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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_IT_K1406_T_097 URL복사 통합뷰어 039_1282_c_01L법원주림 제9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97. 송종편(送終篇)[여기에는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사명부(捨命部) 견송부(遣送部) 수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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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苑珠林卷第九十七 

 

법원주림 제97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97. 송종편(送終篇)[여기에는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사명부(捨命部) 견송부(遣送部)
수생부(受生部)

(1) 술의부(述意部)
생각건대 4대(大)의 독 그릇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6적(賊)의 미치광이가 이를 경계로 삼아 모두 집착하고 있으므로 다시는 거슬러 흐를 기약이 없고 오직 순환(循環)하는 세력만 있을 뿐이다. 가령 한 개의 털을 쪼갬으로써 천하를 이익 되게 한다 해도 그것을 아끼면서 행하지 않고, 한술 밥을 뿌려줌으로써 잇따라 다른 양식이 생길 터인데도 그것을 아까워하면서 주지 않는다. 생사(生死)에 빠져서 머무르고 유위(有爲)에 달라붙어 집착하고 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마음놓지 못하시고 보살들은 그들에 대해 피눈물을 흘리신다.
가만히 보건대 세속 사람들은 부모 상(喪)을 당하여 대부분이 장례를 잘 치르기 위해서 산목숨을 널리 죽여서 친족을 모으고 빈객을 공대한다. 구차하게 현재 잘 보이기 위해서 업인(業因)을 피하지 않고, 혹은 밖의 비방을 두려워하여 안으로 옳은 일을 닦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가 죽으면 여기에 고통을 더 겹치게 하고 어머니가 임종하면 끓는 물과 숯을 더욱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삼계(三界)를 빙빙 돌면서 6도(道)를 계속 다니게 하나니, 4취(趣)에는 돌아가기 쉽지만 만겁(萬劫)은 인도하기 어려운지라 자모(慈母)의 혼령에게 마음 아파하고 역자(逆子)의 깊은 독을 가엾게 여긴다. 다만 심한 가뭄이 오래면 반드시 단비[甘雨]의 은택을 생각하게 되고, 병의 재난이 많으면 양의(良醫)의 약만을 고대할 뿐이다.
생각건대 부모도 이미 범부라서 악업이 없다해도 죄의 원인은 소멸하지 않고 고통의 과보는 배제하기 어렵다. 만일 모든 수승한 복을 의뢰하지 않으면 쾌락의 과보를 어떻게 증득할 수 있겠는가? 바라노니, 임종할 때에는 원을 세우면서 시타(尸陀)에 들게 하고 장례 치르는 비용으로 몸을 돕고 아울러 공덕을 닦으며, 나는 새와 딛는 짐승의 굶주림을 구제하여 장차 오는 세상의 빚을 면할 수 있게 하라.

(2) 사명부(捨命部)
『십이품생사경(十二品生死經)』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죽음에는 12품류가 있다. 어떤 것이 12품류인가?

첫째는 남음이 없이 죽는 자이니, 아라한(阿羅漢)으로서 집착하는 바가 없다.

둘째는 죽음을 건너는 사람이니, 아나함(阿那含)을 말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셋째는 남음이 있게 죽는 사람이니, 사다함(斯陀含)을 말하며 갔다가 도로 온다.

넷째는 죽음을 건너는 일을 배우는 사람이니, 수다원(須陀洹)을 말하며 도의 자취를 본다.

다섯째는 죽음에 속지 않는 사람이니 8등인(等人)을 말한다.

여섯째는 죽음을 기뻐하는 사람이니, 일심(一心)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일곱째는 자주 죽는 사람이니, 악계(惡戒)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여덟째는 죽음을 후회하는 사람이니, 범부를 말한다.

아홉째는 죽음을 꺼리거나 삼가지 않는 사람이니, 고독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말한다.

열째는 죽음에 얽매이고 달라붙는 자이니 축생을 말한다.

열한째는 죽어서 불에 타는 자이니, 지옥(사람)을 말한다.

열두째는 죽어서 배고프고 목마른 자이니, 아귀를 말한다.

비구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면서 방일(放逸)하지 말지니라.’”

또 『정도삼매경(淨度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선악의 업을 지으면 천상에 태어나거나 지옥에 떨어지는데, 임종할 때 저마다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 병들어서 죽으려고 할 때 그의 눈에는 와서 영접하는 이가 보이나니, 천상에 가서 태어날 사람이면 천인이 하늘옷을 가지고 풍악을 잡히면서 와서 영접하고, 다른 세계에 가 날 사람이면 그의 눈에 존귀한 사람이 그에게 묘한 말씀을 하는 일이 보이게 되며, 만일 악을 행하여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면 그의 눈에는 병사들이 칼과 창을 가지고 그를 찾으면서 둘러싸는 것이 보이게 된다. 이처럼 그가 보는 일은 동일하지 않은데, 입으로는 다 말할 수가 없으며, 저마다 그가 지은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하늘은 억울하게 함부로 하는 일이 없으며 공평하고 정직하여 두 마음이 없나니, 그의 지은 바에 따라 하늘의 법은 그를 다스린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는 중음(中陰)의 모양을 보게 된다 만일 악업을 행한 사람은 3악도(惡道)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게 되고, 혹은 염라왕(閻羅王)이 여러 무기를 가지고 와서 붙잡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기도 하며, 혹은 고통받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만일 선업을 행한 사람이면 모든 천상의 궁전에서 천녀들이 장엄하게 차리고 재미있게 놀면서 쾌락을 누리는 훌륭한 일을 보게 된다.”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기원정사(祇園精舍)에 계시면서 하늘과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실 때였다. 어느 한 장자가 길가에 살고 있었는데 재물이 수없이 많은 부자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 장가를 들어 아내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7일이 되기 전에 서로 공경하는 부부는 상춘(上春) 3월의 계절이라서 재미있게 구경하면서 놀려고 뒷동산으로 갔다. 마침 동산 안에 벚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높은 가지에 크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신부가 꽃을 갖고 싶었으나 꺾어다 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신랑이 그녀를 위하여 나무로 올라갔다. 그런데 잘못하여 가는 가지를 밟는 바람에 가지가 찢어지면서 떨어져 죽었다. 온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 아들에게로 달려와서 하늘을 부르며 소리 높여 울다가 기절하였고, 한참 만에야 다시 깨어났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관(棺)에 넣어 집으로 돌아와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여기셔서 그들을 찾아가 물으셨다. 장자와 집안 사람 모두는 부처님을 뵈옵고 흐느껴 울면서 예배하고 그 쓰라림을 자세히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치고 법을 들어라. 만물은 무상하여 오래 보존될 수가 없다. 나면 죽음이 있는 것이요 죄와 복은 서로 따른다. 이 아들은 세 곳에서 그를 위해 슬피 울고 괴로워하면서 기절하게 하였으며 또한 참기 어렵게 하였으니, 그는 끝내 누구의 아들이고 어느 분이 그의 어버이가 되는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목숨은 마치 꽃과 열매와 같아서 성숙하면
항상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태어나면 모두 고통이 있거늘
그 누가 죽지 않을 수 있겠느냐.

처음부터 애욕을 좋아하여
그림자 같은 태(胎) 안으로 들어가길 바라서
번개와 같은 형체와 목숨을 받았으니
밤낮으로 흐르며 그치기 어렵다.

이 몸은 죽기 마련인 물건이며
정신은 형상이 없는 법이니
목숨은 죽고 다시 나거니와
죄와 복은 없어지지 않는다.

마치고 비롯하는 것이 한 세상뿐 아닌데
어리석음으로 장구(長久)하기를 애착하면서
스스로 지어서 고락(苦樂)을 받으니
몸은 죽되 정신은 상실하지 않는다.

장자는 이 게송을 듣고 뜻이 풀리면서 근심을 잊었다. 그는 길게 무릎 꿇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아들은 전생에 어떠한 죄를 지었기에 한창 좋은 나이에 일찍 죽었습니까? 원하옵건대 본래 행했던 죄를 해설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옛적에 한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활과 화살을 가지고 신수(神樹) 안에 들어가 놀고 있었다. 그 곁에 어떤 세 사람이 그 안에 있으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 나무 위에 참새가 있자 어린아이가 쏘려고 하는데 그 세 사람이 권하면서 말하였다.
≺만일 참새를 맞출 수 있다면 세간에서도 건장한 남아이리라.≻
어린 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활을 당겨 쏘았다. 참새는 맞아서 즉사하였으며 세 사람도 같이 웃었다. 세 사람은 어린아이가 도와 기뻐하다가 각자 갈 데로 떠났다. 그로부터 여러 겁 동안 나고 죽고 하면서 서로가 만나 그 죄를 받았다.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복이 있는 이라서 지금 천상에 있고, 또 한 사람은 바다 속에 변화로 태어나서 용왕(龍王)이 되어 있으며, 또 한 사람이 바로 오늘날 장자의 몸이다. 그 어린 아이는 먼저 천상으로 가서 그 천인의 아들이 되었다가 목숨을 마치고 장자의 아들이 된 것이며, 이제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으니 곧 바다 속으로 가서 용왕의 아들이 되겠지만 그가 나는 바로 그 날 금시조왕(金翅鳥王)이 그를 잡아먹을 것이다. 오늘날 이 세 곳에서 괴로워하며 슬피 울고 있으니,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느냐? 전생에 그를 도와 기뻐했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은 이와 같은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신은 삼계(三界)의
좋고 좋지 않은 세 곳으로 나아가
몰래 다니면서 잠자코 이르지만
가는 곳마다 메아리가 응한 것 같네.
색욕(色欲)은 색이 있는[色有] 것이 아니니
일체의 원인은 전생의 행이니라.
마치 종자가 본래 형상 따르듯이
저절로 받는 과보도 그림자와 같다.

부처님께서 게송을 마치시자 장자는 뜻이 풀렸고, 집 안 사람 모두도 기뻐하면서 수다원의 도를 얻었다. 또 『사분율(四分律)』에 설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중생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하여 왕이 목숨을 마치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온갖 것은 반드시 다한 데로 돌아가고
높은 이는 마침내 떨어져야 하며
태어나면 죽지 않음이 없나니
목숨이 있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중생은 유(有)의 수에 떨어져서
일체가 다 유위[有爲]이니
일체의 세간에는
늙고 죽지 않는 이 하나도 없다.

중생에게는 바로 항상한 법이어서
태어날 적마다 모두 죽게 되나니
그 지은 바의 업에 따라서
죄와 복에는 과보가 있다.

악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선업을 지으면 천상에 나며
높은 행으로 좋은 갈래[善道]에 가서 나면
무루(無漏)의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


(3) 견송부(遣送部)

自述
생사(生死)가 고리처럼 순환하는 것은 세속의 진리[俗諦]를 여의지 못한다. 비록 출가하여 수승한 도(道)를 뜻한다 하더라도 분단(分段)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변역(變易)을 아직 제거하지 못해서 거푸 삼계에 의존하고 세속을 따르면서 천류(遷流)하고 있다. 그러면서 살고 죽고 하면서 모두가 안팎으로 의지하고 있으니, 임종한 날에 안치(安置)하게 될 마땅한 곳과 장지(葬地)로 보낼 때의 위의를 아래에서 자세히 말하여 둔다. 우선 죽은 시체에 대하여 논하면 남과 북에 안치함은 혼(魂)과 백(魄)이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제 간략히 기술하겠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에서 말하였다.
“몸의 백(魄)은 내려가니 기(氣)가 위에 있음을 알 것이다. 죽은 이는 북쪽으로 머리하고 산 이는 남쪽으로 향한다.”
교특생(郊特生)이 말하였다.
“혼(魂)과 기(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몸[形]과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제사지낼 때는 모든 음양(陰陽)의 이치를 구한다.”
제의(祭儀)에서 말하였다.
“기(氣)라 함은 신(神)의 왕성함이요, 혼이라 함은 귀(鬼)의 왕성함이다.”
『좌전(左傳)』 소이(昭二)에서 자산(子産)은 조경자(趙景子)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나고 죽고 변화하는 것을 백(魄)이라 하므로 이미 생겨난 백이 양(陽)에 속하는 것을 혼(魂)이라 한다. 사물을 쓸 때 정력이 많으면 혼백이 강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精爽)이 신명(神明)에 이르면 필부(匹夫)와 필부(匹婦)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그 혼백조차도 오히려 사람에 의지함을 재앙으로 여기거늘 하물며 맑은 하늘[良霄]이겠는가? ”
『회남자(淮南子)』에서 말하였다.
“하늘의 기운(天氣)이 혼이 되고 땅의 기운[地氣]이 백이 된다. 백이 혼에게 물었다.
‘도(道)는 무엇으로써 체성[體]을 삼는가?’
혼이 대답하였다.
‘형상이 없는 것이다.’
백이 말하였다.
‘형상이 있다. 만일 없다면 무엇 때문에 묻겠는가?’
혼이 말하였다.
‘나는 다만 만난 바가 있을 뿐이다. 보아도 형상이 없고 들어도 소리가 없는 것을 소위 심오하고 미묘한 것[幽冥者]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도(道)이면서도 도가 아님에 비유한다.’
또 물었다.
‘이미 혼과 백이 따로 임을 알았다. 오늘날 속인이 죽으면서 무엇 때문에 옷[衣]을 혼이라고 부르고 백이라고는 부르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혼은 바로 영(靈)이요 백은 바로 시체[屍]이다. 그러므로 예(禮)에서는 처음 죽었을 때 자기가 입었던 옷을 시체의 백 위에 옮겨 주고 혼은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옷을 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혼은 자기의 옷을 알므로 옷을 찾아서 돌려보낸다. 만일 혼이 백에게 돌려보내면 곧 시체의 입을 막은 솜이 움직이거니와 만일 혼이 백에게 돌려보내지 않으면 입을 막은 솜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치로써 한 말이기 때문에 혼을 부른다고 할 뿐 백을 부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상복요기(簫喪服要記)』에서 말하였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그의 부친의 장례를 지낼 때에 공자(孔子)가 묻기를 ≺어떻게 혼 옷[魂衣]을 만드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애공이 대답하기를 ≺혼 옷은 백도(伯桃) 때에 생겼습니다. 백도가 형산(荊山)아래의 길에서 추위를 만나 죽게 되자, 그의 벗 양각(羊角)이 슬퍼하면서 그 시체를 맞이하여 혼신(魂神)의 추위를 가엾이 여긴 나머지 일부러 혼 옷을 고쳐 만들었다 합니다. 우리 부친은 생전에 수놓은 비단옷을 입으셨고 돌아가시면서도 옷을 입으셨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 옷을 만듭니까?≻라고 하였다.’
‘어째서 번(幡) 위에 그의 성명을 써야 하는가?’
‘번은 혼을 불러서 건지(乾地)에 안치하게 한다. 혹은 그의 이름을 알므로 이름을 찾아서 암실(闇室)을 들어가게 되며 또한 백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혹은 중실(重室)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중(重)이라 함은 겹친다는 뜻이니 겹쳐 있는 깊숙한 안방에 제사의 음식을 모두 두게 한다. 산 이와 죽은 이는 각각 구별되고 밝음과 어둠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귀신은 어두운 데서 먹고 산 사람은 밝은 데서 먹는다. 그러므로 거듭 거친 대자리로 그 음식 거리를 사서 골방 속에다 두는 것이니, 곤지(坤地)에 안치하는 것이다.’”
서역(西域)의 장례법에 의거하면,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에 떠내려보내는 것이요, 둘째는 불에 태우는 것이며, 셋째는 흙에 파묻는 것이요, 넷째는 숲 속에 버리는 것이다.
『오분율(五分律)』에서 말하였다.
“만일 불에 태울 적에는 돌 위에다 놓고 태울 것이요, 풀이나 흙 위에서 태워서는 안 된다. 벌레를 상할까 두려워서이다.”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여래와 전륜성왕(轉輪聖王) 두 사람만은 모두 화장(火葬)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통상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장례를 대부분 다 이용한다.”
『오분율』에서 말하였다.
“시체는 응당 파묻어야 한다.”[이것은 국법에서 몸 태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여름에 태우면 벌레를 죽일까 두려워서이다. 이 때문에 파묻게 하는 것이다. 그밖에 물이나 숲에 버리는 것은 관계하지 않는다.]
또 『사분율』과 『오백문사(五百問事)』에 의거하건대, 만일 여래의 탑을 보았거나, 5중(衆)으로서 출가한 사람의 무덤이나 탑을 보았을 적에는 자기보다 위이면 모두 생시의 나이와 법랍(法臘)의 선후에 의하여 예배하면 된다. 만일 속인들이 출가한 사람의 무덤이나 탑을 보았을 적에는 상하를 가릴 것이 없이 모두 공경하고 예배해야 된다.


自述
이미 그와 같음을 알았다. 모든 승니와 속인들이 만일 스님[師僧]이나 부모의 관[柩]을 대하면 밖에서 조문(弔問) 온 사람이 죽은 이보다 아래면 그 시체 앞으로 가서 통상대로 절을 하고, 그런 뒤에 먼저 그 아들의 손을 잡고 잠자코 위로하고, 그 뒤에 대덕(大德)이 있는 곳으로 와서 슬픈 뜻을 자세히 말하면서 절을 하면 된다. 또한 어리석은 속인들에게서 보는 일이거니와, 망령되이 법의 가르침을 행하고 점차로 다른 이에게까지 가르치면서 부모와 숙백(叔伯)과 존친들의 망령(亡靈)에게 절을 하지 않으면서 말한다.
“나는 이미 계(戒)를 받았고 그는 귀신이 되었다. 그러므로 절은 합당하지 않다. 계를 깨뜨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에서도 합당한 일이 못 되며, 도리어 무지(無知)의 죄를 초래하는 것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스님 등은 나의 법신(法身)을 길러 주셨고, 부모와 숙백 등은 나의 육신을 길러 주셨으니 이런 분에 의지하여 젖을 먹고 자라나서 성인(成人)이 된 것이다. 이런 은덕을 생각하면 하늘처럼 끝이 없고 보답하기 어려워서 겁(劫)을 지내면서도 그 은혜를 갚아야 하겠거늘, 어찌 일생(一生) 만으로 그만 둘 수 있겠는가? 공경함과 은혜를 갚지 않고 도리어 태만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발꿈치를 쫓는 비루한 자이거늘 어찌 효자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지극하신 성인이면서도, 오히려 몸소 돌아가신 부왕(父王)의 시체를 붙들어 보내셨거늘, 하물며 하천한 범부로서 태만한 생각을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이르되 “은혜를 아는 것은 대비(大悲)의 근본이요, 은혜를 모르는 이는 짐승보다 더 못하다”고 한 것이다.
또 『정반왕니원경(淨飯王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백정왕(白淨王)은 사위국(舍衛國)에 있으면서 병이 위독하여 죽으려 할 때, 세존과 난타(難陀) 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 안에 계셨는데 그 곳은 50유순(由旬)이나 떨어져 있었다. 세존께서는 영취산(靈鷲山)에 계실 적에 천이(天耳)로써 부왕이 생각하는 소리를 멀리서 들으시고 곧 아난(阿難) 등과 함께 공중을 날아와 그곳에 이르셨다. 그리고 손으로 왕의 이마를 만지면서 왕을 위로한 뒤에 왕을 위하여 『마하바라본생경(摩訶波羅本生經)』을 말씀하셨다. 왕은 설법을 듣고 아나함과를 얻었으며 다시 부처님께서 손을 끌어다 가슴 위에 놓았다. 부처님께서 또 설법을 하시자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리고 무상함이 이르러서 목숨이 다하고 숨이 끊어지면서 홀연히 후세(後世)로 나아갔다.
화장[闍維]하려 할 적에 부처님께서는 난타와 함께 널의 머리 앞에 공손히 서 계셨고 아난과 나운(羅雲)은 발 쪽에 서있었다. 아난이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제가 백부(伯父)의 관(棺)을 메게 하옵소서.’
나운이 또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제가 할아버님의 관을 메게 하옵소서.’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미래의 세간 사람들은 모두가 흉포하여 부모가 기러주신 은혜를 갚지 않을 것이므로, 이 불효한 중생들을 교화하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여래가 몸소 부왕의 관을 메려고 하느니라.’
그 때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고, 모든 산들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솟았다가 잠기기를 마치 물 위의 배와 같았다. 그리고 온갖 하늘과 용과 귀신들이 모두 상여 앞으로 와서 소리 높여 슬피 울었다. 사천왕이 억백천의 귀신들을 데리고 와서 모두 함께 상여를 들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미래 세상의 부모에게 불효한 이들을 위하여 큰 자비로써 몸소 부왕의 관을 메려고 하시오나 저희들은 부처님의 제자요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사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의당 부왕의 관을 메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곧 사천왕에게 부왕의 관을 메도록 허락하자 이내 변하여 사람으로 되었다. 온갖 백성들도 모두 슬피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존께서는 몸소 손으로 향로를 붙잡고 앞에 서서 묘소로 나가셨다. 그리고 천 명의 아라한으로 하여금 큰 바닷가 위로 가서 우두전단(牛頭栴檀)과 갖가지 향나무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불을 피우고서 말씀하셨다.
‘괴롭고 공하고 무상함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물 속의 달과 거울의 형상과 같도다.’
그리고 몸이 다 타자 모든 왕들은 저마다 5백 개의 병에 우유를 담아 가지고 그것으로 불을 껐다. 불이 꺼진 뒤에는 다투어서 함께 뼈를 거두어 금강(金剛)의 함에다 넣고 곧 그 위에다 탑을 세우고서 비단 번기와 일산을 달고 탑묘에 공양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왕 정반(淨飯)께서는 청정한 분이라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셨다.’”
또 『불모니원경(佛母泥洹經)』에서 말하였다.
“대애도(大愛道) 비구니는 부처님의 이모이시다. 차마 부처님 뒤에 열반할 수 없음을 깨닫고 먼저 열반하려고 제근녀(除饉女) 5백 명과 함께[곧 비구니를 말한다. 『강승회법경경(康僧會法鏡經)』에서 말하기를 ‘범부는 6진(塵)을 탐하여 물든다. 마치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탐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의 성인은 탐욕을 끊고 6정(情)의 주림[饉]을 제거[除]하기 때문에 출가한 비구니를 제근(除饉)이라 부른다’고 하였다.] 손으로 부처님의 발을 어루만지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는 머리 조아리고 떠나갔다. 그리고는 신족(神足)의 덕을 나타내어 저절로 자리에서 없어지면서 동쪽으로부터 와서 공중에 머물러 열여덟 가지의 신변(神變)을 나타냈다. 8방(方)과 상하(上下)에서도 역시 그와 같이 하면서 큰 광명을 놓아 모든 어둠을 비추고 위로는 모든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그런 뒤에 5백 명의 제근녀들은 변화로 모두 함께 불에 타면서 동시에 열반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가(理家)들에게 권하여 5백 명의 상여를 만들게 하고 삼씨 기름과 향과 꽃과 녹나무와 가래나무의 재목 등으로 5백 명의 제근녀를 장사지내고, 순수하고 바른 음악으로써 공양하였다. 온갖 범부와 성인들은 그것을 보며 슬피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화장이 끝나자 사리를 받쳐들고 부처님께로 나아갔으며, 이 때 사방에서 각각 250명의 아라한이 신족(神足)으로 날아와서 부처님 발에 머리 조아리고 사리 있는 곳에 도달하여 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를 가져다 담은 뒤에 그 발우를 나의 손 안에다 놓아라.’
아난이, 명하신 대로하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모인 사리는 본래 더러운 몸이었다. 흉포하고 질투와 음모로 도를 부수고 덕을 깨뜨렸다. 지금 어머님은 능히 구제받아 장부의 행을 일으켜 응진(應眞)의 도를 얻으셨다가 열반하셨으니 어찌 장하지 않느냐?’ 그리고는 명을 내려서 탑을 세우고 공양하게 하셨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나운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대애도의 몸을 모셔 오너라. 내가 몸소 공양해야 되겠다.’
그 때 석제환인(釋提桓因)과 사천왕 등이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몸소 심신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공양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 두라, 그만 두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부모는 자식을 낳으셔서 많은 이익을 주셨다. 기르신 은혜가 무거운지라 젖을 먹이며 품에 안으셨으니,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하며 갚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과거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어머님들께서도 먼저 멸도를 취하셨으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몸소 화장한 사리에게 공양하셨느니라.’
그 때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 모든 귀신들을 시켜 전단(栴檀)의 숲으로 가서 전단나무들을 가져다 넓은 들판에 놓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몸소 상여의 한쪽 다리를 들고 아난이 다른 한쪽 다리를 들고서 허공을 날아 무덤 사이에 도달하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전단나무를 가져다 대애도의 몸 위에 놓으신 뒤에 말씀하셨다.
‘네 사람에게는 응당 탑을 세우고 공양하여야 한다. 첫째는 부처님이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번뇌가 다 한 아라한이요, 넷째는 전륜성왕이니, 모두가 10선(善)으로써 만물을 교화했기 때문이니라.’ 그 때 인민들은 곧 사리를 가져다 탑을 세우고 공양하였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의하면 대애도는 이모이며 난타(難陀)의 친어머니라고 하였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4부(部)의 제자 중에서 도를 증득한 이로서 맨 앞과 맨 뒷사람을 간략하게 말하면 우선 8인이 된다. 비구 중에서 맨 처음에 도를 증득한 이는 구린(拘隣) 비구이니 교화를 잘하였고 위의를 잃지 않았다. 맨 나중에 도를 증득한 이는 수발타라(須跋陀羅)이니 도를 증득한 그 날 바로 열반에 들었다. 비구니 중에서 맨 처음에 도를 증득한 이는 대애도(大愛道) 비구니이며 맨 뒤에 도를 증득한 이는 타라구이국(陀羅俱夷國) 비구니이다. 우바새 중에서 맨 처음에 도를 증득한 이는 상객(商客)인 남자이며 맨 나중에 도를 증득한 이는 구이나마라(俱夷那摩羅)이다. 우바이 중에서 맨 처음에 도를 증득한 이는 난바(難婆) 여인이며, 맨 나중에 도를 증득한 이는 람(藍) 우바이이다.”

(4) 수생부(受生部)
무릇 태어나면 8식(識)으로 유지되고 죽으면 4대(大)가 흩어진다. 1백 년도 빨리 가서 끝내 마멸(磨滅)로 돌아가고 삼계(三界)를 순환하면서 정지함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이르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치는 것이니 이미 났는지라 소멸하게 된다”고 했나니, 성인의 가르침이 거짓이 아니라서 스스로 보고서 경의를 표한다. 그런 까닭에 이 인연 가운데서 여섯 가지 문을 들어 간략히 기술한다.
첫 번째 문은 임종할 때이다. 몸의 차고 더움을 검사하여 그 선악을 증험하면서 미래의 과보를 자세히 안다. 그러므로 『유가론(瑜伽論)』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유정(有情)이란 물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니, 임시로 목숨을 지니게 된 것은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가 같고, 죽을 때는 통상 점차로 죽거나 단번에 죽는다는 것이 모든 스승들에게 서로 전해지고 있다. 선(善)을 지은 사람은 아래로부터 차가운 촉감이 배꼽까지 이르고, 그 위에는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그 뒤에 다 한다. 즉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만일 머리나 얼굴에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그 뒤에 다하면 곧 하늘 갈래[天道]에 태어난다. 만일 악을 지은 이는 그와는 반대이니, 위로부터 허리까지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없어지면 아귀(餓鬼) 갈래에 태어나고, 허리에서부터 무릎까지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없어지면 축생(畜生)에 태어나며, 무릎에서부터 그 아래로 다리까지 따뜻한 기운이 있다가 없어지면 지옥 안에 태어난다. 무학(無學)이 열반에 들게 되면 따뜻한 기운이 혹은 심장에 있게 되기도 하고 혹은 정수리에 있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유가론』에서 이르기를 “갈라람(羯羅藍)이란 맨 처음에 의탁하는 곳이어서 곧 육심(肉心)이라 한다. 이렇게 의식[識]이 이곳에 맨 처음 의탁하므로 이것을 맨 마지막에 버리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를 해석하여 보자. 『유가론』에 의하면, 선을 지으면 위에 태어나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점차로 버리면서 육심에 이르고 그 뒤에야 위를 버린다는 말이요, 악을 지으면 아래에 태어나기 때문에 먼저 위에서부터 버리면서 육심에 이르고, 그 뒤에야 아래를 버린다는 것이다.
『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막 죽고 있으면 몸의 어느 부분에서 의식(意識)이 끊어지는가? 만일 한꺼번에 몸이 죽으면 감관과 함께 의식은 일시에 모두 소멸되지만 만일 사람이 차례로 죽게 되면 다음 게송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차례로 죽는 이는 다리에서 배꼽으로
그리고 심장에서 의식이 끊어진다.
하인(下人)은 하늘에 나지 못하고
중인(中人)과 상인(上人)은 악도에 나지 않는다.”

논중(論中)의 해석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으로서 반드시 악도에 가서 생(生)을 받을 이거나 인도(人道)에 태어날 사람들은 차례로 죽으며, 아라한 같은 사람은 심장에서 의식이 끊어진다. 「유여부(有餘部)」에서는 머리 위에서 끊어진다고도 말한다. 왜냐 하면 몸의 감관은 이곳에서 의식과 함께 소멸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막 죽으면 이 몸의 감관은 마치 뜨거운 돌과 물이 점차로 감축되면서 소멸하듯이 다리 등의 처소에서 차례로 소멸된다.”
이를 해석하여 보자. 『구사론』은 소승(小乘)의 이치를 기술하기 때문에 “몸은 이곳에서 의식과 함께 소멸한다”고 하지만 만일 대승(大乘)에 의거하면 “몸의 감관은 이곳에서 본식(本識)과 함께 소멸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생을 받는[受生] 방법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가서 이르게 되는 곳이 태어날 갈래[道]이기 때문에 여기서 생긴 중음(中陰)의 중생은 전생 업의 세력으로 생긴 눈으로 말미암아 비록 가장 먼 곳에 있다손 치더라도 태어날 곳을 능히 보게 된다 하였다. 그곳에서 부모가 될 이가 성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만일 남자가 될 것이면 그 어머니에 대하여 곧 남자로서의 음심을 일으키고, 만일 여자가 될 것이면 그 아버지에 대하여 곧 여인으로서의 음심을 일으킨다. 이 뒤바뀐 마음으로 성을 낸 이 중유(中有)의 중생은 이 두 가지의 뒤바뀐 마음으로 말미암아 유희하고 싶어서 태어날 곳으로 가는데, 이것이 바로 곧 속(屬)할 데를 기꺼이 얻는 것이다. 이 때 부정(不淨)은 이미 태(胎)에 이르러 환희심을 내면서 그대로 그곳에 의탁하여 나게 된다. 이 찰나(刹那)부터 이 중생은 5음(陰)이 화합하여 견실하게 되고 중유의 5음은 곧 소멸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비로소 생을 받게 된다. 만일 그것이 남아이면 태 안에서 어머니의 왼쪽 겨드랑을 의지하여 얼굴을 어머니의 등을 향하여 쭈그리고 앉고, 만일 그것이 여아이면 태 안에서 어머니의 오른쪽 겨드랑을 의지하여 어머니의 배를 향하여 머무르게 된다. 만일 남아도 아니고 여아도 아니면 태 안에서 욕망하는 종류에 따라 생을 의탁하게 되며, 머무르는 것도 역시 그렇게 한다. 중유는 남자나 여자와는 달라서 감관을 구족함이 없기 때문이 남아이든 여아이든 생을 의탁하여 머무르게 되는데, 뒷날 태 안에서 점차로 자라다가 혹은 고자[黃門]가 되기도 한다. 태생(胎生)과 난생(卵生)의 두 생의 의탁하는 도리는 이와 같다.
그러나 만일 중생이 습생(濕生)을 받고자 하면 향기[香]를 좋아하기 때문에 태어날 곳에 이르는데, 이 향기가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음은 전생에 지은 업을 따른다. 만일 그것이 화생(化生)이면, 그 처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태어날 곳에 이른다. 만일 그가 지옥으로 갈 중생이면 어떻게 그 처소를 좋아하다가 태어나는가? 마음이 뒤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이 중생이 추운 바람과 찬비를 몸에 맞으며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지옥의 불이 활활 타는 것을 보고 아주 사랑스런 생각이 들면서 그 따뜻한 기운을 얻으려고 일부러 그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또 몸에 열풍(熱風)이 불어 빛과 불길 등으로 지짐을 당하면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있을 때는 한지옥(寒地獄)의 시원함을 보고 찬 기운을 애착하면서 일부러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태생과 난생의 두 생은 부모의 성행위를 사랑하지만 습생과 화생의 두 생은 그렇지 않고 적백(赤白)에 의탁하여 몸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없다. 습생은 다만 향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태어날 곳에 이르는데, 업의 선악을 따라 좋아하는 향기의 깨끗함과 더러움이 있을 뿐이다. 화생은 다만 의지하게 될 처소를 좋아할 뿐이니 지옥이 비록 고통받는 처소이나 그 죄인이 좋아해서 애착하는 처소를 얻으려고 그곳에서 생을 받는 것이다. 왜냐 하면 좋아하지 않으면 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논(論)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지었으면 그와 같은 일을 감응해서 태어나는 것이니, 그 때 그 몸으로 지은 그러한 일을 그대로 보고 그 때의 다른 중생도 역시 그러함을 본다. 이 때문에 그곳으로 간다.”
옛날의 여러 법사들도 다 이런 말을 했다.
“만일 그 중생의 나이 30세일 때 살생을 하고 중생을 그물로 잡았다 하자, 그리고 이런 일을 할 때는 반드시 벗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업을 받아서 지옥에 태어나지만 뒷날 중음으로 있는 동안에도 자기 몸이 옛날 30살 일 때 그물로 산 목숨을 잡을 때와 똑같은 언행을 보게 되고, 또 옛날의 벗도 과거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지옥에는 옛날 강호(江湖)에서 본 여러 벗들과 같은 이들이라 서로가 이끌면서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이 변화를 일으켜서 곧 그 안에서 생을 받는다.”
그 뒤에야 옛날에 지었던 업들이 아주 많았지만 필경 이 한 가지 업 때문에 끌려서 지옥에 났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이 20세 때에 이런 업을 지었든, 혹은 30세 때에 이런 업을 지었든, 뒷날 중음이 되었을 동안에는 자기 몸이 옛날 업을 지을 때의 젊고 늙음을 그대로 보게 되고, 지옥의 중생을 볼 적에도 다 같이 자기 연배처럼 나이가 서로 비슷함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이 중생들에게 연모하는 생각을 일으키면서 그곳에 나아가게 되고, 이 애욕으로 말미암아 생을 받는 것이다. 경부(經部)의 논사(論師)들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이다.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만일 박복하게 살면 장차 하천한 집에 태어난다. 그는 죽을 때나 태 안에 들 때 갖가지 어지러운 소리를 듣게 되고, 또 저절로 우거진 숲과 대와 갈대와 물억새 따위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만일 복이 많은 이는 장차 존귀한 집에 가 태어난다. 그는 그 때 저절로 고요하고 아름답고 뜻에 맞는 음성을 듣게 되고 또 저절로 궁전에 오르는 등, 뜻에 맞는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구사론』에서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임종할 때 삿된 소견의 마음을 일으키면, 이 사람은 먼저의 착하지 않은 일이 인(因)이 되고 삿된 소견이 연(緣)이 되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
어떤 논사(論師)는 말하였다.
“온갖 착하지 않은 일은 모두가 아는 지옥의 인이거니와 이 착하지 않은 그 밖의 것으로 축생과 아귀 안에 가 떨어진다.”
또 나쁜 업이 왕성한 까닭에 축생 안에 떨어진다. 마치 음욕이 왕성한 까닭에 비둘기나 참새나 원앙새 안에 태어나고, 성을 냄이 왕성한 까닭에 도마뱀이나 독사나 전갈 안에 태어나며, 어리석음이 왕성한 까닭에 돼지나 양이나 조개 안에 태어나고, 교만함이 왕성한 까닭에 사자나 범이나 이리 안에 태어나며, 들뜨고 장난이 왕성한 까닭에 원숭이 안에 태어나고, 간탐과 질투가 왕성한 까닭에 굶주린 개 안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만일 그 중에서도 조그마한 선행이 있거나 복이 있으면 비록 축생에 났다 하더라도 조그마한 낙을 누린다. 몸과 입의 두 가지 업이 비록 마음이 주(主)가 되기는 하나 그 구업(口業)으로 보(報)를 받는 이가 많다. 가령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고 경솔한 것이 원숭이와 같으면 곧 원숭이 안에 태어난다. 가령 ‘욕심이 많고 포악함이 마치 마귀와 같다’고 하거나 ‘말하는 것이 마치 개 짖는 소리와 같다’고 하거나 ‘미련한 것이 마치 돼지나 양과 같다’고 하거나 ‘소리가 마치 나귀가 우는 것과 같다’고 하거나 ‘걸음을 걷는 것이 마치 낙타와 같다’고 하거나 ‘스스로 뽐내는 것이 마치 코끼리와 같다’고 하거나 ‘악한 것이 마치 달아나는 소와 같다’고 하거나 ‘음탕한 것이 마치 참새와 같다’고 하거나 ‘겁 많은 것이 마치 고양이나 삵과 같다’고 하면, 이러한 모든 악은 그 구업을 따라 보를 받는다.
그리고 3독(毒)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는데, 3독 중에서도 탐애(貪愛)가 가장 무겁나니, 마치 베의 한 끝을 잡아끌면 나머지 것이 모두 따라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만일 탐애를 끊지 않으면 그 탐애는 윤생[潤生]하게 한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4생(生)은 모두가 탐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니, 마치 음욕이 많으면 참새 안에 태어나는 것과 같고, 맛에 탐함이 많으면 뒷간 안의 생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 애욕 때문에 난생(卵生)이 되고 향기의 맛을 탐내기 때문에 습생(濕生)을 받는 것이니, 그가 애착하는 바를 따르기 때문이다. 또 은근하고 중한[重慇] 업을 일으키면 화생(化生)을 받는데, 가령 은근하고 중한 마음으로 죄짓는 일을 좋아하면 죽을 때에 지옥을 보면서 그곳으로 가서 화생하며, 만일 은근하고 중한 복을 애착하면 천상세계에 가서 화생한다. 그러므로 『성론(成論)』에서 말하였다.
“마치 나무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그 나무는 오히려 더 자라듯이, 탐욕의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고통 주는 나무가 언제나 존재한다.”
또 『유가론(瑜伽論)』에서도 말하였다.
“어떻게 하여 내[我]가 생기느냐 하면 애욕이 간단없이 생하기 때문이다.”
무시 이래로 쓸모 없는 이론을 좋아해서 그것이 인(因)이 되어 이미 훈습(熏習)되었기 때문이요,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은 업이 인이 되어 이미 훈습되었기 때문이요, 그 의지할 바탕[所依體]은 두 가지 인의 뛰어난 세력 때문이니, 종자(種子) 안에 이숙(異熟)이 있어서 간단없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죽을 때에는 마치 저울 양 끝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결국에는 똑같아지는 것처럼 이 가운데서 반드시 모든 감관을 갖추게 된다. 악업을 지은 이가 얻게 되는 중유(中有)는 검은 양의 빛깔이나 혹은 캄캄한 밤의 빛깔과 같으며, 선업을 지은 이의 중유는 마치 흰옷의 빛깔이나 청명한 밤의 빛깔과 같다. 『구사론』에서 말했다.
“이 중유는 5근(根)을 구족하는데 금강(金剛) 등도 장애하지 못한다. 수미산(須彌山) 아래 금강 안에는 두꺼비가 있지만 그 안에 생을 받는 중유는 미세한 물질이라서 금강도 장애하지 못한다. 천안(天眼)을 지닌 이만이 이 일을 볼 수 있다.”
거듭 들었던 일을 증거로 들면, 일찍이 어느 사람에게 들은 것인데, 쇠를 달구어서 뜨겁게 한 뒤에 그것을 깨뜨려서 보니 벌레가 나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수명이 길고 짧은 일이다. 『구사론』에서 말했다.
“만일 생이 정해지지 않고 그 밖의 다른 곳에 있을 적에는 이 갈래 안에서 모두 생을 받게 된다. 비유하면 소는 여름철에 교미(交尾)를 많이 하고, 개는 가을철에 많이 하고, 곰은 겨울철에 많이 하고 말은 봄철에 많이 하고, 야간(野干) 등은 일정한 때가 없이 교미를 하는데, 이 때 이 중생이 소에 가서 나야 하는데도 그 때가 여름철이 아니면 야간 안에 태어난다는 것이며, 또 개 안에 가서 태어나야 하는데도 그 철이 아니므로 야간 안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
또 구사(俱舍)의 소승사(小乘師)들에게 네 가지 해석이 있으나 다 같지 않다. 첫째의 설(說)에서는 극히 짧은 시간에 죽더라도 이미 5음을 받아 난다고 한다. 둘째의 설에서는 7일 동안만 머무르게 되고, 7일이 찬 뒤에는 중유로 있으면서 시절에 제한이 없다고 한다. 셋째의 설에서는 49일 동안 머무르게 되고, 태어날 연[生緣]이 아직 갖춰지지 않으면 죽은 뒤에 다시 받되 역시 시절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넷째의 설에서는 생을 받을 연을 따르되 겁(劫)을 지나면서 까지도 머무르면서 목숨을 마치지 않는다고 한다. 다섯째의 설에서는 『유가론』에 의하여 말하면, 만일 아직 태어날 연을 얻지 못하면 7일 동안 머무르다가 죽어서 다시 나되 49일 까지 죽고 나고 하며, 그로부터 이후는 어떻든 태어날 연을 얻고 만다고 한다. 이것은 앞의 네 가지와는 같지 않다.
네 번째는 신통력의 더디고 빠른 일이다. 『구사론』에서 말했다.
‘이 중음이 공중을 유람하며 다니다가 마치 사람이 목숨을 버리는 것 같이 한량없는 세계 밖으로 가서 생을 받아야 되면 잠깐 동안에 그곳에 가 도달하게 된다. 이승(二乘)의 신통력으로는 아직 하나의 세계도 나가지 못할 시간인데도, 중음은 벌써 한량없는 세계 밖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비록 부처님의 시력이라 할지라도 역시 그 밖의 갈래[道]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그곳에 가서 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나니, 업의 힘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업으로 인한 신통의 수승함을 논하자면, 수승한 범부인 일승(一乘)의 신통을 억누르게 된다.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신족(神足)의 수승함은 부처님의 신통보다 더 빠르다.”
다섯 번째는 서로서로 보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만일 생이 같은 갈래의 중음이면 반드시 서로가 본다고 한다. 만일 사람에게 천안(天眼)이 있으면 가장 청정하니, 이는 하나의 도의 지혜가 있는 이들이라서 이런 사람은 역시 저 태어남을 볼 수 있다. 만일 과보를 얻은 천안이면 볼 수 없으니 아주 미세하기 때문이다.
『살바다부(薩婆多部)』에서 말하였다.
“만일 같은 인도(人道) 중에서 생을 받는 이라면 같은 인도의 중음이라서 서로가 볼 수 있다. 이 이치는 정해진 것이어서 그 밖의 갈래의 중음은 볼 수가 없다. 만일 사람이 천안을 닦아 얻었으면 이 천안은 바로 도에 의하여 얻은 것이므로 중음의 빛깔을 볼 수 있지만 만일 과보로 얻은 천안이면 중음의 빛깔을 볼 수 없나니, 그 중음의 빛깔이 다른 빛깔보다 미세하기 때문이다.”
『정량부(正量部)』에 의하여 말하면, 천도(天道)의 중음은 다섯 갈래 중음의 빛깔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인도의 중음은 천도의 중음을 볼 수 없나니, 그가 볼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례로 앞의 것도 볼 수 없는 것이라서 나아가 지옥도(地獄道)의 중음도 앞의 네 가지 갈래의 중음을 보지 못하니, 그가 볼 바가 아니라서 오직 지옥도의 중음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여섯 번째는 몸의 크고 작은 일이다. 『구사론』에서 말한다.
“몸은 6ㆍ7세 되는 어린아이만큼 하고, 아는 것과 총명함도 그 정도이다. 만일 보살이 중음으로 있으면, 마치 조금 아픈 사람에게 크고 작은 모습이 모두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비록 중음에 있다손 치더라도 막 태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1만 구지(俱胝)의 염부주(剡浮洲)를 두루 비출 수 있다.
게송을 읊는다.

높은 집[高堂]은 진실로 객(客)을 치는 집이요
괴업[壞業]의 이치는 늘 끌어당긴다.
옥갑(玉匣)은 바야흐로 관(觀)에 맡고
금대(金臺)는 더 연장하지 말라.

상여의 소리[挽聲] 길 따라 멀어지고
담쟁이의 그림자[蘿影]는 소나무에 걸려 있다.
어찌 10념(念)에 머무를 수 있으랴.
오직 4연(緣)을 따라야만 한다.

허깨비를 만들어서 같고 다름을 지어서
그 변화를 희롱하며 많은 몸을 만드는데
어리석은 이들이 나와 남[人我]이라고 다투거늘
그 누군들 또 진실이라 일컫지 않겠는가?

잘못된 이[謵者]는 오래 가고 공고함을 의심하겠지만
통달한 이[達者]는 허깨비요 빈객(賓客)임을 안다.
친소(親疎)가 이미 정해짐이 없거늘
어찌 푸른 하늘을 보면서 수고롭게 슬퍼하는가.”

감응연(感應緣)[간략히 열여섯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애제(哀帝) 때, 어떤 여인이 잉태하여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태아가 뱃속에서 울었다.
한(漢)의 평제(平帝) 때, 어떤 소를 치는 여인이 봄에 죽었는데 염한 지 6일 만에 관속에서 나왔다.
한(漢)의 건안(建安) 동안에 이(李)라는 이가 나이 젊어서 죽었는데 14일 만에 다시 소생했다.
한(漢)의 진류(陳留) 사후(史姁)는 죽을 적에 유촉(遺囑)이 있었는데 뒤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한(漢)의 풍귀(馮貴) 사람은 죽은 지 1백 년이 지났으나 도둑이 그 무 덤을 파보았더니 얼굴빛이 옛날 그대로였다.
한(漢)의 영제(靈帝) 때, 요서(遼西) 사람이 요수(遼水) 물 위에 관 (棺)이 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속에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백이 (伯夷)의 아우 고죽군(孤竹君)이다”했다.
한(漢)의 북해(北海) 영릉(營陵)에 사는 어떤 도인(道人)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죽은 사람과 서로 만나볼 수 있게 했다.
한(漢)의 무제(武帝) 때에 제왕의 총애를 받은 이부인(李夫人)이 뒤 에 죽자 슬퍼하다가 제왕은 그녀를 장막 안에서 보았다.
한(漢) 때, 두하(杜嘏)의 집에서 장사를 지내다가 여종이 잘못하여 나 오지 못했는데, 10년이 지난 뒤에 무덤을 파보자 그 여종은 아직도 살 아 있었다.
한(漢)의 낙양(洛陽) 사문(沙門) 달다(達多)는 묘를 파다가 산 사람 을 얻었는데 그는 죽은 지 12년이었다.
진(晋)의 당준(唐遵)은 갑자기 죽었다가 하루 저녁을 지난 뒤에 소생 했는데 그가 당한 영묘한 감응들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진(晋)의 사문 하라갈(訶羅竭)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 모두 영징 (靈徵)이 있었는데, 그 신기하고 이상함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진(晋)의 사문 축법혜(竺法慧)는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 영묘한 감 응이 있었는데, 그 신기한 변화는 측량하기 어려웠다.
송(宋)의 사문 혜인(慧印)에게 황천(黃遷)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의 일들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수(隋)의 사문 석현경(釋玄景)은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의 상서로운 징조들이 모두 들어맞았다.
당(唐)의 거사(居士) 배칙남(裵則男)이 갑자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서 저승에서 본 일들을 말했는데, 모두가 그대로였다.

한(漢)의 애제(哀帝) 때, 어떤 여인이 잉태하여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태아 가 뱃속에서 울었다.
한나라 애제 건평(建平) 4년 4월에 있었던 일이다. 산양(山陽) 쪽에 한 여자가 살았는데, 밭은 한 뙈기도 없었다. 그녀는 아이를 밴 지 아직 두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뱃속에서 울었으므로 태어나자 키우려 하지 않고 그만 밭두덕 위에 파묻어 버렸다. 그런데 사흘 후에 어떤 사람이 지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므로 그 어머니는 파내어 길렀다.

한(漢)의 평제(平帝) 때, 어떤 소를 치는 여인이 봄에 죽었는데 염한 지 6일
만에 관속에서 나왔다.
한나라 평제 원시(元始) 원년 2월에 북방[朔方]의 넓은 데서 소를 치는 여인 조(趙)씨는 병이 들어 앓다가 봄철에 죽었다. 그녀를 염해서 관에 넣은 지 6일 만에 관 밖으로 나와 스스로 말하였다.
“죽은 남편을 만났는데 말하기를 ‘나이 27세인데 당신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고 하더라.”
태수(太守) 담(譚)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음(陰)이 지극하여 양(陽)이 되었으니, 아랫사람이 위가 되겠구나.”
과연 그 뒤에 왕망(王莽)이 왕위를 빼앗았다.

한(漢)의 건안(建安) 동안에 이(李)씨라는 이가 나이 젊어서 죽었는데 14일
만에 다시 소생했다.
한나라 건안 중년에 이(李)씨라는 이가 젊어서 일찍 죽었다가 14일 만에 다시 살아났는데, 그의 말이 귀신처럼 완전히 들어맞았다. 헌제(獻帝) 초에는 평중(平中) 장사(長沙)의 환(桓)씨가 죽었는데, 한달 남짓이 된 뒤에 그의 어머니가 관 속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열어 주어서 살아나게 한 일도 있었다.

한(漢)의 진류(陳留) 사후(史姁)는 죽을 적에 유촉(遺囑)이 있었는데 뒤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한나라 진류 고성(考城)에 사는 사후(史姁)는 자(字)가 위명(威明)이다.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 죽으려 할 때, 그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제가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저를 파묻을 적에 대 지팡이로 저의 무덤 위를 받쳐 놓아주십시오. 그러다가 만일 대 지팡이가 뾰족이 나오면 저를 파내어 주십시오.”
그가 죽게 되자 그를 파묻으면서 그의 말대로 받쳐 놓았다. 그런 뒤에 7일 만에 가서 보았더니, 지팡이가 과연 뾰족이 나와 있었다. 땅을 곧 파내자 살아 나왔으며, 우물로 가서 목욕을 하고 나자 옛날과 같이 회복되었다. 나중에 이웃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하비(下邳)로 가서 호미를 팔다가 잘 팔리지 않자 돌아가고 싶어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는 잠시 집에 갔다 오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으며 말했다.
“어떻게 천리 길이나 되는데, 잠깐만에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오?”
그가 대답하였다.
“하룻밤만 자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믿지 못하였으므로 편지를 써 주면서 답장을 받아오라고 함으로써 그것으로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는 하룻밤을 자고 돌아오면서 과연 답서를 모두 받아 왔으므로 소식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고성령(考城令) 강하(江夏) 담고화(譚賈和)가 그런 말을 듣고 그의 누님이 병이 들어 고향에 있었으므로 그 소식을 급히 알고자해서 그를 청하여 가서 살펴보고 오도록 했다. 길이 멀어서 3천 리였으나 이틀만에 답서를 가져 왔으므로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漢)의 풍귀(馮貴) 사람은 죽은 지 1백 년이 지났으나 도둑이 그 무덤을
파보았더니 얼굴빛이 옛날 그대로였다.
한나라 풍귀(馮貴) 사람이 죽은 지 1백 년이 되었으나 도둑이 그 무덤을 파보자 얼굴빛은 생시와 같았고 다만 살만이 조금 찼을 뿐이었으므로 도둑들이 그를 서로 시기하다가 뒤에 일이 발각되었다.

한(漢)의 영제(靈帝) 때, 요서(遼西) 사람이 요수(遼水) 물 위에 관(棺)이 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속에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백이(伯夷)의 아우
고죽군(孤竹君)이다” 했다.
한나라 영지현(令支縣)에 고죽성(孤竹城)이 있었는데 옛날 고죽(孤竹)의 나라였다. 영제(靈帝) 광화(光和) 원년에 요서(遼西) 사람이 요수(遼水) 물 위에 관(棺)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건져다 놓고 부수려고 했다. 그런데 관 속에서 사람 말소리가 났다.
“나는 백이(伯夷)의 아우 고죽군(孤竹君)입니다. 바닷물이 나의 관곽을 부서뜨려서 그 때문에 떠내려 온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부수어서 무엇하시렵니까?”
그 사람은 두려워서 감히 쪼개지 못하고 그대로 사당[廟]을 짓고 제사를 지내주었다. 관리와 백성들로서 어떤 이라도 그 속을 보려고 하는 이는 모두 까닭 없이 죽어 버렸다.
한(漢)의 북해(北海) 영릉(營陵)에 사는 어떤 도인(道人)은 사람들로 하여
금 이미 죽은 사람과 서로 만나볼 수 있게 했다.
한나라 북해의 영릉에 어떤 도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죽은 사람과 서로 만나볼 수 있게 했다. 같은 군(郡) 사람이 부인이 죽은 지 이미 수년이 지났었다. 그런 말을 듣고 가서 만나 말하였다.
“저로 하여금 죽은 부인을 한번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그러자 도인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당신이 가서 만나 보십시오. 만일 북소리가 들리거든 빨리 나오십시오.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도인은 서로 만난 뒤에 지킬 제약을 말해준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가 만났다. 함께 말하면서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사모하는 정이 생시 때와 똑같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북소리가 들렸다. 더 머무를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문으로 나올 때 문이 닫히면서 그의 옷 뒷자락이 문틈에 끼어서 끊어졌다. 그리고 떠나온 뒤에 한 해 남짓이 되었을 때 이 사람도 죽었다. 집안 사람들이 그 사람을 묻으려고 무덤을 열어 부인의 관을 보았더니, 그 덮개 아래에 옷 뒷자락이 끼여 있었다.

한(漢)의 무제(武帝) 때에 제왕의 총애를 받은 이부인(李夫人)이 뒤에 죽자
슬퍼하다가 제왕은 그녀를 장막 안에서 보았다.
한나라 무제(武帝)에게 총애를 받던 이부인(李夫人)이 있었다. 그 부인이 뒤에 죽게 되자 무제는 슬퍼하면서 그리워함이 그지없었다. 그러자 도사[方士] 소옹(少翁)이 말하였다.
“그 혼신(魂神)을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장막을 시설하여 등불을 밝게 켜 놓았다. 무제가 멀리서 바라보니 아름다운 여인이 장막 안에 있었는데 이부인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더 나아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한(漢) 때, 두하(杜嘏)의 집에서 장사를 지내다가 여종이 잘못하여 나오지
못했는데, 10년이 지난 뒤에 무덤을 파보자 그 여종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한나라 두하(杜嘏)의 집에서는 장사를 지내다가 여종이 잘못하여 그만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 10여 년 만에 합장(合葬)을 하려고 무덤을 파보았더니 그 여종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그녀가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으므로 얼마 있다가 그녀에게 물어 보았더니, 그녀는 스스로 말하였다.
“한두 밤을 잤을 뿐입니다.”
처음 그 여종이 파묻힐 때가 15세였고 무덤에서 나온 뒤에 다시 15ㆍ6년 살다가 시집을 보냈는데 아들이 있었다.[위의 아홉 가지 증험은 『수신이기(搜神異記)』에 나온다.]

한(漢)의 낙양(洛陽) 사문(沙門) 달다(達多)는 묘를 파다가 산 사람을 얻었
는데 그는 죽은 지 12년이었다.
한나라 보리사(菩提寺)는 서역(西域) 사람이 세웠으며 모의리(慕義里)에 있었다. 사문 달다(達多)가 묘를 파서 벽돌을 끄집어내다가 어떤 사람을 얻었으므로 상부로 보냈다. 당시 태후(太后)는 한나라 명제(明帝)와 함께 화림원(華林園)의 도당(都堂)에 있다가 괴이한 일이라고 여겨 황문랑(黃門郞) 서흘(徐紇)에게 물었다.
“상고(上古) 이래로 이런 일이 있었소?”
서흘이 말하였다.
“옛날 위(魏)나라 때, 무덤을 파다가 곽광(藿光)의 사위 범(范)의 친구 집 여종을 얻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조(漢朝)의 폐립(廢立)을 말했었는데 사서(史書)와 꼭 부합했습니다. 그다지 이상해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태후는 서흘로 하여금 그의 성명과 죽은 지가 몇 년 되었으며 무엇을 먹고살았는가를 묻게 했다. 죽은 이가 대답하였다.
“신(臣)의 성은 최(崔)요 이름은 함(涵)이며 자(字)는 자홍(子洪)이요 박릉(博陵) 안평(安平) 사람입니다. 아버님 이름은 창(暢)이요 어머님 성은 위(魏)씨이며, 집은 성(城)의 서쪽 부재리(埠財里)에 있습니다. 죽을 때의 나이는 15세였고 지금은 27세입니다. 땅 밑에 있으면서 12년 동안 늘 술에 취한 듯 누워서 먹은 것은 없습니다. 때로 놀러 다니다가 혹 음식을 만나기도 했으나 꿈속과 같았으므로 무어라 말로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태후는 곧 문하록사(門下錄事) 장준(張俊)을 부재리로 파견하여 함의 부모를 찾게 했다. 과연 최창과 그의 처 위씨가 있었으므로 장준은 최창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죽은 아들이 있었습니까?”
최창이 대답하였다.
“자홍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 15세 때에 죽었습니다.”
장준이 말했다.
“남에게 발굴되어 지금 다시 살아나서 화림원에 있습니다. 주상(主上)께서 나를 보내서 물어보게 했습니다.”
최창은 그 말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실은 그런 아들이 없습니다. 아까는 잘못 말한 것입니다.”
장준은 그대로 돌아와 그 사실을 자세히 태후에게 아뢰었다. 태후는 장준을 시켜 함을 그의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최창은 함이 문 앞에 와 있음을 듣고는 불을 피워 놓고 손에는 칼을 잡았으며, 또 위씨도 복숭아나무 가지를 쥐고 그를 내쫓으면서 말했다.
“너는 올 필요가 없다. 우리는 너의 부모가 아니요 너도 우리의 아들이 아니다. 빨리 떠나서 재앙이 없게 하라.”
최함은 할 수 없이 버리고 떠나갔다. 그는 경사(京師)의 마을 안[衖內]을 돌아다니다가 항상 절 문 아래서 잤으며 여남(汝南) 왕창(王暢)이 준 누런 옷 한 벌로써 지냈다. 그러면서 성질이 햇빛을 두려워했으므로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고, 또 물ㆍ불과 병기 등속을 두려워했으므로 항상 길을 달리기만 했다. 그러다 지치면 쉬고 천천히 걷는 일은 없었다. 그 때의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귀신이라고 여겼다. 낙양(雒陽)의 큰 저자 북쪽에 봉종리(奉終里)가 있었고 그 마을 안에서는 대부분이 죽은 사람에 관한 도구와 모든 관곽(棺槨)을 팔고 있었다. 함은 말하였다.
“잣나무로 만든 관에 뽕나무를 엇갈리게 놓지 말라.”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함이 말하였다.
“내가 땅 밑에 있을 때 귀신 병사들을 보았는데, 어느 한 귀신이 말하기를 ‘이것은 잣나무로 만든 관이라 병사들이 앉을 자리는 면하겠구나’ 했다.”
그러자 어느 관리가 말하였다.
“그대는 비록 잣나무로 만든 관에 뽕나무를 교차시키기는 했으나 드디어 병사들을 면하지 못했다.”
경사(京師)에서는 이 잣나무가 용귀(勇貴)함을 듣고 관을 파는 이들을 의심했다. 그래서 최함의 말을 지워버리기 위해 이런 말을 퍼뜨렸다 한다.[이 한 가지 증험은 『낙양사기(洛陽寺記)』에 나온다.]

진(晋)의 당준(唐遵)은 갑자기 죽었다가 하루 저녁을 지난 뒤에 소생했는데
그가 당한 영묘한 감응들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진나라 당준의 자(字)는 보도(保道)이며 상우(上虞) 사람이다. 진나라 태원(太元) 8년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가 하룻밤을 지나고 다시 살아나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불러서 데리고 갔는데, 하나의 성부(城府)에 이르렀다. 아직 다 가기 전에 나의 종숙(從叔)이 성 안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나에게 물었다.
‘네가 무엇 때문에 왔느냐?’
내가 대답했다.
’고모님과 누님을 뵙지 못한 지가 여러 해가 되었으므로 내일 날이 새면 출발하여 가 뵈려고 하는데, 밤에 몇 사람이 나타나 급히 불러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즉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종숙이 말하였다.
‘너의 고모님은 돌아가신 지 2년이나 되었다. 너의 큰 누님의 아들 도문(道文)이 근간에 이곳으로 잡혀 왔다가 은혜를 입어 놓여났는데도 그대로 머물러 구경하면서 노느라 즉시 돌아가지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돌아갔으나 집에서는 벌써 염을 마치고 관속에 넣고 있었다. 그가 시체에 들어가서 관이 흔들리자 그 집에서는 깨어날 것을 바라면서 관을 길에다 내려놓고 열려고 하다가 점쟁이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점쟁이는 불길(不吉)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끝내 감히 열어보지 못했고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파사(把沙)의 역사(役事)에 가 있으면서 모진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받고 있다. 너는 빨리 떠나야 한다. 여기서 머뭇거리지 말라. 또 너의 누이동생도 이미 죽었으니, 지금 너의 고모와 함께 지옥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언제 벗어날지는 모른다. 너는 이제 돌아가거든 그 아들에게 ≺부지런히 공덕을 닦아서 그들이 면할 수 있게 하라≻고 말하여라.’
그러면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가리켜 주셨다. 그리고 작별하려 할 적에 또 나에게 부탁하였다.
‘너는 도로 살아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세상에 있기는 잠시 동안이라 마치 비바람에 날리는 티끌과 같으며 천당이나 지옥에서 받는 쾌락과 고통은 응보(應報)인 것이다. 나는 옛날 그런 말을 듣기만 했다가 지금에야 그 사실들을 직접 보고 있다. 너는 의당 착한 업에 힘쓰고 효도와 공경에 힘쓸 것이며 불법을 사랑하고 계율을 지키면서 부디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한번 사람의 몸을 버리고, 여기 벌받는 땅으로 들어오면 그 혹심한 고통은 말로 다 못하며 스스로 후회한들 어찌 미치겠느냐. 부디 힘쓰면서 명심하여 잊지 말 것이다. 우리 집의 친족들은 살아 있을 때 죄와 복을 믿지 않다가 지금은 줄줄이 도탄(塗炭)에 빠져서 길이 혹독한 고통을 받고 있다. 그 타고 문드러지고 상하고 비통해 하는 것은 잠시도 쉬는 일이 없다. 하루 동안 악을 고치고 선을 하려 한들 무엇이 되겠느냐. 나는 그 모든 것을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너에게 부탁하는 것이니 온 집안 사람에게 권하고 교화하여 함께 힘쓰도록 하라.’
이 말을 마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작별하고 나서 길을 따라 돌아왔다. 잠깐 만에 집에 닿았는데 집에서는 관을 다 손질한 뒤에 한창 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시체에 가서 붙자 시체는 곧 숨이 통했다. 며칠이 되자 점차로 나아졌기 때문에 친족과 아는 이들에게 권하고 보이면서 다 같이 큰 법을 받들게 된 것이다.”
처음 당준의 고모는 남군(南郡)의 서한(徐漢)에게 시집갔고, 누님은 강하(江夏)의 낙유(樂瑜)에게 시집갔으며, 누이동생은 오흥(吳興)의 엄만(嚴晩)에게 시집갔으나 길이 하도 멀어서 소식이 끊긴 지가 오래였다. 당준은 몸이 낫게 되자, 드디어 세 개의 군(郡)에 가서 그들을 찾았다. 고모와 누이동생과 누님의 아들은 과연 다 같이 죽은 뒤였다. 누님 역시 아들 도문의 관이 움직이기에 상여를 내려놓았었다는 말을 했는데, 모두가 종숙이 말한 그대로였다. 당준에게서 도문이 횡사하게 되었다는 뜻을 듣자 그 누님은 더욱더 애통해 하면서 거듭 그를 위해 옷을 만들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진(晋)의 사문 하라갈(訶羅竭)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 모두 영징(靈
徵)이 있었는데, 그 신기하고 이상함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진나라 낙양(雒陽)의 석하라갈(釋訶羅竭)은 본시 양양(襄陽) 사람이다. 젊어서 출가하여 2백만 구절의 경전을 외웠고, 성품은 허현(虛玄)하며 계행을 지켰다. 행동이 착하고 얼굴이 잘났으며, 두타(頭陀)를 많이 행하면서 혼자 산야(山野)에 묵었다. 진나라 무제(武帝) 태강(太康) 9년에 잠시 낙양에 들렀을 적에는 역질(疫疾)이 몹시 번져 있었는데 그가 가서 주원(呪願)하면 모두 나았다. 진나라 혜제(慧帝) 원강(元康) 원년에 그는 상루지산(上婁至山)의 석실(石室)에 들어가서 좌선하고 있었다. 그 석실은 물에서 아주 멀리 떨어졌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산골 물을 대주려 했다. 그러자 하라갈이 말하였다.
“수고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일어나 왼발로 석실의 서쪽 석벽(石壁)을 밟았다. 그러자 움푹 들어갔는데 발을 뽑아 내자마자 물이 솟아 나왔다. 맑고 향기로우며 맛이 좋은 물이 사철 내내 끊어지지 않았으며, 와서 마신 사람들은 모두 굶주림이 그치고 질병이 없어졌다. 원강 8년에 단정히 앉아서 죽었으며 제자들은 국법에 의하여 화장했다. 그런데 불에 태운 지 여러 날이 되었지만, 그 시체는 아직도 불 속에 앉아서 영영 재가 되지 않았으므로 도로 석실에다 옮겨 두었다. 뒷날 서역 사람 축정(竺定)[자(字)는 안세(安世)이다.]이 진나라 함화(咸和) 중년에 그 나라에 가서 친히 그 시체를 살펴보았으나 엄연하게 평좌하고 있었다. 죽은 지 30여 년이었다. 축정은 뒤에 경사(京師)에 와서 승니와 속인들에게 그것을 전했다.

진(晋)의 사문 축법혜(竺法慧)는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에 영묘한 감응이
있었는데, 그 신기한 변화는 측량하기 어려웠다.
진나라 축법혜는 본시 관중(關中) 사람이다. 행동이 방정하고 계행이 있었으며, 숭고산(崇高山)에 들어가서 불도밀(佛圖蜜)을 스승으로 섬겼다. 진나라 강제(康帝) 건원(建元) 연간에 양양(襄陽)으로 와서 양숙자사(羊叔子寺)에 머물렀다. 별청(別請)도 받지 않고 매양 걸식을 했으며, 승상(繩床)을 가지고 다니면서 한적하고 넓은 길에다 깔아 놓고 앉았다. 때로 비를 만나면 기름에 절은 옷을 덮고 비가 그치면 승상만 보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찾으면 잠깐 사이에 벌써 승상에 와 있었다.
매양 제자 법소(法昭)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나간 세상에 한 마리의 닭다리를 부러뜨린 일이 있다. 그 재앙이 곧 닥치리라.”
얼마 있다가 법소는 남이 그를 던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영영 못쓰게 되었다. 또 뒤에 제자에게 말하였다.
“새 들[新野]에 한 늙은이가 곧 죽게 되었구나. 내가 가서 구해야겠다.”
그리고는 이내 밭 두덕 사이를 갔는데 과연 한 늙은이가 소를 데리고 밭을 갈고 있었다. 축법혜는 그에게 소를 달라고 했으나 늙은이는 주지 않았다. 그러자 축법혜는 그의 앞으로 가서 스스로 소의 코를 붙잡았다. 늙은이는 그의 기이한 행동이 두려워 드디어 소를 그에게 주었다. 축법혜는 소를 끌고 주원(呪願)하면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돌아와 소를 늙은이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늙은이는 며칠 되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
뒤에 서쪽을 정벌했던 유이공(庾移恭)이 양양을 진압했다. 그는 본디 불법을 받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축법혜에게 비상한 행적이 있음을 듣고는 매우 질투하고 있었다. 축법혜는 미리 제자에게 말했다.
“나에게 전생의 과보가 곧 닥치리라.”
권속들에게 경계하고 권하면서 부지런히 복과 선을 닦게 했다. 그런지 이틀 후에 과연 잡혀가서 형(刑)에 처해졌으니 춘추는 58세였다. 죽으려 할 때에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억울하게 나는 형을 당한다. 내가 죽고 나서 3일 후에는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리라.”
그 날이 되자 과연 큰비가 쏟아졌다. 성문 밖이 깊이 한 길쯤 패이면서 유이공의 권속과 살고 있던 백성들이 모두 다 빠져 죽었다. [위의 두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송(宋)의 사문 혜인(慧印)에게 황천(黃遷)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살아 있
을 때와 죽은 뒤의 일들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송나라 혜원(慧遠) 사문은 강릉(江陵) 장사사(長沙寺) 스님이다. 그의 스승 혜인(慧印)은 선법(禪法)을 잘 닦았으므로 선사(禪師)라고 불렸다. 혜원은 본래 혜인의 종이었으며 이름은 황천(黃遷)이었다. 나이 20세 때에 혜인이 매양 정(定)에 들면 황천의 전생이 보였고, 바로 그는 혜원의 스승이었으므로 드디어 제자로 삼은 것이다. 혜원은 항상 강릉시의 서쪽에 있는 양도산(楊道産)의 집에 있으면서 반주삼매(般舟三昧)를 닦았다. 힘써 고행한 지 1년여 만에 그로 인하여 드디어 감응이 나타났다. 혹은 하루 동안에 10여 곳의 재(齋)에 나아가기도 하고, 또 밤낮 내내 도를 수행하고 경을 독송하고 있는데도 각각의 집에는 모두 황천이 와 있음을 보았으므로 대중들은 점점 공경하고 기이하게 여기면서 도를 얻은 이라고 생각했다.
효건(孝建) 2년의 어느 아침에 스스로 말했다.
“죽을 때가 되었구나.”
그리고 도산에게 말했다.
“내일 저녁에 나는 당신 집에 가서 죽을 것입니다.”
다음 날 도산은 8관재(關齋)를 베풀면서 온밤 내내 등불을 켜 놓았다. 초저녁과 밤중이 지나도록 황천은 대중들과 함께 도를 행하고 편안하여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4경(更)이 된 뒤에야 고달프다고 누우면서 얼굴빛이 점점 변해지더니 잠깐 사이에 숨을 거두었다. 온 경내에서는 그를 위해 37재(齋)를 지냈고 탑을 세웠다. 그 탑은 지금도 있다. 죽은 지 오래 된 뒤였다. 그의 몸이 다보사(多寶寺)에 나타나서 담순(曇珣) 도인에게 말하였다.
“명년(明年) 2월 23일에 여러 하늘들이 함께 와서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떠나가 버렸다. 담순은 곧 장사 선방(長沙禪房)에서 90일 동안의 재를 지내며 몸을 버려서 보시했다. 그리고 그 날이 오자 숨이 가빴으므로 그는 틀림없이 죽을 것임을 알고 승니와 속인들에게 널리 말을 퍼뜨려 법회(法會)를 성대하게 열었다. 3경(更) 중간쯤 되었을 때 대중 스님들을 불러서 물었다.
“들리고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대중 스님들이 말했다.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담순은 말하였다.
“공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나고 향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으니, 황천(黃遷)과의 약속이 이제 다가왔습니다.”
대중 스님들은 비로소 당(堂)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담순은 벌써 숨을 거두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송(宋)나라 때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성명은 잊었다. 부부가 같이 자다가 날이 새자 아내가 일어나서 나가고 뒤에 남편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내가 방으로 돌아와 보니, 그의 남편이 아직도 이불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때 여종이 밖에서 오면서 말했다.
“주인 어른이 거울을 찾습니다.”
그 아내는 여종이 속인다 생각하고 침상 위를 가리키며 여종에게 보이니 여종이 말하였다.
“지금 막 주인 어른이 계신 곳에서 왔습니다.”
달려가서 그 남편 되는 이에게 말하자 그는 크게 놀라면서 들어왔다. 부부가 함께 이불 속에 있는 사람을 보매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이 꼭 그의 형상이었고 하나도 다른 데가 없었다. 비로소 그가 혼신(魂神)임을 알고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고 함께 손으로 천천히 침상을 어루만지자 드디어 축 늘어지면서 자리로 들어가며 점차로 소멸해 버렸다 .부부는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남편은 앓아 누웠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다가 죽었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송나라 때에 한 서생(書生)이 멀리 가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의 부모가 불을 켜놓고 밤에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아들이 그들 앞으로 와서 탄식하며 말하였다.
“지금 저는 혼백(魂魄)입니다.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 부모가 그에게 묻자 아들은 대답하였다.
“이 달 초에 병이 났다가 오늘 아무 시간에 죽었습니다. 지금 낭야(琅耶)의 임자성(任子成)의 집에 있는데, 내일은 염(殮)을 할 것이므로 부모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 부모는 말하였다.
“그 곳은 여기서 천리 길이다. 아무리 가고 싶다 하더라도 어떻게 가 볼 수 있단 말이냐?”
그 아들이 말하였다.
“밖에 탈 것이 있습니다. 가시면 저절로 이르시게 됩니다.”
그의 부모는 그를 따라가서 수레에 올라탔다. 그런데 갑자기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새벽닭이 울 때쯤 되어서 그곳에 벌써 도착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탔던 수레를 보았더니 혼백이 타는 목마(木馬) 수레였다. 드디어 주인을 만나고 아들에게로 가서 슬피 울다가 그가 병든 그 동안의 일들을 물어 보았더니 아들의 말과 같았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수(隋)의 사문 석현경(釋玄景)은 살아 있을 때와 죽은 뒤의 상서로운 징조
들이 모두 들어맞았다.
수나라 상주(相州) 업하(鄴下)에 살던 석현경은 성이 석(石)씨이며 창주(滄州)사람이다. 현미(玄微)한 뜻을 모두 이해했고 대승(大乘)을 순수히 강(講)했다. 뒤에 사흘 동안 앓아 누워 있다가 시자(侍者)들에게 말하였다.
“현경은 미륵불(彌勒佛)을 뵙고 싶다. 어떻게 야마천왕(夜摩天王)이 되겠느냐?”
또 말하였다.
“손님들이 극히 많으니, 맡았으면 모름지기 보살펴야 한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석현경이 대답하였다.
“범부가 지닌 의식(意識)으로는 어떻게 생각할 수조차 있겠소? 아까 하늘들이 와서 맞이하려 했었소.”
그런 뒤에 기이한 향내가 온 절에 가득 찼으므로 대중들이 다 같이 맡았다. 다시 석현경이 말하였다.
“나는 가려고 한다. 장차 세간에 태어나서 선지식(善知識)이 되겠다.”
드디어 그 자리에서 죽었으니, 곧 대업(大業) 2년 6월이었다.
그는 늘 원을 세워서 말하였다.
“나의 뼈를 물 속에다 가라앉혀 놓아라.”
그래서 그가 죽은 뒤에는 그의 뜻을 따라서 자맥하(紫陌河)의 깊은 물 속에다 장사지냈다. 3일이 지난 뒤에 가보니, 가라앉혀 놓았던 곳에는 도리어 모래 무덤이 아주 높고 험준하게 만들어져서 물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승니와 속인들은 그 우아한 상서를 기이하게 여겼다. 그 자취는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이 한 가지 증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거사(居士) 배칙남(裵則男)이 갑자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저
승에서 본 일들을 말했는데, 모두가 그대로였다.
당나라 조주(曹州)의 이호(離狐) 사람 배칙남은 정관(貞觀) 말년 21세 때에 죽었다. 3일을 지난 뒤에 다시 살아나서 스스로 이런 말을 했다.
“처음 죽자마자 한 사람이 왕에게로 데리고 갔다. 왕의 옷은 백색이었는데 너무나 산뜻하고 깨끗했다. 왕이 이 사람을 시켜서 소를 데려다 땅을 갈게 했으므로 하소연했다.
‘형제들이 어려서 양친을 모실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왕도 곧 가엾이 여기면서 사자(使者)를 시켜 남쪽으로 데려가게 했다. 그리하여 세 번째 중문(重門)에 닿아서 들어가 보았더니, 끊는 가마솥[鑊湯]과 칼로 된 산[刀山]과 칼나무[劒樹]가 있었다. 또 수천 명의 머리를 모두 베어서 땅 위에 줄지어 놓았는데, 이 머리에 붙은 입은 다 같이 “배고파 죽겠다”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 나이 70쯤 되는 한 노모(老母)가 있었는데 당시 아직 죽지 않은 이였다. 그런데 끓는 가마솥으로 나아가서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바라보고 나서 도로 왕에게로 갔는데 같은 마을 사람 장성(張成)이 나타났다. 그도 역시 아직 죽지 않은 이였다. 어느 한 사람이 장성을 고해 바치면서 말하였다.
‘아무개의 집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왕이 사자를 시켜 조사하게 했는데 사자가 와서 보고하였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자 장성이 말하였다.
‘쟁기질을 하다가 모르는 결에 쟁기가 그 무덤을 부서뜨린 것입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왕이 말하였다.
‘네가 아무리 고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으로 조심하지 않은 탓이다.’
드디어 사람을 시켜서 그의 허리에 곤장(棍杖) 일곱 대를 치게 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왕은 나에게 말하였다.
‘너에게는 다시 할 일이 없다. 너를 놓아줄 터이니 빨리 돌아가거라.’
그리고는 왕은 사람을 시켜 보내 주게 했다. 그래서 북쪽 담장을 넘으려고 담장에 올라가서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곡성(哭聲)이 들렸으므로 뛰어서 담장을 내려오는데, 그 바람에 갑자기 깨어나 일어나 앉은 것이다.”
소생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넌지시 말해주었다. 읍(邑) 사람들이 장성의 허리를 보았더니, 일곱 대의 곤장 자국이 있었으며 그 자국은 몹시 검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그에게 묘를 부서뜨린 일이 있느냐고 묻자 “거짓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노모도 곧 병이 들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당나라 낭야(琅耶)의 왕지홍(王之弘)은 정관(貞觀) 연간에 심주(沁州)의 화천 현령(和川縣令)으로 있었다. 딸을 박릉(博陵)의 최궤(崔軌)에게 시집보냈는데 최궤는 화천에서 병이 들어 죽었다. 죽은 지 수십 일이 지났을 때 그의 집에 갑자기 최궤의 말소리가 한밤중에 들렸다. 처음에는 온 집안이 놀라고 두려워했으나 그 뒤에는 보통으로 여기면서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궤는 이 집 사위입니다. 비록 처가(妻家)에다 영(靈)을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지만 괴롭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입니다. 다만 저를 위하여 놓아두기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의 아내가 청을 들어 주었더니, 아침저녁으로 메를 놓을 때 고기를 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오직 소찬(素餐)만을 놓게 하였다. 그리고 항상 부처님께 예배하기를 권하면서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또 지옥 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말하였다.
“사람은 일생 동안 항상 살생과 불효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밖의 죄들이야 작은 것들뿐이다.”
또 말하였다.
“궤가 비록 죄는 없다손 쳐도 큰 노자와 복이 없으니, 궤를 위하여 자주자주 재를 베풀어주십시오, 아울러 『법화경(法華經)』과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과 『관음경(觀音經)』의 3경을 각각 2부(部)씩 베껴 주시면 옛날 지은 공덕과 합쳐서 구제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오지 않았다. 왕씨 집에서는 일단 그의 말에 의하여 경전을 베끼고 재공(齋供)을 베풀었더니, 궤가 갑자기 다시 와서 감사하다 하면서 이어 말하였다.
“이제는 곧 작별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 사람들이 울면서 전송했다. 궤에게는 유복자(遺腹子)가 있었는데 벌써 나이 4ㆍ5세쯤 되었다. 그에 대해서 말하였다.
“궤의 이 아들은 반드시 벼슬을 하게 될 것이니 잘 길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로부터 다시는 오지 않았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왕지홍 자신이 말해 준 것을 기록한 것이다.]法苑珠林卷第九十七 何 西明寺沙門釋 道世 撰送終篇第九十七 此有四部述意部 捨命部遣送部 受生部述意部第一惟四大毒器有穢斯充,六賊狂主是境皆著,無復逆流之期,唯有偱環之勢,至如析一毛以利天下,則悋而弗爲,撤一餐以續餘糧。則惜而不與,淪滯生死,封執有爲。諸佛爲其斂眉,菩薩於茲泣血,竊見俗徒貴勝父母喪亡多造葬儀廣殺生命,聚集親族供待賓客,茍求現勝不避業因,或畏外譏不修內典。所以父亡於斯重苦,母終偏增湯炭。是以宛轉三界緜歷六道,四趣易歸萬劫難啓,痛慈母之幽靈,愍逆子之酬毒,但亢陽如久必思甘雨之澤,災癘若多,剋待良醫之藥,惟斯考妣旣是凡夫,能無惡業,罪因不滅,苦報難排,若不憑諸勝福,樂果何容得證,庶使臨終發願令入屍陀,葬具資身竝修功德,冀濟飛走之飢,得免將來之債也。如十二品生死經云:‘佛言:人死有十二品,何等十二?一曰無餘死者,謂羅漢,無所著也。二曰度於死者,謂阿那含,不復還也。三曰有餘死者,謂斯陀含,往而還也。四曰學度死者,謂須陀洹,見道迹也。五曰無欺死者,謂八等人也。六曰歡喜死者,謂行一心也。七曰數數死者,謂惡戒人也。八曰悔死者,謂凡夫也。九曰橫死者,謂孤獨苦也。十曰縛著死者,謂畜生也。十一曰燒灼死者,謂地獄也。十二曰飢渴死者,謂餓鬼也。比丘當曉知是,勿爲放逸也。’又淨度三昧經云:‘若人造善惡業生天墯獄,臨命終時各有迎人,病欲死時眼自見來迎,應生天上者,天人持天衣伎樂來迎,應生他方者,眼見尊人爲說妙言,若爲惡墯地獄者,眼見兵士持刀楯矛戟索圍繞之,所見不同,口不能言,各隨所作得其果報,天無枉灆平直無二,隨其所作天網治之。’又華嚴經云:‘人欲終時見中陰相,若行惡業者,見三惡受苦,或見閻羅持諸兵仗囚執將去,或聞苦聲,若行善者,見諸天宮殿伎女莊嚴游戲快樂如是勝事。’又法句喩經云:‘昔佛在祇桓精舍,爲天人說法,有一長者,居在路側財富無數,正有一子。其年二十,新爲娶妻,未滿七日,夫婦相敬,欲至後園,上春三月看戲園中,有一柰樹,高大好華,婦欲得華無人取與,夫爲上樹,乃至細枝枝折墯死,居家大小奔走兒所,呼天號哭斷絕復蘇,聞者莫不傷心,棺斂送還家啼不止,世尊愍傷其愚,往問訊之。長者室家大小見佛,悲感作禮具陳辛苦,佛語長者,止息聽法,萬物無常,不可夂保,生則有死,罪福相追。此兒三處爲其哭泣,懊惱斷絕亦復難勝,竟爲誰子,何者爲親?於是世尊卽說偈言:命如華果熟 常恐會零落 已生皆有苦孰能致不死。 從初樂愛欲 可望入胞影受形命如電 晝夜流難止。 是身爲死物精神無形法 作命死復生 罪福則不亡。終始非一世 從癡愛長久 自作受苦樂身死神不喪。長者聞得意解忘憂,長跪白佛:此兒宿命作何罪舋,盛美之壽而便中夭,唯願解說本所行罪。佛告長者:乃往昔時有一小兒,持弓箭入神樹中戲,邊有三人亦在中看,樹上有雀小兒欲射,三人勸言:若能中雀世閒健兒,小兒意美引弓射之,中雀卽死。三人共笑,助之歡喜而各自去。經歷生死數劫之中,所在相會受罪。三人中一人有福今在天上,一人生海中,爲化生龍王。一人今日,長者身是,小兒者前生天上爲天作子,壽終爲長者作子,墯樹命終卽生海中,爲龍王作子,卽以生日金翅鳥,王而取食之。今日三處懊惱涕泣,寧可言也?以其前世助其喜故,此三人受報如此,於是世尊卽說偈言:識神造三界 善不善三處 陰行而默至所往如響應。 色欲不色有 一切因宿行如種隨本像 自然報如影。佛說偈已,長者意解,大小歡喜,皆得須陀洹道。又四分律,爾時,世尊爲利益衆生,王命終,說偈云:一切要歸盡 高者會當墯 生者無不死有命皆無常。 衆生墯有數 一切皆有爲一切諸世閒 無有不老死。 衆生是常法生生皆歸死 隨其所造業 罪福有果報。惡業墯地獄 善業生天上 高行生善道得無漏涅槃。遣送部第三述曰:生死連環不離俗諦,雖復出家志求勝道。分段未捨變易未除,仍依三界隨俗遷流,至於存亡,皆依內外,臨終之日安置得所,葬送威儀具存下說。且論亡屍,安置南北,魂魄不同,今此略述。禮記禮運曰:體魄則降知氣在上,死者北首,生者南向。郊特生曰:魂氣歸於天,形魄歸於地,故祭求諸陰陽之義,祭義曰:氣也者神之盛,魂也者鬼之盛。左傳昭二年子產對趙景子曰:人生死化曰魄,旣生魄陽曰:魂。用物精多則魂魄强。是以有精爽至於神明,匹夫匹婦强死。其魂魄猶能憑依於人以爲淫厲,況良霄乎。淮南子曰:天氣爲魂,地氣爲魄魄問於魂曰:道何以爲體?魂曰:以無有形乎。魄曰:有形也。若也無有。何而問也?魂曰:吾直有所遇之耳。視之無形,聽之無聲,謂之幽冥者,所以喩道,而非道也。問曰:旣知魂與魄別。今時,俗亡何故以衣喚魂不云喚魄?荅曰:魂是靈,魄是屍。故禮以初亡之時,以己所著之衣,將向屍魄之上,以魂外出故,將衣喚魂,魂識己衣,尋衣歸魄,若魂歸於魄,則屍口纊動,若魂不歸於魄,則口纊不動,以理而言,故云招魂不言喚魄,故蕭喪服要記曰:魯哀公葬其父。孔子問曰:寧設魂衣乎?哀公曰:魂衣起伯桃,伯桃荊山之,下道逢寒死,友人羊角哀往迎其屍,愍魂神之寒,故改作魂衣,吾父生服錦繡,死于衣被,何用衣爲?問曰:何須幡上書其姓名。荅曰:幡招魂置其乾地,以魂識其名,尋名入於闇室亦投之於魄或入於重室直龍反重者重也徒用反以重之內具安祭食以存亡各別明闇不同故,鬼神闇食,生人明食,故重用籧篨,裹其食具,以安重內,置其坤地也。依如西域葬法有四。一水漂,二火焚,三土埋,四施林。五分律云:‘若火燒時安在石上,不得草土上,恐傷蟲故。’四分律云:‘如來輪王二人悉火葬,餘人通前四葬者多五分律云屍應埋之此謂王法不許施身復恐夏燒殺蟲故令埋之自外無難水林亦得也又依四分律及五百問事云:‘若見如來塔廟及見五衆出家人塚塔,大於己者,皆須展轉依生時年臘而設禮之。若一切白衣見出家人塚塔,不簡大小皆須敬禮。’述曰:旣知如此,諸道俗等,若見師僧父母亡柩,外來弔人小於亡者,至其屍所如常設禮,已先執孝子手默慰弔之。後至大德所,具展哀情,弔而拜之,亦見愚癡白衣,妄行法教,展轉教他,不聽禮父母叔伯尊親亡靈。口云:德和我旣,受戒彼爲,鬼神故不合禮,恐破戒故此,不合教反招。無知之罪伏,惟師僧等長,養我法身父母叔伯,等長養我生身依斯,乳哺長大。成人思此恩?德昊天難,報歷劫酬,恩豈一生,能謝不存?敬恩反起墯,慢繼踵鄙夫何成孝。子故世尊極聖尚自,躬扶亡父屍:‘送況下,凡愚輒生。怠慢故涅,槃經云知恩者大悲之本不知恩者甚於畜生又淨飯王泥洹經云白淨王在舍夷國病篤將終思見世尊及難陀等世尊在王舍城耆闍崛山中去此懸遠五十由旬,世尊在靈鷲山天耳遙,聞父思憶聲卽共阿難等乘空而至以手摩王額,上慰勞王已爲王,說摩訶波羅本生經。王聞得阿那含果王捉,佛手捧置心上佛又說法得阿羅漢果無常對至命盡氣絕忽就後世至闍。維時佛共難陀在喪,頭前肅恭而立阿難:羅雲在喪足後阿難,陀長跪白:佛言唯願聽我擔伯,父棺羅雲,復言唯願聽我擔祖王棺世尊慰言當來世人皆凶暴,不報父母育養之恩,爲是不孝衆生設化法故,如來躬欲擔於父王之棺,卽時三千大千世界六種震動,一切衆山駊騀涌沒,如水上船。爾時,一切諸天、龍、神,皆來赴喪擧聲哭泣,四天王將鬼神億百千衆,皆共擧喪,白佛言:佛爲當來諸不孝父母者故,以大慈悲,親欲自身擔父王棺。四王俱白佛言:我等是佛弟子,從佛聞法,得須陀洹,以是之故,我曹宜擔父王之棺。佛聽四王擔父王棺,卽變爲人,一切人民莫不啼泣。世尊躬自手執香鑪,前行詣於墓所,令千羅漢往大海渚上,取牛頭栴檀種種香木,以火焚之。佛言:苦、空、無常,猶如幻化、水月、鏡像燒身旣竟爾時諸王各持五百甁 乳以用滅火火滅之後競共收骨盛金剛函,卽於其上,便共起塔,懸繒幡蓋,供養塔廟。佛告衆會:父王淨飯是淸淨人,生淨居天。又佛母泥洹經云:‘大愛道比丘尼,卽是佛姨母,不忍見佛後當滅度,欲先滅度與除饉女五百人卽是比丘尼也康僧會法鏡經云凡夫貪染六塵猶餓夫貪飯不知厭足今聖人斷貪除六情飢饉故號出家尼爲除饉也以手摩佛足,繞佛三帀,稽首而去,現神足德,於自座沒,從東方來在虛空中作十八變,八方上下亦復如是,放大光明以照諸冥,上曜諸天,五百除饉變化俱然同時泥洹,佛勸理家作五百輿牀,麻油香華樟枏梓材,事各五百,眞伎正音當以供養,一切凡聖睹之莫不哀泣。闍維畢捧舍利詣佛所,於是四方各二百五十應眞,神足飛來稽首佛足,至舍利所,千比丘俱皆就坐。佛告阿難:取舍利盛之,以鉢著吾手中,阿難如命,告諸比丘:斯聚舍利本是穢身,兇愚急暴,嫉妒陰謀,敗道壞德,今母能拔興丈夫行,獲應眞道遷靈卒無,何其健哉?勅令興廟供養。又增一阿含經云:‘佛告阿難陀羅雲:汝等輿大愛道身,我當親自供養。爾時,釋提桓因四天王等,前白佛言:唯願勿自勞神,我等自當供養。佛言:止止。所以然者,父母生子多有所益,長養恩重乳哺懷抱,要當報恩不得,不報,過去、未來諸佛母,先取滅度,諸佛皆自供養,闍維舍利也。時,毘沙門天王使諸鬼神往栴檀林取栴檀薪,至曠野之閒,佛躬自輿牀一腳,阿難輿一腳,飛在虛空,往至塚間。爾時,佛自取栴檀木著大愛道身上。佛言:有四人應起塔供養,一者佛,二者辟支佛,三者漏盡阿羅漢,四者轉輪聖王。皆以十善化物故。爾時,人民卽取舍利,各起塔供養,依雜阿含經,愛道姨母,卽是難陀親母也。’又增一阿含經云:‘四部弟子中略取前後者,且列八人,比丘中最初得道者如拘鄰比丘,善能勸化,不失威儀,最後得道者如須跋陀羅。臨得道日,入般涅槃,比丘尼中,最初得道者,如大愛道尼。最後得道者,如陀羅俱夷國尼,優婆塞中,最初得道者,如商客男,最後得道者,如俱夷那摩羅。優婆夷中,最初得道者,如難婆女,最後得道者,如藍優婆夷。’受生部第四夫生則八識持,死則四大離散,迅矣百齡終歸磨滅,循環三界運轉靡停,故經曰:‘有始必終,旣生則滅,聖教不虛自睹交臂,所以於此緣中略述六門。’第一門中臨命終時,檢身冷熱驗其善惡,具知來報,故瑜伽論云:‘此有情者非色非心,假爲命者,大小皆同死通漸頓。諸師相傳,造善之人,從下冷觸至臍已上,煖氣後盡,卽生人中,若至頭面熱氣後盡,卽生天道,若造惡者與此相違,從上至腰熱後盡者,生於鬼趣,從腰至膝熱氣盡者,生於畜生,從膝已下乃至腳盡者,生地獄中,無學之人入涅槃者,或在心煖,或在頂也。’然瑜伽論云:‘羯羅藍義最初託處,卽名肉心,如是識於此處最初託,卽從此處最後捨。’釋云:‘依瑜伽論由造善生上,故從下漸捨至肉心,後方說上捨,由造惡生下故先從上捨至肉心,後方從下捨也。’俱舍論云:‘若人正死,於何身分中意識斷滅,若一時身死根共意識一時俱滅,若人次第死。此中偈曰:次第死腳齊於心意識斷下人天不生論中釋曰:‘若人必往惡道受生及人道,如此等人,次第於阿羅漢。此人於心意識斷絕,有餘部說於頭上。何以故?身根於此等處與意,識俱滅故,若人正死,此身根如熱,石水漸漸縮滅,於腳等處次第而滅。釋云:俱舍論述小乘義,故云身於此等處與意識俱滅,若依大乘,身根於此等處與本識俱滅也。’第二受生方法者,依俱舍論云:‘爲行至,應生道處故,起此中陰衆生,由宿業勢力所生眼根,雖住最遠處,能見應生處,於中見父母變異事。若變成男,於母卽起男人欲心,若變成女,於父卽起女人欲心,倒此心起瞋。此中有衆生,由二起顚倒心故,求欲戲往至生處,是卽樂得屬已。是時,不淨已至胎處,卽生歡喜,仍託彼生,從此剎那是衆生五陰和合堅實,中有五陰,卽滅如此方說受生,若胎是男依母左脅,面向母背蹲坐,若胎是女,依母右脅向母腹而住,若胎非男非女,隨欲類託生,住亦如此,無有中有異,於男女皆具根故。是故或男或女,託生而住。後時在胎中增長,或作黃門,若託胎卵二生,道理如此,若衆生欲受濕生愛樂香故至生處。此香或淨,或不淨,隨宿業故,若是化生愛樂處所故至生處,若爾地獄衆生,云何生樂處所?由心顚倒故,此衆生見寒風冷雨觸惱身,見地獄火猛熾盛可愛,欲得暖觸故往入彼。復見身爲熱風光及火焰等所炙,苦痛難忍,見寒地獄,淸涼愛樂冷觸故往入彼。胎卵二生於父母變異事生愛,濕化二生不由託赤白爲身故無此變。濕生但愛著香故,至所生處,隨業善惡,所愛之香自有淨穢,化生但愛所依之處,地獄雖是苦處,然罪人樂亦得愛處,於中受生。何以故?非愛不受生故,論云:如往昔造作能感如此生,樂見身是如此位,見彼衆生亦爾。是故往彼,先舊諸師作如此說,若衆生年三十時,行殺生業網捕衆生,行此事時必有伴類。此業能感地獄生,後於中陰中,見自身如昔年三十行網捕時故言位。又見昔伴與昔不差,見地獄時,如昔見江湖諸伴類等,相牽共入其中,緣此起變,卽於中受生後解昔所造業雖多,必以一業牽地獄生,或於年二十時作此業,或三十時作此業。後於中陰中見自身,如昔作業時少老,見地獄衆生,竝如己年時,年時,旣相似,於此衆生起變,卽往就彼,由此愛故受生,依經部師作如此釋。’又瑜伽論云:‘若居薄福者,當生下賤家,彼於死時及入胎時,便聞種種紛亂之聲,及自妄見入於叢林竹葦蘆荻等中,若多福者,當生尊貴家。彼於爾時,便自聞有寂靜美妙可意音聲,及自妄見昇宮殿等,可意相現。’又俱舍論云:‘若人臨終起邪見心。是人以先不善爲因邪見爲緣故墯地獄,有論師言,一切不善皆是地獄因。此不善之餘生畜生餓鬼中,又法業盛故墯畜生中,如婬慾盛故生於鴿雀鴛鴦之中,瞋恚盛故生於蚖蝮蛇蝎中,愚癡盛故生猪羊蚌蛤中,憍慢盛故生於師子虎狼中,掉戲盛故生獼猴中,慳嫉盛故生餓狗中,若有少分施善餘福。雖生畜生於中微樂,身口二業雖由心爲主。然其口業受報者多,如罵人輕躁喩如獼猴卽生猴中,若言貪悷如烏,語如狗吠,騃如豬羊,聲如驢鳴,行如驝駝,自高如象,惡如逸牛,婬如鳥雀,怯如猫狸,諂如野狐。如是諸惡隨口受報,然由三毒爲本,三毒之中,貪愛爲重,如捉布一頭,餘則盡隨,故智度論云:若不斷愛愛則潤生。是故四生皆由愛起,如說多欲生鳥雀中,多貪味故,廁中受生。又愛欲故卵生,貪香味故受濕生,隨其所愛故,起慇重業則受化生,若慇重心樂行罪業,死時妄見地獄受其化生,若慇重愛福上界化生,故成論云:如樹根不拔其樹猶生,貪根不拔苦樹常在。’又瑜伽論云:‘云何生我愛無閒已生故?無始樂著戲論,因已熏習故,淨不淨業因已熏習故,彼所依體,由二種因,增上力故,從種子,卽於是處中有異熟無閒得生。死時,如稱兩頭低昂時等,而此中必具諸根造惡業者,所得中有如黑羺光,或陰暗夜作善業者,如白衣光,或晴明夜,俱舍論云:此中有具足五根,金剛等所不能礙,須彌山下金剛中有蝦蟆,於中受生,中有細色金剛,不能礙之,有天眼者,能見此事,重擧所聞事證,曾聞人說,燒鐵令熱。破之見蟲。’第三壽量長短者,俱舍論云:‘若不定生處於餘處,此道中皆得受生,譬如牛於夏時欲事偏多,狗於秋時,熊於冬時,馬於春時,野干等欲事無時。是時此衆生應生牛中,若非夏時則生野干中,若應生狗中,非時則生野干中。又俱舍小乘師有四釋不同。一說極促時死已卽受陰生。二說得住七日,七日滿已,處中有不限時節。三說得住四十九日生緣未具,死已更受,亦不限時節,四說隨受生緣,乃至經劫住不命終,第五依瑜伽論云:若未得生緣極七日住,死而復生,乃至七七日受死生,自此已後決得生緣,此與前四皆不同也。’弟四通力遲速者俱舍論云:‘此中陰游空而去,如人捨命應至無量世界外受生,俄頃卽到,二乘通力未出一世界,中陰已至無量世界外,縱佛神力,亦不能遮令不往生得住餘道,以業力定故,論業通勝者,據勝凡夫一乘神通,婆沙論云:神足勝者,據佛神通速也。’第五互見不同者,依俱舍論云:‘若同生道中陰定互相見,若人有天眼最淸淨是一道慧類。此人亦得見彼生,若報得天眼則不能見,以最細故,薩婆多部云:若同於人道中受生,同是人道中陰,互得相見。此義爲定,不能見餘道中陰,若人修得天眼。此天眼則是道類,能見中陰色,若報得天眼則不能見中陰色,中陰色細餘色故,依正量部云:天道中陰備能見五道中陰色。人道中陰能見四道,除天道中陰,非其所能見。如是次第除前,乃至地獄道中陰,除前四道中陰,非其所見,唯見地獄道中陰。’第六身量大小者,俱舍論云:‘身量如六七歲小兒,而識解聰利,若菩薩在中陰,如圓滿少病人,具大小相。是故雖在中陰,正欲入胎,而能徧照萬俱胝剡浮洲。 頌曰:高堂信逆旅 壞業理常牽 玉匣方委觀金臺不復延。 挽聲隨遙遠 蘿影帶松懸詎能留十念 唯應逐四緣。 幻工作同異變弄作多身 愚俗諍人我 誰復非謂眞。謬者疑久固 達者知幻賓 親疏旣無定何勞悲蒼旻。 感應緣 略引十六驗漢哀帝有女孕,未生二月,兒啼腹中。漢平帝時,有牧女,春死棺,殮六日出棺。漢建安中李妖死,十四日復生。漢陳留史姁臨死,遺囑有徵。漢馮貴人亡死,將百歲,賊發塚,顏色如故。漢靈帝時,遼西人見遼水中浮棺,內人語云:是伯夷之弟,孤竹君也。’漢北海營陵,有道人,能令人與已死人相見。漢武帝時,幸李夫人,後卒哀帝見之帳中。漢時杜嘏家葬而婢,誤不得出,經十年開塚,而婢尚生。漢雒陽沙門達多發墓,得生人,死來十二年。晉唐遵暴死,經夕見有靈徵可驗。晉沙門訶羅竭存亡皆有靈徵神異難測。晉沙門竺法慧存亡,亦有靈神化難測。宋沙門慧遠有弟子,名黃遷,存亡有驗。隋沙門釋玄景存亡,亦有徵祥,可驗。唐居士裵則男暴死,而蘇說冥道可驗。漢哀帝建平四年四月,山陽方有女子,田無壹孕未生,二月兒啼腹中,及生不擧葬之陌上,三日有人過,聞兒宗戒啼聲母掘養之漢平帝元始。元年二月,朔方廣牧。女子:趙病春,死棺:殮六日出,在棺水自。言見死夫乃曰年:二十七汝不當死太守譚以聞說曰至陰爲陽下人爲上其後王莽篡位漢建安中,李妖死十四日復生其語,具作鬼神獻帝初平中長沙桓氏死月餘其母聞棺中有聲發之遂生漢陳,留考城史姁字:威明年少時,當得病臨死謂其母曰,我死當復生埋,我以竹杖拄我瘞上,若杖拔掘出。我及死埋之柱如其言,七日往視之杖。果拔出卽,掘屍出活走至井上浴,已平復如,故復與,鄰人乘:船至下邳,賣鋤不售。思欲歸謂人曰我方?暫歸:人不信之,何有千里,暫得歸耶,荅曰一宿。便還卽不相,信作書得,報以爲驗,實其一宿便還果得報書,具知消息考,城令江夏𨝸,賈和聞之,姊病在鄕,里欲急知消息請往省之路遙三千再宿報書具知委曲漢馮貴人亡死將百歲盜賊發塚顏宗戒色如故但肉微冷群賊幸之致相妒忌然後事覺漢令支縣有孤,竹城古孤竹之國也靈帝,光和元年,遼西人見遼:水中有浮棺欲斫破之棺。中人語曰我是。伯夷之弟,孤竹君也海?水壞我棺椁,是以漂流汝斫,我何爲人懼不敢,斫因爲立廟祠祀吏民有欲發視者皆無何而死漢北海。營陵有道人能令人與,已死人相見其:同郡人婦死已數,年聞而往。見之曰:願令我一見,亡婦死不,恨矣道人,曰可卿往見之若。聞鼓聲疾出勿留乃,語其相見,之制於是與婦,言語悲喜思情如生良,久聞鼓音聲,恨不能得住當,出戶時揜,閉其衣裾,戶閒掣絕,而去至後歲,餘此人身亡。室家葬之開塚見,婦棺蓋下,有衣裾漢武,帝幸李夫人夫人後卒,帝哀思不已方土,少翁言能致其神乃施,帷帳明燈燭帝遙望見美女居帳中如李夫人之狀而不得就乃遙視之漢杜嘏家葬而婢誤不得出後十餘年開塚附葬,而婢尚生其始如瞑,有頃漸問之,自謂嘗一再宿耳。初婢埋時,年至十五,及開塚後更生十五、六年嫁之有子右此九驗出搜神異記漢菩提寺,西域人所立也。在慕義里,沙門達多發墓取塼,得一人以送。時,太后與漢明帝在華林都堂,以爲妖異。謂黃門郞徐紇曰:上古以來頗有此事不?紇曰:昔魏時發塚得霍光女壻范朋友家奴,說漢朝廢立,與史書符合,不足爲異也。后令紇問其姓名,死來幾年?何所飮食?死者答曰:臣姓崔名涵,字子洪博陵安平人,父名暢,母姓魏。家在城西埠財里。死時,年十五,今乃二十七。在地下十二年,常似醉臥無所食也。時,復游行,或遇飮食,如似夢中,不甚辯了,后卽遣門下錄事張儁,詣埠財里訪涵父母,果有崔暢其妻魏氏,儁問暢曰:卿有死兒不?暢曰:有息子洪,年十五而亡。儁曰:爲人所發今日蘇活在華林園。主上遣我來相問。暢聞驚怖曰:實無此兒,向者謬言,儁還具以實聞啓后,后遣儁送涵向家,暢聞涵至門前,起火手持刀,魏氏把桃枝拒之,汝不須來,吾非汝父,汝非我子。急手速去,可得無殃,涵遂捨去,游於京師巷內,常宿寺門下,汝南王賜黃衣一通,性畏日不仰視天。又畏水火及兵刃之屬,常走於路,疲則止,不徐行也。時,人猶謂是鬼,雒陽大市北有奉終里,里內之人,多賣送死之具及諸棺椁。涵謂曰:柏棺,勿以桑木爲榱,人問其故。涵曰:吾在地下見發鬼兵,有一鬼稱。是柏棺,應免兵主。吏曰:你雖柏棺桑木爲榱,遂不免兵,京師仰聞此,柏木勇貴,人疑賣棺者化涵故發此言見雖陽寺 記錄 晉唐遵字保道,上虞人也。晉太元八年暴病而死,經夕得蘇。云有人呼將去至一城府,未進頃見其從叔自城中出,驚問遵,汝何故來?遵荅:違離姑姊,竝歷年載,欲往問訊,本明當發,夜見數人,急呼來此,卽時可得歸去,而不知還路,從叔云:汝姑喪已二年,汝大姊兒道文近被錄來,旣蒙恩放,仍留看戲,不卽還去,積日方歸,家已殯殮,乃入棺中。又搖動棺器,冀望其家覺寤開棺,棺遂至路,落棺車下,其家或欲開之,乃問卜者,卜云不吉。遂不敢開,不復得生,今爲把沙之役,辛勤極苦,汝宜速去,勿復住此。且汝小姊又已喪亡。今與汝姑共在地獄,日夕憂苦,不知何時可得免脫?汝今還去可語其兒,勤修功德庶得免之,於此示遵歸路。將別又屬遵曰:汝得還生良爲殊慶,在世無幾倏如風塵,天堂地獄苦樂報應。吾昔聞其語,今睹其實,汝宜深勤善業務爲孝敬愛法持戒,愼不可犯,一去人身入此罪地,幽窮苦酷,自悔何及?勤以在心不可忘也。我家親屬,生時不信罪福。今竝遭塗炭長受楚毒,焦爛傷痛無時暫休,欲求一日改惡爲善,當何得耶?悉我所具知故以囑汝,勸化家內共加勉勵,言已涕泣,因此而別,遵隨路而歸,俄而至家,家治棺將竟,方營殯殮,遵旣附屍,屍尋氣通,移日稍差,勸示親識,竝奉大法,初遵姑適南郡徐漢,長姊適江夏樂瑜。其小姊適吳興嚴晩,途路懸遠久斷音息,遵旣差,遂至三郡,尋訪姑及小姊,姊子果竝喪亡,長姊亦說,兒道文殮後棺動墯車,皆如叔言:旣聞遵說道文橫死之意,姊追加痛恨,重爲製服右此一驗出冥祥記晉雒陽有釋訶羅竭者,本襄陽人。少出家誦經二百萬言。性虛玄守戒節,善擧厝美容色,多行頭陀獨宿山野。晉武帝太康九年,暫至雒陽。時,疫疾甚流,呪者皆愈,至晉慧帝元康元年,迺入止婁至山石室中坐禪。此室去水旣遠,時人欲爲開㵎。竭曰:不假相勞,乃自起以左腳蹍室西石壁,壁陷沒指,旣拔足已水從中出,淸香濡美,四時不絕,來飮者,皆止飢渴除疾病。至元康八年,端坐從化,弟子依國法闍維之。焚燎累日,而屍猶坐火中,永不灰燼,乃移還室內,後西域人竺定字安世,晉咸和中往其國,親自觀視見屍,儼然平坐,亡已三十餘年,定後至京,傳之道俗。晉竺法慧本關中人,方直有戒行,入嵩高山事佛圖蜜爲師。晉康帝建元年,至襄陽止羊叔子寺,不受別請,每乞食輒齎繩牀自隨,於閑曠之路則施之而坐。時,或遇雨以油帔自覆,雨止唯見繩牀,不知慧所在,訊問未息,慧已在牀,每語弟子法昭曰:汝過去時折一雞腳。其殃尋至,俄而昭爲人所擲,腳遂永疾。後語弟子云:新野有一老翁當命過,吾欲度之,仍行於畦畔之閒,果見一翁將牛耕田,慧從乞牛翁不與慧前自捉牛鼻翁懼其異遂以施之慧牽牛呪願七步而反,以牛還翁,翁少日而亡。後征西庾移恭鎭襄陽,旣素不奉法,聞慧有非常之。迹甚嫉之。慧預告弟子曰:吾宿對尋至,誡勸眷屬令勤修福善,爾後二日果收而刑之,春秋五十八矣。臨死語衆人云:猶枉刑吾,吾死後三日天當暴雨,至期果洪霔,城門外深一丈恭眷屬居民等竝皆沒死右此二驗出梁高僧傳宋慧遠沙門者,江陵長沙寺僧也。師慧印善禪法,號曰禪師。遠本印蒼頭名黃遷,年二十時印每入定。輒見遷先世,乃是其師,故遂度爲弟子,常寄江陵市西楊道產家行般舟,勤苦歲餘,因爾遂頗有感變,或一日之中赴十餘處齋,雖復終日竟夜行道轉經,而家家悉見黃遷在焉。衆稍敬異之,以爲得道,孝建二年一旦自言死期。謂道產曰:明夕吾當於君家過世,至日道產設八關。然燈通夕,初夜中夜,遷猶豫衆行道,休然不異。四更之後,乃稱疲而臥,顏色稍變,有頃而盡,闔境爲設三七齋起塔。塔今猶存,死後久之。見形多寶寺,謂曇珣道人云:明年二月二十三日,當與諸天共相迎也。言已而去,曇珣卽於長沙禪房設齋九十日。捨身布施,至其日苦氣,自知必終,大延道俗盛設法會,三更中呼問衆僧,有聞見不?衆曰:不覺異也。珣曰:空中有奏樂聲,靄煙香異,黃遷之契,今期至矣。衆僧始還堂就席,而珣已盡右此一驗出冥祥記宋時有一人忘其姓名,與婦同寢,天曉婦起,後夫尋出外,而婦還見其夫,猶在被中眠,須臾奴子外來。云郞求鏡,婦以奴詐,巧指牀上以示奴。奴云:適從郞處來,於是馳白其夫,大愕便入,夫婦共視被中人,高枕安寢,正是其形,了無一異,慮是其魂神,不敢驚動,乃共以手徐徐撫牀,遂冉冉入席,漸漸消滅,夫婦惋怖如此,少時夫得疾性理乖錯於是終卒右一驗出續搜神記宋時有諸生遠學,其父母然火夜作,兒至前歎息曰:今我但魂魄耳,非復生人,父母問之。兒曰:此月初病,以今日某時亡。今在琅耶任子成家,明日當殮,來迎父母。父母曰:去此千里,雖復願到那得及汝。兒曰:外有車乘,去自得至耳。父母從之上車,忽若睡頃,比雞鳴已至其所,視其駕乘但魂車木馬,遂主人見臨兒哀,問其疾消息如言右一驗出搜神記隋相州鄴下釋玄景,姓石氏,滄州人。統解玄微純講大乘,後因臥疾三日,告侍人曰:玄景欲見彌勒佛,云何乃作夜摩天主?又云:賓客極多事須看視,有問其故。荅云:凡夫識想何可檢校,向有天衆欲來邀迎耳。爾後,異香充戶,衆共聞之。又曰:吾欲去矣。當願生世爲善知識,遂終於所住,卽大業二年六月也。自生常立願云:沈骸水中,及歿後遵用前旨,葬于紫陌河深瀅之中,三日往觀,所沈之處,反成沙墳,極高峻而水分兩派,道俗異其雅瑞傳迹于今右此一驗出唐高僧傳唐曹州離狐人裵則男,貞觀末年二十一死,經三日而蘇。自云:初死被一人將至王所,王衣白非常鮮潔,王遣此人將牛耕地。此人訴云:兄弟幼小無人扶侍二親,王卽憫之,乃遣使將向南,至第三重門,入見鑊湯及刀山劍樹,又見數千人頭皆被斬布列地上。此頭竝口云大飢,當村有一老母,年向七十。其時猶未死,遂見在鑊湯前然火,觀望訖還至王前,見同村人張成,亦未死。有一人訴成云毀破某屋,王遣使檢之報云是實成曰成犂地不覺犂破其塚,非故然也。王曰:汝雖非故,心終爲不謹耳。遂令人杖其腰上七下。有頃王曰:汝更無事,放汝早還,王乃使人送去遣,北出踰牆及登牆望見其舍,遂聞哭聲,乃跳下牆,忽覺起坐,旣蘇之後。具爲鄕曲言之,邑人視張成腰上有七下杖迹,迹極靑黑,問其毀墓。答云:不虛。老母尋病,未幾而死右此一驗出冥 報拾遺唐琅耶王之弘,貞觀年中爲沁州和川縣令,有女適博陵崔軌軌,於和川會病而卒卒,經數十日。其家忽於夜中聞軌語聲初時傾家驚恐其後乃以爲常,聞語云:軌是女壻,雖不合於妻家立靈。然以苦無所依,但爲置立也。妻從其請,朝夕置食不許置肉,唯令下其素食,常勸禮佛不聽懈怠。又具說地獄中事云:人一生常不免殺生及不孝,自餘之罪蓋亦小耳。又云:軌雖無罪,然大資福助爲軌數設齋供,幷寫法華金剛般若觀音等經,各三兩部,兼舊功德如獲濟,自茲以後卽不復來,王家一依其言寫經設供,軌忽更來愧謝。因云:今卽取別,擧家哭而送之,軌有遺腹之子,已年四五歲云:軌此子必有仕宦,願善養畜,自此已後不復更來右此一驗見王之自說法苑珠林卷第九十七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법원주림 제94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93. 주육편②
『법원주림』 94권(ABC, K1406 v39, p.1255b01)

감응연(感應緣)[간략히 열네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한(漢)의 낙자연(洛子淵)
진(晋)의 사문 법우(法遇)
진(晋)의 신야(新野)의 유소지(庾紹之)
송(宋)의 장소덕(蔣小德)
송(宋)의 사문 축혜치(竺慧熾)
오(吳)의 제갈각(諸葛恪)
주(周)의 무제(武帝)
수(隋)의 조문약(趙文若)
당(唐)의 손회박(孫廻璞)
당(唐)의 돈구(頓丘)의 이씨(李氏)
당(唐)의 참군(參軍) 정사변(鄭師辯)
당(唐)의 위지십(韋知十)
당(唐)의 사적씨(謝適氏)
당(唐)의 임오랑(任五娘)

한(漢)의 낙자연(洛子淵)
한(漢)나라 효창(孝昌) 때에 용사(勇士) 낙자연(洛子淵)이라는 이가 있었다. 자기 스스로 낙양(雒陽) 사람이라고 했으며, 효창 연간에 팽성(彭城)을 지키고 있었다. 그와 같은 진영(陣營) 사람인 번원보(樊元寶)가 휴가를 얻어 경사(京師)로 돌아갈 때였다. 낙자연이 편지 한 통을 써서 갖다 주게 하면서 말하였다.
“나의 집은 영대(靈臺) 남쪽 낙수(雒水) 근방에 있습니다. 당신이 그 집으로 가면 집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만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보는 그의 말대로 영대 남쪽으로 갔더니 사람 없는 집이 있었으므로 잠깐 들렀다가 나오려 하는데 갑자기 한 늙은이가 나타나서 물었다.
“어디서 오셨는데 여기서 방황합니까?”
원보가 그에게 자세히 말을 하자 늙은이가 말하였다.
“나의 아들이오.”
그리고는 편지를 받고 원보를 인도하여 들어갔다. 드디어 관청 같은 집이 나타났는데 아주 넓었고 아주 화려했다. 자리에 앉자 여종으로 하여금 술을 가져오게 했는데, 조금 있다가 여종이 죽은 한 어린 아이를 안고 지나갔으므로 원보는 몹시 괴이하게 여겼다. 얼마쯤 지나자 술이 나왔는데 술 빛이 아주 붉고 향기와 맛이 이상했다. 그리고 맛좋은 음식까지 곁들였는데 바다와 육지의 것을 다 갖추었다. 술을 마신 뒤에 가겠다고 하자 늙은이가 원보를 전송해 주면서 말했다.
“앞으로는 만날 기약이 없구려.”
그 말이 처량한 기색으로 아주 은근했다. 그리고 늙은이가 도로 들어가자마자 이제까지 있던 그 문조차 없어져버렸으며 오직 높은 낭떠러지 앞에 맑은 물결이 있을 뿐이었다. 조금 있다 나이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동자가 보이는데 방금 빠져 죽은 아이였다. 그 코 안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는데, 그제서야 마셨던 술이 그 피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팽성으로 돌아왔는데 낙자연도 이미 없어진 뒤였다. 원보와 자연은 3년 동안 같이 성을 지키고 있었으면서도 그가 낙수의 신(神)임을 모르고 지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낙양사기(雒陽寺記)』에 적혀 있는 것이다.]

진(晋)의 사문 법우(法遇)
진(晋)나라 형주(荊州) 장사사(長沙寺)에 석법우(釋法遇)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가 어디 사람인지는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뜻이 돈독했으므로 3분(墳)과 8삭(索)을 다 읽었다. 도안(道安) 법사를 섬기다가 무상함을 깨닫고 동쪽 땅으로 도피하여 강릉(江陵) 장사사에 있으면서 경전을 강설했는데, 배움을 받는 이가 4백여 명이나 되었다.
당시 어느 한 스님이 술을 먹고 저녁의 소향(燒香)을 걸렀으나, 법우는 벌을 주지 않았을 뿐더러 쫓아내지도 않았다. 도안 법사가 멀리서 그 말을 듣고 죽통(竹筒)에다 곤장 하나를 넣어서 손수 봉한 뒤에 이름만을 적어 법우에게 부쳤다. 법우가 봉함을 뜯고 보자 곤장이었으므로 곧 말하였다.
“이것은 술 때문이다. 나의 가르침과 통솔이 부족하여 멀리까지 근심을 끼쳐드렸구나.”
그리고는 곧 유나(維那)에게 명하여 건치(揵稚)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고는 곤장이 든 통을 향 놓는 탁자 위에다 놓았다. 그리고 향을 사른 뒤에 법우는 일어나서 대중 앞으로 나와 곤장 통을 향하여 공손히 절하고 땅에 엎드리면서 유나로 하여금 곤장 세 대를 치게 했으며 끝난 뒤에는 곤장을 통 속에 넣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책망했다. 그 때 경내에 있던 스님들과 속인들은 모두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그로부터 학도들은 업에 힘쓴 이가 더욱 많아졌다. 그 후 혜원(慧遠)에게 글을 써서 보냈다.
“제가 미약하고 암둔하여 제대로 대중을 통솔하지 못했으므로 화상(和尙)께서는 이역 땅에 계시면서도 오히려 멀리까지 우념(憂念)하여 주셨습니다. 저의 죄가 참으로 깊습니다.”
나중에 강릉에서 죽었으니 춘추는 60세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진(晋)의 신야(新野)의 유소지(庾紹之)
진(晋)나라 신야(新野)의 유소지(庾紹之)는 젊었을 적의 이름이 도복(道覆)이었다. 진나라 상동 태수(湘東太守)인 남양(南陽)의 송협중(宋協中)과는 형제를 맺고 지나면서 정의가 매우 두터웠다. 소지는 원흥(元興) 말년에 병이 들어 죽었다. 그런데 의희(義熙) 중년에 갑자기 몸을 나타내서 송협중에게로 왔다. 모습과 입은 옷은 평소와 같았다. 두 발에다 쇠고랑을 차고 왔다가 쇠고랑을 벗어서 땅에다 놓고 앉았다. 협중이 물었다.
“무슨 이유로 오시게 되었소?”
그가 대답했다.
“잠시 동안 휴가를 얻었습니다. 당신과는 친한 사이라 일부러 들렀습니다.”
협중이 귀신에 관한 일을 질문하였더니, 유소지는 들은 척도 않고 아주 뾰루퉁하여 말하였다.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살생하지 말아야 하오. 만일 모두 끊을 수가 없다면 소라도 죽이지 마시오. 그리고 고기를 먹을 때에는 그것을 먹는다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송협중은 말하였다.
“5장에 있는 마음과 고기가 어찌 다른 것입니까?”
“마음이란 착한 정신이 깃드는 집이오. 그 죄가 더욱 중합니다.”
그리고 친척들에 대하여 자세히 묻고 세상일들을 말하고 있다가 마지막에는 또 술을 청했다. 협중은 때때로 수유주(茱萸酒)를 마셨으므로 그것을 차려 왔다. 술이 나와 잔을 건네자 마시지 않고 말하였다.
“수유 냄새가 나는구려.”
협중이 말하였다.
“그것이 싫습니까?”
“하관(下官)들이 모두 두려워합디다. 나 혼자만이 아닙니다.”
유소지의 말소리가 높고도 씩씩했으므로 이런 말을 할 때에는 평소에 하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협중의 아들이 멀리서 왔다. 소지는 신발 소리를 듣고 몹시 두려워하는 빛을 띠며 협중에게 말하였다.
“산 사람이 죽은 이를 보게 될 것 같아서 더 머무를 수가 없구려. 당신과는 3년 동안 못 보게 되겠소.”
그리고는 쇠고랑을 차고 일어나 문을 나가자마자 사라져버렸다. 협중은 뒤에 정원랑(正員郞)이 되었는데 과연 3년 만에 죽었다.

송(宋)의 장소덕(蔣小德)
송(宋)나라 장소덕(蔣小德)은 강릉(江陵)사람이다. 악주자사(岳州刺史)로 있을 적에 주순(朱循)은 청사 감사(聽事監師)로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두터워서 부지런하고 근신함이 남들보다 뛰어났다. 주순은 그를 좋아하여 매양 불사(佛事)가 있게 되면 그에게 그 일을 맡게 했다. 대명(大明) 말년에 병을 얻어 죽었는데 밤 3경(更)에 염(殮)을 하려 할 때 다시 살아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어떤 사자가 와서 왕이 나를 부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따라가 그곳에 이르자 왕이 말하였소.
‘그대는 부지런히 힘쓰면서 작은 일에도 조심하고 큰 법을 경건하게 받들고 있으므로 천제(天帝)의 정성스런 교지가 있기에 당신을 단독으로 불렀습니다. 속히 좋은 땅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당신의 명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이제 내가 특히 부른 것이니, 당신은 오늘부터 천당 안의 쾌락과 기쁨을 누리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매우 좋아하면서 응낙하자 왕이 말하였다.
‘당신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대로 모두 부탁하고, 그리고는 공덕으로 짓고 빨리 오셔야 합니다. 7일 후에 다시 오십시오.’
나는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 한 곳에 아주 초라한 작은 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 신사(新寺)에 있던 난공(難公)을 만났다. 그와는 본디 아는 사이였으므로 서로가 문안한 뒤에 난공이 말하였소.
‘빈도(貧道)는 출가한 이후에 아직 술 마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난공(蘭公)에게로 갔는데, 그가 하도 간절히 권하는 바람에 술 한 되쯤 마셨습니다. 이 때문에 왕에게 불려 왔습니다. 빈도가 만일 이 죄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으레 천당으로 올라갔을 터인데, 이제는 이 초라한 집에서 3년 동안 산 후에야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집에 와서 그의 말을 증험하기 위하여, 곧 그 저녁에 사람을 시켜서 가 보게 했는데 난공(難公)은 과연 그 날 난공(蘭公)의 처소에 와서 누워 자다가 그 밤에 죽었다.”
소덕도 몸이 다 나았으므로 7일 안에 복 짓는 공양을 크게 베풀었고 기한이 다 되어 갑자기 죽었다. 주순이 곧 가산을 털어서 난(蘭)과 난(難)의 두 스님을 다 같이 신사(新寺)에 같이 살게 하였는데, 난공(難公)의 도행이 더욱 정밀하여 다른 스님들과는 같지 않았다 한다.

송(宋)의 사문 축혜치(竺慧熾)
송(宋)나라 사문 축혜치(竺慧熾)는 신야(新野)의 사람이며 강릉(江陵)의 사층사(四層寺)에 살고 있었다. 영초(永初) 2년에 죽었는데, 제자들이 그를 위하여 7일 동안 재를 베풀고 그 날 저녁이 되어 소향(燒香)까지 끝냈다. 그리고 도현(道賢) 사문은 길을 가다가 혜치를 만났다. 또 제자가 방에 이르렀는데 그 앞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사람 같은 모양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혜치였다. 용모와 의복이 생시와 똑같았는데 도현에게 말하였다.
“자네 아침에 고기를 먹던데 맛있던가?”
도현이 말하였다.
“맛이 있었습니다.”
혜치가 말하였다.
“나는 고기를 먹은 죄로 지금 아구(餓狗) 지옥에 가있네.”
도현이 두려워하면서 미쳐 대답하기도 전에 혜치가 다시 말하였다.
“자네 만일 믿지 않거든 나의 등 뒤를 보게.”
등을 돌려 도현에게 보이는데, 거기에는 세 마리 노란 개가 있었다. 형상의 반은 당나귀와 같았는데, 눈은 아주 붉고 그 빛이 문 안까지 비쳤으며, 당장 혜치에게 덤벼서 물려 하다가 다시 그만 두었다. 도현은 이를 보고 놀라서 기절하였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서 그런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이 두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오(吳)의 제갈각(諸葛恪)
오(吳)나라 유제(幼帝)가 즉위했을 때에 제갈각(諸葛恪)은 정사를 보좌했고, 손준(孫峻)은 시중대장군(侍中大將軍)으로 있었다. 제갈각은 고집이 세고 남을 업신여겼으며, 손준은 남에게 험하게 굴면서 권세를 좋아했다. 봉황(鳳皇) 3년에 제갈각은 신성(新城)을 공격했으나 공이 없이 돌아왔으므로 손준은 그것을 트집잡아 유제에게 제갈각을 죽이게 했다. 그 날 제갈각은 정신이 산란하여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장약(張約)과 등예(騰裔)가 손준의 모함을 제갈각에게 알리자 제갈각이 말하였다.
“어린 아이인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술이나 밥 때문에 해코지하는 위인(爲人)에 불과한데.”
그리고, 제갈각은 친히 믿는 사람에게 약술을 들려서 따르게 하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마침 집에서 기르던 개가 따라오다가 그의 옷자락을 물고 세 번이나 들어가지 못하게 했으나 제갈각은 뒤를 돌아보면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두려우냐? 뭐 걱정할 것 없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손준이 매복시킨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손준은 뒤에 병이 들었는데, 꿈에 제갈각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미친 소리로 늘 지껄였다.
“제갈각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었다.[『원혼지(怨魂志)』에 나온다.]

주(周)나라 무제(武帝)
주(周)나라 무제(武帝)는 달걀 먹기를 좋아해서 한 끼에도 몇 개씩 먹었다. 요리를 하는 의동(儀同)의 이름은 발호(拔虎)였는데, 늘 음식을 올릴 때에 입맛을 돋구어 주었으므로 총애를 받았다. 수(隋)의 문제(文帝)가 즉위해서도 여전히 요리를 감독하여 식욕을 돋구어 주었다. 개황(開皇) 중간에 갑자기 죽었으나 심장이 아직도 따뜻했으므로 집안 사람이 차마 묻지 못하고 있었는데,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말을 하면서 먼저 이런 말을 하였다.
“나를 수레에 태워 임금님[至尊]을 뵙게 해 주십시오. 무제(武帝)의 말을 전해야겠습니다.”
수레를 타고 나아가서 청하자 문제(文帝)가 불러 들여서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런 내용의 말을 하였다.
“처음엔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불렀기 때문에 따라가 한 곳에 이르렀는데, 큰 땅구멍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겨우 구멍 입구에 다달았을 때 멀리 서쪽으로 말을 타고 오는 1백여 명이 보였다. 그 거동과 호위가 마치 왕과 같았는데, 얼마 있다가 구멍 입구에 닿은 이는 주나라 무제였다. 의동이 절을 하자 무제가 말하였다.
‘왕이 너를 불러서 나의 일을 증명하려 하는구나. 너에게는 죄가 없다.’
그리고는 곧 궁중으로 들어갔으며 의동도 사자의 인도로 궁문을 들어가 정전(庭前)에 이르렀다. 무제는 왕과 자리를 같이하면서 더욱 공경하는 얼굴이었으며 사자가 의동으로 하여금 왕에게 절을 하게 하자 왕이 물었다.
‘너는 무제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였다. 지금까지 백단(白團)을 몇 개나 올렸느냐?’
그러나 의동은 백단이 무엇인지 몰라서 좌우를 돌아보자 좌우의 신하가 가르쳐 주었다.
‘달걀을 백단이라 한다.’
의동이 곧 대답하였다.
‘무제께서 백단을 잡수신 것은 사실이나 그 수가 몇 개인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왕이 무제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을 내어보아야겠소.’
무제가 슬픈 빛을 띠고 일어나자, 갑자기 정전에는 쇠로 된 평상과 옥졸 수십 명이 나타났다. 모두가 소의 머리에 사람 몸이었다. 무제는 벌써 평상 위에 누워있었다. 옥졸이 쇠로 된 들보를 가져다 위에서 누르자 무제의 양쪽 겨드랑이가 터지면서 달걀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잠깐 만에 평상만큼 쌓였는데 아마 10여 섬[斛]은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왕명으로 다 세어 마치자 평상과 옥졸은 갑자기 없어졌다. 무제도 왕이 있던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의동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너는 대수(大隋)의 천자(天子)에게 말하여 주어라. 옛날에는 나와 함께 식사도 했으며, 창고에 있는 구슬과 비단도 역시 내가 저축한 것이다. 지금의 내 몸은 불법을 멸망시킨 연고로 극히 큰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나를 위해 공덕을 좀 지어달라고 하라.’
그리하여 문제는 천하 사람들에게 칙명을 내려서 1전(錢)씩 거두어서 그를 위해 복을 빌어 주었다. 수나라 외조(外祖) 제공(齊公)이 친히 뵙고 문안한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수(隋)의 조문약(趙文若)
후수(後隋)의 대업(大業) 연간에 옹주(雍州)의 장안현(章安縣)에 성은 조(趙)씨요 이름은 문약(文若)이란 사람이 있었다. 죽은 지 7일이 되어서 집안 사람들이 크게 염하고 관에다 넣으려 하는데 한 발을 오므렸다. 집안 사람들이 두려워하면서 감히 관에 넣지 못하고 있는데, 문약이 살아났으므로 권속들이 기뻐하면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문약이 이런 말을 하였다.
“죽으려 할 때 사람이 나타나서 염라왕에게로 인도되었는데, 왕이 나에게 물었다.
‘네가 살아 있을 때에 무슨 복업을 지었느냐?’
내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받아 지녔습니다.’
그러자 왕이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장하십니다. 그 복이 제일입니다. 당신이 비록 복과 선행을 지었기는 하나, 우선 당신을 모셔다 그 죄를 받는 곳을 보여 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을 시켜 나를 인도하게 했다. 북쪽으로 10보(步)쯤 가자 하나의 담장 구멍이 보였는데 나에게 그 구멍으로 들어가게 했다. 담장 벽에 한 사람이 있다가 손을 구멍 속으로 넣어서 내 머리를 잡아서 끌어내었는데, 몹시 고통스러웠다. 담장을 넘어가 바깥을 보니 큰 지옥들이 있었다. 가마솥에서 끓는 물과 고통 주는 도구들에 의해 죄인들은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말로는 다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돼지와 양과 닭과 물고기와 거위와 오리 등, 많은 족속들이 있다가 다투어 덤비면서 문약의 목숨을 가져가려 했으므로 내가 말하였다.
‘나는 너희들의 몸을 먹지 않았거늘 무엇 때문에 덤벼드는가?’
그 짐승들이 저마다 대답하였다.
‘네가 옛날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아무 때, 아무 곳에서 나의 머리와 다리를 먹었고, 갈가리 찢어 나누어서 남들과 함께 먹지 않았느냐, 무엇 때문에 숨기느냐?’
나는 짐승들의 하는 말이 사실이었으므로 감히 더 거역하지 못했다. 오직 일심으로 염불을 하면서 모든 죄를 깊이 참회할 뿐이었으며,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하고 여러 짐승들에게 살려 주기만을 빌었다.
당시 나는 복을 닦아서 착한 과보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여러 짐승들에게서 용서를 받았으며 복을 닦기 위해 잠시 풀려났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사자의 인도로 왕에게로 와서 죄를 받는 곳과 당한 일들을 다 말하였다. 왕은 한 주발의 못[釘]을 나에게 먹게 하고 아울러 다섯 개의 못을 나의 머리와 손과 발에다 친 연후에야 놓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살아나게 되었다.”
이런 일을 자세히 말할 때에도 머리가 아프고 손발이 아팠는데, 오랜 동안 복을 닦고 나서야 통증은 점점 낫게 되었다. 그로부터는 더 부지런히 힘쓰면서 『금강반야경』을 독송했으며, 잠시 동안도 감히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스님들과 속인들로서 친한 사람이든 소원한 사람이든 모두 『반야경』을 받아 지니도록 권할 뿐이었다.
나중에 일이 있어서 한 역(驛)의 대청 위에서 잠시 동안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 때 꿈에 푸른 옷을 입은 한 여인이 급하게 와서 살려 달라고 청했다. 문약은 놀라 깨면서 곧 역장(驛長)을 불러서 물었다.
“당신은 나를 위하여 살생을 하려 하지 않았소?”
역장이 대답하였다.
“실은 공(公)을 위하여 작은 양 한 마리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 양이 무슨 빛이었습니까?”
“푸른빛의 암컷이었습니다.”
문약이 말하였다.
“당신은 급히 놓아주십시오. 내가 그 값을 드릴 터이니, 도로 갚고 놓아주십시오.”
이것은 진실로 『반야경』의 위력으로 말미암아 은밀히 돕는 감응(感應)이었다.

당(唐)의 손회박(孫廻璞)
당(唐)나라 전중시의(殿中侍醫) 손회박(孫廻璞)은 제음(濟陰) 사람이다. 정관(貞觀) 13년에 어가(御駕)를 따라 구성궁(九成宮)의 삼선곡(三善谷)에 가 있었는데, 위태사(魏太師)와는 이웃집이었다. 일찍이 밤 2경(更)에 밖에서 어떤 사람이 ‘손시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회박이 일어나서 나가 보았더니 위태사의 명이라 했다. 그리하여 나가서 보니 두 사람이 나타나서 회박에게 말하였다.
“관(官)에서 회박을 부른다.”
회박이 말하였다.
“나는 걸어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러자 곧 회박의 말을 가져와 타게 했다. 두 사람을 따라가는데 천지가 마치 대낮과 같이 밝았다. 회박은 괴이하게 여겼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회박을 끌고 골짜기를 나와서 조당(朝堂)의 동쪽을 지나 동북쪽으로 6ㆍ7리쯤 갔다. 목숙곡(苜蓿谷)까지 왔을 때에 멀리서 두 사람이 한봉방(韓鳳方)을 데려 가면서 회박을 데리고 가는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잘못 데려가고 있구려. 우리가 붙잡아 가는 자가 옳은 사람이오. 당신들은 그 사람을 놓아주시오.”
그래서 그들은 곧 회박을 놓아주었다. 회박이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길이 뚜렷한 것이 평소에 다니던 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말을 매놓고 여종을 보니 문에 기대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담을 넘어 들어가 문을 열어 보았더니, 자기의 몸과 아내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하여 회박이 자기의 몸을 취하려 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남쪽 벽에 붙어 서서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으나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집 안은 아주 환했다. 벽 귀퉁이의 거미줄 안에는 두 마리의 파리가 걸려 있었는데 한 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작았다. 그리고 들보 위에 걸려 있는 약물들도 다 보였다. 모두가 분명하지 않음이 없었는데도 평상으로 다가갈 수 없었으므로 그제서야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몹시 걱정되고 한스러웠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이별할 수는 없었으므로 남쪽 벽에 오랫동안 기대 서 있었는데, 잠깐 동안 졸다가 갑자기 놀라서 깨보니 자기 몸이 평상 위에 누워 있었다. 집 안은 온통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아내를 불러서 일으켜 불을 켜게 하고 보니, 회박의 온몸은 몹시 더럽혀져 있었다. 일어나서 거미줄을 보았으나 분명한 것이 아까와 다름이 없었다. 말을 가서 보니 역시 아주 더럽혀져 있었다. 한봉방은 그 날 저녁에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 17년에 회박은 칙명을 받들고 급히 역마를 몰아 제주료(齊州療)로 가서 제왕(齊王)의 병을 고쳐 주고는 낙주(雒州)의 동효의역(東孝義驛)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서 물었다.
“당신이 손회박이시지요?”
회박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째서 물으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귀신입니다. 위태사(魏太師)께서 문서를 주시기에 따라와서 당신의 방을 기억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문서를 회박에게 내보여 주었다. 회박이 보니 그것은 정국공위(鄭國公魏)가 부른다는 서명이었다. 회박이 놀라면서 말했다.
“정공(鄭公)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째서 당신을 시켜서 문서를 보냈다는 말이오?”
귀신이 말하였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태양도록대감(太陽都錄大監)이 되어 계십니다. 그 때문에 나를 시켜서 당신을 부르게 한 것입니다.”
회박이 그를 가까이 앉히고 음식을 잘 대접했더니, 귀신은 몹시 기뻐하면서 회박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 때 회박이 청하였다.
“나는 칙명을 받들어 심부름을 하다가 아직 돌아가지 못했으니, 정공이 나를 추궁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경사에 돌아가 일을 상주(上奏)한 연후에 명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낮에는 같이 가고 밤에는 같이 자면서 드디어 문향(閿鄕)에 이르렀다. 그 때 귀신이 하직하면서 말했다.
“나는 미리 관문(關門)을 나가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모습을 감췄는데, 회박이 관문을 지나 서문(西門)을 나오자 귀신은 벌써 문 밖에 서 있었다. 둘은 다시 동행을 하여 자수(滋水)까지 왔다. 귀신이 또 회박과 이별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일을 다 아뢴 뒤를 기다렸다가 끝나면 서로 만나기로 합시다. 당신은 부디 훈신채(葷辛菜)를 먹지 마십시오.”
회박은 그것을 허락하고서 일을 다 아뢴 뒤에 정공을 방문하였더니 벌써 죽은 뒤였다. 죽은 날짜를 조사해 보았더니 효의역에 있었던 그 전날이었다. 회박은 틀림없이 자기가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집안 사람들과 기약 없는 작별을 했으며 스님들을 청해다 도를 행하고 불상을 조성하며 경전을 베꼈다. 이렇게 하기를 꼬박 6, 7일이 걸렸다. 밤에 꿈을 꾸는데, 앞서 본 그 귀신이 와서 불렀다. 회박이 따라가자 귀신은 그를 높은 산으로 인도했으며 산꼭대기에는 큰 궁전이 있었다. 그 곳으로 들어가자 대중들이 많았는데, 한 군자(君子)가 영접하면서 말하였다.
“이 분은 복을 닦았으므로 여기에는 머무르게 하실 수 없다. 보내드려라.”
그러자 곧 회박을 산 아래로 밀쳐버렸다. 그는 떨어지면서 놀라 깨어났으며 지금까지 병이 없이 살고 있다. 회박 자신이 이런 말을 한 것이다.

당(唐)의 돈구(頓丘)의 이씨(李氏)
당(唐)나라 기주(冀州) 돈구현(頓丘縣)에 성은 이(李)씨요, 나이 70여 살이 된 노모가 있었다. 아들도 없고 외로운 늙은이였으며, 오직 남종과 여종 두 사람만이 있었다. 오랫동안 술장사를 하였는데, 술에다 잿물을 조금씩 섞어 팔면서 겨우 살림을 꾸려나갔다. 정관(貞觀) 연간에 병으로 인해 숨이 끊어졌는데 죽은 지 이틀이 되었다. 장례 기구는 모두 마련했으나 심장 위가 조금 따뜻했으므로 기다렸더니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겪은 일들을 말하였다.
“처음에 다 같이 붉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문 앞에 와서 불렀으므로 나갔더니, 위에서 보내서 왔다고 했다. 곧 그들을 따라가서 하나의 성(城)에 이르렀는데 고을을 둘러싼 성곽과도 같았다. 측원(側院)으로 끌려갔는데 한 관인(官人)이 있었다. 의관을 하고 큰 소매를 늘어뜨린 채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으며 좌우에도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다. 계단 아래에는 쇠고랑을 찬 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방어하고 매달리고 하는 것이 생시와 같았다. 관부(官府)에서 보내온 이가 노모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함부로 술을 팔아서 남의 물건을 많이 취했으며, 『법화경(法華經)』을 베껴 쓴다 한 지가 벌써 10년이나 되었는데 어째서 완성하지 못했는고?’
노모가 자세히 말하였다.
‘술은 여종으로 하여금 만들게 했고 그 분량도 여종이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경은 이미 천 문(文)의 돈을 은(隱) 선사에게 부쳐 드렸습니다.’
그러자 곧 여종에게 사자를 보내서 잠깐 사이에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한 뒤에 여종에게 태형(笞刑) 40대를 때리고 놓아주었다. 은 선사에게도 파견하여 물었는데, 사실이라고 대답하자 노모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7일 동안 놓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경이 다 완료되면 미래에 좋은 곳에 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보내 주었으므로 다시 살아났다.”
또 어떤 사람은 물어서 그 사실을 정정하였다.
“노모가 처음 죽었을 때는 여종에게 아무 일이 없었는데, 오래 있다가 살아나서 보니 배와 등이 파랗게 부르터 있었다. 아마 그것이 볼기 40대를 맞은 흔적일 것이다.”
은 선사란 분은 본래 객승(客僧)인데 절에 딸린 돈구(頓丘) 땅에서 나이 6, 70이 되도록, 출가한 뒤에는 줄곧 두타(頭陀)와 걸식으로 하루 한 끼씩만 먹으며 잠시도 그치는 일이 없었으므로 원근의 대덕(大德)들까지 모두 공경하고 흠모하였다. 노모가 병들어 죽은 뒤에 은 선사의 꿈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와서 물었으므로 꿈속에서 대답하였다.
경을 베끼고 있는 일이 사실이다.
노모는 고향 마을의 권속과 은 선사가 행한 도에 힘입어서 여러 경생(經生)에게 삯을 주어, 여러 사람의 손으로 경전을 베꼈다. 그리하여 경을 꼭 7일 만에 다 완료하고 돌아와 보니 먼저의 두 사람이 그의 앞에 나타났으므로 노모가 말하였다.
“심부름하신 분이 오셨소. 다들 잘 사십시오.”
그 소리가 끝나면서 죽었다. 은 선사는 현재에도 살아 계시며, 스님들과 속인들이 흠앙하며 공경하고 있다.

당(唐)의 참군(參軍) 정사변(鄭師辯)
당(唐)나라 동궁(東宮) 우감문(右監門)의 병조참군(兵曹參軍) 정사변(鄭師辯)은 나이 아직 젊었을 때에 갑자기 죽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말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처음 몇 사람이 나타나 나를 붙잡고 데리고 가서 관부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죄수들 1백여 명이 있었으며 모두가 북쪽을 향해 여러 줄로 서 있었다. 모두 여섯 줄이었는데, 그 앞줄에 있는 이들은 형상도 살찌고 하얀 데다 좋은 옷을 입어서 마치 귀인과 같았다. 그러나 뒷줄로 갈수록 점점 파리했으니, 혹은 쇠고랑을 차기도 하고, 혹은 건(巾)과 띠를 벗고 모두 소매를 나란히 잡고 있었다. 엄하게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사변은 셋째 줄의 동쪽 끝에서 세 번째에 서 있었다. 역시 건과 띠를 벗고 소매를 붙잡고 있었는데, 걱정되고 두려워 오로지 한마음으로 염불만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살아 있을 때에 잘 알고 지내던 스님이 나타나서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는 데로 들어 왔으나 병사들은 막지 않았다. 그대로 사변에게로 와서 말하였다.
‘평소에 복을 닦지 않더니, 이제 갑자기 어떻게 하려 하오?’
사변이 구제해 주기를 애원하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이제 그대를 구해줄 터이니, 나가면 계율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사변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잠깐 동안에 죄수들은 관인 앞으로 끌려 들어가서 차례로 심문을 받았는데, 그 동안에 문 밖에서 스님은 5계를 수여하고 병에 든 물을 그의 이마에 부어주면서 말하였다.
‘해가 서쪽으로 향하면 살아날 것이다.’
또 한 벌의 노란 배자[帔]를 사변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입고 집으로 가서 깨끗한 곳에 벗어 두시오.’
그리고는 돌아가는 길을 가리켜 주는데, 사변은 그것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겹 배자를 평상 모서리 위에다 놓았다. 그리고 눈을 뜨면서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집안 사람들이 놀라 흩어지면서 외쳤다.
‘시체가 일어나려 한다.’
그러면서 모두 도망쳤으나 어머니만은 가지 않고 물었다.
‘네가 살아났느냐?’
사변이 대답했다.
‘해가 서쪽으로 향해야 살아날 것입니다.’
사변은 한낮이 아닌가 의심이 났으므로 어머니에게 물은 것이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한밤중이다.’
그제야 죽고 사는 것이 서로 어기고 밤과 낮이 반대임을 알았으며 해가 서쪽을 향할 때에 살아나서 밥을 먹고 나았다. 그런데 아직도 그 배자는 평상 끝에 있었는데 사변이 일어나자 배자의 형상이 점점 사라지면서도 빛이 나더니 7일 만에야 다 없어졌다. 사변은 5계를 잘 지켰다.
그런데 수년 후에 한 친구가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하도 권해서 사변은 부득이 저민 고기 한 점을 먹었더니, 그날 밤 꿈에 나찰로 변화해서 수척이나 되는 손톱과 이빨로 산돼지를 붙잡고 뜯어먹었다. 아침이 되어 깨어나 보니 입에 비린내가 나고 침이 온통 피였으며 남들이 보고 입에 가득 차 있다고 했는데, 모두 엉긴 피였다. 사변은 깜짝 놀라며 감히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수년 후에 장가를 들었는데, 처가(妻家)에서 너무도 졸랐으므로 고기를 먹었다. 그런 뒤에는 증험도 없어졌다. 그 후 5,6년 뒤부터는 몸에서 악취가 나고, 늘 큰 종기가 생겨 터지고 문드러지면서 낫지 않았는데, 아마도 파계한 까닭이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옛날 사변과 동궁(東宮)에서 같이 대화하던 이가 직접 말해 준 것을 듣고 말한 것이다.[위의 다섯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당(唐)의 위지십(韋知十)
당(唐)나라 우금오병조(右金吾兵曹) 경조(京兆)의 위지십(韋知十)은 영휘(永徽) 중년에 양 한 마리의 다리를 삶았다. 반나절을 끓는 물에 넣어서 삶았는데도 그대로 있었으므로 지십은 성을 내면서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무를 평소보다 열 배 더 때라.”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무리 삶아도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쪼개 보았더니, 그 안에서 지름 한 치 되는 구리로 된 불상이 하나 나왔는데, 광명이 번쩍거리고 상호(相好)가 원만했다. 그로부터 그 집은 일생 동안 감히 고기와 술을 먹지 않았다. 중산랑(中山郞) 여령(餘令)이 친히 듣고 말해 주었다.

당(唐)의 사적씨(謝適氏)
당(唐)나라 옹주(癰州)의 만년현(萬年縣) 염촌(閻村)은 파수(灞水)와 위수(渭水)의 사이에 있었다. 여기에 살던 사씨(謝氏)라는 여인은 같은 고을에 사는 원씨(元氏)에게 시집을 갔고, 거기서 낳은 딸은 회룡촌(廻龍村)에 사는 내아조(來阿照)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사씨는 영휘(永徽) 말년에 죽었는데 용삭(龍朔) 원년 8월에 내씨에게 시집간 딸이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내가 생시에 작은되를 만들어 술을 팔면서 값은 많이 받으면서도 술의 양은 너무도 적게 주었다. 지금 그 죄에 걸려서 북산(北山) 아래 사는 사람의 집에 소로 태어났고, 근자에는 법계사(法界寺)의 하후(夏候) 스님의 집으로 팔려 갔는데, 지금은 나를 대려다 성남(城南)에서 논밭을 갈게 하고 있다. 너무도 그 고통이 심하다.”
이런 꿈을 꾸고서 그 딸은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 내아조에게 말했다. 그런 뒤 2년 정월에 법계사의 어떤 비구니가 아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왔으므로 그 딸은 비구니에게 그런 일을 물었더니, 그 비구니가 말했다.
“하후 스님도 있고 그런 사실이 있다.”
그 딸이 곧 절에 가서 그를 찾았더니 “근자에 북산 아래서 소 한 마리를 사와서 현재 성남에서 땅을 갈고 있다”고 했다.
딸이 눈물을 흘리면서 절 비구니에게 청하자, 비구니는 사람을 딸려 보내 주었으므로 그곳으로 갔다. 이 소는 평소에 한 사람만이 다룰 수 있었고 만일 딴 사람을 만나면 제멋대로 굴면서 들이받았다. 그런데 이 딸을 보자마자 와서는 그의 온몸을 혀로 핥으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그 딸은 곧 하후 스님께 청하여 값을 치르고 딸의 집으로 데려왔다. 지금 현재 아조의 집에서 기르고 있는데, 그 딸은 언제나 ‘어머니’라 부르면서 받들기를 다한다 했다. 경사(京師)에 사는 왕후(王侯)의 비(妃) 등 많은 지체 높은 이들이 불러 놓고 보면서 다투어 돈과 비단을 보시하고 있다.

당(唐)의 임오랑(任五娘)
당(唐)나라 용삭(龍朔)원년 낙주(雒州) 경복사(景福寺)의 비구니가 수행하던 방 안에 임오랑(任五娘)이라는 시동(侍童)이 있었다. 그가 죽은 뒤에 수행하던 방 안에다 오랑의 영(靈)을 모셔 놓았는데, 달포쯤 지난 뒤에 언니와 아우는 한밤중에 갑자기 영이 있는 자리에서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우는 처음에 몹시 두려워하다가 그 뒤에 가서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내가 생시에 절 위에서 고기를 먹었다가 큰 고통에 걸려서 나의 몸 위에 부스럼이 나있다. 상과 자리를 더럽힐까 두려우니, 너는 재를 상 위에 많이 가져다 놓아라.”
아우는 그의 말대로 재를 놓았다가 나중에 살펴보니 상 위에는 많은 피고름이 고여 있었다.
또 아우에게 말하였다.
“언니가 아파서 바느질을 못하고 있으니, 너의 옷이 남루하구나. 베를 가져다 놓아라. 내가 너를 위하여 적삼과 버선을 만들어 주겠다.”
아우가 베를 영가를 모신 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가 밤을 지내고 나서 보니 다 되어 있었다.
또 그 언니에게 말하였다.
“제가 어릴 때에 무릎을 앓을 때 방게 한 마리를 죽여 그 즙을 내어서 상처에 발라서 나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죄로 도림(刀林) 지옥에 들어가 있고, 살 속에는 현재 부러진 칼 일곱 개가 들어가 있습니다. 언니는 인자한 생각으로 저를 위해 공덕을 지어서 구제하여 주십시오. 언니도 절박하여 서로 돕고 힘쓰지 못한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몸에 따른 의복은 죽은 자에게 이익이 없을 뿐이며 아직 해지지 않았으니, 그것으로나마 이용하십시오.”
언니가 아직 대답하기도 전에 말하였다.
“제가 가지러 갑니다.”
한참 있다가 또 말하였다.
“의복을 가져 왔습니다. 지금 상 위에 있습니다.”
언니가 시험삼아 가서 보았더니 염(斂)할 때의 의복이었다. 그리하여 그 옷을 정토사(淨土寺)의 보헌(寶獻) 스님에게 보내어서 그것을 빙자하여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베껴 썼다. 매양 한 권을 다 베낄 때마다 와서 말하였다.
“이미 한 개의 칼이 나왔습니다.”
마침내 7권을 다 베껴서 마치자 와서 말하였다.
“일곱 개의 칼이 모두 다 나왔습니다. 이제 복의 도움을 입어 곧 남에게 의탁하여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는 언니와 누이가 서로 통곡하다가 이별을 했다. 오흥(吳興)과 심현법(沈玄法)이 이를 말해 주었으며, 정토사 스님 지정(智整)이 설명해 준 바와도 역시 같았다.[위의 세 가지 증험은 『명보습유(冥報拾遺)』에 나온다.]
선 율사(宣律師)의 『감응기(感應記)』에 의거하여 말한다.
“사천왕들이 선 율사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큰 광명을 놓으시고 하늘ㆍ사람ㆍ용ㆍ귀신 등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정법(正法)이 멸한 뒤에 많은 비구들은 나의 소승교(小乘敎)의 자취에 집착하고 비니(毘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내가 비구들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했다 하고, 이러한 비구들이 승가람(僧迦藍) 안에서 중생을 살해하되 마치 사냥꾼과 도수장같이 할 것이다. 또 어떤 비구는 비단옷을 입고 음녀의 집과 술집에 놀러 다니며, 3장(藏)을 익히지 않고 금계를 지니지 않으리니 애통하고 가슴아픈 일이다. 이 나쁜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비방하면서 더럽히고 있거늘 그 혀가 어찌 떨어지지 않겠느냐?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노라. 나는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를 버렸고, 혹은 흉년 든 세상에서는 큰 살의 몸이 되어서 굶주린 이들에게 보시하였으며, 혹은 안팎의 재산을 보시하면서도 끝내 인색한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처음 발심해서부터 부처가 되기까지 어찌 제자들에게 중생의 고기를 먹으라고 했겠느냐?
내가 열반한 뒤에 저 나쁜 비구들도 차례로 나의 자리에 보충되어 하늘과 인간의 스승으로서 중생을 인도하여 도의 과위를 얻게 할 것이거늘, 어찌 하늘과 인간의 스승된 입으로 중생의 고기를 먹는다는 말이냐?
내가 처음 도를 이루었을 때 비록 비니 중에서 세 가지 정육(淨肉)을 먹으라고 허락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4생(生)의 무리가 아니다. 이는 모든 선정의 고기이며, 이는 불가사의한 고기라서 너희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거늘, 무엇 때문에 나의 가르침을 비방하면서 더럽히는가. 나는 『열반경(涅槃經)』과 『능가경(楞伽經)』 가운데서 온갖 생명이 섞인 고기는 모두 다 끊으라 하였고, 계를 지닌 사람은 모든 중생의 살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만일 어떤 나쁜 비구가 비니의 가르침 가운데서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하거나, 명주 옷 입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말한다면 이는 바로 악마의 말이다. 나는 성도한 때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오직 거친 베와 흰 무명으로 된 세 가지 옷만을 입었으며 아직 비단옷은 입어 본 일도 없거늘 어째서 나를 비방하는가?≻’”

94. 예탁편(穢濁篇)[여기에는 4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오신부(五辛部) 체기부(嚔氣部)
변리부(便利部)

(1) 술의부(述意部)
대개 5음(陰)은 헛되고 임시적(臨時的)이며 4대(大)는 덧없고 위태롭다. 이 임시적인 물질을 받았으니 그 일은 마치 그림의 병(甁)과 같고, 이 더러운 형상을 받았으니 굽지 않은 그릇과 같다. 안과 밖이 실체가 없으므로 닿거나 칠하면 모두가 물든다. 또한 염부제의 더러운 형질로 부정한 것이 몸에 가득히 찬 데다가 항상 고기와 술을 먹고 늘 훈신채(葷辛菜)를 먹으므로 그 악취는 위로 치밀어 올라서 모든 하늘의 옷이 찢어지고 선신(善神)이 수호하지 않으며 악귀(惡鬼)가 다투어 침노한다.
범부의 승니(僧尼)조차도 오히려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거늘, 하물며 성현으로서 멀리 하지 않겠는가? 아울러 다시 8고(苦)가 절박하고 9횡(橫)이 해를 재촉하므로 생각생각마다 옮겨 흐르고 마음마음마다 일어났다 사라진다. 한갖 6정(情)에 물들 뿐이면 끝내 3악도에 떨어지리니, 원컨대 저마다 몸을 닦으면서 그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할지어다.

(2) 오신부(五辛部)
『능가경(楞伽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大慧)야, 이와 같은 온갖 파ㆍ부추ㆍ마늘ㆍ염교는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않아서 성인의 도를 장애한다. 또한 세간의 사람과 하늘의 청정한 곳까지도 장애가 되거늘, 하물며 모든 부처님 정토(淨土)의 과보이겠느냐? 술 또한 그와 같으니라.”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셨다.
“나아가 파와 부추와 마늘과 염교까지 먹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라서 장차 고통받을 곳에 태어나, 악취가 나서 깨끗하지 않으므로 성인의 도를 장애한다. 또한 세간의 사람과 하늘의 청정한 곳까지도 장애하거늘 하물며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국토의 과보이겠느냐. 술도 또한 그와 같아서 성인의 도를 장애하고 착한 업을 손상시키며 모든 허물을 내게 한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5신(辛)을 먹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 5신인가? 첫째는 부추요, 둘째는 파이며, 셋째는 마늘이요, 넷째는 흥거(興渠)이며, 다섯째는 달래이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불자야, 5신을 먹지 말 것이다. 마늘과 부추와 파와 달래와 흥거이니, 이 다섯 가지는 먹지 말아야 한다.”
또 『오신보응경(五辛報應經)』에서 말하였다.
“7중(衆)들은 고기와 훈신(葷辛)을 먹지 말 것이니, 이것을 먹고 경론을 독송하면 죄를 얻는다. 병든 이에게는 허락하되 가람 밖의 속인의 집에서 먹을 것이며, 먹은 뒤에 49일이 다 되면 향탕(香湯)에 목욕을 하고 그런 뒤에 경론을 독송해야 범하지 않는다.”
또 『승기율(僧衹律)』ㆍ『십송률(十誦律)』ㆍ『오분율(五分律)』 등에서도, 그 밖의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든 비구에게만 마늘을 7일 동안 먹는 것을 허락하되,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방에서만 먹을 것이며, 먹은 뒤에는 대중이 쓰는 평상이나 이불에 누워서는 안 되고 대중이 대변ㆍ소변을 보는 곳이나 강당이 있는 곳에는 모두 가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 청을 받거나 대중과 함께 밥을 먹어서도 안 되고,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바람이 잘 통하는 먼 곳에서 예배하면 된다. 그리고 7일이 다 된 뒤에 목욕을 하고 옷을 바로 입은 뒤에야 대중에 들어갈 수 있다.
만일 부스럼이 있는 이가 의사의 명으로 향을 발라서 치료해야 할 때는 먼저 부처님께 고양하고 난 연후에야 몸에 바를 것을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셨다. 으슥한 곳에서 하늘 것 등은 앞의 법과 동일하다.[출가하여 성품이 정결해도 오히려 작법(作法)을 이렇게 하거늘, 하물며 세속의 범인들에게 먹는 것을 허락함에 있어서랴.]

(3) 체기부(嚔氣部)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만일 선방(禪房) 안에 있으면서 재채기를 할 때에는 방자하게 너무 큰 소리가 나게 하지 말 것이다. 재채기가 나오려 하면 손으로 코를 막고 참아야 하며, 만일 참을 수 없으면 손으로 코를 가리고 재채기를 해야 되고 여러 사람의 자리에 콧물이나 침이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만일 상좌(上座)가 재채기를 하면 ‘화남(和南:합장, 공경의 뜻)’하고 말해야 하고, 하좌(下座)가 재채기를 하면 잠자코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당시 세존께서 재채기를 하시자 모든 비구들이 주원(呪願)하면서 ‘오래 사시옵소서’라고 하였다. 당시 어떤 거사가 재채기를 하며 비구에게 절을 하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로 하여금 주원하면서 ‘오래 사십시오’라고 하게 하셨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급하게 방귀가 나오려 해도 억제해야 한다. 그래도 참을 수 없으면 아래로 가서 앉아야 하며, 앞에 있으면서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된다. 만일 냄새가 나서 참을 수 없으면 길로 내려가 바람이 잘 통하는 데 있으면서 날려 보내야 한다.”
또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 말하였다.
“기(氣)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품[上氣]이요, 둘째는 방귀[下氣]이다. 하품이 나오려 할 때에는 사람 앞에서 입을 벌려 하지 말 것이요, 반드시 얼굴을 돌리고 사람 없는 곳에서 입을 벌려 하품을 해야 한다.
또 방귀가 나오려 할 때에는 대중 가운데서 뀌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방편을 써서 밖으로 나와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뀌어야 한다. 그러한 뒤에 다시 대중에게 들어감으로서 대중으로 하여금 혐오감과 천히 여기는 마음이 나지 않게 할 것이다. 탑에 들어갈 때에는 방귀를 뀌지 않아야 하고, 탑을 모신 나무 아래서나 대중 가운데서도 방귀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하며, 스승의 앞과 대덕과 상좌 앞에서도 소리가 나게 방귀를 뀌어서는 안 된다. 만일 뱃속에 병이 있어서 급하면 밖으로 나가야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감과 천히 여기는 마음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4) 변리부(便利部)
『우발기왕경(優鉢祇王經)』에서 말하였다.
“가람(伽藍)의 경계 안의 땅에 함부로 대변과 소변을 하는 이는 5백 생 동안 몸이 발파(拔波)지옥에 떨어지며, 그 뒤에는 20소겁(小劫) 동안 대소변이 널린 더러운 땅을 안고 황천(黃泉)까지 이른다.”
또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 말하였다.
“여러 비구가 살고 있는 방 앞과 그 중간에 소변을 누어서 악취 때문에 모두가 다닐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 이 냄새를 맡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는 모든 비구들이 승가람의 아무 곳에나 소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으슥한 일정한 곳을 지정하여 누어야 한다. 그리고 기와 그릇이나 나무통을 땅 속에다 묻어 놓고, 그 곳에 소변을 눈 뒤에 덮개를 만들어 덮어서 냄새가 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또 『비니모경』에서 말하였다.
“만일 뒷간에 갈 때에는 먼저 산가지를 가지고 문 앞까지 가서 세 번 손가락을 튀기어 소리를 낸다. 그것은 사람과 비인(非人)이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산가지가 없어도 안 되고 벽 위에 문질러도 안 되며 뒷간의 판자나 들보나 기둥에다 문질러도 안 되며 돌을 써서도 안 된다. 그리고 푸른 풀과 흙덩이와 부드러운 나무 껍질과 부드러운 잎사귀와 기이한 나무들도 모두 쓸 수 없으며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나무와 대와 갈대로 만든 산가지 뿐이다. 그 크기는 아주 긴 것은 한 뼘이고, 짧은 것은 넷째 손가락 길이이다. 이미 쓴 것을 너무 흔들어서 깨끗한 것을 더럽게 하지 말 것이며, 깨끗한 산가지 속에 두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뒷간에 가는 법이며 산가지를 쓰는 법이다.
뒷간에는 두 가지 처소가 있다. 첫째는 일어나고 앉는 곳이요, 둘째는 물을 쓰는 곳이다. 앉고 일어나고 옷을 걷어올리는 곳은 일어나고 앉고 하는 그 곳이며, 뒷간 문 앞에는 깨끗한 병에 물을 담아 두고 또 하나의 작은 병이 놓여 있어야 된다. 만일 자기 병이 있으면 그것을 써야 하고, 만일 자기 병이 없으면 뒷간 곁에 놓여 있는 작은 병을 쓸 것이며, 곧장 대중들이 쓰는 큰 병의 물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이것이 뒷간에 가서 물을 쓰는 법이다.
탑 앞에서나 대중들 앞에서 화상과 아사리 앞에서는 입을 벌려 크게 코를 풀거나 침을 뱉지 말아야 한다. 만일 코를 풀고 싶거나 침을 뱉고 싶으면 으슥한 곳으로 가야 하며, 남들로 하여금 혐오감과 천히 여기는 마음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코를 풀고 침을 뱉는 법이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대소변을 누고 씻지 않으면 그 비구는 돌길라죄(突吉羅罪)가 된다. 또한 청정한 대중이 쓰는 방석 위에 앉지 말 것이며 3보께 예배해서도 안 된다. 설령 예배 한다 해도 복덕이 없다.
또 집 뒤의 뒷간에 가는 데 25가지 일이 있다. 첫째, 대소변이 하고 싶어서 가는 때에는 길 위의 상좌(上座)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 둘째, 남에게 절도 받지 않는다. 셋째, 갈 때에는 머리를 숙이고 길을 보고 가야 한다. 넷째, 가서는 세 번 손가락을 튀긴다. 다섯째, 이미 사람이 거기서 손가락을 튀기면 독촉하지 말 것이다. 여섯째, 들어가면 똑바로 서서 손가락을 튀기고 걸터앉는다. 일곱째, 바로 한가운데에 걸터앉는다. 여덟째, 한 발은 앞으로 한 발은 뒤로 내지 말 것이다. 아홉째, 몸을 기대지 말 것이다. 열째, 옷을 걷어 올려서 구덩이 안까지 드리우게 하지 말 것이다. 열한째, 너무 힘을 써서 얼굴이 붉어지게 하지 말 것이다. 열두째, 앞을 똑바로 보고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이다. 열셋째, 벽을 더럽히지 말 것이다. 열넷째, 머리를 숙여서 구덩이 안을 보지 말 것이다. 열다섯째, 음기(陰器)를 보지 말 것이다. 일여섯째, 음식을 손으로 잡지 말 것이다. 열일곱째, 풀로써 땅을 덮지 말 것이다. 열여덟째, 풀을 가져다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쓰지 말 것이다. 열아홉째, 물을 쓰되 너무 허비하지 말 것이다. 스무째, 더럽히면서 씻지 말 것이다. 스물한째, 물을 쓸 적에 사용한 손을 사용하지 않은 손에다 대지 말 것이다. 스물두째, 흙을 쓸 적에는 세 번만 떠서 쓴다. 스물셋째, 비누를 써야 한다. 스물넷째, 세 번만 물을 떠서 쓴다. 스물다섯째, 설령 물과 풀과 흙을 보았다 해도 그 날의 당직(當直)에게 말을 해야 한다. 만일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이면 마음대로 해도 좋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대소변을 행한 뒤에 물로 씻지 않고서 대중이 쓰는 방석이나 평상이나 이불을 받아 쓰면 죄가 된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대변을 누고 씻지 않으면 대중의 침구 위에 앉거나 눕지 말 것이니, 죄가 된다.”
또 『마덕륵가론(摩德勒伽論)』에서 말하였다.
“대소변을 누고서 씻지 않으면 예배하지 말 것이다. 그 밖에 물이 없는 곳이거나 비인(非人)이 성을 내게 되거나 수신(水神)이 성을 내거나, 혹은 약을 먹기 위해서라면 씻지 않아도 범한 것은 아니다.”
또 『삼천위의경(三千威儀經)』에서 말하였다.
“깨끗이 씻지 않고 부처님께 예배하면 설령 예배한다 해도 공덕이 없다.”
또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말하였다.
“어느 한 비구가 손가락을 튀기지 않고 대소변을 누었으므로 귀신의 얼굴에 오물이 묻었다. 그 마귀는 크게 성을 내어 그 사문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 사문이 계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마귀는 그의 뒤를 따르면서 단점을 엿보았지만 끝내 틈을 얻지 못하였다.”[이미 이런 일을 알았으므로 뒷간에 갈 적에는 반드시 기침하여 소리를 내야 한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였다. 사위성(舍衛城)안에 니제(尼提)라는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아주 가난하고 하천한 이라서 항상 남의 변소를 쳤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제도될 때임을 아시고 곧 아난을 데리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때마침 니제는 똥을 메고 성(城)을 나가서 그것을 버리려다가 병이 깨져 몸이 온통 더러워졌다. 멀리서 세존을 보고는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차마 부처님을 뵙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곳으로 가셔서 그를 위하여 설법을 하시자, 곧 신심을 내어 출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난으로 하여금 강물 속으로 데려가서 물을 퍼부어 씻게 하시고, 기원(祇洹)으로 데리고 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시자 수다원(須陀洹)이 되었고 곧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나라의 인민들과 왕은 그가 출가했음을 듣고 모두가 원망하면서 말했다.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의 출가를 허락하셨을까?’
파사닉왕(波斯匿王)은 곧 부처님께로 가서 그 일을 말리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부처님께 가다가 마침 니제를 만났다. 그는 기원의 문 앞에 있는 큰 돌 위에 앉아서 헌옷을 깁고 있었는데 7백의 하늘들이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있었다. 왕은 그를 보고 기뻐하면서 부처님을 뵙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니제 비구는 돌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자유자재로 하다가 부처님께 아뢰고 나서 들어가게 하였다. 왕은 부처님께로 가서 먼저 이 일부터 물었다.
‘아까 그 비구의 성과 이름은 무엇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바로 왕의 나라 안의 하천한 사람으로서 변소를 치던 니제입니다.’
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비방하던 마음을 이내 없애고, 니제에게로 가서 발을 잡고 예배를 한 뒤에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왕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니제 비구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런 천한 몸을 받았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가섭부처님[迦葉佛]이 열반하신 뒤에 어느 한 비구가 출가하여 자유로이 대중의 일을 처리하면서 몸이 잠시 동안 아팠습니다. 그래서 드나드는 것이 싫어져서 변기(便器)를 가져다가 볼 일을 본 뒤에 한 제자를 시켜서 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수다원이었습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생사에 유랑하면서 늘 하천한 사람이 되어 5백 생 동안 남을 위해 변소를 쳤습니다. 그러나 옛날 출가하여 계를 지닌 공덕으로 지금 나를 만나게 되었고 출가하여 도를 얻은 것입니다.’[이런 이치 때문에 방 안에서는 대소변을 보지 말 것이니, 앞과 같은 죄를 초래하기 때문이니라. 자주 보는 일이거니와 속인들은 게을러서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변기를 방 안에다 두고 대소변을 본 뒤에 남을 시켜서 날마다 버리게 하는데 미래 세상에는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진다. 비록 지옥에서 나오게 된다손쳐도 오히려 돼지나 개나 쇠똥구리나 뒷간의 벌레가 된다.]”
또 『불설제재환경(佛說除災患經)』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지나간 세상에 가섭부처님께서 사람의 수명이 2만 세일 때 불사를 마치시고 열반에 드셨다. 그 때 선경(善頸)이라는 왕이 사리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높이 1유순(由旬) 되는 7보의 탑을 세웠다. 온갖 중생들이 등불을 켜고 향을 사르었으며 향과 꽃과 비단으로 공양하고 예배하며 섬겼다.
당시 여러 여인들이 탑에 공양하기 위하여 함께 와서 탑의 주변을 소제하고 있었다. 그 때 개똥이 탑의 주변을 더럽혀 놓았으므로, 어느 한 여인이 손으로 집어서 버렸다. 그런데 어느 한 여인이 땅에 있던 개똥을 손으로 버리는 것을 보고 침을 뱉고 웃으며 말하였다.
‘너의 손은 더러우니 가까이 오지 말라.’
그러자 그 여인은 역정을 내면서 말했다.
‘너는 못쓰게 된 음탕한 물건이지만 나의 손은 물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진다.’
그리고는 부처님ㆍ천인사(天人師)께 공경해마지 않으면서 손으로 부정한 것을 다 없앤 뒤에 곧 손을 씻고 탑을 돌며 서원을 세웠다.
‘이제 탑의 주변을 소제하여 더러움도 없앴사오니, 저로 하여금 세상마다 진로(塵勞)의 때[垢]가 소멸되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게 하옵소서.’
그 때 탑의 주변을 소제한 여인들이 바로 지금의 모임에 있는 여인들이니, 당시 땅을 소제하고 진로의 소멸을 원했으므로 감로(甘露)의 맛을 먹고 있었다. 손으로 개똥을 없앤 그 때의 여인은 바로 지금의 내녀(柰女)이니, 당시 원을 세우면서 더러운 모임과 함께 하지 않고 발원한 바가 청정했으므로 그 복의 과보를 얻었고, 그 때문에 태 안의 더러운 곳에 의지하지 않고 매양 꽃에서 난 것이다. 그녀는 그 때 나쁜 소리로 ‘음녀’라고 한 번 꾸짖은 말 때문에 지금 이 음녀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법을 듣고 수다원을 증득한 것이니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남천축(南天竺)의 법도 있는 집안에 한 계집아이가 있었는데, 반드시 일찍 일어나서 뜰과 문 안팎을 깨끗이 소제하게 하였다. 이 장자의 딸이 일찍 일어나서 땅을 쓸고 있는데, 마침 여래께서 문 앞을 지나가셨다. 그녀는 여래를 보자 기뻐하면서 마음을 한곳에 쏟아서 부처님을 보고 있다가 수명이 다하여 곧 죽으면서 천상에 가서 났다.
대개 천상에 가서 난 이에게는 으레 세 가지 생각이 있는 법인데, 그녀도 ‘본시 어떤 몸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스스로 사람 몸이었음을 알았고, ‘지금 어디에 나 있는가?’ 생각하다가 그곳이 틀림없이 하늘임을 알았으며, ‘옛날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여기에 태어났을까?’ 생각하다가 부처님을 뵙고 기뻐한 착한 업으로 이 과보를 받았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중한 은혜에 감사하면서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부처님께서 그를 위하여 법을 말씀하시자 수다원을 증득하였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덕차시라(德叉尸羅) 나라에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월광왕(月光王)이 천 개의 머리를 버린 곳에 갔다가 무우왕(無憂王)이 세운 영묘(靈廟)에 개똥이 있는 것을 보고는 부처님의 자리 앞에 있으면서 생각하였다.
‘여기는 청정한 곳이거늘 어떻게 개똥이 더럽힌단 말이냐?’
그래서 손으로 없앤 뒤에 향을 이겨 발라서 장식하였다. 그 착한 업의 힘 때문에 이 여인은 온몸에서 향기가 났는데, 마치 전단나무와 같았으며, 입 속에서는 항상 푸른 연꽃 향기가 풍겼다.
모든 중생이 청정함을 수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의 번뇌로 인하여 바깥의 모든 더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에 논(論)에서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의 모든 더러운 풀이
좋은 논밭을 더럽히듯이
이렇듯 모든 탐욕의 더러움은
모든 중생[含識]을 더럽히게 된다.

세간의 모든 더러운 풀이
좋은 논밭을 더럽히듯이
이렇듯 모든 성냄의 더러움은
모든 중생을 더럽히게 된다.’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였다. 나열성(羅閱城) 곁에 하나의 흐린 물이 있었다. 수렁이라 더러웠는데, 여러 가지 썩은 찌꺼기들이 많이 있었으며 나라 안의 백성들이 똥오줌을 모두 그 안에 버렸다. 그 속에 형상이 마치 뱀과 같은 큰 벌레가 있었는데, 네 개의 발까지 붙어 있었다. 그 흐린 물에서 이리저리 다녔는데, 혹은 가라앉기도 하고, 혹은 나오기도 하면서 언제나 그 속에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데리고 그 구덩이로 가셔서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이 벌레가 전생에 행한 일을 알고 있느냐?’
비구들이 모두 함께 말하였다.
‘모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바시부처님[毘婆尸佛] 때에 여러 상인들이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캤었다. 값진 보물을 많이 얻어서 편안히 돌아온 뒤에 그 중에 으뜸가는 보물만을 골라서 대중 스님들에게 보시하여, 대중이 먹는 음식을 마련하는데 보태 쓰게 하였다. 스님들은 그 보물을 받아서 마마제(摩摩帝)에게 맡겨 두었는데, 나중에 대중이 먹을 음식이 떨어지려 했으므로 그에게 돌려달라고 했으나 주지 않았다. 대중 스님들이 간곡히 달라고 하자 마마제는 성을 내면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똥이나 먹어라. 이 보물은 내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달라고 하느냐?≻
그는 스님들을 속이면서 나쁜 말로 욕을 했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자 아비(阿鼻) 지옥에 떨어져서 항상 끊는 똥 속을 뒹굴면서 91겁 동안 지냈다. 그리고 지옥에서 나와서는 지금 이 속에 빠져 있는데, 7불(佛)이 나오신 이후부터 오늘까지 이 벌레가 되었고, 현겁(賢劫) 천불(千佛)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그러하리라.’”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 계실 때였다. 사리불과 대목건련은 밥을 먹기 전에 먼저 지옥과 축생과 아귀를 관찰하고, 그런 뒤에야 밥을 먹었다.
목련은 한 아귀가 몸은 마치 타다 남은 기둥과 같고, 배는 마치 큰 산과 같으며, 목구멍은 마치 가는 바늘과 같고, 머리칼은 마치 송곳날처럼 그의 몸을 감고 찔렀으므로, 온 뼈마디에서 불이 뿜어 나오고 크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달려 다니며 똥오줌을 구하여 음식을 삼으려 하였으나 종일토록 고달프기만 할 뿐 얻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목련은 곧 아귀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토록 고통을 받고 있느냐?’
아귀가 대답하였다.
‘해가 있는 곳에서는 등불이 필요 없다오. 여래ㆍ세존께서 지금 현재 세상에 계시니, 당신은 가서 물어 보시오. 나는 지금 굶주려 있기 때문에 대답할 기력조차 없소.’
그래서 목련은 곧 부처님께로 가서 그가 지은 업행(業行)과, 받는 고통에 대하여 자세히 아뢴 뒤에 여쭈었는데, 그 때 세존께서는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들으라. 나는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이 현겁(賢劫) 동안에 사위성(舍衛城) 안에 재보가 한량없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한 장자가 있었는데 언제나 종을 시켜 사탕수수의 즙을 짜서 대가(大家)에 보내주게 하였다. 어떤 벽지불이 몹시 목이 마른 병을 앓고 있었는데, 좋은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서 사탕수수의 즙을 먹으면 병이 즉시 낫는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벽지불은 그 장자의 집으로 가서 사탕수수의 즙을 구걸하였다. 당시 그 장자는 그가 오는 것을 보자 기뻐하면서 그의 아내 부나기(富那寄)에게 말하였다.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꼭 나가 보아야겠소. 당신은 남아 있다가 사탕수수의 즙을 가져다 벽지불께 드리십시오.≻
그 때 그의 아내는 대답하였다.
≺당신은 나가 보십시오. 제가 드리겠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나간 뒤에 벽지불의 발우를 받아 가지고 으슥한 곳으로 가서 소변을 발우 안에다 누고 사탕수수의 즙으로 발우 위를 덮고는 벽지불에게 주었다. 벽지불은 받은 뒤에 곧 그것이 사탕수수의 즙이 아님을 알고 땅에다 버리고 빈 발우를 가지고 돌아갔다. 아내는 나중에 목숨을 마치고 아귀 안에 떨어져서 늘 굶주림에 시달림을 받고 있나니, 이 업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받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장자의 아내를 알고 싶으냐? 바로 지금의 부나기 아귀니라.’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모든 비구들은 간탐하는 일을 버리고 생사를 미워하였으므로 사문의 네 가지 과위[四沙門果]를 얻은 이도 있고, 벽지불의 마음을 낸 이도 있었으며,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낸 이도 있었다. 그 리고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남의 피와 살을 먹으면서
탐내는 독으로 자비(慈悲)가 없이
이 몸의 더러운 물질만을 기르면
벌레 세상 안에서 녹아 없어지리라.

스님들의 청정한 그릇을 지키지 않아서
이 뒷간 안에서 벌레가 되어 있나니
그 뒤의 과보는 지옥에 들어가
받아야 할 고통 다 알지 못하리.”

감응연(感應緣)[간략히 세 가지 증험을 인용한다.]

송(宋)의 석혜과(釋慧果)
제(齊)의 석홍명(釋弘明)
당(唐)의 사홍폐(謝弘敝)의 처 허씨(許氏)

송(宋)의 석혜과(釋慧果)
송(宋)나라 경사(京師) 와관사(瓦官寺)의 석혜과(釋慧果)는 무주(婺州)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채소만 먹고 고행하며 업을 닦았다. 송나라 초(初)에 경사의 와관사에 있으면서 법화(法華)의 10지(地)를 독송했다. 일찍이 뒷간 앞에서 한 귀신이 나타나 공경을 다하면서 혜과에게 말하였다.
“옛날 대중 스님을 위해 유나(維那)로 있으면서 법대로 하지 않은 작은 일로 인해 똥을 먹는 귀신 안에 떨어져 있습니다. 법사께서는 덕이 본디 높고 밝으시며 또 자비심을 갖고 있으니 원컨대 구제되는 길을 도와 주소서.”
그리고 또 말하였다.
“옛날에 돈이 3천 문(文)이 있어서 저 감나무 뿌리 아래 묻어 두었습니다. 원컨대 그것으로 복을 닦아 주소서.”
그리하여 혜과는 즉시 대중에게 시켜서 파서 가져오게 하였다. 혜과는 그 얻은 돈 3천 문으로 그를 위하여 『법화경』 1부를 찍고 아울러 재를 지내 주었다. 그 뒤에 꿈에 이 귀신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이미 생(生)을 바꾸었습니다. 옛날보다 아주 더 훌륭합니다.”
혜과는 송나라 태시(太始) 6년에 죽었으며 춘추는 76세였다.

제(齊)의 석홍명(釋弘明)
제(齊)나라 영명(永明) 연간에 회계(會稽)의 석홍명(釋弘明)은 운문사(雲門寺)에 있으면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예배와 참회를 업으로 삼았다. 매양 아침이면 물병이 저절로 가득히 찼는데, 여러 하늘의 동자(童子)들이 그를 위하여 심부름을 했다. 또 호랑이가 감동하여 방안으로 들어와 평상 앞에 엎드려서 오랫동안 있다가 떠나기도 했다. 또 어린아이가 나타나 경을 들으면서 말하였다.
“옛날에 이 절의 사미입니다. 스님들의 주방에서 음식을 훔쳐먹고 지금 뒷간 안에 떨어져 있습니다. 상인(上人)의 독경 소리를 듣고 일부러 와서 듣고 있습니다. 원컨대 방편을 도우셔서 이 누(累)를 면하게 하옵소서.”
다음 날 그를 위하여 설법을 했더니 깨달아 알고서 그제야 나타나지 않았다. 또 뒷산의 산정(山精)이 와서 괴롭혔으므로 다음 날 그를 붙잡아다 줄로 허리를 매놓았더니 그 귀신이 사과했으므로 드디어 놓아주었다. 그 뒤부터는 영영 그런 일이 없어졌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양고승전(梁高僧傳)』에 나온다.]

당(唐)의 사홍폐(謝弘敝)의 처 허씨(許氏)
당(唐)나라 오왕문학(吳王文學) 진군(陳郡)의 사홍폐(謝弘敝)의 처 고양 허씨(高揚許氏)는 무덕(武德) 초년에 병이 들어 죽었다. 죽은 지 4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말을 하였다.
“2ㆍ30인에게 붙잡혀 지옥으로 들어갔다. 아직 관부(官府)를 보기 전에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비록 얼굴은 알 수 없었으나 고모부 심길광(沈吉光)의 말소리 같았으므로 내가 물었다.
‘말소리가 고모부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머리가 없으십니까?’
그 때 남쪽 사이에서도 사람이 ’고모부’ ‘이모부’ 하고 불렀는데, 모두가 아무 성씨의 어른이었다. 길광은 곧 손으로 그의 머리를 잡았다가 어깨 위에다 놓으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선 여기에 있으면서 서원(西院)을 향하지 말고 나를 기다려라. 너를 위해 가서 곧 나갈 수 있도록 청해야겠다.’
그는 드디어 말하던 곳에 서서 다시는 이쪽 저쪽을 보지도 않았다. 길광은 한가한 것 같으면서도 거간(居間)할 힘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두 밤을 지냈는데, 그제야 길광이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제 이리 오너라. 왕이 너를 여기(女伎)로 삼으려 한다. 만일 불려 가거든 관현악(管絃樂)에 대하여 안다고 하지 말라. 그래도 되지 않으면 아는 이를 끌어대라. 내가 너를 위해 증명해 주겠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벼슬아치가 장부를 안고 끌어 들였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관현악에 대하여 잘 아느냐?’
내가 말하였다.
‘도통 모릅니다.’
다시 말하였다.
‘그것은 심길광이 자세히 압니다.’
그러자 왕이 길광에게 물었는데, 그가 대답했다.
‘잘 모릅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빨리 내보내라. 더 둘 필요가 없다.’
그 때 길광은 내보내려 하면서 곧 장부를 갖고 있는 사람과 함께 무슨 계책을 세운 것 같았으나,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장부를 가진 사람이 말하였다.
‘낭자의 공덕의 힘이 비록 강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먼저 조그마한 죄가 있습니다. 따라가서 받아 버리면 도리어 몸의 업이 모두 청정해지리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다른 하나의 큰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문은 아주 작았는데, 역시 어떤 사람들이 죄를 받고 있는 것이 크게 보였다. 나는 몹시 놀라고 두려워서 그 맡고 있는 이에게 청하여 물었다.
‘평생 동안 복을 닦았거늘 무슨 죄로 여기에 데려오셨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낭자는 일찍이 깨끗하지 않은 주발에 밥을 받아다 부모에게 드렸소. 이 죄를 받아야 나가실 수 있소.’
그러고는 기어이 녹인 구리 즙을 입에다 부어 넣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자주 깨어나서 보면 입 안이 모두 문드러져 있었다. 그런 뒤에 길광이 곧 말하였다.
‘이 사람에게서 경전 한 권을 받아서 기억해 두어라. 그리고 돌아가서 받아 지니며 게으르지 말라. 지금 이후로 80여 년은 더 살 것이다.’
허씨는 생시에 경을 독송한 일도 없었는데, 소생한 뒤에 경 한 권을 얻어 독송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찾아 보았으나 그 경은 전에는 없었다. 지금 현재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서 빠뜨리지 않고 있는데, 그 경은 글을 싣지 않은 것이 많았다. 다시 살아난 뒤에도 길광은 아직 살아 있었으며 2년 후에야 죽었다. 무릇 모든 친속들이 죽으려 하는 이가 있으면 3년 전에 모두가 땅 아래서 미리 본다.”
허씨의 종부제(從父弟) 인(仁)이 이런 말을 해 주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보기(冥報記)』에 나온다.]

法苑珠林卷第九十四

何西明寺沙門釋 道世 撰

酒肉篇第九十三

穢濁篇第九十四

酒肉篇感應緣略引一十四驗漢洛子淵 晉沙門法遇晉庾紹之 宋蔣小德宋沙門竺慧熾 吳諸葛恪周 武 帝 隋趙文若唐孫迴璞 唐李氏唐鄭師辯 唐韋知十唐謝適氏 唐任五娘漢孝昌時,有虎賁洛子淵者,自云雒陽人,孝昌中戍於彭城。其同管人樊元寶,得假還京師,子淵附書一封令至云,某宅在靈臺南近雒水,卿但至彼,家人自出相看,元寶如其言,至臺南見無人家,徙倚欲去,忽見一老翁問云:從何而來?彷徨於此。元寶具向導之,老翁云:吾兒也取書引元寶入,遂見館閤崇寬屋宇佳麗,旣坐令婢取酒,須臾婢抱一死小兒而過,元寶遇甚怪之,俄而酒至,酒色甚紅,香美異常,兼設珍羞,海陸備有,飮訖告退。老翁送元寶出云:後會難期,以爲悽恨,別甚慇勤,老翁還入,元寶不復見其門巷,但見高崖對水淥波。頃時唯見一童子可年十五,新溺死鼻中血出,方知所飮酒乃是血也。及還彭城,子淵已失矣。元寶與子淵同戍三年,不知是雒水之神也出雒陽寺記錄晉有荊州長沙寺僧釋法遇,不知何許人?弱年好學篤志墳素,事道安爲師,解寤非常,乃避地東下止江陵長沙寺講說衆經,受業者四百餘人。時,有一僧,飮酒廢夕燒香,遇但止罰而不遣,安公遙聞之,以竹筒盛一荊杖,手自緘封,題以寄遇,遇開封見杖卽曰:此由飮酒也,我訓領不勤遠貽憂賜,卽命維那鳴椎集衆。以杖筒置香凳上,行香畢,遇乃起出衆前,向筒致敬,於是伏地,令維那行杖三下,內杖筒中,垂淚自責。時,境內道俗莫不歎息,因之學徒勵業甚衆,旣而與慧遠書曰:吾人微暗短不能率衆,和尚雖隔在異域,猶遠垂憂念,吾罪深矣。後卒於江陵春秋六十矣右此一驗出梁高僧傳也晉新野庾紹之,小字道覆,晉湘東太守與南陽宋協中表昆弟情好綢繆,紹元興末病亡。義熙中忽見形詣協,形貌衣服具如平生,而兩腳著械,旣至脫械,置地而坐,協問何由得顧?荅云:蹔蒙假歸,與卿親好故相過也。協問鬼神之事,紹輒漫略不甚諧對,唯云:宜勤精進不可殺生,若不能都斷可勿宰牛,食肉之時無噉物心。協云:五藏與肉乃復異耶?荅曰:心者善神之宅也。其罪尤重,具問親戚,因談世事。末復求酒,協時時餌茱萸酒因爲設之,酒至對杯不飮云:有茱萸氣,協曰:爲惡之耶?荅云:下官皆畏之。非獨我也。紹爲人語聲高壯,此言論時不異常日,有頃協兒邃之來,紹聞屐聲極有懼色,謂協曰:生氣見陵不復得住,與卿三年別耳。因貫械而起,出戶便滅,協後爲正員郞,果三年而卒。宋蔣小德江陵人也。爲嶽州剌史,朱循時爲聽事監師,少而信向,勤謹過定祚人偱喜之每有法事。輒令典知其,務大明末,年得病而,死夜三更,將殮便蘇,活言有使:者稱王命召之小德隨,去旣至王,曰君精勤,小心虔奉大,法帝勅精旨,以君專至宜速生。善地而君筭猶長故令吾特,相召也君。今日:將受天中快樂欣然小,德嘉諾王曰君可,且還家所欲。屬寄及作功德。可速之七,日復來也小德,受言而歸路由一處,有小屋殊,陋弊逢新,寺難:公於此屋前旣素識具相,問訊難云,貧道自出家來未嘗飮酒,早就蘭公蘭公苦。見勸逼飮一升許被王召,用此故也貧道,若不坐此當得生天。今乃居此弊宇三年,之後方得上耳小,德至家欲驗其,言卽夕遽遣人,參訊難公。果以此日,於蘭公處睡臥至,夕而亡小德旣愈七日內大設福供至期奄然而卒朱循卽免家丘戶蘭難二僧竝居新寺難道行尤精不同餘僧宋沙。門竺慧熾新,野人住在江陵四。層寺永初二年卒弟子爲設七日會其日將夕燒香竟,道賢沙門因往視熾,弟子至房前忽曖曖若人形,詳視乃慧熾也。容貌衣服不異生時,謂賢曰:君旦食肉美不?賢曰:美。熾曰:我坐食肉。今生餓狗地獄,道賢懼讋未及得荅,熾復言:汝若不信試看我背後,乃迴背示賢見三黃狗,形半似驢,眼甚赤光照戶內,狀欲齧熾而復止,賢駭怖悶絕良久乃蘇具說其事右此二驗出冥祥記吳幼帝卽位,諸葛恪輔政,孫峻爲侍中大將軍。恪强愎傲物,峻嶮側而好權。鳳皇三年恪攻新城無功而還,峻將以幼帝響恪而殺之。其日恪精神擾動,通夕不寐。張約騰裔以峻謀告恪。恪曰:豎子其何能爲?不過因酒食行酖毒耳將親信人以藥酒自隨恪將入畜犬追銜其衣裾。不得去者三,恪顧拊犬頭曰:怖那無苦也。旣入峻伏兵殺之,峻後病夢,爲恪所擊狂言常稱見恪遂死出冤魂志周武帝好食雞卵,一食數枚,有監膳儀同名拔虎,常進御食有寵,隋文帝卽位,猶後監膳進食,開皇中暴死,而心尚暖,家人不忍殯之。三日乃蘇,能語先云輿我見至尊爲武帝傳說旣現而請文帝引,問言曰始,忽見人來喚隨至一處有大地穴所行之道徑入纔到穴口遙。見西方有百騎來儀,衛如王者俄至穴口,乃周武帝也,儀同拜之,帝曰王喚,汝證我事耳汝?身無:罪言訖卽,入宮中使者亦引儀。同令見宮門引,入庭前見武帝與王,同坐:而有加敬之容使者,令儀同拜王王問曰汝,爲帝作食前後進白。團幾:枚儀同不識白團顧?左右:左右教曰名雞卵。爲白團也,儀同卽荅,帝食白團。實不記數,王謂帝曰此人不記當須出,之帝慘然不樂而:起忽見庭,前有鐵牀幷獄卒數十人皆牛頭人身帝已臥牀上獄卒用鐵梁壓之帝兩脅,剖裂處雞子全出,俄與牀齊可十餘斛,乃盡王:命數之訖牀及獄卒,忽然不見帝又。已在王坐帝,謂儀同云,爲我相聞大隋天子昔與我共食倉庫玉帛亦我儲之我。今身爲滅佛,法極受大苦可爲吾,作功德也,於是文帝勅天下人,出一錢爲追福焉。臨外祖齊公親見問時節,歸家具說。後隋大業中雍州長安縣有人,姓趙名文若,死經七日,家人大斂將欲入棺,乃縮一腳,家人懼怕不敢入棺,文若得活,眷屬喜問所由。文若報云:當死之時,見人引向閻羅王所問文若,汝生存之時作何福業,文若荅王:受持金剛般若經。王歎云:善哉,此福第一。汝雖福善,且將汝示其受罪之處,令一人引文若,北行十步至一牆孔,令文若入孔,隔壁有人,引手從孔中捉文若頭引出極大辛苦,得度牆外見大地獄。鑊湯苦具罪人受苦,不可具述,乃有衆多豬羊雞魚鵝鴨之屬。競來從文若債命,文若云:吾不食汝身,何故見逼?諸畜生等各報云:汝往日時某年某月某處食我頭腳四支,節節分張,人各飮噉,何故諱之?文若見畜引實不敢拒逆,唯知一心念佛,深悔諸罪,不出餘言,求與諸畜得活之時具修福善報謝諸畜。見爲修福一時放卻,其引使人過將文若至王所,說見受罪處訖王付一盌釘令文若食之幷用五釘釘文若頭項及以手足然後放過文若。得蘇具說此事然患,頭痛及:以手足久後修?福痛:漸。得差:從爾已來。精勤誦持金剛,般若不敢遺漏寸陰,但見道:俗親疏竝勸受持般若,後因使至一驛廳上暫,時偃息似,如欲睡于時夢見,一靑衣婦女急速,而來請救乞命文若驚寤卽喚驛長問云汝不爲吾欲殺生不驛長荅云實爲公欲殺一。小羊文若問,云其羊作何色。荅云是靑羖牸羊文若報云汝,急放卻吾與價直贖取放。之良由般若威力冥資感應也唐。殿中:侍醫孫迴璞濟?陰人也至貞觀十三年。從車駕幸九成宮三善,谷與魏太師鄰家嘗夜二。更聞外有人,喚孫侍醫聲璞起出看謂是太師之命旣出,見兩人謂,璞曰官喚璞曰我不能步行卽取璞馬乘之隨二人行乃覺天地如晝日,光明璞怪,訝而不敢言二人引,璞出谷歷朝堂,東又東北行,六七里至苜蓿,谷遙見有兩,人持韓鳳,方行語所引璞。二人曰汝,等錯追我:所得者是汝,宜放彼人卽,放璞璞循路而還了了不異平生行處旣至,家繫馬見,婢當戶眠喚之不應越度,入尸見其,身與婦竝眠欲就之,而不得但著,南壁立大,聲喚婦終不。應屋內極。明見:壁角中有蜘蛛網。中二蠅一,大一小幷見梁,上所著藥物無不分明唯,不得就牀,自知是死甚憂悶,恨不得共妻別,倚立南壁久之微。睡忽驚:覺覺身已臥,牀上而屋中闇黑,無所見喚婦令起然火。而璞方大:污流起視蜘蛛網。歷然不殊:見馬亦大污鳳方是夜暴死後至十七年璞奉勅馳驛,往齊州療齊王祐,疾還至雒州東孝義驛忽見一人。來問曰君是孫迴璞不璞曰是君何問爲荅。曰我是鬼耳魏,太師有文,書追君爲,記室因出,文書示璞璞視之,則鄭國公魏徵署也。璞驚曰鄭公不,死何爲遣君:送書鬼曰已死矣今,爲太陽都錄,大監故令我召君迴,璞引坐共食鬼甚喜謝璞璞請曰我奉勅,使未還鄭公不宜追我還京奏事,畢然後聽命可乎鬼。許之於是晝,則同行夜,便同宿遂,至閿鄕鬼,辭曰吾取,過所度關:待君璞度關出西門見鬼已在門外復同行至滋水鬼又與璞別曰待君,奏事訖相見也君。可勿食葷辛璞許諾旣奏事,畢而訪鄭。公已:薨校其薨日則孝義驛,之前日也璞自以,必死與家人。訣別而請僧行。道造像寫,經可六七日夜,夢前鬼來召引璞上,高山山巓,有大宮殿,旣入:見衆君子迎謂曰此人修,福不得留,之可放去卽推璞墯山於,是驚寤遂至今無恙矣迴璞自爲臨說唐冀州頓,丘縣有老母姓李年。可七十無子孤老唯,有奴婢兩人家鎭,酤酒添灰少量,分毫經紀貞觀,年中因病氣斷死經兩日凶器已具但以心上少溫然始蘇活口云初有兩人竝著赤衣,門前召出,之有上苻遣,追便卽隨去行至一城有若州郭引到側院見一官人衣冠大,袖憑案而坐左右甚多階。下大有著枷,鎖人防援如生官。府者遣問老母何因行濫酤酒多取他物擬作法華經己向十年何爲不造老,母具言酒,使婢作量。亦是婢經己付錢一,千文與隱師卽遣追,婢須臾卽至勘當元由婢卽笞四十放還遣問,隱師報云是實,乃語老母云放,汝七日去經了當來,得生善處,遂爾得活復有人問勘校老母初死之時,婢得惺悟,久而始蘇,腹背靑腫蓋是四十杖迹隱禪師者本是客僧配寺頓丘年向六,七十自從:出家卽頭陀?乞食:常一食齋未,嘗暫輟遠:近大德竝,皆敬慕老母病死之,後隱師夢有赤衣人來問夢中荅云造經是實老母乃屈鄕閭眷屬,及隱禪師。行道雇諸經生,衆手寫經經了正當七日,還見往者二人,來前母云使人已來竝皆好住聲。絕卽死隱。師見存道俗欽敬唐東宮右監門兵曹參軍鄭師辯年未弱冠時暴死三日,而蘇自言初有數,人見收將行入,官府大門,見有囚百餘人皆,重行北面立凡爲六行其前行者,形狀肥白好衣服,如貴人,後行漸瘦惡,或著枷鎖,或但去巾帶,皆行連袂,嚴兵守之,師辯至配入第三行東頭第三立,亦去巾帶連袂,辯憂懼專心念佛,忽見生平相識僧來入兵圍內,兵莫之止,因至辯所謂曰:平生不修福,今忽如何?辯求哀請救,僧曰:吾今救汝,得出可持戒耶。辯許諾,須臾吏引入諸囚至官前,以次訊問,至門外爲授五戒,用甁水灌其額。謂曰:日西當活,又以黃帔一枚與辯曰:披此至家,家置淨處也。仍示歸路,辯披之而歸至家,褺帔置牀角上,旣而目開身動,家人驚散謂欲起屍,唯母不去。問曰:汝活耶?辯曰:日西當活,辯意時疑日午問母。母曰:夜半,方知死生相違晝夜相反,旣至日西能食而愈,猶見帔在牀頭,及辯能起帔形漸滅,而尚有光,七日乃盡,辯遂持五戒,後數年有友人勸食豬肉辯不得已食一臠。是夜夢已化爲羅剎,爪齒各長數尺捉生豬食之,旣曉覺口腥唾出血,使人視滿口盡是凝血,辯驚不敢復食肉。又數年娶妻,妻家逼食,後乃無驗。然而辯自五六年來身臭,常有大瘡洪爛。然身不能愈,或恐以破戒之故也。臨昔與辯同直東宮,見其自說云耳右此五驗出冥報記唐右金吾兵曹京兆韋知十。至永徽中煮一羊腳,半日猶生,知十怒家人曰:用柴十倍於常,不知何意?如此更命重煮,還復如故,乃命剖之。其中遂得一銅像,長徑寸焉。光明照灼相好成就其家一生不敢食酒肉中山郞餘令親聞說之。唐癰州萬年縣閻村,卽灞渭之閒也。有婦女謝氏,適同縣元氏有女,適迴龍村人來阿照,謝氏永徽末亡。龍朔元年八月,託夢於來氏,女曰:我爲生時酤酒,小作升方取價大多,量酒復少,今坐此罪,於北山下人家爲牛,近被賣與法界寺夏侯師家。今將我向城南耕稻田,非常辛苦,及寤其女涕泣爲阿照言之。至二年正月,有法界寺尼至阿照村,女問尼:尼報云。有夏侯師,是實女,卽就寺訪之。云近於北山下買得一牛,見在城南耕地。其女涕泣求請寺尼,乃遣人送其女就之,此牛平常唯一人禁制,若遇餘人必陸梁觝觸,見其女至乃舐其徧體,又流淚焉。女卽憑夏侯師贖之,乃隨其女去,今現在阿照家養飼,女常呼爲阿孃,承奉不闕,京師王侯妃,媵多令召視,競施錢帛。唐龍朔元年雒州景福寺比丘尼修行房中,有侍童任五娘,死後修行爲五娘立靈,經月餘日,其姊及弟於夜中忽聞靈座上呻吟。其弟初甚恐懼,後乃問之。荅曰:我生時於寺上食肉,坐此大苦痛,我體上有瘡,恐污牀席,汝可多將灰置牀上也。弟依其言置灰,後看牀上大有膿血,又語弟曰:姊患不能縫衣,汝大襤縷,宜將布來,我爲汝作衫及韤,弟置布於靈牀上,經宿卽成。又語其妹曰:兒小時患漆,遂殺一螃蟹取汁塗瘡得差,今入刀林地獄,肉中現有折刀七枚,願姊慈念爲作功德救助,知姊煎迫交不濟辨,但隨身衣服,無益死者,今竝未壞,請以用之,姊未報閒,乃曰:兒自取去,良久又曰:衣服已來,見在牀上,其姊試往觀之,乃所斂之服也。遂送淨土寺寶獻師處,馮寫金剛般若經,每寫一卷了,卽報云已出一刀,凡寫七卷了。乃云:七刀竝得出訖,今蒙福助卽往託生,與姊及弟哭別而去,吳興沈玄法說,淨土寺僧智整所說亦同右此三驗出冥報拾遺依宣律師感應記云:四天王等告宣師曰:佛在世時放大光明。佛告天、人、龍、鬼神等,我之正法滅後,多有諸比丘執我小乘教迹,不解毘尼意,道我聽諸比丘食肉。於是諸比丘等,在僧伽藍內,殺害衆生,猶如獵師屠肆之處,復有比丘,純著繒帛游行婬女酒肆之舍,不習三藏不持禁戒。痛哉,苦哉!諸惡比丘謗黷我教,舌何不落。告諸比丘:我於無量劫來,捨頭目髓腦,或於飢饉世作大肉身施彼餓者,或內外財施未曾悋惜,從初發心乃至成佛,豈教弟子噉衆生肉耶?我旣涅槃,諸惡比丘,次補我處,爲天人師,開導衆生,令得道果,豈有天人之師口噉衆生肉耶?我初成道時,雖開毘尼中聽食三種淨肉,亦非四生之類。是諸禪定之肉。是不思議肉,非汝所知。何故謗黷我教?我於涅槃楞伽經中,一切生命雜肉皆已斷訖,不聽持戒之人食諸衆生身肉。若有惡比丘道毘尼教中聽食魚肉聽著蠶衣者,此是魔說,我成道已來至於涅槃,唯服麤布白㲲三衣,未著繒帛,何爲謗我耶?穢濁篇第九十四此有四部述意部 五辛部啑氣部 便利部述意部第一夫五陰虛假四大浮危受斯僞質事等畫甁,感此穢形又同杯器,內外無實觸塗皆染,加復閻浮穢質不淨充軀,常餐酒肉常食葷辛,臭氣上衝諸天衣裂,善神捨衛惡鬼交侵,凡夫僧尼尚不樂近。何況聖賢而不遠離?兼復八苦煎逼九橫摧年,念念遷流心心起滅,徒染六情終墜三惡,願各修身淨其心口也。五辛部第二如楞伽經云:‘佛言:大慧,如是一切蔥韭䔉薤臭穢不淨,能障聖道,亦障世間人天淨處何況諸佛淨土果報酒亦如是。’又涅槃經云:‘乃至食蔥韭䔉薤,亦皆如是。當生苦處穢污不淨,能障聖道,亦障世閒人天淨處。何況諸佛淨土果報?酒亦如是,能障聖道,能損善業,能生諸過。’又雜阿含經云:‘不應食五辛,何等爲五?一者木蔥,二者革蔥,三者蒜,四者興渠,五者蘭蔥。’又梵網經云:‘若佛子,不得食五辛,大䔉革蔥慈蔥蘭蔥興渠。是五種不得食。’又五辛報應經云:‘七衆等不得食肉葷辛讀誦經論得罪,有病開,在伽藍外白衣家服,已滿四十九日,香湯澡浴竟,然後許讀誦經論不犯。’又僧祇十誦五分律等,更無餘治開病比丘服䔉聽七日,在一邊小房內不得臥僧牀褥,衆大小便處講堂處,皆不得到。又不得受請及僧中食,不得就佛禮拜,得在下風處遙禮,七日滿已澡浴熏衣,方得入衆,若有患瘡醫教須香治者,佛令先供養佛已。然後許塗身還在屛處一同前法出家性潔尚令作法如是況穢俗 凡人輒開食耶啑氣部第三如僧秖律云:若在禪坊中啑者,不得放恣大啑,若啑來時,當忍以手掩鼻,若不可忍者,應手遮鼻而啑,勿涕唾污比座,若上座啑者,應言和南,下座啑默然。’又四分律云:‘時世尊啑,諸比丘呪願言:長壽,時有居士啑,及禮拜比丘,佛令比丘呪願言長壽。’又僧秪律云:‘佛言:若急下風來者當制,若不可忍者當向下坐,不得在前縱氣若氣,來不可忍者,當下道在,下風放之。’又毘尼母經云:‘氣有二種:一者上氣,二者下氣。上氣欲出時,莫當人張口令出,要迴面向無人處張口令出,若下氣欲出時,不聽衆中出,要作方便出外至無人處令出。然後來入衆,莫使衆譏嫌污賤,入塔時不應放下氣,安塔樹下,大衆中皆不得令出氣。師前大德上座前亦不得放下氣出聲。若腹中有病,急者應出外,莫令人生惡賤心。’便利部第四如優鉢祇王經云:‘伽藍法界地漫大小行者,五百身墯拔波地獄,後經二十小劫常遣肘手,抱此大小便處臭穢之地乃至黃泉。’又毘尼母經云:‘諸比丘住處房前,閑處小便污地,臭氣皆不可行。佛聞之告諸比丘:從今已去不聽諸比丘僧伽藍處處小行,當聚一屛猥處,若瓦甁若木筒,埋地中就中小便已,以物蓋頭,莫令至臭氣。’又毘尼母經云:‘若上廁去時應先取籌草至戶前三彈指作聲,若人非人令得覺知,若無籌不得,壁上拭不得,廁版梁棧上拭不得,用石不得,用靑草土塊耎木皮耎葉奇木,皆不得用。所應用者,木竹葦作籌度量,法極長者,一磔手,短者四指,已用者不得振令污淨者,不得著淨籌中。是名上廁法籌法,上廁有二處:一者起止處,二者用水處。坐起褰衣,一切如起止處無異,廁戶前著淨甁水。復應著一小甁,若自有甁者,當自用,若無甁者,用廁邊小甁,不得直用僧大甁水令污,是名上廁用水法。’塔前衆僧前和尚阿闍梨前,不得張口大涕唾著地,若欲涕唾當屛猥處,莫令人惡賤。是名涕唾法。又三千威儀云:若不洗大小便,比丘得突吉羅罪,亦不得淨僧座具上坐及禮三寶,設禮無福德。又至舍後上廁有二十五事。一欲大小便當行時,不得道上爲上座作禮,二亦莫受人禮。三往時當直低頭視地,四往當三彈指五已有人彈指不得逼六已上正住彈指乃踞,七正踞中,八不得一足前一足卻,九不得令身倚,十斂衣不得使垂圊中,十一不得大咽使面赤,十二當直視前不得顧聽,十三不得污壁,十四不得低頭視圊中,十五不得視陰,十六不得以手持陰,十七不得草蓋地,十八不得持草畫壁作字,十九恒忍用水不得大費二十不得污湔二十一用水不得,使前手著後手二,十二用土當三過,二十三當用澡豆二。十四三過用水二十五設見水草土盡當語直日主者若自手取爲善又僧祇律云大小行已不用水洗而受用僧座具牀褥得罪又十誦律云不洗大行處不得坐臥僧臥具上得罪又摩德,勒伽論云,不洗大小行處,不得禮拜餘無水處若爲非人所瞋水神所瞋或爲服藥等開不犯又三千威。儀經云不洗淨:禮佛者設禮無功德又雜譬,喩經云有一比,丘不彈指來大小便,潛污中鬼,面上魔鬼大恚欲殺沙門沙門持戒魔鬼隨逐伺覓其短不能得便旣知此事上廁必須謦欬作聲又賢愚經。云昔佛在,世時舍衛。城中有一,貧人名曰,尼提極貧下賤常客,除糞佛知應度卽將,阿難往到,其所正値,尼提擔糞出城而欲,棄之甁破。污身遙見,世尊深生,慚愧不忍見佛佛到其所廣爲說法卽生信心欲得出家,佛使阿難將至河中與水洗訖,將詣祇桓,佛爲說法得須陁洹,尋卽出家得阿羅漢果。國人及王聞其出家皆生怨恨。云何佛聽此人出家?波斯匿王卽往佛所欲破此事,正値尼提在祇桓門大石上坐縫補故衣。七百諸天香華供養,王見歡喜,請通白佛:尼提比丘身沒石中,出入自在,通白已竟。王到佛所先問此事,向者比丘姓字何等?佛告王曰:是王國中下賤之人,除糞尼提。王聞佛語謗心卽除,到尼提所執足作禮,懺悔辭謝,王白佛言:尼提比丘宿作何業?受此賤身。佛告王曰:昔迦葉佛入涅槃後,有一比丘出家自在,秉捉僧事,身暫有患,懶起出入便利器中,使一弟子擔往棄之。然其弟子是須陀洹,以是因緣,流浪生死常爲下賤,五百世中爲人除糞,由昔出家持戒功德,今得値佛出家得道以是義故不得房內便利具招前 罪數見俗人懈怠不能自運置穢器在房便利令他日別將棄未來定墯地獄縱得出獄猶作豬狗蜣蜋廁蟲也又佛說除災患經云:‘佛告阿難:乃前過世迦葉佛時,人壽二萬歲,佛事終竟復捨壽命。爾時,有王名曰善頸,供養舍利起七寶塔,高一由延,一切衆生然燈燒香,香華繒綵供養禮事。時,有衆女欲供養塔,便共相率埽除塔地。時,有狗糞污穢塔地,有一女人,手撮除棄。復有一人,見其以手除地狗糞便唾笑之曰:汝手已污不可復近。彼女逆罵,汝弊婬物,水洗我手便可復淨,佛天人師敬意無已,手除不淨已,便澡手繞塔求願,今埽塔地污穢得除,令我世世勞垢消滅淸淨無穢。時,諸女人埽塔地者,今此會中諸女人是。爾時,埽地願滅塵勞服甘露味。爾時,以手除狗糞女者,今柰女是。爾時,發願不與污穢會所生淸淨。以是福報,不因胞胎臭穢之處,每因華生,以其爾時發一惡聲罵言婬女,故今受是婬女之名,以値佛聞法得須陀洹。’又雜寶藏經云:‘南天竺法家有一童女,必使早起淨埽庭中門戶左右。有長者女,早起埽地,會値如來於門前過,見生歡喜,注意看佛,壽命旋促卽終生天,夫生天者法有三念,自思惟言:本是何身?自知人身,今生何處?定知是天。昔作何業來生於此,知由見佛歡喜善業得此果報,感佛重恩來供養佛。佛爲說法得須陀洹。’又新婆沙論云:‘昔德叉尸羅國有一女人,至月光王捨千頭處禮,無憂王所起靈廟見有狗糞,在佛座前尋作是思:此處淸淨,如何狗糞穢污其中?以手掃除香泥塗飾,善業力故,令此女人徧體生香,如旃檀樹,口中常出靑蓮華香,若諸衆生由不護淨故,因內煩惱感諸外穢,故論頌言:世閒諸穢草 能穢污良田 如是諸貪穢穢污諸含識。 世閒諸穢草 能穢污良田如是諸瞋穢 穢污諸含識。’又賢愚經云:‘佛在世時,羅閱城邊有一汪水,污泥不淨,多諸糞穢國中人民以屎尿投中,有一大蟲其形像蛇,加有四足,於其汪水東西馳走,或沒或出,經歷年載,常處其中,受苦無量。爾時,世尊將諸比丘,至彼坑所問諸比丘,汝識此蟲宿緣行不?諸比丘咸言:不知。佛言:毘婆尸佛時,有衆賈客入海取寶,大獲珍寶平安還到,選寶上者用施衆僧,規俟僧食,僧受其寶付授摩摩帝。於後僧食向盡,從其求索不與,衆僧苦索,摩摩帝瞋恚而語之言,汝曹噉屎,此寶屬我,何緣乃索?由其欺僧惡口罵故,身壞命終墮阿鼻地獄,身常宛轉沸屎之中,九十一劫乃從獄出,今墮此中,自從七佛已來皆作其虫,至賢劫千佛各各皆爾。’又百緣經云:‘佛在王舍城迦蘭陁竹林時,尊者舍利弗大目揵連,設欲食時,先觀地獄畜生餓鬼。然後方食,目連見一餓,鬼身如燋柱,腹如太山,咽如細鍼,髮如錐刀,纏刺其身,諸支節閒皆悉火出,呻吟大喚四向馳走,求索屎尿以爲飮食,疲苦終日而不能得,卽問鬼言:汝造何業受如是苦,餓鬼答言:有日之處不煩燈燭,如來世尊今現在世,汝可自問,我今飢渴不能答汝。爾時,目連尋往佛所,具問如來:所造業行受如是苦,具以上問。爾時,世尊告目連曰:汝今善聽,吾爲汝說,此賢劫中,舍衛城中,有一長者,財寶無量,不可稱計,常令僕使壓苷蔗汁,以輸大家,有辟支佛甚患渴病,良醫處藥,教服苷蔗汁病乃可差。時,辟支佛往長者家乞苷蔗汁。時,彼長者見來歡喜,尋勅其婦富那寄,我有急緣定欲出去,汝今在後取苷蔗汁施辟支佛。時,婦荅言:汝但出去,我後自與。時,夫出已取辟支佛鉢,於其屛處,小便鉢中,以苷蔗汁,蓋覆鉢上,與辟支佛辟支受已尋知非是投棄於地,空鉢還歸。其後命終墯餓鬼中,常爲飢渴所見逼切。以是業緣受如是苦,佛告目連:欲知爾時彼長者婦,今富那寄餓鬼是。佛說是時,諸比丘等捨慳貪緣,厭惡生死,有得四沙門果者,有發辟支佛心者有發無上菩提心者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頌曰:噉他身血肉 貪毒無慈矜 養茲身穢質蟲寓內銷融。 不護僧淨器 受此廁中蟲後報入地獄 苦痛未知窮。感應緣 略引三驗宋釋慧果 齊釋弘明唐謝弘敞妻許氏宋京師瓦官寺有釋慧果,婺州人。少以蔬食苦行自業,宋初游京師止瓦官寺誦法華十地。嘗於廁前見一鬼,致敬於果云:昔爲衆僧作維那,小不如法墯在噉糞鬼中,法師德素高明。又慈悲爲意,願助以拔濟之方也。又云:昔有錢三千文,霾在柹樹根下,願取以爲福,果卽告衆掘取,果得錢三千文,爲造法華一部,幷設齋。後夢見此鬼云:已得改生大勝昔日,果以宋太始六年卒,春秋七十有六。齊永明中,會稽釋弘明者,止雲門寺誦法華,禮懺爲業,每旦水甁自滿,實諸天童子爲給使也。又感虎來入室伏牀前久之乃去。又見小兒來聽經云:‘昔是此寺沙彌,爲盜僧廚食今墯廁中,聞上人讀經故力來聽,願助方便,冀免斯累,明爲說法,領解方隱,後山精來惱,明乃捉取以腰繩繫之,鬼謝遂放因之永絕右二驗出梁高僧傳唐吳王文學陳郡謝弘敞妻,高陽許宗法氏武德初年遇患死經四日而蘇說云被二,三十人拘至地獄未見官府卽聞。喚雖不:識面似是姑夫,沈吉光語?音許問云語聲似是沈丈何因無頭南閒人呼姑姨夫皆,爲某姓丈也吉光卽以手提其頭置於膊上而誡許曰汝,且在此間,勿向西院待吾,爲汝造請卽。應得出遂於語處而住,更不東西,看其吉光拪遑似:有經紀凡,經再宿吉光始來語,許云汝今此來王欲令,汝作其女伎儻引見不須道解。絃管如其不爲所悉,可引吾爲,證也少間?有吏:抱案。引入:王果問之解,絃管不許:云不:解復。云沈:吉光具知王問吉光。答云不解王曰,宜早放還不須留,也于時光。欲發遣卽:共執案人籌度不。解其語執案人,云娘子功德力雖强。然爲先有?少罪隨便受卻身。業俱淨豈,不快哉更別引入,一大院其,門極小亦大見:有人受罪許甚驚懼乃求?於主:者曰生平修福何罪而至斯耶答曰娘子曾以不淨盌盛食與親須受此罪方可得去遂以銅汁灌口,非常苦毒,比蘇時口內皆爛,光卽云:可於此人處受一本經記取,將歸受持勿怠,自今已去保年八十有餘,許生曾未誦經,蘇後遂誦得經一卷,詢訪人間所未曾有,今見受持讀誦不闕。其經見在,文多不載,蘇活之後吉光尚存,以後二年方始遇害,凡諸親屬有欲死者,三年以前竝於地下預見,許之從父弟仁則說之云耳。’右一驗出冥報記法苑珠林卷第九十四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제93권과 제94권에 해당하는 주육(酒肉) 편은 수행에 장애가 되는 술과 고기를 삼가도록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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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_IT_K1406_T_093 URL복사 통합뷰어 039_1245_a_01L법원주림 제9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93. 주육편(酒肉篇)[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음주부(飮酒部) 식육부(食肉部) (1)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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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주림 제93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93. 주육편(酒肉篇)① [여기에는 3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음주부(飮酒部) 식육부(食肉部)

(1) 술의부(述意部)
대체로 술은 멋대로 거리낌없이 놀아나는 문[放逸之門]이라 큰 성인께서는 술이 고통의 근본임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술집을 멀리하고 술 먹는 일을 여의며, 술친구를 버리고, 법의 벗[法友]을 가까이 하며, 혼탁한 문을 나와서 깨달은 경지에 들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은 큰 자비의 종자[大慈之種]를 끊는 것이니 큰 성인께서는 그것이 살생의 원인임을 알려 주셨다. 그래서 비린내를 버리고, 몸과 입을 깨끗하게 하며, 채소를 먹으면서 정신을 맑게 하며, 자비와 선(善)을 부르면서 오래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속서(俗書)에서도 “그 삶을 보고서야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듣고서야 차마 그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했으니, 이것 또한 죽이지 말라는 이치이다. 만일 술과 고기를 먹으면 곧 축생과 같아서 승냥이와 이리요 금수이다. 또한 온갖 권속을 갖추어 죽임으로서 그 여러 족속을 잡아먹는 것이니, 그 때는 도리어 원수가 되어 보복을 당하면서 여러 겁(劫) 동안 끊임이 없게 된다.
경론(經論)에서 말했듯이 “어느 한 여인이 5백 세상 동안 이리의 새끼를 살해하였으므로 이리 새끼도 5백 세상 동안 그의 어미를 살해하였다”고 하였고, 또 “어느 여인이 5백 세상 동안 귀신의 목숨을 끊었으므로 귀신 역시 5백 세상 동안 그의 목숨을 끊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6도(道)를 돌아다니면서 원수의 보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혹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스승이 되기도 하고, 혹은 부모가 되기도 하고, 혹은 형제가 되기도 하고, 혹은 자매가 되기도 하고, 혹은 자손이 되기도 하고, 혹은 벗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범부의 몸이라 각자 도의 눈[道眼]이 없어서 분별하지 못하므로 도리어 서로 잡아먹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잡아먹히는 그 때의 생물은 영(靈)이 있으므로 곧 성을 내면서 그와 원수가 되고 그의 부모 형제가 되어서도 도리어 원수로 변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어찌 생각하지 못하고 잠시 동안 혀끝으로 맛보는 한때의 맛을 다투다가 영원히 부모 형제와 더불어 길이 원수가 된다는 말인가? 참으로 애통한 마음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도 “온갖 고기는 다 끊어라. 아울러 제 스스로 죽은 것도 그렇다”고 하였다. 제 스스로 죽은 것도 오히려 끊거늘 하물며 제 스스로 죽지 않은 것이겠는가? 또 『능가경(楞伽經)』에서도 이르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을 죽이고 재물 때문에 고기를 잡는 것은 두 업이 다 착하지 않은지라, 죽으면 규호(噭呼)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무엇을 재물 때문에 그물로써 고기를 잡는다고 하는가? 육지에서는 짐승을 잡기 위해 그물을 치고 물에서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그물로써 고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만일 백정이 돈 때문에 고기를 산다면, 이것이 바로 재물 때문에 고기를 잡는 것이다. 만일 이 사람으로 하여금 재물 때문에 고기를 잡지 않게 한다면 나쁜 율의[惡律儀]를 익혀서 중생을 잡아 살해할 것이니, 이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입에다 공급하기 위해서며 또한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만일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고기를 먹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어찌 살생에 대한 몫이 없겠으며, 어찌 “나는 살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분명히 경전의 글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큰 자비의 종자를 끊고 그 장애로 부처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2) 음주부(飮酒部)

自述
이 하나의 가르침에는 권교(權敎)가 있고 실교(實敎)가 있다. 권교는 점차로 유도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가벼운 죄로써 무거운 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니, 처음 개시한 것은 범함이 없다. 그러나 진리를 장애한다는 데서 보면 허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실교는 경죄와 중죄를 모두 금지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범하지 않아야 계를 지닌다[持戒]고 하는 것이다.
처음의 권교에 의거하여 설명하겠는데, 그러므로 『미증유경(未曾有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국왕의 태자 이름은 기타(祇陀)였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 가지 선도(善道)의 법이 과보가 그지없다는 것을 듣고는 길게 무릎을 꿇고 합장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옛날 저로 하여금 5계를 받아 지니게 하셨지만 이제 도로 버리고자 하옵니다. 그 이유는 5계의 법 중에서 술의 계를 지니기 어려워서 죄를 얻을까 두렵기 때문이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술을 마실 때 무슨 악행을 한단 말이냐?’
기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나라 안의 호강(豪强)한 이들이 때때로 술과 음식을 갖고 와서 함께 재미있게 즐기게 되므로 저절로 악이 없사옵니다. 왜냐 하면, 술을 만나도 계를 생각하면서 방일함이 없기 때문이오니, 술을 마시더라도 악을 행하지는 않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기타야, 너는 이미 지혜의 방편을 얻었구나. 만일 세간 사람들이 너와 같을 수 있다면 종신토록 술을 마신다 해도 무슨 나쁜 일이 있겠느냐. 그렇게 행하는 이라야 복이 생기고 죄가 없느니라. 만일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악업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서 착한 마음의 인연으로 착한 과보를 받게 된다면, 이와 같이 지닌 5계에 무슨 과실이 있겠느냐. 술을 마시면서도 계를 생각하면 그 복이 더욱 늘어나나니, 먼저의 5계를 지니면서 이제는 10선을 받아라. 공덕은 10선의 과보가 더욱 뛰어나느니라.’
그 때 파사닉왕(波斯匿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음이 기쁠 때 악업을 일으키지 않음을 유루의 선[有漏善]이라 한다면, 그 일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왜냐 하면 사람이 술을 마실 때에는 마음이 기뻐지는 것이요,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번뇌가 없기 때문에 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해치지 않기 때문에 3업(業)이 청정하고 청정한 도가 곧 무루의 업[無漏業]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기억하는 일이 있습니다. 옛날 사냥을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주방장을 데리고 오는 것을 잊고 깊은 산중에서 배가 고팠으므로 음식을 찾았더니 좌우의 신하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왕께서 아침에 떠나오실 때에 주방장을 데리고 가자는 명이 없었으므로 지금 바로 잡수실 음식은 없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말을 타고 궁중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였나이다.
왕가의 주방장 이름은 수가라(修迦羅)였는데, 그 수가라가 ≺현재 잡수실 음식은 없고 이제 만들어야 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때 배는 몹시 고프고 성이 나서 생각하지도 않고 신하에게 명하여 주방장을 베어 죽이라고 하였나이다. 신하는 왕명을 받고 곧 함께 의논하기를 ≺온 나라 안에서 선발한다 해도 어질고 일을 잘하는 이는 이 한 사람뿐인데, 지금 죽여버린다면 다시는 왕을 위하여 왕의 뜻에 맞게 주방을 감독할 자가 없다≻고 하였나이다.
그 때 말리(末利) 부인이 수가라를 죽이라는 왕의 명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몹시 애석히 여겼습니다. 왕이 배가 고파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곧 좋은 고기와 맛있는 음식을 마련시키고서 목욕하고 명향으로 몸을 단장한 뒤에 여러 궁녀들을 데리고 저에게로 왔나이다. 저는 부인이 화려하게 단장하고 궁녀들을 데리고 좋은 술과 고기를 가져 왔으므로 성을 냈던 마음이 이내 풀어졌습니다. 왜냐 하면 말리 부인이 5계를 지니면서 술을 끊고 마시지 않았으므로 저는 늘 한을 품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술과 고기를 가져와서 함께 서로 즐기며 정을 풀어 주었기 때문이옵니다. 저는 부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뭇 풍악을 잡히고 기뻐하며 재미있게 즐겼으므로 성냈던 마음이 곧 사라져버렸나이다.
부인은 저의 성낸 마음이 풀어졌음을 알고 곧 내시(內侍)를 보내어 저의 명이라 전하면서 신하에게 주방장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 신하는 곧 명을 받들었나이다. 저는 다음 날 아침에 몹시 뉘우치면서 근심으로 음식도 먹지 않고 안색이 초췌해 있었습니다. 부인은 저에게 물었나이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계십니까? 어디가 아프십니까?≻고 하기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제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성을 내어 수가라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 나라 안에서 나의 주방을 감독할 수 있는 이로는 수가라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때문에 뉘우치며 근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 사람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는데 제가 거듭 묻기를 ≺사실이 그렇습니까. 장난으로 하는 말입니까?≻고 물었더니, ≺실지로 살아 있습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고 하였나이다. 그리하여 저는 좌우의 신하로 하여금 주방장을 불러오게 하였더니, 심부름꾼이 곧 데리고 왔으므로 저는 크게 기뻐하면서 근심과 뉘우침이 이내 제거되었나이다.’
왕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말리 부인은 부처님의 5계를 지니고 달마다 6재(六齋)를 행하고 있사온데, 하루 동안에 종신토록 지닐 5계에서 이미 음주와 거짓말의 두 가지 계를 범하였고, 8재계 안에서는 단번에 여섯 가지 계를 범했사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오리까? 계를 범한 죄는 경하옵니까, 중하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이와 같이 범한 계는 큰 공덕을 얻게 되지 죄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익을 위해서 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부인이 선을 닦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루의 선이요, 둘째는 무루의 선입니다. 말리 부인이 범한 계는 유루의 선에 해당한 것이며, 계를 범하지 않은 것이라야 무루의 선이라 합니다. 말에 의거하여 논의하면 계를 깨뜨리면서 선을 닦는 것을 유루의 선이라 하며, 이치에 의거하여 말하면, 무릇 마음으로 일으킨 바 선은 모두가 무루의 업입니다.’
왕이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세존의 말씀과 같아서 술을 마셔서 계를 깨뜨려도 나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덕이 있고 죄의 과보가 없다면, 온갖 인민들도 모두 그러하나이다. 왜냐 하면, 제가 생각건대 요사이 사위성 안의 호족(豪族)인 찰리족(刹利族) 왕공(王公)들은 사소한 다툼으로 인하여 크게 원수가 되어서 저마다 음모를 꾸며 병사를 일으켜서 싸움을 하였나이다. 양쪽이 다 국친(國親)이라 이러쿵저러쿵 싸운다 해도 붙잡아다 단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치대로 간(諫)하지도 못해서 몹시 근심하고 있었나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옛날 태자로 있을 때에 대신 제위라(提韋羅)와는 서로 분을 터뜨리고 있던 사이라 정실을 분간하지 않고 죽이고만 싶었다. 그런데 태후(太后)께서 술을 주어 함께 마신 뒤에 뜻이 화합했었다.≻
그리고 나서 곧 충신에게 명하여 좋은 술과 여러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게 한 뒤 나라 안의 호족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모두 모이게 하고 ≺나라 안의 큰 일을 논하고 싶어서다≻고 하였나이다.
여러 신하들은 다투어 모였고, 양쪽에서도 권속 5백 명씩이 부름에 응하여 모였나이다. 왕의 대전(大殿) 위에는 큰 풍악을 장엄해 놓았고, 저는 충신에게 명하여 세 되들이 유리(琉璃) 주발을 마련하게 한 뒤에 그 보석으로 된 유리 주발 안에다 좋은 술을 가득히 채워 놓고 제가 먼저 대중 앞에서 한 주발을 들이키며 말했습니다.
≺이제 국사를 논할 뿐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이제 각자 앞에 이 한 주발 감로(甘露)의 좋은 약을 마련해 놓았으니 이를 마신 뒤에 국사를 논합시다.≻ 그러자 모두가 ≺그렇게 하십시다≻고 하여서 크게 풍악을 잡혔나이다. 여러 사람들은 술을 얻은 데다가 음악까지 들었으므로 마음속이 기뻐지면서 원한의 마음을 잊어버렸나이다. 술로 인하여 다툼을 쉬고 태평함을 얻었으니, 이 어찌 술의 공이 아니겠나이까?
가만히 보건대, 세간의 가난한 이나 소인(小人)이나 종이나 오랑캐의 사람도 명절날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면,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남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마다 일어나 춤을 추게 되지만, 술을 얻지 못할 때에는 도무지 이런 일이 없나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술로 인하여 기쁨에 이르고, 마음이 기쁠 때에는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그것이 착한 마음이므로 착한 마음의 인연은 의당 좋은 과보를 받아야 할 줄 아옵니다. 원숭이도 술을 만나면 오히려 일어나 춤을 추거늘 하물며 세간 사람이겠나이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듯이 선을 베풀면 선의 과보를 받고 악을 베풀면 악의 과보를 받을 것이오니, 말리 부인은 모두가 전생에 좋은 것을 남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지금 좋은 과보를 얻었을 겁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5계를 지니고 달마다 6재를 행하게 하오리까? 6재의 날에는 향과 꽃을 달거나 옷을 좋게 장엄하지도 못하고 노래하거나 풍악도 잡히지 못하며, 또 부부간에 가까이서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자태도 허락하지 않으시면서 끝내 베푼 바가 무엇이기에 한갖 그 공을 말하오리까? 어찌 괴로운 일이 아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의 힐난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말리 부인이 나이 젊었을 때, 만일 내가 계법을 받아 지혜를 닦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날의 덕으로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 왕의 몸을 제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공을 다시 그 누구에게 돌리겠습니까?’”


自述
둘째 번의 실교(實敎)에서 말하면, 경하거나 중하거나 범하지 않아야 참으로 계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므로 큰 성인께서는 때를 알고 근기를 헤아리면서 통(通)하게 하기도 하고 막기도 하신다. 통하게 한다는 것은 금한 것을 열어 주는 것이니, 그 때를 따라서 손해와 이익됨을 헤아리게 한다. 마치 파사닉왕이 주방장을 죽이려 하는 일이나 태자가 그 부인을 살해하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은 술로 인하여 분함을 잊게 함으로서 신명을 온전하게 하여 더 큰 죄를 면하게 한 것이니, 가벼운 죄로써 중한 죄를 벗어나게 하였으므로 재앙을 받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는 허물에서 오는 과보의 죄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앞에서 열어 주었던 일들을 보고 덩달아 모두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마다 모름지기 그 가르치신 뜻을 헤아려야 한다.
또 자기 몸의 행과 덕의 우열(優劣)을 살펴보아야 성인 안에 들 수 있나니, 파사닉왕과 말리 부인이 금계를 연 일은 이미 동일하지 않다. 이는 곧 경전에 의거하여야 하고 털끝만큼도 범하지 말아야 가장 수승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사분율(四分律)』에서 이르되 “그가 나의 제자라면 풀 끝에 맺힌 방울만큼의 술도 입에 넣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많이 마시겠느냐”고 한 것이니, 그러므로 한 번 삼킬 때마다 바일제(波逸提)가 성립된다.
또 『성론(成論)』에서 말하였다.
“【문】 술을 마시는 것이 실로 죄가 되는가?
【답】 그렇지 않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술을 마셔도 중생을 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죄의 원인이 된다. 만일 사람이 술을 마시면 착하지 않은 문을 열게 되어 선정과 모든 착한 법을 막아 버리나니, 마치 여러 과일 나무를 심으려면 반드시 담장으로 막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알라. 술의 허물은 마치 과일나무에 동산[園]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술을 즐겨 마시면 이 사람은 현세(現世)에서는 재물을 잃기가 쉽고 몸과 마음에 병이 많으며 항상 싸움하기 좋아하고 나쁜 이름이 멀리 퍼지며 지혜를 잃게 되고 마음에 부끄러워함이 없으며 악한 육체와 힘을 얻고 항상 모두에게 책망을 당하며 사람들이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선행을 닦지 못할 것이니, 이것을 술을 마심으로써 현세에 받는 나쁜 과보라 한다. 그리고 이 몸을 버린 뒤에는 지옥에 있으면서 배고프고 목마르는 등, 한량없는 고뇌를 받게 되나니, 이것을 후세에 받을 나쁜 업의 과보라 한다. 설령 사람 몸을 받는다 해도 마음이 항상 산란하므로 생각을 붙잡아서 착한 법을 사유할 수가 없다. 이 하나의 나쁜 인연의 힘 때문에 온갖 바깥 물건과 살림이 모두 다 망가지게 된다.”
또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는 이에게 여섯 가지 과실이 있다. 첫째는 재물을 잃고, 둘째는 병이 생기며, 셋째는 싸움을 하고, 넷째는 나쁜 이름이 널리 퍼지며, 다섯째는 성을 갑자기 내고, 여섯째는 지혜가 날로 줄어든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는 “술을 마시면 35가지 과실이 있다”고 했는데, 앞의 「수계편(受戒篇)」에서의 설명과 같다.
또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지도 말고 술을 즐기지도 말며 술을 맛보지도 말라. 술에는 36가지 과실이 있어서 도를 잃고 집을 파멸하며 몸을 위태롭게 하고 생명을 잃게 하는 것은, 모두가 술 때문이다. 동쪽으로 끌리고 서쪽으로 끌리며 남쪽을 잡고 북쪽에 기댄다. 경을 독송할 수도 없고 3존(尊)을 공경하지 않으며, 스승과 벗을 가벼이 여기고 부모에게 불효한다. 마음이 닫히고 뜻이 막혀서 세상마다 어리석은 이가 되고, 큰 도를 만나지 못하며 그 마음이 무식해지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5음(陰)과 5욕(欲)과 5개(蓋)를 여의어서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을 얻고 다섯 갈래[五道]에서 제도되고자 하면 짐짓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
또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술 마시면 대개가 방일(放逸)하게 되고
현세에선 항상 어리석어져서
온갖 일들을 잊어버리게 되고
늘 지혜 있는 이의 꾸지람을 받는다.

내세에선 늘 어둡고 무디어
모든 공덕을 많이 잃나니,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술 마시는 허물을 여의느니라.

또 『십주바사론(十住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문】 만일 어떤 사람이 술을 보시하면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
【답】 보시한 이는 복을 얻지만 받은 이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는 ‘이 보살이 때로 온갖 것을 보시하길 좋아하므로 밥을 구하면 밥을 주고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준다. 만일 술을 보시하면 그는 응당 생각하기를 ≺지금 이 사람은 구하는 대로 보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뒤에는 방편을 써서 술은 주지 않게 해야겠다≻라고 해야 한다. 생각하는[念] 지혜를 얻으면 방일하지 않게 하나니, 왜냐 하면 단바라밀(檀波羅密)의 법은 모두 사람들의 원을 채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에 있는 보살이 술을 보시한다 해도 죄는 없다.’”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자기 손으로 남에게 술 그릇을 건네주어 술을 마시게 하면 5백 세상 동안 손이 없게 되거늘 하물며 자기 자신이 마시겠느냐? 온갖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거나 온갖 중생에게 술을 마시게 하지도 않아야 하거늘, 하물며 자기 자신이 술을 마시겠느냐?”
또 『우바새오계상경(優婆塞五戒相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지제국(支提國) 발다라바제읍(跋陀羅婆提邑)에 계실 때였다. 이 곳에는 암라바제타(菴羅婆提陀)라는 나쁜 용이 있었다. 몹시 흉하고 사나워서 사람을 해쳤으므로 그곳에 가는 이도 없었고, 코끼리와 말도 가까이 할 수 없었으며, 모든 새들까지도 그 위를 통과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을 곡식이 익을 때에는 모두 다 망가뜨렸다.
당시 장로 사가타(莎伽陀) 아라한 비구가 지제국을 유행(遊行)하다가 점점 발다라바제읍에 이르렀다. 그는 밤을 지나고 나서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그 때 이 읍에는 몹시 사나운 나쁜 용이 있어서 사람과 짐승을 해치고 가을 곡식까지 결딴낸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걸식을 마치고 아라바제타용이 있는 곳까지 가서 뭇 새들이 사는 나무 아래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그 용은 옷 냄새를 맡고 이내 성을 내면서 몸으로부터 연기를 뿜었다. 장로 사가타도 곧 삼매(三昧)에 들어 신통력으로 역시 몸에서 연기를 뿜었다. 그러자 용은 갑절 더 성을 내면서 몸 위에다 불을 뿜어댔으므로 사가타도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가 용의 몸에 역시 불을 뿜어 댔다. 용은 다시 벼락을 쳤는데, 사가타는 그것을 변화시켜서 갖가지 환희환(幻戱丸)을 만들어 버렸다. 용은 다시 화살과 칼과 창을 퍼부었으며 사가타는 곧 그것을 변화시켜서 우발라꽃과 파두마꽃 등을 만들어버렸다. 용은 다시 독사, 지네, 살모사, 그리마를 퍼부었으며 사가타는 곧 그것을 변화시켜 우발라꽃의 영락과 첨복화(瞻蔔華)의 영락 등을 만들어 버렸다.
용은 그가 지닌 모든 힘을 다하여 사가타와 겨루어 보았으나, 모두 이기지 못하자 곧 위력과 광명을 잃어버렸다. 사가타는 용의 세력이 다해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음을 알자 곧 조그마한 몸으로 변해서 용의 두 귀로부터 들어가 두 눈으로 나왔다가 다시 코로 들어가서 입 속으로 나온 뒤에 용의 머리 위로 올라가서 왔다갔다 거닐면서도 용의 몸은 다치지 않았다.
용은 이런 일을 보고 나자 크게 놀랍고 두려워서 털이 곤두섰으므로 합장하고 사가타를 향하여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귀의하겠습니다.’
사가타가 대답하였다.
‘너는 나에게 귀의하지 말고 나의 스승 부처님께 귀의하여야 한다.’
용이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부터 3보께 귀의하겠습니다. 나는 이 몸이 다하도록 부처님의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용은 삼귀의[三自歸]를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뒤에는 다시는 먼저와 같이 흉악한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사람과 새와 짐승들이 자기 있을 곳을 찾게 되었고 가을 곡식도 상하지 않게 되었다. 이 소식이 모든 나라에 널리 퍼지자, 모두가 장로 사가타가 나쁜 용을 항복 받아서 착하게 만들었음을 알았다. 이로 인하여 사가타의 명성이 널리 퍼졌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 전하기도 하면서 다투어 그를 청하였다.
이 중에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는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가타를 청하여 소유(酥乳)로 쑨 죽을 대접하였다. 그리고는 생각하기를 ‘이 사문께서 소유로 쑨 죽을 잡수셨으니, 혹시 냉(冷)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하고는 곧 물빛과 같은 술을 가져다 사문에게 주었다. 사가타는 보지도 않고 마셨다. 그리고는 그녀를 위하여 설법하고 절을 향하여 떠나왔다. 그 때 술기가 돌아서 절문 근처까지 와서 모르는 결에 땅에 넘어졌다. 승가리(僧伽梨)와 물 거르는 주머니와 발우와 지팡이가 저마다 흩어졌고 몸도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술에 취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그 곳을 지나가시다가 이 비구를 보고 아시면서도 짐짓 물으셨다.
‘아난아, 이 사람이 누구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분은 장로 사가타이옵니다.’
부처님께서 곧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곳에 나를 위하여 자리를 깔아라. 그리고 물을 마련해 오고 비구들을 집합시켜라.’
아난은 분부를 받고 자리를 깔고 물을 마련하고서 비구들을 집합시킨 뒤에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 모였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때가 온 것을 아시고 곧 발을 씻고 앉으신 뒤에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일찍이 보고 들은 적이 있느냐? 암바라제타라는 용이 몹시 흉악하고 해를 끼쳤으므로 어떤 사람도 그 곳에 간 이가 없었고, 새와 짐승까지도 그 위를 갈 수가 없었으며, 가을 곡식이 익을 때에는 모두 다 망쳐버렸다. 그런데 사가타가 그 용을 조복하여 착하게 만들었으므로 새와 짐승도 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그런 일을 보고 들은 비구가 있다가 말하였다.
‘들었사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 사가타가 지금 두꺼비를 조복할 수 있겠느냐?’
‘조복할 수 없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조차도 술을 마시면 오히려 이러한 허물이 있거늘 하물며 범부이겠느냐? 이와 같은 허물은 모두가 음주 때문이니, 지금부터는 ≺내가 부처님의 제자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 것이다. 나아가 작은 풀 끝에 맺힌 한 방울만큼도 마시지 말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갖가지로 술에 대한 과실을 책망하신 뒤에 계율에 의거해서 이 비구로 인하여 술 마시지 않는 계[不飮酒戒]를 제정하셨다.
【문】 천상에도 술이 있는가?
【답】 누룩과 쌀로 만들어진 술은 없다. 다만 업의 조화로 만들어진 술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저 야마천(夜摩天)의 남자들이 천녀(天女)들과 함께 못에 들어가 재미있게 놀면서 하늘술[天酒]을 마시기는 하나, 술에 취하여 짓는 허물도 없고 쾌락의 공덕을 나타내면서 맛[味]과 촉감[觸]과 빛깔[色]과 향기[香]가 모두 다 구족하다. 그 하늘들 중에는 구슬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이도 있고 소타(蘇陀)의 음식도 수용하는데, 그 빛깔과 촉감과 향기와 맛이 모두 다 구족하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이 물이 술이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마실 수 있게 하라’고 하면, 곧 생각하는 대로 하늘술이 되지만 술에 취하여 짓는 허물은 없다. 하늘들이 그것을 마시면 더욱 수승한 쾌락이 자라며 선업의 힘 때문에 마음에 기쁨이 생긴다. 그리고 그 모든 하늘들은 자기 업의 힘 때문에 이와 같은 쾌락을 누리는데, 상락(常樂)이라는 새가 있다가 그 하늘들이 환희하(歡喜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게송으로 말한다.

방일하는 바다에 빠져 들어가
모든 경계를 탐착하고 있는데
이 술이란 마음을 헷갈리게 하거늘
무엇 때문에 또 술을 마실까.

경계의 불에 타게 되면서
짓고 짓지 않음을 모르고 있으니
동산 숲에서는 탐심이 날 터인데
무엇 때문에 또 술을 마실까?

저 상락새는 하늘들이 강물에서 술을 즐겨 마시는 것을 보고 그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이렇게 게송으로 말한 것이다고 했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염라왕이 자주 죄인들을 책망하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술은 사람 마음 산란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양(羊)과 같이 되게 하며
지음과 짓지 않음 모르게 하나니
그러므로 술을 멀리 해야 한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마치 죽은 사람과 다름이 없나니
만일 늘 죽지 않으려면
그 사람은 술을 버려야 한다.

술에는 모든 허물이 있고
매양 이롭지 못하며
온갖 나쁜 길[惡道]에 오르는 계단이며
캄캄한 곳이 그가 있을 곳이다.

술을 마시면 지옥에 가고
또한 아귀의 처소에 가며
축생의 업을 행하게 되나니
이는 술의 허물에 속은 것이다.

술은 독(毒) 중에서도 독이요
지옥 중에서도 지옥이며
병(病) 중에서도 큰 병이니
이는 지혜로운 이가 말한 바이니라.

만일 사람이 술을 마시면
기쁘게 될 인연이 없고
인연이 없는데도 성을 내고
인연이 없는데도 악을 짓는다.

부처님에 대한 어리석음은
세간과 출세간의 일[出世事]을 파괴하며
해탈을 태움은 불과 같나니
이른바 술이라는 이 한 법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술을 버리고
법의 계율을 바르게 행하면
그는 으뜸가는 곳에 이르러서
죽음이 없고 나는 곳도 없다.

【문】 병이 없는데 마시면 죄가 되겠지만 병이 있어서 먹는 것은 어떠한가?
【답】『사분율(四分律)』에 의하면 “병이 들어서 다른 약으로 치료해도 낫지 않고 그 술만이 약이 된다면 먹어도 범한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문】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답】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에서는 “약을 짓는 의사의 말을 빌리면 약을 많이 섞을 때에는 술을 적게 하고 약을 많이 하면 된다”고 하였다. 또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이르되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어떠하옵니까? 세존이시여. 차계(遮戒)의 법으로 말하면 꽃다지 씨만큼의 술도 마시지 말 것이오니, 그렇게 하면 파계라 하리이다’ 하였다.”
그러나 방일을 허락하는 문[開放逸門]에서 보면 어떠한가?
“가란타(迦蘭陀)의 죽원정사(竹園精舍)에 한 비구가 있었다. 병이 들어서 여러 해를 보냈는데 위독하여 죽게 되었다. 그 때 우파리(優波離)가 물었다.
‘당신에게는 무슨 약이 필요합니까? 나는 당신을 위하여 천상이나 인간이나 시방까지 가서라도 써야 할 약이면 모두 구해다 드리겠소.’
비구가 대답하였다.
‘나에게 필요한 약은 비니(毘尼)에 위반됩니다. 그 때문에 나는 구하지 않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범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당신의 약이 무엇이란 말이오?’
‘술 다섯 말이 필요합니다.’
‘만일 병을 위해서라면 여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위하여 술을 얻어 왔는데, 그 술을 먹은 뒤에 병이 나았다. 그러나 나은 뒤에는 부끄러워하면서 오히려 계율을 범했다고 여기고는 부처님께 가서 은근하게 허물을 참회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설법을 들은 뒤에 그는 기뻐하면서 아라한의 도를 증득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술에는 많은 허물과 방일을 허락하는 문도 있다. 꽃다지의 씨만큼 마셔도 범죄는 벌써 쌓이지만 만일 병고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미리 끊을 바는 아니다.’”


自述
앞의 글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다 마셔도 되나 반드시 실제로 병이 중하여 죽게 될 병이어야 하되 그 먼저 다른 약을 써서 치료하였으나 낫지 않았고 반드시 술이 들어가야 나을 수 있는 일일 때만 앞의 방편에 의거하여 허락되는 것이다. 자주 보는 일이거니와, 무식한 사람은 몸과 힘이 강하고 왕성하여 날마다 쏘다니면서 뭇 위의에 의거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아픈 데가 있으면 곧 탐심이 자라나서 도업을 수호하지 않고 망령되이 경률(經律)을 인용하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갖가지 탕약과 훌륭한 의복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라고 하고는 공적(公的)인 것을 개인적인 일에 빗대어 스님들과 속인들을 속인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계 지키기를 마치 목숨처럼 여기면서 감히 범하지 않을 것이다.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술은 방일하는 근본이 되므로
마시지 않으면 악도(惡道)를 닫는다.
차라리 백천 개의 몸을 버릴지언정
법의 가르침을 범하지 않겠으며
차라리 몸이 바짝 마르게 할지언정
끝내 이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가령 계율을 헐고 범해서
수명을 백 년까지 채운다 해도
금지된 계율을 수호하다가
즉시 몸이 마멸되는 것이 더 낫다.

틀림없이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해도
나는 오히려 마시지 않겠거늘
하물며 꼭 낫고 낫지 않음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음이랴.

이렇게 마음을 결정하면
마음에는 큰 기쁨이 생기면서
곧 진실한 이치를 보게 되어
아팠던 병이 이내 스러지리라.”

그러므로 알라. 중생의 온갖 병이란 모두가 탐냄ㆍ성냄ㆍ아만(我慢)이 원인이 된다. 원인으로부터 결과가 있으므로 이런 고통의 보(報)를 얻는 것이지, 약이 되는 술을 먹지 못해서 병이 낫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온갖 중생에게는 네 가지 독화살이 있어서 곧 병의 원인이 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탐욕이요, 둘째는 성냄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요, 넷째는 교만(憍慢)이다. 만일 병의 원인이 있으면 병이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애욕과 열과 폐의 병이거나 상기(上氣)가 있거나, 구역질이 나거나, 살갗이 훗훗하면서 마음이 답답하거나 설사를 하거나 딸꾹질을 하거나 오줌방울이 뚝뚝 떨어지거나 눈이나 귀가 쑤시고 아프거나 배와 등이 띵띵 붓거나 미친 병과 소갈증이 있거나 귀신과 도깨비에 홀리는 등, 이와 같은 갖가지 몸과 마음의 병이 곧 그것이다. 만일 병의 근본을 알아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3세(世)의 괴로움의 과보가 영원히 제거되어 받지 않겠거니와 만일 이치를 관찰하지 않으면 비록 천하의 약술을 써서 치료한다 하더라도 그 병이 갈수록 더할 것이요, 낫기 어려우리라.”
또 『비니모경(毘尼母經)』에서 존자 미사색(彌沙塞)은 말하였다.
“사제(莎提) 비구가 젊었을 때 술에 의지하여 신명을 이어가고 있다가 뒤에 출가하고 나서는 술을 먹지 못했으므로 4대(大)가 고르지 못하였다. 그것을 보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병이 든 이는 항아리 위에서 냄새를 맡는 것만은 허락한다. 만일 병이 나으면 더 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술로 몸을 씻는 것을 허락한다. 또 그렇게 해도 낫지 않으면 술을 밀가루에 섞어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을 허락한다. 그렇게 해도 역시 낫지 않으면 술 속에 담그는 것을 허락한다.’”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계경(契經)에서와 같다. 존자 사리자(舍利子)가 교살라국(憍薩羅國)의 한 숲 속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에 살아가기 위하여 출가한 외도가 역시 그 숲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근에 사는 귀한 이가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여러 마을과 읍(邑) 가운데서 때마침 4월의 절일(節日)에 베푸는 연회를 널리 베풀고 있었다. 그 때 그 외도는 여러 마을과 읍을 돌아다니면서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고 술도 마음껏 마신 뒤에 남은 것을 몰래 가지고 숲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리자가 한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술에 흐려 있던 터라 경멸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나 이제 그와 함께 비록 출가했을지 모르지만, 나 혼자 부자요 쾌락을 누리는데 그만이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구나’ 그리고는 곧 존자에게로 가서 이런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 이미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고
또 남은 것을 몰래 가져왔소이다.
땅 위의 풀과 나무와 산이
모두가 금무더기처럼 보입니다.

사리자는 게송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죽은 외도가 도무지 부끄러워함도 없이 무례하게 이런 가타(伽陀)를 말하고 있구나. 나 이제 그가 말한 게송에 응대해 주리라.’
그리고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늘 모양 없음[無相]을 배불리 먹고
항상 공의 선정[空定]에 머무른다.
땅 위의 풀과 나무와 산은
모두가 침 뱉는 곳처럼 보이는구나.

지금 이 게송 안에서 존자 사리자는 사자의 외침으로 3해탈문(解脫門)을 말한 것이니, 첫째 구절에서는 무상(無相)의 해탈문을 설명하였고, 둘째 구절에서는 공(空)의 해탈문을 설명하였으며, 마지막의 두 구절에서는 무원(無願)의 해탈문을 설명하였다.”

(3) 식육부(食肉部)

自述
이 하나의 가르침에도 역시 권교(權敎)와 실교(實敎)가 있다. 권교는 비니(毘尼)의 율에 의거한다. 세존께서는 처음 도를 이루시고 거칠고 악한 범부를 제도하기 위하여 아직 세밀한 것은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점교(漸敎) 가운데서 죽이는 것을 보지 않고, 죽이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자기를 위하여 죽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되지 않는, 즉 새가 먹다 남긴 것이거나 저절로 죽은 것 등의 세 가지 청정한 고기[三種淨肉]를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거친 것[麤]을 먼저 하고 세밀한 것[細]을 뒤로 함으로서 점차로 허물을 여의게 한 것이니, 이는 별시(別時)의 뜻[意]이요 불요의(不了義)의 말씀이다. 또 실교(實敎)에 의거하면 처음 도를 증득해서부터 열반하는 밤에 이르기까지 시종 허락하지 않으셨다.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셨다.
“온갖 중생이 그의 고기 냄새를 맡으면 모두 다 두려워하면서 자기도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과 육지와 공중으로 다니는 목숨 있는 무리는 모두 그를 버리고 도망치게 된다. 그러면서 다 함께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우리들의 원수다’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고기 먹는 것을 비록 나타낸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먹지 않는 것이니, 다만 모든 중생이 집착하여 보는 것이 있을 뿐이다. 여래가 방편으로 한 말씀과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편벽되게 비니의 가르침을 국집하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의 청정한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하셨다’고 하고, 또한 나를 비방하며 말하기를 ‘여래께서도 스스로 잡수셨다’고 하나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큰 죄장(罪障)을 이루어서 오랜 세월 동안 이익 없는 곳에 떨어지게 된다. 또한 현재와 미래에는 성현의 제자조차 만날 수 없거늘, 하물며 장차 모든 부처님 여래를 뵈올 수 있겠느냐?
대혜(大慧)야, 모든 성문(聲聞)들은 항상 쌀과 밀가루와 기름과 꿀 등을 먹으면서 청정한 생활을 해야 한다. 법이 아니게 저축하고 법이 아니게 받아가지는 것도 나는 부정(不淨)하게 여겨서 그것조차 오히려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거늘, 하물며 살과 피의 부정한 것을 먹으라고 하겠느냐. 고기를 먹으면 선을 파괴하고 도를 장애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삿된 생활을 하게 되어서 아첨과 굽은 마음으로 스스로 살기만을 구하게 되므로 역시 도를 장애하게 된다.”
또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자기를 위하여 죽였으면 먹지 말 것이다. 만일 고기가 마치 나무조각 같거나 이미 저절로 썩어서 문드러진 것을,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다. 만일 고기를 먹고자 하면 의당 이 주문을 외워야 한다.

다지타 아나마아나마 아시파라아시파다 나사나사
多▼(口+絰)咃此言如是阿捺摩阿捺摩此言無我無我阿視婆多阿視婆多此言無壽命無壽命那舍那舍此言
타하타하 파부파부 사가율다미 사바하
失失陀呵陀呵此言燒燒婆弗婆弗此言破破僧柯慄多弭此言有爲莎 呵此言除殺去

이 주문을 세 번 외우고 나서야 비로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밥도 먹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만일 사유함[思惟]이 없으면 밥도 먹지 않아야 하겠거늘 고기를 먹어서야 되겠느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은 자비의 힘이 없어서 살해하려는 뜻을 품으니 이런 인연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살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큰 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라면 죄가 없다.’”
【문】 술은 정신을 화평하게 하는 약이요, 고기는 굶주림을 채우게 하는 음식이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의미가 같거늘 어찌하여 유독 지금 비루하게 보면서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인가? 만일 불교의 청정한 금제를 상(喪) 중의 예제(禮制)처럼 하게 한다면, 그것은 마치 엄한 군주(君主)에 대하여 시속이 밥[俗食]을 내리도록 명하도록 한 것과 같다. 어찌 스님들에 관련된 허물이라 하여 막으면서 먹지 못하게 하는가?
【답】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것을 지조 굳은 장부는 비루하게 보는 바요, 좋은 음식과 맛난 것만 즐기는 것을 청렴한 선비는 나쁘게 보는 바다. 애정을 끊고 도를 쫓는 것은 옛 성현들이 찬탄하던 바요, 욕심을 누르고 덕을 숭상하는 것을 옛날의 철인(哲人)들이 다같이 감탄했다. 하물며 고기는 생명을 죽여야 되고 술은 정신을 어지럽게 하므로 먹지 않는 것이 도리이거늘 어찌 그것이 잘못이라 하겠는가? 비록 위에서 억압한다 하더라도 끝내 엄히 끊어야 하고 비록 임금의 명을 어긴다 하더라도 도리어 불심(佛心)을 따를 것이다.’
【문】 고기는 생명을 죽여야 하므로 끊으라 하는 것은 우선 그렇다 쳐도 술은 생명을 죽이지도 않거늘 어째서 단번에 금제하는 것인가? 만일 손해가 없는데도 죄를 헤아리고 허물이 없는 데도 잘못이라 한다면, 음료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도 역시 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늘 어째서 술만을 치우치게 끊으라는 것인가?
【답】 계율을 맺는 것은 사건에 따르고 죄를 얻는 것은 마음에 근거한다. 고기 자체가 살해된 것이므로 고기를 먹으면 죄가 되지만 술의 성질은 손상은 아니나 지나치면 정신을 피곤하게 함으로서 다른 곳에서 허물을 내게 한다. 그 허물이 생기는 것은 술 때문이므로 술을 끊으면 곧 없어지니 이 때문에 못 먹게 하는 것이요 술 자체를 죄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과는 같지 않다.
【문】 죄에는 차죄(遮罪)와 성죄(性罪)가 있다. 술 자체가 죄를 낳는다면, 술에 잘 견뎌내는 사람은 마셔도 취하지 않고 또 정신을 피곤하게 하지도 않을 뿐더러 죄가 생기지도 않으므로 이런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응당 죄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이렇다면 술을 마셔도 과실이 없고 허물도 초래하지 않거늘, 무슨 관계로 술을 끊음으로써 계율의 선함을 이룬다는 것인가? 말하자면 마셔도 술을 견뎌내면 계율을 지닌다[持戒]고 해야 하고 조금만 마셔도 취하는 이는 큰 죄인이라고 해야 하리라.
【답】 계율을 제정하여 잘못을 막게 하는 근본은 선(善)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계는 바로 선을 내는 것이다. 몸과 입으로 어김이 없고 심정(心情)으로도 그쳐서 차죄와 성죄 둘이 다 끊어져야 계율의 선함이라 하게 된다. 지금 술을 잘 견뎌내는 사람은 정신이 산란하지 않고 아직 다른 계를 깨뜨리지 않았으므로 실지로나 이치로 보아서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마구 마심으로써 죄는 생기는 것이니, 마심으로 인하여 밖으로는 차죄의 가르침을 어겼고 마음 속으로서는 범죄가 생겼으므로 오히려 죄가 있다고 하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를 어겼으므로 계율을 지닌 것이 아니다.”
첫째로 실교에 의거하여도 손해는 있다. 경에 의거하면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는 열 가지 과실이 있다.
그 첫 번째로 온갖 중생은 무시 이래로 지금까지 모두가 자기의 6친(親)이었으므로 고기를 먹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므로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중생이 5도(道)에 윤회하는 것을 관찰하건대, 똑같이 나고 죽고 하면서 서로가 함께 나서 기르고 번갈아 부모 형제 자매와 내외종(內外從)의 남자와 여자와 6친의 권속이 되며, 혹은 다른 갈래인 선도(善道)와 악도(惡道)에 나면서 언제나 권속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인연을 내가 관하건대 중생들은 서로 고기를 먹으나 그들은 6친이 아닌 이가 없다. 고기를 먹는 맛으로 인해 서로서로 잡아먹으며 항상 해치는 마음을 내어서 괴로운 업을 더욱 자라게 하므로 생사에 유전(流轉)하면서 벗어날 수 없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악한 나찰(羅刹)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모두가 악한 마음을 버리고 고기 먹는 것을 그치면서 서로가 보리의 마음[菩提心]을 내도록 권하였다. 그리하여 중생의 목숨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면서 온갖 고기를 먹지 않고 슬피 울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6도(道)를 자세히 관찰해 보니 저희들이 먹었던 고기는 모두가 저희들의 6친(親)이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고기를 먹는 중생은 바로 저희들의 큰 원수요, 큰 자비의 종자를 끊고 착하지 않은 업을 자라게 함으로서 큰 고통을 받는 근본임을 알았나이다. 저희들은 오늘부터 결단코 고기를 먹지 않겠사오며, 그리고 저희 권속들까지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나이다. 여래의 제자로서 고기를 먹지 않는 이를 저희들은 밤낮으로 가까이 옹호하겠사오며, 고기를 먹는 이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그에게 크게 이익되지 않는 일을 짓겠나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大慧)야, 항상 고기를 먹는 나쁜 귀신인 나찰조차도 나의 말한 바를 듣고 오히려 인자한 마음을 내어 고기를 버리고 먹지 않거늘 하물며 나의 제자로서 착한 법을 행하는 이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허락하겠느냐? 만일 고기를 먹는 이가 있다면 이는 곧 중생의 큰 원수요 나의 성스런 종자를 끊는 줄 알지니라.
대혜야, 만일 나의 제자로서 나의 말한 바를 듣고서도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이는 바로 전다라(旃陀羅) 종자요, 나의 제자가 아니며 나도 그의 스승이 아닌 줄 알지니라.’”
두 번째, 고기 먹는 중생을 보는 이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고기 먹는 사람은 중생이 그 냄새를 맡고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도주하며 멀리 떠난다. 그러므로 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실(如實)한 행을 닦으면서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전다라와 사냥꾼과 백정과 물고기와 새를 잡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도 중생들은 멀리서 보고 생각하기를 ‘우리는 이제 영락없이 죽었다. 저기 오는 이는 아주 나쁜 사람이며, 죄와 복을 모른 채 중생의 목숨을 끊으면서 눈앞의 이익만을 구하고 있다. 지금 이 곳으로 오는 것은 우리들을 잡기 위한 것인데, 우리들은 모두 다 살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가 오고 있으니 우리들은 영락없이 죽었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대혜야,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때문에 중생으로 이를 본 중생들은 모두 이러한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내는 것이다. 대혜야, 온갖 허공과 땅에 있는 중생이 고기를 먹는 이를 보면 모두가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의심한다. ‘나는 이제 죽게 될까, 살게 될까? 나쁜 사람은 인자한 마음을 닦지 않으니 마치 승냥이와 이리가 세간을 돌아다니며 항상 먹을 고기를 찾는 것과 같고, 마치 소가 풀을 먹고 쇠똥구리가 똥을 쫓아가면서, 배부른 줄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몸은 고깃덩이라서 바로 그들의 먹이이다. 만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는 버리고 도망가면서 멀리 떠나버리는 것이 마치 사람이 나찰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세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다른 이의 신심(信心)을 무너뜨리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만일 고기를 먹으면 중생은 곧 온갖 신심을 잃고 ‘세간에는 믿을 만한 이가 없구나’ 하면서 신근(信根)을 끊게 되나니, 그러므로 대혜야, 보살은 중생의 신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고기란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세간의 어떤 사람은 고기 먹는 것을 보고 3보를 헐뜯으면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불법 중의 어디에 진실한 사문과 바라문으로 범행(梵行)을 닦는 이가 있다는 말인가. 성인으로서 본래 먹어야 할 음식을 버리고 중생을 먹는 것이 마치 나찰과 같으니 말이다.’
이처럼 나의 법륜(法輪)을 끊고 성스런 종자를 없애는 것은 모두가 고기 먹는 이의 허물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혜야, 나의 제자라면 악인이 3보를 헐뜯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고기라는 생각까지도 일으키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먹을 수 있겠느냐?”
네 번째, 인자한 마음과 욕심이 적은 수행인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보살은 생사를 벗어나기 위하여 의당 생각을 오로지 하고서 자비스런 행으로 욕심을 적게 갖고 만족할 줄을 알며 세간의 괴로움을 싫어하고 속히 해탈을 구하여야 한다. 만일 시끄러운 곳을 버리고 조용한 데로 나아가서 시다림(尸陀林)이나 아란야 처소[阿蘭若處]나 무덤 사이나 나무 아래 혼자 앉아 사유(思惟)하면서 모든 세간을 관찰하면 하나도 즐길 만한 것이 없음을 알 것이다. 처자와 권속은 마치 칼과 쇠사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궁전과 누각은 마치 견고한 감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보이는 모든 값진 보물은 마치 똥무더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보이는 모든 음식은 마치 피고름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받는 모든 음식은 마치 종기의 상처에 바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활기를 간직하고 생각을 거룩한 도(道)에 매어두면 술과 고기와 파ㆍ부추ㆍ마늘ㆍ염교 등의 훈채(葷菜) 맛을 탐내지 않게 되어서 모두 다 버리고 먹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한다면 참으로 수행하는 자이라서 온갖 인간과 하늘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만일 세간에 싫증을 내지 않고 술과 고기와 훈채의 모든 맛을 탐착하면서 다 먹는다면, 세간의 신시(信施)를 받아서는 안 되느니라.”
다섯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모두 과거 세상에 일찍이 나쁜 나찰이 된 일이 있어서 그 습기 때문에 지금 고기를 탐내고 있으므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어느 중생이든 다 과거에 일찍이 한량없는 인연을 닦았는지라 조그마한 선근(善根)이 있어서 나의 법을 듣게 되었고, 믿는 마음으로 출가하여 나의 법 안에 있게 되었거니와, 과거 세상에서 일찍이 나찰의 권속이나 범ㆍ이리ㆍ사자ㆍ고양이 및 삵 안에 태어난 적이 있는 이는 비록 나의 법 안에 있다손 쳐도 고기를 먹었던 그 남은 습기 때문에 고기 먹는 이를 보면 기뻐하면서 가까이 하며, 모든 성읍과 마을과 절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모든 천하가 다 마치 나찰이 죽은 시체를 다투면서 먹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고 있는데도, 그는 이미 나의 대중을 상실하고 나찰의 권속이 되었음을 모르고 있다. 비록 가사를 입고 수염과 머리를 깎았다 하더라도 그 명(命)을 살펴보면 마음에 두려워하기를 마치 나찰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여기서는 고기를 먹는 이가 과거 세상에 나찰이나 사자ㆍ범ㆍ이리ㆍ고양이 및 삵 등으로 태어났던 적이 있었고 지금은 이렇게 이승에 와 있음을 밝히고 있으니, 그러므로 응당 끊어야 한다.”
여섯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세간의 주술(呪術)을 배우는 것도 오히려 성취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어떻게 증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삿된 소견을 지닌 세간의 모든 주술사가 만일 고기를 먹으면 성취하지 못한다. 삿된 술법을 이루기 위해서도 오히려 고기를 먹지 않거늘, 하물며 나의 제자로서 여래의 위없는 거룩한 도를 구하여 세간을 벗어나고 해탈하기 위하여 큰 자비를 닦는 자이겠느냐? 부지런히 고행(苦行)을 하여도 오히려 얻지 못할까 두렵거늘 어디에 해탈이 있을 수 있겠느냐?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기를 먹으면서 해탈의 과보를 얻으려 한다. 그러므로 대혜야, 나의 모든 제자는 세간을 벗어나는 해탈과 즐거움을 구하기 위하여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일곱 번째, 중생 모두는 몸과 목숨을 자기와 다름이 없이 애착하니,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고기를 먹으면 색(色)과 힘이 씩씩해지므로 사람들은 거개가 즐기면서 탐착한다. 그러나 온갖 세간의 몸과 생명이 있는 것은 저마다 자기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죽는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자기 몸을 수호하고 애석히 여김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 차라리 옴이 오른 야간(野干)의 몸으로라도 살아 있기를 원하지, 목숨을 버린 뒤에 모든 하늘의 쾌락을 받는 것조차도 싫어한다. 왜냐 하면 죽음의 고통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로써 관찰하건대, 죽는 것은 큰 괴로움이요 두려워할 만한 법이다. 자기 몸은 죽기를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다른 이의 고기를 먹는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대혜야, 고기를 먹고자 하는 이는 먼저 자기 자신의 몸을 생각하고 다음에는 중생을 자세히 살필 것이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여덟 번째, 고기를 먹은 사람은 모든 하늘과 성현이 모두 다 멀리 떠나고 나쁜 귀신조차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대개 고기를 먹는 이를 모든 하늘들도 멀리 하거늘 하물며 성인이겠느냐? 그러므로 보살은 성인을 뵙기 위해서도 자비를 닦아야 하고, 고기를 먹는 사람은 잠을 잘 때도 괴롭고 깨어 있을 때도 괴롭다. 꿈 속에서 갖가지 나쁜 일들을 보자 놀랍고 두려워서 털이 곤두서고 마음이 항상 불안한 것은 인자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착한 힘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가 고요한 곳에 혼자 있으면 대개 비인(非人)이 그의 틈을 엿보게 되며, 범ㆍ이리ㆍ사자 조차도 그에게로 와서 엿보고 있다가 그의 고기를 먹으려 하므로 마음은 늘 두렵고 안온할 수 없느니라.”
아홉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정육(淨肉)조차도 오히려 먹어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부정육(不淨肉)이겠느냐?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나는 범부가 청정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청정한 음식을 먹을 적에도 오히려 아들의 고기와 같다는 생각을 내라고 하거늘 하물며 성인이 아닌 이의 음식을 먹으면서 성인으로서의 집착을 여읠 것을 허락하겠느냐? 고기는 한량없는 모든 과오를 내기 때문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온갖 공덕을 설하는 내가 어찌 모든 제자들에게 살과 피가 있는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고 했겠는가? 내가 허락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율(內律)에서 이르되 ‘산 목숨의 고기와 피를 먹으면 투란차(偸蘭遮)의 죄가 된다’고 했느니라.”
열 번째, 고기를 먹는 사람은 죽으면 도로 나쁜 나찰 등에 가서 나니,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힌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고기를 먹은 중생은 과거 세상에 고기를 먹은 그 훈습(熏習) 때문에 대부분이 다시 나찰이나 사자ㆍ범ㆍ이리ㆍ승냥이ㆍ표범ㆍ고양이ㆍ삵ㆍ솔개ㆍ올빼미ㆍ수리 및 새매 등으로 난다. 이 생명 있는 무리들은 각자 몸을 수호하고 틈을 주지 않으면서 굶주림의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늘 나쁜 마음을 일으켜 남의 고기를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목숨을 마치면 다시 악도로 떨어지게 된다. 이처럼 사람의 몸조차도 얻기가 어렵거늘 하물며 열반의 도를 얻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고기를 먹으면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이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로써 고기를 먹지 않는 이는 그것이 곧 한량없는 공덕의 덩어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또 『앙굴마경(鴦掘魔經)』에서 말하였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如來藏)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고기를 잡수시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은 나고 죽고, 죽고 나고 하면서 부모 형제 자매가 아님이 없는 것이, 마치 재주부리는 아이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과 같나니, 자기의 살과 남의 살이 곧 같은 살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고기를 잡수시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곧 하나의 세계요, 먹는 살도 곧 같은 살이니,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고기를 잡수시지 않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스스로 죽은 소의 주인이 그 가죽으로 신을 만들어서 계를 지닌 사람에게 보시하면 받아야 하겠느냐, 받지 않아야 하겠느냐? 받지 않는 것이 비구로서의 법이요 받으면 자비가 아니다. 그러나 파계는 아니니, 그 전전(展展)하는 것으로 보아서 살생하는 인연은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또 이 경에서 말씀하셨다.
“중생의 몸 속에는 80만 마리의 벌레가 있다. 만일 한 중생의 생명을 끊으면 곧 80만 마리의 벌레의 생명을 끊는 것이 된다. 만일 굽거나 삶거나 물에 담그거나 햇빛에 쪼이거나 하면, 거기에는 작은 벌레들이 있고 나비와 파리와 구더기가 붙어 있으므로 한량없는 생명을 죽이게 되나니, 비록 자기가 손수 죽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죽이는 것이 된다. 그리고 백정이 자기 자신이 먹지 않는다 해도 고기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이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기 먹는 사람은 곧 살생업(殺生業)의 죄까지 겸하게 되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혹 어떤 출가한 승니(僧尼)는 몸은 가람(伽藍)에 있으면서도 모든 속인들과 공공연히 어울려서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훈채의 냄새나는 것으로 가람을 더럽히고 있으면서도 불상을 향해 부끄러워함이 없나니, 이렇게 혼탁한 일을 어찌 외도보다 낫다 하겠느냐?”
또 『니라부타지옥경(尼羅浮陀地獄經)』에서 말하였다.
“마치 조각난 살과 같은 것이 몸인데, 이것이 사람인 줄 모르고 있는 것은 모두가 술 때문이다. 출가한 승니(僧尼)로서 어찌 경전의 가르침을 깊이 믿으면서 큰 부끄러움을 내지 않고 스스로 바른 법을 버린 채 외도와 같이 어울릴 수 있겠는가. 만일 중생이 아버지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중생도 그 아버지의 고기를 먹는 것이요, 만일 중생이 어머니의 고기를 먹는 것은 그 중생도 그의 어머니의 고기를 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제 자매와 아들과 딸의 6친(親)이 서로 마주 대하면서 원수가 또 원수가 되어 서로서로 갚으므로 벗어날 수가 없다.”
또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에서 말하였다.
“살생하지 말라.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되 마치 부모가 아들을 생각하듯 가엾이 여겨야 하며, 꿈틀거리는 것도 마치 자기의 갓난아이처럼 여겨야 한다. 무엇을 살생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몸과 입과 뜻을 보호하면서 몸으로는 숨을 헐떡거리는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자기 손으로도 죽이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죽이지 않으며, 죽인 것을 보면 먹지도 않고, 죽는 소리를 들어도 먹지 않으며, 죽인 것이라는 의심이 나도 먹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죽인 것도 먹지 않는다.
입으로는 ‘죽여야 한다. 살해하여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말고, 또한 ‘죽어서 유쾌하다. 죽여서 유쾌하다. 아무개 살은 살찌고 아무개 살은 말랐다. 아무개 살은 많고 좋았다. 아무개 살은 적고 나빴다’ 하는 등의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뜻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을 마치 자기의 골수와 같이 여기고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아들처럼, 제 몸처럼 여기면서 차별함이 없을 것이며, 널리 한결 같은 마음으로 평등이 여기면서 항상 대승에 뜻을 두어야 한다.”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파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의 오랜 옛적 아승기겁에 이 염부제에 바라내(波羅柰)라는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당시 바라마달왕(波羅摩達王)이라는 왕이 있었는데, 네 종류의 병사들을 데리고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은 진펄 위에 이르자 짐승을 발견하고서 달려가 쫓았는데, 그 수레에 혼자만이 탔었으므로 자기 혼자만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었습니다. 왕은 그 때 몹시 피곤했으므로 말에서 내려와 잠시 동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숲 속에는 한 마리의 암사자가 음심(淫心)이 몹시 나서 그 짝을 구하러 다녔으나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숲 사이에 왕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음심이 더욱 왕성해졌으므로 왕과 교미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꼬리를 든 채 등을 돌리고 서 있었습니다. 왕은 사자의 뜻을 알아차리고 생각하기를 ≺이 사나운 짐승은 힘이 세므로 나를 죽일 수도 있다. 만일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위해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하고, 왕은 두려웠기 때문에 곧 사자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난 뒤에 사자는 돌아갔고, 여러 병사들이 그곳으로 왔으므로 왕과 사람들은 곧 궁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사자는 새끼를 배어서 달이 다 찬 뒤에 한 아들을 낳았는데, 형상은 모두 사람과 같았고 다만 발에 얼룩점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사자는 그가 왕의 아들임을 알고 곧 물고 가서 왕 앞에다 놓아주었고, 왕 역시 그가 자기 아들임을 알았으므로 곧 거두어서 길렀는데, 발에 큰 얼룩점이 있었으므로 이름을 반족(斑足)이라고 지었습니다. 반족은 점점 장성해지자 재주가 뛰어났고 의지가 굳세었으며, 부왕이 죽게 되자 그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당시 반족왕에게는 두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는 왕의 종족(種族)이었고 둘째는 바라문의 종족이었습니다. 반족이 놀러 나가면서 두 부인에게 자기 뒤를 따라 오도록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먼저 도착한 이와 하루 동안 지극히 재미있게 놀겠다. 그러나 뒤에 온 이와는 만나지도 않겠다.≻
그리고는 왕은 먼저 떠났으며, 나중에 두 부인은 아주 잘 치장하고서 수레를 타고 함께 떠났습니다. 가는 도중에 천사(天使)가 있었으므로 범지 종족의 부인은 수레에서 내려와 예배를 하고 가느라고 나중에 도착했습니다. 왕은 자기의 말대로 그녀를 앞에 오지도 못하게 하였는데, 부인은 성을 내면서 천신을 원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예배하느라 왕에게 구박을 당하였소. 만일 천신으로서 힘이 있다면 어째서 나를 보호하지 못했소.≻
그리고는 나중에 천사를 헐어버리고 편편한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천사를 지키던 신은 몹시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궁성으로 가서 왕궁을 헐어버릴 작정이었으나 막혀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 때 산중에 사는 한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왕이 늘 공양하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끼니때가 되면 궁중으로 날아 왔는데, 반찬이 하찮거나 밥이 거칠면 먹지도 않았습니다. 하루는 우연히 선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천신은 그것을 알자 그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평소에 앉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밥을 먹으려 하지 않고 고기를 가져 오라 하였고, 그의 말대로 고기를 가져다 주자 먹고서 떠나갔습니다. 다음 날 먼저의 신선이 왔으므로 그에게 고기와 밥을 차려다 주자, 선인이 왕에게 성을 내었습니다. 왕이 말하였습니다.
≺큰 선인께서 어제는 그렇게 하라 하시고 오늘은 왜 잡수시지 않습니까?≻
선인이 말하였습니다.
≺어제는 몸이 좀 아파서 오지 못했소. 그 누구를 나라고 하는 것이오. 나를 업신여기며 시험하려 하는구려. 왕에게 이 뒤의 12년 동안은 늘 사람의 고기를 먹게 하겠소.≻
그리고는 날아서 산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주방장이 고기를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리고서 미처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때는 다 되고 어떻게 할 수 없자 바깥으로 나가서 고기를 구하다가, 죽은 어린 아이의 하얀 살이 땅에 있는 것을 보자 ≺우선 급한 대로 때우기로 하자≻고 생각하고는 머리와 다리를 잘라 가지고 가서 주방으로 들어가 온갖 맛있는 양념을 다하여 음식을 만들어서 왕에게 바쳤습니다. 왕은 그것을 먹어 보고 평소의 것보다 갑절 더 맛있음을 깨닫고 곧 주방장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이제까지 먹어본 고기는 이런 좋은 맛이 없었다. 이것이 무슨 고기냐?≻
주방장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면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만일 왕께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사실대로 말씀하겠습니다.≻
왕이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사실대로만 말을 하라. 그러면 죄는 묻지 않겠다.≻
주방장이 앞에서 있던 일을 자세히 말하자 왕이 말하였습니다.
≺이 고기는 참으로 맛있구나. 앞으로는 그렇게 구하여다 장만하도록 하라.≻
주방장이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앞의 것은 우연히 죽은 아이를 만났습니다만 다시는 더 구할 수 없습니다.≻
왕은 또 말하였습니다.
≺너는 은밀히 붙잡아 오기만 하라. 설령 들킨다 해도 그 결단은 내가 할 것 아니냐?≻
주방장은 분부를 받고 밤이면 늘 몰래 아이를 잡아와 죽인 뒤에 날마다 왕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성안의 백성들이 저마다 울고 다니면서 말했습니다.
≺아이를 잃어 버렸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라고 서로서로 물었고, 모든 신하들은 모여 의논하다가 몰래 숨어서 엿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곧 거리의 곳곳에 몰래 숨어서 살피고 있다가 왕의 주방장이 어린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으며 곧 그를 붙잡아 포박하여 왕에게 데려가서 앞의 사실을 자세히 말하자, 왕이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시킨 것이다.≻
모든 신하들은 원한을 품고 각자 밖으로 나와 의논하였습니다.
≺왕은 곧 도둑입니다. 우리들의 아들을 잡아다 먹었으니 말이오. 사람을 잡아먹는 왕과 함께 어떻게 정치를 하겠소. 함께 제거하여 이 재앙을 없애야겠소.≻
그리고 모두가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공모한 뒤에 일시에 모여서 왕을 포위한 뒤에 잡아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왕은 병사들이 모인 것을 보자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나를 포위하여 다가오는 것이오?≻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대저 왕이란 백성을 양육함이 그의 일인데, 주방장을 시켜서 사람을 죽여 음식으로 삼고 있으니, 그 가혹한 일을 용서하지 못하겠소. 그 때문에 왕을 죽이려 하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겠소. 용서만 해준다면 스스로 힘써 고치겠소.≻
그러나 모든 신하들이 말하였다.
≺놓아주지 못하겠소.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소.≻
왕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은 틀림없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곧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비록 나를 죽일지라도 잠시 동안 말미를 주고 나의 말 한 마디만 들어 주시오.≻
그리고는 곧 서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동안 닦은 선행으로 왕이 되어서 바르게 다스렸사오며 선인(仙人)을 공양하면서 많은 덕을 쌓았사오니, 그 공으로 오늘의 저로 하여금 변하여 날아다니는 나찰이 되게 하소서.≻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말대로 곧 허공을 날아가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은 힘을 합쳐서 억지로 나를 죽이려 하였다. 나는 큰 행운을 얻어 스스로 다시 구제되었으니, 나는 이제부터 너희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차례로 잡아먹을 것이다.≻
그리하여 산 숲 사이에 머무르고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잡아 갖고 와서 음식을 삼았으므로 온 백성들이 두려워서 숨고 피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었으며, 여러 나찰의 무리도 그에게 붙어서 돕고 따랐으므로 그 무리들은 점차 많아졌으며 피해도 갈수록 커졌습니다. 뒤에 여러 나찰들은 이 반족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우리들이 받들어 섬기며 왕으로 모시겠으니 한 패가 되어 주십시오.≻
그러자 왕은 곧 허락하며 말했습니다.
≺여러 왕들을 붙잡아 와서 5백 명을 채우도록 하라. 그러면 너희들과 한 패가 되겠다.≻
낱낱의 나찰이 모두가 가서 붙잡아다 깊은 산에 가두어 놓았으니, 벌써 499명이나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남았는데 그의 이름은 뒤에 수타소미왕(須陀素彌王)으로 불렸으나 그도 곧 붙잡혀 왔습니다. 그는 덕이 높은 사람인데 나찰왕에게 청하여 7일 간의 휴가를 받았습니다.
휴가가 다 끝나자 돌아 온 수타소미왕은 널리 반족왕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살생의 죄와 그에 대한 악한 과보를 분별하였고, 다시 인자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복도 말해 주었습니다.
반족왕은 기뻐하면서 공손히 예배하였고, 그의 가르침을 받들어 다시는 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지자, 곧 모든 왕들을 석방하여 저마다 그의 본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수타소미왕은 곧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반족왕을 그의 본국으로 돌려보내어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앞의 선인이 맹세한 12년이 다 찬 것입니다. 그로부터 다시는 사람을 먹지 않았으며 드디어 다시 패왕(霸王)이 되어서 백성을 옛날과 같이 다스렸습니다.
당시의 수타소미왕이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며, 반족왕은 바로 지금 앙굴마라입니다. 그 때 12년 동안 반족왕에게 잡혀 먹힌 여러 사람들은 바로 지금 앙굴마라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세상마다 늘 앙굴마라에게 죽음을 당했으며 나 또한 세상마다 그를 항복받아 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앙굴마라가 바로 지금의 지만(指鬘) 비구입니다.’
그러자 파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만 비구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먹은 뒤에도 도를 얻었사온데, 장차 그 과보를 받나이까?’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행하면 반드시 과보가 있습니다. 지금 이 비구는 방 안에 있지만 지옥의 불이 털구멍으로부터 나와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말로는 다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비구에게 명하셨다.
‘너는 문을 밀치고 지만의 방으로 가서 문구멍으로 정탐해 보아라.’
비구가 곧 분부를 받고 가서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스스로 불에 타며 녹고 있었다. 깜짝 놀란 비구는 돌아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행하면 그에 대한 과보가 그러한 것이니라.’
그리하여 왕과 모인 대중들은 믿고 이해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게송을 읊는다.

재물과 여색과 술을
세 가지 미혹[三惑]이라 이름하나니
신하가 빠지면 집을 잃게 되고
임금이 중히 여기면 나라가 망한다.

고기[肉]는 큰 자비를 장애하고
훈신채(葷辛菜)는 청정한 덕을 막나니
도(道)를 품고 있는 군자(君子)라 하면
이 더러움을 탐하지 않으리.”


法苑珠林卷第九十三 

盟西明寺沙門釋 道世 撰

酒肉篇第九十三 

此有三部 述意部 飮酒部 食肉部述意部第一夫酒爲放逸之門,大聖知其苦本,所以遠酣肆離酒緣,棄醉朋近法友,出昏門入惺境。肉是斷大慈之種,大聖知其殺因。所以去腥臊淨身口,噉蔬菜澄心神,招慈善感延年,故俗禮記云:‘見其生不忍其死,聞其聲不食其肉,斯亦不殺之義也。若使噉食酒肉之者,卽同畜生,豺狼禽獸。亦卽具殺一切眷屬,飮噉諸親。翻讎怨報,歷劫長夜,無有窮已,如上論說。有一女人,五百世害狼兒,狼兒亦五百世害其母。又有女人。五百世斷鬼命根,鬼亦五百世斷其命根,故知經歷六道備受怨報,或經爲師長,或是父母,或是兄弟,或是姊妹,或是兒孫,或是朋友,今是凡身。各無道眼,不能分別,還相噉食,不自覺知,噉食之時,此物有靈,卽生瞋恨,還成怨讎。向到至親,反變成怨。如是之事,豈可不思?暫爭舌端,一時少味。永與至親長爲怨對,可爲痛心,難以言說。’是故涅槃經云:‘一切肉者悉斷及自死者自死猶斷。何況不自死者?’又楞伽經云:‘爲利殺衆生以財網諸肉,二業俱不善,死墜噭呼獄。何謂以財網肉?陸設罝罘,水設網罟。此是以網網肉,若於屠殺人間,以錢買肉。此是以財網肉,若令此人不以財網肉者習惡律儀捕害衆生此人爲當專自供口,亦復別有所擬,若別有所擬,向食肉者,豈無殺分?何得云我不殺生?此是灼然,違背經文,斷大慈種,障不見佛也。’飮酒部第二述曰:此之一教有權有實,權則漸誘之訓。以輕脫重,初開無犯,據其障理,非無其過。若約實教輕重俱禁,始末不犯。是名持戒,初據權說者,故未曾有經云:‘爾時,國王太子名曰祇陀。聞佛所說十善道法果報無窮長跪叉手白佛言:‘佛昔令我受持五戒,今欲還捨。所以者何?五戒法中,酒戒難持,畏得罪故。’世尊告曰:‘汝飮酒時,爲何惡耶?’祇陀白佛:‘國中豪强,時時相率齎持酒食,共相娛樂,以致歡樂,自無惡也。何以故?得酒念戒,無放逸故,飮酒不行惡也。’佛言:‘善哉,善哉!祇陀,汝今已得智慧方便,若世閒人能如汝者,終身飮酒,有何惡哉?如是行者乃應生福,無有罪也。若人飮酒不起惡業,歡喜心故,不起煩惱。善心因緣,受善果報,如持五戒,何有失乎?飮酒念戒,益增其福,先持五戒今受十善,功德倍勝十善報也。’時,波斯匿王白佛言:‘世尊,如佛所說,心歡喜時,不起惡業,名有漏善者,是事不然。何以故?人飮酒時,心則歡喜,歡喜心故,不起煩惱。無惱煩故,不行惱害。不害物故,三業淸淨,淸淨之道,卽無漏業。世尊,憶念我昔游行獵戲忘將廚宰,於深山中,覺飢索食。’左右荅言:‘王朝去時,不被命勅令將廚宰,卽時無食,我聞是語已,走馬還宮教令索食,王家廚監名修迦羅。’修迦羅言:‘卽無現食,今方當作,我時飢逼,忿不思惟。勅臣斬殺廚監。’臣被王教卽共議言:‘簡括國中,唯此一人,忠良直事。今若殺者,更無有能,爲王監廚稱王意者。時,末利夫人聞王教勅殺修迦羅,情甚愛惜,知王飢乏,卽令辦具好肉美酒沐浴,名香莊嚴身體。將諸妓女往至我所,我見夫人,裝束嚴麗,將從妓女,好酒肉來,瞋心卽歇。何以故?末利夫人持五戒斷酒不飮,我心常恨,今日忽然,將酒肉來。共相娛樂,展釋情故,卽與夫人,飮酒食,肉作衆伎樂,歡喜娛樂,恚心卽滅,夫人知我忘失怒意,卽遣黃門,輒傳我命,令語外臣,莫殺廚監,卽奉教旨。我至明旦,深自悔責,愁憂不食。顏色樵瘁,夫人問我。何故憂愁?爲何患耶?’我言:‘吾因昨日爲飢火所逼,瞋恚心故,殺修迦羅。自計國中,更無有人,堪監我廚如修迦羅者,爲是之故,悔恨愁耳。’夫人笑曰:‘其人猶在,願王莫愁。’我重問曰:‘爲實如是,爲戲言耶?’答言:‘實在,非戲言也。’我令左右,喚廚監來,使者往召。須臾將來,我大歡喜,憂悔卽除王白佛言:‘末利夫人持佛五戒,月行六齋,一日之中,終身五戒。已犯飮酒,妄語二戒,八齋戒中,頓犯六戒。此事云何?所犯戒罪輕耶重耶?’世尊荅曰:‘如此犯戒,得大功德,無有罪也。何以故?爲利益故,如我前說,夫人修善,凡有二種。一有漏善,二無漏善。末利夫人所犯戒者,入有漏善。不犯戒者,名無漏善。依語義者,破戒修善,名有漏善。依義語者,凡心所起善,皆無漏業。’王白佛言:‘如世尊說,末利夫人飮酒破戒,不起惡心,而有功德,無罪報者。一切人民亦復皆然。何以故?我念近者舍衛城中,有諸豪族,剎利王公。因小諍競,乃致大怨,各各結謀,興兵相伐,兩家竝是國親。非可執錄,紛紜鬪戰。不從理諫,深爲憂之。復自念言:昔太子時,共大臣提韋羅相忿,情實不分,意欲誅滅,因太后與酒飮已情和,思惟是已,卽勅忠臣。令辦好酒及諸甘膳。又使宣令國中,豪族群臣士民,悉皆令集,欲有所論,國中大事,諸臣諍競,兩徒眷屬各有五百,應召來集。於王殿上,莊嚴大樂,王勅忠臣,辦琉璃盌,盌受三升,諸寶盌中,盛滿好酒。我於衆前,先喫一盌。’王曰:‘今論國事想無異心,今當人人辦此一盌,甘露良藥,然後論事。’咸言:‘唯諾。’作唱大樂,諸人得酒,幷聞音樂,心中歡樂,忘失讎恨,因酒息諍,而得太平。此豈非是?酒之功也。竊見世閒,窮貧小人,奴客婢使夷蠻之人,或因節日,或於酒店,聚會飮酒,歡樂心故,不須人教,各各起儛,未得酒時,都無是事。是故當知人因飮酒,卽致歡樂,心歡樂時,不起惡念,不起惡念,卽是善心,善心因緣,應受善報。獼猴得酒,尚能起儛,況於世人,如世尊說施善善報施惡惡報,末利夫人,皆由前身,以好施人故,今得好報。世尊,云何令持五戒月行六齋?六齋之日,不得莊嚴,香華服飾,作唱妓樂。又復不聽,附近夫壻愛好之姿。竟何所施?徒云其功豈非苦也?佛告王曰:‘大王所難非不如是,末利夫人在年少時,若我不勅令受。戒法修智慧者,云何當有今日之德,以能得度復度王身?如斯之功,復歸誰也。’述曰:此第二約其實說,輕重不犯。眞名持戒,故大聖知時量機通塞,通則開禁,隨時量前損益,如匿王欲殺廚監太子,欲害其父。此因酒忘忿得全身命免其大罪,以輕脫重,不受累殃。然非無飮酒之,咎來報之罪。不得見有前開遂,卽雷同摠犯,各須量其教意。復省己身,行德優劣。得預聖人斯匿末利開禁以旣不同。此卽須依經纖毫勿犯。最爲殊勝,故四分律云:是我弟子者,乃至不以草頭滴酒入口,何況多飮?是故咽咽結提。又成論問云:‘飮酒是實罪耶?’荅曰:‘非也。所以者何?飮酒不爲惱衆生故,而是罪因。若人飮酒,則開不善門,以能障定及諸善法,如殖衆果必有牆障故,知酒過如果無園。’又優婆塞經云:‘若復有人樂飮酒者,是人現世,喜失財物。身心多病,常樂鬪爭,惡名遠聞,喪失智慧。心無慚愧,得惡色力,常爲一切之所呵責。人不樂見,不能修善,是名飮酒,現世惡報。捨此身已,處在地獄,受飢渴等,無量苦惱。是名後世,惡業之果。若得人身,心常狂亂,不能繫念思惟善法。是一惡因緣力故,令一切外物資生,悉皆具爛。’又長阿含經云:‘其飮酒者,有六種失:一者失財,二者生病,三者鬪爭,四者惡名流布,五者恚怒暴生,六者智慧日損。又智度論飮酒有三十五失,如前受戒篇說。’又沙彌尼戒經云:‘不得飮酒,不得嗜酒,不得嘗酒。酒有三十六失失道,破家,危身,喪命,皆由之。牽東引西,持南著北,不能諷經不敬三尊,輕易師友,不孝父母,心閉意塞世世愚癡,不値大道,其心無識。故不飮酒,欲離五陰、五欲五蓋,得五神通,得度五道,故不飮酒。’又薩遮尼乾子經偈云:飮酒多放逸 現世常愚癡 忘失一切事常被智者呵。 來世常闇鈍 多失諸功德是故黠慧人 離諸飮酒失。又十住婆沙論問曰:‘若有人捨施酒,未知得罪以不?’荅曰:‘施者得福,受者不得飮。故論云:是菩薩或時樂捨一切,須食與食,須飮與飮,若以酒施,應生是念。今是行檀時,隨所須與,後當方便教使離酒,得念智慧令不放逸。何以故?檀波羅蜜法悉滿人願,在家菩薩以酒施者,是則無罪。’又梵網經云:‘若自身手過酒器與人飮酒者,五百世中無手,何況自飮?不得教一切人飮及一切衆生飮酒,況自飮酒。’又優婆塞五戒相經云:‘佛在支提國跋陀羅婆提邑。是處有惡龍,名菴羅婆提陀,匈暴害人,無人得到其處,象馬無能近者,乃至諸鳥不得過上,秋穀熟時竝皆破滅。時,有長老莎伽陀羅漢比丘,游行支提國,漸到跋陀羅波提邑,過是夜已晨朝著衣持鉢入村乞食。時,聞此邑有惡龍,匈暴害人鳥獸,及破滅秋穀。聞已乞食,到菴婆羅提龍住處,衆鳥樹下,敷座具大坐,龍聞衣氣卽發瞋恚,從身出煙,長老莎伽陀卽入三昧,以神通力身亦出煙,龍倍瞋恚,身上出火,莎伽陀復入火光三昧,身亦出火,龍復雨雹,莎伽陀卽變雹作釋俱餠髓餠等。龍復霹靂,莎伽陀變作種種歡喜丸龍復雨弓箭刀槊,莎伽陀卽變作優鉢羅華波頭摩華等,龍復雨毒蛇、蜈蚣、蝮虺、蚰蜒,莎伽陀卽變作優鉢羅華瓔珞、瞻蔔華瓔珞等,如是等龍所有勢力,盡現向莎伽陀皆不能勝,卽失威力光明,莎伽陀知龍力盡,不能復動,卽變作細身,從龍兩耳,入從兩眼,出已從鼻入,從鼻入已,從口中出。在龍頭上,往來經行,不傷龍身。爾時,龍見如是事已,心卽大驚怖毛豎,合掌向莎伽陀言,我歸依。’汝莎伽陀荅言:‘汝莫歸依我,當歸依我師佛。’龍荅言:‘我從今歸依三寶,知我盡形,作佛優婆塞。是龍受三自歸作佛弟子已。更不復作如先匈惡事。諸人及鳥獸皆得到所,秋穀不傷,名聲流布諸國,皆知長老莎伽陀,能降伏惡龍,折伏令善,因莎伽陀名聲流布。諸人皆作食,傳爭請之。是中有一貧女人。信敬請得莎伽陀,是女爲辦酥乳糜食之。女人作念思惟:是沙門噉是酥乳糜,或當冷發,便取似水色酒持與莎伽陀,莎伽陀不看便飮。飮已爲說法,便去過向寺中。爾時,酒勢便發,近寺門邊,不覺倒地。僧伽梨衣漉水囊鉢杖等,各在一處,身在一處,醉無所覺。佛與阿難,行到是處。見是比丘,知而故問阿難:‘此是何人?’荅言:‘世尊此是長老莎伽陀。’佛卽語:阿難:‘是處爲我敷座辦水集僧。’阿難受教,敷座辦水集僧已,白佛言:‘已集,佛自知時,佛卽洗足坐已,問諸比丘:‘汝等曾見聞,有龍名菴婆羅提陀匈暴惡害,先無有人到其住處,乃至鳥獸無能到上,秋穀熟時,破滅諸穀,莎伽陀能折伏令善,鳥獸得到泉上。’是中有見聞者言聞,佛語諸比丘:‘於汝意云何?此善男子莎伽陀,今能折伏蝦蟆不?’荅言:‘不能。’佛言:‘聖人飮酒,尚如是失。何況凡夫?如是過罪皆由飮酒。今從自後,若言我是佛弟子者,不得飮酒,乃至小草頭一滴,亦不得飮。’佛種種呵責,飮酒過失已。依律因此比丘便制不飮酒戒。問曰:未審天上有酒味不?’荅曰:‘無實麴米所造之酒,但有業化所作酒也。故正法念經云:彼夜摩天男共天女衆,入池游戲,同飮天酒,離於醉過,現樂功德,味觸色香皆悉具足。其中諸天有以珠器而飮酒者,受用蘇陀之食。色、觸、香、味,皆悉具足。彼如是念,此水爲酒令我得飮,卽於念時,皆是天酒,離於醉過,天旣飮之增長勝樂,善業力故心生歡喜。然彼諸天自業力故,如是受樂。有鳥名爲常樂,見彼諸天在歡喜河而飮酒故。爲說偈言:沒入放逸海 貪著諸境界 此酒能迷心何用復飮酒。 爲境界火燒 不知作不作園林生貪心 何用復飮酒。彼常樂鳥見樂飮酒,天在河飮酒,爲調伏故如是說偈:又正法念經,閻羅王責疏罪人說偈云:酒能亂人心 令人如羊等 不知作不作如是應捨酒。 若酒醉之人 如死人無異若欲常不死 彼人應捨酒。 酒是諸過處每常不饒益 一切惡道階 黑暗所在處。飮酒到地獄 亦到餓鬼處 行於畜生業是酒過所誑。 酒爲毒中毒 地獄中地獄病中之大病 是智者所說。 若人飮酒者無因緣歡喜 無因緣而瞋 無因緣作惡。於佛所生癡 壞世出世事 燒解脫如火所謂酒一法。 若人能捨酒 正行於法戒彼到第一處 無死無生處。’問曰:無病飮得罪,有病開飮不?’荅曰:‘依四分律,實病餘藥治不差,以酒爲藥者不犯。’問曰:開服幾許?荅曰依文殊師利問經云:若合藥醫師所說,多藥相和少酒多藥得用。又舍利弗問經云:舍利弗白佛言:‘云何世尊?說遮道法,不得飮酒,如葶藶子,是名破戒,開放逸門云何?迦蘭陀竹園精舍有一比丘,疾病經年,危篤將死。’時,優波離問言:‘汝須何藥?我爲汝覓天上人閒乃至十方。是所應用我皆爲取。’荅曰:‘我所須藥是違毘尼,故我不覓,以至於此,寧盡身命無容犯律?’優波離言:‘汝藥是何?’荅言:‘須酒五升。’優波離曰:‘若爲病開如來所許,爲乞得酒,服已消差,差已懷慚,猶謂犯律,往至佛所,殷勤悔過,佛爲說法,聞已歡喜得羅漢道。’佛言:‘酒有多失開放逸門,飮如葶藶子犯罪已積,若消病苦非先所斷。’述曰:不得見前文開籠通摠飮,必須實病重困臨終,先用餘藥治皆不差,要須酒和得差者,依前方開,比見無識之人,身力强壯日別馳走,不依衆儀,少有微患,便長情貪,不護道業,妄引經律云:佛開種種湯藥名衣上服施佛及僧,因公傍私詭誑道俗,是故智人守戒如命,不敢犯之。是故薩遮尼乾子經偈云:酒爲放逸根 不飮閉惡道 寧捨百千身不毀犯法教。 寧使身乾枯 終不飮此酒假使毀犯戒 壽命滿百年。 不如護禁戒卽時身磨滅 決定能使差 我猶故不飮。況今不定知 爲差爲不差 作是決定心心生大歡喜。 卽獲見眞諦 所患卽消除。當知衆生所有病者,皆由貪瞋我慢爲因從因有果,得此苦報,非由不得藥酒病不得差。故涅槃經云:‘一切衆生有四毒箭,則爲病因,何等爲四?一貪欲,二瞋恚,三愚癡,四憍慢。若有病因則有病生。所謂愛熱肺病上氣吐逆,膚體㿇㿇其心悶亂,下痢噦噎,小便淋瀝。眼耳疼痛腹背脹滿,顚狂乾痟鬼魅所著如是種種身心諸病若識病本,斷惡修善,三世苦報永除不受,若不觀理縱用天下藥酒所治,其病轉增,難可得差。’又毘尼母經云:‘尊者彌沙塞說曰:莎提比丘少小因酒,長養身命,後出家已,不得酒故,四大不調。’諸比丘白佛,佛言:‘病者聽甕上嗅之,若差不聽嗅,不差者聽用酒洗身,若復不差,聽用酒和麪作餠食之。若復不差,聽酒中浸漬。’又新婆沙論云:‘如契經,尊者舍利子於憍薩羅國住一林中。時,有活命出家外道,亦住彼林,鄰近尊者,去林不遠,諸村邑中,有時廣設四月節會。時,彼外道巡諸村邑,飽食豬肉恣情飮酒,竊持殘者還至林中,見舍利子坐一樹下,酒所昏故起輕篾心,我今與彼雖俱出家,我獨富樂而彼貧苦,尋趣尊者,作是頌曰:我已飽酒肉 復竊持餘來 地上草木山皆視如金聚。’時舍利子聞已念言:此死外道都無慚愧,乃能無賴說此伽他,我今亦應對彼說頌,作是念已,卽說頌曰:我常飽無相 常住空定門 地上草木山皆視如唾處。今此頌中,尊者舍利子作師子吼說三解脫門,謂於初句說無相解脫門,於第二句說空解脫門,於後二句說無願解脫門。食肉部第三述曰:此之一教亦有權實,言權教者,據毘尼律中,世尊初成道爲度麤惡凡夫,未堪說細,且於漸教之中說三種淨肉離見聞疑不爲己殺,鳥殘自死者,開聽食之,先麤後細,漸令離過。是別時之意,不了之說,若據實教,始從得道至涅槃夜,大聖殷勤始終不開。又涅槃經云:‘一切衆生聞其肉氣,皆悉恐怖,生畏死想。水陸空行有命之類,悉捨之走。咸言:此人是我等怨。是故菩薩不習食肉,爲度衆生視現食肉,雖現食之其實不食,但諸衆生有執見者,不解如來方便說意,便卽偏執毘尼局教,言佛聽食三種淨肉,亦謗我言:如來自食,彼愚癡人成大罪障,長夜墯於無利益處,亦不得見,現在、未來賢聖弟子,況當得見諸佛如來,大慧諸聲聞人等,常所應食米麪油蜜等,能生淨命,非法貯畜,非法受取,我說不淨,尚不聽食,何況聽食肉血不淨耶?非直食肉壞善障道,乃至邪命謟曲,以求自活,亦是障道。’又文殊師利問經云:‘若爲己殺不得噉,若肉如材木,已自腐爛,欲食得食,若欲噉肉者當說此呪。多咃此言如是阿捺摩阿捺摩此言無我無我阿視婆多阿視婆多此言無壽命無壽命那舍那舍此言失失陀呵陀呵此言燒燒婆弗婆弗此言破破僧柯慄多弭此言有爲莎呵此言除殺去此呪三說,乃得噉肉,飯亦不食。何以故?若無思惟,飯不應食,何況當噉肉?佛告文殊師利:以衆生無慈悲力,懷殺害意,爲此因緣,故斷食肉。若能不懷害心,大慈悲心,爲教化一切衆生故,無有過罪。’問曰:酒是和神之藥,肉爲充飢之膳,古今同味。今獨何見鄙而不食?若使佛教,淸禁居喪禮制,卽如對於嚴君,勅賜俗食,豈關僧過拒而不食耶?荅曰:貪財喜色貞夫所鄙,好膳嗜羙廉士所惡,割情從道前賢所歎,抑欲崇德往哲同嗟。況肉由殺命,酒能亂神,不食是理,寧可爲非?縱逢上抑終須嚴斷,雖違君命還順佛心。問曰:肉由害命斷之且然。酒不損生,何爲頓制?若無損計罪無過言非。飮漿食飯,亦應得罪,而實不爾,酒何偏斷。荅曰:結戒隨事得罪據心,肉體因害,食之卽罪,酒性非損,過由弊神,餘處生過,過生由酒,斷酒卽除,所以遮制,不同非謂酒體是罪。問曰:罪有遮性酒體生罪,今有耐酒之人能飮不醉。又不弊神,亦不生罪。此人飮酒,應不得罪,斯則能飮無過,不能招咎。何關斷酒?以成戒善,可謂能飮耐酒,常名持戒,少飮卽醉是大罪人。荅曰:制戒防非本爲生善,戒是生善,身口無違,緣中止息,遮性兩斷,乃名戒善。今耐酒之人,旣不亂神,未破餘戒,實理非罪。正以飮生罪,因外違遮教,緣中生犯,仍名有罪,以乖不飮酒非持戒。第一據實有損者,依經食肉之人有十種過失。第一明一切衆生無始已來。皆是己親,不合食肉,故入楞伽經云:‘我觀衆生輪迴五道,同在生死共相生育,遞爲父母兄弟姊妹,若男子若女中表內外,六親眷屬,或生餘道、善道、惡道常爲眷屬,以是因緣。我觀衆生,更相噉肉。無非親者,由食肉味遞互相噉,常生害心,增長苦業,流轉生死不得出離。佛說是時,諸惡羅剎聞佛所說,悉捨惡心止,不食肉,遞相勸,發菩提之心。護衆生命,過自護身,離一切諸肉不食。悲泣流淚白言:世尊,我聞佛說諦觀六道,我所噉肉皆是我親,乃知食肉衆生,是我大怨。斷大慈種長不善業。是大苦本。我從今日,斷不食肉。及我眷屬,亦不聽食。如來弟子有不食肉者,我當晝夜親近擁護。若食肉者,我當與作大不饒益。大慧羅剎惡鬼常食肉者,聞我所說,尚發慈心,捨肉不食,況我弟子行善法者,當聽食肉。若食肉者,當知卽是衆生大怨,斷我聖種。大慧,若我弟子聞我所說,不諦觀察,而食肉者,當知卽是旃陀羅種,非我弟子,我非其師。’第二明食肉衆生見者皆悉驚怖。故不應食。如彼經說:‘食肉之人衆生聞氣,悉皆驚怖逃走遠離。是故菩薩修如實行,爲化衆生,不應食肉。譬如旃陀羅獵師屠兒捕魚鳥人,一切行處,衆生遙見,作如是念:我今定死,而此來者,是大惡人不識罪福,斷衆生命,求現前利,今來至此爲覓我等,今我等身悉皆有肉。是故今來我等定死。大慧。由人食肉,能令衆生見者,皆生如是驚怖。大慧,一切虛空地中,衆生見食肉者,皆生恐怖,而起疑念。我於今者爲死爲活。如是惡人不修慈心,亦如豺狼游行世閒常覓肉食,如牛噉草,蜣蜋逐糞,不知飽足。我身是肉,正是其食,不應逢見,卽捨逃走離之遠去,如人畏懼羅剎無異。’第三明食肉之人壞他信心。是故不應食肉也。如彼經云:‘若食肉者,衆生卽失一切信心,便言世閒無可信者,斷於信根。是故大慧,菩薩爲護衆生信心,一切諸肉悉不應食。何以故?世閒有人,見食肉故,謗毀三寶。作如是言:於佛法中,何處當有眞實沙門、婆羅門修梵行者?捨於聖人本所應食,食於衆生猶如羅剎,斷我法輪,絕滅聖種,一切皆由食肉者過。是故大慧。我弟子者,爲護惡人毀謗三寶,乃至不應生念肉想,何況食噉也?’第四明慈心少欲行人不應食肉。如彼經說:‘菩薩爲求出離生死,應當專念慈悲之行,少欲知足。厭世閒苦速求解脫,若捨憒鬧就於空閑,住屍陀林阿蘭若處塚閒樹下,獨坐思惟,觀諸世閒,無一可樂。妻子眷屬如枷鎖想,宮殿臺觀如牢獄想,觀諸珍寶如糞聚想,見諸飮食如膿血想,受諸飮食如塗癰瘡想,趣得存活繫念聖道。不爲貪味酒肉蔥韭䔉薤葷味,悉捨不食,若如是者,是眞修行,堪受一切人天供養,若於世閒不生厭離,貪著諸味酒肉葷辛,皆便噉食,不應受於世閒信施也。’第五明食肉之人皆是過去曾作惡羅剎,由習氣故今故貪肉。是故不應食肉也。如彼經說:‘有諸衆生過去曾修,無量因緣,有微善根得聞我法,信心出家在我法中,過去曾作羅剎眷屬虎狼師子貓貍中生,雖在我法食肉餘習,見食肉者歡喜親近,入諸城邑聚落塔寺,飮酒食肉,以爲歡樂,諸天下視猶如羅剎,爭噉死屍等無有異。而不自知已失我衆成羅剎眷屬,雖服袈裟𩮜除鬚髮有命看見心生恐,怖如畏羅剎,此明食肉,皆是過去曾作羅剎師子虎狼貓貍中來,故應裁斷也。’第六明食肉之人學世呪術尚不得成,況出世法,何由可證?是故行者不應食肉,如彼經說:‘世閒邪見諸呪術師,若其食肉,呪術不成。爲成邪術尚不食肉,況我弟子爲求如來無上聖道,出世解脫,修大慈悲,精勤苦行,猶恐不得。何處當有如是解脫?爲彼癡人食肉,而得其報。是故大慧我諸弟子,爲求出世,解脫樂故,不應食肉也。’第七明衆生皆愛身命與己無別。是故行者不應食肉。如彼經說:‘食肉能壯色力嗜味,人多貪著,應當諦觀一切世閒有身命者,各自寶重,畏於死苦,護惜己身,人畜無別,寧當樂存疥野干身,不能捨命,受諸天樂。何以故?畏死苦故,以是觀察,死爲大苦,是可畏法,自身畏死。云何當得而食他肉。是故大慧,欲食肉者先自念身,次觀衆生,不應貪肉也。’第八明食肉之人諸天、賢聖,皆悉遠離,惡神恐怖。是故行者不應食肉。如彼經說:‘夫食肉者諸天遠離,何況聖人?是故菩薩爲見聖人,當修慈悲不應食肉。大慧,食肉之人睡眠亦苦,起時亦苦,若夢中見種種諸惡,驚怖毛豎心常不安,無慈心故,乏諸善力,若其獨在空閑之處,多爲非人,而伺其便,虎狼師子亦來伺求,欲食其肉,心常驚怖,不得安隱也。’第九明食肉之人淨者尚不應食,況不淨肉。是故行者不應食肉。如彼經說:‘我說凡夫爲求淨命噉於淨食,尚應生心,如子肉想。何況聽食非聖人食聖人離著,以肉能生無量諸過失故,於出世一切功德,云何言我聽諸弟子食諸肉血不淨等味?言我聽者,是則謗我,故內律云:食生肉血等得偸蘭遮罪。’第十明食肉之人死則還生惡羅剎等中。是故行者不應食肉。如彼經說:‘食肉衆生依於過去食肉臐故,多生羅剎、師子、虎狼、豺、豹、貓、貍、鴟、梟、雕、鷲、鷹、鷂等中,有命之類,各自護身,不令得便,受飢餓苦,常生惡心,念食他肉,命終復墯惡道,受生人身難得,何況當有得涅槃道?當知食肉有如是等無量諸過。是故行者不食肉者,卽是無量功德之聚也。’又鴦掘魔經云:‘文殊師利白佛言:世尊,因如來藏故諸佛不食肉耶?佛言:如是一切衆生無始生死,死生輪轉,無非父母兄弟姊妹。猶如伎兒變易無常,自肉他肉則是一肉。是故諸佛悉不食肉。復告文殊:一切衆生界我界卽是一界,所食之肉卽是一肉。是故諸佛悉不食肉。佛告文殊:若自死牛,牛主持皮,用作革屣,施持戒人,爲應受不?若不受者,是比丘法,若受者非慈悲。然不破戒,以從展轉離殺因緣故也。’又此經說:‘衆生身內有八十萬戶蟲,若斷一衆生命,卽斷八十萬戶蟲命,若炙若煮,若淹若暴。皆有小蟲飛蛾蠅蛆而附近之。如是展轉傍殺無量生命,雖不自手而殺。然屠者不敢自食,皆爲食肉之人殺之。故知食肉之人卽兼有殺業之罪,或有出家僧尼,躬在伽藍,共諸白衣,公然聚會飮酒食肉,葷辛雜穢,污染伽藍,不愧尊像,如斯渾雜奚如外道。’又尼羅浮陀地獄經云:‘身如段肉無有識知此是何人?皆由飮酒,出家僧尼,豈不深信經教心生重愧?自棄正法同於外道,若噉衆生父肉亦噉父肉。若噉衆生母肉,亦噉母肉。如是姊兄弟妹男女六親,竝有相對,怨怨相酬,未可得脫。又沙彌尼戒經云:不得殺生,慈愍群生,如父母念子加哀,蠕動猶如赤子。何謂不殺?護身口意,身不殺人畜喘息之類,手亦不爲,亦不教人,見殺不食,聞殺不食,疑殺不食,爲我殺不食,口不說言。當殺當害報怨,亦不得言死快,殺快某肉肥某肉瘦某肉多好某肉少惡,意亦不念,哀愍衆生,如己骨髓,如父如母,如子如身,等無差別,普等一心常志大乘。’又賢愚經云:‘佛告波斯匿王曰:過去久遠阿僧祇劫,此閻浮提有一大國,名波羅柰,於時國王名波羅摩達王,將四種兵入山獵戲,王到澤上馳逐禽獸,單隻一乘,獨到深林,王時疲極下馬小休。爾時,林中有牸師子,懷欲心盛行求其偶,因不能得値,於林閒見王獨坐,媱意轉盛,思欲從王,近到其邊,擧尾背住,王知其意而自思惟:此是猛獸力能殺我,若不從意儻見危害,王以怖故卽從師子成欲事已,師子還去,諸兵群從已復來到,王與人衆卽還宮城。爾時,師子從是懷胎,日月滿足,便生一子,形盡似人,唯足斑斕,師子憶識知是王有,便銜擔來著於王前。王亦思憶知是己兒,卽收取養,以足班駮字爲斑足,養之漸大雄才志猛,父王崩亡斑足繼治。時,班足王有二夫人,一是王種,二是婆羅門種斑足出游,勸二夫人隨我後往,誰先到者,當與一日極相娛樂。其隨後者吾不見之王去之後。其二夫人極自莊飾,嚴駕俱往,到於道中見於天祠,梵志種者下車作禮,禮已後到,王從本言而不前之,於是夫人瞋怨天神,由禮汝故使王見薄,若有天力何不護我?後壞天祠令平如地,守天祠神,悲惱至宮欲傷王宮,天神遮不聽入,有一仙人住止山中,王常供養,日日食時飛來入宮,不食餚饌粗食麤供,偶値一日仙人不來,天神知之,化作其形,坐於常處,不肯就食欲得魚肉,卽如語辦食已還去,明舊仙來,爲設肉食仙人瞋王。王言:大仙先日勅作,今何不食?仙人語言:昨日有患一日不來,是誰語汝,但相輕試,令王是後十二年中常食人肉。作是語:竟飛還山中,是後廚監忘不辦肉,臨時無計,出外求肉,見死小兒,肥白在地,念且稱急,卽卻頭足,擔至廚中,加諸美藥,作食與王,王得食之覺美倍常,卽問廚監,由來食肉未有斯美。此是何肉?廚監惶怖復白王言:若王原罪乃敢實說。王荅之言:但實說之,不坐汝罪,廚監白王具述前報。王言:此肉甚美,自今已後如是求辦廚監白王:前者偶値死兒,更求叵得,王又語言:汝但密取,設令有覺斷處由我,廚監受教夜常密捕得便殺之,日日供王,於時城中人民之類,各各行哭云亡失兒,展轉相問何由乃爾?諸臣聚議當試微伺,卽於街巷處處察探,見王廚監拽他小兒,伺捕得之,縛將詣王,具以前事白王:言是我所教,諸臣懷恨,各自外議,王便是賊食我等子,噉人之王云何共治?當共除之,去此禍害,一切同心咸共齊謀,一時同合,卽圍其王,當取殺之,王見兵集驚怖問言:汝等何故而圍逼我?諸臣荅言:夫爲王者,養民爲事,方驅廚宰殺人爲食,不任苛酷故欲殺王。王語諸臣:自今已後更不復爲,唯見恕放當自改勵,諸臣語曰:終不相放不須多云。時,王聞已自知必死,卽語諸臣:雖當殺我,小緩須臾,聽我一言,卽自立誓,我身由來,所修善行,爲王正治,供養仙人,合集衆德,迴令今日我得變成飛行羅剎。其語已訖尋語而成,卽飛虛空,告諸臣曰:汝等合力欲强殺我,賴我大幸復能自拔,自今已後汝等好忍所愛妻兒。我次第食,語訖飛去,止山林閒,飛行搏人,擔以爲食,人民之類恐怖藏避。如是之後殺噉多人,諸羅剎輩附爲翼從群衆漸多所害轉廣。後諸羅剎白斑足王:我等奉事爲王願爲一會,王卽許之。當取諸王令滿五百,與汝爲會,許之已訖,一一往取閉著深山,已得四百九十九王,殘少一人,後捕得須陀素彌,大有高德,從羅剎王乞得七日假,假滿還來,須陀素彌廣爲說法,分別殺罪及其惡報。復說慈心不殺之福斑足歡喜敬戴爲禮,承用其教無復害心,卽放諸王各還本國,須陀素彌,卽佐兵衆還將斑足安置本國。前仙人誓十二年滿,自是已後更不噉人,遂還霸王治民如舊。爾時,須陀素彌王者今我身是,斑足王者,今鴦掘摩羅是。爾時,諸人十二年中爲斑足王所食噉者,今此諸人爲鴦掘摩羅所殺者是。此諸人等世世常爲鴦掘所殺,我亦世世降之以善,鴦掘摩者,指鬘比丘是。時,波斯匿王復白佛言:指鬘比丘殺此多人,食已得道,當受報不?佛告大王:行必有報,今此比丘在於房中,地獄之火,從毛孔出,極患苦痛,酸切叵言,佛勅一比丘,汝持戶排,往指鬘房,剌戶孔中,比丘卽往奉教爲之,排入戶內,尋端午自融消比丘驚愕還來白佛佛告比丘行報如是王及衆會生信頌曰財色與酒。 名爲三惑 臣耽喪家君重亡國 肉障大慈 辛遮淨德懷道君子 斯穢不忒法苑珠林卷第九十三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법원주림』 93권(ABC, K1406 v39, p.1245a01-1255a09)

 

 

법원주림 제40권


서명사 사문 석도세 지음
송성수 번역


37.사리편(舍利篇)[여기에는 5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인증부(引證部) 불영부(佛影部)
분법부(分法部) 감복부(感福部)

(1) 술의부(述意部)
성인의 덕은 아득하여 인간과 천상에서 뛰어나나니, 그 이치는 6경(經)보다 묘하고 그 신령스러움은 백씨(百氏)보다 높다. 모든 존재의 끼친 발자국에서 뛰어나고 여러 현량(賢良)들의 훌륭한 자취를 초월했다. 교화의 인연이 이미 끝났으니 세속을 따라 그 빛을 감추었다. 그러므로 쌍수(雙樹)의 8지(枝)는 뜻을 따라 나타난 것이고, 사리의 8분(分)도 인연을 따라 감응한 것이다. 마침 금강의 선정에 들려 하매 미리 온몸을 부수었고 복을 천인(天人)에 입히려 하매 그 공을 바다와 육지에 폈다. 심지어 치아ㆍ털ㆍ손발톱 등과 두개골과 눈동자 등과 가사ㆍ발우ㆍ병ㆍ지팡이 등과 앉으신 곳ㆍ발로 밟으신 자취 등 고금(古今)의 거룩한 변화의 무궁함을 총괄하여 상서로운 영험은 계속 이르고 상서로운 광명은 자주 빛남을 현우(賢愚)들이 함께 보나니, 어찌 시기하고 또 와서 의심하겠는가?
또 저 3황(皇) 5제(帝)와 하은(夏殷)ㆍ문무(文武)와 공구(孔丘)ㆍ장로(莊老)와 같은 이는 성인이요 현인으로서 모두가 따르고 공경하여 다 그 뼈를 5천(泉)에 묻고, 그 티끌을 9토(土)에 남기었다. 그러나 그 성광(聲光)은 적막하거니와 누가 그 자취를 알겠으며, 복이 생기는 것을 아는 이가 드물거니 어떻게 과보가 오는 것을 감득하겠는가? 그러하거늘 어찌 능인(能仁) 큰 성인의 형상과 그림자가 향기를 드리워 감응의 도가 무궁하고 경앙(敬仰)의 풍(風)이 더욱 멀리 퍼짐에 견주겠는가. 교화의 자취를 대천(大千)에 계속하여 침명(沈冥)을 사계(沙界)에서 구제하실 때, 비록 열어 보이는 그 도가 뜻을 따라 혹 다르기는 하더라도, 공(空)을 회귀하는 그 취지는 모두 한결같이 진실한 것이다.

(2) 인증부(引證部)
사리(舍利)란 서역(西域)의 범어(梵語)이니 한나라 말로 신골(身骨)이라 한다. 범부들의 죽은 사람 뼈와 혼동할까 염려하여 범본(梵本)의 이름을 그대로 둔 것이다. 사리에는 3종이 있다. 첫째는 뼈사리[骨舍利]이니 그 빛이 희고, 둘째는 털사리[髮舍利]이니 그 빛이 검으며, 셋째는 살사리[肉舍利]이니 그 빛이 붉다. 보살ㆍ아라한 등에게도 3종이 있다. 부처님의 사리는 망치로 때려도 부서지지 않고 그 제자들의 사리는 망치로 때리면 곧 부서진다.
또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서 세존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옛날 행한 공덕을 생각하면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지금 너희들에게 그 한 가지만 이야기하리라. 즉 모든 부처님의 전신 사리(全身舍利)는 이 땅 밑의 금강세계에 있다. 금강국토의 두께는 84만억 리이다. 모든 부처님의 몸을 빻아서 얻은 사리가 다 그 국토에 있다. 거기 묘향(妙香)이라는 부처 국토가 있고 거기 계시는 부처님 이름은 부주(不住)여래이신데, 그 부처님은 10호(號)를 다 갖추셨고 지금 거기서 설법하고 계시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몸을 빻아서 얻은 그 사리 밑의 두께는 84억 리요 거기 국토는 청정하며 거기 부처님의 이름은 변광(遍光)인데, 10호를 다 갖추고 지금 거기서 설법하고 계신다. 또 그 밑에 시무진장(施無盡藏)이라는 국토가 있고 거기 부처님의 이름은 권조(勸助)이시다. 또 그 밑에 법고(法鼓)라는 국토가 있고 거기 부처님의 이름은 선견(善見)이며 그 국토에 전신 사리가 있는데, 과거의 억천불이 모두 거기에 사리를 두었다. 그 국토에는 나의 사리도 있느니라.”
또 『해룡왕경(海龍王經)에서 여러 용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세존께서 염부제로 돌아가시면 이 바다의 모든 용들은 귀의할 데가 없습니다. 저희들에게는 큰 슬픔을 더 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실 때 이 바다에 전신 사리를 두셨기 때문에 일체 중생들은 다 공양할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공덕을 더 쌓아 용의 몸을 빨리 벗고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빨리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그 위에 위덕을 주시면 저희들은 소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네 말대로 들어 주리라.”
수보리(須菩提)가 여러 용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사리는 일체 사람과 하늘들이 두루 구제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부처님 사리를 독점하여 모시려 하는구나. 그렇다면 일체 중생들은 무슨 인연으로 구제를 받겠는가?”
용들이 대답했다.
“수보리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자신의 한정된 지혜로 부처님의 끝없는 지혜를 한정하지 마십시오. 여래의 성스러운 덕은 변현(變現)하지 않는 것이 없어 삼천세계에 각각 화현(化現)하십니다. 부처님의 사리는 증감(增減)이 없어 일체에 두루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해 그림자가 물 속에 나타나는 것처럼 부처님은 나시지도 않고 멸도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찌 여래의 지혜를 한정하려 하십니까?”
수보리는 이 말을 듣고 잠자코 말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용들을 찬탄하셨다.
“그대들은 현명하다. 실로 그대들 말과 같아서 다름이 없다. 불도는 높고 묘하여 가[邊]도 없고 끝도 없으며 모남도 없고 둥긂도 없으며 넓음도 없고 좁음도 없으며 먼 것도 없고 가까운 것도 없다. 그것은 비유하면 마치 저 허공과 같아서 어디에도 비유할 수 없느니라.”

(3) 불영부(佛影部)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에 석실(石室)에 남긴 그림자는 나건가라국(那乾呵囉國) 독룡지(毒龍池) 곁에 있는 아나사산(阿那斯山)에 있는 바위의 남쪽에 있다. 다섯 나찰녀(羅刹女)가 독룡과 내통하고 항상 우박비를 내렸다. 백성들은 굶주림과 병으로 4년을 지냈다. 그리하여 왕은 용에게 기도하고 주술(呪術)을 부렸으나, 나찰녀는 기운이 왕성하여 주술이 통하지 않았다. 왕은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의 신통과 지혜를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제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부디 자비를 드리워 이 나라에 왕림하소서.’
그 때 부처님께서 그 나라로 가셨다. 용은 천둥과 벼락을 일으키면서 인갑(鱗甲)이 온통 불꽃을 뿜었으며 나찰녀는 그 눈이 번갯불 같았다. 그리고 금강신(金剛神)은 큰 절구 공이를 들었는데 그 공이 끝에는 불이 붙어, 마치 불바퀴를 돌리는 것 같아 독룡의 몸을 태웠다. 용왕은 놀라고 두려워하여 부처님의 그림자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 그림자는 마치 감로수(甘露水)를 뿌리는 것 같았다. 금강신이 매우 황급하여 부처님께 예배하고 다섯 나찰녀도 부처님께 예배했다. 용왕은 그 못에서 보대(寶臺)를 내어 부처님께 바쳤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보대는 내게 소용없다. 다만 나찰의 석굴만을 내게 보시하라.’
여러 하늘들은 각각 보배 옷으로 그 석굴을 소제했다. 부처님께서는 신족(神足)을 거두시고 혼자 석실(石室)굴에 들어가 그 석실을 들어 올려 7보(寶)로 만들었다.
그 때 용왕은 부처님의 4대 제자 및 아난을 위해 석굴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세존은 석굴에서 나오셨다. 용왕은 부처님께서 본국으로 돌아가신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말했다.
‘왜 저를 버리고 가십니까? 저는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면 반드시 악을 짓고 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용왕을 안심시키고 말했다.
‘나는 네 청을 들어 네 석굴 속에 앉아 1,500년을 지내리라.”
부처님께서 굴 속에 앉아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려 몸을 솟구쳐 돌 속으로 들어가시자, 마치 밝은 거울이 돌 속에 있는 것 같아 안에서 비친 것이 밖으로 나타났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나타나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았다. 백천 하늘들이 부처님의 그림자에 공양하자 그 그림자도 설법하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4) 분법부(分法部)
『보살처태경』에서 말하였다.
“그 때 8국(國)의 왕들이 사리를 가지고 서로 다투었다. 우파길(優波吉)이라는 한 대신이 8국의 왕에게 간(諫)했다.
‘무엇 때문에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우십니까?’
그리고 제석천(天)이 곧 사람으로 나타나 왕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하늘들에게도 한 몫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힘으로 싸우신다면 승부가 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거기 참여시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때 아뇩달(阿耨達)용왕과 문린(文隣)용왕과 이나발(伊那鉢)용왕 등이 8국의 왕에게 말하였다.
‘우리 몫도 있어야겠습니다. 만일 주지 않으면 힘으로 굴복시킬 것입니다.’
그러자 우파길 대신이 말하였다.
‘여러분, 모두 멈추시오. 사리는 다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서로 다투십니까?’
그리고 곧 3분으로 나누어 1분은 하늘에 주고, 1분은 용왕에게 주고, 1분은 8왕에게 주었다. 그것을 항아리로 나누어 받았는데 각각 1석(石) 남짓하였다. 이 대신은 꿀을 항아리 안에 바르고 사리를 고루 나누어주었다.
그리하여 하늘은 그 사리를 가지고 천상으로 올라가 곧 7보탑을 세우고, 용왕은 그것을 가지고 용궁으로 돌아가 7보탑을 세웠다. 대신 우파길은 사리를 항아리에 넣고 항아리까지 합해 보탑을 세우고, 재와 흙 49곡(斛)을 얻었는데 다시 그것으로 49기의 보탑을 세웠다. 또 다비[闍維]한 자리에도 보탑을 세우니 높이는 39인(仞)이었다.”[1인(仞)은 7척이다.]
또 『아육왕경(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8국의 왕이 사리 때문에 다투어 각각 군사를 일으켰다. 제석천(帝釋天)이 직접 내려와 그들을 타일러 금 항아리에 나누어주었다. 아사세왕이 다른 왕과 함께 각각 8만 4천 개의 사리를 얻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수염 하나만이 남았으나 감히 취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사세왕이 처음 왔다 하여 사리와 수염을 얻었다. 그들은 각각 돌아가 기뻐하면서 음악을 울려 하늘을 진동시켰다. 난두화(難頭禾)용왕이 사람으로 변화하여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으로 가다가 길에서 아사세왕을 만나고 돌아와서 왕에게 말하였다.
‘가지고 있는 사리에서 1분만 주십시오.’
아사세왕이 안 된다 하자 용왕이 말하였다.
‘나는 난두화용왕 입니다. 만일 주지 않으면 당신 나라를 들고 8만 리 밖으로 던져 가루로 만들 것입니다.’
아사세왕이 두려워 곧 부처님의 수염을 그에게 주었다. 용왕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수미산 밑에 높이 8만 4천 리 되는 수정유리 탑을 세웠다. 아사세왕이 죽은 뒤에 아육왕이 그 나라를 얻었다. 그 때 어떤 대신이 아육왕에게 아뢰었다.
‘전에 난두화용왕이 아사세왕을 위협하여 부처님의 수염을 빼앗아 갔습니다.’
아육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어 곧 귀신의 왕에게 명령하여 철망을 만들고 그것을 수미산 밑의 물 속에 넣어 용왕을 묶으려 했다. 용왕은 크게 놀라 여럿과 계책을 상의했다.
‘아육왕은 부처님을 믿는다. 그가 자는 틈을 보아 그 궁전을 수미산 밑 물 속에 옮겨다 두면 반드시 그 성이 풀릴 것이다.’
그리고 곧 다른 용을 보내어 왕의 궁전을 들고 왔다. 왕은 깨어나 거기가 어딘지 몰라하다가, 높이 8만 4천 리 되는 수정 탑을 보고는 그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용왕이 직접 나와 사과하면서 말하였다.
‘아사세대왕이 부처님의 수염을 내게 직접 주신 것이지, 내가 뺏은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열반한 뒤 겁(劫)이 다하려 할 때는 내 모든 경전과 계율 및 가사와 발우를 간직했다가 이 탑 안에 두고, 미륵이 내려올 때에 다시 그것을 내어 주라≻고 했습니다.’
아육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사과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실로 그런 줄은 몰랐노라.’
용왕은 곧 다른 용들을 시켜 왕의 궁전을 본래 있던 곳에 옮겨 두게 했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제석천왕의 궁전 안에 2과의 사리가 있다. 하나는 부처님의 오른쪽 치아요, 다른 하나는 오른쪽이 이지러진 항아리 안의 뼈이다.”
또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8국(國)에서 모두 찾아와 사리를 구하면서 각각 4병(兵)을 일으켜 사리를 둘러쌌다. 연(煙)이라는 바라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 역사(力士)들이여, 사리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8분으로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역사들이 말했다.
‘삼가 여래께 상의하십시오.’
바라문이 다시 외쳤다.
‘사리를 넣은 병을 내게 주시면, 나는 그것을 가지고 두나라(頭那羅) 마을로 돌아가 탑을 세우겠습니다.’
그 때 필바라연나(畢波羅延那) 바라문이 다시 부처님을 다비한 곳에서, 부처님을 화장한 재를 청해 그 나라로 돌아가 탑을 세우고, 구시성(拘尸城)의 역사는 1분을 얻어 탑을 세웠으며, 파바국(波婆國)은 제2분을 얻어 그 나라로 돌아가 탑을 세우고, 라마(羅摩)마을은 제3분을 얻어 돌아가 탑을 세우고, 차륵국(遮勒國)의 여러 찰제리(刹帝利)는 제4분을 얻어 돌아가 탑을 세우고, 비누국(毗★國)의 여러 바라문은 제5분을 얻어 돌아가 탑을 세우고, 비야리국(毗耶離國)의 여러 이창(利昌)들은 제6분을 얻어 돌아가 탑을 세우고, 가비라바국(迦毗羅波國)의 여러 석자(釋子)들은 제7분을 얻어 돌아가 탑을 세우고,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은 제8분을 얻어 왕사성에 돌아가 탑을 세웠다. 그리고 연 바라문은 사리를 넣은 병(甁)을 얻어 두나라(頭那羅) 마을로 돌아가 탑을 세우고, 필바라연 바라문은 재를 얻어 그 나라로 돌아가 탑을 세웠다..
그리하여 염부제 안에는 8개의 사리탑과 제9의 병탑[甁塔]과 제10의 재탑[灰塔]이 있게 되었다. 그 뒤로도 셀 수 없이 많은 탑이 세워졌다.”
또 『아육왕경』에서 말하였다.
“아육왕은 아사세왕이 빼앗긴 사리를 다시 찾으려 했다. 그런데 용왕은 항하(恒河) 속에 큰 철검륜(鐵劒輪)을 만들어 두고 수륜(水輪)을 사리가 있는 곳에 두고 돌렸다. 그래서 아육왕이 갖가지 방편을 다 써 보았으나 얻을 수가 없어 연화(蓮華) 비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저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수천 섬의 능금[柰]을 그 가운데 던지면 그 검륜을 멎게 할 수 있습니다.’
왕은 비구의 말을 따라 능금을 물 속에 넣고, 그 중의 하나를 시험삼아 그 기계 구멍 속에 넣었다. 그러자 검륜이 곧 정지하여 다시는 돌지 않았다. 그러나 용왕이 다시 그것을 수호하고 있었으므로 도무지 어찌할 수 없었다.
왕이 또 비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겠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용왕의 복이 뛰어나기 때문에 얻을 수 없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용왕의 복이 뛰어남을 아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금으로 용의 상(像)과 왕의 상을 만들고 그 둘을 저울로 달아보십시오. 무거운 쪽이 복이 뛰어난 것입니다.’
왕이 곧 그렇게 해보았더니 용의 상이 배나 무거웠다. 왕이 이것을 보고 곧 부지런히 복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상을 만들어 달아보니, 두 상의 무게가 꼭 같았다. 왕이 더욱 부지런히 복을 닦고 다시 상을 만들어 달아보았다. 그 때는 왕의 상이 훨씬 무거웠다.
왕은 자신의 상이 무거운 것을 안 뒤에 여러 군사들을 거느리고 물가로 나갔다. 그러자 용왕이 스스로 나와 갖가지 보배를 왕에게 바쳤다.
왕이 용왕에게 말했다.
‘아사세왕이 네게 사리를 주셨다. 나는 지금 그 사리를 가지려 한다.’
용왕은 제 위력이 왕에게 미치지 못함을 스스로 알았으므로, 곧 왕을 인도해 사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탑 문을 열고 사리를 꺼내어 왕에게 주었다. 그리고 아사세왕이 만든 등불까지 다 주려 했다. 그러나 사리를 집어내자 그 등불도 곧 꺼졌다. 왕은 괴이하게 여겨 또 연화 비구에 물었다.
‘아사세왕이 등의 기름을 어떻게 재량(裁量)해 두었기에 사리를 집어내자마자 바로 꺼지는가?’
존자가 말했다.
‘그 때 계산을 잘 하는 사람이 있어, 1백 년 동안에 얼마만큼 기름이 들 것이라는 것을 계산해 두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켜져 있었을 뿐입니다.’”

(5) 감복부(感福部)
『대비경(大悲經)』에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멸한 뒤에 만일 어떤 사람이, 겨자만큼 만이라도 내 사리에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여 겸허하게 공양한다면, 이 사람은 이 선근(善根)으로 모두 열반세계를 얻고 열반의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불상이나 탑을 만들어 세우고 곧 신심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며 나아가서 꽃 한 송이를 공중에 뿌린다면, 이 사람은 이 선근으로 모두 열반세계를 얻고 열반의 끝까지 갈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생각하며 꽃 한 송이를 공중에 뿌리면 이런 복덕으로 얻는 과보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 지극한 성심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꽃 한 송이를 공중에 뿌리면 그는 오는 세상에 제석천왕이나 범천왕이나 전륜성왕이 되고 그 복의 과보도 끝이 없을 것이다. 또 부처라는 복밭에 보시하여 유위(有爲)의 과보가 끝이 없으면, 이 사람은 반드시 열반세계를 얻고 열반의 끝까지 갈 것이다. 심지어 어떤 축생이라도 부처님을 생각하면 그 선근으로 지은 복의 과보로 열반세계를 얻고 열반의 끝까지 갈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삼천대천세계에 네 가지 사문의 과(果)를 얻은 사람과 벽지불을 감자나 대나무나 갈대처럼 가득 채우고, 또 만일 어떤 사람이 현재나 멸도한 뒤에 탑을 세워 공양하고, 1겁이나 1겁이 못 되는 동안 마음에 드는 온갖 음악으로 공경하고 존중하여 겸허하게 공양하고,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 앞에서 단 한 번이라도 합장하고 한 번이라도 부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자, 이 복덕을 앞의 공덕에 비하면 1백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 백천억분, 내지 가라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모든 복밭 중에서 제일이요 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 보시하면 큰 공덕과 신통의 위력을 이루느니라.”
게송을 읊는다.

금구(金軀)께서 산골(散骨)을 남기시니
보탑(寶塔)이 천룡(天龍)세계에 두루했네.
처음에 10탑을 세웠다가
나중에는 8만을 이루었네.

주개(珠蓋)는 신령스런 광명의 변화인데
찰주(刹柱)는 부용(芙蓉)을 토하며
아침 안개와 이슬을 여러 번 펼치고
새벽의 신령스런 자취를 자주 보인다.

붉은 무지개는 서로 비추어 피어나고
바람은 메아리를 흔들어 종소리와 어울리며
선란(仙鸞)은 가끔가끔 나타나고
신승(神僧)이 자주자주 따른다.

모든 성인 위에 홀로 뛰어나니
함식(含識)이 모두 공경하는 마음 낸다.
다듬이 방망이로 때려도 부서지지 않으니
비로소 성인의 덕이 큼을 알겠다.

감응연(感應緣)[대략 16증험을 인용한다. 수(隋)에 53주(州)가 있다.]

한(漢)의 승려와 도사(道士)가 법을 겨룸
위(魏)의 외국 사문이 금 쟁반에 놓은 사리가 5색의 불꽃을 날림
오(吳)의 강승회(康僧會)가 사리에 기도함
손호(孫皓)가 불법을 없애 버리려 할 때 사리가 채색을 냄
진(晋)의 축장서(竺長舒)가 사리를 물 속에 던지니 5색의 광명이 나 타남
진(晋)의 동왕(董汪)의 집의 목상(木像) 사리가 광명을 냄
진(晋)의 광릉(廣陵)의 사리가 광명을 놓음
진(晋)의 북쪽 지역 승려 법개(法開)가 절을 세우고 사리를 구함
진(晋)의 맹경(孟景)이 절을 세우고 사리 3과(顆)를 얻음
진(晋)의 의희(義熙) 때에 사리 1과가 스스로 나뉘어져 3과가 됨
송(宋)의 가도자(賈道子)가 부용꽃 속에서 사리 1과를 얻음
송(宋)의 안천재(安千載) 집에서 부처님을 받들고 사리를 얻음
송(宋)의 장수원(張須元) 집의 불상 앞의 꽃 위에서 사리 수십 과를 얻음
송(宋)의 유응지(劉凝之)가 액자 밑에서 사리 2과를 얻음
송(宋)의 서춘(徐椿)이 독경하다가 사리 2과를 얻음

한(漢)의 승려와 도사(道士)가 법을 겨룸
『한법내전(漢法內典)』에서 말하였다.
“명제(明帝)는 불법을 펴고 절을 세우며 승려를 제도했다. 5악산관(岳山館)의 도사(道士)들은 석로(釋老)와 도력(道力)을 겨루어 우열(優劣)을 가리자고 했다. 도경(道經)을 불로 시험했을 때 그것이 불에 닿자 곧 타서 재가 되었다. 도사들의 우두머리 비재(費才)는 부끄러워하고 슬퍼하여 대중 앞에서 죽었다. 장연(張衍)이 대중을 깨우쳐 그들은 모두 다투어 출가했다.
그 때 서역(西域)에서 가지고 온 사리 5과는 5색(色)으로 공중으로 바로 올라 일산처럼 돌면서 햇빛을 가리었다. 마등(摩騰) 아라한은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 올라 허공이 땅인 듯 서 있고, 땅을 허공처럼 밟으면서 신통 변화가 자재하여 대중을 위해 설법했다. 하늘은 보배 꽃을 내려 부처님과 스님들 위에 뿌리고 하늘 음악과 이상한 소리를 대중이 다 같이 들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구제했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파사편(破邪篇)’에서 말한 것과 같다.

위(魏)의 외국 사문이 금 쟁반에 놓은 사리가 5색의 불꽃을 날림
위(魏)나라 명제(明帝) 때 낙성(洛城)에는 본래 3사(寺)가 있었다. 그 하나는 궁전의 서쪽에 있었다. 사리를 항상 번찰(幡刹) 꼭대기에 매어 두었는데, 그것이 예사로 궁전 안을 엿보았으므로, 명제가 그것을 싫어하여 없애 버리려 했다. 그 때 그 절에 있던 외국의 사문이 금 소반에 물을 담고 그 물에 사리를 넣으니 5색 광명이 불꽃을 날려 그치지 않았다. 명제는 그것을 보고 탄복하여 말하였다.
“신의 힘이 아니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길 동쪽에 주려(周閭) 1백 간을 짓고 그 이름을 관불도정사(官佛圖精舍)라 했다.

오(吳)의 강승회(康僧會)가 사리에 기도함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적오(赤烏) 4년에 외국의 사문 강승회(康僧會)가 처음으로 강표(江表)에 와서 불상을 모시고 도를 수행했다. 오나라 사람들은 요괴(妖怪)라 생각하고 임금에게 알렸다. 손권은 승회를 불러 물었다.
“부처는 무슨 영험이 있는가?”
사문이 답하였다.
“부처님은 신령스런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 유골(遺骨)인 사리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타남[應現]이 견줄 데가 없습니다.”
손권이 물었다.
“그것은 어디 있는가?”
사문이 말했다.
“만일 사리를 얻으면 그것을 위해 절을 세우리라.”
이러하여 사문은 37일 동안 지성으로 기도하여 드디어 사리 병(甁)을 얻었다. 그리하여 아침에 손권에게 바치니 그 광명이 온 궁전을 비추었다. 손권이 병을 들어 금 소반에 쏟았다. 그러자 사리가 떨어지면서 소반을 때려 소반이 곧 부서졌다. 손 권은 크게 놀라 희유한 광경을 기이하게 여겼다.
승회가 말하였다.
“부처님의 영골(靈骨)은 금강처럼 썩지 않고 겁화(劫火)에도 타지 않으며 다듬이 방망이로 쳐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손권이 역사(力士)를 시켜 방망이로 사리를 힘껏 때리게 했다. 그러나 방망이만 깨지고 사리는 상하지 않은 채 광명이 사방으로 비치어 사람의 눈을 부시게 했다. 또 불에 태우니 빛이 날아 올라 큰 연꽃이 되었다. 손권은 크게 신심을 내어 이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건초(建初)라 하고, 그 절이 있는 지방 이름도 불타리(佛陀里)라고 고쳤다.

손호(孫皓)가 불법을 없애 버리려 할 때 사리가 채색을 냄
손호(孫皓)는 악한 정치를 행해 불법을 없애버리려 하여 경전을 불사르고 탑을 부수었다. 신심이 있는 어떤 사람이 간(諫)하였다.
“우선 너그러이 말미를 주었다가 영험이 없음을 확실히 안 뒤에 없애도 늦지 않습니다.”
손호는 이 말을 따라 승회를 불러 말하였다.
“만일 그 영험이 눈앞에 나타나면 그대를 위해 불법을 일으키겠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불법을 폐하고 그대를 죽이리라.”
승회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인연이 있으면 반드시 감응하십니다. 말미를 주시면 영험을 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손호는 사흘 동안의 말미를 주었다.
그 때 1백여 명의 스님들이 모두 절에 모였고, 손호는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절을 포위하고 또 무기를 가지고 기한이 되면 죽이려 했다. 승려들은 영험이 없을까 두려워해 스스로 목을 졸라 죽는 자도 있었다. 승회가 대중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사리를 주실 때는 오직 지금 밖에 없다. 전에도 영험이 있었는데 어찌 지금에 와서 속이시겠는가?”
곧 기한이 되어 사리를 얻어 손호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이것이 여래의 금강의 뼈입니다. 지성으로 빨리 얻었습니다. 1백 균(鈞)의 방망이로 때려도 조금도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손호가 말했다.
“금석(金石)도 닳는데 마른 뼈가 어찌 견고하겠는가? 사문으로서 눈앞에서 속이다니, 그저 빨리 죽을 뿐이다.”
그리고 사리를 쇠 다듬잇돌 위에 놓고 금방망이로 내리쳤다. 금과 쇠는 다 움푹 패였으나 사리는 그대로 있었다. 다시 맑은 물로 씻으니 사리는 광명을 날리고 채색을 발하여 온 궁전을 환히 비추었다. 손호는 이에 기꺼이 감복해 믿고 정성을 다해 교화를 받았다.

진(晋)의 축장서(竺長舒)가 사리를 물 속에 던지니 5색의 광명이 나타 남
진(晋)나라 초년에 축장서(竺長舒)는 일찍부터 사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매우 소중히 여겼다. 그 아들은 사문이 되어 이름을 법안(法顔)이라 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속가로 돌아오고 싶어하여 아버지를 비웃으면서 말하였다.
“사리란 모래나 돌일 뿐인데 무엇을 귀하다 하겠습니까?”
이에 아버지는 그 사리를 물에 던졌다. 사리는 5색으로 세 번 돌면서 광명이 여러 자나 높이 올라갔다. 법안은 이 영험을 보고 신심을 내어 마침내 속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장서는 임종 때 세속에 얽매인 속된 생각을 내어 병이 위중했다가 사문이 되어 죽었다. 그 사리는 강하(江夏)의 탑 안에 넣어 두었다.
진(晋)의 동왕(董汪)의 집의 목상(木像) 사리가 광명을 냄
진(晋)나라 태흥(太興) 때에 어잠(於潛)의 동왕(董汪)은 목상(木像)을 믿었는데 그것이 밤에 광명을 내었다. 그 뒤에 목상 곁에서 무엇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에 동왕이 가 보았다. 그것은 바로 사리로서 물 속에서 떴다 잠겼다 하면서 5색이 찬란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았다. 그 뒤에도 사문의 법으로서 그는 항상 가 보았다. 그것은 드디어 높이 4ㆍ5척의 공중에 솟아올랐다가 다시 그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말하였다.
“만일 저로 하여금 절을 세우게 하시려거든 다시 위신(威神)을 보이소서.”
그러자 그것은 그의 앞에 나와 뛰었다. 그가 곧 절을 짓자, 어잠 사람으로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이 하루에 10여 명이었다.

진(晋)의 광릉(廣陵)의 사리가 광명을 놓음
진(晋)나라 대흥(大興) 때에 북쪽 사람으로서 광릉(廣陵)에 귀양가는 이가 하루에 천여 명이었다. 어떤 사람이 사리를 가지고 조그만 절을 세웠다. 사리는 광명을 발하여 찰봉(刹峯)까지 이르러 사방 사람들이 다 감동했다.

진(晋)의 북쪽 지역 승려 법개(法開)가 절을 세우고 사리를 구함
진(晋)나라 함화(咸和) 때에 북쪽 지역 승려 안법개(安法開)는 여항(餘杭)으로 가서 절을 세우고자 했으나 돈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돈을 꿰는 새끼를 꼬아 팔아 3만 냥을 얻었다. 시장에 집을 짓고 새끼 꼬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절을 세우려 했으나 사리가 없었다. 나유(羅幼)란 사람이 일찍부터 사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법개는 거기 가서 사리를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주지 않았다.
법개는 어느 절에 가서 부처님께 예배했다. 나유의 사리가 그 자리 앞에 있었으므로 그는 나유에게 가서 알렸다. 나유는 그를 따라 절에 가서 사리를 보고 기뻐하여 그것을 법개에게 주었다. 그래서 둘이서 여항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진(晋)의 맹경(孟景)이 절을 세우고 사리 3과(顆)를 얻음
진(晋)나라 함강(咸康) 때에 건안(建安) 태수(太守) 맹경(孟景)이 절을 세우고자 했다. 저녁에 책상머리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찾아보다가 사리 3과를 얻어서 절을 세웠다.
원가(元嘉) 16년 6월에 사리는 광명을 놓아 아래위를 두루 비추다가 이레만에 사라졌는데,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진(晋)의 의희(義熙) 때에 사리 1과가 스스로 나뉘어져 3과가 됨
진(晋)나라 의희(義熙) 원년에 유림읍(有林邑) 사람이 사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재일(齋日)마다 그것이 빛을 내었다.
사문 혜수(慧邃)는 광주 자사(廣州刺史) 조규(刁逵)를 따라 남방에 있으면서 그 빛나는 상을 공경하여 달라고 하려다가 미처 말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사리가 스스로 나누어져 2과가 되었다. 조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또 그에게 가서 그것을 달라 했다. 그런데 사리가 또 나누어져 3과가 되었다.
조규는 장간사(長干寺)의 불상을 본뜨려 했다. 그러나 그 절 주지가 고집을 부리고 들어 주지 않았다. 그 날 밤 꿈에 키가 여러 장(丈)이나 되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 주지에게 말했다.
“불상은 선전하여 교화함이 고귀하거늘 왜 그리 인색한가?”
이튿날 아침에 주지는 조규에게 본뜨는 것을 허락했다. 본뜬 불상이 이루어지자 조규는 그 사리를 불상의 상투 속에 넣었다. 서방에서 오는 불상들이 많이 방광(放光)하는 것은 다 사리 때문이다.

송(宋)의 가도자(賈道子)가 부용꽃 속에서 사리 1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6년에 가도자(賈道子)는 형상(荊上)으로 가다가 부용꽃이 한창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꺾어 집으로 돌아왔다. 꽃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괴상히 여겨 찾아보다가 사리 1과를 얻었다. 진주처럼 흰 꽃이 광명을 내어 온 집을 비추었다. 공손히 받들어 상자에 넣고 벽에 달아 두었다.
그 집안 사람은 항상, 어떤 스님이 밖에서 들어와 가사를 벗고 책상 위에 앉고, 어떤 사람은 그 집에서 자면서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의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를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은 석가의 진신(眞身)으로서 여러 성인들이 와서 경례하는데 너는 왜 나쁜 짓을 하는가?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지고 거기서 나오면 사람의 노비가 될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그 사람은 크게 놀라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사리가 있는 그 집 땅에서는 연꽃 여덟 송이가 나서 60일 만에 시들더니, 1년 뒤에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송(宋)의 안천재(安千載) 집에서 부처님을 받들고 사리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8년에 회계(會稽)의 안천재(安千載)는 그 집안이 모두 불법을 받들었다. 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나가 보았다. 10여 명이 붉은 옷을 입고 재물을 싣고 와서 문안에 쌓으면서 말하였다.
“관청에서 불도(佛圖)를 만들라 한다.”
그리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이튿날 그는 남의 집 재(齋)에 가서 잿밥을 먹다가 사리 1과를 얻었다. 빛은 자금색이고 방망이로 쳐도 깨어지지 않으며 물로 씻으면 광명을 발산했다. 그는 늘 공경했고 사리는 항상 이상한 향기를 내었다. 그 뒤에 사리를 내어 예배하려 했으나 간 곳이 없어 두루 찾아 반나절만에 돌아왔다.
그 때 임천왕(臨川王)이 강릉(江陵)을 진수(鎭守)하러 갈 때 그를 맞이해 갔다. 사리는 가끔 여러 가지 빛을 내었다. 좌사(佐史)와 사문들이 다 사리를 보았으나 그 빛은 같지 않았다. 왕이 그것을 담는 물그릇을 받들고 축원했을 때 그 소리를 따라 그것은 곧 빛을 내었다. 밤에 어떤 사람 1백여 명이 사리가 있는 그 집을 돌고 향을 사르며 꽃을 받드는 것이 마치 부처님께서 나오실 때와 같았다. 날이 밝자 사람들과 사리는 모두 간 곳이 없었다.

송(宋)의 장수원(張須元) 집의 불상 앞 꽃 위에서 사리 수십 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9년에 심양(潯陽)의 장수원(張須元)의 집에서 8관재(關齋)를 베풀었다. 승려와 속인들 수십 명이 불상 앞의 꽃 위가 마치 빙설(氷雪)과 같은 것을 보고 그 자리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사리 수십 과를 얻었다. 물로 씻으니 빛을 계속 내었다. 그 뒤에 그것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며칠만에 부엌문을 열어 다시 치아 사리를 얻었다. 향합 안의 흰 천에 들어 있는 사리 10과는 빛을 발산해 하늘에 닿았다. 여러 나라에서 다 와서 보고 그것을 달라고 했다.

송(宋)의 유응지(劉凝之)가 액자 밑에서 사리 2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15년에 남군(南郡)의 유응지(劉凝之)는 형산(衡山)에 들어가 숨어살면서 나라에서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5두미(斗米)의 도(道)를 받들면서 불법은 믿지 않았다. 꿈에 어떤 사람이 땅에서 여러 장(丈) 떨어진 공중에서 그에게 말했다.
“너의 의심이 비로소 풀릴 것이다.”
그는 깨어나 갑자기 깨치고는, 반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부처님께 예배했다. 갑자기 액자 밑에서 자색 광명을 보고 그 자리를 더듬어 사리 두 과를 얻었다. 그것은 쪼개도 때려도 깨지지 않고 물에 씻으면 광명이 나며 밥을 먹을 때는 치아 사이에 숨고 뱉으면 또 광명을 내었다. 그 아내와 아들이 또 1과 씩 얻어 모두 5과가 되었다. 그 뒤에도 갑자기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 곧바로 얻었다.

송(宋)의 서춘(徐椿)이 독경하다가 사리 2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19년에 고평(高平)의 서춘(徐椿)은 경을 읽고 밥을 먹다가 사리 2과를 얻어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뒤에 다시 보았을 때는 그것이 차츰 불어나 20과가 되었다. 그는 그 뒤에 광릉령(廣陵令) 유복(劉馥)의 집에 기숙하고 있었다. 유복이 가만히 그 항아리를 열어 보았을 때 그 항아리는 비어 있었는데 서춘이 고향에 돌아갔을 때는 그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나 그 뒤에 그가 타락하자 그것들은 다 간 곳이 없었다. 사리의 응현(應現)을 본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공경하는 사람은 얻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잃는다.
사리가 동방으로 흘러 들어와 여러 임금의 대(代)를 지냈지만 그 전기에 전하는 것은 만에 하나도 안 된다. 사상(事相)이 거듭되고 응현(應現)이 잦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신기한 것이 아니었으니, 부처님의 교화가 잠기고 숨는 것은 실로 그 까닭이 있어서이다. 그러나 탑을 세우는 나라도 있었다. 그 중에도 수(隋)나라 때가 제일이었으니, 교화가 미친 한 경계 안에 1백여 군데가 있어 신기한 감응이 많이 나타났다. 모든 별전(別傳)에 있는 것을 지금 대충 뽑아 내어 그 감득(感得)을 표한다.

수문제(隋文帝)가 세운 불사리탑(佛舍利塔)[28주(州)에 탑을 세우고 53주(州)에 상서로운 감응이 있었다.]
옹주(雍州)의 선유사(仙遊寺)ㆍ기주(岐州)의 봉천사(鳳泉寺)ㆍ화주(華州)의 사각사(思覺寺)ㆍ동주(同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ㆍ경주(涇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ㆍ태주(泰州)의 대악사(垈岳寺)ㆍ병주(幷州)의 무량수사(無量壽寺)ㆍ정주(定州)의 상악사(常岳寺)ㆍ숭주(嵩州)의 숭악사(嵩岳寺)ㆍ상주(相州)의 대자사(大慈寺)ㆍ곽주(廓州)의 연운악사(連雲岳寺)ㆍ형주(衡州)의 형악사(衡岳寺)ㆍ양주(襄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ㆍ모주(牟州)의 거신산사(巨神山寺)ㆍ오주(吳州)의 회계산사(會稽山寺)ㆍ소주(蘇州)의 호구산사(虎丘山寺).
이상 17주(州)의 절에 세운 탑은 절의 재물과 정고(正庫)의 재물로 만든 것이다.
진주(秦州)ㆍ과주(瓜州)ㆍ양주(楊州)ㆍ익주(益州)ㆍ호주(毫州)ㆍ계주(桂州)ㆍ교주(交州)ㆍ여주(汝州)ㆍ번주(番州)ㆍ장주(蔣州)ㆍ정주(鄭州).
이상 11주(州)는 산수(山水)와 주현(州縣)의 절 등 청정한 곳을 따라 탑을 세운 것이니, 그곳에서 나온 물건은 앞의 것과 같다. 문하(門下:제자)는 우러러 생각합니다. 정각(正覺)께서는 대자대비로 중생을 구호하고 만물의 나루터와 다리가 되십니다. 짐(朕)은 3보(寶)께 귀의하고 성교(聖敎)를 다시 일으켜, 4해(海) 안의 일체 인민들과 함께 보리심(菩提心)을 내고 복업(福業)을 닦기를 생각한다. 우리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에서 길이 선인(善因)을 지어 다 함께 묘과(妙果)에 오르게 하라.
짐(朕)은 사문 30인과, 법상(法相)을 잘 알고 또 선교하고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을 청하여, 그들에게 각각 시자(侍者) 2인을 주고 또 산관(散官)에게 각각 한 사람을 주어 120근의 향을 사르고, 말 다섯 마리로 길을 나누어 사리를 보내어, 앞에 적은 여러 주(州)에 가서 탑을 세우려 한다. 그것은 저 천륙사(川陸寺)와 같은 것으로서 산수사(山水寺)에 세운 탑도 그대로 있다.
그 산에 본래부터 절이 없으면 그 주(州) 안에 있는 청정한 절터에 그 탑을 세우리라. 맡은 바 도량을 만들 사람을 그 주(州)에 보내되, 스님이 많으면 360명, 그 다음은 240명, 또 그 다음은 120명이며 스님이 적을 때는 거기 있는 스님을 다 쓸 것이다.
그리하여 짐(朕)과 황후ㆍ태자ㆍ여러 왕자ㆍ왕손 등 및 내외의 관리와 일체 신민(臣民)과 유현(幽顯)의 생령(生靈) 등을 위해 각각 7일 동안 도를 행하고 또 참회하며 도를 행하는 날에는 타찰(打刹)할 것이다. 그 주(州)나 다른 주를 불문하고 그 사람에 맡겨 보시하게 하되, 돈은 10문(文) 이하로 한정하고 10문 이상은 못 하게 할 것이다. 보시한 돈으로 모두 탑을 만들 때 만일 돈이 적어 충당할 수 없으면 부역을 시키거나 창고의 물건을 쓸 것이다.
적국 모든 주(州)의 승니(僧尼)들은 다 사리를 위해 재(齋)를 지내되, 10월 15일 오시(午時)를 기한하고, 또 그 때에 사리를 돌 함에 넣을 것과 자사(刺史) 이하, 현위(縣尉) 이상이 총관(總管)하고, 군기(軍機)가 아니면 일상 사무는 정지하고 7일 동안은 오로지 도를 행하고 타찰(打刹)하는 일 등을 검사할 것이니, 주관하는 자는 부디 정성과 공경을 다해 짐의 뜻에 부응(副應)하도록, 시행하라. 인수(仁壽) 원년 6월 13일, 내사령(內史令) 예장왕(豫章王) 신(臣) 간(暕)은 포고하노라.

사리감응기(舍利感應記) 20권(卷)[수(隋)의 저작랑(著作郞) 왕소(王邵) 지음]
황제(皇帝)가 옛날 용잠(龍潛)으로 있을 때 어떤 바라문과 사문이 택상(宅上)에 와서 사리 1과를 내놓으면서 말하였다.
“단월(檀越)의 마음이 좋으시기 때문에 이것을 여기 둡니다. 공양하십시오.”
사문이 떠난 뒤에는 아무리 찾아도 그의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그 뒤에 황제는 사문 담천(曇遷)과 함께 각각 그 사리를 손바닥에 놓고 세어 보았다. 그런데 적기도 하고 많기도 하여 그 수가 일정하지 않았다. 이에 담천이 말했다.
“저는 일찍이 바라문의 말을 들었는데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수량(數量)을 뛰어넘은 것이어서 세간에서 헤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로소 7보의 상자를 만들고 사리를 거기에 넣어 두었다. 신니 지선(神尼智仙)이 말하였다.
“저는 장차 온 천하의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 불법을 다시 일으키고 일체의 신명(神明)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 뒤에 과연 주(周)씨가 불법을 없애고 수나라 왕실[隋室]이 천명(天命)을 받아 다시 불법을 일으켰다. 황제는 늘 그 신니의 말을 생각하고 말하였다.
“내가 일어난 것은 부처님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사리탑 안에 각각 신니상(神尼像)을 만들리라.”
황제와 황후는 경사(京師)의 법계니사(法界尼寺)에 기초를 이은 부도를 만들어 묵은 소원을 갚고 그 밑에 사리를 안치했다. 개황(開皇) 15년 늦가을 밤에 신광(神光)이 탑의 기부(基部)에서 올라와 노반(露盤)을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그 번쩍임이 풀무의 불꽃같았다. 열흘 동안에 이런 일이 네 번 있었다.
황제가 인수(仁壽) 원년 6월 13일에 인수궁(仁壽宮)의 인수전(仁壽殿)으로 납시니 그 날은 본래 탄생하시던 날이었다. 해마다 이 날이면 깊은 마음으로 길이 생각하면서 복과 선을 닦고 부모의 은혜를 갚으려 했다. 그러므로 덕이 많은 사문을 청해 지극한 도를 이야기하며, 장차 해내(海內)의 모든 주(州)에서 고상(高爽)하고 청정(淸靜)한 30군데를 가려 각각 사리탑을 세우려 했다. 이리하여 황제는 7보의 상자에서 30과의 사리를 내어 어좌(御座)의 책상 안에 두고 여러 사문을 청해 향을 사르고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제자는 항상 정법으로 3보를 호지하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나이다.”
그리고 곧 금병과 유리병을 각각 30개씩 가져와 유리병 안에 금병을 담고 금병 안에 사리를 넣었다. 육향(陸香)을 살라 진흙을 만들어 그 뚜껑에 바르고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10월 15일 정오를 기해 30주(州)에서는 각각 구리 함과 돌 함에 사리를 넣어 한꺼번에 탑을 세우기로 했다. 그리하여 사문들이 각각 사리를 모든 주(州)에 보낼 때는 일체의 승려와 속인들이 다 그 경내(境內)에서 향과 꽃을 장엄해 가지고 보당(寶幢)을 세우며 음악을 울리고 길을 소제하는 등 정성과 힘을 다해 그 사리를 맞이했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 말할 수 없으며, 그 사리의 영험은 널리 전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대충 10여 가지만 써서 뒷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 날 황제는 황후와 태자 및 궁내의 비빈(妃嬪)들과 함께 정성으로 마음과 힘을 다해 참회하고 두루 중생을 위해 좋은 인연을 함께 맺었다. 황제는 어떤 이상한 스님이 갈색 가사로 어깨를 덮고 곁의 사람들에게 “남을 놀라게 하지 말라”하면서 사리를 두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에 아무리 찾아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니, 사리가 장차 퍼지려는 것이었다. 황제는 말하였다.
“지금 불법이 다시 일어나려 하니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이다.”
그 뒤 곳곳에서 올리는 글이 다 그의 말과 같았다. 황제는 그 10개월 동안 밥을 먹을 때마다 늘 치아 밑에서 사리를 얻었는데 황후도 그러했다. 은 소반에 물을 담고 사리 1과를 물에 띄워 백관(百官)들에게 보였다. 잠깐 사이에 그것은 2과가 되어, 물에서 오른쪽으로 돌다가 2과가 한데 붙었다.
귀인(貴人) 및 진왕(晋王) 소(昭)와 예장왕(豫章王) 간(暕)은 황제가 내린 벼루를 받았는데, 각각의 벼루 안에 사리 한1과가 들어갈 만했다. 보름이 못 되어 궁내에는 사리가 19과나 되었으며 그것은 다 광명을 발했다. 그 뒤로 4방의 승려와 속인들이 그들이 가진 사리를 다 황제께 바쳤다. 황제는 말하였다.
“어찌 모두 반드시 진신(眞身)이겠느냐?”
사문들이 그것을 시험삼아 망치로 때려 보았다. 거기에는 과연 13알의 옥속(玉粟)이 있었고 그 진신사리가 든 철갑(鐵匣)은 손상이 없었다.
옹주성(雍州城) 서쪽 주지현(盩厔縣)의 남쪽에 있는 선유사(仙遊寺)에 탑을 세우는 날은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산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사리를 넣으려 하자 어두운 구름이 갑자기 흩어지고 햇빛이 밝게 비치었다. 승려와 속인들이 다 흩어진 뒤에 구름이 다시 전처럼 모였다.
기주(岐州)의 봉천사(鳳泉寺)에 탑을 세울 때 옥 같은 문석(文石)을 감득(感得)하여 그것으로 함을 만들었다. 또 쌍수(雙樹)와 새ㆍ짐승의 영상(靈祥)이 나타나고 기석(基石)은 변해 수정같이 되었다.
경주(涇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에 탑을 세울 때 세 곳에서 각각 오래 된 돌을 보내 왔는데 세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합해 함을 만드니 서로가 꼭 맞았다.
진주(秦州)의 정념사(靜念寺)에 탑을 세우려고 기초를 정하자 상서로운 구름이 다시 덮이고 눈이 내리며 초목들은 모두 꽃을 피웠다. 사리를 함에 넣자 광명이 비치고 찬탄하는 소리가 있었다.
화주(華州)의 사각사(思覺寺)에 탑을 세울 때 처음에 눈이 내리다가 사리를 넣자 햇빛이 빛나고 5색 광명이 수십 장 높이로 비치어 탑 위를 덮고 마침 하늘은 보배꽃을 내렸다.
동주(同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에 탑을 세울 때 비를 만나 피할 곳이 없었는데, 사리를 함에 넣자 갑자기 구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밝게 비치며, 또 신기한 광명이 해를 겹으로 쌌다. 12개월 동안에는 밤에 빛이 50리를 비추었다.
포주(浦州)의 서암사(栖岩寺)에 탑을 세울 때는 땅이 진동하고 산이 부르짖으며 종이 큰 소리를 내었다. 또 광명이 5도(道)에 비치어 2백 리 밖에서 모두 그것을 보았다.
병주(幷州)의 무량수사(無量壽寺)에 탑을 세울 때 처음에는 낮에 구름이 모였다가 사리를 함에 넣으려 하자 하늘이 개이고 햇빛이 나며, 다시 신기한 광명이 5색을 놓으며 천신(天神)이 형상을 나타냈는데, 그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정주(定州)의 북악사(北岳寺)에 탑을 세울 때 어떤 노인이 흙을 지고 와서 땅에 모두 깔고는 간 곳이 없었다. 여기는 옛날부터 물이 없었는데 갑자기 흐르는 물이 앞뒤로 하나만이 아니었다.
상주(相州)의 대자사(大慈寺)에 탑을 세울 때에는 하늘이 어둡고 눈이 내리다가 사리를 함에 넣으려 하자 해가 났다. 사리를 넣은 뒤에는 구름이 다시 모이고 하늘에서 기이한 꽃이 매우 많이 내리쏟아졌다.
정주(定州)의 정각사(正覺寺)에 탑을 세울 때에는 신령스런 광명이 마치 흐르는 별처럼 절에 들어왔다. 공양을 차렸는데 20만 명이 다 먹지 못했다.
숭주(崇州)의 한거사(閑居寺)에 탑을 세울 때 흰토끼가 가마 앞에 오고, 처음에는 눈이 내렸다. 사리를 함에 넣으려 하자 날이 개었다가 넣고 나자 구름이 다시 모였다.
호주(毫州)의 개적사(開寂寺)에 탑을 세울 때 그 경내(境內)에는 돌이 없었다. 딴 곳에서 세 개의 돌을 가져와서 그것을 붙여 함을 만들었다. 탑 기부(基部)에는 반석이 있고 두 우물이 그것을 끼고 있었다.
여주(汝州)의 흥세사(興世寺)에 탑을 세울 때 처음에는 어두운 구름에 눈이 내리다가 사리를 내리자 하늘이 개이더니, 함에 넣은 뒤에는 구름이 다시 모였다.
태주(泰州)의 대악사(垈岳寺)에 탑을 세울 때 밤에 북소리가 울리고 세 겹의 문이 저절로 열리며, 어떤 말 탄 사람이 나와 맞이하는 등, 빛나는 영험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청주(靑州)의 승복사(勝福寺)에 탑을 세울 때 터를 파다가 저절로 된 반석의 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탑에 넣으려 하자 광명의 영험이 나타났다.
모주(牟州)의 거신산사(巨神山寺)에 탑을 세울 때 자색(紫色) 지초(芝草) 세 줄기를 얻고, 구름이 끼었다가 사리를 내리려 하자 날이 개고, 탑 문을 닫은 뒤에는 구름이 다시 모였다.
수주(隨州)의 지문사(智門寺)에 탑을 세울 때 터를 파다가 신령스런 거북을 얻고 감로(甘露)가 내리며 벌이 돌면서 날고 있었다. 거북에는 상서로운 무늬가 있었다.
양주(襄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에 탑을 세울 때 처음에는 구름이 끼었다가 사리를 내리려 하자 날이 개었으며, 사리를 함에 넣은 뒤에는 구름이 다시 모였다.
양주(楊州)의 서사(西寺)에 탑을 세울 때는 오래 가물었는데 사리가 경내(境內)에 들어오자, 그 밤에 비가 흡족하게 왔다.
장주(葬州)의 서하사(栖霞寺)에 탑을 세울 때 이웃 사람이 먼저, 부처님께서 서쪽에서 오셔서 절에 들어오시는 꿈을 꾸었는데, 꿈과 같이 이르렀다.
오주(吳州)의 대우사(大禹寺)에 탑을 세울 때, 사리가 다섯 강에 떠서 왔는데 풍파가 일지 않았다. 또 사리는 신령스러운 광명을 발산했고 사람은 자색 지초를 얻었다.
소주(蘇州)의 호구사(虎丘寺)에 탑을 세울 때, 탑 세울 터를 파다가 사리 1과를 얻었다. 공중에서 나는 하늘 음악소리를 사람들이 다 들었고 우물이 사흘 동안 울었다. 그 때 사리가 비로소 왔다.
형주(衡州)의 형악사(衡岳寺)에 탑을 세울 때 네 번이나 바람이 거슬러 불어오고 물이 바로 흐르기를 네 번 빌었다. 그러자 산봉우리 위의 흰 구름은 넓이 2장(丈)으로 퍼져 그 자리에 바로 내려와 세 번 돌고 갔다.
계주(桂州)의 연화사(緣化寺)에 탑을 세울 때 10리를 못 가서 천 마리쯤 되는 새가 가마를 호위하고 날아가다가 성 안에 들어가자 곧 흩어졌다.
번주(番州)의 영취사(靈鷲寺)에 탑을 세울 때 구덩이 안에서 신선이 나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기상을 나타내었다.
익주(盆州)의 법취사(法聚寺)에 탑을 세울 때 처음에는 어두운 구름이 끼었는데 가마에서 사리를 내리자 해가 빛나고, 탑 문을 닫자 다시 구름이 끼었다.
곽주(廓州)의 법강사(法講寺)에 탑을 세울 때 처음에 성 밖 서쪽으로 갔는데, 그 날 밤에 곽주에서 여러 장(丈)의 광명이 나타나 동쪽에서 와서 땅 속으로 들어갔다. 안팎 사람들이 다 보았다.
수주(隨州)의 관인(官人) 왕위(王威)가 귀양갈 사람 90인을 잡아 귀양을 보내게 되었다. 길에서 사리를 모시고 오는 사람을 만나 다 함께 선심을 내어 죄수를 놓아주되 기한을 정했다. 그 죄수들은 놓여나 한 기한에 천 리를 가는 동안 한 사람도 달아나는 자가 없었다.
수주(隨州)의 어떤 사람은 운수(溳水)가에서 어옥(魚獄) 3백 개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그 집의 대대로 내려오는 직업이었다. 그는 사리를 보자 어옥을 부수어 고기를 다 놓아주었다. 그리하여 이 악법을 아주 끊었고 다른 주(州)에서도 그것을 본받았다.
사리의 감응을 경축하는 글[表]과 답
수(隋)의 안덕(安德) 왕웅(王雄)과 백관(百官) 등
“신(臣) 웅(雄) 등은 말합니다. 신은 들었습니다. 대각(大覺)은 이치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어서 그 이치가 공유(空有)를 비추고 지성(至聖)은 허응(虛凝)하여 그 이치에는 생멸(生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상은 나뉘어져 겨자처럼 모이더라도 금 항아리에 담겨지고 몸은 흩어져 티끌처럼 날리더라도 보배로운 절을 일으킵니다. 제석천(天)이 재[灰]를 청하고 아육왕(王)이 탑을 세운 이래로, 아직 사리를 나누어 펴 훌륭한 업을 이어 융창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황제께서는 오랜 겁(劫)에 선인(善因)을 쌓아 전생에 보리를 증득하시고 사람의 왕으로 강탄(降誕)하시어 세계를 호지하십니다. 지난번에 도가 멸한 것은 시운[運]에 달려 있는 것이어서, 인사(仁祠)가 폐지되고 헐렸으며, 자비 등불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지혜 바다의 흐름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황조(皇祚)가 이미 일어났고, 법의 북이 한창 울립니다. 그리하여 구우(區宇)의 안이 다 정토(淨土)가 되고, 생령(生靈)의 무리들이 모두 범운(梵雲)에 덮였습니다.
지난 여름 6월에는 조서(調書)를 내려 사문을 청해 맞이하고, 사리를 30주(州)에 보내어 10월 15일에 동시에 탑을 세웠습니다.
그러하온데 포주(蒲州)의 서암사(栖岩寺)에 탑을 세우려 계획한 곳에 있어서는 이 산 위에 종과 북 소리가 있었으며, 사리를 강당에 맡기자 그 날 밤에 사리가 부도 위에서 큰 광명을 발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광명은 강당 안에서 흘러 나와 온 방 안을 가득 비추었습니다. 사리를 구리 함에 넣을 때에는 또 광명이 향로의 향 연기처럼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부도의 보병(寶甁)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자색 불꽃을 내어 혹은 흩어지고 혹은 모이면서 다 연꽃이 되었습니다. 또 부도 위에 광명이 있어서 그 현상은 불상과 같아 화부(華趺)를 완전히 갖추고 오래 있다가 차츰 사라졌습니다. 또 어떤 광명이 부도의 보병을 도는 것을 포주 성내에 있는 인수사(仁壽寺)의 스님들이 멀리서 모두 보았습니다. 그것은 산꼭대기에 있는 누각과 같았고 산봉우리와 시내 골짜기들이 모두 환히 보였으며, 그것은 포주성의 동남 한 모퉁이를 한참 동안 비추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서암사는 곧 태조(太祖) 무원황(武元皇)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또 화주(華州)에 탑을 세울 때에는 구름과 안개가 끼고 큰 눈이 오다가 갑자기 날이 개었고, 바로 탑 위에는 5색의 상륜(相輪)이 있었으며 사리를 내려놓은 뒤에는 구름과 안개가 다시 일었습니다. 황제와 황후께서는 또 사리를 얻으셨습니다. 그것은 빛을 흘리고 채색을 흩으면서 혹은 나타났다가 혹은 잠기었으니, 지극한 덕과 정성이 영성(靈聖)에 합한 것이 아니면 어찌 그 신공(神功)과 묘상(妙相)이 이처럼 기특할 수 있겠습니까? 신(臣) 등은 지금 한창 나이에 이미 태평한 세상을 보았고 살아서 좋은 업을 얻어 비로소 번뇌의 경계를 벗어났습니다. 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글을 올려 경축하나이다.”

황제의 답
“문하(門下)가 우러러 생각하니, 정각(正覺)께서는 중생을 구호하실 때 생령(生靈)을 고해(苦海)에서 건지시고 어리석고 미혹한 이를 화택(火宅)에서 구제하신다.
그러므로 짐(朕)은 지극한 마음으로 회향(廻向)하고 생각을 맺어 귀의하는 것이다. 온 천하의 신민(臣民)과 유현(幽顯)에 이르기까지 다 함께 뛰어난 업을 숭상하고 좋은 인(因)을 짓기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리를 분포(分布)하여 신탑(神塔)을 건립할 때, 대성(大聖)은 자민(慈愍)하여 광상(光相)을 자주 보이시고 궁전 안에 사리가 강령(降靈)하니, 그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자연히 변현(變現)하는 것이다. 짐은 기쁘게 정대(頂戴)하면서 일찍이 없던 일을 얻었다. 이것은 실로 중생이 다행하여 이런 아름다운 복을 맞이한 것이니 어찌 짐의 미미한 정성으로 이런 감응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제 왕공(王公) 들의 글을 보니 두려워하고 공경함이 더욱 깊다. 짐과 왕공 등 모든 백성들은 마땅히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3보(寶)를 흥륭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 사리의 참 형상이 50과가 있으니, 소사(所司)는 전의 의식에 의해 해내(海內)에 나누어 보내라. 3도(塗)ㆍ6도(道)가 다 함께 번뇌를 면하고 품식(禀識)과 함령(含靈)이 다 같이 묘과(妙果)에 오르기를 바란다. 주관하는 자는 잘 시행하라.”
고구려ㆍ백제ㆍ신라 3국의 사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각각 사리 1과씩을 청해, 본국에 탑을 세우고 공양하겠다고 했다. 황제는 명령을 내려 다 허락했다. 그리고 황제는 경사(京師)의 대흥사(大興寺)에 탑을 세우라 명했다. 먼저 사리를 상서도당(尙書都堂)에 두고 12월 2일 아침에 출발했다. 이 때 하늘은 청명하고 기운은 온화하며 바람은 고요했다. 보배 수레와 번기ㆍ당기와 향ㆍ꽃ㆍ음악 등 갖가지 공양이 거리에 가득 차고, 몇 천만억인지 알 수 없는 승려와 속인 백성들은 그 복장과 행동이 조용하여 질서가 있었다. 상주국(上柱國) 사공공(司空公) 안덕(安德) 왕웅(王雄) 이하는 다 걸어서 절로 가서 무차대회(無遮大會)를 베풀고 예참(禮懺)했다. 푸른 새가 대중 속에 친압해 들어 왔으므로 어떤 사람이 허리에 차는 칼을 빼서 던져 보시했는데 사람들 속에 떨어졌으나 모두 상한 데가 없었다.
인수(仁壽) 2년 정월 23일에 다시 사리를 53주(州)에 분포하여 탑을 세우려 했다. 그 때 총관 자사(總管刺史) 이하 현위(縣尉) 이상으로 하여금 7일 동안 통상의 사무를 폐하게 하고 스님을 청하여 도를 행해 교화하고 타찰(打刹)하며 보시 돈 10문(文) 등 모두 이전의 의식에 의거해서 행했다. 4월 8일 정오를 기해 온 나라에 동시에 사리를 내려 그것을 돌 함에 넣어 봉했다. 그 때에 감득(感得)한 상서로운 감응은 따로따로 적으면 이하와 같다.

상주(常州)[구름도 비도 없고 하늘에서는 상서로운 꽃이 내려 온 성(城)을 두루 덮었다.]
천주(泉州)ㆍ순주(循州)ㆍ영주(營州) [흰 광명을 세 번 놓고 오래된 돌을 감득(感得)하여 그것을 깨어 함을 만들었다.]
홍주(洪州)[머리가 흰 까마귀가 계속해서 길을 인도했다.]
항주(杭州)[그 자리를 팔 때 흰 석굴이 있었고 돌 함에 사리를 넣었다.]
양주(凉州)ㆍ덕주(德州)[큰 새가 탑을 도는 것을 감득했는데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창주(滄州)ㆍ관주(觀州)[탑 위에 5색 구름이 나타나 낮에서 저녁까지 있었다.]
영주(瀛州)[터 안에서 자색 지초가 나타났다.]
기주(冀州)[장님과 절름발이가 다 나았다.]
유주(幽州)[돌 함이 수경(水鏡)과 같아 광명을 놓아 온갖 상(像)을 나타내었다.]
서주(徐州)[돌 함이 신선과 성승(聖僧) 등의 상(相)을 나타내었다.]
여주(莒州)[신령스런 광명을 세 번 나타내고 그 터에서 오래된 탑을 얻고 벙어리가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齊州)ㆍ내주(萊州)ㆍ초주(楚州)[들 사슴이 안상탑(雁翔塔) 위에 와서 들었다.]
강주(江州)[땅에서 동상(銅像)이 나왔다.]
담주(潭州)[사리가 강에 이르자 신조(神鳥) 천 마리가 맞이하였다.]
모주(毛州)[하늘이 금은화(金銀華)를 내렸다.]
패주(貝州)ㆍ송주(宋州)[우물 맛이 쓰던 것이 단맛으로 변하고 광명을 발하였으며 하늘에서 상서로운 꽃이 눈처럼 내렸다.]
조주(趙州)[붉은 광명을 발산하고 상서로운 상(像)이 헤아릴 수 없었다.]
제주(濟州)[광명을 두 번 발산하고 향기가 있었으며 종소리가 산의 구름 끝에 메아리쳤다.]
곤주(袞州)ㆍ수주(壽州)ㆍ신주(信州)ㆍ형주(荊州)[구름이 탑 위를 덮고 비처럼 내리는 꽃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주(蘭州)[터 밑에서 돌부처를 얻고 또 두 동상을 얻었다.]
양주(梁州)ㆍ이주(利州)[발산하는 광명이 해와 달과 같았다.]
노주(潞州)[영천(靈泉)이 저절로 솟고 병자의 병이 나았다.]
여주(黎州)[땅 밑의 와문(瓦文]은 천추(千秋)에 즐거이 움직였다.]
자주(慈州)[구름 일산이 하늘을 나는 신선과 같았고 영천(靈泉)이 솟아나며 병이 나았다.]
위주(魏州) 변주(汴州)[자주 광명을 발산하고 하늘에서 보배 꽃이 내려 사람들이 다 그것을 얻었다.]
심주(沈州)[기이한 향기와 광명을 내며 상(像)을 보고 병이 나았다.]
허주(許州)[그 주(州)의 90리 밖까지 광명을 놓아 탑 덮개를 비추고 단 우물이 솟아났다.]
예주(豫州)[5색 광명이 나타났으며 문자도 5색이었다.]
현주(顯州)ㆍ조주(曹州)[광명의 변화가 가장 번성했다.]
안주(安州)[하룻밤 동안 향기를 감득했고 광명을 놓고 구름 일산이 고기떼처럼 모였다.]
진주(晋州)[5색 광명을 세 번 발산했다.]
회주(懷州)[숫토끼가 스스로 와서 친하고 광명을 놓는 이적이 있었다.]
협주(陜州)[전후 열한 번 광명의 기적이 나타났다.]
낙주(洛州)[향기가 바람 같고 자주 광명을 놓았다.]
등주(鄧州)[함에서 옥 무늬가 나타났다.]
진주(秦州)[사리를 거듭 얻고 돌 함이 마노(馬瑙)함으로 변했다.]
위주(衛州)[광명이 밖을 비추었다.]
소주(沼州)[어떤 스님이 전부터 허리를 앓았는데, 움직이지 않다가 사리가 온다는 말을 듣고 10리까지 마중 나가 병이 나았다.]
정주(鄭州)[광명을 놓아 번기 안이 환히 밝았다.]
기주(杞州)[5색 광명을 놓았다.]
이상 모두 53주(州)인데, 40주로부터 다 영서(靈瑞)가 있었으나 모두 열거할 수 없다. 자세한 것은 대전(大傳)에 있다.
이하에 명본(明本)과 원본(元本)에 의해 수록(收錄)한 것이 있으나 본문(本文)과 중복되므로 생략한다.


法苑珠林卷第四十 假 二十七紙 守呂西明寺沙門釋 道世 撰舍利篇第三十七此有五部 述意部 引證部 佛影部 分法部 感福部述意部第一夫聖德,遐邈冠絕人天,理妙六經神高。百氏超群有之遺蹤,越賢良之勝迹化緣旣。畢從俗韜光故雙樹,八枝隨義所表舍利八,分亦逐緣感會入金剛定。預碎全身欲使福被,天人功流海陸,至於牙齒髮爪,之屬頂蓋目睛,之流衣鉢甁杖之具。坐處足蹈之迹囊括,今古聖變無窮祥應?荐臻瑞光、頻朗、賢、愚、共睹、豈猜、來惑,且如三皇五帝夏殷,文武孔丘。莊老惟聖惟賢,共遵共敬莫不葬骨。五泉遺塵九土聲光,寂寞孰識其蹤罕知生福?奚感來報豈比,能仁大聖形影。垂芳應感之道,不窮敬仰之風。逾遠紹化迹於大千拔沈冥於沙界致使開示之道隨義或殊會空之旨齊其一實也守呂引證部第二舍利者西域,梵語此云身骨。恐濫凡夫死人。之骨故存梵,本之名舍;利有其三種,一是骨舍;利其色白也,二是髮舍。利其、色黑也,三是肉舍。利其色赤也,菩薩羅漢;等亦有三種若,是佛舍利椎打不碎若是弟子舍利椎擊便破矣又菩薩處胎經云,世尊告諸大衆念我。古昔所行功德捨身。受身非一非二,今當爲汝說一形。法諸佛全身舍利盡在下,金剛剎中金剛剎厚,八十四萬。億里下有,諸佛碎身。舍利盡在彼剎,彼有佛剎。名曰妙香佛。名不住如:來十號具足今現在說法佛告,大衆碎身。舍利下厚,八十四萬。億里國土淸淨佛。名徧光十號,具足彼佛今,現在說法。復下有國土,名施無,盡藏佛名。勸助復下有國土名,法鼓佛名善見彼土乃有。全身舍利過去億千。’萬佛皆留舍利:‘彼土,舍利我亦有:分又海龍王經云爾,時諸龍白佛言今世尊還閻浮利地海中諸龍無所依仰,惟加大哀。佛滅度時,在此大海留全舍利;一切衆類皆得供養,轉加功德,速脫龍身,疾得無上正眞之道。唯佛垂恩,威德兼加,所願得果。佛言:善哉!從爾所志。須菩提謂諸龍言:一切人天舍利須徧普蒙獲濟。卿等求願使佛舍利獨全奉侍,一切衆生何緣得度?諸龍荅言:唯須菩提,勿宣斯言。無以己身限礙之智,以限如來無極之慧。如來聖德無不變現,三千世界各各化現。佛全舍利不增不減,普現一切。譬如日影現於水中。佛亦不生亦不滅度,云何欲限如來智慧者乎?須菩提聞,默而無言。佛歎諸龍:仁等賢明。誠如所云,無有異也。佛道高妙,無邊無際,無方無圓,無廣無狹,無遠無近,譬如虛空不可爲喩。’佛影部第三如觀佛三昧經云:‘佛初留影石室,在那乾呵囉國毒龍池側阿那斯山巖南。有五羅剎女,與毒龍通,常降雹雨,百姓飢疫,已歷四年。時,王禱祀呪龍,羅剎女氣盛呪術不行。王長跪合掌,讚佛通慧:應知我心,願屈慈悲,光臨此國。爾時,如來往至彼國,龍興雷電鱗甲煙焰,五羅剎女眼如掣電。時,金剛神手把大杵,杵頭火然如旋火輪,燒惡龍身。龍王驚怖,走入佛影,如甘露灑,見諸金剛,極大惶怖,爲佛作禮。五羅剎女,亦禮如來。龍王於其池中,出寶臺奉佛。佛言:不須汝臺。但以羅剎石窟施我。諸天各脫寶衣拂窟,佛攝神足,獨入石室,令此石上蹴爲七寶。時,龍爲四大弟子及阿難,造石窟。爾時,世尊從石窟出。時,龍聞佛還國,啼哭雨淚:云何捨我?我不見佛,當作惡事,墜墮惡道。’佛安慰龍:‘我受汝請,當坐汝窟中,經千五百歲。佛坐窟中,作十八變,踊身入石,猶如明鏡。在於石內,映現於外,遠望則見,近望不現。諸天百千供養佛影影亦說法迄今猶在分法部第四如菩薩處胎經云:‘時八國王共諍舍利。有一大臣名優波吉,諫八國王:‘何爲興兵共相征伐?爾時,帝釋卽現爲人,語王言:我等諸天,亦當有分。若共諍力,則有勝負幸可見與勿足爲難。’爾時,阿耨達龍王、文鄰龍王、伊那鉢龍王,語八王言:我等亦應有分。若不見與,力足相伏。時,臣優波吉告言:‘諸君竝止。舍利宜共分之,何須見諍?卽分爲三分。一分與諸天,一分與龍王,一分與八王,分甕受一石餘。此臣以蜜塗甕裏,以甕量分。諸天得舍利,還於天上,卽起七寶塔。龍得舍利,還於宮中,起七寶塔。臣優波吉著甕舍利,幷甕亦起寶塔。灰及土量得四十九斛,亦起四十九寶塔,闍維處亦起寶塔,高三十九仞。’一仞七尺。又阿育王經云:‘八國王諍舍利,各起兵。天帝釋自下曉喩,以金甖分之,闍王共數各得八萬四千舍利,餘有佛口一髭,無敢取者。以闍王初來得舍利及髭,還各歡喜,作樂動天。難頭禾龍王化作人身,到泥洹所,道逢闍王。還語王言:可持一分見與。王言:不可得。龍王言:我是難頭禾龍,能擧卿國土,著八萬里外,磨碎成屑。闍王怖懼,卽奉佛髭與之。龍王卽還須彌山下,起水精塔,高八萬四千里。起水精瑠璃塔。闍王終後,阿育王得其國土。時,有大臣白阿育王言:難頭禾龍先輕闍王,奪佛髭去。阿育王聞,大瞋怒,卽勅諸鬼神王作鐵網鐵罝,縱罝須彌山下水中欲縛取龍王。龍大驚怖,共設計言:阿育事佛。當伺其臥取宮殿,移著須彌山下水中。其瞋必息,卽便遣龍捧取育王宮殿。王臥覺不知是何處,見水精塔,高八萬四千里,喜怖交心。龍自出謝言:闍王自與我佛髭,我不奪也。佛在世時,與我要言:般泥洹後,劫盡之時,所有經戒及袈裟應器,我皆當取藏著是塔中。彌勒來下,當復出著。阿育王聞此言,大謝:實不知此。龍王便使諸龍還復王宮殿,置於本處。’又善見論云:‘帝釋宮內,有二舍利。一佛右牙,二佛右缺盆骨。’又十誦律云:‘佛般泥洹,八國皆來求舍利,各擧四兵,八軍圍繞。有一婆羅門,姓煙,高聲大唱言:諸力士舍利現在當分作八分。諸力士言:敬如來議。更復唱言:盛舍利甁請以見惠,還頭那羅聚落起塔。時,畢波羅延那婆羅門,復請燒佛處灰,還國起塔。時,拘尸城力士,得第一分起塔;波婆國得第二分,還國起塔;羅摩聚落得第三分,還歸起塔;遮勒國諸剎帝利得第四分,還國起塔;毘㝹諸婆羅門得第五分,還國起塔;毘耶離諸利昌得第六分,還國起塔;迦毘羅婆國諸釋子得第七分,還國起塔,摩伽陁國主阿闍世王得第八分,還王舍城起塔。姓煙婆羅門得盛舍利甁,還頭那羅聚落起塔;畢波羅延婆羅門得灰,還國起塔。爾時,閻浮提中八舍利塔,第九甁塔,第十灰塔。自此已後,起無量塔。’又阿育王經云:‘昔阿恕伽王欲取阿闍世王所擧舍利。阿闍世王著殑伽河中作大鐵劍輪,使水輪轉著舍利處,種種方便取不能得。問蓮華比丘:云何可得?比丘荅言:擲數千斛奈著中可得止輪。尋用此語,以柰著於水中,偶試一柰#柰墯機關孔中,劍輪卽定更不迴轉,然大龍王守護,都不可得。王時問言:何由可得?龍王福勝。無由可得。問言:云何知彼福勝?以金鑄作龍像及以王像。以秤稱之,重者福勝。卽時稱量,龍像倍重。王見此事,卽勤修福。旣修福已,復更鑄像,復更稱量王像、龍像,稱量正等。王更修福,復更鑄像,稱看王像轉重。王知像重,將諸軍衆,往到水邊。龍王自出,獻種種寶。王語龍言:阿闍世王遺我舍利,我今欲取。龍王自知威力不如,卽將王至舍利所,開門取舍利與,阿闍世王所造油燈始欲盡賜。舍利旣出,燈亦盡滅。王怪而問蓮華比丘:云何阿闍世王裁量油燈,至取舍利,方始乃滅?尊者答言:彼時有善筭者,計百年中用爾許油。用如是計故使至今也。’感福部第五如大悲經云:‘爾時,世尊告阿難:我滅度後,若有人乃至供養我之舍利如芥子等,恭敬尊重謙下供養。我說是人以此善根,一切皆得涅槃界盡涅槃際。若有造立形像塔廟,乃有信心念佛功德,乃至一華散於空中,我說是人以此善根一切皆當得涅槃界盡涅槃際。佛告阿難:若有衆生以念佛故,乃至一華散於空中。如是福德所得果報,不可窮盡。若有衆生以至誠心,念佛功德,乃至一華散於空中,於未來世,當得釋天王、梵天王、轉輪聖王。於其福報,亦不能盡,施佛福田不以有爲果報所能盡邊。我說是人必得涅槃盡涅槃際。乃至若有畜生於佛世尊能生念者,我亦說其善根福報當得涅槃盡涅槃際。若有三千大千世界滿中四沙門果及辟支佛,如甘蔗竹葦。若有人能若現在若滅後起塔供養,若一劫若減一劫,以諸稱意一切樂具恭敬尊重謙下供養。若復有人於諸佛所,但一合掌,一稱佛名。如是福德比前福德,百分不及一,千分、百千億分乃至迦羅分不及一。何以故?以佛如來諸福田中爲最無上,是故施佛成大功德神通威力。頌曰金軀遺散骨 寶塔徧天龍創開一十塔 終成八萬重。珠蓋靈光變 剎柱吐芙蓉屢開朝霧露 數示曉靈蹤。紅霓相映發 風搖響和鍾仙鸞往往見 神僧數數從。獨超群聖上 含識普生恭砧椎擊不碎 方知聖德顒。’感應緣略列一十六代隋有五十三州漢法內傳云:‘明帝旣弘佛法,立寺度僧。五嶽山館諸道士等,請求捔試釋老優劣。道經以火試焚,隨火消燼,道士衆首費才愧恥自憾衆前而死,張衍啓寤,競共出家。于時,西域所將舍利五粒五色,直上空中,旋環如蓋,映蔽日光。摩騰羅漢踊身高飛,居空如地,履地如空。神化自在,爲衆說法。天雨寶華,散佛僧上,天樂異音大衆同聞,度人無量。廣如下破邪篇說。魏明帝洛城中,本有三寺。其一在宮之西,每繫舍利在幡剎之上,輒斥見宮內。帝患之,將毀除壞。時,有外國沙門居寺,乃齎金盤成水,水貯舍利,五色光明騰焰不息。帝見歎曰:非夫神效,安得爾乎?’乃於道東造周閭百閒,名爲官佛圖精舍云。吳孫權赤烏四年,有外國沙門康僧會,創達江表設像行道。吳人以爲妖異,以狀聞之。權召會問:‘佛有何靈瑞?’曰:‘佛晦靈迹遺骨舍利,應現無方。’權曰:‘何在?’曰‘神迹感通,祈求可獲。’權曰:‘若得舍利,當爲興寺。’經三七日,至誠求請。遂獲甁中,旦呈於權,光照宮殿。權執甁寫于銅盤,舍利下衝盤卽破碎。權大驚異,希有瑞也。會進曰:‘佛之靈骨,金剛不朽,劫火不焦,椎砧不碎。權使力者盡力擊之,椎砧俱陷舍利不損,光明四射耀晃人目。又以火燒騰光上踊,作大蓮華。權大發信,乃爲立寺,名爲建初,改所住地名佛陁里。孫皓虐政,將欲除屛佛法燔經夷塔。有信諫曰:‘且少寬假,知無神驗誅除不晩。’皓從之,召會曰:‘若能驗現於目前助君興之,如其不能將廢加戮。’會曰:‘佛以緣應感而必通。’卽冀給假請效不難,皓與期三日。于時,僧衆百餘同集會寺。皓陳兵圍寺刀鋸齊至,剋期就戮,僧恐無靈先自縊者。會謂衆曰:‘佛留舍利止在今時,前已有驗今豈罔哉?’恰期便獲,乃進於皓:‘此是如來金剛之骨,志誠賁獲。擊以百鈞之杵,終無微毀。’皓曰:‘金石可磨,枯骨豈堅?沙門面欺祇速死耳。’乃更置之鐵砧,以金椎擊之,金鐵竝凹而舍利如故。又以淸水行之,舍利揚光散采洞燭一殿。皓乃欣欣服信,革誠膺化。晉初竺長舒,先有舍利重之。其子爲沙門,名法顏。每欲還俗,笑曰:‘舍利是沙石耳。何足可貴?’父投之水中,五色三帀,光高數尺,見徵生信,遂不歸俗。長舒臨死,還發俗念,輒病委頓。卒爲沙門,以舍利安江夏塔中。晉太興中,於潛董汪信尚木像,夜有光明。後像側有聲,投地視乃舍利,水中浮沈五色晃昱,右行三帀。後沙門法常看之,遂騰踊高四五尺,投常懷中。常曰:‘若使常興立寺宇,更見威神。’又躍于前,於卽常爲建寺塔。於潛入法者,日以十數焉。晉大興中,北人流播廣陵日有千數。有將舍利者,建立小寺立剎,舍利放光至于剎峯,感動遠近。晉咸和中,北僧安法開至餘杭,欲建立寺無資財。手索錢貫貨之,積年得錢三萬。市地作屋,常以索貫爲資,欲立剎無舍利。有羅幼者,先自有之,開求不許。及開至寺禮佛,見幼舍利囊已在座前,卽告幼:‘幼隨來見之。’喜悅與開,共立寺宇於餘杭云。晉咸康中,建安太守孟景,欲建剎立寺,於夕聞牀頭鏘然,視得舍利三枚,因立寺剎。元嘉十六年六月,舍利放光通照上下,七夕乃止,一切咸見。晉義熙元年,有林邑人嘗有一舍利,每齋日有光。沙門慧邃隨廣州剌史,刁逵在南,敬其光相欲請之,未及發言,而舍利自分爲二,逵聞心悅。又請留敬,而又分爲三,逵欲摸長干像,寺主固執不許。夜夢人長數丈告曰:‘像貴宣導何茍悋耶?明報聽摸。’旣成逵以舍利著像髻中,西來諸像放光者多,由舍利故也。宋元嘉六年,賈道子行荊上,明見芙蓉方發。聊取還家,聞華有聲,怪尋得一舍利,白如眞珠。焰照梁棟,敬之擎以箱案懸于屋壁,家人每見。佛僧外來,解所被衣而坐案上。有人寄宿不知褻慢之,乃夢人告曰:‘此有釋迦眞身,衆聖來敬,爾何行惡?死墯地獄,出爲奴婢。何得不怖?’其人大懼,無幾癘死。舍利屋地生荷八枝,六旬乃枯。歲餘失之,不知所去。宋元嘉八年,會稽安千載者,家門奉佛。夜有扣門者,出見十餘人,著赤衣運材積門內云:‘官使作佛圖,忽無所見。’明至他家,齋食上得一舍利,紫金色,椎打不碎。以水行之,光明照發,便自擧敬。常有異香,後出欲禮忽而失之,尋覓備至半日還。時,臨川王鎭江陵,迎而行之,雜光閒出,佐史沙門咸見不同。王捧水器祝曰云云。輒應聲光出,夜見百餘人繞舍利屋燒香持華如佛出狀。及明人及舍利俱失。宋元嘉九年,潯陽張須元家設八關齋。道俗數十人見像前華上似冰雪,視得舍利數十。便以水行之,光焰相屬,後遂失之。數日開廚,更視獲牙,匳中有白㲲裹舍利十枚,光焰屬天。諸處咸來請之。宋元嘉十五年,南郡劉凝之隱衡山,徵不出。奉五斗米道,不信佛法。夢見人,去地數丈曰:‘汝疑方解。’覺忽反寤,旦夕勤至半年禮佛。忽見額下有紫光,揣光處得舍利二枚,剖擊不損,水行光出。復於食時,口中隱齒,吐出有光。妻息又獲一枚,合有五枚,後又失之,尋爾又得。宋元嘉十九年,高平徐椿讀經及食,得二舍利,盛罌中。後看漸增,乃至二十。後寄廣陵令劉馥,馥私開之空甖,椿在都忽自得之。後退轉皆失,舍利應現値者甚多,皆敬而得之,慢而失之。舍利東流緜歷帝代,傳紀所及略陳萬一,由事相重沓屢現非奇,佛化潛隱誠其致也。然有國興塔無勝隋代,一化之內百有餘所。神瑞開發,陳諸別傳。今略出之,以顯感德云云。隋文帝立佛舍利塔二十八州起塔五十三州感瑞恒忍 雍州仙游寺 岐州鳳泉寺華州思覺寺 同、州大興國寺、涇州大興國、寺 蒲州棲巖寺、 泰州岱嶽寺 幷州無量壽寺 定州常嶽寺 嵩州嵩嶽寺相州大慈寺、 廓州連雲嶽寺、 衡州衡嶽寺 襄州大興國寺 牟州巨神山寺 吳州會稽山寺 蘇州虎丘山寺右此十七州寺起塔出打剎物及正庫物造秦州、 瓜州、 楊州、 益州、 亳州 桂州 交州 汝州 番州 蔣州 鄭州右此十一州隨逐山水州縣寺等淸淨之處起塔出物同前門下仰惟。正覺大慈大,悲救護群,生津梁庶品朕歸依三寶,重興聖教,思與四海,之內一切人民俱發菩提共修福,業使當今。見在爰及來世永作善因同登妙果宜請,沙門三十人諳。解法相兼堪宣導、者各將侍者二人幷散官各給一人熏陸香一百二十斤、馬五匹,分道送舍利,往前件諸州起塔,如川陸寺就有山水寺所起塔依前。山舊無寺者,於當州內淸靜寺處建立其塔,所司造樣送往當州,僧多者三百六十人,其次二百四十人,其次一百二十人。若僧少者盡見僧,爲朕皇后太子廣諸王子孫等及內外官人一切民庶幽顯生靈,各七日行道幷懺悔。起行道日打剎,莫問同州異州,任人布施,錢限至十文已下,不得過十文。所施之錢,以供營塔。若少不充役丁及用庫物,率土諸州僧尼竝爲舍利設齋,限十月十五日午時,同下入石函,摠管剌史以下縣尉以上。自非軍機停常務七日,專檢校行道及打剎等事,務盡誠敬副朕意焉。主者施行。仁壽元年六月十三日,內史令豫章王臣暕宣舍利感應記二十卷。隋著作王邵 撰皇帝昔在龍潛,有婆羅門沙門來詣宅上,出舍利一裹曰:‘檀越好心故,留與供養。’沙門旣去,求之不知所在。其後,皇帝與沙門曇遷,各置舍利於掌而數之,或少或多,竝不能定。曇遷曰:‘曾聞婆羅門說,法身過於數量,非世閒所測。’於是,始作七寶箱,以置之。神尼智仙言曰:‘佛法將滅,一切神明今已西去。兒當爲普天慈父重興佛法,一切神明還來。’其後,周氏果滅佛法,隋室受命乃興復之。皇帝每以神尼爲言云:‘我興由佛故,於天下舍利塔內,各作神尼之像焉。’皇帝皇后於京師法界尼寺,造連基浮圖,以報舊願。其下安置舍利。開皇十五年季秋之夜,有神光自基而上,右繞露盤赫若冶鑪之焰。其一旬內四度如之。皇帝以仁壽元年六月十三日,御仁壽宮之仁壽殿,本降生之日也。歲歲於此日,深心永念修營福善,追報父母之恩,故延諸大德沙門與論至道。將於海內諸州,選高爽淸靜三十處,各起舍利塔。皇帝於是,親以七寶箱,奉三十舍利自內而出,置於御座之案。與諸沙門,燒香禮拜願弟子常以正法護持三寶救度一切衆生乃取金甁瑠璃各三十以瑠璃盛金甁置舍利於其內熏陸香爲泥塗其蓋而印之三十州同剋十月十五日正午入於銅函石函一時起塔諸沙門等各以舍利奉送諸州一切道俗各盡境內嚴持香華寶幢音樂埽灑道路盡誠竭力奉迎舍利不可具陳各感靈瑞備如廣傳今略寫十餘以示後人皇帝爾日共皇后太子宮內妃嬪精誠用心竭力懺悔普爲含識共結善緣皇帝見一異僧被褐色覆膊以語左右曰勿驚動他置之爾去已重數之果不須現舍利之將行也皇帝曰今佛法重興必有感應其後處處表奏皆如所言皇帝當此十月之內每因食次於齒下得舍利皇后亦然以銀盤盛水浮其一出示百官須臾忽見有兩粒右旋相著二貴人及晉王昭豫章王暕蒙賜硯勅令審視之各於硯內得舍利一未過二旬宮內凡得十九多放光明自是遠近道俗所有舍利率奉獻焉皇帝曰何必皆是眞身諸沙門相與推試之果有十三玉粟其眞舍利鐵䆘而無損雍州城西盩厔縣南仙游寺立塔之日天降陰雪晦嶺重厚舍利將下昏雲忽散日光朗照道俗散畢雲合如舊岐州鳳泉寺立塔感得文石如玉爲函又現雙樹鳥獸靈祥基石變如水精涇州大興國寺立塔三處各送舊石非世所有合用爲函恰然相可秦州靜念寺立塔定基已瑞雲再覆雪下草木開華入函光照聲贊華州思覺寺立塔初陰雪將欲下舍利日光晃朗五色氣光高數十丈照覆塔上屬天降寶華同州大興國寺立塔値雨無壅障處及舍利入函忽然雲啓馳散日光照曜復有神光重繞於日至十二月內夜光照五十里蒲州棲巖寺立塔地震山吼鍾鼓大聲又放光五道至二百里皆見幷州無量壽寺立塔初晝昏雲重將下舍利入函天晴日照復放神光五色天神現形莫知多少定州北嶽寺立塔之日有異老公來施布負土畢已失之舊此無水忽有水流前後非一相州大慈寺立塔之日天陰降雪將下舍利入函日出下後復合天雨奇華連注極多鄭州定覺寺立塔之日感得神光如流星入寺設供二十萬人食不盡嵩州閑居寺立塔感得白兔來至輿前初陰雪將下日朗入已復合亳州開寂寺立塔界內無石別處三石合而成函基至盤石二浪井夾之汝州興世寺立塔初陰雲雪將下天晴入函畢已陰雲還合泰州岱嶽寺立塔夜振鼓聲三重門自開有騎從廟出迎光瑞非一靑州勝福寺起塔掘基遇自然磐石函將入塔有光瑞現牟州巨神山寺立塔獲紫芝二莖陰雲將下日開閉訖還合隨州智門寺立塔掘基得神龜甘露降黑蜂繞龜有符文襄州大興國寺立塔初天陰將下日朗入函雲合楊州西寺立塔久旱舍利入境夜雨普洽蔣州棲霞寺立塔鄰人先夢佛從西北來入寺及至如夢吳州大禹寺立塔舍利汎度五江風波皆不起又放神光獲得紫芝蘇州虎丘山寺立塔掘基得一舍利空中天樂人皆聞之井吼三日舍利方至衡州衡嶽寺立塔四遇逆風四乞順水峯上白雲闊二丈直至基所三帀乃去桂州緣化寺立塔未至十里鳥有千許夾輿行飛入城乃散番州靈鷲寺立塔坑內有神仙現騰雲氣像益州法聚寺立塔初陰晦冥將下日朗掩已便陰廓州法講寺立塔初行郊西爾夜廓州光瑞高數丈從東來入地內外皆見洧州官人王威送流人九十道逢舍利善心共發放之爲期其囚被放千里一期無一逃者隨州人於溳水作魚獄三百古來傳業旣見舍利悉決放之永斷茲惡餘州亦效矣慶舍利感應表幷答 隋安德王雄百官等臣雄等言臣聞大覺圓備理照空有至聖虛凝義無生滅故雖形分聚芥尚貯金罌體散吹塵猶興寶剎自釋提請灰之後育王建塔以來未有分布舍利紹隆勝業伏惟皇帝積因曠劫宿證菩提降迹人王護持世界往者道消在運仁祠廢毀慈燈滅影智海絕流皇祚旣興法鼓方振區宇之內咸爲淨土生靈之類皆覆梵雲去夏六月爰發詔旨延請沙門奉送舍利於三十州以十月十五日同時起塔而蒲州棲巖寺規摸置塔之所於此山上乃有鍾鼓之聲舍利在講堂內其夜前浮圖之上發大光明爰及堂裏流照滿室將置舍利於銅函又有光若香鑪乘空而上至浮圖寶甁復起紫焰或散或聚皆成蓮華又有光明於浮圖上狀如佛像華趺宛具停住久之稍乃消隱又有光明繞浮圖寶甁蒲州城內仁壽寺僧等遙望山頂如樓闕山峯㵎谷昭然顯見照州城東南一隅良久不滅其棲巖寺者卽是太祖武元皇之所建造又華州置塔之處于時雲霧大雪忽卽開朗正當塔上有五色相輪舍利下訖還起雲霧皇帝皇后又得舍利流輝散彩或出或沈自非至德精誠道合靈聖豈能神功妙相致此奇特臣等命偶昌年旣睹太平之世生逢善業方出塵勞之境不勝抃躍謹奉表陳賀以聞門下仰惟正覺覆護群品濟生靈於苦海救愚迷於火宅朕所以至心迴向結念歸依思與率土臣民爰及幽顯同崇勝業共爲善因故分布舍利營建神塔而大聖慈愍頻示光相宮殿之內舍利降靈,莫測來由自然變現。歡喜頂戴得未曾有。斯實群生多幸延此嘉福,豈朕微誠所能致感?覽王公等表,悚敬彌深。朕與王公等及一切民庶,宜更加剋勵興隆三寶。今舍利眞形猶有五十,所司可依前式分送海內,庶三塗六道俱免蓋纏,稟識含靈同登妙果。主者施行。高麗、百濟、新羅三國使者將還,各請一舍利,於本國起塔供養,詔竝許之。詔於京師大興善寺起塔,先置舍利於尚書都堂。十二月二日旦發焉。是時,天色澂明氣和風靜,寶輿幡幢香華音樂種種供養,彌徧街衢,道俗士庶不知幾千萬億,服章行位從容有敍。上柱國司空公安德王雄以下皆步從至寺,設無遮大會,而禮懺焉。有靑雀狎於衆內,或抽佩刀擲以布施,當人叢而下都無所傷。仁壽二年正月二十三日,復分布五十三州建立靈塔,令摠管剌史已下縣尉以上廢常務七日。請僧行道教化打剎,施錢十文,一如前式。期用四月八日午時,合國化內同下舍利封入石函。所感瑞應者,別錄如左。常州無雲雨下天降瑞華徧城如此泉州 循州營州三放白光感得古石解作函洪州白頭烏引路無窮杭州掘基有白石窟容入石函涼州德州感得大禽旋塔人皆不識滄州觀州塔上五色雲現從午至暮瀛州基內有紫芝現冀州有患盲人及躄皆差幽州函如水鏡放光衆像徐州函現仙人聖僧等相莒州三現神光基得古塔患瘂能言齊州萊州楚州野鹿來聽鴈翔塔上江州地出銅像潭州舍利至江神鳥千迎毛州天雨金銀華貝州 宋州井苦變甘放光天雨瑞華如雪趙州放赤光瑞像無量濟州二放神光香氣鍾響出於雲際兗州壽州信州 荊州雲蓋塔上雨華不下蘭州基下得石像又得二銅像梁州利州放光如日月潞州靈泉自涌病遇得差黎州地下瓦文千秋樂動慈州雲蓋如飛仙靈泉涌出病得愈魏州數放光明天雨寶華人人得之沈州汴州異香放光見像患差許州去州九十放光照見覆塔甘井涌現豫州五色光現文字五色顯州曹州光變最繁安州感香一夕放光雲蓋魚集晉州三度放五色光明懷州雄兔自來馴附放光異迹陜州前後十一度現光靈瑞洛州香氣如風數放光明鄧州函作玉文現秦州重得舍利函變馬瑙衛州光照於外沼州僧先患腰不行聞迎十里得差鄭州放光幡內向明杞州放光五色右㧾五十三州四十州已來皆有靈瑞不可備列具存大傳法苑珠林卷第四十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雕造
『법원주림』 40권(ABC, K1406 v39, p.703a01-711b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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