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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아래 글은 고 박경리 선생님의 장례위원장이신 박완서 선생님의 따님 호원숙 여사(작가)가 박경리 선생의 시 두편을 소개하고어머니와의 인연을 회억한 글을 덧붙였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박경리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루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박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찟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서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그루가
--박경리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년을 살았다
빈 창고 같이 휑뎅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이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면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지난 4월호 현대문학에 실린 박경리 선생님의 마지막 시를 베껴 써본다.
오늘 오후 박경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한 달 동안 인공으로 생명을 이어 놓았던 끈을 놓으셨다.
어머니는 장례위원장으로 뉴스에 나오신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
당당하기에 더 안쓰럽다.
내가 알기로는 어머니와 박경리 선생님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에도 존경하는 선배 문인으로 서로 아시는 사이였겠지만.
우리 동생의 죽음 소식을 들은 박경리 선생이 원주로부터 올라오셨다.
어머니를 위로하러. 두 분이 나눈 말씀과 눈물을 어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어린 외아들을 앞세운 참척의 운명을 닮은 두 작가.
최근에는 두 분이 얼마나 서로 의지하는 관계였던가.
감자를 캐면 제일 먼저 전화를 하셔서 넉넉히 나누어 주시고 손수 농사지으신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를 나누어 주시고 콩이파리 삭힌 것도 보내 주시고, 고향 통영에서 싱싱한 굴을 보내주시고 어머니께 친정어머니처럼 돌보아 주셨다.
(어머니는 장편소설 <그남자네 집>을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쓰셨다)
원주의 토지문학관 주변을 늘 싱싱하게 가꾸셨던 분, 흙과 자연을 실천으로 사랑하신 분, 손을 아끼지 않았던 분, 사람 보는 눈이 너무나 매서웠던 분, 어머니께는 자기관리에 완벽한 사람이라고 아끼셨던 분, 내 손을 보시며 일하는 사람의 손이라고 칭찬해 주시던 분,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큰 별이었던 분,
큰 품을 지니셨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는 어려웠었지.
땅을 딛고 서신 큰 나무 같았던 분,
그 분의 마지막 시 두편을 베껴 쓴다.
트럼펫 연주곡 10곡 연속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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