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월) 전등사에 가다. 고려산 진달래꽃밭에 갈 적이면 귀경길에 꼭 들리는 사찰이다. 고적한 경내 仙境에 이끌려서였다. 첨언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 금오신화 (金鰲新話)의 인귀교환설화의 모델인 구우의 전등신화(剪燈新話)까지 연상 시키니 일거양득 금상첨화의 소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구우의 剪燈은 등불[佛法]을 전달하다는 뜻이 아니라 등불을 오래 켜두면 심지에서 그을음이 올라와 그 심지를 잘라가며 밤 깊은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산 사람처럼 만나 시를 수작하는 러브 스토리다. 이를 인귀교환설화라 한다.
더구나 사찰 담장인 줄 알았던 돌담이 적군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정족산성이라니 그저 놀랍기만하다. 프랑스군을 퇴각시킨,병인양요를 승전으로 이끈 양헌수 장군의 치적을 간략히 살펴본다.
*전등사 지붕 석가래의 네 모서리에는 벌거벗은 나부(裸婦)가 쪼그리고 앉아 지붕을 떠받히고 있다. 대웅전의 오른쪽 두 모서리에는 두 손로, 좌측 두 모서리는 한 손으로 석가래를 떠받들고 있다. 야차라면 일반인들은 귀신의 이름쯤으로 알고 있지만 아래 동영상 <불교의 난장이 약사>의 해설에서는 정령, 또는 신령의 의미란다. '약사'의 한자 표기로는 야차다.
전등사의 나부는 아래 동영상을 참고하면, 부처님을 수호하고 그 위대함을 떠받드는 야차의 또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전설상의 도편수는 그 천재성을 100% 발휘했다. 1차적으로는 그 여인은 부끄럼없이 자신의 전신을 바쳐 온몸으로 대웅전을 수호하는 투혼을 발휘한 점이고, 2차적으로는 신성한 것을 수호하는 상징물에 나부를 등장시킨 분은 세상천지에 전등사의 도편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도편수의 예술혼을 아무리 자랑해도 온 세상에 시비를 걸어올반편[半偏]은 없을 것이다. 고차원의 예술이란 그런 역설의 표현이다.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시대에 나부가 등장했는데 한국의 도편수도 이에 뒤질세라 나부 야차를 조각했다. 도편수의 세계사적 안목에 절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참고]전등사건축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라고 했으나 1282년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1605, 1614년에 일어난 화재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 4월부터 재건하기 시작해 1621년 2월 완성되었다.
그러니 해학을 즐겨하는 한국인들이 딴 사내와 눈이 맞아 달아난 술집 작부 이야기를 첨부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그녀는 대웅전 석가래의 무개를 견디느라 나무로 만든 가슴조차 갈라져 심장이 삐져나올 지경인데.....
상단 1번 사진에서 청색 홍색 끈을 추가한 것은 갈라진 배 부위를 가리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오른손으로 석가래를 받힌 사진이나 마지막 사진에는 어떤 가리개도 없다. 나부의 마지막 사진이 그 증좌다.
나무인지라 어떤 이유 때문인지 갈라졌었 걸랑요. 문경새재 물박달나무로 만들 걸 그랬나.
불법수호 차원에서 본다면 이 나부는 세세생생 죽을 고생하라는 도편수의 저주를 담은 것이 아니라 비록 딴놈에게 갔을망정 영원토록 불볍 수호신이 되라는 도량 넓은 도편수의 염원을 형상화하였다고 해석된다. 불법에는 속좁은 저주나 증오란 없다. 생로병사하는 생명체의 평등성을 깨닫고 苦集滅道 사성체를 깨쳐 팔정도를 실천함으로써 지상의 천국을 만들라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후세에 인간들이 하도 말을 안 들으니 극락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었다는 것이 이 글 운영자의 생각이다. 천수관음처럼 국리민복을 위한 개인의 올바른 욕망을 성취시켜 주는 보살행만이 자기구원의 길일 뿐이다.