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정희성

저녁무렵, 박수갈채로 날아오르는

저 비둘기떼의 깃치는 소리

광목폭 찢어 펄럭이며

피묻은 팔뚝 함께 일어서

만세 부르던 이 광장

길을 걸으며 나는 늘

역사를 머리 속에 떠올린다

종합청사 너머로 해가 기울면

조선총독부 그늘에 잠긴

옛 궁성의 우울한 담 밑에는

워키토키로 주고 받는 몇 마디 암호와

군가와 호루루기와 발자국소리

나는 듣는다, 이상하게 오늘은

술도 안 취한다던 친구의 말을

신문사를 가리키며 껄껄대던 그 웃음을

팔엔듯 심장엔듯 피가 솟구치고

솟구쳐 부셔지는 분수 물소리

저녁무렵, 박수 갈채로 날아오르는

저 비둘기떼 깃치는 소리 들으며

나는 침침한 지하도 입구에 서서

어디론가 끝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본다

건너편 호텔 앞에는 몇 대의 자동차

길에는 굶주린 사람 하나 쓰러져

화단의 진달래가 더욱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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