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알영정은 아래창에서 소개한 바 있다. 돌기둥 세 개가 덮인 곳이 알영정이고 표지석 앞의 연못은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골담초가 피었던 연못가엔 이제 석류와 해당화가 곷을 피웠다.

지난 번엔 모란이 마지막 낙화시기였는데 오늘 아침엔 그 옆자리에 함박꽃이 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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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삼국유사에 뱀 운운한 것은 박씨가 권력을 상실한 이후에 권력을 탈취한 석씨 또는 김씨 집안에서 지어낸 유언비어로 보인다. 박혁거세왕은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인데, 밝은세상왕 사후의 삼국유사의 기록을 확인한다. 역사에는 행위주체와 기술주체가 있는데 기술주체의 자리를 상실하여 빚어진 역사왜곡이다.

조선이 기술주체늬 자리를 일제에게 넘겨주어 일제식민지사관이 생긴 것과 같은 논리다.

그리고 승천후 이레만에 땅에 유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기록은 현재도 진도 등의 도서지방에 남아 있는 풍장 장례문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문화인류학자들은 지적한다.

밝은세상왕의 원문과 번역은 아래창에서 정리한 바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27301688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이 되던 날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후에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그리고 왕후도 역시 왕을 따라서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한다. 나라의 사람들이 이들을 합장하여 장사를

지내려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방해를 하므로 머리와 사지를 제작기 장사지내어 오릉을 만들고 능의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하였다. 담엄사 북쪽의 능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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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괘릉은 경주시 외동읍에 있다. 포항-울산간 산업도로를 따라가다보면 괘릉 표지가 나온다. 송림 속을 100여 미터 들어가면 별난 무덤 괘릉이 나온다. 별난 무덤이라 칭한 것은 호석 무인상에 난데없는 서역인 석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기록을 확인해 본다.


원성왕은 참으로 변난 사람이다. 왕으로 선택된 주원이 알천 홍수로 도성에 진입하지 못하자 대신 왕위에 올랐다.

괘릉의 안내판 기록이 맞다면,또 삼국사기의 기록대로라면 화장을 했는데 관 속에는 무엇을 넣었는지도 궁금하다.

서역인의 출현에 대해 고 이용범 교수는 신라에 금을 사러 온 아랍상인으로 추정했다. 악학궤범에 실린 처용 상도 같은 모습이다.

볕 바른 쪽의 서역인 사진을 몇 장 찍어 보았다.


[삼국사기]

[즉위년]원성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손이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이다. 왕비는 김씨이니 신술 각간의 딸이다. 처음 혜공왕 말년에 신하들이 반역하여 발호하였는데, 선덕이 이 당시에 상대등이 되어 임금 측근의 악당들을 제거할 것을 앞장 서서 주장하였다. 경신이 이에 동조하여 반란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자, 선덕이 왕위에 오르면서 바로 상대등으로 임명하였다. 선덕이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다. 여러 신하들이 의논한 후, 왕의 족질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 때 주원은 서울 북쪽 20리 되는 곳에 살았는데, 때마침 큰 비가 내려 알천의 물이 불어나 주원이 건너올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임금이라는 큰 지위는 실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인데, 오늘 폭우가 내리니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상대등 경신은 전 임금의 아우로서,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통을 가졌다”고 말하였다. 이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여, 그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14년]겨울 12월 29일,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원성이라 하고, 유언에 따라 관을 봉덕사 남쪽에 옮겨 화장하였다.[「당서」에는 ‘정원 14년에 경신이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통감」에는 ‘정원 16년에 경신이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 사기를 기준으로 고찰하면 「통감」이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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