상 속에서 무이구곡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주자의 무이도가 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하여 차운을 하였다.
퇴계가 지은 구곡시(九曲詩)의 대상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강호(江湖)가 아니라
그 옛날 주자가 은거했던 무이구곡이었다.
그는 이 시를 지으면서 무이구곡이 가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이렇게 읊었다.
不 是 仙 山 託 異 靈 신선산은 신령에게만 알려지는 게 아니니
滄 洲 遊 跡 想 餘 淸 주희 선생 발자취맑고 시원히 떠오르네
故 能 感 激 前 宵 夢 그러므로 어제밤 꿈에 감격하여
一櫂갱 歌 九 曲 聲 노를 두드리며 구곡가를 이어서 부르네 [갱(庚+貝)]
我 從 一 曲 覓 漁 船
내가 일곡에서 고깃배에 찾아 오르니
天 柱 依 然 瞰 逝 川
천주봉이 의연하게 서천을 굽어보네
一 自 眞 儒 吟 賞 後
주희 선생한 번 음상한 후로부터는
同 亭 無 復 管 風 烟
동정에 다시 풍광을 관장하지 못했네
二 曲 仙 娥 化 碧 峰 이곡이라 선녀가 변화한 푸른 봉우리
天 姸 絶 世 정 修 容타고난 미모를단장한 얼굴이라 [정 靑+見]
不 應 更 妛 傾 城 薦 다시는 경국지색 추천 바라지 마시게
閭 闔 雲 深 一 萬 重하늘궁궐 구름 깊어 만겹이나 쌓였다오
三 曲 懸 厓 揷 巨 船 삼곡이라 높은 벼랑에 큰 배가 걸려 있어
空 飛 須 此 怪 當 年 어기서 공중을 날다니 그 때 일 괴이하다
濟 川 畢 竟 如 何 用 내를 건널 땐그렇다면 어떻게 쓰였을까
萬 劫 空 煩 鬼 護 憐 오랜 세월 부질없이 귀신 보호 받았나
四 曲 仙 機 靜 夜 巖 사곡이라 선기암은 밤이 되어 고요한데
金 鷄 唱 曉 羽 毛 敀 금계에 새벽 되니 깃털이 길게 보이네
此 間 更 有 風 流 在 이 사이에 참으로 풍류가 있으니
披 得 羊 구 釣 月 潭 양구 벗고 월담에서 낚시를 하리라 [구 求아래 衣]
當 年 五 曲 入 山 深 그 때 주희 선생 오곡의 산 깊이 무이정사 지으시고
大 隱 還 須 隱 藪 林 대은이 도리어 수풀 속에 은거하셨네
擬 把 瑤 琴 彈 夜 月 요금을 빗겨 안고 달밤에 타 본들
山 前 荷 궤 肯 知 心 산 앞의 삼태기 멘 사람 이 마음 알겠는가
六 曲 回 環 碧 玉 灣 육곡이라 푸른 옥빛 물굽이 둘러 있고
靈 踪 何 許 但 雲 關 신령한 자취는 어디인가 구름관문뿐이로다
落 花 流 水 來 深 處 꽃잎 뜬 물 따라 깊은 곳찾아오니
始 覺 仙 家 日 月 閑 비로소 알겠네 선가의 세월 한가로움을
七 曲 撑고 又 一 灘 칠곡이라 상앗대 잡고 또 한 여울 오르니[고 竹+高]
天 壺 奇 勝 最 堪 看 천호봉의 기이한 풍경 가장 볼 만하네
何 當 喚 取 流 霞 酌 어찌하면 신선 불러 유하주 란 잔얻어먹고
醉 挾 飛 仙 鶴 背 寒 취하여 비선을 끼고 학의 등을 타볼꼬?
八 曲 雲 屛 護 水 開 팔곡이라 구름병풍호수 둘러 펼쳤는데
飄 然 一 棹 任 旋 廻 표연히 노에 맡기고 물 위를 선회하네
樓 巖 可 識 天 公 意 고루암은 조물주의 뜻을 아는가?
鼓 得 遊 人 究 竟 來 나그네 꼬드겨 끝까지 찾아오게 하네
九 曲 山 開 只 曠 然 구곡이라 산 열리니 눈 앞이 확 트이고
人 烟 墟 落 俯 長 川 인가촌락이긴하천굽어 보네
勸 君 莫 道 斯 遊 極여보시게 이곳에서 유람 끝났다 말하지 말게
妙 處 猶 須 別 一 天 절묘한 곳엔 오히려 모름지기 별천지가 있다오
(이황, 퇴계전서 권1)
퇴계는 도산(陶山)의 북쪽에 한서암(寒棲庵)을 지어 처음 은거지로 삼았다가 후에 도산의 남쪽에 도산서당(陶山書堂)과 농운정사(朧雲精舍)를 세우며 구곡원림을 경영하였다.(이황,吾家山誌 권1, 陶山雜詠幷記)
그가 지은 희작칠대삼곡시(戱作七臺三曲詩) 중에 3곡으로 석담곡(石潭曲), 천사곡(川沙曲), 단사곡(丹沙曲)이라는 명칭이 보이고 그 주(註)에도 “월란암은 산이 가깝고 물이 임하여 잘린 것이 누대의 형상과 같은 것이 무릇 7곳인데 물이 산을 둘러 굽이를 이룬 것이 무릇 3곳이다.(月瀾庵 近山臨水而斷 如臺形者 凡七水繞山成曲者 凡三)”31) 라고 한 것을 볼 때에도 당시 이미 어느 정도 구곡원림이 지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청량산(淸凉山)의 계곡을 따라 낙천(洛川)이 굽이굽이 흐르면서 절경을 이루는 도산구곡 원림은 오가산지(吾家山志) 에 의하면
제1곡이 운암(雲巖),
제2곡이 월천(月川),
제3곡이 오담(鰲淡),
제4곡이 분천(汾川),
제5곡이 탁영(濯;),
제6곡이 천사(川砂),
제7곡이 단사(丹砂),
제8곡이 고산(孤山),
제9곡이 청량(淸凉) 등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제5곡에 마련했는데 이는 주자가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를 건립한 것과 같이 역(易)의 구오(九五), 즉 비룡재천격(飛龍在天格)인 양오(陽五)를 택했으니 성리학자로서의 주도면밀함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퇴계는 도산 구곡원림을 대상으로 구곡가를 짓지 않았으나
정조 때의 하계(霞溪) 이가순(李家淳)이 도산구곡가 를 지어 오늘날에 전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 도산구곡의 대체적인 경관을 짐작할 수 있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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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풍경]
https://www.youtube.com/watch?v=CHDf51bUR8c
https://www.youtube.com/watch?v=mhtLoB62B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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